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4.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왕하2:1-8 )
김양재 목사님
1. 낮아지고 낮아져야 합니다. (1절)
엘리야가 부르심에 응답하여 달려온 길을 마칠 때가 되었다. 아하시야 왕은 높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오르려고 했지만 결국 난간에서 떨어지는 것이 결론이다. 그런데 엘리야는 내려가고, 내려가고, 함께 내려갔더니 인간의 힘이 아닌 이 회오리 바람을 가지고 그를 하늘 높이 올리고자 하신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낮고 천한 자리에 있던 엘리야를 높이 들어 이 세상의 높은 아합 왕과 그 아들 아하시야 왕까지 심판하셨지만은 사명을 받은 후 엘리야의 삶이 승승장구했던 게 아니다. 하나님이 전하라고 해서 말씀을 전할 때마다 어김없이 세상의 박해가 따라왔다. 아합에게 다시 나아가 바알교를 박살 내고 이세벨에게 쫓겨 광야로 도망간다. 그러다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원하는 처지에 이른다. 이런 사람을 오늘 보니까 하늘로 올려주신다.
하늘로 올려주신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에녹이 창세기 5장에 보면,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다고 했다. 쫓겨난 에덴 동편 놋 땅에서 가인의 후예들이 쫓겨났는데도 아들 이름으로 에녹성을 짓고, 빌딩 짓고, 화려하게 살면서, 풍악을 울리고, 주색에 취해서, 기계 문명의 조상, 음악의 조상이 다 이쪽에서 나온다. 그리고 지금 칼의 노래를 부르고, 권세를 지금 휘두르고 있는데 벌이 아니라 상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오직 믿음으로, 자녀를 낳아서 동행한다는 것 자체가 내려가고 내려가고의 인생 아니었을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성경에서 두 명 하늘로 올라가는 모델에 뽑혔을까.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키운다는 것은 하늘에 올려질 일이구나를 깨달았다. 믿음의 집안은 심플하다. 항상 밑동 잘린 나무 신세라는 것을 인지하고, 별인생 없는 것을 알고 사명을 감당한다는 것이 그들과 다른 것이다.
엘리야도 이런 시련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엄청난 사역을 해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하지 않고, 주님이 보내시는 낮은 자리로 또 함께 내려가라는 말씀에 끝까지 순종할 수 있었다. 엘리야는 요단 동편의 시골 길르앗에 살던 정말 낮고 천한 그림자 같은 인생이었다. 환경이 겸손하니까 그냥 늘 입이 다물어졌다. 그러니 엘리야 즉,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다라는 신앙고백적인 이름을 가질 수가 있었다.
엘리야의 곁에는 이 좋은 천국을 이 세상에서 붙잡으라는 그 말을 알아듣고 오늘 더불어 가는 엘리사가 있다.
Q. 적용
1. 오르고 오르려고 해서 떨어진 자리는 어디입니까?
2. 낮아지고 낮아지니 올려진 자리가 있습니까?
3. 내 자녀 고난이 하늘에 올려지는 최고의 상인 줄을 믿습니까?
2. 머무르지 않아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마지막으로 홀로 40km가 넘는 길갈과 벧엘과 여리고와 요단 네 곳을 여행을 하기로 결단을 한다. 머무르지 않아야 할 이 네 곳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1) 첫째로, 길갈의 전설에서 머무르지 말아야 됩니다. (1,2절)
길갈은 이스라엘의 영적 고향이다.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요단을 건너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진을 친 곳이다. 이곳에서 할례를 행했다. 그들이 400년 애굽, 40년 광야 동안 지고 있던 애굽의 수치의 돌이 굴러갔다고 길갈이라고 이름을 정했다. 유월절도 지켰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군대 장관을 만난 곳이기도 하고. 압살롬에게 쫓겨났다가 복귀한 곳도 길갈이다.
길갈은 너무나도 역사적인 전설의 곳이지만 지금은 편한 곳이 되어서 이스라엘의 모든 악을 묵과하고 있는 곳이다. 전설적인 영광에 취해서 오늘은 0점으로 살고 있다. 그런 길갈에서 머무르면 안 된다는 의미이다.
근데 엘리야는 엘리사 보고 길갈에 머물라고 한다. 자기가 온 길을 너는 오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자기와 같이 가는 길이 믿음의 길이지만은 가자고 하지 못할 때가 있는 것도 보게된다. 나오미도, 엘리야도 위대한 것이 아니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을 보여준다.
(2) 두 번째 장소, 벧엘의 금송아지 맘몬신에서 머무르지 말아야 합니다.
벧엘은 이름 뜻 자체가 하나님의 집이다. 이 벧엘은 야곱이 돌베게 베고 예배와 십일조 서원을 한 야곱의 영적 고향이다. 그런데 여로보암이 유다에게 반역해서 북이스라엘을 세운 뒤에 벧엘은 금송아지 섬기는 센터가 되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야를 길갈에서 다시 벧엘로 보내시는 것이다.
엘리사에게 했던 너는 여기 머물라는 말은 '엘리사야, 편히 살던 예전으로 돌아가지 그래? 너 힘든 사명의 길로 갈 거야?' 하는 질문이다.
엘리사는 여호와께서 살아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있음을 두고 맹세하면서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다고 답한다. 목숨을 걸고 떠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엘리야 선생님의 생명뿐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생명만큼 확실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선지자 사명 감당하는 게 잠깐 편하게 사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고 중요한 일임을 안 것이다.
