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지금이 어찌 받을 때이냐
본문: 열왕기하 5:20-27
설교: 김양재 목사님
목장참석: 고유미. 김정은. 유은정. 한지원 (나눔 전체모임 참석)
이방 나라 아람에 살던 나아만 장군이 깨끗하게 되는 구원을 받으니 다만 여호와께 드리는 인생이 된다.
반면. 엘리사의 비서 게하시는 항상 엘리사 곁에 있지만 늘 말썽이다.
아들을 잃고 엘리사를 찾아온 수넴 여인을 분별도 못 했다.
기회만 되면 스승의 지팡이를 권세로 휘두르려고 한다.
그중에서도 오늘 본문의 사건은 게하시가 친 사고 중에 가장 큰 초대형 사고이다.
엘리사가 지금이 어찌 받을 때이냐? 라고 게하시를 책망한다.
받지 말아야 할 때인데 받으려고 용을 쓰다가 결국 나아만의 나병을 받았다.
오늘은 우리가 따르지 말아야 할 게하시의 탐심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겠다.
'지금이 어찌 받을 때이냐?' 라고 책망 받지 않으려면?
1. 맹세와 탐심을 분별해야 합니다.
나병이 낫고 나아만이 가져온 예물을 엘리사가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받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런데 사환인 게하시가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걸고 반드시 나아만의 예물을 받아내겠다고 지금 맹세를 한다.
원어를 보면 게하시가 받아내겠다는 의지가 더 강렬하다.
'받으리라'는 주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겠다는 말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받아내겠다는 뜻이다.
'손을 뻗고 내가 그를 쫓아가서 받으리라.'
그의 죄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치밀한 계획 가운데 나아만이 내지 않은 예물을 받아내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라 1인칭으로 '내가 받으리라' 한다.
나아만이 바치려 했던 값진 물건들에 대한 게하시의 탐심이 용암처럼 끓고 있다.
엘리사는 본능적인 욕심을 거스르는 결단과 적용을 위해 맹세했다.
자기 힘으로 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 도움을 구한 것이다.
하지만 게하시는 본능적인 욕심에 따른 결단과 적용을 위해 맹세한다.
이것은 사실 자기 힘, 자기 열심, 자기 판단에 기름을 붓는 일일 뿐이다.
실제로는 여호와의 이름을 도깨비 방망이처럼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주인공은 자기 욕심이고 여호와의 이름은 하인인 셈이다.
엘리사는 맹세와 탐심을 분별했는데 게하시는 맹세와 탐심을 분별하지 못한다.
말씀을 기준으로 보면 탐심은 멈춰야 할 것이지만 구속사적인 맹세로 한 결단과 적용은 순종해야 할 일이다.
게하시는 제자여도 말씀도 없고 안 들리니까 이 둘을 구별하지 못한다.
자기 탐심을 하나님께 맹세하여 더욱 불타오르게 하고 있다.
구속사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자기 마음, 자기 생각, 자기감정, 자기 자존심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내가 복음이라고 한다.
예수님 수제자가 말씀이 안 들린다.
엘리사는 예물을 받을 만하지 않나? '지금 기근으로 생도들이 지금 굶고 있다.
하나님이 나아만의 질병을 통해서 베푸신 물질을 자기 하나 의롭자고 자기 하나 공로 세우려고 그 물질을 거절하는 게 말이 되는가?' 하며 선생님을 정죄하고 있다.
요즘 그렇게 감정이 왕 노릇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탈북자 박연미씨는 29살인데 탈북해 가지고 이 동국대학을 나오고 미국에 가서 명문 컬럼비야 대학을 졸업했다고 한다.
어떤 인터뷰를 했냐면 북한 총알에 죽을지, 중국 총알에 죽을지, 미국 좌파 총알이 죽을지 모르겠지만 제가 정말 힘들게 갖게 된 자유가 너무 소중하잖아요? 이러다 죽으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근데 미국의 과도한 PC, 폴리티칼 콜렉트니스, 정치적 올바름 주의를 경계합니다.'
