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04 주일설교
열왕기하 2:1-8,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김양재 목사님
미국애 찬송작가인 밀리암은 어느 날 한 수련회에서 찬양 인도를 하다가, 저녁 집회 때마다 독창을 하는 청년이 너무 노래를 잘해서 물어봤다. 근데 알고보니 불신자였다.
우리는 처음부터 주님께서 멀리 떠난 채로 태어 난다. 은혜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아야 하는데 그것이 참 쉽지 않고 무겁고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떠나지 않으려면
1. 낮아지고 낮아져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 열왕기하 2장 1절
엘리야가 부르심에 순종하여 달려온 길을 마무리하게 된다. 회오리바람을 타고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신다. 병거 타고 하늘에 올라간 게 아니라 회오리 바람을 타고 올라간다. 아하시야는 높은 자리에 오르려 했지만 난간에서 떨어져 병상에서 마지막을 보냈다. 그러나 엘리야는 내려가고 내려갔더니 하나님이 회오리 바람으로 한없이 높여주신다.
사람의 도움도 필요하지만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일어난 일이다. 사명을 받은 후 엘리야의 삶이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다. 아합에게 처음으로 말씀을 전하자마자 갖가지 공격을 받고 도망치게 된다. 세상의 박해가 심했다. 아합에게 다시 나아가 850명의 선지자를 박살내고 다시 도망가게 되고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하게 된다. 이렇게 고난 바가지인 엘리야를 하늘로 올려주신다.
창세기 5장에서 에녹 역시 하늘로 올림을 받는다. 약속의 땅을 떠난 가인의 후예들이 너무 화려하게 살아간다. 육축의 조상, 기계문명의 조상, 음악의 조상 등이 다 가인의 후예에서 나온다. 화려하고 풍악을 울리고 주색에 취해 칼의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면 이들이 너무 부럽다. 이런 때에 믿음으로 자녀를 길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이토록 낮아지고 낮아지는 일은 하늘로 들려올라갈 만큼 귀한 일이다.
믿음의 집안은 심플하다. 항상 밑동잘린 나무 신세임을 알고 별 인생 없음을 알고 사명을 감당한다. 엘리야 정도의 빡쎈 고난과, 창세기 5장의 에녹의 고난이 비중이 같다고 하신다. 이세벨과 아합이 아무리 힘들게 해도 엘리야에게는 남이다. 에녹의 자녀는 나 자신이다. 에녹의 고난은 언급이 없다. 자녀 양육하는 것이 너무도 어렵다. 자녀들에게도 본이 되면서 일도 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악한 시대에 자녀 낳고 300년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만해도 엘리야에 비견되는 고난이다.
그래서 자녀고난이 있는 분들이 조용히 사명 잘 감당하는 경우가 많다. 남의 고난 내 고난이 이렇게 차이가 난다. 엘리야하고 에녹이 비슷한 고난으로 쳐주시는 하나님.. 엘리야도 이런 고난이 있었기에 이렇게 엄청난 사역을 감당하면서도 높아지려 하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었다. 하나님의 초월적인 사역을 드러냈다. 환경이 너무 겸손하니까 입이 다물어진다. 엘리야는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라는 이름이다.
천국만 가면 되지 굳이 고난도 겪어야 되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천국가는 구원과 이 땅에서 사명 감당하는 게 둘이 아니라 하나다. 사명 없는 구원은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 사명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꼭 매인 상황에서 낮아지고 낮아지는 것이 사명의 길이다. 짧은 인생의 고난으로 이 좋은 천국을 붙잡아야 한다. 엘리야 곁에는 그 말을 알아듣고 붙어가는 엘리사 한 사람이 있다. 하나님이 붙여주셨다.
오르고 오르려 해서 떨어진 자리는?
낮아지고 낮아지니 올려진 자리는?
자녀 고난이 하늘에 올려지는 최고의 상인 줄을 믿습니까?
2. 머무르지 않아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 - 열왕기하 2장 2절
하나님은 엘리야를 통해 아하시야에게 반드시 죽으리라고 경고하신다. 결국 아하시야는 죽는다. 아무리 하나님의 일이라도 엘리야가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떠날 수 없는 이스라엘의 부패한 상황 앞에서 자신이 떠나야 함을 느낀다.
외로움은 혼자 있는 고통이다. 외로운 자는 그래서 남을 배려하지 못한다. 그러나 고독은 혼자 있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엘리야는 홀로 40키로가 넘는 길갈, 벧엘 등을 순회한다.
1).길갈의 전설에서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길갈은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고향이다. 출애굽 후 처음 진을 치고 할례를 행하게 하셨다. 역사적인 곧이지만 지금은 편한 곳이 되어 이스라엘의 악을 묵과하고 있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현재의 악에 무딘 곳에는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여기 머물라고 한다. 자신이 겪은 일을 굳이 겪게 하시 싫었다. 그래서 엘리사의 훈련보다는 그냥 머물라고 한다.
