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복산의 상급
마태복음 5:10-12
김양재 목사님
어떤 상을 받고 싶습니까?
마지막 열덟번째 최고의 상급은
1. 박해로 나타납니다.
팔복은 서로 구별되지만 또 구분되어 별개인 것처럼 되어있지는 않다. 가난으로 출발하여 박해로 끝나는데 상급은 천국과 같다. 의를 위하여 박해 받은자는 복이 있다고 구절구절 강조하여 말씀하시는데 최고의 복이라서 그렇다.
이것이 최고의 복인 이유가 무얼까? 밑동 짤린 나무와 같은 상황에서 박해를 받으면 내가 정말 밑동 짤린 나무라는 걸 알게 된다. 세상에서는 칭찬만 받으면 어떤 의미에서는 저주이다. 그런 칭찬 받는 세상에서 떠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의 가치관을 깨는것이 복음이다. 화평케 하는 복을 받기 시작하면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중재자가 되면 박해가 시작된다. 박해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화평은 자체가 십자가의 피이기에 좁은길이다. 그러나 그 길이 복이라는 것이 팔복의 클라이막스다.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지금 막 쫓김을 당한다 도망자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박해하시는 것은 우리는 그릇행하여 각기 다 다른길로 가는 양 같은 사람이라 우리로 몰아 넣으시기 위함이다. 팔복까지 겨우겨우 왔는데 너무 박해가 힘들다고 구원열차에서 내릴까봐 우리를 몰아가신다.
이기는 자는 사망의 의를 받지 않는다고 하는데 사명자의 상급이라는 개념으로, 양은 제각각 이어도 주님이 몰아가시기에 우리는 이미 이긴자이다. 의를 위한 박해가 된다는 것이다. 주님이 나를 몰아가신다. 이게 복이다.
행복과 정반대인 고난과 박해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 얼마나 싫으면 남의 고난과 박해의 이야기도 듣기 싫어한다. 사건이 오면 하나님 계시면 나한테 어떻게 이래? 한다. 결국은 사건도 나의 유익이 빼앗길까 두려워서이다. 그러나 너무나 억울한 일을 겪으며 힘들어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님을 만났다면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먹고살게 있다면 쫓기지 안는다. 주님은 쫓기라고 주셨는데 죄인인것을 알지 못한다면 무서운 일이다. 구원을 위한 박해는 의를 위한 박해이고 세상적 기준의 박해가 아니다. 주님의 의는 100% 옳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상급이다.
11절에서는 예수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는자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상은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한다. 특별히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다고 한다. 천국이 임했다는 것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으면 이 땅에서는 거 할 곳이 없지만 요한복음에서 주님이 하늘에서는 거 할 곳이 많고 다 내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이 내게 미치고 나의 것이 된다는 것이다. 늘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으로 하늘나라를 설명 할 수 있어야한다.
직장과 집에서 성경만 봐 미쳤군 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믿음 때문에 듣는 박해라면 종달새의 지저귐처럼 들리지만 내가 할 일을 하지 않고 받는 박해라면 당연히 들어야 할 말이기에 어떠한 소리를 듣더라도 화를 내면 안된다. 항상 들어야 할 소리로 듣는다면 화가 나지 않는다. 우리는 박해를 받기 싫어하고 너무 기복적이다.
적용
여러분의 박해는 천국이 임하는 박해입니까?
옳음을 증명하려고 참는 박해입니까?
아직 구원의 사건으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는 고난은 무엇입니까?
2. 그들만이 아닌 내게도 주시는 상급입니다.
10절까지는 팔복을 받을 사람을 그들이라고 하셨는데 11절부터는 산상수훈의 청중인 너희가 그들이라며 그들이 누구인지 특정해주시는 말씀을 하신다. 바로 너희가 상급을 받을 사람이라고 하신다.
그동안 삶의 목적은 행복이 아닌 거룩이라는 것과 구속사를 이야기하며 왔다. 그런데 듣기만하는 것에서 멈춰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왜 그럴까? 주님의 말씀을 내게 주시는 것이 아닌 그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이 친절히 그들이 바로 너희라고 하신다. 주님과 인격적으로 만난 모두에게 팔복의 말씀을 주신다는 것이다. 의의를 위하여 박해받을 때 구체적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두를 박해한다고 한다. 내 가족 내 친구 나를 직접 간접적으로 하는 나를 괴롭게 하는 비난을 할때는 매우 괴롭다. 욕이나 박해나 비난에 너무나 민감하다. 주님 만나 자유로와야 하는데 자존감은 낮고 자존심만 높아서 피해의식이 발동한다. 가장 힘든것은 적극적으로 주를 위해 순종하며 수고하다가 받는 고난이 가장 힘들다. 힘들지만 순종했는데 온갖 비난을 받는다면 어떻겠는가? 지금까지 따르면서 했던 순종이 과거의 한과 억울함까지 더해 어마어마한 생색으로 올라온다. 안그럴 사람이 어딨겠는가?
