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1 주일설교 <함께 내려가라>본문 열왕기하 1:7-18
- 김양재 담임 목사님
열왕기상 가장 큰 죄는 아합이 이세벨과 불신결혼한 것입니다. 아달리아라는 무서운 작품을 만들어 내어 시집을 보냅니다. 성경에 손을 얹고 시작한 미국에서 캐톨릭을 믿는다는 케네디가는 마피아 5만명과 연관된 밀주를 사업하여 돈을 벌어 백만장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케네디의 엄마 로즈마리 여사는 위대한 엄마로 소문이 나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주제를 써두고 저녁마다 토론했다고 합니다. 2등은 필요없고 1등해야 한다는게 가훈이니 네 아들 모두를 하버드에 보냈습니다. 이어지는 그들의 삶을 보면 그들은 함께 내려가는 것은 배우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 가정의 치명적인 실패를 가져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만 좋으니 반대로 내려가는 것은 싫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높은 자리에서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런데 혼자 내려가면 외로우니 함께 내려가라 하십니다. 그 이유는
1. 말씀사역 때문입니다.
(7절) 엘리야는 난간에서 떨어진 아하시야를 위로하기보다 반드시 죽으리라 합니다. 아하시야는 너희에게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냐 찾습니다. 큐티모임을 한다고 하면 방법론을 바라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도 강의는 가능하지만 제가 강의하고자 함은 성경 말씀 하나하나를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야곱 한 사람을 토씨 하나도 안두고 읽게 되니 인간 전반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학적이지 못하다 할 수 있으나 제가 전한 말을 듣고 성경을 보고자 하게 된다면 무식하다 소리를 들어도 괜찮습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 입니다. 성경을 읽고 내게 주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 큐티인데 매일 말씀을 읽으니 다른 사람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게 됩니다.
말씀 사역이라는게 무엇일까요? 자기가 이혼을 안하니 이혼을 말립니다. 그런데 어떤 유명한 목사님께서 우리 인간은 감정이 있으니 일부러 다스릴 수 없고 일부러 싸우면서 배우자랑 살 수 없다고 인생이 짧다고 하며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목자모임에서 나눈 것인데 피해자 가해자 상관없이 해석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아내가 계속 빚을 져서 계속 갚아주니 주변에선 다 이혼하라고 했는데, 2007년에 재결합 하려고 우리들교회에 왔는데 또 아내가 빚을 져서 제게 메일을 보내고 현재는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아하시야는 지금 바른 말 들을 기회를 놓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교회에 너무 많습니다. 십자가 지라는 말을 삶에서는 전혀 지고 있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결혼하면 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서로만 보면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9절) 아하시야에게는 말을 듣는 것이 너무 급한 때입니다. 사자들의 말만 듣고도 알아들은 사람은 아하시야뿐입니다. 알면서도 체포하려고 하니 누가 반드시 죽으리라의 메세지를 전할 수 있겠습니까. 아하시야 밑에 있으면서 충성하는 것이 충신입니까? 내가 누구에게 충성하는지에 따라 충신인지 간신인지 달라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알세붑을 만나러 가던 신하들을 만나고자 엘리야는 올라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군사들은 엘리야를 잡으러 산으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엘리야가 있는 자리는 기도의 자리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교만의 산꼭대기입니다. 아하시야의 군대는 이를 모릅니다. 아하시야는 자기가 내려와야 함을 모릅니다. 누구여도 내려와야 합니다. 하나님을 끌어내리려는 교만압니다. 내가 말씀 적용하기 싫어하면서 남에게 적용하라고 하는 사람이 교만한 사람입니다. 내가 읽고 듣는 말씀은 순종해야 할 말씀입니다. 주님과 함께 내려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왕에게 이런 좋은 파트너가 없습니다. 열왕기하는 왕들이 나오나 선지자가 주인공입니다. 그래서 주제도 선지자의 말을 왕들이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구약을 대표하는 선지자인 엘리야를 전혀 친구로도 스승으로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아하시야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목숨 걸고 일을 해야 합니다. 들어야 할 말이 반드시 죽으리라인 것입니다. 물어야 할 하나님께 묻지 않고 신접한 자만 찾다가 죽은 자가 있습니다. 역대상의 사울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미워해서 죽인 것도 아니고, 전쟁을 많이 해서 죽인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 열심히 묻고 다녔으나 결국 여호와께 묻지 않았기에 죽었다는 것입니다. 바람피고 살인한 것은 다윗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날마다 해석이 되지 않지만 사울이냐 다윗이냐 물으면 바람 안핀것도 사울입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경건주의가 참 무섭습니다.
