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10 눈을 뜨는지라 열왕기하 4:31-37 김양재 목사님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의 지도를 얼마 전 여러분께 알려드렸는데 여러 종교에서 궁극적으로 목표로 삼는600여개의 지수의 평화는 아주 초월적인 삶이고, 영속적인 행복한 상태로 천만 명 중 한 명 꼴이라고 해요. 그러니까 '평안입니다'가 대단한 수준인 거죠. 최고의 경지는 그 에너지 수준 700에서 1000으로 측정되는 깨달음이라고 그랬는데 이 깨달음은 항상 신성과 결합되어 있다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예수님, 부처 수준이라고 해요.우리는 최악의 마음 상태인 수치심, 죄책감으로 뭉쳐진 죄인이죠. 평안할 수가 없어요. 깨달음은 신성과 결합되어 있다고 하니까 내 공로가 아니고 예수님을 믿으면 이 평안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죽었다가 세상 이치에 눈을 뜨게 되는 것을 우리가 느끼게 됩니다.어두운 세상에 있다가 눈을 뜨는 거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것인데 좀 더 자세히 어떻게 눈을 뜰지 생각을 해볼게요.
1. 엘리사의 지팡이라고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31절 게하시가 그들보다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지도 아니하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그에게 말하여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게하시는 엘리사 선생님이 시킨 대로 지팡이를 아이 옆에 놓지만 변화가 없어요. 당황한 게하시가 엘리사에게 아이가 깨지 않는다고 보고해요. 요한복음 11장 11절엔 죽은 나사로의 상태를 잠들었도다라고 표현하시고,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고 말씀하세요. 죽음 가운데서 깨어나는 부활은 인간의 능력으로 불가능합니다. 어쨌든 게하시의 사역으로는 아이에게 엘리사의 지팡이를 놓았지만 소리도 없고 듣지도 아니합니다.
게하시 혼자 보내니 아이에게 말씀이 들리지 않아요. 약장수처럼 연기한다고 사람이 살아나는 게 아니에요. 수넴여인이 연기했다고 했지만 구원을 위한 연기와 자기 이익을 위한 연기는 다릅니다.
(지난 주 설교가 100프로 수용되지 않는다는 목자님)
구원을 위해서면 거짓말은 해도 된다고 하니 수용이 안된다고 해요. 목자님을 향한 부목자님의 답변 : 빈틈이 없어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망가지셔야 하는데 본인의 완벽함으로 아들도 공부를 너무 잘하다보니 구원을 위한 연기인지 이익을 위한 연기인지 행위로는 똑같이 보여요.. 망가지시길 바라요. 안 그러면 목자님의 빈틈을 찾겠다고 목장에서 하잖아요.
게하시는 엘리사 옆에 있다는 이유로 자기를 과대평가 합니다. 게하시도 하나님을 경험해야 되고 만남이 있어야 하는데..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간 그 때제자들은 산 아래에서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했어요. 그렇다고 담임 목사만 찾으란 얘기가 아니에요. 수넴여인처럼 평신도만 찾으란 얘기도 아니에요. 여러분은 용각산 안 먹어봐서 모르죠. 용각산은 소리가 나질 않아요. 겸손해야 분별이 됩니다.
32절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수넴여인은 게스트하우스를 성전으로 여기고 아이를 눕혀요. 이 아이는 죽기 위해 태어난 아이 같았어요. 다른 사람이라면 아이를 바라지도 않았는데, 주신 분이 하나님인데 왜 줬다 뺐어? 할 거예요. 여인은 자신을 깨우치시기 위해 주신 문제라는 걸 알았어요. 가짜 평안에 속아서 진짜 평안인 하나님을 떠나려 했어요. 갈멜에 갔을 땐 몰랐어요. '아들을 안으리라!' 예언을 알려주셨지만 그 아들이 죽을 것이라 알려주진 않았어요. 그동안 엘리사를 통해 하나님을 섬겼다면 수넴여인이 직접 하나님을 통해 엘리사를 섬기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에요. 모든 적용이 엘리사도 놀랄 적용이었기에 엘리사도 놀랐을 것이에요.
