제목: 거주할 처소를 세웁시다
본문: 열왕기하6:1-7
설교: 김양재 목사님
목장참석: 고유미. 김정은. 한지원
1. 부흥으로 이어지는 양육이 있어야 합니다.
처소가 좁은데 부흥했다는 뜻이다.
왜 부흥을 했을까요? 이때가 언제일까? 가난한 과부 여인 남편이 죽었다. 과부가 되었다.
부자인 수넴 여인, 남편과 안 통한다.
이방인 나아만 등 평신도와 이방인은 이렇게 분별을 하고 순종을 했는데 엘리사의 수제자 게하시는 도리어 분별을 못한다.
기회만 되면 스승의 지팡이로 권세를 휘두르고 스승까지 팔아가며 지어낸 거짓말로 큰돈을 탈취했다.
평신도들보다 수제자가 가장 골칫덩이가 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게하시가 얼마나 거룩해 보였으면 수제자가 되었을까?
평신도들은 힘드니까 다들 고정관념 없이 살려고 다들 왔는데 이런 성도들을 인도해야 하는 사역자들은 사역하려고 와서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쓰고자 하니 구속사가 도리어 들리지 않고 평신도의 부흥에 비해 사역자들은 구속사의 말씀이 들리지가 않았다.
대표적인 제자가 게하시라고 할 수 있다.
게하시의 탐심을 엘리사가 나병으로 치리했는데 도리어 이 공동체가 지금 부흥을 하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게하시을 치리하지 않고 덮고 갔다면 당시는 지나갔겠지만 이 공동체는 부흥은 없고 분열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치리하는 이 공동체는 믿을 만하다는 것이다.
우리도 치리를 하는 교회이다.
평신도, 사역자 모두 치리를 해왔는데 치리만 있는 게 아니고 세례 성찬 치리가 골고루 있었다.
바로 이것이 양육이다.
양육이 제대로 되어지니 부흥이 되어졌다.
양육의 원칙은 철저히 말씀 적용이었다.
결국 부흥을 내려놓으니까 부흥으로 이어지는 양육이 되었다.
1절에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곳은
선지자와 그의 제자들이 함께 생활하는 단순한 기숙사가 아니다.
원어로 보면 '우리가 당신 앞에 앉아있는 이곳' 인데
4장 38절에도 나왔다.
엘리사 앞에 제자로 앉아 가르침을 받는 곳이라는 뜻이다.
선지 학교인데 오늘로 말하면 신학교이다.
곧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여 말씀으로 양육을 받는 곳이다.
그래서 또한 교회이기도 하다.
예수님도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셨다.
그런데 잘 가르쳐야 전파가 되고 치유가 일어나는 것이다.
선지 학교에서 선생님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제자이다.
제자들이 함께 앉아서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다.
이것이 배움의 기본이고 양육의 시작이다.
이제 양육이 잘 되어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선생님께 말할 때도 있다.
왕사부 엘리야 선생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은 엘리사 선생님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이건 걱정의 질문이다.
엘리사 선생님께 대책이 있는지 걱정스럽게 물었다.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또 한 말이 있다.
엘리야가 떠나고 엘리사가 겉옷을 가지고 요단강을 가지고 건넌 것을 본 직후에 2장에 엘리사의 성령의 역사 엘리야의 성령의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걱정이 안도로 바뀐 감탄의 외침이 되었다.
또 제자들이 흉년에 굶다가 겨우 들호박 국을 끓였는데 거기 독이 있었다.
그러니까 또 '하나님의 사람이여 솥에 죽음의 독이 있나이다.' 두려움에 외침의 말을 했다.
네 번째 나온 제자들의 말이 오늘 1,2절이다.
이제 좁으니까 요단강 근처에 거주할 처소를 세우자는 제안의 말을 한다.
지금까지 맨날 현실의 문제 앞에 걱정하고 두려워하던 제자들, 그리고 놀라운 능력에 감탄하던 제자들이 이제 많이 커 가지고요 자기들의 의견을 제안한다.
아주 자랑스러운 제안을 한다.
제자가 많아져서 선지학교 건물이 좁아졌으니까 추가로 건물 하나 세우자는 것이다.
제자들이 엘리사를 회사 사장쯤으로 생각해서 무조건 충성해서 아무 말도 못하면 그 양육은 실패한 것이다.
