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11. 잘 사는 길
2023. 6. 18. 잘 사는 길
15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그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그에게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
16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감한 사람 오십 명이 있으니 청하건대 그들이 가서 당신의 주인을 찾게 하소서 염려하건대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보내지 말라 하나
17 무리가 그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그들이 오십 명을 보냈더니 사흘 동안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18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그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동양사상과 세속 철학에서는 인간을 최고의 존재로 여깁니다. 인간 = 하늘 이라, 하늘 천에는 사람 인과 클 대자가 나오죠. 불교에서는 심지어 인간을 신이라 두고 살아있는 신으로 둡니다. 불교에서는 욕심을 죄의 뿌리로 두기 때문에 날마다 금욕으로, 불공으로 드립니다. 가난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속세와 관계를 끊는 것을 최대 미덕으로 둡니다. 이슬람은 종교의 이름으로 무조건적인 칼을 휘두릅니다. 불교도 이슬람교도 사람이 왕입니다. 무슨 설교를 20주년으로 할까 했더니 여전한 방식이 중요합니다.
- 고정관념에 휘둘리지 않는 것입니다.
20년간의 시간은 수 많은 세상의 고정관념과의 대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15 맞은편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그를 보며 말하기를 엘리야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엘리사 위에 머물렀다 하고 가서 그에게로 나아가 땅에 엎드려 그에게 경배하고
열왕기하 2장에서 엘리야는 엘리사를 후계자로 세웁니다. 십자가 잘 지는 갑절의 영광으로 홀로서기 해야한다고 지난 주 설교했습니다. 개혁적 설교라고해서 개혁적인 말씀을 부르짖어야 할 것처럼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성령이 하시는 역사중 최고는 말씀의 깨달음입니다. 가장 최고의 개혁은 날마다 내 안에 신선한 기쁨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으로 하는 개혁은 또다른 옳음에 의해 무너집니다.
요아스 왕의 40년 개혁은 말씀에 대한 기쁨이 없었기에 삼일만에 무너집니다. 큐티모임이 아무런 조직없이 30년 훨씬 넘게 왔는데, 한 가지 구한 것은 말씀에 대한 기쁨이었습니다. 교회도 한결같은 기쁨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들교회 20년 동안, 큐티선교회 시절도, 말씀으로 사건이 해석 안되는 분도 많았습니다. 어떻게 고난이 축복이 될수가 있어? 했습니다. 해석하면 해결이되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구속사적 해결입니다. 내가 해석이 되면 나도 살고 남도 잘 살게 하더라구요.
제 어머니는 그 즉시 돌아가시고 남편도 만 하루 미만에 죽었습니다. 마병의 수호신으로 해석이 되어 제가 살고 가정이 살고 교회가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불로 올라가는 사건을 만난 분이 오셨다면 잘 살아내기를 바랍니다. 엘리사가 영감을 받고 엘리야의 떨어진 겉옷을 취해 요단을 치니 물이 갈라집니다. 그것을 본 제자들도 엘리사가 대단하네! 했을 것입니다. 불 수레 사건으로 혼자 사역 잘하고 붙어있다보니,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번주 나눔/ 미국에서 유학하던 아들이 공황과 마약 중독으로 우리들교회로 왔는데 올해 2월에 세례 간증을 했던 경험을 했다고합니다. 중독을 끊고 정상으로 돌아왔답니다. 딸 아들 엄마 동생이 모두 살아나는 목장과 목자님에 대한 경배가 대단합니다. 목사 후보생들이 농사꾼 출신인 엘리사를 인정하게 됩니다. 엘리사를 존경하긴 쉽지 않았겠지만 (제사장 가문이 아니니까) 그래도 영성엔 귀천이 없습니다.