저(목사님)도 젊은 나이에 남편이 가니 조롱 받을 일이었을 거예요.. 그런 조롱 소리 다 들었다면 그런 저주가 어딨겠어요. 제가 아무리 '평안입니다!' 외쳐도 그런 소리 다 들었다면 저주가 따로 없어요. 알맞게 들리게 하셔서 지금까지 살아있어요. 여인은 수준이 높기에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통과하게 하시고 생명을 걸 만큼의 간절함을 여인에게 원하셨어요. 한 번씩 죽음을 겪으면 성경이 잘 깨달아져요. 진리가 보이니까 암초가 그대로 있는데 암초보다 깊은 깨달음으로암초를 넘어가게 하십니다. 성경의 재밌고 오묘한 진리가 진짜 진리로 다가오게 하시니 깨달음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 깨달음이 얼마나 대단한지.. 예수님만이 대단하다고 하시니 예수의 공로로 깨닫는 거죠. 고난을 비교하는 사람은 이제 목사님 고난도 고난인가.. 밥을 굶었는가.. 헐벗었는가..길거리로 내쫓김을 당했는가.. 하는 분도 있어요. 그러나 사람에게는 절대치의 고난이 있어요. 고난을 통해 사명을 찾았어요. 그런데 고난이 풀려지기만 바라면 고난도 비교하기 시작해요.
힘든 결혼생활을 할 때 겉으론 의사 남편, 기업가 집안.. 나는 너무 힘든데 저 같은 사람이 오픈해서 쓴 책은 없더라고요. 저 같은 사람은 간증도 사역도 도저히 불가할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면서도 계속 큐티모임은 했어요. 어쩔수없는 부르심으로 50이 넘어 신학 시작했어요. 이제 내 인생은 꽉 붙잡혔다.늘 숨죽이고 나 같은 사람이 큐티 모임하는데 오시는 게 이상하지.. 생각해서 녹음도 못 하게 하고 테이프도 안 만들었어요. 내가 힘들었겠단 생각이 들어요? 조금 하다 그만둬야지.. 하는데 계속 와요. 개척하고도 수요 모임 영상 등아무것도 안 올리고 녹음도 못하게 했어요. 늘 자신이 없었어요. 한 쪽에선 사명감이 너무나 있는데 한쪽에서는 나를 보면 나 같은 사람이 목회를 하느냐.. 소나 개나 다 하겠다. 이런 얘기를 끊임없이 시기마다 들었어요.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싶지만 나는 목회성공이 목표는 아니었죠. 이렇게 두려움이 많은데 어찌 교회를 자랑의 지팡이로 삼고 올 수 있었겠어요. 영혼 구원이 아닌 목회 성공이 목적인 목회자가 많더라고요. 우리들교회 목자들도 사명자들인데 지난주 선지생도 아내의 그 가난 vs 수넴여인의 아들 없음 중 누가 더 큰 고난인가? 질문을 했잖아요.이 과부의 가난이 더 큰 것 같다는 답안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교회를 다녀도 돈이 하나님처럼 보여요. 돈이 있다면 이 세상에서 쾌락과 정욕에 빠질 일 밖에 없어요. 오죽하면 부자가 천국 가는 게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더 어렵다고 했겠어요?
수넴여인이 어떻게 주님을 사랑했을까 생각해보면 정말 여러분은 알 수 없는, 돈으로도 안되는 근본적인 고독이 있었을 것이에요. 그런데 원하지 않던 아들이 생겼는데 아들을 잃었어요. 죽음에 이르는 아들 고통을 통해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잃으신아픔을 체휼하게 된 것이죠. 하나님보다 더 큰 평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세상이 감당 못하는 믿음이라는 걸 엘리사가 딱 알아봤어요. 여러분들도 저를 딱 알아보는 사람도 있고 오래 봤어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여러분들이 절 알아봐야 그런 분들을 위해 기도하겠는데..