나오미도 엘리야도 그래서 위대한 것이 아니라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위대하시다. 사람은 아무도 위대하지 않고 무결하지 않다.
2).벧엘의 금송아지 맘몬신에서 머무르지 말아야 합니다.
이름 뜻 자체가 하나님의 전이다. 야곱의 영적 고향이다. 여로보암이 유다에게 반역하여 벧엘이 북이스라엘의 중심이 되었다. 전설의 길갈을 지나 황금을 섬기는 곳이 되었다. 돈이 인생의 목적이 되었다. 여기에 머물고 싶었을 것이다.
엘리사에게 여기 머물라는 것은 사명의 길을 갈지 편한 삶을 선택할지 물어보는 것이다. 십자가의 사명 감당하는 것이 잠깐 편한 삶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다. 영혼구원의 사명은 하나님의 생명만큼의 가치다.
3).여리고의 욕심에서 머무르지 말아야 한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니라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매 - 열왕기하 2장 4절
또 엘리사에게 머물라 하지만 엘리사는 절대 떠나지 않는다. 여리고는 난공불락의 성이었다. 엄청난 침묵과 함성을 지르는 것을 알려주셔서 그 성이 무너졌다. 무너진 여리고 성은 반면교사 삼아서 다시는 이곳에 성을 짓지 말라 하셨는데 아합이 말씀을 무시하고 여리고를 재건한다. 그래서 예언대로 아들들이 죽는다. 인간의 욕심의 성이 곧 여리고 성이다. 이들을 욕심에서 돌이키게 하는 것이 엘리야의 사명이고, 엘리사가 이어가야 할 사명임을 알려준다.
4). 요단의 죽음에서 머무르지 말아야 합니다.
엘리야가 또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가니라 - 열왕기하 2장 6절
선지자의 제자 오십 명이 가서 멀리 서서 바라보매 그 두 사람이 요단 가에 서 있더니 - 열왕기하 2장 7절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 열왕기하 2장 8절
여리고는 요단에서 아주 가까워서 엘리야, 엘리사는 요단 가에 선다. 홍해를 건넌 때가 떠오른다. 요단을 건너지 않고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자가 없다. 이것은 출애굽 2세대에게 보여주신 사랑이다.
내가 건너야 할 요단강 건너편의 임금님이 내 편임을 알아야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다. 그래야 안심하고 갈 수 있다. 죽어지는 한계를 맛보지 않고는 전도, 양육, 설교 등을 확신있게 할 수가 없다. 죽음같은 고난 없이 신앙생활하는 것이 좋은 게 아니다. 절대 믿음 못지킨다. 넘어서야 한다. 죽음을 넘어서야 한다. 가난과 암과 영적 무시 등등 모두 겪어내야 한다.
길갈의 전설에서 그 정도면 됐습니까?
벧엘의 금송아지 신앙 가지고 십일조와 예배는 안 빠지지만 여리고의 사명은 감당못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요단의 죽음을 넘어서기가 어렵습니까?
여러분은 네 곳 중에서 지금 어디를 못 넘어서고 있습니까?
3. 여전한 방식으로 요단의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이르되 나도 또한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하니라 - 열왕기하 2장 3절
여리고에 있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엘리사에게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데려가실 줄을 아시나이까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 열왕기하 2장 5절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더라 - 열왕기하 2장 8절
길갈에서 서쪽으로 20키로 가면 벧엘이 나온다. 벧엘에는 선지자의 제자들이 있다. 엘리야가 이 기막힌 상황에도 7000명이 남는다. 이 제자들은 엘리야가 곧 하늘로 올라갈 것을 알았다. 근데 이것을 엘리사에게 묻는다. 엘리사가 너무도 변함없이 엘리야를 따르기 때문이다. 곧 하늘로 갈 사람을 여전한 방식으로 섬기는 엘리사를 보라.
엘리사가 나도 안다고 하고 잠잠하라고, 호들갑떨지 말라고 한다. 하나님이 언제, 어떻게 데려가시든 맡겨주신 자리에서 사명 감당할 뿐이라고 하신다. 제자들은 아직 내일일을 염려하지만, 엘리사는 오늘 주어진 하루에 충실하다. 엘리야의 거듭된 시험과 제자들의 반복되는 물음에도 엘리사는 떠나지 않는다. 점점 더 무거운 사명을 확인했는데도 엘리사는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엘리야가 숱한 사역을 했다. 비를 오게도, 그치게도 했고, 그 무서운 아합과 아하시야에게도 외쳤다. 그러나 마지막에 남은 사람은 엘리사 한 사람이다. 나머지 제자들은 멀리서 쳐다보고 있다. 우리가 이것을 알고 걸어가야 한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엘리야는 가난하고 엘리사는 부자였다.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 함께 사역을 이루었다.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가 되었기에 가능했다. 이 세상 어떤 관계도 예수님 안에서만 하나가 되는 것이다.