사부님에게 질문하고 나눔하며 감탄하고 두렵다고 외치기도 하고 드디어 제안을 하게 되는 것이 양육이 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제자들이 너무너무 기뻐하는 마음이 이해가 된다.
여전히 이스라엘은 악한 왕 여호람의 통치 아래 있었다.
영적으로는 우상 숭배로, 육적으로는 가뭄과 이웃 나라 침략으로 살길이 캄캄한 암흑이었다.
대단한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도 이세벨과 아합에게 쫓겨 로뎀나무 아래 홀로 앉아서 죽기를 바랐었다.
그땐 선지자 선생님도 제자도 아무도 없이 홀로 남았는데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엘리사를 제자로 만나게 하셨다.
시간이 흘러 이제 제자들이 늘었다.
벧엘과 여리고 등지에 모여 선지 학교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엘리야에서 엘리사로 승계가 이루어져도 여전히 같이 믿는다고 하면서도 엘리사 공동체는 여전히 사회적으로 소수였고 비주류였다.
하나님을 배척하는 왕이 다스리는 이스라엘에서 왕따였기 때문에 여전히 생존 자체가 문제인 공동체였다.
이런 암흑기에도 엘리야는 끝까지 목숨을 걸고 사역했고 후계자 엘리사도 스승 못지않게 전국을 누비면서 최선을 다해 사역을 했다.
여호와의 손을 힘입어 메마른 개천에서 물이 나오게 하고, 기름 한 그릇의 기적을 일으키고,
수넴 여인에게 아들을 낳게 하며 그 아들이 죽자 다시 살리고, 독이 든 죽을 해독하고, 적국 장수 나만의 나병을 고치는 등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전했다.
그 열매가 이제 게하시의 치리와 맞물려 생존이 걱정이던 선지생도 공동체에 부흥이 일어났다.
부흥도 그냥 부흥이 아니고 거주하는 처소로는 다 수용할 수 없을 만큼 학생들이 몰려드는 대단한 부흥이 일어났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신학교 벧엘과 여리고가 있다.
두 곳 모두 엘리사의 제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 두 개의 신학교가 아니라, 한 개 신학교의 두 캠퍼스, 두 채플이다.
오늘 본문 1, 2절에 제자들이 자기를 우리라고 말하는 게 4번이나 나온다.
그러니까 「우리들 신학교」 하면 딱 맞지 않겠어요?
신학교는 또 교회니까 우리들교회인 셈이다.
우리들 교회의 벧엘 채플과 여리고 채플,
엘리사의 「우리들 신학교」도 한 곳이 차면 다른 곳으로 보냈으면 되었을 텐데 두 곳 모두 차고 넘쳤던 것 같다.
그래서 이제 요단강의 새로운 채플 캠퍼스를 세우자고 제자들이 나서서 엘리사 선생님께 요청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거주하는 곳이 차고 넘치는 부흥이 일어났을까?
사람들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선지생도인 남편을 잃은 과부, 과부이기도 하고 가난하기도 하고, 아들을 낳지 못한 수넴 여인은 부자지만 남편하고 안 통해, 나병 걸린 나아만 장군 등 여러 문제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 살아났다.
그렇게 살아난 입소문을 주는 사람들이 엘리사가 있는 선지 학교로 몰려들었을 것이고 살아나는 역사가 계속 일어났을 것이다.
살아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살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다.
그러려면 그들을 섬길 일꾼도 많이 필요한데 이것이 교회 공동체가 부흥하는 원리이다.
부흥은 교회 목적이 아니라 결과이다.
교회 목적은 사람을 살리는 구원이다.
우리들 교회도 그렇잖아요?
저는 목회하려고 교회를 개척하지 않았어요.
그저 이혼하려는 한 사람 찾아가 이혼을 말리고 죽겠다는 사람 날마다 그거 말리고 그렇게 그런 사람들이 모였다.
살아난 사람들의 간증을 듣고 살고 싶어서 모여든 사람들에게 그저 그날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는데 그렇게 하루하루 살다 보니까 20년이 그야말로 수일같이 지나갔다.
굉장히 중요한 것은 살아나는 기적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기름 한 그릇의 기적, 아들 낳는 기적, 평안을 누리는 기적, 눈을 뜨는 기적, 말씀대로 남는 기적, 나병이 고침받는 기적, 우리가 이 기적의 이야기들은 다 살펴보았다.