수넴여인이 엘리사를 절대적으로 믿으니 엘리사가 그 죽은 아이를 잠에서 깨우기 위해 결단합니다.
- 여러분이 자랑하는 엘리사의 지팡이는 무엇입니까? 모태신앙입니까? 유명한 교회입니까? 직분입니까?
- 여러분의 신앙 패턴은 한결같습니까? 오르락내리락합니까?
눈을 뜨려면
2. 여호와께 기도해야 합니다.
33절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엘리사는 방문을 딱 닫아요. 수넴여인도 그 때 닫고 시작했는데 방 밖에 있는 어떤 것도 의지하지 않겠다는 뜻이에요.엘리사도 이제부터는 어마어마한 수고를 할 건데 그걸 알리고 싶지 않아요. 대신 엘리사가 제일 먼저 한건 여호와께 기도하는 거예요. 우리가 기도에 대해 가장 먼저 생각해야할건 기도는 독백이 아닌 대화라는 거예요.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그분의 언약을 알고, 그 다음 적용해서 순종하는 것이 순서인 거예요. 처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사건을 통해 메세지를 키워가시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하나님과 대화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열왕기상이나 열왕기하에서 문자적으로 엘리야가 기도했다는 표현이 없어요. 근데 33절에 특별히 여호와께 기도했다는 표현을 왜 썼을까요?
아주 간절한 기도는 통회의 자복이 절로 따라옵니다. 그만큼 수넴여인의 간절함이 전달되고 수넴여인에게 선물로 준 아이가 죽었으니 엘리사 또한 문 닫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며 통회자복을 합니다. 엘리사도 회개하는 거예요.
엘리사가 왜 통회자복했을까요? 그동안 엘리야의 겉옷으로 요단강을 갈랐고, 말 한마디로 마른 골짜기를 물로 채우고, 과부 집에 빚을 갚고도 남는 기름 한 그릇의 기적을 베풀었지만... 지금 게하시 편에 보낸 지팡이는 아무 일도 일으키지 못했어요. 지금까지 선지자로서 되는 일만 있었는데, 가장 사랑하는 수넴여인의 아들이 죽었는데 뜻대로 안 돼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엘리사는 지금까지 기적을 일으키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걸 절절히 깨닫고 있는 거예요. 자기 지팡이가 전혀 효력을 지금 발휘하지 못했잖아요. 그러니까 정말 사랑하니까... 사랑하면 그래요. 낮아지고 낮아져서 기도하게 돼요. 우리 자녀들 놓고 사랑하고 사랑하니까... 땅끝까지 낮아지니까 회개가 저절로 나오고 간곡히 간곡히 중보 기도를 하게 되는 거예요.
나도 남편이 잠을 자니 깨워야 하겠는데 안되니 문 닫고 통회 자복이 나오며 내 죄가 파노라마처럼 보였어요. 잠자고 있는 남편이 화내고 때려도 회개가 되고 불쌍한 마음이 드는 거예요.
에스겔 3장 24절 주의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고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성령이 임하니까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고. 잘 묶여 있으라고. 골방 기도하니까 아프리카 선교도 아니고, 남의 집도 아니고, 내 집에 들어가서 문을 닫으라고 하는 거예요. '여호와께서 말씀하실 때만 말해라.' 한 마디로 큐티하며 이 결혼에 잘 묶여 있으라 아니겠어요? 하나님은 나와 은밀하게 깊게 만나기 원하셨기 때문에 문 닫고 나가지 못한 세월을 오래 주셨어요. 내가 얼마나 교만하면 13년 동안 문밖 출입을 못하게 하셨어요.근데 무슨 그 정도 가지고 그렇게 쓰실 수 있나? 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뒤집어 생각하면 얼마나 사람이 없으면 나 같은걸 쓸까.. 싶어요.
