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3.26 마태복음 5:7 (팔복산의 통로)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큐티인의 간증이 좀 쎄다고 하시는데 사실 진짜 쎄한것은 성경안에 다 있지 않습니까?
가난한 심령으로 애통하고 온유하며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하는것이 아닌 너는 나보다 옳도다 라며 상대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너보다 옳도다는 상대를 불쌍히 여기는것인데 주님이 올라가라하면 오르고 내려가라면 내려가는것의 순종하려면 긍휼히 여겨야 됩니다.
1.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긍휼은 박애는 아닙니다. 사람의 동정과도 다르고 조건적인. 차별적인 긍휼과도 다릅니다.
긍휼은 동정과 다릅니다. 나보다 밑에 다른 조건에 있는 사람을 동정하는건 긍휼이 아닙니다.
그 안을 보면 비교의식, 우월감, 자기만족감을 알수있는데 좋은일에 기부를 하거나 동정을 배풀었을때, 그 밑바닥에 있는 감정을 찬찬히 보게 되면 인간이 백프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는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까지 했는데 왜 이런일이 왔지? 자신의 선함을 기억하고 억울해하는것은 긍휼이 아닌 동정한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이 부당한일을 당할때 고통스러움을 겪으면 그것이 긍휼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체크할것은 부당한 고통에 있는데, 그런일을 당할 사람이 아닌데 그런일을 당하면 측은지심이 생긴다는것입니다.
세상적인 상식에서 조건이 붙습니다.
범죄자가 고통을 당하는것은 당연한것이고 의인이 고통을 당하는것은 억울한 일이니 다 도와야 하는겁니다. 도덕과 윤리가 이런것 아니겠습니까?
긍휼히 여기는자는 복이 있나니 이것에 조건을 붙이지 않으셨습니다.
인갓의 옳고그름은 팔복산에 오를수없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순종할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밑둥 짤린 나무라는겁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차별하지 않고 찾아오는 죽음이 있습니다.
째깍째깍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기에 남도 나도 불쌍히 여겨야 하는겁니다.
알지도 못한채 지금 떨어지고 있는 통로가 죽음에 낭떠러지이기때문에 우리는 긍휼히 봐야 하는겁니다.
모든사람은 죽음앞에서 차별이 없고 사람은 고난이 있으면 있는대로 불쌍하고 없으면 없는대로 불쌍하기에 사람에겐 긍휼이 있어야 하는겁니다.
죽음끝에 마지막 고난에 예격포인것을 아는게 복인겁니다.
고난을 통해 죽음을 묵상하면 제대로 하는겁니다.
고난에 장차임할 죽음을 생각하면 이게 복인겁니다.
내 원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긍휼히 여길수있는 사람이 팔복산에 오를수있는겁니다.
-적용질문 : 남을 불쌍히 여김이 나보다 못한 사람 동정입니까? 의인과 죄인 차별하는 긍휼입니까? 무조건적인 주님의 긍휼입니까?
우리 모두 밑동 짤린 나무인것이 인정됩니까?
2.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긍휼히 보는것은 너무나 힘이듭니다.
같이 죽어가는 상태라면 너도 나도 죽어가니 이해할수있을겁니다. 내가 죽어가는데 누구를 긍휼히 여길수있겠습니까?
죄 가운데 죽어가는 모든이를 긍휼히 여기는것은 구원의 반석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상대가 구원이 없이 죽어가면 지옥으로 갈 인생이 보이니까 그때 너가 옳도다 하는 사람은 상대를 불쌍히 여기는것이 가능한것입니다.
공감해주고 손이가고 발이가는 행동, 이게 긍휼입니다. 어머니가 보호해주듯이 말입니다.
근데 우리는 아무런 대가없이 이렇게 점으로 어머니에게 있었을때부터 보호받았다고 합니다. 자격과 공로가 없는 점하나로 온 태에서부터 보호받았다는겁니다.
성벽이 무너지는것처럼 태에서부터 무너질 내 인생을 하나님은 엄마가 젖먹는 자식을 못잊는것처럼, 긍휼히 여기신겁니다.
죄인인 우리를 위해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과 고통으로 구원하시기에 사랑하신것을 말함이 긍휼입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인것입니다.
이것은 지난큐티 마태복음서 일만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았지만 백데나리온도 나누지못한것을 얘기해주신것과 같습니다.
주님의 긍휼로 조건없이 , 대가없이 탕감받았는데도 우리는 이것을 모르기에 일만달란트의 빚을 탕감받고도 백데나리온를 베풀지 못하는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것을 실상으로 놓고
구원의 주님오실 날에 긍휼로 갚아 구원으로 이끌어주실건데 그렇기에 팔복은 종말론적인 의미로 볼수있습니다.
내가 주님께 긍휼을 받으면 그 긍휼로 팔복산의 통로 쓰여져 남에게까지 선함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긍휼이 없이 하는것은 동정이나 자선의 차원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신앙고백으로 드리는 헌금과는 비교할수 없는겁니다.
하나님없이 하는것은 내 힘으로 자선하고 동정하는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긍휼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받는것은 사람에게 일희일비 하지않고 내가 한것만큼 받아야 하는 힘듬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상대방에게 긍휼히 여김을 받으려고 하지 말라는겁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긍휼을 받으면 팔복산의 통로가 되는겁니다.