이 기적 하나하나 나오기 위해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을 하셨고 그 말씀을 들은 선지자와 사람들이 어떻게 순종하며 적용했는지 자세하게 묵상했다.
공통된 스토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사건을 통해서 엘리사도 키워가시고, 사람들도 키워가시고, 그들의 그런 성장을 통해 말씀에 담긴 메세지도 키워 가시는 것이다.
기적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 그들이 믿음으로 성장하고 구원의 메시지가 풍성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양육이다.
엘리사의 선지 학교는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주하는 이곳이다.
우리가 당신 앞에 앉아 있는 이곳이다.
우리가 당신 앞에서 말씀을 드리며 배우는 이곳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말씀으로 양육 받는 이곳이다.
기적이 부흥을 만드는 게 아니고 양육이 부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기적은 일시적이다.
기적으로 일어난 부흥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말씀에 의한 양육은 말씀이 영원하므로 영원히 이어진다.
우리가 천국 가서도 하나님께 직접 양육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하나님께 직접 양육을 받는 것 생각만 해도 설렌다.
그게 우리가 천국에서 누릴 기쁨이다.
말씀이 영원한 만큼 양육도 영원하다.
양육에서 이어진 부흥 또한 영원할 줄 믿는다.
양육을 통해 진정한 부흥이 일어날 때 거주할 처서를 세우게 된다.
적용)
-말씀으로 양육 받아 살아난 경험이 있습니까? 내 교회를 사랑합니까?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내 힘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야 합니다.
내 힘을 내려놔야 된다.
전국적인 가뭄이 이어졌기 때문에 성전 건축에 쓸 만한 나무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나마 목재를 구할 수 있는 요단강에 가서 나무를 베어 새롭게 우리가 거주할 처소를 세우자고 한다.
새로운 채플을 세워야 할 정도로 부흥한 것을 누가 가장 기뻐했냐면 당연히 엘리사 이다.
엘리야 선지자가 외롭게 고군분투하면서 하나님께 충성한 거를 엘리사는 누구보다 자세히 봤다.
외로운 사역을 엘리사가 그대로 물려받아서 이어가고 있다.
이제 학교가 차고도 넘치는 부흥이 일어났다.
새로운 처소를 세우자는 제자들의 제안에 고민하지 않고 가라고 허락한다.
가라는 엘리사 이 선생님의 허락을 들은 그들은 자기들끼리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신도 종들과 함께 하소서 결단을 내리시고 종들과 함께 가소서,'
매우 강력한 요청을 표현한다.
'선생님이 함께 가지 않으면 우리도 안 간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함께하지 않으면 자기들의 계획이 아무리 좋고 유익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제 제자들이 알게 되었다.
제자들이 양육이 좀 된 걸까요?
제자 한 명의 간청에 엘리사는 주저하지 않고 드디어 이제 '내가 가리라' 대답한다.
그리고는 함께하는 우리 공동체가 되어서 모두 함께 요단강에 도착해서 학교 건축에 쓸 나무들을 베기 시작한다.
모두가 각각 한 재목을 가져다가 처소를 짓겠다는 마음으로 열심을 낸다.
잔뜩 기대에 차서 일을 시작하자 사건이 생겼다.
엘리사가 살던 때는 BC 9세기였는데 철기 시대 초기인 것이다.
BC 11세기에는 그 이스라엘 왕국에 철로 된 무기 가진 사람이 사울하고 그의 아들 요나단밖에 없었다고 함.
블레셋이 철기 문화를 많이 선도했는데 그들은 대장간을 다 통제했다고 한다. 무기 가지고 잘못될까봐
바알을 섬기는 이세벨도 아마 대장간을 통제하고 무기를 만들지 못하게 했을 거 같다.
오늘날로 하자면 쇠도끼는 최고급 전기톱일 뿐만 아니라 또 빌려준 사람도 그렇다면 신앙 고백으로 돕고자 한 것일 수가 있다.
다른 사람이 돌도끼로 한 그루를 겨우 벨 때, 청동도끼로는 두 그루를 겨우 벨 때, 쇠도끼를 쓴 그 생도는 열 그루 스무그루 막 벨 수 있었을 것이다.
너무 열심히 베다가 도끼머리가 자루에서 탁 빠져나갔다.
도끼머리가 날아가는 거는 사실 흔한 일이긴 하다.
