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5:1-8
<고쳐주소서>
김양재 목사님
미국 콜롬비아 대학 교수 연구 결과, 부탁을 하는 데 가장 장애물은 내가 부족해보일까봐 부끄러워서라고 한다. 겸손하게 도와달라고 하는 사람을 아무도 무시하지 않는다. 생산성을 위해서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고침받기 위해서다. 나아만같은 유명한 장군이 고쳐주소서 하는 부탁을 하는 것은 참 어렵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 열왕기하 5장 1절
유다왕 아사는 아람 왕 벤하닷에게 재물을 바치고 동맹을 맺는다. 이때부터 아람은 북이스라엘의 적국이 된다. 아합은 아람과의 전쟁 중 전사한다. 이때 이스라엘은 가장 강한 오므리 왕조 때였다. 아람은 그 이스라엘보다 더 강했다.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는 상태였다. 나아만은 벤하닷 2세 때 공을 가장 많이 세운 장군이었다. 아람을 구원했다고 할 정도로 크고 존귀한 장관이었다.
아람이나 나아만 자신을 몰랐지만, 이 위대한 승리는 여호와께서 하게 하신 것이었다. 이는 나아만의 구원 역시 여호와께서 하실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아만은 나병이라는 고칠 수 없는 병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회적 편견과 저주받은 자라는 인식을 달고 살았다. 나아만은 이 질병이 앞의 모든 수식어보다도 크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스라엘보다도 큰 아람의 최고 장군도, 이처럼 티끌에 불과하다. 밑동 잘린 나무다. 모든 인류는 모두 구원받아야 할 연약한 존재다.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 열왕기하 5장 2절
나아만의 집에는 이스라엘 출신 소녀 여종이 있었다. 어린 소녀는 작고 보잘것없는 계집종이라는 뜻이다. 왕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나아만과 달리 어린 여종은 사로잡힌 노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린 소녀가 나아만을 불쌍히 여긴다. 여종은 나아만의 병을 빨래를 하다가 알게 되었을 것이다. 갑옷으로 철저히 숨기고 있었던 나아만의 나병을 알게 된 것이다.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 열왕기하 5장 3절
소녀는 내 옆의 사람이 고통을 당할 때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엘리사였다. 죽은 사람도 살렸던 엘리사가, 나아만도 살릴 것임을 믿었다. 적국에 잡혀다고 이처럼 구속사가 믿어지는 사람은 사람 살리는 일을 감당한다. 나병의 고통보다도 더한 고통을 당해도 싸다고 저주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긴다. 결국 믿음의 결론은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내가 예수님의 죽인 죄인인 것을 알면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
나의 죄를 이 세상에 윤리적인 죄로만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죄없고, 용서할 수 없고 복수할 것이라고 한다. 이 세상엔 용서받은 죄인, 용서받지 못한 죄인만 존재할 뿐이다. 원수를 사랑하면 치유는 나에게 일어난다. 주님과의 만남이 없이 이런 말을 들으면 맹렬한 분노가 올라온다. 니가 나를 알아? 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북한은 우리의 형제 나라다. 그들을 사랑하기 위해 우리가 깨어있어야 한다. 북한을 사랑하니까, 북한에 총을 쏘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참 분별이 어려운 것이다. 전쟁은 이겨야 하지만, 너무 슬픈 것이다. 그때 총을 쏘지 않았으면 공산화가 됐을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다. 그래서 우리가 깨어있어야 한다.
누가 진정 위대한 사람인가. 원수조차 불쌍히 여기고 살 길을 알려주는 소녀가 나아만보다 위대하다. 그 믿음이 위대한 것이다. 복음이 위대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소녀가 위대한 사람인 것이다.
