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는지라
1. 엘리사의 지팡이라고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아니다. (31-32절)
게하시는 엘리사 선생님이 시킨 대로 지팡이를 죽은 아이의 얼굴에 놓았다. 하지만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당황한 게하시는 오던 길로 돌아가서 오고 있던 엘리사를 만나 아이가 깨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죽음 가운데서 깨어나는 부활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엘리사는 믿고 보냈지만 게하시를 몰랐다. 이 지팡이가 부적은 아니다. 그러니까 유명한 설교를 그대로 하고 흉내를 내어도 사실 진실하지 못하면 결정적으로 사람을 살리기는 어렵다. 엘리사 밑에서는 쉬워 보였는데 게하시 혼자 보내니까 아이에게 말씀이 들리지가 않는다. 애통함 없이 그야말로 약장수처럼 사기꾼처럼 연기를 한다고 살아나는 건 아니다. 똑같은 얘기를 해도 진짜 약장수 사기꾼이 있고, 그것이 진실한 연기가 있는 것이다. 이걸 분별해야 한다.
게하시는 엘리사 옆에 있었다는 이유로 자기를 과대평가했다. 게하시도 하나님을 경험해야 되고, 만남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항상 겸손하셔야 한다. 곳곳에서 소리가 나지 않아야 한다. 겸손해야 분별이 된다.
이 아이는 죽기 위해 태어난 아이 같았다. 애초부터 여인은 아이를 바라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여인은 이미 아이가 죽은 문제가 자신을 깨우치시기 위해서 주신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여인이 엘리사를 통해 하나님을 섬겼다면 아이가 죽은 뒤부터는 수넴 여인은 직접 하나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게 된 시점이 되었다고 생각을 한다. 모든 적용 하나하나가 엘리사도 놀란 적용이기에 수넴 여인이 우뚝 섰다고 생각을 한다.
여인은 믿음이 좋은 여인이었다. 이 여인은 수준이 높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통과하게 하시고, 생명을 걸 만큼 간절함을 이 여인에게 원하셨다. 한 번씩 죽음을 경험하게 되면 성경이 이렇게 잘 깨달아진다. 이렇게 진리가 보이니까 암초가 그대로 있는데 암초보다 깊은 깨달음으로 암초를 넘어가게 하신다. 사건이 없으면 이 성경이 깨달아지질 않느나. 그러니까 우리는 깨달을 수 없다. 이 모든 걸 주님의 공로로 깨닫는 것이다.
수넴 여인은 아들을 잃었다. 죽음에 이르는 이 아들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잃으신 아픔을 체휼하게 된 것이다. 이 여인은 하나님보다 더 큰 평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수넴 여인이 엘리사를 절대적으로 믿으니까 이 수넴 여인의 죽은 아이를 잠에서 깨우기로 엘리사가 결단을 한다.
▪ 적용
Q. 여러분이 자랑하는 엘리사의 지팡이는 무엇입니까? 모태신앙입니까? 유명한 교회입니까? 직분입니까?
Q. 여러분의 신앙 패턴은 한결같습니까? 늘 오르락내리락합니까?
2. 눈을 뜨려면 여호와께 기도해야 한다.(33절)
아이를 살리기로 작정하고 엘리사는 방문을 닫는다. 방 바깥에 있는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겠다는 뜻인 것이다. 그러니까 엘리사도 지금 이제 자기와 하나님과의 문제인 것이다. 자기가 어떻게 아이를 하는지 알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들의 행동이 그렇게 다 남들 보는 데서만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안 보는 가운데서 살려야 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에 대해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점은 기도는 독백이 아닌 대화라는 것이다. 기도의 대상이신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언약의 약속을 알고, 그 뜻을 알고, 그다음 적용해서 순종하는 것이 순서인 것이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뜻을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사건을 주시고, 사람을 키워 가시고, 메시지도 키워가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기도하다 뜻의 히브리어 팔랄은 공동체 영적 지도자가 개인의 간구를 넘어 공동체와 그 지체들을 위해 기도하는 거를 가리킬 때 이 단어를 쓴다. 그래서 아브라함, 모세, 한나, 사무엘, 다윗, 솔로몬, 하나님의 사람, 히스기야. 에스라. 느헤미야, 욥, 다니엘. 요나. 이런 사람들이 정말 이 기도라는 단어를 썼다. 그래서 팔랄은 성경에서 총 84회에 사용이 되었는데 이 단어는 그러니까 하나님께 간곡히 호소하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자신을 판단하다, 통회하다의 두 가지 뜻이 있다.