구속사의 주인공은 유다이다. 유다가 며느리가 나보다 옳도다 했다. 무엇이 나보다 옳는가? 자신은 복수심으로 요셉팔고 공동체를 떠나 결혼하고 아들 둘을 낳았는데 둘다 악하다고 했다. 당시 시대상으로 아들이 죽으면 형제에게 보내 대를 잊게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기 죄가 회개가 되지 않으니 일에 미치고 창기랑 놀아나다 며느리와 동침했다. 죽음으로 치닫고 있었다. 며느리가 이 집안의 예수씨를 위한 그 수치스러운 적용을 했는데 불에 태워죽이라니 여전히 못 알아 듣는 것이다. 유다는 요셉을 시기하고 팔았지만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인정하지 않았다. 며느리는 죽을 각오로 적용했는데 말이다. 구원을 위한 십자가와 지혜와 타이밍이었고 오픈이었다. 죄에 대한 고난이었는데 알지못하니 여기까지 왔다. 그제서야 유다가 말씀이 들려 죄가 보였다. 이것이 나보다 옳도다 하며 의롭다하고 돌이켰다. 유다가 인정한 후 다말도 아들 베레스도 온갖소리를 들으며 살았을 것이다. 모든 악한 말을 다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묵묵히 들어냈다. 그러나 유다와 다말은 둘다 예수님의 계보에 올라갔다. 그런 다말을 보고도 유다는 요셉을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회개를 해도 못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못하는 그 한가지 때문에 산다. 그래서 그 한 가지 때문에 수 없이 낮아지며 살았다. 유다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다말이 나보다 옳다는 인정 때문이었다. 예수님 때문에 십자가 짐 같은 조롱을 받아냈다. 이것이 바로 구속사이다. 때가 될 때까지 다물어야 할 때가 있다. 유다가 보기에 야곱은 요셉을 너무 사랑하기에 받아낼 수 없음이 보였다. 유다처럼 인정받지 못하는 것 이것이 팔복의 클라이막스라는 것이다. 말씀이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대단한 것이다. 나에게 주신 음성이 들려야한다. 무시받는 환경은 의를 위해 박해받는 환경이 되는 것이다.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박해받는 집사님의 딸이 목사에게 성추행 당한 이야기
의를 위한 박해는 상당히 구체적으로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일이 온다. 옳고 그름으로만 생각할 수가 없다. 우리 중에도 이런일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어떤 경우에도 내가 보여야할 구원의 핵심은 내 죄를 보는 것이다. 나보다 당신이 옳도다가 나오는 것이다. 그럴수록 객관적으로 내 자신을 보고 가야합니다. 누구를 탓하면 해결이 되지 않는다. 세상은 너무나 악하다. 교회도 교회라고 해서 다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천차만별이다. 영적으로 깨어있어야한다. 지상의 공동체 중에서 사람들이 사는 이곳에서 완벽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럴수록 내자리에서 철저히 해야할 일이 있는 것이다. 구원 때문에 생각하는 것 비둘기 같이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사람은 100% 악하고 음란하다. 이 사건으로 해석을 잘해서 주님을 만나게 되면 일생을 이 사건으로 구원을 받고 천국을 가게 되는 것이다. 인생이 별인생이 없다. 누구 탓을 하지 않는 것이 천국을 사는 것이다. 어떻게 나한테 이런일이 라고 하지 않는다. 지금 듣는 욕과 박해에 속지말고 의로 생각을 바꿔야한다. 어떻게 나한테 그럴수있냐고 하는 사람에게는 사과 한번이 어렵다.
적용
욕, 박해, 거짓된 악한 말로 비방 받으며 내가 복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믿어집니까?
내가 받은 박해가 전도의 열매로 이어지고 있습니까?
팔복산 산행길에서 어느 구간을 지나고 있습니까?
오르막길 입니까, 내리막길 입니까?
힘들어도 오르막길을 오르다 천국에 입성하길 바란다.