Q. 크고 용사이나, 감추고 싶은 나병은?
Q. 나는 사형수인가 경범죄자인가?
Q. 나병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맹렬한 분노가 올라옵니까?
Q. 여러분은 내 처지가 초라해도 힘든 내 옆의 사람에게 우리들교회를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겠습니까?
2. 나병같은 고난이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 열왕기하 5장 4절
그 복음을 들은 나아만은 선지자에게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이고 여종인 자의 말을 듣다니 놀랍지 않은가. 적국 이스라엘에 내 병을 고칠 수 있는 자가 있다는 이 말을 믿었다. 복음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집사일 때, 내 말을 참 몰라줬다. 집사이고, 신학도 안 했고, 여자고.. 나도 참 여종같았다.
믿음과 전혀 상관없는 아람의 군대장관이 어떻게 어린 소녀가 전한 복음을 믿었는가? 바로 나병이라는 고난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병 때문에 안 해본 일이 없기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이어도,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낮고 낮은 마음이 있었다!!! 할렐루야. 마음이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다. 조금 배가 불렀으면 절대 안 들었을 것이다. 이 낮은 마음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 일이 많다. 땅 끝까지 낮아져서 이 땅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을 때 나아만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 열왕기하 5장 5절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 열왕기하 5장 6절
벤하닷 2세는 이스라엘의 숙적이다. 벤하닷 2세는 이스라엘에게 두 번이나 패했었다. 감정이 좋았겠는가? 그런데도 기꺼이 나아만을 보내고 친서를 써주기까지 한다. 선물까지 듬뿍 챙겨준다.
아람 왕이 믿음이 있어서 보냈겠는가? 의리가 있어서? 아람 왕에게 나아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었기에, 그를 위한 일이라면 뭐든 해줘야 했던 것이다. 그래야 자신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아람 왕이 비록 왕이지만, 나아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약점이 있었다.
우리는 저절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다. 육이 무너지는 고난이 없으면 인간은 자기 자신의 한계를 직면할 수가 없다. 내 능력과, 의지에 한계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 고난을 통해 낮은 마음이 될 때 말씀이 들리는 것이다. 나아만의 나병은 축복이다. 고난이 축복이다. 아무 문제 없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은 내가 하나님이 되고픈 마음이다. 민수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다. 반역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마음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는 삶을 바라는 마음은 하나님을 싫어하고 반역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은 팔복이 참된 복이라 하셨다. 편안하고 잘먹고 잘 사는 것을 복이라 하시지 않으셨다. 고난이 올 때 슬퍼하거나 화내면 안 된다. 약 먹을 시간이 되면 약을 먹어야 된다. 어떤 종류의 고난이든, 사건이 찾아왔다면 영적인 약을 먹을 시간이 된 것이다. 처음에 먹었으면 나을 텐데, 약을 자꾸 안 먹으면 점점 더 쎈 약을 먹어야 한다. 구약과 신약을 하도 안 먹으니, 약을 먹으라고 고난을 주신다. 말씀의 약을 안 먹으면 영양실조 걸려서 다 죽는다.
나에게 고난이란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생이 두렵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렸음을 알고 안심해야 한다.
Q. 고난이 축복이라는 고백이 있습니까?
Q. 모든 인간 관계를 객관적으로 분별합니까? - 나아만, 아람 왕이 믿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기가 망하게 생겨서 말을 들은 것이다.
3. 옷을 찢는 탄식에도 응답하십니다.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 열왕기하 5장 7절
아람 왕은 선지자에게 고쳐달라고 편지를 쓰지 않고, 다짜고짜 이스라엘 왕에게 고치라고 했다. 아람에서는 제사장이 왕의 부하이기 때문에 알아들을 것이라 생각했나보다. 이스라엘 왕은 아람 왕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엘리사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 왕이면 뭐하나, 여호람은 그냥 바보다. 옷을 찢으며 분노한다. 이제는 좀 하나님을 찾을 때가 됐는데.. 끝까지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끝까지 자기 감정에 사로잡혀서 옷만 찢는다.
여호람은 아람 왕이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고 생각했다. 구원을 위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 깊이 오해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라는 것은, 구원을 위한 적용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이해타산을 위해서, 나 위주로 생각하니까 온 나라를 말아먹는다. '내가 깊이 생각해봤는데, 걔가 너 죽이려 그러는 거야!' 이런 말만 한다. 다 의심만 하고 관계를 깨는 말만 한다.
