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30 주일설교
마태복음 5:10-12,팔복산의 상급,김양재 목사님
마지막 8번째 복이다. 최고의 상급이다.
1. 박해로 나타난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 마태복음 5장 10절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 마태복음 5장 11절
팔복은 서로 구별되지만 또한 서로를 포함하며 연결되어 있다. 가난에서 출발해서 박해로 끝나는데 천국을 선물로 받는다. 팔복은 복의 개념이 완전히 바꿔버리는 되는 개념이다. 상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생에서 박해를 받으면 밑동이 잘렸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이 땅에서 소망을 버리는 것이 상이다. 세상에서 칭찬만 받으면 그것은 저주다. 세상에서 칭찬을 받지 못한 것이 정말 사명 감당하는 데 도움이 된다.
세상의 가치관을 깨는 것이 복음이다. 화평케하는 복을 받으면 중재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당연히 박해가 온다. 누가 박해를 받고 싶겠는가. 그러나 박해를 즐거이 받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박해를 받은 자는 완료분사수동형으로 이미 시작된 박해가 끝나지 않고 지금까지도 박해를 받고 있는 자라는 뜻이다. 우리는 모두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갈 길로 가는 자들이다. 마지막에 우리로 몰아가야하기 때문에 우리로 몰아가는 현상이 바로 박해다. 늑대가 포위망을 좁혀야 한다. 우리는 주의 군사가 된 자다. 뒤를 보이는 순간 죽는다. 서머나 교회보고 죽도록 충성해야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라 하셨다. 우리가 이겨서 상을 받는 게 아니다. 사명자의 상급이라는 개념이다. 전적으로 아무 공로없이 구원을 받는다. 마지막 복을 위해 목자가 양을 몰아간다. 양은 제 각각 행하지만, 목자가 몰아간다. 주님이 몰아가시니 이미 양들은 이긴 자이다. 그러니 의를 위한 박해를 잟 받아야 한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행복을 목적으로 하면 다 저주다. 남이 당한 박해 얘기도 듣기가 싫다. 남편이 나에게 줄 유익이 끊길까봐 박해를 두려워한다. 결국 자신의 유익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평소에 남편을 너무 무시하던 사람이 남편이 죽자 너무도 두려워했다. 눈이 오면 휘발유 넣으러 갈 사람, 관공서 갈 사람이 없어서 두렵다고 했다. 예수가 없으면 다 마찬가지다. 자신의 유익 때문에 두렵다. 억울한 일을 겪으며 나같은 죄인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다. 나의 실상을 알기 위해 박해가 필요하다.
나의 우상을 직면하기 위해 당하는 박해를 의를 위한 박해라고 하신다. 나의 옳음을 드러내기 위한 박해가 아니다. 100프로 옳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신 최고의 일은 구원이다. 구원을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기에 예수가 곧 의다. 10절에는 의를 위하여, 11절에는 나로 말미암아 박해라고 하셨다. 같은 말이지만 11절이 더 정확하다. 예수만이 유일한 의다.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는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 하신다. 예수님이 요한복음 14장에서 하늘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시청각으로 우리를 양육하신다. 힘들 때마다 하늘을 보면서 내 것이라고 생각하라. 모든 자연물이 천국의 메타포다. 박해를 받아야 천국이 내 것이다. 최고의 선물은 박해를 받아야 임한다.
늘 목장에서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으로 천국을 설명해야 한다. 어려운 얘기만 쓰면 안 된다. 정말 믿음 때문에 받은 박해라면 어떤 말을 들어도 기쁠 것이다. 그러나 정말 해야할 일을 안해서 듣는 박해도 있다. 둘 다 어쨌든 들어야 될 말이다. 어떤 말을 들어도 기뻐하라. 들어야 될 말이다. 화내는 자는 그가 나보다 옳도다가 안 되는 것이다.
여러분의 박해는 천국이 임하는 박해입니까? 나의 옳음을 증명하려고 참는 박해입니까?