흩으시고 폐하시는 이스라엘로 멸망의 메시지를 주시는데, 이게 긍휼히 여김받는것으로 긍휼히 여길수 있냐는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라하는 역활모델로 보여주십니다.
예수믿어야 회복인겁니다.
그런데 지금 30년후에 이스라엘이 망하지 않습니까? 전쟁 나야 하는데 전쟁날까봐 두려우니 하나님의 말씀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회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호세야가정이 이렇게 가게 하시는게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라는겁니다. 근데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전에 엄청 부강했다는 겁니다. 반짝 잘 살았기에 호세야 선지자 가정이 전부다 자기 맘대로 인겁니다.
지금 이 시대와도 비슷한것같은데 그러니 행복보다 거룩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겁니다.
자식도 부모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땅에서 잠시 맡겨주신것인데 자식이 내것이라 여기기에 집착하고 내 입맛대로 안되면 무너지는 겁니다.
-적용질문 : '그 사람은 긍휼을 입을 만한 자격이 없다'며 지금 정죄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여러분은 사랑받고 자랐나요?
무너진 내 가정 때문에 늘 책임을 누군가에게 돌리고 있나요?
내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은 증거라고 몇 % 생각이 되나요?
3. 그래서 가장 힘든 사람을 데리고 함께 올라가야 합니다.
기복산에 오르는 긍휼은 동정, 조건적인 차별이라 했는데 팔복산에 오르는 긍휼은 원수를 용서하는것을 넘어 사랑하는것입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는것을 알게되면 생활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나를 긍휼히 여기신다는것을 알면 끝나는 겁니다.
원수를 용서하는것을 넘어서서 어찌 사랑할수 있겠습니까?
우리안의 너도 나도 갖고있는 피해의식이라는것은 가정별 지역별 나라별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용서의 종결자는 하나님뿐이라는것을 알고있어야 합니다.
인간에겐 선함이 하나도 없기에 주님, 용서를 할수없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라고 기도하는것이 팔복산에 힘든 사람을 데리고 가는것입니다.
손이가고 발이가는 것을 하지 못하지만 애통히 여겨서 구해달라 기도하는것이 전도하는것입니다.
긍휼은 한번 맛보았다고 되는게 아닙니다.
아버지가 엄마가 태에서 나를 보호하고 있지않습니까? 그 힘으로 다시 일어 설 수 있는것, 그것이 은혜입니다.
내가 온전해서 설교할수있겠습니까? 그렇지 못하기에 긍휼을 구하고 긍휼을 여김받는것을 믿기에 나의 부족한 부분이 한부분씩 메꿔져 가는겁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 때문에 부족한 나를 보게되고 긍휼을 구하게 되는겁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사람이 복의 통로인겁니다.
그러니 호세야 집안의 그 많은 자녀들 아내때문에 북이스라엘의 불세출의 마지막 선지자가 된겁니다.
하나님의 뜻을 민감하게 되면 긍휼히 여기게 되고 긍휼히 여김받게 되면 창자가 끊어질듯이 아픕니다.
음욕은 간음한것이라 하셨는데 우리는 수많은 것에 음욕을 품습니다.
하나님께 창자가 끊어질듯한 긍휼을 느끼게 되어 상대를 함께 잉태된 형제 자매로 여기게 되면 긍휼히 여기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긍휼이 여기지 않을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교회라도 사건을 긍휼히 봤으면 좋겠습니다.
내 자신이 얼마나 긍휼이 필요한가를 아는사람만이 상대를 긍휼히 보게 되는거고 이런사람이 복의 통로가 되는겁니다.
의인은 네가 나보다 옳도다 인것이고 긍휼은 나도 남도 불쌍히 여겨주세요. 하는것입니다.
-적용질문 : 용서해야 하지만 내가 용서할 수 없는 존재임을 얼마나 인정합니까?
주님만이 용서의 종결자이심을 믿습니까?
부활절 전도축제 때 내가 팔복산의 통로가 되기 위해 어떤 순종을 하시겠습니까?
<목장기도제목>
세정
1. 사람 무서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 갖고, 믿음이 자라날 수 있길
2. 내 생각 내려놓고, 말씀으로 하루만 사는 인생 되도록
지윤
양교 참석 너무 하기 싫은데 숙제 하나라도 해서 출석하고 나눔 들을 수 있도록
다님
1. 생활예배를 우선순위로 두고 양교와 목장에서 엄마와의 분리 잘 보고, 왜라는 물음에 대해 잘 물으며 갈수있도록
2. 사촌동생 구원에 복음의 은혜가 내려지길 (망하는걸 잘 볼수있길)
3. 독립을 하나님의 그때에 맞춰 자연스럽게 할수있길
은우목자언니
1.인생의 오해를 주님의 긍휼로 바로잡아 주시고 생명살리는 선택 할 수있는 약속의 말씀 주시도록
2.세례, 양육, 양교에 힘쓰는 목장식구들의 인생에 넘치는 기름과 신령한 은혜를 내려 주시고 사랑과 위로의 하나님 꼭 만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