자기가 가장 많이 주입당한 얘기가 감정이 중요하다 이다.
누가 봐도 남성인데 자기가 여성이라고 느낀다고 하면 여성화장실 탈의실 가도 된다는 것이다.
이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학적 진실보다 감정이 중요하다는 얘기가 말이 되는가?
이렇게 스스로 느끼는 감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고양이다 라고 믿는다면 사람이 고양이인 것이고, 80대가 나는 두 살이다. 그러면 아이가 될 수 있다고 가르치는 시기라는 것이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그 흑인 과잉 진압 사건
폭동이 일어나면 잡아야 하는데 시카고 시장이 나와서 진압하지 말라 그러면 경찰이 손을 못 댄다는 것이다.
흑인 인권을 존중하라는 이 워크 앞에서 깨어야 된다는 것이다.
법도 질서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 자매도 흑인에게 강도를 당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인종주의자라고 했다고 함.
다들 거짓에 거짓을 더해 가는데 감정 충만한 게하시 같은 지도자 때문에 민중이 병들어가는 것이다.
선생을 지금 정죄하면서 '말이 되는가?'
게하시를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으로 소개한다.
나아만 집에 이스라엘 출신 어린 소녀와는 아주 대조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다.
게하시는 엘리사 옆에 있었다는 이유로 자기를 과대평가했다.
엘리사가 선지생도 그중에 제일이라고 고른 사람이 게하시이다.
엘리사의 슬픔을 아시겠죠?
게하시의 야망 때문에 결정적인 구원의 일이 지금 망쳐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탐심과 맹세를 분별하려면 말씀은 말씀인데 구속사로 선택해야 되는 것이다.
예쁘고 사랑받고 자식이 출중한 야곱의 아내 라헬이 아니고 예쁘지도 않고 사랑도 받지 못하고 자식들이 속을 썩이는 콩가루 집안 레아가 약속의 땅에 묻혔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구속사로 읽어내지 않으면 늘 라헬이 최고이고 요셉이 최고기 때문에 선민의식에 우월 의식, 우월주의 국수주의를 몽땅 가지고 이용해서 이 땅에서 야곱의 조강지처 레아와 그의 아들 시아버지와 며느리와 동참한 유다를 계속 무시하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북이스라엘은 남유다를 계속 무시하고, 지역감정의 최고봉을 계속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게하시가 전형적인 북이스라엘의 모델인 것이다.
엘리사가 이것을 바로잡고자 하지만 선지생도 중에서도 금송아지 사상, 배금사상이 만연해 있어서 제자 뽑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다.
도리어 수넴 여인 같은 평신도가 엘리사의 지체가 되는 걸 보여준다.
게하시가 나아만을 보며 혼잣말로 지금 뭐라고 하면 이 개만도 못한 아람놈이 감히 치료비도 안 내고 그냥 가 이런 욕을 한다.
항상 요셉으로 달려가는 것이고 선민의식을 못 벗어나는 것이다.
우리도 감히 저 일본 놈이 뭐라고? 이러는 것이다.
예전부터 지금 이스라엘도 감히 우리 유대인을 이러는 것이다.
기가 막힌 구속사에 엘리사의 제자 게하시 옆에는 그럴 듯하게 말을 하는데 은혜를 받지 못 하는 것이다.
구속사를 이해하고 좋아해도 적용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실제적인 삶에서 우리도 게하시처럼 적용을 못 하는 것이다.
우리가 속 썩이고 감옥 다녀오고 아프고 백수인 아들이 예수를 믿었다.
그런데 서울대 나오고 잘나가는 아들이 예수를 안 믿는다.
예수 믿는 아들이 최고인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실생활에서 받아들이기까지는 이게 쉽지가 않다. 우리가 다 게하시인 것이다.
어떻게 이게 게하시가 이렇게 나쁠 수가 있어? 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우월주의에 사로잡혀있는 것이다. 라헬이 좋고 요셉이 좋고 시오니즘의 본질은 유대 민족의 구원이다.
