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요약]
팔복산의 통로 - 김양재목사님
영적배부름에 경험하면 좋사오니 가 아니라 팔복의 중 안에 있는 의는 상대를 불쌍하게 여기는 미션인 긍휼로 나타나게 됨.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것. 나보다 옳도다 로 여기는 것은 주님이 함께 오르락 내리락 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여기려면 불쌍히 여겨야함. 긍휼에 대해서 생각
1. 긍휼이 여기는 것입니다.
긍휼은 매우 불쌍히 여기는 마음. 남의 아픔을 자기 아픔으로 여기는 것. 주님이 말씀하신 긍휼은 인간 차별 없이 존중 없이 사랑한다는 박애는 아님. 사람의 동정과 도 다름. 조건적인 차별적인 긍휼과도 비교가 됨. 세개로 나누어 생각. 1) 긍휼과 동정이 다름. 나보다 훨씬 못한 사람에게 불쌍히 여기는 것. 동정은 긍휼이 여기는 것이 아님. 비교의식 자기만족감등. 좋은 일에 기부 동정을 베풀었을 때 후에 생기는 감정과 생각하면 100프로 죄인임.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돕고 베풀었던 것에 생색이 생김. 내가 선하게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 왔지? 내가 녹취했는데? 목장 갔는데? 선함을 기억하고 억울해 하는 것. 그것은 동정한 것임. 긍휼은 그것이 아님. 조건적인 긍휼은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한마디로 남이 부당하게 고통당할 때 내개 고통스러운 감정. 피고가 긍휼을 일으키기 위해 울거나 장애우 식구 데리고 와서 불쌍하게 보임. 처벌을 면하곤 했음. 강조 점 부당한 고통. 그런 일을 당할 사람이 아닌데 그런 사람이 고통당하니 측은지심이 생김. 맹자가 측은지심 예가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져 도와주고 싶은 마음. 건장한 장정 원수 아님. 세상의 상식과 윤리기준에서 긍휼을 조건적이고 차별적임. 죄인이 고통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임. 의인이 고통당하는 것은 억울해 보임. 이런 판단이 있어야 인간사회 질서가 유지될 수 있음. 이것이 도덕법. 3)주님의 긍휼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을 바로잡는 것임. 원수를 사랑하라. 어떤 조건도 붙히지 않음. 이웃~ 긍휼 여길만한자~ 이렇게 하시지 않고 긍휼이 여기는 자. 나를 힘들게 하는 원수 누구든지 가리지 않고 긍휼을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함. 상식과 윤리는 기복산에 오를수 있지만 팔복산에는 못 오름. 인간의 옳고 그름은 팔복산이 아님. 세상한계를 뛰어넘는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하여 모두를 긍휼이 여겨야함. 우리가 밑동 잘린 나무 임. 원수까지 포함해서 불쌍하게 여겨야 할 내용은 모두 가운데 차별하지 않고 찾아온 죽음. 그래서 죽음을 향하여 다가가니 나도 남도 불쌍히 여겨야 하는 이유. 따라서 죽음이 가까이 오는 데 깨닫는 것이 복임. 건강하든 아프든 부하든 가난하든 성격 좋든 나쁘든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서 무기력한 불쌍한 존재임. 고난이 있거나 없거나 불쌍함. 사람은 누구나 긍휼이 필요함. 환란의 재앙은 고난의 죄의 뿌리. 죽음의 예고편. 당하는 고난은 마지막의 죽음의 예고편 인 것을 알면 이것이 복임. 고난을 통해서 죽음을 생각하면 고난을 제대로 맞은 것임. 고난을 당해서 장차 임할 죽음을 생각하면 복임. 고난 없으면 기회도 없고 죽음을 향해 감. 아무 고난 없는 사람이 훨씬 불쌍한 사람임. 긍휼을 여긴다는 것은 내 죄를 보고 대단한 적용을 하는 것이 아님. 말 한마디에서 작은 것부터 시작함.
<적용> 남을 불쌍히 여김이 나보다 못한 사람 동정입니까? 의인과 죄인을 차별하는 긍휼입니까? 무조건적인 주님의 긍휼입니까? 우리 모두 밑동 잘린 나무라는 인식이 있습니까?