아직 구원의 사건으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는 고난은 무엇입니까?
2. 그들만 아닌 내게도 주시는 상급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 마태복음 5장 11절
10절까지는 팔복을 받은 사람들을 그들이라고 하신다. 3인칭으로 말씀하신다. 10절까지 팔복을 설명하신 이후, 그들이 곧 너희라고 하신다. 2인칭으로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해주신다!!!!
3인칭으로 말씀하실 때는 나의 것인지 확신을 하지 못했다. 정말 팔복이 복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복 받을 마음도 없고 나랑 상관도 없다고 한다.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듣지 못하니까, 예수님이 친절하게 바로 너희라고 말씀해주신다. 주님과 그들의 관계가 곧 나와 너의 관계라는 것이다.
11절에서 박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신다. 나랑 상관 없는 사람을 박해하는 것에는 우린 관심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나,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떤가. 우리는 피해의식이 발동하면 욕 레이더가 24시간 발동한다. 비방과 욕설을 어떻게 잘 받아야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여기서도 유다가 빠질 수 없다. 구속사의 주인공이 유다다. 유다가 며느리보고 그가 나보다 옳다고 했다. 유다는 두 아들이 죽는 고난 속에서도 요셉을 팔아넘긴 죄를 회개하지 못했다. 그러니 셋째 아들까지 죽을까봐 숨기고만 있다. 죄를 감추고 창기하고 놀며 회피한다. 그런데 그 창기가 며느리였다. 유다가 얼마나 계속 악을 행하고 있는가. 말씀이 안 들리니까 하늘을 보고 나의 것이라 해야 하는데, 이 땅에서 나의 왕국을 세우고 있다. 그러니 이 땅에서 이기고 이기려 하며 모두를 도구 삼고 폭력을 행하며 왕노릇을 하려 한다. 말씀이 안 들리면 멈추지 않고 죽음으로 치닫게 된다.
유다와 달리 며느리 다말은 구원을 위해 그 수치를 감당했다. 예수씨를 위한 적용이었다. 며느리는 박해를 각오하고 예수씨를 잇고자 한다. 구원을 위한 십자가와 지혜와 타이밍을 알았다. 모든 인류가 알도록 유다 앞에서 오픈을 했다. 이 오픈을 통해 유다에게 말씀이 들렸다. 말씀이 들렸다는 것은 유다가 자신의 죄가 보였다는 것이다. 죄가 안 보이면 무슨 말을 해도 안 들린다. 끝까지 악하고 음란한 길로 달려간다.
그러면 유다는 그 다음부터 무슨 박해를 받았을까. 유다는 다말을 통해 베레스를 낳고 베레스는 예수의 계보에 올라간다. 이후 끝까지 다말과 동침하지 않았다. 사명을 위한 일을 음행으로 더럽히지 않았다. 베레스가 유다를 보고 아빠라고 했을까 할아버지라고 했을까?.. 베레스 또한 심한 조롱을 당하며 자랐을 것이다. 유다도 다말도 별의 별 조롱과 박해를 묵묵히 들어 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은 예수님의 계보에 나란히 올라간다.
그러나 회개를 해도 유다가 20년이 넘게 요셉의 얘기를 못한다. 말을 못하니까 유다는 계속 낮아진다. 며느리처럼 오픈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너무 대단해서 오픈을 못한다. 그러니 밤낮으로 회개하며 낮아졌다. 그렇게 때가 찼다. 그러니 가족 모두에게 천국의 화해를 보여주는 오픈을 하게 하신다. 다말의 적용을 유다는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야곱은 그때 못 받아내는 것이다. 그래서 야곱보다는 유다가 예수님의 직계조상으로 늘 언급되는 것이다. 어떤 말도 받아내야 예수의 계보에 오른다. 상대방이 들을 수준이 돼야 오픈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구원이 어려운 것이다.