흩어진 유대인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간다는 표현에서 팔레스타인 이주를 침입이 아니라 역사적 차원의 귀향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100년 전쟁은 팔레스타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차별을 바로 잡는 데서 출발을 해야 한다고 강조를 하는 것이다.
분쟁의 해법으로 제시된 어떤 정식화도 평등에 원래 바탕을 두지 않으면 계속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는 거다.
반 이슬람 무장 단체인 하마스는 2006년 집권한 직후부터 그들의 목적은 오직 유대인들을 완전히 죽이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그 땅을 그들의 고향 땅이라고 그걸 가진 다음에
사실 전 세계가 또 서구 열강이 가자지구에 지원을 엄청 했다.
하마스가 이를 전쟁 준비에만 사용해 가지고 가자지구에 있는 하마스 무장 세력은 불과 3만 2000명뿐이고 일반 시민 230만 명인데 그들을 다 굶주리게 하고 모든 지원을 오직 전쟁에만 쓴다고 하는 것이다.
적은 인구로 철권통치를 하고 있는 북한과 비슷하다고 보인다.
이들은 서로 죽이겠다고 여호와께 날마다 맹세를 한다.
그들의 조상은 다 거슬러 올라가면 아브라함이라고 한다.
선민주의가 이렇게 무섭다.
지금이 받아야 할 때인지, 받지 말아야 될 때인지, 떠나야 할 때 인지, 머물러야 할 때 인지, 말해야 될 때 인지, 말하지 말아야 될 때 인지, 우리가 구속사를 모르면 분별이 안 된다.
그래서 날마다 큐티하며 말씀을 구속사적으로 묵상하고 적용하는 인생 최고의 훈련을 해야만 탐심과 맹세를 분별할 수 있다.
탐심은 내 욕심으로 하나님을 도깨비 방망이로 쓰는 것이고 맹세는 구속사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맹세이다.
적용)
-'저건 내 것인데, 내가 받아야 하는데' 라며 받아내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멈춰야 할 탐심과 맹세하고 힘써야 할 구속사적 적용이 구별됩니까?
2. 탐심은 거짓을 낳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게하시가 얼마나 요란하게 달려갔는지 수레를 타고 가던 나아만 장군이 보고 직접 수레에서 내려 맞이한다.
나아만은 엘리사의 사환에게조차 경배를 지금 하고 있다.
수레에서 내렸다. '엘리사에게 무슨 일 생겼어요?' 이것이다.
너무 빨리 오니까 걱정까지 한다.
게하시는 태연하게 '평안하나이다'로 대답한다.
얼마 전 게하시가 수넴 여인에게 평안을 물었는데 그때 수넴 여인은 평안하지 않았지만
누구에게 자기 슬픔을 털어 놔야 하는지 분별했기 때문에 평안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게하시는 지금 속으로는 부글부글하면서도 평안하다고 거짓말을 한다.
돈을 자기가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거짓말로 평안하다 하고 분별로 평안하다 고 하는 건 다른 것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치밀하게 꾸며 거짓말을 한다.
선생님까지 팔아 먹으면서 나아만의 예물을 절대로 받지 않겠다던 엘리사가 마음을 바꿔서 이제 예물을 달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시작한다.
예물도 아주 줄여서 은 한 달란트하고 옷 두 벌, 의심하지 않도록 그러나 자기로서는 어마어마한 만큼의 은 한 달란트는 은 35킬로그램인데 지금으로 말하면 한 3500만 원쯤 되는 것이다.
수제자 게하시가 선생님까지 팔아가면서 거짓에 거짓을 새끼쳐서 아무렇지도 않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
게하시가 탐욕으로 눈이 멀고 간이 부었다.
탐심은 이렇게 영악하다.
나아만은 게하시의 말을 듣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은과 옷을 드렸다.
은 한 달란트 달라고 그랬는데 갑자기 두 달란트 줬다고 하니까 게하시가 당황했을 것이다.