2.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7절. 누구나 긍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사람을 긍휼이 여기는 것은 쉽지 않음. 불가능에 가까움. 같이 죽어가는 상태면 누가 누구를 걱정할 여유가 있습니까? 죄 가운데 구원에 반석에 오른 사람밖에 없음. 죽음이 흔들수 없는 구원을 반석위에 서있기에 죽음을 넘어섰기에 반대인 죽음 늪에 빠진 사람을 불쌍히 여길 수 있음. 그래서 옳도다 하면 불쌍히 여길 수 있음. 지옥으로 갈 인생이 보이니까. 긍휼 엘레오스 구약에서 히브리어 라함 헷세드가 합쳐진 것. 라함 어머니의 자궁.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 헷세드 자비 사랑 감정에서 나아가 실제적으로 행동하는 것 공감 손이가고 발이 가는 행동. 긍휼은 점으로 있는 아가가 어머니의 사랑을 먼저 받은 것임. 자격과 공로가 없는 태에서 부터 항상 너를 생각하되 무너질 성벽이지만 너의 성벽이 내앞에 잇다는 것임. 무너진 가정 사람 내 인생을 주님은 엄마가 젖먹는 자식을 못 잊는 것처럼 항상 보호하심. 아무리 형편없어도 손바닥에 새긴 것임. 긍휼이 여긴 것임.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애통으로 공감해주시고 헷세드를 베푸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 구원하셔서 사랑하신 것인 라함과 헷세드 슬플과 애통이 행동하는 행함으로 나아가는 것. 예를 들면 성육신 사건 낮아진 사건. 깊이와 높이를 가늠할 수 없음. 무조건적인 사랑 실천적인 사랑은 마태복음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자 인색하고 모질게 구는것에 꾸짖는 것. 우리는 이 사랑을 모르기에 100데나리온의 긍휼을 베풀지 못함. 긍휼이 미래 수동태 신적인 수동태 긍휼을 베풀어주시는 주체가 전적인 하나님 시점은 미래.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이 여기는 인간은 아무것도 안해도 된다가 아님. 긍휼을 베푸신자를 기억하고 긍휼을 갚아 구원으로 이끌어주심. 팔복은 근본적으로 마지막으로 준비하는 종말론적으로 해석됨. 51대 59로 넘어갔는데 우리는 언제든지 천국행 통로에 타고 있다는 뜻 주님의 절대 긍휼을 입은 사람이 빈곤한자를 불쌍히 여길 수 있음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긍휼을 통로가 되는 것임. 주님의 긍휼을 입으면. 입지 않으면 동정과 자선의 차원을 넘지 못함. 신앙고백으로 드리는 헌금과 비교가 되지 않음. 내 힘으로 자선하고 동정하는 것임. 하나님께로 온 긍휼은 동정 자선 차원이 다름. 인간에게 긍휼을 베푸는 자는 다른 인간에 받는 것이 아니라 근원인 하나님에게 긍휼을 받는 것임. 사람에게 일희일비를 하지 않음. 상대방에게 긍휼 여김을 받지 말라는 것 하나님으로 부터 받았기 때문에.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이 팔복산의 통로.
<적용> 그 사람은 긍휼을 입을 만한 자격 없다며 정죄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헷세드 선지자 호세아 선지자 이 사랑을 끓는 헷세드의 선지자 자비 은혜 사랑과 애통의 공감으로 행동하는 선지자 중독되는 것 1위가 자식 하나님의 테스트가 자식임. 공부 잘하길 너무 바람. 내 분신이 나왔는데 공부 못하면 수치스러워 살수가 없음. 무서운 열심으로 쏟는데 기대에 못 미치면 잠이 안 옴. 자식 = 나. 들들 볶음. 안되면 사랑한다는 때리고 욕하고. 미쳐서 중독된 것임. 자식을 내려 놔도 큰 적용임. 하루 종일 생각함. 자식도 애인도 마약도 끊어보면 집착인지 사랑인지 알 수 있음. 자녀중독 배우자중독 잘살수록 중독에 잘 걸림. 호세아 같은 역할 모델이 필요함. 30년 후에 망할 이스라엘 백성을 살리기 위해 호세아 가정을 통로로 쓰심. 백성이 악하고 음란하기에 당장 재앙으로 다가오지 않으니 호세아의 말씀이 들리지 않음. 호세아의 가족 고멜. 아들 이스리엘, 사함 받지 못함 로로함, 콩가루 집안. 이런 식구들과 살면서 멸망의 메세지를 전하는 것임. 너 평강할 수 있냐 하나님의 사랑의 보여라 역할모델로 쓰이는 것임. 손가락질 하면 안되는 것임. 구원을 위한 소명의 삶 인것임. 영원한 형벌은 없음. 영적이스라엘이 망하는 것이 아님. 예수 믿어야 회복임. 하나님은 환경에서도 회복의 약속을 주심. 인간의 힘으로는 망하는 것 같아서 중수할 수 없음. 무너진 성벽 하나도 못 끊음. 은혜로만 한순간에 끊을수 있음. 예배드리며 공동체에 나의 죄를 내놓으면 죄가 힘을 잃음. 호세아도 아픔을 겪으니 백성의 아픔을 이해하게 됨. 가정을 지키기 위한 큐티.
<적용> 여러분은 사랑받고 자랐나요? 무너진 내 가정 때문에 늘 책임을 누군가에 돌리고 있나요? 내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은 증거라고 몇 퍼센트 생각이 되나요?