- 여러분은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통회 자복이 나오나요?
- '다 끝났어! 이제 이혼이야! 사표야! 죽어야 해!'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 말씀대로 적용하고 기도하는 게 왜 중요한지 이해가 되나요?
- 요즘 언약의 여호와께 기도합니까? 전능의 하나님께 기도합니까? (구속사적으로 말씀으로 기도해야함)
- 질문 훈련 잘하며 큐티 잘하고 있습니까?
눈을 뜨려면
3. 고정관념을 뒤엎고 엎드려야 합니다.
34절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35절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34-35절에 엎드리다는 동사가 세 번 나와요. 첫 번째는 눕다, 두세 번째는 원어로 구부리다는 뜻이에요. 눕다는 부정한 시체를 살리기 위해 끌어안는 행동을 보여주고, 구부리다는 그렇게 시체를 끌어안는 행동이 가진 그 영적인 의미를 알려주는데요. 구부리다를 뜻하는 이그하르는 성경에 총 3번 나옵니다. 여기에 두 번이고, 한 번은 열왕기상 18장 24절에 나와요.
열왕기상 18장 24절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이 꿇어 엎드려가 바로 이그하르인데요. 몇 년간 이어진 가뭄이 극에달했을 때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을 제압하여 다 죽이고 아합에게 '큰 비가 내릴 것이다라고 말했잖아요.바알 선지자 850명을 죽이고도 결국 아합을 변화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판단과 정죄감과감정을 꺾고 하나님께비 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꿇어 엎드리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을 접고 꺾고 내려 놓는 것. 엘리사가 아이 시신에 엎드리는 것도 구원을 위해 자기 감정과 판단을 꺾고 수고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사람은 거룩한 사람이에요. 세상의 부정함에서 완전히 구별된 사람이에요.
어제 큐티인 본문 민수기 5장 2절에서 보신 것처럼
민수기 5장 2절 주검으로 부정하게 된 자를 다 진영 밖으로 내보내라
고 하셨잖아요. 근데 19장 11절엔 더 분명하게 말씀하셨어요.
민수기 19장 11절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1일동안 부정하리라
자신을 부정함에 오염되지 않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시체를 만지면 안되는 거예요. 그런데하나님께 통회 자복한 엘리사가 아이의 시체를 만진 것이에요. 손만 만진 게 아니라 자기 입을 아이의 입에 자기 눈을 아이의 눈에 자기 손을 아이의 손에 딱 갖다 붙였어요.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렸다고 했어요. 아이 위에 자기 몸을 눕혔다는 뜻이에요. 엘리사가 아이 시신 위에 자기 몸을 눕혔어요. 영혼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결코 할 수 없는 행동이에요.한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려면 기도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적용으로 이어져야합니다. 보기도 힘든 시체를 나의 온기로 덮어줘야 합니다. 엘리사에게 전혀 거리낌이 없었겠어요? 내가 시체를 안았다가는 일주일이 아닌 두 주일을 격리해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마음이 없었겠어요? 여러분도 힘든 목원 한 명 나오면 힘들어요.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시체예요. 목장에서 끌어 안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아이의 차가운 몸을 끌어안고 거리낌도 있고 의심도 귀찮음도 있지만 감수하고 끌어안아요. 그렇게 끌어안았을 때 이런 적용을 보며 진정성 타령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럼 안돼요. 진정성보다 훨씬 크고 귀한 게 하나님 말씀에 대한 믿음이고 순종이에요. 적용은 순종이고 순종은 하나님이 진정성 있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인간의 사랑보다 하나님 때문에 적용한 것이 훨씬 귀한것이에요. 이게 구속사입니다. 늘 과거의 상처를 들먹이면 행위 구원에서 못벗어나요.