탐심은 연기도 잘한다.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그랬던 것처럼 '꼭 받으시라고' 그리고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자기 부하 두 명에게 시켜서 게하시 집까지 기사까지 내줘가지고 엘리사 집까지 가져다주라고 한다.
게하시는 스승까지 팔아가며 지어낸 거짓말로 큰돈을 탈취했다.
치밀하게 꾸민 거짓말이 대성공한 것이다.
스승과 함께 은혜를 주어야 할 선지자의 제자가, 거짓말로 은혜 받은 사람을 등쳐먹고 있다.
그 돈을 가지고 스승의 집에 가고 있습니다.
가면서 어떤 생각했을까요?
이 돈으로 뭘 할지 그냥 상상하면 설레었을까? 3500만 원 기대했는데 7000만 원 받아서 너무 좋았을까?
'그 35키로 감출 자리는 만들어 두었는데 70키로는 어디다 숨기지?' 이러면서 마음이 분주했을까?
'그래도 선생님께 걸리면 어떡하지?' 일말의 양심이 있어서 걱정했을까?
이런 여러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했을 것이다.
어느덧 집 가까이 왔다.
언덕 위 하면 굉장히 뭔가 꿈을 주는 곳인데 여기 70인역에서는 언덕 '오페'를 어둠이라고 번역을 했다.
꿈의 언덕이 어둠으로 인제 추락할 것을 암시한다.
남은 이 두 사환을 짐 지워 보냈는데 게하시는 이 언덕에서 이 사환들을 따돌리고 물건들은 집에 감춘다.
지금 당장은 못 쓰지만 나중에 쓰려고 저장했다는 뜻이다.
탐심이 얼마나 치밀하고 영악하고 똑똑한지를 우린 정치를 통해서 계속 보고 있다.
엘리사가 '니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엘리사의 이러한 물음은 게하시로 하여금 죄를 고백할 수 있는 이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다.
이 상황에 선생님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멘붕인데 선생님이 정곡을 찌르는 질문으로 훅 들어오시자 게하시가 정신이 나간다.
게하시는 엘리사 선생님의 일가와 동선을 다 꿰고 있다.
게하시의 계산으로는 그 시간에 선생님은 반드시 방에 계셔야만 했다.
그런데 게하시의 예상을 깨고 엘리사가 방에서 나와 게하시와 마주한 것이다.
예상은 빗나가라고 있는 것이다. 내가 예상한 대로 되지 않는다고 슬퍼하지 말자
게하시가 욕심에 눈이 멀었다.
주인 앞에 서니 라는 말을 원어로 보면 주인을 찾아가서 공손하게 앞에 섰다는 말이 아니고
너무나 원치 않는데 갑자기 앞에 맞닥뜨렸다는 이런 뜻을 담고 있다.
예상 못한 상황이 생긴 것이다.
긴장과 갈등이 딱 생겼다.
게하시는 엘리사의 사환으로서 오랜 기간 그와 같이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뢰하는 스승의 모습을 닮지 못했다.
한다는 대답이 '당신의 종이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라는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
나아만에게 한 거짓말이 치밀하게 꾸민 거짓이었다면 엘리사에게 하는 거짓말은 갑자기 불쑥 나온 거짓말이지요?
치밀하게 꾸민 거짓말이 나쁠까요? 갑자기 불쑥 나온 거짓말이 더 나쁠까요?
물론 둘 다 나쁘다.
갑자기 불쑥 나온 거짓말은 평소 습관을 보여주는 거다. 더 나쁘다.
아무리 엘리사를 곁에서 수종 들고 선지생도들의 대장 역할을 해도 '이쯤이야' 하며 사소한 거짓말을 평소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 스승의 질문에도 거짓 대답이 그냥 불쑥 나온 것이다.
겉으로는 엘리사의 비서요, 선지생도 중 우두머리이다.
엘리사의 말을 전하는 권한, 그 지팡이를 들 수 있는 특권을 받은 사람들이다.
너무 거룩하고 존경스러운 자리에 있다.