* 독일과 유대를 비교하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성도들 / 구원에 관한 말씀으로 들어야 함
#오늘 어떤 말씀을 주셨습니까?
#나는 누구의 말을 듣고, 누구를 죽이러 가는 자입니까?
#명령대로 따라야 할 하나님의 사람과 따르지 말아야 할 아하시야를 잘 분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충신입니까, 간신입니까?
#남이 아니고, 내가 내려가는 적용이 말씀사역이라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2. 맹종이 아니고 순종입니다.
(9-12절) 이세벨도 그렇고 마지막까지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심판을 받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믿지 않으니 야고보와 요한이 분을 내며 불심판을 내리자 합니다. 이에 예수님이 꾸중하십니다. 하나님의 불은 따뜻한 불이고 비추이는 불입니다. 무서워보여도 살아나는 불입니다. 구원과 심판의 양면의 불입니다. 한쪽에서 구원이 한쪽에서 심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뜻은 구원때문입니다. 엘리야가 말한대로 불이 내려와 신하들을 사릅니다. 50명씩 두번을 사릅니다. 바알선지자와 아세라선지자를 제압함을 보았음에도 또 불을 내려 군대 50명이 태워지는데 그럼에도 굴복하기를 거부합니다. 부하 입장에서는 왕이 나쁘지만, 맹종하여 죽음을 자처합니다. 신하들은 하나님보다 왕이 더 무서웠기에 말을 전하고 죽습니다. 맹종의 끝은 죽음입니다. 잠시 뒤의 일을 모르고 맹종하다가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다 뜻이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잔인해 보일 수 있습니다. 왕의 명령인데 왜 죽이나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구속사를 모르면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의 원칙은 어떤 사람의 악에 대하여 두고 보시다 계속 악을 행할 상태라면 그냥 데려가십니다. 땅에 두고 악을 행하기만 할 것이라면 그냥 데려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곁에 남아있는 악을 행하는 자들은 이유가 있습니다. 두번이나 죽었으면 생각해봐야 하는데 또 똑같은 명령을 내립니다.
이번의 오십부장은 다른 선택을 합니다. 셋째 오십부장은 엘리야를 알아봅니다. 죽기 직전이라고 다 무릎이 꿇어지는 것입니다. 이 한사람 때문에 다른 오십인도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의 불로 죽임을 당할수도 아하시야에 의해 죽임을 당할수도 있습니다. 이런 절대절명의 순간에 적용이 나오게 됩니다. 이 셋째 오십부장 덕분에 한쪽에서는 심판 사역이 이루어지고 한쪽에서는 오십인을 살리는 사역이 이루어집니다. 나 한사람의 적용으로 가정이, 세계가 살아남을 알아야 합니다. 이 오십부장의 적용으로 수하 50명은 살아나게 됩니다. 내가 무릎을 꿇을때 내 지체들을 살리게 됩니다.
(15절) 함께 내려가라 하신지라 엘리야가 함께 내려갑니다. 때에 따라 말씀에 인도함을 받는 것이 중요한데 엘리야가 묻습니다. 엘리야도 오십부장도 목숨을 내놓으니 두려워하지말고 내려가라 하십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가 저 사람이 내편인가 아닌가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자꾸 묻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물으면 네편이 아니라 할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 왜 자꾸 묻나 싶습니다. 우리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도 물으면 사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여러분은 윗사람의 지시를 무조건 맹종합니까, 기뻐서 순종합니까?
#오늘 누구 앞에 가서 생명을 구하며 무릎을 꿇어야 할까요?
#나와 내 가정, 주변 사람들까지 살리는 말씀 적용이 내 삶에도 있습니까?
3. 기회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16-18절) 말씀대로 아하시야가 죽고 여호람이 왕이 됩니다.
