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15절)
나병 걸렸을 때 나아만은 거만한 군대 장관으로서 말들과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 집 앞에 당당히 섰습니다. 하지만 나병의 고침을 받고 돌아온 나아만은 엘리사 앞에 그의 종이 되어 섰습니다.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라고 합니다. 자존심만 내세웠더라면 절대로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자리였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너무 화가 나고 너무 찌질해서 무시가 되지만 하나님의 사람 말대로 했더니 그 말씀대로 깨끗하게 되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나아만은 이 기적 앞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무시했던 자기 거만함을 생각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나아만은 내 생각이 옳다는 이 거만함의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장군의 자존심을 버리고 종으로 섬기는 마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발길을 돌려 하나님의 사람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말씀을 들었던 말씀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내 생각에서 벗어난 나아만은 깨끗하게 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김받고 삶의 가장 윗자리를 하나님께 내어드립니다. 이것이 바로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의 자리로 돌아오는 회개입니다. 회개는 단지 죄를 깨닫고 죄에 대해서 후회하며 죄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의 자리로 돌아오는 겁니다. 말씀 없는 회개는 없습니다. 죄를 고백하고 오픈하는 것이 능력이 아닙니다 말씀이 능력입니다 죄를 드러내는 능력이고 죄를 인정하게 하는 능력이고 죄에서 돌이키게 하는 능력입니다. 말씀이 능력인 이유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듣기 싫었던 말씀대로 일어난 이 치료의 기적을 보면서 나아만은 하나님을 만난겁니다. 타락한 인간 본성은 잠시 숨어있다가 때가 되면 다시 고개를 듭니다. 즉, 세상적인 방법으로는 인간이 절대 근본적으로 새롭게 될 수 없는 겁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이 여러분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 수가 있습니다. 기도가 응답 되었다면, 예배 회복의 예물로 무릎 꿇고 예배하는 영과 육의 베라카의 예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적용질문: 여러분의 믿음의 상태는 뒷간 갈 적 마음입니까, 나올 적 마음입니까?즉, 간절합니까? 입을 싹 씻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헌금은 답례품입니까? 하나님께 무릎 꿇고 경배하며 드리는 신앙고백의 베라카의 예물입니까? 갔다가 도로 돌아와야 할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의 자리는 어디입니까?(교회, 목장, 양육, 가정, 회사)
2. 다른 신에게 드리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16-17절)
나아만이 드리는 예물을 엘리사는 단호하게 거절하는데요. 그래서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렇게 단호하게 이렇게 거절했습니다.몇 번을 반복하다가 끝내 엘리사가 이겼습니다. 나아만의 예물이 하나님 앞에 진정성이 있는데 엘리사는 그 예물을 거절합니다. 사실 받는 것이 훨씬 쉬운 상황이지만 엘리사는 구원을 위해 거절을 합니다. 지금 우상숭배의 죄악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나오는 나아만이잖아요. 그런데 자신이 나아만이 드리는 예물을 받으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나아만의 그 마음을 가로막게 되는 겁니다. 나아만의 믿음이 이제 막 시작되었는데 이 믿음이 하나님을 향하도록 섬세하게 디테일을 챙기면서 인도하는 게 선지자의 사명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가로채는 것은 이 선지자가 할 일이 아닌 겁니다. 이런 것 하나도 모르는 초신자 나아만이 순수한 마음으로 바치는 예물을 그저 인정만 생각해서 받는다면,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을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으로 나아만이 착각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엘리사는 은혜가 거래할 수 있는 게 아님을 분명히 알려주기 위해서 나아만이 말씀의 자리로 돌아온 회개가 더 큰 구원의 열매를 맺는 믿음으로 자라도록 돕기 위해 끝까지 예물을 거절하여 받지 않습니다. 엘리사가 이렇게 삶으로 본을 보이니까 나아만도 온 천하의 하나님만 참 신이시라는 고백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겠다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먼저 믿은 한 사람이 다른 신에게 자기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믿음 위에 서 있으니까 그를 따라오는 다른 사람 역시 하나님께만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충성하는 한 사람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 너무 중요합니다.