위로는 스승을 잘 모시고 아래로는 선지생도들을 돌봐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진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대단한 자리에 앉은 게하시가 속으로는 늘 거짓을 지어냈다.
그래서 세상을 지배하는 대단한 장군 나아만에게도 치밀하게 꾸민 거짓말을 하고 가장 존경에 마땅한 엘리사 선생님께는 불쑥 거짓말을 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모두가 '게하시는 다 목사님들이지.' 이렇게 생각하고 계시죠?
우리가 다 게하시이다.
만인 선지자 제사장 우리 목자들, 직분, 좀 더 가졌다고 그러면 점점 더 게하시라는 걸 알아야한다.
빌라도가 예수님 대신 풀어준 바라바는 십자가 처형을 받을 만큼 중범죄자 이었다.
그런데 유대 그 사람이 로마 정부를 향해 반란을 모의하면서 그 반란군이 되니까
유대 민족 입장에서는 독립군 지도자인데 유대의 회복을 꿈꾸는 열심당원이라는 것이다.
구속사를 모르면 '로마를 타도하라'에 다들 이제 목숨을 건다.
그것도 때가 있는 것인데 백성들이 '예수님을 못 박고 바라바를 살려주라고' 하는 것이다.
백성들이 무지하다.
우리는 '무조건 친일놈을 타도하라 ' 이러면 다 박수친다.
가룟유다도 왜 향유를 그 비싼 향유로 예수님 발에 붓는가? 겉으로 불쌍한 사람을 위하는 것 같고 의롭고 바른척 하지만 속으로 늘 이익을 계산했다.
돈을 좋아해서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았다.
이런 게하시가 곳곳에 우리 속에 있다.
탐심은 거짓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감추려고 거짓말하고 채우려고 거짓말한다.
이 거짓은 선지자의 수제자라는 사명도 한순간에 앗아가 버린다.
적용)
-탐심을 감추려고 또는 채우려고 거짓말한 적은 없습니까?
-치밀하게 거짓말을 잘합니까?
-습관적으로 나오는 거짓말은 무엇입니까?
3. 내 고난이 내 죄보다 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수넴 여인이 왜 괴로워하는지는 엘리사에게 알려주지 않으셨다.
엘리사에게도 모든 것을 다 알려주지는 않으신다.
하지만 지금 게하시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보인다.
엘리사가 마치 그 현장에 있었던 것처럼 밝히 알려주신다.
나아만이 어떻게 게하시를 맞이했고 어떤 대화를 나눴고 얼마를 받아서 어떻게 감췄는지
마치 엘리사의 마음이 게하시와 함께 다녀온 것처럼 훤히 알고 있다.
대단한 장군 나아만을 너무 쉽게 속였던 게하시도 속일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엘리사는 '지금이 어찌 은이나 옷이나 무엇이든지 받을 때냐?'고 묻는다.
지금은 어떤 때입니까?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하는 왕을 따라 하나님을 배반한 때이다.
그에 대한 심판으로 이웃 나라들의 침략과 배반이 이어지는 때이다.
자연환경도 이스라엘을 배반하여 가뭄이 이어지는 때이다.
이렇게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어둠이 짙게 덮인 위기의 때 누구보다도 깨어 있어야 할 사명자가 누구입니까? 선지자와 그의 제자들 아닌가
게다가 지금은 아람장군 나아만의 구원을 위해 세심하게 분별하며 적용하고 있는 때이다.
구원을 위해 너무도 중대한 시간에 이런 절체절명의 시기에 엘리사 선지자의 비서인 게하시가 탐심에 눈이 멀어 무엇이든 받을 생각만 하고 있으니 이것을 받음으로 나아만이 마음이 변해서 전쟁 쳐들어오면 어쩌라고? 지금 아람과 이스라엘은 대치 상황에 있는데
욕심은 자기밖에 모른다.
안타까운 현실에 애통하며 엘리사는 지금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게하시에게 질문을 던지며 양육하고 있다.
탐심에 눈이 멀어 나아만에게 재물을 뜯어낼 생각을 할 수가 있어?