그러니 점검을 확실히 해야 되는데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한 사람이 점검을 소홀히 한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날아가서 함께 일하던 사람을 맞혔을 수도 있는데 다행히 사람을 피해서 요단강에 떨어진 것이다.
가뭄이었지만 요단강에는 그때 물이 꽤 차 있었던 모양이다.
들어가서 도끼머리 찾는 게 불가능해졌다.
이 사람은 갚을 돈도 없고 빌려준 사람에게도 은혜를 원수로 갚는 꼴이 되었다.
선지자로서 사명을 접고 어쩔 수 없이 남의 집 노예가 될 처지가 되었다.
이 선지생도에게 쇠도끼가 떨어진 사건은 인생이 떨어진 사건이었다.
신음과 탄식이 절로 나오는 위기 상황이다.
공정의 1단계인 벌목 과정에서부터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도구인 쇠도끼를 떨어뜨렸다.
'이것만 할 수 있어.' 이렇게 내 힘을 신뢰하게 해주는 귀한 도구가 떨어져서 쓸 수 없게 되었다.
선지학교 이 채플 세우는 감격스러운 일을 위해 지금 열심히 나무를 베고 있었다.
너무 신나고 기뻐서 손과 발이 아픈 것도 느끼지 못한다.
하나님을 위해 이렇게 기쁨과 감사를 열심히 일하고 있다면 어때야 합니까?
일이 잘 술술 풀리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쇠도끼 능력을 발휘해서 작업이 빨리 진행되고 건물이 설계보다 더 크고 튼튼하게 올라가도록 하나님이 책임져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 교회 개척의 명분이 너무 확실한데, 헌신도 대단한데, 시작부터 지금 무서운 위기가 왔다.
이렇게 가장 의지하던 대상이 떨어지고, 내 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는 일이 생기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내 인생 망했다. 이제 끝이다.'
배우자의 신뢰가 떨어지는 사건을 만나면 '이혼해야 해.' 결심하고
내 인생의 기반이 떨어져 무너져 내리는 사건이 생기면 다 죽어야 한다고 단정하는 것이 모든 인간이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저절로 선택하게 되는 인생의 결말이다.
선악과 먹고 맨날 내가 옳고 니가 틀렸기 때문에 이 모두 깊은 수렁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인간의 종말을 상징한다.
다윗은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시편 69편에 고백을 했다.
사단이 역사하는 한 명의 실수가 지금 전체를 좌우한다.
항상 한 사람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한 명의 믿음이 전체를 살리기도 한다.
어떤 경우도 우리는 누구의 실수를 이러지 말고 전체를 살리는 그런 공동체 사람이 있어야한다.
하나님은 왜 이런 사건을 주실까요?
사람의 힘으로 지은 것은 결국 사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목회 개척, 사람을 의지하고 했다가는 금세 분열이 온다.
우리 힘으로는 우리가 안전하게 거주할 처소를 지을 수가 없다.
우리 힘으로 기껏 짓고 나중에 잃어버리지 않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우리 힘을 팍 꺾는 것이다.
우리 힘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떨어뜨려서 기대도 하지 않게 만드신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큰 사랑인 것이다.
우리보다 몇 수 늘 더 앞서 보시면서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해 주시는 사랑이다.
어제 초원님이 설교 중에 나오셨던 그 목장의 한 목원이신 변호사님과 아내와 자녀의 갈등 중에 있었는데, 아내가 3주 전에 교통사고를 내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쇠도끼가 그냥 날라갔다. '진짜 망했다.' 그런데 그동안에 갈등의 끝이 안 보였는데 이 사건이 온 집안을 하나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그분은 운전 속도도 제대로 지키고 법을 다 지켰기 때문에 사실은 굉장히 후한 선물을 주신다고 생각을 하는데 우리 힘에 대한 신뢰를 떨어트려서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후한 선물을 받도록 우리가 목장에서 나누었기 때문에 이게 해석이 되고
적용)
-내가 돈과 건강, 관계, 재능, 자리 등 쇠도끼처럼 의지하고 있는 사람(대상)은 누구(무엇) 입니까?
-그것이 떨어지는 사건이 있었습니까? 그 사건이 사랑으로 느껴집니까?
3. 사명의 십자가를 내밀어 잡으면 됩니다.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 쇠도끼를 떠오르게 하고 엘리사가 '쇠도끼가 어디 빠졌는데?'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그 장소, 그 상황, 그 환경을 피하지 말고 직면하라는 요구이다.