3. 지금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팔복 설교의 결론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한다. 육체적으로 고문하는 것보다 나를 박해할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힘들다. 용서는 하지만 사랑은 못하고 참을 수는 있지만 용서는 못한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늘은 큰 상 때문이다. 하늘의 큰 상은 무엇인가? 결국 영혼의 구원을 받는 것이다. 손에 잡히지 않고 멀리 있는 것 같아 답답하지만 구원과 천국은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과 함께하면 저절로 받는다는 것 이다. 하나님 자체가 가장 큰 상급이라는 것이다. 구원, 천국, 하나님 자체를 기뻐하라는 것이다. 환경은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그 모든 많은 고난을 통과하신다. 더 아파하신다. 우리를 꼬옥 안고 함께 가신다. 우리는 살면서 하는 노력에 걸맞는 상을 받는가? 우리는 살아갈수록 그렇지 않다는걸 안다. 그러니 우리는 택자로서 전적인 주님의 은혜로 서있는 것이고 살아간다. 결국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첫째로 교회 공동체 안에 거하는 것, 둘째로 주님의 말씀이 우리와 함께 있는 것 이다. 말씀과 공동체가 주와 함께하는 것이다. 이것에 기뻐하며 즐거워해야한다. 우리는 해석을 해야한다. 화내는 것은 기복산에 있기에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적용
박해받으며 기뻐하고 즐거워합니까?
하나님 자체가 상급입니까?
하나님이 주신다며 환경이 상급입니까?
인생은 힘든 것이다. 맘대로 세상에서 사는 것도 힘들다. 사명 감당하는 것도 힘든 것이다. 기왕이면 그래도 승산이 있는 것으로 힘들어야 한다.
우리들 교회의 적용은 달라야 한다.
- 학폭사건을 겪은 딸을 둔 집사님이 대표 기도때 오픈한 이야기 (가해자 학생의 부모를 전도했고, 아이는 부모가 나의 교회를 빼앗아갔다며 교회를 떠났다.)
말씀대로 문제가 해석되고 이해되어야한다. 구원 때문에 박해 받는 것이 팔복산의 상급임을 알아야한다. 환경이 아니다. 천국은 그들뿐만이 아니라 내게도 주시는 상급이다. 지금 기뻐하고 즐거워해야한다.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다.
기도제목
박가영
1. 박해의 시간들 속 내 안에 죄성 먼저보며 지으신그대로로 회복시켜가실 것을 믿고 가는 한주되길
2. 믿지않는 가족과의 시간 잘 섬기고 주님전할 타이밍 보여주시길
3. 면역관리 및 퇴근 후 시간 활용 잘하도록
4. 말씀 기도에 우선두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그 덕에 새힘 얻는 목장되기를
5. 가족 구원과 만남의 축복 위해
6. 전쟁 쿠데타 기근의 열방회복위해, 악법 세워지지않고, 이 나라 불쌍히여겨주시길
정세린
1. 유치원에서 나름 붙어가는 박해 속에서 박해를 묵상하기보다 내 모습 보기를
2. 컨디션 조절 비염이 계속 안 나서 빨리 회복되기를
3. 오픈 클래스 준비 차근 차근 스트레스 받지 않고 하기를
4. 프랑스 여행과 아웃리치 중 기도해보고 있습니다
5. 말씀 잘 보고 내 모습 보는 목장 되게 하소서
6. 김양재 목사님 건강하세요!!!!
이미선
1. 매일 말씀으로 박해가 큰 상급이라는 것을 믿고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질 수 있도록
2.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긴 오해와 불신과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쉬는 동안 주님과의 교제와 친밀함과 말씀으로 해석 받고 해결되도록
3. 목장식구들의 건강을 위해
4. 우리나라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책임지고 희생하는 지도자가 준비되고 세워지기를
5. 차별금지법 등의 악법이 통과되지않고 태아생명보호법이 제정되도록, 교육개정안이 폐기되도록
6. 김양재목사님의 영적 육적 강건함과 사역에 기름부어주시고, 부교역자님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로 함께해주시길
오지은
1. 박해로 가장한 최고의 축복인 팔복의 상급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말씀이 있는 자리고 나를 불러주심에 감사가 먼저 나올 수 있도록
2. 높은 기준과 잘하고자 하는 욕심을 내려놓고 나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지하며 매일 말씀으로 지혜를 구하는 내가 되기를
3. 엄마 아빠의 건강을 지켜주시고 한 말씀 들으며 가는 축복 받은 가정으로서 감사와 내 죄 보는 것이 우선순위인 우리 가족이 될 수 있도록
4. 신교제 신결혼을 위한 만남의 축복을 허락해 주시길
5. 이번 목회자 세미나에 초청한 중화동교회의 송광운 목사님과 박효순 사모님 은혜 많이 받으시고 큐티와 구속사로 교인분들에게 받으신 그 은혜 또 흘려보내주실 수 있기를
6. 우리나라의 지도자들에게 말씀이 들리는 그 한 사람을 허락해 주시고 차별금지법 등 악법이 통과되지 않고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는 우리나라가 될 수 있도록
7. 김양재 목사님의 영육간의 강건하심과 목사님의 사역 걸음걸음 하나님 함께해 주시고 동역자 분들에게도 동일한 은혜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