목사든 집사든 영성엔 차별이 없고 다만 직분이 다를 뿐입니다. 엘리사에게 경배까지 했습니다. 저부터 여자 목사의 고정관념을 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자 목사로서 차별받은 건 있으나, 여자 목사라서 사람 살려내는 데에는 차별이 없었습니다. 장로님 권사님 중에는 오늘같이 엘리트와 유명인사도 계시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출신들도 계십니다. 바람피우신 분, 범죄자, 부자 가난한 자도 다 계시지만 그 약재료로 다른 사람들을 아낌없이 살리고 내주고 계십니다. 교회를 신뢰하고 말씀을 신뢰하니 교회가 세운 그분들을 신뢰합니다. 이렇게 잘 서 있는 분들이 어디에 계시겠어요. 학벌이 살립니까, 권세가 살립니까? 그러니 우리도 다같이 그들의 제자가 되어 따라갑니다. 여기까지 오는 20년동안 수없이 맞닿드린 문제는 바로 고정관념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주께 인도하기위해 고정관념과 수없이 치열하게 싸우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갑절의 고난으로 십자가를 제가 지겠으니 하나님만 버리지 말아달라고 기도해왔습니다.
20주년인 우리들교회의 얘기를 할 수 밖에 없겠네요. 우리들교회 얘기만 듣고도 주님을 만나시길 축복합니다.
16 그에게 이르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감한 사람 오십 명이 있으니 청하건대 그들이 가서 당신의 주인을 찾게 하소서 염려하건대 여호와의 성령이 그를 들고 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보내지 말라 하나
무슨 고정관념이 있었을까요?
엘리야의 승천을 보고 엘리사를 인정하는 듯 하더니 뚱딴지 같이 엘리야의 시체를 찾으러 가겠다합니다. 요단이 갈라짐을 두번이나 본 제자들입니다. 엘리야가 하늘로 올라감을 미리 알았습니다. 그래도 용감한 사람 50명을 보내 찾게 해달라 합니다. 같은 사건으로 간증을 들어도, 엘리야를 승천시키는 하나님이 아니고, 엘리야를 골짜기에 던지시는 하나님이라고 인식하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승천한 것은 은혜받고 좋았는데, 당장 엘리야가 안 보이는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큐티간증하고 집회때 은혜받았대도 제가 그 자리를 떠나면 다들 큐티 안하고 금새 원위치로 돌아갑니다. 오늘 예배도 들어도, 문 밖으로 나가면 다시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선지자 제자들은 구원의 사건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적용하면 어떤 얘기일까요
제가 남편이 구원받고 천국갔으면 아무리 기쁘다고 해도 다들 걱정하면서 앓아누워도 남편이 있어야지~ 합니다. 이게 시체 찾는 이야기입니다. 무슨소리야? 그래도 돈이 있어야지! 시체찾게 해준다고 용사 50명을 갖다댑니다. 그 용사 - 돈 / 인맥/ 지연/ 학연을 동원해 내 엘리야 시체찾아주겠다고 나섭니다. 남편이 죽었으니, 남편이 있어야지~! 하면서 서방을 50명이나 소개해주겠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아무리 얘기를 해도 기둥서방이라도 있어야한다고 인간적으로만 얘기합니다. 길이 많으면 구원에 방해가 됩니다.
17 무리가 그로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매 보내라 한지라 그들이 오십 명을 보냈더니 사흘 동안을 찾되 발견하지 못하고
보내라 한지라, 50명이나 보냈는데 3일간 찾지를 못합니다. 엘리사는 보내지 않고 그만두라해도 찾으러 갑니다. 어떻게하는 게 부끄러워하도록 강청하는 걸까요?
엘리사에게 처음에는 물을 가르는 간증이 있어서 부드럽게 얘기해도 들렸으나, 점점 현실적 문제로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집사인 나보고 대단한 목사님 찾아가서 기도하라는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다가도 내 입시에 탈락하고 안되는 일만 생기면 현실적으로 내가 못산 부분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이 드는 우리입니다. 실제로 제 아들이 떨어지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또 하나 엘리사가 부끄러워할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생도들은 자기들이 후계자가 안되니 열등감도 있었겠죠. 그래서 한 사람이 시체를 찾아 으뜸이 되고 싶은 속내를 감추니 모여든 게 50명입니다. 엘리야 시체찾자!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다수가 옳은 건 아닙니다.
