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2. 열왕기하 5:15-19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 김양재 목사님
1.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자기 나병이 깨끗하게 된 나아만은 아마도 전자동으로 모든 군대와 함께 아람으로 직행을 했나 봅니다. 그러니까 도로 왔다고 하지요?사실 나병 치료에 대해서는 빚진게 없다고 여길 수 있죠. 많은 예물을 갖고 왔으니까. 그런데 가다가 돌아와서 하나님의 사람 앞에 섰어요.
나병 걸렸을 때 나아만은 거만한 군대 장군으로서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 앞에 당당히 섰었어요. 하지만 나병의 고침을 받고 돌아온 나아만은 엘리사 앞에 그의 종이 되어 섰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나아만에게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앞은 어떤 자리입니까? 내 생각이 깨지는 자리예요.
자기 생각과 너무 다른 말씀을 들은 자리였어요. 그리고 너무 화가 났던 자리였어요. 분노하며 떠났던 자리였어요. 자존심만 내세웠더라면 절대로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자리였어요.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자리였어요.
하지만 너무 화가 나고, 너무 찌질해서 무시가 되지만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했더니 그 말씀대로 깨끗하게 되는 기적을 경험했어요. 여기서 끝났다면 오늘 본문은 있지도 않았을거예요. 하지만 나아만은 기적 앞에서 생각했어요. 하나님의 사람을 무시했던 자기 거만함을 생각했어요. 아바나와 바르발을 자랑하며 요단강을 무시했던 자랑질을 생각했어요. 아람의 신 림몬을 숭배하며 엘리사가 섬기는 그 신, 하나님을 우습게 여겼던 자신의 거만함을 생각했어요. 그런데 또 여기서 끝났다면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나아만은 없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나아만은 내 생각이 옳다는 거만함의 자리에서 내려왔어요. 장군의 자존심을 버리고 종으로 섬기는 마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발길을 돌려 하나님의 사람 앞으로 돌아왔어요. 말씀을 들었던 말씀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내 생각에서 벗어난 나아만은 깨끗하게 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김 받고 삶의 가장 윗자리를 하나님께 내어 드렸습니다. 신앙고백이 있게 된 것이죠. 이것이 바로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의 자리로 돌아오는 회개입니다. 회개는 단지 죄를 깨닫고 죄에 대해서 후회하며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것이 아니에요. 말씀의 자리로 돌아오는거예요. 말씀 없는 회개는 없어요. 죄를 고백하고 오픈하는 것이 능력이 아니에요. 말씀이 능력이에요. 죄를 드러내는 능력이고, 죄를 인정하게 하는 능력이고, 죄에서 돌이키게 하는 능력입니다.
말씀이 능력인 이유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듣기 싫었던 말씀대로 일어난 치료의 기적을 보면서 나아만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엘리사에게 돌아와서 감사합니다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가 와서 한 말은 신앙고백이에요.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모르던 것을 알았어요. 희미하게 머리로만 이해하던 것, 이해는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기던 하나님을 이제 내 삶의 유일한 주님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이 진짜면 하나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거예요. 그래서 나아만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예물을 드렸다고 그랬는데, 예물은 선물이나 답례품이 아니에요. 예물은 히브리어로는 베라카인데, 바라크는 동사고 베라카는 명사인거예요. 세상에서 우리 힘으로 쟁취하려는 행복이 아니고 하나님이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진정한 복이 베라카죠.
그래서 예물을 드린다는 것은 이렇게 복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 복을 진짜 내가 만분의 1이라도 돌려드리는 마음 즉, 예배하는 경건한 마음으로 올려드리는걸 말해요. 하나님이 고쳐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는거예요.
살아나서 예배가 회복된 분들은 헌금생활이 무릎 꿇고 예배하는 복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헌금이 세금이 되면 예물을 드리는게 아니고 답례품을 드리는거죠. 내가 답례했는데 그다음에 그쪽에서 답례 안하면 분하잖아요.
하나님께도 내가 답례품을 꼬박꼬박 드렸는데, 상응하는 답례품이 안오면 여호람처럼 탄식하며 옷을 찢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그런데 계집종 어린 소녀는 적국에 잡혀가서도 원수를 사랑하며 나아만의 병을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잖아요. 내가 왜 여종인가? 이런 말 안하잖아요. 이것이 무릎 꿇고 경배하는 복이에요.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내가 알리라 이게 되면 저절로 예물이 드려지는거예요.
겉은 위풍당당, 휘황찬란한 대장군이지만 갑옷 속에 나병을 숨긴 나아만의 이전 삶과 갑옷 다 던져버리고 초라한 선지자 앞에서 종처럼 서있지만 나병이 깨끗하게 치료된 나아만의 이제 삶 가운데서 여러분 뭘 선택하시겠어요?
