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26 주일설교
마태복음 5:7, 팔복산의 통로, 김양재 목사님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 마태복음 5장 7절
미주 6개 교회에서 복음 전하고 오셨는데 대부분의 교회에서 큐티인을 쓰시겠다고 한다. 큐티인 간증이 세긴 하지만 사실 성경에 나오는 간증이 제일 세다. 그것이 다 살아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복음은 능력이 있다.
가난한 심령으로 애통하고 온유하며 의에 주리고 목말라서 영적으로 배부르게 되면 이제 팔복산의 통로가 열리게 된다. 긍휼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의인은 그가 나보다 옳다고 고백하기에 불쌍히 여길 수 있다.
팔복산의 통로는
1.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긍휼은 매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인간 자체를 아무 차별 없이 존중하는 박애와는 다르다. 사람의 동정과도 다르다. 조건적이고 차별적인 긍휼과도 구별된다.
동정은 나보다 훨씬 못한 여러 조건에 있는 사람에 대해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동정은 그 안에 비교의식, 우월감, 자기만족감이 숨어 있다. 좋은 일에 기부를 하거나 동정을 베풀었을 때 우리 마음에 생기는 감정을 직면하면 우리가 100프로 죄인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마음으로 섬긴다면 고난이 왔을 때 생색이 나지 않을 자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긍휼이 남이 부당한 일을 당할 때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정이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그리스 재판에서는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면 이겼다고 한다. 맹자는 측은지심을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 할 때 도와주고싶은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세상의 기준에서 긍휼은 조건적이고 차별적이다. 의인이 고통을 당할 때만 느끼는 감정이다. 이런 판단이 있어야 인간 사회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긴 하다.
그러나 주님의 긍휼은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다. 어떤 조건도 붙이지 않으시고 긍휼히 여기라 하신다. 가족, 친구, 이웃, 나를 힘들게 하는 원수 등등 누구도 가리지 말고 긍휼히 여기라고 하신다. 인간의 옳고그름은 팔복산의 통로가 될 수 없다. 세상 윤리를 뛰어넘는 주님의 가르침에 순종해서 모두를 긍휼히 여겨야 한다.
왜인가? 우리는 모두 밑동 잘린 나무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에게 차별없이 찾아오는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불쌍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 복이다. 모든 인간은 죽음 앞에서 한 없이 연약한 불쌍한 존재다. 고난이 있든 없든 간에 똑같이 긍휼히 여겨 마땅한 존재다.
고난은 장차 당할 죽음의 예고편이다. 고난을 통해 죽음을 생각하면 그 고난은 역할을 다 한 것이다. 모든 환난과 고난은 죄에 뿌리를 둔 예고편이다. 아무 고난이 없으면 그런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죽음을 향해 직진하게 된다. 그래서 고난이 없는 자가 더 불쌍한 자다.
긍휼은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시작한다.
남을 불쌍히 여김이 나보다 못한 사람 동정입니까?
의인과 죄인을 차별하는 긍휼입니까?
무조건적인 주님의 긍휼입니까?
우리 모두 밑동 잘린 나무라는 인식이 있습니까?
2.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 합니다.
누구나 긍휼히 여김이 필요함을 알아도 실제도 긍휼히 여기는 것은 너무 어렵다. 같이 죽어가는 상태라면 누가 누굴 긍휼히 여기겠는가. 그럴 여유가 없다. 그래서 긍휼히 여길 수 있는 자는 구원의 반석 위에 서 있는 자 뿐이다. 네가 나보다 옳도다 하는 사람은 그래서 긍휼히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지옥으로 넘어가는 영혼들이 보이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라함 + 헤세드 == 긍휼
라함 == 어머니의 자궁, 출산의 고통,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
헤세드 == 자비, 사랑
주님은 점 보다도 작고 약한 나를 항상 눈 앞에 두신다. 이사야서에서 말씀하셨듯 어머니가 젖먹는 자식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를 항상 바라보신다고 하신다.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과 고통으로 공감해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기까지 사랑하신다. 성육신하시며 실천적인 긍휼을 보여주셨다. 우리는 값없이 1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긍휼을 입은 자다. 이 사랑을 모르기에 100 데나리온의 긍휼을 베풀지 못한다.