(3) 세 번째, 여리고의 욕심에서 머무르지 말아야 합니다. (4절)
여리고는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가나안 첫 번째 영적 전쟁의 장소였는데,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셨다. 여기는 사명을 감당해야 되는 곳인데 전쟁 방법이 6일 동안 하루에 한 바퀴씩 돌면서 침묵하고 7일째는 7바퀴 돌아서 마지막 바퀴는 함성을 질러 침묵할 때, 소리 지를 때를 잘 알면서 이기게 해주셨다. 영적 전쟁을 하나님의 말씀에 아주 너무 구체적으로 반응하면서 인도를 받아야 여리고가 무너진다. 무너진 여리고를 반면교사 삼아서 다시는 여리고를 건축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씀을 무시하는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재건했다. 여호수아가 예언한 대로 아들들이 다 죽었다. 엘리야, 엘리사 두 선지자가 벧엘에서 여리고에 온 것은 이 죄악을 알려서 회개하게 하는 것이 엘리야가 했던 사역이고, 엘리사가 이어가야 할 사명임을 알려준 것이다.
(4) 네 번째, 요단의 죽음에서 머무르지 말아야 합니다. (6,7,8절)
여리고는 요단강에서 아주 가깝기 때문에 엘리야와 엘리사는 바로 요단가에 선다. 요단 서편이 우기여서 물이 가득했다. 요단을 건너지 않고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건너편에 내가 가야 할 나라의 임금을 내가 믿어야 안심하고 가는데 죽어지는 한계를 맛보지 않고는 두려운 것이다. 죽어지는 한계를 맛봐야 그 나라 임금을 믿어야 이 강을 건너는 것이다. 주님을 떠나지 않으려면 죽음을 넘어서야 된다
Q 적용
1. 길갈의 전설에서 그 정도면 됐습니까?
2. 벧엘의 금송아지 신앙 가지고 십일조와 예배는 안 빠지지만, 여리고의 사명은 감당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3. 요단의 죽음을 넘어서기가 어렵습니까?
4. 길갈의 전설, 벧엘의 맘몬, 여리고의 욕심, 요단의 죽음 중에 어디 머무르고 있습니까?
3. 여전한 방식으로 요단의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3,5,8절)
길갈에서 서쪽으로 20km 정도 가면 벧엘이 나온다. 걸어서 하루 여행했는데 이 벧엘에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있엇다. 엘리사가 평소와 너무도 다름없이 여전한 방식으로 지금 엘리야를 수행하며 따르고 있기 때문에 제자들은 엘리사에게 엘리야가 하늘로 곧 떠날 것을 아냐고 물었다.
제자들은 영적으로 아직 미숙하기 때문에 엘리야가 간다고 하니까 염려가 되어서 물었는데 엘리사는 잠잠라하고 한다. 제자들은 염려하면서 오늘 할 일을 결정하려고 하는데 엘리사는 오늘 주어진 하루에 충실한다..
엘리야의 거듭된 시험에도, 제자들의 반복된 의문에도 엘리사는 흔들리지 않고 엘리야 곁을 떠나지 않았다.
1) 첫째, 주님을 따라갈 때 다 나를 떠날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많은 사역을 했지만. 마지막에 옆에 남은 자가 엘리사 한 사람이다. 제자 생들도 믿음이 있지만 멀리서서 옆으로 오지 않는다. 이걸 알고 가야한다. 주님을 따라갈 때는 이렇게 다 나를 떠날 수 있다.
2) 두 번째, 서로 너무 다른 어떤 관계도 예수님 안에서만 하나가 됩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성격도, 환경도 판이하게 달랐다. 엘리야는 가난했고, 엘리사는 부자였다. 이 두 사람이 인간적으로 하나가 될 수가 없는데 사역을 이루었다. 달라도 다른 그들이 하나님 중심이 되니까 하나가 되었다. 어떤 관계도 예수님 안에서만 하나가 되는 것이다
탈무드에 「유태인의 사람 분별법」이라는 법이 있는데 거기서 주변에 있어서는 절대 안 될 사람 다섯 가지를 얘기했다.
1) 화내는 사람.
2) 교만한 사람.
3) 남을 헐뜯는 사람.
4) 필요할 때만 찾는 친구
5) 함께 어울리는 사람을 살피라 a
인간은 세 가지 관계에 놓여 있다. 하나님과는 예배해야 될 관계고, 인간과는 동반자로서의 관계고, 자연과는 관리자로서의 관계이다. 모든 관계와 질서를 어겨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 제대로 예배를 드리고 있어야 누가 동반자이고, 누가 관리자인지 알게 된다. 나를 만드시고 구원하신 주님이 경배의 대상이 되셔서 내 작은 사랑과 복종을 받고 기뻐하신다.
Q 적용
1.. 주님이 내게 맡기신 목숨 걸고 떠나지 않아야 하는 여전한 자리는 무엇일까요? 아내, 남편, 자녀, 아들, 딸, 회사, 목장, 목장, 부목자, 목원 중 무엇이에요? 떠나지 아니할 자리! 목숨 걸고!
2. 자, 여러분의 관계는 경배자, 동반자, 관리자의 경계를 잘 지키고 있습니까?
(기도제목)
지윤
매일 큐티 가운데 하루만 사는 지혜를 내려 주시고, 보내주신 처소에서 사명 감당 할 영육의 은총과 약속의 말씀으로 기쁘게 한주 보내도록
다님
근육, 신경, 세포들이 주님의 창조질서 원칙에 따라 바르게 순환하여 속히 회복되고, 아웃리치와 사명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영육의 강건함을 허락해 주시도록
세정
세례의 감격에서 그치지 않고, 말씀/예배/목장을 목숨 걸고 지키고, 매일마다 첫 사랑의 감격을 상기하여 참 평강 누리는 인생으로 재-건축하시도록
은우
요단의 죽음을 넘어 귀국하여, 10년동안 많은 지체들과 사역자들이 나의 구원 위해 눈물 흘렸다는 것을 기억하고, 거침없이 구원의 간증 전할 수 있는 명철을 허락해 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