옛날에 했던 사랑은 인간의 사랑입니다. 적용은 하나님 때문에 하는 것이에요.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백 날을 사과해도 옛날로 못돌아가가 주제가죠. 내가 사과 했으면 받아줘야지 맨날 진정성 타령을 해라고 여러분이 말하면 될까요? 여러분은 사과만 하면 됐어요. 거기서 내가 사과하는 걸 왜 안받아줘 하면 안됩니다. 여기 엘리사도 세 번이나 엎드려도 온기가 차차 돌아오잖아요. 서로 급하면 안됩니다. 진정성 없다는 얘기를 들어내야 해요. 구속사가 안 깨달아지는데 왜구속사가 깨달아진다고 자꾸 착각해요. 근데 그게 안 깨달아지면 아무리 큐티를 해도 말은 할 수 있지만 여러분이 사과해놓고 가까운 사람이면 상처를 받아요.왜냐면 큐티 하면서도 바람피고 할거 다해서. '구속사가 깨달아지면 뭐해. 외도하고 할거 다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끝이 없는거라~상처를받으면 안됩니다.
내 판단과 감정보다 중요한 게 구원이고 하나님 말씀이에요. 말씀이 사과하라고 하니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도 명령대로.. 가끔가다 너무 안 받아지면 악 쓸 때도 있는거지. 영혼 구원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겠어요. 한 영혼 살리기 위해서 못할게 없는 거예요. 창조주 하나님이 그러셨어요. 차가운 시체를 손에 손을 눈에 눈을 입에 입을 대고 있으니 살이 차차 따뜻하게 되었다고 해요. 응답도 서서히 오는 것이에요. 죽을 때까지 온기가 안 오는 것도 있어요. 주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은 그를 위한 수고를 하는 게 아니라 나를 살리신 주님을 위한 수고를 하는 거예요.생색 없이 수고를 할 수 있는 것. 그러니 목회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면 생색나서 어떻게 하겠어요. 지치지 않고 생색 안내기 때문에 (나는것도 잇지만은 ㅋㅋ..) 기본적으로..
세 번이나 엎드리고 가서 엎드리니 드디어 35절
35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36절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이르되 네 아들을 데리고 가라 하니라
37절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엘리사가 엎드리는 사랑을 하니 아이가 지팡이엔 반응 없다가 일곱 번 재채기하니 죽었다 부활해요. 목장에서 그렇게 엎드려서 손에 손을, 눈에 눈을, 입에 입을 하니 죽었던 목원 식구들이 눈을 반짝해요. 엘리사는 살아난 아이를 수넴여인을 불러 돌려주죠. 그러자 여인은 다시 한 번 엘리사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합니다.여인도 엘리사도 쉬운 것이 없어요. 열왕기하 4장 8절에서 엘리사가 그 집에 처음 들어갔을 때 거룩한 엘리사를 알아봐요. 그 날이 거룩한 날이라면죽었다 살아난 날은 더 기쁜날이죠. 우리 인생의 목적이 거룩이 되면 기쁨과 행복은 따라오게 되어 있어요. 거룩에서 더 기쁜 날을 맞이하기까지 겪어야 했던 삶의 여정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하나님이 쓰시는 인생이기에 이런 사건을 주신 거예요.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은 거룩에서 기쁨에서 더 기쁜 날이 될 것을 신뢰하십시다!
여인이 도움을 청해도 재채기를 또 7번 할 때까지 엘리사가 시체 위에 엎드려 있으려니, 이게 몸과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눈을 뜨게 할 수가 없어요. 죽기 전에 아들의 생명이 수넴여인의 전부였겠죠. 말 그대로 '내 아들'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인데 이 죽었던 아들을 부활의 기적으로 다시 받으니 이제는 내 아들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로 자리매김을 한 거예요. 이제 이 여인의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인 거예요. 근데 여러분들 지금 전부 내 아들로 키우고 있어요. 하나님의 아들로 정말 키우는 사람이 드물죠. 하나님의 아들로 키우라고 이 사건이 오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로 다시 깨라고! 여러분들도 잠에서 깨라고!내 아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키우는 거는 객관적으로 보는 거예요.