여러분 자녀가 세상이 부러워하는 좋은 학벌, 좋은 직장, 좋은 결혼을 하지만 주님을 믿지 않는 영적 나병에 걸린 것과 예수님을 믿고 교회 열심히 다니지만 세상에서 종과 같이 낮은 모습으로 사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좋으세요? 둘 다 그렇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고침 받는 것, 깨끗함을 얻는 것, 예수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 아나이다라는 신앙고백이 있는 것입니다. 내 영혼이 잘 되는 것이 먼저고, 범사가 잘되는 것은 나중이에요. 내가 원하는 일, 내 계획대로 하는 것보다 주일성수가 먼저예요. 내 생각대로 멀리멀리 떠나는 것보다 말씀에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타락한 인간 본성은 잠시 숨어 있다가 때가 되면 다시 고개를 들어요. 즉,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인간이 절대 근본적으로 새롭게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이 여러분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수 있어요. 그러니까 기도가 응답되었다면 예배 회복의 예물로 무릎 꿇고 예배하는 영과 육의 바라크, 베라카의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시길 바랍니다.
적용질문)
여러분은 믿음의 상태는 뒷간 갈 적 마음입니까, 나올 적 마음입니까? 즉, 간절합니까? 입을 싹 씻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헌금은 답례품입니까? 하나님께 무릎 꿇고 경배하며 드리는 신앙고백의 베라카의 예물입니까?
갔다가 도로 돌아와야 할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교회, 목장, 양육, 가정, 회사)
2. 다른 신에게 드리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
나아만이 드리는 예물을 엘리사는 지금 단호하게 거절하는데요. 분명히 하기 위해서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해요. 그러니까 나아만은 다시 강권해요. 서로 몇번을 반복하다가 끝내 엘리사가 이겼습니다. 나아만의 예물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성이 있기 때문에 엘리사는 예물을 거절했어요. 사실 받는 것이 훨씬 쉬운 상황이에요. 하지만 엘리사는 구원을 위해 거절합니다. 우상숭배 죄악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오는 나아만이잖아요? 그런데 자신이 나아만이 드리는 예물을 받으면 나아만의 믿음이 이제 막 시작되었잖아요. 이 믿음을 하나님을 향하도록 섬세하게 디테일을 챙기면서 인도하는게 선지자의 사명인데,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가로채는 것은 선지자가 할 일이 아닌거예요.
이런 것 하나도 모르는 초신자 나아만이 순수한 마음으로 바치는 예물을 그저 인정만 생각해서 받는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을 돈 주고 살 수 있는 것으로 나아만이 착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엘리사는 은혜가 거래할 수 있는게 아님을 분명히 알려주기 위해서 나아만이 말씀의 자리로 돌아온 회개가 더 큰 구원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믿음으로 자라도록 돕기 위해 끝까지 예물을 거절하여 받지 않습니다.
이렇게 받지 않아야 될 때가 있는가 하면 수넴여인의 게스트하우스는 또 받았잖아요. 그것을 분별하는게 구속사적인 믿음이에요.
그러자 나아만이 오히려 다른 요청을 합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에 흙을 달라고 그러는거예요. 노새 한 마리가 실을 수 있는 무게가 한 70kg로 정도 되니까 한 140kg로 정도의 흙을 가져가려고 하는거예요.
나아만의 신앙이 갓난아이의 수준이었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신이고 이스라엘의 흙이 있어야 예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이런 것을 옳고 그름으로 따지면 안되는거예요. 나아만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제는 번제물과 희생 제사를 림몬 같은 다른 신에게 드리는 우상숭배를 멈추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다. 오직 여호와만을 예배하겠다. 이 뜻 아닙니까?
근데 이스라엘에 살면서 흙 가져가겠다 그러면 이건 또 우상숭배예요. 언약궤 놓고 블레셋하고 이스라엘하고 서로 부적같이 가져가려고 하니까 뺏기게 하시잖아요. 부적이 되면 안되는거예요.
만약 엘리사가 아무 생각 없이 나아만이 드리는 예물을 받았더라면 어떻게 됐겠어요? 온 천하에 하나님만 참 신이라는 고백에서 딱 스톱했어요. 멈췄어요. 그 고백으로 드린 예물을 선지자가 받았잖아요. 거기서 그러면 끝났겠죠? 하지만 엘리사가 하나님보다 돈을 섬기지 않았어요. 돈에 자기 마음을 드리지 않았어요. 또 나아만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겠다는 그런 인간적인 정에 자기 마음을 드리지도 않았어요. 돈이든 인정이든 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섬기기 쉬운 것 아닙니까? 돈에, 정에 다 무너지잖아요?
요즘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발람은 돈에, 인정에 마음을 드리다가 망하잖아요. 그러나 엘리사는 이런 우상숭배를 단호히 멈추고 오직 나아만의 구원만 생각합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며 예배하는 모습이에요.