여호람은 참 말이 안 통한다. 매사에 엘리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엘리사 때문에 살아났는데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으려 한다. 사람은 육으로 뭘 채우면 자꾸 하나님 자리로 가려고 한다. 다른 건 안 봐도 믿음은 봐야한다. 세상 것은 천을 가지고 있어도 점점 줄어들지만, 믿음은 날로 풍성해져간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 열왕기하 5장 8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믿음 없는 여호람의 탄식조차 들으신다.. 엘리사는 주변 국가가 하나님을 알아야 된다고 한다.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엘리사는 적국조차도 하나님을 알아야 함을 알았다. 우리 모두가 밑동 잘린 나무와 같음을 알았다. 여호사밧과 전쟁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엘리사는 늘 여호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부르지도 않았는데 찾아와서 도와준다.
우리의 예배와 가정생활이 너무 중요하기에, 나라를 위한 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나라가 없으면 교회도 가정도 없다.
나병 고치는 일은 하나님이 책임지실 일이다. 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믿음 없는 여호람의 탄식도 들으시는데, 믿음으로 하는 기도는 오죽하겠는가. 하나님이 여호람을 이뻐할 이유가 있는가? 진작 죽이셨어도 할 말이 없다. 그래도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이 이유 하나 때문에 여호람의 향방 없는 탄식에도 응답하시는 것이다.
아무리 연약한 사람이라도 교회에 붙어만 있으면, 기도해줘야 한다. 붙어만 있으면 큰 일을 하게 된다. 교회 나오고 목장 나오면 관심을 가지고 잘 기다려야 한다. 하나님께 소중한 것은 한 사람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 잘 붙어만 있으면 하나님이 때마다 고쳐주시며 키워가신다. 붙어만 있으면 깨닫게 하신다. 예배는 완전히 습관이 되어야 한다.
Q. 내 힘으로 하려다가 옷을 찢으며 절망하고 있는 일은?
Q. 나 홀로 신앙에 머물고 있지는 않습니까?
Q. 공동체에 탄식했을 뿐인데 응답받은 적이 있습니까?
나병같은 고난이 축복임을 해석해주는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공동체에 잘 붙어있어야 한다. 그 공동체 안에서 탄식하면서 붙어갈 때, 하나님이 그 신음에도 응답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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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보고서
목장 참석: 한결,기상,지호,상현,규빈,철우,현덕,승윤,윤혁,현우,정우
규빈이 형의 절친 00또래 철우 형이 교회와 목장에 처음 왔습니다!
새로운 분이 오신 기념으로 돌아가면서 (죄패,고난,근황) 나누면서각자 자기소개했습니다.
자기소개한 후에는 목자 형이 철우 형에게 복음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적용질문 나눔
승윤 - (나아만 장군의 나병이 축복이라는 것이 인정이 됩니까?)
인정 안된다.
(만약 나아만 장군이 나병 없어서 1000명의 여자 거느리는게 좋을까 아니면 나병 걸려서 하나님 만나는게 좋나?)
그래도 하나님 만나는게 좋긴 하지.
목자 says: 나아만 장군은 나병 걸리지 않으면 하나님 못 만났을거다. 하나님은 쓸데없는 고난 안 주신다.
원망하면 아무것도 안 변하고 상황만 나빠진다.
고난이 오면 하나님이 그래도 경고 하실때 내가 엎드려야지 해야 한다.
하나님이 고난 주시는게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러시는거다. 그걸 우리가 알아야 한다.
승윤이 위해서 기도 많이 하자. (재수하고 있습니다)
상현 - 나아만 장군의 나병이 축복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나?
조금은 무슨 말인지 알 거 같다.
고난을 겪으면 뭐가 잘못된 것인지 알게 된다는 말 같다.
사건이 왔을 때 내 죄를 본 적이 있었는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