그것을 보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제 망했다며 환경에서 벗어나고 피하려고 하지 말고 직시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목장에서 내놔야지 알죠? 그걸 보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가만히 있으면 다 아파서 이 사람들 병들어서 죽는다.
오죽하면 6년 동안 날마다 싸웠겠나 말씀이 위대한 것이다.
이제 쇠도끼가 떨어진 장소를 딱 보여줬다.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냥 솔직하게 내 얘기를 하는 것이다.
그랬더니 이상한 행동을 하죠?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진다.
물 근원에는 소금을 던져서 나쁜 물을 고치고 솥에 가루를 던져 해독이 되니까 해독 공동체고 나뭇가지를 물에 던져 깊이 가라앉은 쇠도끼를 떠오르게 한다.
아무리 무거운 쇠도끼가 없어지고 가라앉았어도 나뭇가지를 넣으니까 떠올랐다.
모세가 홍해 바다를 건너는 대단한 기적을 행했는데 사흘 길을 걷고 물이 써서 못 마시니 백성이 원망했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예수 믿어도 환경이 조금만 안 좋으면 그렇게 원망을 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모세가 물에 던지니 물이 달게 되었다고 한다.
오래된 나무가 아니다.
나무를 물에 던지려면 나뭇가지를 베어서 던져야 되잖아요?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것으로 일상에서 십자가를 던지면 쓴 물도 달아지고 쇠도끼도 떠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초대교회 교부들도 이 장면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했다고 한다.
저는 병원에서 문밖출입을 못 할 때 날마다 나가지도 못하고, 돈도 안 주고, 안 되고 안 되고 안 되고만 부르짖다가 출애굽기 본문을 묵상하면서 '그러면 내 주위에 나뭇가지를 넣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우리 병원에서 전도를 하면 되지.' 그래서 산모들에게 들어가서 열심히 전도를 했다.
그 당시 산모들은 딸만 낳으면 슬퍼서 곡성을 낸다.
병실에 들어가면 산모가 밥도 안 먹어 그때 제가 들어가서 위로하고 '내가 딸 부잣집 막내딸이다' 하면서 간증과 전도를 했다.
여러분은 학교도 잘 가고 피아노도 잘 치고 소위 성공했을 때는 제가 지옥을 살다가 병원에서 전도하고 양육하니까 천국을 살더라고요.
사명 감당하는 것이 결혼을 지키는 비결인지 아세요?
내 만족 때문이 아니고 이 결혼을 지키는 것이 내 자신의 죄를 직면하는 비결이 되었다.
결혼을 지켜야 되니까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내 자식 땜에 힘들어서 남의 자식 가르치면 하나님은 내 자식 꼭 천국에 가게 할 줄 믿어요.
그게 이 원리이다.
쇠도끼가 떠올랐으니까 집어야 되잖아요.
물에 뜬 쇠덩어리를 보고 선지생도는 '이게 꿈이야 생시야?' 그렇게 넋이 나갔을 그에게 '너는 그걸 집으라. 들어 올리라.'
죄와 사망에 매인 옛사람은 떨어뜨려버리고 주님이 살려주신 이 새 사람을 들어 올려야 되는 것이다.
나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으니 이제 그것 생각하며 아쉬워하지 말고 나를 살리신 주님의 십자가를 높이 들어 올리라는 것이다.
내게 맡기신 사명에 십자가를 들어 올리라는 것이다.
내 몫의 태인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다.
'지라' 그랬더니, '집으니라'는 잡았다. 뽑았다. 가졌다 이런 뜻이다.
'집으라' 하니까 집었다.
무슨 뜻입니까?
도저히 들어 올릴 수 없을 것 같은 사명의 십자가를 맡기실 때 '나 못해요. 들어 올릴 수 없어요.' 주저앉지 말고 그저 손을 내밀어 잡기만 하라는 뜻이다.
들어 올릴 힘은 없어도 손은 내밀 수가 있잖아요?
손 내밀어 잡을 수는 있다. 뭘 하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열심히 하다가 떨어뜨린 거 내가 내 힘 믿고 덤비다가 실패한 거, 교만하게 나대다가 넘어진 거, 그런 것들이 내 눈앞에 다시 떠오르면은 우리는 '상처' 이러면서 다 도망가고 싶잖아요. 그런데 도망가려는 것은 여전히 내 힘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내가 의지하던 쇠도끼가 완전히 떨어졌으면 도망갈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게 맞다.