적용질문: 내 선택의 목적은 돈입니까, 구원입니까? 구원을 위해 거절해야 하는 이익이 있습니까? 기복적인 욕심인 것을 애써 외면하며 아직도 끊지 못하고 다른 신에게 드리는 제사는 무엇입니까? (사상, 이념, 명예, 돈, 자식 등) 여러분 한 사람의 결정이 가정과 교회와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에 얼마나 동의하십니까?
3. 죄사함의 평안을 누립니다. (18-19절)
흙을 달라고 부탁한 나아만은 한 가지 일을 더 부탁하는데 용서였습니다. 이게 훨씬 중요한 부탁입니다. 집에 돌아가면 아람의 군대 장관으로서 국가 행사에 참석하는데 그때 어쩔 수 없이 아람신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서 절을 할 때, 그냥 몸은 어쩔 수 없이 우상에게 절하는데, 자기 마음만은 하나님을 향해 있으니까 용서해달라고 그럽니다. 용서를 구한다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겁니다. 용서가 필요한 인생임을 인정하는 겁니다.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등장했던 얼마 전 모습은 이제 나아만에게서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앞에서 그저 한 사람의 죄인으로, 용서해 주셔야만 살 수 있는 연약한 인간으로 서 있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라고 고백하는 거룩한 인생입니다. 자신이 영적인 나병 환자임을 깨닫는 것, 하나님의 죄사함이 필요한 인생임을 아는 것, 또 인정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는 삶이 된 것이 나병이 깨끗하게 된 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진정한 깨끗함을 얻는 구원인 것입니다. 몸에 아무 질병이 없어도 이 영혼의 나병에서 깨끗함을 받지 못하면 사는 의미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깨끗게 되는 일이라 그랬습니다. 사는 의미가 없는 이유는 그 끝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몸이 질병으로 가득하고,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고통 가운데 있어도 자신이 영적인 나병 환자임을 알고 하나님 백성의 일원으로 날마다 하나님께 돌아와 용서를 구하는 것 자체가 깨끗한 인생, 천국을 향해 달려가는 복된 인생입니다.
용서해 달라는 부탁에 대해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해 주시는 답은 '평안히 가라' 죄사함의 평안입니다. 거만함에서 돌이켜 하나님만 섬기는 하나님의 종으로 살겠다고 결단했으니까 이제 자신이 살던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지만 '이제는 불안과 걱정과 염려를 버려라 평안을 가지고, 샬롬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라' 이것이 우리가 누려야 할 평안입니다. 우리가 어떤 인생이든 고난 가운데 말씀을 듣고 인생의 방향을 전환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면 '평안입니다'의 인생이 됩니다. 수넴 여인이든 나아만이든 똑같습니다. 차별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저주의 인생에서 평안의 인생으로 바뀝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모든 사건은 하나님께 돌아와 평안을 얻으라는 이정표이자 알람입니다. 사건이 올 때 내 판단과 내 감정으로 오르락내리락 울그락불그락 할 게 아니고, 사건이 오면 그것이 무엇이든 하나님께 돌아가는 전환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때 샬롬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샬롬'을 주십니다.
적용질문: 하나님의 용서 없이 살 수 없는 인생임을 얼마나 인정합니까?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남입니까, 자신입니까? 그래서 '하나님, 용서해주세요' 하고 얼마나 부르짖습니까? 죄사함의 평안을 얼마나 누리고 있습니까?
-살 뺄 수 있도록.
- 돈을 식비로 쓰지 않도록.
C
-아버지랑 형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음란한 마음 잘 이겨내면서 믿음 생활 할 수 있도록.
D
-매일 주시는 말씀을 묵상하고 회개하며 옳고 그름과 음란에서 멀어질 수 있도록.
-바로 선 사람이 제가 돼서 가족 구원을 위해서 애통해할 수 있도록.
-요즘 형에게 좀 단호하게 대해서 형이 상처를 받았는데 연락이 되면 용서를 구할 수 있도록.
-회사에서 남은 기간 잘 순종하며 갈 수 있도록.
- 신교제 위해서 기도할 수 있도록.
* 저희 목장도 이번주에 사진 찍어서 올려봅니다ㅎ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