후계자 자리 때문에 엘리야의 시체를 안 찾는 거라고 합니다. 엘리사를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할 수없이 엘리사가 보낸 것 같스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있지요. 내가 아무리 얘기해도 자녀/남편/아내가 듣습니까? 아무리 말해도 안 들을때는 보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성도생도들은 3일 걸렸으나, 내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때는 30년 50년도 걸릴 수 있습니다. 목사 후보생들이 자기 열심으로 시체찾는 사람을 누가 믿음 좋다 할까요? 열심의 반대는 신뢰입니다. 분별이 안됩니다. 그래서 문제이빈다.
적용/
여러분의 뿌리깊은 고정관념은 무엇입니까?
정신없이 찾아다니는 시체는 무엇입니까?
돈/남편/자녀/아내/권력 중에 내가 찾는 건 무엇입니까?
목자인 나보다 목원인 분이 믿음이 더 좋을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까?
- 양육이 필요합니다.
구약은 오실 예수님에 대한 얘기라면, 신약은 오신 예수님에 대한 얘기입니다. 이 부분에 해당하는 신약의 비유는 막달라 마리아얘기가 떠오릅니다. 주님의 시체가 없자 주를 보지 못해 울었스빈다. 이건 자기 자신을 생각해 울었습니다.
13절,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12절에서는,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가보니 시체가 없었습니다. 시체가 없어 시체를 뉘였던 곳만 보고 누워있는데 천사가 앉아있다 어찌하여 우느냐 묻습니다.
오늘 우리에겐 어떤 천사를 통해 어찌하여 우느냐? 소망을 가지고 온 분들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믿으니, 내 주님을 어디다 옮겨놓았는지 알지 못해서 그렇다고합니다.
14절에는 예수께서 서 계신것을 보았으나 여자인 줄 모른다 합니다. 예수님이 동산지기 인줄알고 주여 어디 두었거든 내가 가져가리이다 합니다. 예수님의 무덤으로 시신이 계속 없어서 계속 울었다 합니다. 원문을 보면 땅을 치고 통곡했다 합니다. 뭐때문에요?
예수님 시체가 없어서.
내가 우는 사건속에서 돌이켜 예수님을 보앗으나, 내 힘으로 돌이키려고 하니까 막달라 마리아는 시체생각에 꽂힙니다. 뒤를 돌이켜 예수님이 서계신데도 동산지기 인줄 알고 울고 있다고 합니다. 내 삶에 적용 해보면
내 남편 내 커리어 내 가족이 하나님 자리에 앉혀놓으니, 안된다고 생각하면/무너지면 웁니다. '내가 어떻게 ~~ 했는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앞에 예수님이 서계신데도 웁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우는 것 같지만 결국 사건 속에서 내 자신 때문에 우는 게 많습니다. 누가 나를 위해 따뜻하게 대해줄 것이며 사람 대접을 해줄까요?
예수님보다는 인간적인 막달라 마리아가 믿음도 있으나 인간적으로 예수님 같은 분이 없는것입니다. 중요한 마지막 프로젝트가 예수님 시체찾기 였는데, 막달라 마리아는 마지막 목표가 무너졌습니다. 우리 나라가 효를 강조하니까 3년간 집짓고 애곡하는 것을 잘 사는 비결로 갖다보니 벗어나지 못하는 집안이 많네요. 울고있는 마리아에게 어찌하여 우느냐고 양육해주십니다. 이럴 때 주님의 질문을 나에게도 해보세요. '당신은 무엇때문에 우세요?' 솔직하게 나눠보길 바랍니다.