내가 왜 나아만의 예물을 거절하는지 그렇게 모르겠냐?
엘리사의 꾸중과 양육은 이제 치리로 이어진다.
나아만은 살이 그냥 하얘져 가지고 눈같이 되었는데 게하시는 나병이 눈같이 되었더라
탐심에 눈이 멀어 사명을 잊고 거짓말로 자기 배를 채우려고 했던 게하시가 받은 벌이 나병이다.
혼자만 나병 환자가 된 게 아니고 자손까지 미쳐 영원토록 이어지는 무서운 벌, 고난이다
거만한 이방 장수였지만 우여곡절 끝에 선지자의 말씀에 순종하니 나병이 떠나갔잖아요?
모든 것을 가진 거만한 장군에서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라는 겸손한 종이 되었다.
반면 게하시는 선지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며 '다만 여호와께 드리는' 삶을 사는 자리에는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겉모습과 달리 속으로는 탐심에 눈이 멀어 거짓말도 불사하며 사명보다 돈을 쫓아 멀리 떠났다.
그 결과 자손 대대로 나병에 걸리는 벌을 받았다.
그래서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가 있다 고 하는 것이다.
세속사를 사는 사람이 볼 때 게하시가 엘리사에게 걸린 것은 너무도 재수가 없는 일이다.
그 시간에 엘리사가 거기 없었더라면 만났더라도 엘리사도 나아만처럼 게하시에게 속았더라면, 게하시 인생은 활짝 피었을 것 아닌가? 이렇게 아쉬워할 수도 있다.
돈 욕심 좀 낸 게, 뭐가 그리 큰 죄라고, 거짓말 좀 한 게 뭐가 대수라고, 자자손손 나병에 걸리는 고난을 받아야 하는가?
'벌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이렇게 불평하는 것이 세속사적인 생각이다.
구속사를 사는 사람에게는 여기 이제부터가 중요한 것이다.
게하시가 엘리사에게 걸린 것이 최고의 복이다.
게하시에게 절대 속지 않는 한 사람 엘리사가 있었던 일이 최고의 축복이다.
왜냐하면 평생 나병 때문에 고생하면서 자신의 탐심과 거짓말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그냥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영원히 죽어 마땅한 죄인임을 깨닫지 않을 수 없는 최선의 세팅이 나병이었다.
안 걸리고 탐심과 거짓으로 이 땅에서 성공하다가 지옥에서 영원히 벌 받는 것보다 걸려서 평생 죄값을 치르며 회개하다가 마침내 천국에 들어가 영원한 상을 받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유익인 것을 믿습니까?
우리에게 닥치는 여러 가지 고난은 결코 재수가 없어서 내게 온 저주가 아니다.
어떤 모양의 고난이라도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데는 다 구원의 목적과 뜻이 있다.
그 고난을 당해 마땅한 내 죄를 깨달아 회개하며 주님을 찾도록 그래서 내 자신이 아닌 주님을 믿고 의지하도록 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고를 헛된 수고를 멈추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루하루 여전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거룩한 삶을 살라고 주님이 우리를 고난을 통해 부르신다.
그래서 고난은 주님의 선물이요 축복이다.
내 고난이 내 죄보다 약하다는 구속사적인 고백을 하게 된 것이 이 땅 최고의 축복이다.
게하시에게는 그냥 나병이 인생 최고의 축복이다.
우린 다 같이 밑동 짤린 나무 같은 인생이다.
혼탁한 시대에 반면교사로 게하시를 택하셨다.
사도 행전에는 아나니아 삽비라를 택했다.
돈 조금 감췄다고 이게 구속사이다.
적용)
-속이려 하다가 걸려서 평생 기억하며 거룩해질 수밖에 없는 일은 무엇입니까?
-걸린 것이 축복입니까? 저주 입니까? 내 고난이 내 죄보다 약함을 인정합니까?
내 고난이 내 죄보다 약하다고 부르짖는 것이 정말 축복이다.