엘리사가 예물을 안받으니까 삶으로 본을 보이니까 나아만도 온 천하에 하나님만 참 신이시라는 고백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겠다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먼저 믿은 한사람이 다른 신에게 자기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믿음 위에 서 있으니까 그를 따라오는 다른 사람 역시 하나님께만 예배를 드리게 되는거예요. 하나님께만 충성하는 한사람이 너무 중요한거예요.
적용질문)
내 선택의 목적은 돈입니까, 구원입니까?
구원을 위해 거절해야 하는 이익이 있습니까?
기복적인 욕심인 것을 애써 외면하며 아직도 끊지 못하고 다른 신에게 드리는 제사는 무엇입니까? (사상, 이념, 명예, 돈, 자식 등)
여러분 한 사람의 결정이 가정과 교회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에 얼마나 동의하십니까?
3. 죄 사함의 평안을 누립니다.
나아만이 걱정이 태산이에요. 하나님만 섬겨야 되는데 아람으로 돌아가면 림몬 신을 섬겨야 되잖아요. 얼마나 걱정이 많은지 여기 림몬이 몇번 나오는 줄 아세요?
흙을 달라고 부탁한 나아만은 이제 한가지 일을 더 부탁하는거예요. 거기서 내가 제사 드릴 수밖에 없는데 용서하라는거예요. 이게 훨씬 중요한 부탁입니다. 집에 돌아가면 아람의 대장군으로서 국가 행사에 참석하게 되잖아요. 그때 어쩔 수 없이 아람 신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서 절을 할 수 있는데 그때 내가 몸은 어쩔 수 없이 우상에게 절하지만, 자기 마음만은 하나님을 향해 있으니 나를 용서해달라고 그 얘기를 하는거예요.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거예요. 용서가 필요한 인생임을 인정하는거예요.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등장했던 얼마 전 모습은 이제 나아만에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고요. 하나님의 사람 앞에서 그저 한사람의 죄인으로 용서해주셔야만 살 수 있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이렇게 고백을 하는거예요. 이것이 바로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라고 고백하는 거룩한 인생이에요.
자신이 영적인 나병환자임을 깨닫는 것, 하나님의 죄 사함이 필요한 인생임을 인정하는 것 그래서 늘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삶이 된 것이 나병이 깨끗하게 되는 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진정한 깨끗함을 얻는 구원입니다.
몸에 아무 질병이 없어도 이 영혼의 나병에서 깨끗함을 받지 못하면 사는 의미가 없지요. 그 끝이 죽음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몸이 질병으로 가득하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고통 가운데 있어도 자신이 영적인 나병환자임을 알고 하나님 백성의 일원으로 날마다 하나님께 돌아와 용서를 구하는 것 자체가 그런 인생이 바로 깨끗한 인생, 천국을 향해 달려가는 복된 인생인거예요.
자신의 몸이 질병으로 가득하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고통 가운데 있어도 영적인 나병환자임을 알고 하나님 백성의 일원으로 날마다 하나님께 돌아와 용서를 구하는 것 자체가 그런 인생이 바로 깨끗한 인생 천국을 향해 달려가는 복된 인생입니다.
이런 겸손한 부탁에 엘리사는 뭐라고 대답을 합니까? 용서해달라는 부탁에 대해서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답은 평안히 가라입니다.
여러분, 오늘 기도할 때 저를 용서해주세요. 그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이 평안히 가라 해주실 줄 믿습니다. 죄 사함의 평안이에요.
거만함에서 돌이켜 하나님만 섬기는 하나님의 종으로 살겠다고 결단했으니까 이제 자신이 살던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지만, 불안과 걱정과 염려를 버리고 평안을 가지고 샬롬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라는거예요. 이것이 우리가 누려야 될 평안입니다.
어떤 인생이든 고난 가운데 말씀을 듣고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여 하나님께 나오면 평안입니다의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수넴여인이든 나아만이든 똑같아요. 차별이 없어요.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저주의 인생에서 평안의 인생으로 바뀝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사건은 하나님께 돌아와 평안을 얻으라는 이정표이자 알람입니다.
사건이 올 때 내 판단과 내 감정으로 오르락내리락, 울그락붉으락 할게 아닙니다. 사건이 오면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께 돌아가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때 샬롬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샬롬을 주실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
하나님의 용서 없이 살 수 없는 인생임을 얼마나 인정합니까?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남입니까, 자신입니까?
그래서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하고 얼마나 부르짖습니까?
죄사함의 평안을 얼마나 누리고 있습니까?
박소영
1. 하나님의 용서를 늘 구하고, 나 자신을 수용하기를
2. 우리 목장 식구들 예배 회복되기를
김경은
1. 말씀 듣는 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2. 다음주부터 식약처 실사 준비하는데 지혜와 담대함 주시기를
3.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도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하고 목장에 나눌 수 있도록
4. 차 수리비 적게 나오기를
이소영
1. 큐티와 예배 회복
2. 회사에 큰일이 생겼는데 고객이 보상안을 잘 받아들이기를
3. 회사 일에 상관없이 말씀 붙들고 멘탈 흔들리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