계속 물어주는 것은 얼마나 최고의 양육인지 모릅니다. 양육할 때 안 보이던 내 얘기가 누구가 물어줄 때 알게됩니다.
질문은 너무 유익합니다. 왜입니까? 나는 왜 우는지 나도 모르기 때문입니다.시체없어서 우는 게 우리입니다. 그래서 띵크 1:1 양육에서, 목장에서, 목자모임에서 왜 우는지에 대해 얘기하게됩니다. 그러므로 양육을 받아야 성숙해집니다.
다시 열왕기하 18절,
18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그에게 돌아오니 엘리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가지 말라고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였느냐 하였더라
내가 하지말라고 했잖아! 하는 말을 해야합니다. 그 결혼, 그 사업! 그 직장! 하지말라했잖아! 세상에 대고 담대하게 외칠 수 있어야합니다. 외치는게 정말 중요합니다. 그래서 나중에라도 구원때문에 말리셨구나 돌아올 수 있도록 말 해줘야 합니다. 그게 믿음의 부모입니다. 큐티 열심히 하고 이런 말하려고 실제적으로 기도합니다. 이걸 말려야하는 데 어떡해야좋죠? 사랑하지 않으면 죽을때까지 원수지고 남의 서러운 얘기 안 끼어들려고 합니다. 우리들교회에서는 정신병원좀 가보라는 게 관형어인데 다들 기분나빠합니다. 그래서 목사님들부터 다 다녀옵니다.
집회만 가면 제가 이혼 하지말라, 그 환경을 떠나지말라 하는 말들을 모두 소화가 안되어합니다. 시간이 흐르고 제 얘기가 맞으면, 그때 그 얘기가 이 얘기구나 깨달을 때가 오면, 그때 구원을 생각합니다.그러나 나중에는 왜 더 말려주지 않았냐는 얘기까지 듣습니다. 성경본문에 맞춰 간증하면 다 어렵다고합니다. 목장보고서만 봐도 뛰쳐나가겠다. 설교가 재미없다 등등 얘기가 많습니다. 그래도 성경을 날마다 읽히는 이유는 성경을 날마다 읽어야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생각해봐도 잘난 사람 죄 안지어본 사람, 자기 일 잘하는 사람은 우리들교회 오면 분해서 못들을거같습니다. 죄패를 붙이지 않으면 진짜 못듣는 설교는 제 설교같습니다.
** 부목자님 나눔
우리는 부부간에 솔직하게 만나야합니다. 가면벗고 무장해제해야합니다. 목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장해제하니 재밌습니다. 솔직해야 재밌습니다. 이 땅에 제정신가지고 솔직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정신 가진 사람들은 여기오면 재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계속 가면을 못 벗고 재미를 못 느낍니다.
적용/ 여러분은 어디까지 양육 받았습니까?
어느양육에서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습니까?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는 질문에 답해보세요
20년 선물 당신이 나보다 옳습니다 머그컵을 줄려고 했습니다. 한 사람 앞에 한 개씩 가져가게 했는데 이미 1,2부때 다 받아서 없어졌답니다. 청년부는 다음주일에 새로 제작을 하기로 했습니다.
잘 사는 길은, 고정관념에 휘둘리지 말아야하고 양육받아야합니다.
- 의외의 사건에서 주님이 불러주시는 이름을 들어야합니다.