게하시에게 나병이 걸린 것이 축복이었는데
오늘 이제 저희 언니 선교사님 얘기를 좀 하겠다.
지난주 목요일날 우리 선교사님 하늘나라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래서 금요일날 이제 탄설홀에서 천국 환송 예배를 드렸다.
옛날에는 문교부 유학 시험이라는 게 있었다.
언니는 붙어 가지고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 3군데서 합격 통보를 받았는데 그때 후두 때문에 '절대로 이제 앞으로는 노래를 못한다.' 그러니 학벌이 좋으니까 어쩔 수가 없는 교만이 있었다.
우리 집에는 안 믿는 유교 가문이 14대 내려오는 친가가 있고 4대째 외가인 믿음이 있다.
저는 우리 집안에 뿌려진 나병이라고 생각을 한다.
착함이 소용이 없고 어쩔 수 없는 교만으로 감당 못 해서 충동적으로 결혼을 한 달 만에 하고 또 2년 만에 감당 못 해서 또 이혼을 했다.
그때까지 너무 착한 것이 우리 언니 별명인데 우리 같은 공동체가 없어서 결혼도 이혼도 쉬웠다.
르우벤이 요단 동편을 택하는 것처럼 결혼도 이혼도 다 동편인 줄 알았다.
그때까지 언니는 이화여고, 서울대 서울대학원까지 그냥 붙는 거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조상의 교만이 있었겠구나, 태생적인 교만이 있고.'
교회에서 살았어도 그렇게 결혼 2년 만에 이혼하는 오를 범했다.
그 이후에 40년 재혼해서 살면서 이혼 후에 주님을 만났다.
그야말로 재혼은 아프리카 선교보다 더 어려운 거를 제가 옆에서 처절하게 봤다.
지나고 보면 그 때문에 빈민가에서 선교를 해도 생색을 전혀 낼 수 없게 하셨고 그야말로 나무 십자가 피하려다가 황금 십자가 너무 무겁고 또 장미꽃 같은데 피를 가시로 찔러서 선교지에서 선교도 선교인데 아픈 남편 돌보는 것이 가장 큰 미션이 되었다.
필리핀 가까운 나라에서 13년간 한국에 못 들어왔다.
빈민가에서 살다 보니까 우리 집에 왔을 때 집사님들이 우리 집에 파출부 뒀냐고 그렇게 물었다.
언니는 국립 합창단 단원이고 화려한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이런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요? 내 고난이 죄보다 약해서이다.
저는 40년을 처절히 보면서 이혼했다고, 우리 자녀들은 날마다 언니가 이혼해서 우리도 그렇다고 그 얘기를 맨날 들었다. 우리 남편과 또 셋째 형부한테도
2년의 이혼 땜에 40년의 선교가 빛을 발한다.
저는 그 언니 때문에 지금까지 이혼을 죽자고 말리고 이혼한 언니는 또 죽자고 빈민가에서 선교를 했다.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었지만은 결론적으로 학벌은 사명 땜에 써야 하는데
결국 우리 엄마가 변서 청소했지만 이렇게 사명 때문에 쓰일라고 그 언니하고 저하고 다 서울대학을 나오게 했다 엄마의 기도 응답이다.
서울대학 나왔는지 예전에는 몰랐는데 이렇게 쓰임 받고 있다.
저도 우리 언니도 잘난 척 할 것이 하나도 없고
게하시에게 나병이 발해서 눈같이 발하게 된 것이 게하시에게 가장 큰 축복이듯이
그 힘든 재혼 생활로 26년간 빈민과 선교를 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이 옳으시다.
1년에 600명씩 복음을 제시하고, 영접하고, 전도 툭 치면 전도하고, 눈물 흘리고, 저하고 언니하고 있기만 하면 통곡하고 기도를 했다.
지나고 나서 보면은 2년 살고 헤어진 아들은 지금 우리들 교회에서 부목자를 하고 있다.
키운 아들은 못 오는데 결과적으로는 지금 우리들 교회에 아들만 이렇게 왔다.