아하시야는 4번만에 엘리야를 자기 군대와 함께 만납니다. 하지만 아하시야를 만나러 와서 아하시야가 한 말이나 행동은 아무것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마치 밀랍인형처럼 서있는지 말입니다. 그저 그 말씀대로 죽었다고만 나옵니다. 최소한 3번의 반드시 너를 죽이리라의 심판의 말씀 앞에 무릎 꿇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들을 낮은 자리로 내려갈 기회가 분명 있었으나 이 기회를 다 놓치게 됩니다. 이건 경고를 듣는 시간이 아닌 심판의 시간이고 심판 집행의 시작입니다. 때가 늦었습니다. 난간에서 떨어지도록 두심 또한 하나님의 결정이 있으십니다. 우리가 택자여도 실수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때마다 보호해주셔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하시야가 끝까지 거부하고 반역하니 형벌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가치는 영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영생이 없다면 이 세상은 그저 무덤입니다. 우리는 당장 어떤 일을 당할지 모릅니다. 회개할 것은 오늘 하고 적용할 것은 오늘 해야 합니다. 오늘 적용하지 않으면 후회할지 모릅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기에 심판 전 하나 둘 셋 하십니다. 그런데도 안들으니 둘의 반, 둘의 반에 반에 반 하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어도 하나님보다 높은 자리에 갈 수 없고 아무리 낮은 자리에 가도 예수님의 십자가로 갈 수 없습니다. 높은데서 낮은데로 간 그 적용으로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함께 내려가라 하십니다. 주님과 함께 지체와 함께 내려가라 하십니다. 마지막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고 하십니다. 말씀을 듣는 오늘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습니다.
* 캐톨릭이었던 케네디 가문이 대통령이 되니 인권을 부르짖으며 성경 신앙을 없애고 말씀을 없앴습니다. 그로 인해 저주를 받습니다. 몇사람이 죽은지 모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렇게 예수를 부인하며 살아가는 그들을 미국 사람들이 존경했습니다. 여전히 케네디와 그 부인은 몇번이나 결혼했으나 그런 사람을 국모라 칭하며 같이 묻혀있는데 한두사람 죽어도 몰라서 그렇게 많은 죽음이 있는데 여전히 사람들이 찾아갑니다. 그렇지만 그 가문에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이 여전히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갖춘 집이 예수 믿기가 이렇게나 힘듭니다. 아들 넷을 다 하버드를 보낸 로즈마리 여사는 대단하다는 칭호를 받으나 하나님이 없다면 그 끝은 죽음밖에 없습니다. 하버드와는 비교할 수 없는 함께 내려가기가 될 줄 믿습니다.
#너무 강하다고 또는 너무 연약하다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가족, 이웃은 누구입니까?
#말씀대로 죽는 인생이 아니라, 말씀대로 사는 인생이 되기 위해 내가 감당해야 할 엘리야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1. 한나
- 내 주제를 알고 이직과 면접의 과정에서 겸손하게, 세상친구들 말이 아닌 말씀으로 물어갈 수 있도록
- 남자친구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은데 경계 잘 지킬 수 있도록
- 불신 친구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 말에 지혜를 주시기를
- 남자친구가 목장에 잘 붙어갈 수 있기를
- 남동생의 구원과 부모님과 관계 회복 되기를
2. 소진
- 아픈걸 인정하고 잘 치료받으며 가기를
- 회사오기 너무 싫은데 감해주시기를
-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느라 내 감정을 돌보지 않는데, 그 안의 악함을 깨닫고 나를 먼저 돌볼 수 있기를
- 남자친구가 공동체에 사모함이 생기고, 세례 받을 수 있기를
- 부모님이 목장나가기를 버거워하시는데 공동체를 기쁘게 느끼실 수 있기를
3.해리
-약 원래대로 추가 처방 받았는데도 아직 감정이 널뛰는데.. 요동치지 않도록
-엄마랑 아빠에게 화내지 않고 내 죄를 보도록
-공동체에 잘 붙어가도록
4. 유라
- 결혼 준비도 내 생각, 내 힘으로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 날마다 기도로 물으며 묵상하며 할 수 있도록
-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떠나게 되서 혼자남는 상황이 또 생겼는데 (6-7년전?처럼)
낙심하고 우울해하기 보다 잘 해석하고 멘탈 잘 챙길 수 있도록
- 엄마랑 관련된 여러 문제들을 지혜롭게 잘 직면하고 주님께 맡기고 갈 수 있도록
5. 지민
- 아빠가 결혼식에 이모들 초대하지 않으면 안되냐는 말도안되는 이야기를 하셔서.. ㅠㅠ 어찌해야할지 넘 고민인데 답 주시길
- 아빠와의 관계에서의 해석이 잘 안되는데.. (그냥 아빠가 너무 밉고 싫은가봐요) 너그러운 맘 가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