호소의 의미가 강하든, 통회의 의미가 강하든, 간곡한 기도에는 늘 통회가 따라오는 것을 우리가 경험하지 않나. 너무 간절하면은 그냥 내 죄부터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눈물이 나오는 거죠. 그만큼 지금 수넴 여인의 간절함이 전달이 되어지고, 수넴 여인에게 선물로 준 아이가 죽었으니까. 엘리사 또한 문 닫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면서 통회 자복하는 것이다. 엘리사도 회개하는 것이다.
엘리사가 왜 통회 자복했을까? 게하시 편에 보낸 지팡이는 아무 일도 일으키지 못했다. 지금까지 선지자로서 되는 일만 있었는데, 가장 사랑하는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었는데 뜻대로 안 된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엘리사는 지금까지 기적을 일으키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걸 절절히 깨닫고 있는 것이다.
▪ 적용
Q. 여러분은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통회 자복이 나오나요?
Q. '다 끝났어! 이제 이혼이야! 사표야! 죽어야 해!'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Q. 말씀대로 적용하고 기도하는 게 왜 중요한지 이해가 되나요?
Q. 요즘 언약의 여호와께 기도합니까? 전능의 하나님께 기도합니까?
Q. 질문 훈련 잘하며 큐티 잘하고 있습니까?
3. 고정관념을 뒤엎고 엎드려야 한다.(34-37절)
이 34-35절에 엎드리다라는 동사가 지금 세 번이 나온다. 첫 번째 엎드리다는 원어로 눕다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엎드리다는 이 원어로 구부리다이다. 눕다는 부정한 시체를 살리기 위해 끌어안는 행동을 보여주고, 구부리다는 그렇게 시체를 끌어안는 행동이 가진 그 영적인 의미를 알려준다.
엘리사가 아이의 시신 위에 엎드리는 것도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고정관념과, 판단과, 감정을 꺾고 구체적으로 수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이다. 세상의 부정함에서 완전히 구별된 사람이이다. 자신을 부정함에 오염되지 않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체를 만지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 통회 자복한 엘리사가 그다음 이어서 한 행동이 아이의 그 시신을 만진 것이었다. 그냥 손만 만진 게 아니라 자기의 입을 아이의 입에, 눈을 눈에, 손을 손에 딱 갖다 붙였다. 그것도 어정쩡하게 이 부위들만 댄 게 아니라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렸다고 했다. 아이 위에 자기 몸을 눕혔다는 뜻이이다. 그러니까 수넴 여인이 죽은 아이 몸을 엘리사의 침상 위에 딱 눕힌 것처럼 이제 엘리사가 아이 시신 위에 자기 몸을 딱 눕힌 것이다. 둘은 그냥 딱 믿음이 통한다.
영혼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이런 행동인 것이다. 한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려면, 이처럼 간절한 기도뿐 아니라 구체적인 사랑의 수고가 따라야 한다. 자기 처소에서 자기 침상에 누일 뿐 아니라 차가운 시체, 보기도 힘든 시체를 나의 온기로 덮어주라고 한다. 근데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시체에 몸을 펴서 엎드렸다고 한다.
엘리사는 아이의 차가운 몸을 끌어안았다. 거리낌과, 의문과, 귀찮음. 모두 다 감수하고 끌어안았다. 내가 인정하는 진정성보다 훨씬 더 크고 귀한 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고 믿음이고 적용이다. 적용은 순종이고, 순종은 하나님이 진정성이 있다고 인정하시는 것이다. 인간의 사랑보다 하나님 때문에 적용한 것이 훨씬 귀한 것이다. 이것이 구속사이다.