우리 언니의 열매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사돈어른하고 처남이 장례식 오시느라고 교회를 처음 밟으셨다고 함.
참 아이러니하지만 어려서 상처가 문제가 안 된다고 요즘 그런 얘기들을 많이 한다.
너무 생색낼 수가 없으니까 평생의 후원을 요청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전도하다가 아니면 말고 이다. 저하고 비슷한 마음이 있는데 기지촌 여자들을 학벌이 좋은 여자가 전도를 하니까 '대학교 나온 거 진짜냐? 졸업증명서 보내봐라.'
우리 언니 영상을 보겠지만 서울대학 나온 여자 같지가 않다.
완전히 26년 동안 은퇴 예배를 처음으로 정식으로 드린 첫 번째 선교사라고 한다.
미군이 이렇게 이제 철수할 때 전도했던 그 기지촌 여자 전도했던 우리 언니에게 미제 재료를 줘서 미제 교회를 지었다.
또 아무것도 없이 그냥 주고 이렇게 왔다.
하나도 도움 안 받아도 클락에 지진 났을 때 다 무너졌는데 이 교회만 안 무너졌다.
우리 집안에 이렇게 나병, 다 교만해 가지고 나병 모든 것들을 처절하게 깨닫고 결국 사명으로 이어졌다고 생각이 된다.
자녀가 없는 성도 여러분도 교회가 영의 가족이 되어서 여러분을 문안할 것이다.
<기도제목>
♡고유미
1.지속적으로 깨어있어야 할 시기이지만, 자꾸 감정에 사로잡혀 생색, 분노로 냉탕과 온탕을 옮겨 다니는 중임. 내가 사로잡힌 미움보다 내 악하고 추잡한 죄가 더 큼을 인정하는 한 주 되길
2.출장 동안 세상 탐심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안전한 일주일 보내고 복귀할 수 있길
3.목장식구들 영육간의 건강위해: 대면예배와 목장 참석이 어려운 그 한 사람이 카톡방을 통해 올라오는 나눔 간접체험하면서 예배 사모할 수 있는 맘 더 커질 수 있길
4.돕는 배필로 준비되어지기 위해 내가 가지치기해야 할 고정관념 처절히 직면하는 한 주 되길
♡유은정
1.구원을 위해 지속적인 섬김으로 열매 맺을 수 있도록
2.목장식구들 주님 안에서 하나 되고 말씀의 은혜 누릴 수 있도록 만나주세요
3.십일조 훈련을 잘하므로 물질 관리의 참지혜주시고 성령의 절제 부어주세요
4.모든 중독과 통증 고쳐주세요
5.부모님 동생부부 예배의 자리로 인도해주세요/아버지 임플란트로 주님만나는 계기되고 잘 치료되길
6.회사업무 능력과 실행력, 아이디어와 기름부어주세요
♡한지원
1.매일 큐티하고 깨달음이 있는 한주가 되길
2.일에 집중하는 한 주가되길
3.밤에 먹지 않고 다이어트하는 한 주가되길
♡김정은
1.주일말씀 잘 묵상하여 내 감정. 내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도록
2.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예비한 사람이라는 것을 서로 같은 마음으로 알아보고 주님의 인도하심이 있는 만남의 축복이 있기를
3.어려운 업무로 불안한 마음이 평안해지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잘 감당하도록 그리고 잘 감당한 그 일이 나에게 성숙의 과정과 열매 맺는 시간들이 되도록
4.전문성을 위해 시간, 물질 낭비하지 않고 내가 꼭 가야할 방향으로만 나아갈 수 있도록
5.오빠네 가정에 평안이 있고 믿는 사람들이 주변에 넘쳐나서 복음을 듣고 세상적인 길로 나아가지 않도록 그리고 부모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주님 안에서
평안과 감사누리도록
6.큐티할 때 집중하고 깨달음이 있어 적용까지 나아가길
7.내가 있는 환경(교회.직장.가정)에서 지혜롭게 온유하게 역할 감당하며 영혼구원에 늘 힘쓰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