요한복음 20:15, 마리아는 동산지기 인줄알고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내가 찾아가겠나이다 합니다. 내 고정관념으로는 예수님을 만났으니, 잘 살아야되고 모든것은 제자리에 돌아와야한다는 말 이외에는 아무것도 안들려서 웁니다. 시체 찾는 것은 결국 기복이죠. 주님은 비천한 나사렛 목수의 아들로 오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7귀신이나 씌인 여인으로는 도덕/영적/정서적으로 썩어진 창녀였음을 의미합니다. 마리아도 부활을 믿어서 갔다기보다 자신을 편견없이 사랑해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절절해서 제자도 안 찾는 그 무덤에 간 것아니겠어요? 그 가난한 마음. 가난한 자가 복이 있어, 긍휼히 여기시고 양육을 해주십니다. 그래서 잘 사는 사람은 1+1 = 2가 아닙니다. 비천한 나사렛 목수아들 7귀신 씌인 마리아, 세리 마태 같은 사람입니다. 이런 얘기가 들리려면 내 고정관념이 다 무너져야합니다. 생각해보면 기대하지 않은 사건, 기대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동산지기인 줄 압니다. 부활의 예수님이 오실 땐 전혀 생각지 않는 장소와 사람으로 옵니다. 그래서 못알아봅니다.
술집의 그 여자를 통해 오니까 못 알아봅니다. 교회에서 거룩하게 설교 들으면서도 평생 못만나던 예수님을, 바람피우니까 만나고 부도나니까 만납니다. 의외의 사건을 통해 나한테 일어나면 안되는 그 사건으로 만납니다. 그걸 모르고 남편은 흠이 없어야하고, 부도는 회복되어야만 한다는 그 시체. 그 시체를 찾으러 다닙니다. 남편이 흠이 없어야하는데 바람펴서 없어지니까 남편을 찾으러. 돈을 찾으러 ampbullampbullampbull 울고있지 않은지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신포도주는 받으십니다. 하나는 쓸개를 타서 십니다. 그 같은 고통 가운데에서도 그 쓸개는 마약/진통제입니다. 예수님은 진통제 안 드셨습니다. 입술을 축이는 신 포도주만 드셨는데, 그 같은 고통가운데서도 분별하시고 쓸개 탄 포도주를 안 받으셨는지, 십자가는 착한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분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착해서 천국가는 게 아닙니다. 내가 거절 못해 받은 쓸개 탄 포도주로 내 집이, 가정이, 나라가 망할 수 있습니다. 학교 직장 모든 사회생활에서 이 고정관념을 다루는 것으로, 얼마나 지혜로울 수 있는지 모릅니다. 이런 걸 알려주는 곳은 없습니다.
동산지기라고 믿음이 없는 게 아닙니다. 회사가서 사람 차별하고 학교에서 차별하고 그러니까 바보가 됩니다. 동산지기 같지만 그 분은 예수님입니다. 진짜를 보는 믿음이 있어야합니다. 결혼 할 때 도 믿음이 있으면 가난한 사람과 결혼했을 때 10년뒤 부자가 되면 너무너무 고마워합니다. 그런데 지금 있는 부자와 결혼했다가는 가난해질 일 밖에 없습니다. 그러고는 다 결혼 잘못했다 그럽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도 시작하면 다 잘했다 그럽니다. 그래도 신혼이면 집 주지, 아이 낳으면 더욱 임대주택이 잘됩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참 좋습니다.
주님을 꼭 만나야 하는 시간과 장소를 내가 결정해놓고 있으니, 주님은 의외로 다른 곳에서 나타나십니다.
마리아가 예수님 시체가 없어져서 예수님 앞에두고 울고있습니다. 가장 좋은 분, 가장 놀라운 기적인 예수님 앞에 두고 웁니다. 그렇게 힘들고 살아왔는데, 이 자리 왔는데, 무엇때문에 울고있습니까?
요 20:16 마리아야 불러주십니다.