무시받는 환경은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환경일 수 있다. 믿음의 눈이 아니면 유다와 다말에 대한 편견을 버릴 수가 없다. 어떤 경우에도 내가 보여야 할 구원의 적용은 내 죄 보는 것이다. 사건이 생기면 객관적으로 내 자신을 봐야한다. 누구를 탓하면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세상은 갈수록 악하고 음란해지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믿음의 분량이 천차만별이다. 교회가면 하나님이 무조건 지켜주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상에 완전한 공동체는 없다. 내 자리에서 맡기신 역할에 충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 믿으니까 다 해결해주겠지..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박해받을 각오를 해야한다. 그러나 그 박해를 받음으로 천국이 임함을 믿어야 한다. 별 인생이 없다. 주님도 십자가에 달려 벌거벗겨져서 죽으셨다. 탓을 안 하는 것이 천국이 임하는 것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지 않으면 지옥이 임한다. 문제 하나 생기면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냐고 한다. 싸울 일이 너무 많아도 자기 죄 보는 중재자가 있는 공동체는 이겨낼 수 있다.
사건만 묵상하면 지옥을 산다. 인간이 뭐가 선한 것이 있다고.. 욕도 좀 먹고 매도 좀 맞을 수도 있는 거다. 사과 한 번을 못해서 이혼을 하고 자살을 한다..
욕, 박해, 거짓된 말로 비방받으며 내가 복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믿어집니까?
내가 받은 박해가 전도로 이어집니까?
팔복산 산행길에서 어느 구간을 지나고 있습니까?
오르막길입니까?, 내리막길입니까?
3. 지금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 마태복음 5장 12절
팔복 설교의 결론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이다. 내가 참을 수는 있지만, 용서는 못하고, 용서는 해도 사랑은 못하겠다고 한다. 큐티의 꽃은 적용이고 결론은 영혼구원이다. 영혼구원이 최고의 상급이다. 구원은 하나님이 주신다. 천국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구원과 천국 모두 따라오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 하셨다. 하나님만이 상급이다!!!
아무리 화려하게 꾸며도 신랑이 안 오면 무슨 소용인가. 환경은 아무 소용이 없다. 예수가 와야 한다. 하나님은 나보다 더 탄식하며 나를 위해 기도하시고 안아주시고 꼭 안고 걸어가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오직 주의 은혜로 믿음 위에 서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합격자도 아니고 승자도 아니고 택자다. 팔복은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 그 자체다.
주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 안에 거하고,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이 주와 동행하는 것이다.
박해받으며 기뻐하고 즐거워합니까?
하나님 자체가 상급입니까?
하나님이 주신다며 환경이 상급입니까?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도 힘들고 맘대로 살아도 힘들다. 그래서 이왕이면 사명 감당해야 한다. 똑같이 힘들지만 승산이 있는 것을 택해야 한다.
환경이 아니라 말씀만 있으면 우린 언제든 팔복산의 상급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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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보고서
참석: 한결,기상,승윤,지호,현우,윤혁
오늘 현우가 친구 윤혁이와 함께 교회에 왔습니다.
적용질문Q. 하나님 자체가 상급입니까?
지호 - no. 대학교시험 망치니까 기분이 드럽다.
학점 받는게 상대평가 순위 매기는 거라서,
상위권으로 가고 싶다. 기말때 복구하고 싶다.
공부 잘하고 싶다. 공부가 상급이다.
목자say>주어진 공부환경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공부하자.
훈련의 때가 차는 만큼 쓰임받는다.
기상 - 말씀 읽고 주어진 환경에 매여서 가는것이 제일 좋다.
그런데 찬양 부를때 나의 생명을 드리리 이런 부분은
부르지 못하고 있다. 생명 내놓는 적용은 아직 어려울 거같다.
승윤 - 세상 문화가 상급이다.
내가 즐기고 싶은걸 하나님이 막으실 것 같아서 불평과
짜증이 올라온 적이 있다.
윤혁 - 돈 많이 버는걸 원한다. 내가 원하는 것을
돈에 구애받지 않고 하고 싶다.
현우 - 교회나오고 마커스집회가는게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