내 판단과 감정보다 더 중요한 게 구원이이다. 적용으로라도 사과하는 게 어디인가, 그건 하나님 때문에 순종한 것인데. 하나님은 한 영혼도 잃지 않고 다 구원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 한 사람 살리기 위해서 못 할 일이 없는 것이다.
엘리사가 엎드리는 사랑으로 아이 위에 엎드리니까 지팡이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던 아이가 7번 이렇게 재채기하더니 눈을 번쩍 떴다. 죽었던 아이가 지금 부활했다. 엘리사는 살아난 아이를 수넴 여인을 불러 돌려주죠. 그러자 여인은 다시 한번 엘리사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한다. 여인도, 엘리사도 쉬운 게 없다.
거룩에서 더 기쁜 날을 맞이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삶의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겠나. 그런데 택하시고, 하나님이 쓰시는 인생이기 때문에 이런 사건을 주신 것이다. 우리 믿음의 수준을 높이시려고. 이렇게 생각지 못한 고난을 허락하실 때가 있다.
여인이 도움을 청해도 재채기를 또 7번 할 때까지 엘리사가 시체 위에 엎드려 있으려니, 이게 몸과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눈을 뜨게 할 수가 없다. 죽기 전에 아들의 생명이 수넴 여인의 전부였다. 말 그대로 '내 아들'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인데 이 죽었던 아들을 부활의 기적으로 다시 받으니 이제는 내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이제 이 여인의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근데 여러분들 지금 전부 내 아들로 키우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로 키우라고 이 사건이 오는 것이다.
수넴 여인은 그 아들을 여전히 엎드려서 아들을 안고 나간다. 그러니까 오늘 이 짧은 본문에 '엎드려'가 4번이나 나오는 것이다. 이렇게 눈을 뜨는 데는 이 엎드림의 겸손과 사랑이 필요한다. 그러니까 서로 엘리사도 엎드리고, 수넴 여인도 엎드린다. 서로 엎드려야지 기적이 일어난다. 엘리사도, 수넴 여인도 자신들에게는 공로가 하나도 없는 것을 알고 있다. '평안입니다'는 엎드림의 사랑과 겸손이 절대 필요한 것이다.
엎드리는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이다. 그래서 엎드리는 사랑은 반드시 부활로 결실할 줄 믿는다. 주님을 따라 엎드리는 사랑으로 섬기며 부활을 소망하고 인내할 때, 우리 주님이 반드시 부활의 열매를 주실 줄 믿는다.
▪ 적용
Q.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구원 때문에 입과, 눈과, 손을 맞추는 수고로 엎드려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Q. 주님께 받은 사랑으로 섬깁니까? 결과를 얻기 위해 섬깁니까?
Q. 이 수고가 헛되지 않고 부활로 결실할 줄 믿습니까?
(기도제목)
지윤
1.체력을 회복시켜 주시고스트레스 관리 잘 할수있도록
2.매일큐티와 설교로 하루를 인도 받을수 있도록
다님
1.아픈 환경에 엎드리고 아픈 나를 끌어안아 통회자복하는 단계를 순서대로 잘 통과할수있길, 버틸 힘 주시길, 기다림의 이때에 우울하지 않을수있길
2.지금의 과정에서 평안 할수있길
세정
1. 각자의 역할대로 쓰시는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알게 해주심에 감사합니다. 늘 회개할 것 찾고, 어떤 상황에서도 분별 할 수 있는 분별력이 길러질 수 있도록
2. 청년대출 심사 문제 없이 잘 통과 될 수 있기를
은우
1.엘리사의 지팡이와 같은 교회가 나의 믿음이라는 착각을 회개하고 죽어 있는 부분에 '언약'의 눈/입/손을 포개어 영적지수600 '평화'에 도달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