마리아가 아까 돌이켰을 땐 예수님이 안 보였습니다. 울면서 돌이킬 예수님을 보고도 동산지기 인줄 알았스빈다. 지금은 예수님께서 마리아야 불러주시니, 마리아가 돌이킵니다. 부활 후 처음 부른 이름이 마리아입니다. 울던 마음을 정리할 시점이 되었다고 합니다. 보이스가 아니라 사운드로 들려, 드디어 주님이 음성으로 말씀으로, 마리아야 불러주시는 그 이름을 들어야합니다. 나는 소외당했어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마리아처럼 영육간에 썩을대로 썩을 인생이 있겠습니까? 소외당한 나 외로운 나, 힘든 나, 앞길이 없는 내가, 시체찾느라 우는데 시체는 가짜고 내 몸을 붙들지마라. 난 이제 올라갈 몸이다 하는 예수님이 내 이름을 불러주십니다. 실체이신 주님이 네가 찾는 내가 여겼다. 이제 그만 수고하고 사명을 주십니다. 주님이 여러분들 이름을 불러주시면서. 아무개야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에 죽은 시체 그만 찾고, 내게 흐르는 모든 눈물과 한숨이 다 마르는 역사가 충만하길 바랍니다.
가짜 찾으러 다니지 말길 바랍니다. 일평생 가짜찾다가 허무한 삶이됩니다
적용/
내 뒤에 있는 예수님이 바람 부도 사기 중독 모든 모습으로 온 것을 인정하십니까?
어떤 의외의 사건에서 주님이 이름을 불러주셨나요?
말씀을 맺을게요. 내가 시체 찾다가 '주님을 보았다!'가 잘 사는 길이에요. 이게 비결입니다. 내가 주님을 찾았다! 내가 지금 헛된 거 지금 붙들고 있구나. 그래서 고정관념에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도 13절에는 랍오니(선생님)이라고 하다가 16절에 주님으로 바뀝니다. 이제 예수 믿었어도 양육을 받아야 됩니다. 그리고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오는가?가 아니고! 그 의외의 사건으로 주님이 나를 불러주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기가 막힙니다. 제가 어떻게 그 환경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겠습니까? 이렇게 이 기가 막힌 청천벽력 같은 이 사건에서 주님이 이름 을 불러주시니까 오늘 여러분들의 이름을 다 불러주실 줄 믿습니다. 찬양하고 기도할게요.
[나눔]
서인욱
근황: 목요일에 퇴근하고 우주 관련 강연을 다녀왔는데 8개월 이상 강의를 들어야 된다고 해서 신천지 의심이 들었다.
- 고정관념 > 아빠의 옳고 그름이 싫다 가끔 아빠의 모습이 나한테 보일 때가 있다 주변 사람들은 힘들거라고 걱정할 때 괜찮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 엄마는 잘 모르겠다
- 예수님이 부르신 사건 > 힘든 시기 때 지홍이를 통해서 왔는데 코로나 시기 때 멀어졌다가 불신교제를 하는 기간 동안 주일에 계속 교회 나오고 싶었다.
김도현
근황: 시험 기간이라 공부했고 한국사 자격증에 합격했다.
- 고정관념 > 어머님이 공무원이신데 축구 선수 하다가 그만둔 이후로 공무원을 집에서 바라신다. 은연 중에 하고 싶은 일보다도 공무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이 불편하진 않은데 잘 모르겠다. 좋은 아들이 되고 싶은 욕심도 있는 것 같다. 음악이나 투자, 체육교사도 하고 싶은데 지금은 고민 중에 있다.
- 예수님이 부르신 사건 > 안식님의 강압으로 오게 됐다. 목사님이 좋은 말씀해주시는 것과 깨달음 때문에 오게 되는 것 같다.
조유락
근황: 쇼핑몰 하면서 열심히 지냈다.
- 고정관념 > 내가 맞다라는 고집이 있다. 50% 이상은 내가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집이 있는 것 같다.
- 예수님이 부르신 사건 > 딱히 없었다. 일단은 다니고 있다.
오주완
- 고정관념 > 무조건 상대방을 이기려고 하는 고집이 있다. 내가 왜 이러지 할 때가 있는데도 부모님을 이기려고 한다. 집은 편하다.
- 예수님이 부르신 사건 > 교회 오는거 힘들다. 이런 얘기하면 싸운다.