3. 가장 힘든 사람을 데리고 함께 올라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긍휼은 팔복산에 오르는 통로. 원수를 용서하라 넘어 사랑하라는 것은 힘듦. 애끓는 긍휼로 사랑할 수 없음. 긍휼을 여김을 받는 것을 알게 되면 회사 생활이 달라짐. 긍휼 여김을 받으면 끝남. 가해자와 피해자의 단단한 사고의 틀 피해의식. 없어지지 않는 힘든 것임을 보고 있음. 존재 한계가 이렇기에 용서하라는 것은 한낱 메아리로 됨. 인생만 밑동 짤린 나무로 인생으로 걸어감. 종결자는 하나님뿐이심을 인정해야 함. 진정한 용서는 나한테는 선한 것임. 용서할 수 없으니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 라고 부르짖는 것 힘든 대상자를 팔복산에 데리고 올라가는 것임. 슬픔과 애통으로 기도리스트에 올리는 것임. 전도대상자의 태도임. 고난을 겪으며 내 죄악을 깨닫고 주님을 만난 구원이 크기에. 나 같은 사람을 긍휼 여겨주신 주님이 하나님을 믿으니 구원의 근거가 되는 것임. 구속사임. 한번 맛보았다고 완벽해지는 것이 아님. 애기처럼 뒤뚱하고 부족하고 실족하지만 엄마가 보호하기에 주님 앞에 설수 있음 그것도 주님의 은혜. 말씀에 근거해서 나를 직면함. 나의 부족한 부분이 한걸음씩 메꿔지는 것임. 안 믿은 제자들에게 새 방언을 주심. 표적. 하나님이 긍휼을 여김을 받아야 되는 것. 손과 발이 가는 적용으로 주님의 긍휼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함.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저사람 없으면 복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있어서 내가 복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덕분에 내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됨. 창자가 끊어지는 애통이 넘치고 모든 주님과 나를 알게 되니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복에 통로다.'
<적용> 용서해야 하지만 내가 용서 할 수 없는 존재임을 얼마나 인정합니까? 주님만이 요서의 종결자 이심을 믿습니까? 부활절 전도축제때 내가 팔복산의 통로가 되기 위해 어떤 순종을 하시겠습니까?
기도해 보시길 바래요 우리 같이 함께 올라가는 것임.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면 긍휼히 여기게 되고 여김 받으면 창자가 끊어질듯이 아픔. 이 세상에서 긍휼을 받지 못할 사람은 없음. 100프로 악하고 음란한 죄인. 환경이 안됐을 뿐인 것임. 내 자신의 긍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힘든 사람과 같이 갈수 있음. 복의 통로가 되는 것임. 의인은 너가 나보다 옳도다. 긍휼은 불쌍히 여겨주세요 나도 남도. 우리는 용서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팔복산의 통로가 불쌍히 여겨주세요. 고난이 축복인데 인간적으로 듣고 하면 안됨. 복음은 차별이 없는 것임.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복음에 반응해야 하는 것임. 안타까운 긍휼함이 있어야 함. 원칙을 지켜야 함.
[목장나눔]
4층. 전훈목자, 이정훈형제, 황재훈형제, 남규찬
근황토크 및 대지2번째 질문? 사랑받고 자랐나?
전훈목자 - 독자로써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는데 공부와 행실로 보답해야 되는 줄 착각했었고, 나이가 들수록 가족 친척들의 관심이 부담과 무게로 느껴졌다
이정훈 형제 - 어렸을때는 사랑 받고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사건으로 고난을 겪었다.
남규찬 - 사건으로 인하여, 사랑의 감정보다는 인생의 허무함과 회색으로 세상을 보며, 별 기대와 생각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살았다.
[기도제목]
전훈목자
1. 장결자들 목장 나오도록 (재훈형제 반가웠어요~)
2. 일대일 양육에 은혜 부어주시도록
3.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 신뢰하며 미래 진로를 내 생각 아닌 하나님 뜻에 맞춰가도록
4. 업무에 지혜 주시도록
이정훈 형제
1. 자기연민에 갇혀 있지 않고 긍휼함이 나에게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먼저 주셨음을 잊지않게 늘 깨어있고 모든 시간 속에서 주님 묵상 되도록
2. 어머니 경제고난 상황 속에서 말씀으로 해석 가족구원의 약재료로 쓰이는 은혜주시기를
3. 사랑하는 목자 가족구원 만남 허락된 지체들 체력 보살펴 주시고 각자 달란트 잘 다려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쓰임받기를.
안종수 형제
1.늘 안전운전 할 수 있도록.
바쁘더라도 여유를 가지고 운전할 수 있도록.
2.진로의 문제, 나아가야할 바를 알 수 있게 지혜를 주시길.
3.나의 삶이 어떠하든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남규찬
1. 월말인데 자금문제 없도록
2. 신교제 신결혼
3. 행정사공부 열심히 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