다 자녀 중독에서 못 벗어나잖아요. 최고의 중독은 자녀 집착과 중독인데.
수넴여인은 그 아들을 여전히 엎드려서 아들을 안고 나가요. 그러니까 오늘 이 짧은 본문에 '엎드려'가 4번이나 나오는 거예요. 이렇게 눈을 뜨는 데는 이 엎드림의 겸손과 사랑이 필요해요. 그러니까 서로 엘리사도 엎드리고 수넴여인도 엎드려요. 서로 엎드려야지 기적이 일어나요. 엘리사도 수넴여인도 자신들에게는 공로가 하나도 없는 것을 알고 있어요. '평안입니다'는 엎드림의 사랑과 겸손이 절대 필요한 거예요.
지금 엎드리는 수고를 하고 있어서 힘드세요? 이렇게 힘들게 수고하는데 아무 열매 가 없는 것 같아서 낙심이 납니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도, 또 힘도, 아무것도 없어 죽고만 싶어요? 엎드리고 엎드리는 데 지쳐서 이제 훨훨 날아 떠나고 싶습니까?
하지만 엎드리는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이에요. 그래서 엎드리는 사랑은 반드시 부활로 결실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살려주세요. 가정마다 부활하는 역사가 이어질 줄 믿습니다! 주님 편에 선 그 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따라 엎드리는 사랑으로 섬기며 부활을 소망하고 인내할 때, 우리 주님이 반드시 부활의 열매를 주실 줄 믿어요.
-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구원 때문에 입과, 눈과, 손을 맞추는 수고로 엎드려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 주님께 받은 사랑으로 섬깁니까? 결과를 얻기 위해 섬깁니까?
- 이 수고가 헛되지 않고 부활로 결실할 줄 믿습니까?
* 기도제목 *
자현
1. 이번 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고정관념을 내려 놓고 눈과 입과 손을 맞추는 적용 할 수 있도록
2. 결과를 위한 적용이 아닌 섬김의 적용이 될 수 있도록
3. 남자친구가 우리교회로 나올 수 있도록
수람
1. 매일 큐티할 수 있도록
2.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도록
3. 지금 이 시기를 잘 누릴 수 있도록
4. 발목 회복
예닮
1.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본 경험이 없는 것 같아요. 느껴지게 해주세요! (제발)
2. 체력 지켜주시고 급한 일과 중요한 일 잘 분별할 수 있도록
3. 끌어안고 싶지 않은 시체(할머니, 아빠, 주변 사람들) 끌어안는 적용 할 수 있도록
4. 이번 주에 목장 불참한 언니들 다음주엔 꼬옥 참석할 수 있도록
5. 하나님 지팡이 잡고싶어요~!
예지
1. 전세집을 내놓았는데 빠른 시일 내에 세입자 구할 수 있도록
2. 회사에서 질서순종 잘 하도록
3. 결혼준비에 필요함 채워주시도록(신혼여행 리조트 결제 시일이 한 달 정도 남았는데 환율이 너무 올라 걱정입니다ㅠㅠ)
4. 체력 붙들어주시도록
* 여담
예배시간에 그림이나 그리고 앉아있는 불쌍한 영혼을 위해 기도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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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많은 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더욱 정교한 김양재 지팡이를 그려보았습니다!
매우 붙잡고 싶지만 우리 모두하나님 지팡이만 붙잡아야 하는거 아시죠~??
여러분들이 잡고싶은지팡이는 무엇인가요? 댓글로 나눠주세요^^
추가)
모 부목자님께서 작품명을 지어주셨습니다.
<김양재팡이>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