탈무드에 따르면 주변에 있어서는 절대 안 될 사람이 화내는 사람이라고 한다. 쉽게 화내고 쉽게 화를 풀지도 않는 자는 사악하다고 한다. 둘째로는 교만한 사람이다. 자신의 모든 일이 대단하다고 생각하기에 항상 명령조로 말한다. 이런 사람은 가만히 보면 사방이 구멍 투성이고 오직 자기만 모른다. 세번째는 남을 헐뜯는 사람이다. 마음으로 죄짓게 만드는 자는 사람을 죽이는 자보다 더 나쁘다고 하신다. 얼마나 말조심을 해야하는지 모른다. 네번쨰는 필요할 때만 찾는 자다. 친구가 없는 자는 오른팔 없는 왼팔같다고 한다. 또 함께 다니는 친구를 보라고 한다.
근데 어떻게 화를 안 내나. 어떻게 이렇게 사나. 이것은 오직 예수가 중심에 있어야 가능하다. 유대인들을 생각해보면 이렇게 대단한 율법으로 기가막히게 사람들을 통찰하지만 아직 예수를 안 믿는다. 예수님을 모르면 관계를 모른다. Think 양육 1과에 <보시기에 좋았더라> 책이 있다.
- 인간은 세 가지 관계에 놓여있다. 하나님은 경배하는 관계, 사람과는 동반하는 관계, 자연과는 관리하는 관계. 자식을 키우면서 배반을 당하며 훈련을 받아야 한다. 자식을 키우는 것이 오죽하면 하늘로 들려 올려지는 일이겠는가. 하나님께 제대로 예배를 드리고 있으면 관계를 분별하게 된다.
우리 앞에는 큰 강과 같은 문제들이 있다. 이 인구절벽에 결혼을 안 하고 반려견이 1500년이 넘어가고 있다.
우린 죄인이다. 연약하다. 우리 힘으로는 절대로 믿음의 자리를 지킬 수 없다. 사명없이 자리를 지키는 시늉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돈, 체면 등 헛된 것이다. 시늉이 얼마나 수고스러운가. 거기에는 생명이 없다. 거짓으로 만난 부부는 생명이 없다. 불안하고 두렵다.
주님이 내게 주신 말씀을 믿는 믿음이 오직 우리를 생명으로 이끈다. 말씀에 복종하여 살아낼 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 그리고 내 작은 사랑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도 각자 세워주신 자리에서 엘리야가 겉옷을 치듯이, 그 물같은 상황에서 날마다 말씀보고 회개하며 자기 역할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공동체에서 진짜 동료를 찾아야 한다. 공동체에서 물이 갈라지고 마른 땅 위로 가게 될 것이다.
예수 안에서가 아니면 진짜 동료가 될 수 없다.
주님이 내게 맡기신 목숨걸고 떠나지 않아야 하는 자리는 무엇일까요?
아내, 남편, 자녀, 아들, 딸, 회사, 목장, 목자, 부목자 중 무엇일까요?
경배자, 동반자, 관리자의 경계를 잘 지키고 있습니까?
이 세상이 자꾸만 생명을 파괴하는 길로 나아간다. 온 나라가 창조질서를 어긴다. 동반자 관리자 경배자의 순서를 자꾸만 바꾼다. 자녀고 부모고 연약한 자고 모두 동반자로 여겨야 한다.
===========================================================================================================
목장보고서
목장 참석: 한결, 기상, 준호, 규빈, 현우, 지호, 승윤, 병주
승윤이랑 같은 재수학원 다니는 병주라는 친구가 우리들교회에 처음 왔습니다!
Q.오늘 들린 말씀은?
-기상: 좋아하는 여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좋아하는 여자도 결국엔 사람이고 동반자로 대해야 하는데, 좋아하는 여자를 경배자로 대하는 모습이 있는것 같다.
>>목자 says: 영-혼-육 순의 지배질서가 세워져야한다.
-지호: 중간에 목사님이 잠깨라고 하신 말씀이 들렸다.
-현우: 동생이 동반자인데, 동생을 강아지만도 못하게 생각하는거같다. 저번에는 동생에게 너무 화가나서 동생 얼굴에 콜라를 확 뿌렸다. (동생이 집 어지럽히고 말 안들어서 화났다)
>>목자 says: 가족에게 순종하는게 그사람에게 순종하는게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는거다
-병주: 여자친구 교회에서 빨리 사귀고 결혼해서 애 낳아야 한다는 얘기가 좋았다. 빨리 교회에서 여자친구 사귀고 싶다.
승윤이랑 같은 재수학원 다니는 새친구 병주가 와서 각자 자기소개시간 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