우린 그렇게 이혼으로 어디 해외로 환경으로 자꾸 피하고 싶어 하는데 이제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피하고 싶은 사명 다시 보여주시면서 '집으라, 들어 올리라'고 말씀하실 때 믿음으로 손을 내밀어 잡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사명의 십자가를 손 내밀어 잡는 게 무엇입니까? 순종이다.
사명을 맡기실 때 거부하지 말고 순종하며 받는 것이 손 내밀어 잡는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사명이 가고 직분이 갈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높이높이 들어 올려 주실 줄을 믿습니다.
날마다 거주하실 처소가 되려면은 우리들 교회의 정체성은 늘 가정이잖아요?
어떤 설교를 해도 '교회가 부흥되어야 한다' 이게 아니고 가정에 대한 설교를 한 주일도 안 한 적이 없다.
한 주일도 안 한 적이 없는데 교회가 부흥이 되었다.
적용)
-주님이 내게 집으라고 명령하시는 사명의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외면하고 있습니까? 피하고 있습니까? 손을 내밀고 잡고 있습니까?
<기도제목>
♡고유미
1.목장식구들을 위한 편안한 처소로 나를 세워가기 위해 깨어 기도하는 아침시간 보내는 한 주 되길
2.내게 집어 들라고 반복적으로 말씀하시고 계시지만 여전히 핑계가 많은 내 미래에 대한 고민을 꼬집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명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지 않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도망갈 구멍만 찾고 있는 나의 한심한 교만을 직면하는 한 주 되길
3.다음 달 출장을 위해 분주히 준비하고 있지만, 여전히 내 맘 처럼 센스 있게 움직이지 않는 상대방 때문에 화가 많이 납니다. 내 힘 빼라고 예비해주신 상대방과의 협업을 통해 훈련받아야하는 것들 순종하는 맘으로 직면하는 한 주 되길
3.유선이 졸전을 통해 많은 이들이 마음의 위로와 안식 얻을 수 있도록 기도로 중보하는 한 주 보낼 수 있길, 유선이 졸전 막바지 준비할 때 불안과 두려움 거둬주시길
4.얼마 남지 않은 2023년 목장식구들 영육간의 건강 위해: 대면예배와 목장 참석이 어려운 그 한 사람이 카톡방을 통해 올라오는 나눔 간접체험하면서 예배 사모할 수 있는 마음 더 커질 수 있길
♡유은정
1.하나님의 일하심을 믿고 거할 처소를 위해 준비되어질 수 있도록
2.목장식구들 주님 안에서 하나 되고 말씀의 은혜누릴 수 있도록 만나주세요
3.십일조 훈련을 잘하므로 물질 관리의 참지혜와 강력한 성령의 절제 부어주세요
4.회사에서 레벨업 교육 한 달간 시작하는데 성령의 지혜와 능력과 기름 부어주세요 제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피곤치 않도록 해주세요
5.부모님 관계회복 감사합니다. 남동생과 엄마의 관계도 사랑으로 회복되도록, 남동생 부부 구원받도록 인도해주세요
♡한지원
1.매일 큐티하고 깨달음이 있는 한 주가 되기를
2.내 힘 빼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한 주가 되기를
3.예수님 믿고 순종하며 승리하는 한 주가 되기를
4.가족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는 한 주가 되기를
♡김정은
1.내 힘이 빠진 사건 앞에서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보여주신 사명 믿음으로 잡을 수 있도록
2.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예비한 사람이라는 것을 서로 같은 마음으로 알아보고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만남의 축복이 있기를
3.어려운 업무로 불안한 마음이 평안해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잘 감당하도록 그리고 잘 감당한 그 일이 나에게 성숙의 과정과 열매 맺는 시간들이 되도록
4.전문성을 위해 시간, 물질 낭비하지 않고 내가 꼭 가야할 방향으로만 나아갈 수 있도록
5.오빠네 가정에 평안이 있고 믿는 사람들이 주변에 넘쳐나서 복음을 듣고 세상적인 길로 나아가지 않도록 그리고 부모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주님 안에서 평안과 감사누리도록
6.큐티할 때 집중하고 깨달음이 있어 적용까지 나아가길
7.내가 있는 환경(교회.직장.가정)에서 지혜롭게 온유하게 역할 감당하며 영혼구원에 늘 힘쓰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