안지홍
- 고정관념 > 성인이 되자마자 부서를 섬기는 아이들은 아픈 아이들이다 라고 세운 고정관념이 있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하나님을 찾는 행위에 대해 어떻게 정상적인 아이들이 저렇지? 저 믿음이 진짜일까?하는 의문이 들면서 아픈 아이들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성인이 막 된 때에는 사실 세상적으로 흘러가기에 너무 좋은 환경들이 있고, 호기심 가질만한 것들도 많은 데 교회에 붙어있는 애들이 너무 신기하다.
- 예수님이 부르신 사건 > 처음 아웃리치를 갔을 때 장애아동을 케어했었던 때인 것 같다. 다른 이쁜 애기들도 많았는데 디렉형의 지시에 따라 장애아동 친구 한명을 케어하게되었는데 처음에 갖고 있는 선입견에 비해 이 장애아동이 예배가 끝날 때까지 정말 좋은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니 너무 은혜가 되었다. 나는 정상적인 몸과 사고를 가지고도 예배를 정말 힘들게 드리는데 이 친구는 나보다 더 못한 환경에서도 예배를 잘 섬기는 모습이 은혜였다.
남영우
- 고정관념 > 5년정도 만난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그래서 이번주에 신교제에 대해 사람들과 얘기해봤는데 교회 다니는 여자는 만나기 싫고 아픔이 있을 것 같은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고정관념으로 교회 여자들은 다 아프고 신교제는 어렵고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다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진짜 괜찮은 사람이 나타나면 좋겠다.
안식
고정관념 > 내 인생 계획이 의미가 있을까?, 예를 들어 난 어떤 사람과 어떻게 결혼해야할까? 이런 미래 계획에 대한 고민이 의미없다 라는 피해의식과 고정관념을 갖고 있다. 교회에서 활동하는 것들, 전도하는 것 등 정말 좋지만 이런 데에 시간을 쏟아 다른 세상 사람들보다 뒤쳐지게되고 세상적 가치관을 기준으로 봤을 때 이런 교회 활동들이 의미가 없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불쑥 든다.
지금 나이가 차면서 점점 책임져야할 것도 많아질텐데 교회에서 큰 행복을 찾고있는 내 모습이 깨진 독에 물 붓는 격이 아닌가라는 피해의식이 깊이 자리잡고 있다.
교회활동을 하면서 부족한 세상적 가치관들은 하나님이 채워주시겠지하는 나의 믿음이 정말 큰 행복이었는데 이런 믿음이 무너져가니 행복도 같이 무너지는게 느껴졌다.
오늘 말씀을 듣고 믿음에서 오는 기쁨이 무너지자 나도 하나님 앞에서 시체를 찾고 있고, 이게 내 기복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런 내 모습을 인정하고 기도하고 설득되니 또 어렵게 생각하던 많은 것들이 점점 풀리고 있다. 너무 감사하다.
예수님이 부르신 사건 > 오늘 이 기복과 피해의식에 대해서 해결해 줄 예수님이 죽고, 시체라도 찾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가 내 모습이라는 게 깨달아진다. 나는 언젠가는 나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믿으니까 붙어가면 뭐든지 회복시켜주시겠지? 라는게 기복이라고 하시는 하나님이 미웠다. 오늘은 그 기복의생각을 내려놓게 해달라는 기도를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의외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은 친해지기 어려운 목장, 무한 수정의 직장, 적응하기 어려운 아웃리치다. 중요한 건 사명이지 해결이 아니다. 내게 맡겨진 질서에 붙어갈 때, 엘리야의 시체보다 엘리사의 사명에 붙어갈 수 있다.
기도제목
김도현 >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도록
오주완 > 건강하게
안지홍 > 어린이집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 생활 예배 회복
안식 > 무한 수정의 늪에서 잘 나올 수 있도록 / 깊은 기복에서 내려놓을 수 있는 기도가 나올 수 있도록 / 신결혼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