팔복은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이다. 주님의 절대 긍휼을 입은 자만이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길 수 있다. 주님의 긍휼을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주님의 긍휼을 입지 않고 행하는 긍휼은 동정, 자선을 넘어서지 못한다. 동정, 자선은 신앙고백으로 드리는 헌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인간에게 긍휼을 베푸는 자는 긍휼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이다. 사람 대문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사람에게 긍휼히 여김을 받으려 하지 말라.
그 사람은 긍휼을 입을 만한 자격이 없다며 정죄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호세아는 헤세드의 선지자였다. 자비와 애끓는 사랑으로 섬겼다.
나의 분신인 자녀에게 모든 열심을 쏟아붓고도 자녀가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정말 분을 낸다. 사랑이라는 이름 하에 온 혈기를 쏟아붓는다. 자식 하나만 내려놓아도 큰 적용이다. 자식도, 애인도, 마약도 그것을 끊어 보았을 때 그것이 집착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망하기 직전에 북이스라엘에 부요한 시기가 잠깐 있었다. 호세아와 같은 역할 모델이 꼭 필요하다. 다시 이스라엘을 살리기 위해 호세아의 가정을 통로로 쓰셨다. 망하기 30년 전이지만 호세아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
호세아의 아내 고멜은 날마다 외간 남자와 음행했음에도 계속 그 아내를 데려오라 하신다.
자녀들 역시 제대로된 놈이 없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하나님의 긍휼을 보이라고 하셨다. 선지자 집안인데 온 집안이 콩가루 집안이다. 손가락질해선 안 된다. 구원을 위한 통로가 되라고 주신 사명의 가정이기 때문이다. 우린 오직 예수 믿어야 회복될 수 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회복의 약속을 주신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는 망하는 사건이 너무 커 보여서 중수할 수가 없다. 오직 은혜로만 죄를 끊고 자리를 지킬 수 있다. 공동체에서 나의 죄를 내놓고 수치 잘 당하면서 가면 죄가 힘을 잃는다.
호세아는 가정에서 너무도 큰 고통을 겪었기에 백성들을 온 맘다해 긍휼히 여길 수 있었다. 정말 고난이 축복이다. 내 식구의 불순종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행음하고 있는지 깨닫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셨다.
이 시대를 보라. 망하기 직전 북이스라엘처럼 잠깐 제일 잘 사는 우리나라를 보라..
자식도 부모도 다 하나님의 것이다. 잠깐 맡겨주신 것 뿐이다.
여러분은 사랑받고 자랐나요?
무너진 내 가정 때문에 늘 책임을 누군가에게 돌리고 있나요?
내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은 증거라고 몇% 생각이 되나요?
3. 그래서 가장 힘든 사람을 데리고 함께 올라야 합니다.
불쌍히 여길 만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은 동정일 뿐이다. 이것은 팔복산에 오르는 통로가 아니다. 원수를 동정하는 것을 넘어 사랑하는 것은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야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틀에서 나와야 한다.
진정한 용서는 나에게 선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이다. 용서할 수 없는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부르짖는 것이 힘든 그 한 사람을 팔복산에 데리고 가는 것이다. 나같은 죄인을 긍휼히 여겨주신 주님이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도 긍휼히 여기실 줄 믿고 부르짖는 것이다. 수없이 넘어지더라도 그 큰 사랑에 의지하여 다시 주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이 부활하셔도 제자들이 아무도 안 믿는다. 이를 완악하다고 하신다. 그러나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시고 새 방언을 주신다. 나로 인함이 하나도 없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한 사람 때문에 내 죄를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나를 위해 수고하는 한 사람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긍휼을 구해야 한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한 사람이 복의 통로다!!!!!!
용서해야 하지만 내가 용서할 수 없는 존재임을 얼마나 인정하십니까?
주님만이 용서의 종결자이심을 믿습니까?
부활절 전도축제 때 내가 팔복산의 통로가 되기 위하여 어떤 순종을 하시겠습니까?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보고도 주님은 '여자여' 하시며 주님은 최고의 존칭을 붙여주셨다. 우리가 누구를 정죄하겠는가. 긍휼은 용서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나도 남도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는 것이다.
교회를 나와도 예수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이것이 망하기 직전의 이스라엘의 상태였다. 마음대로 음행하고 우상숭배하며 살았다.
나라가 없으면 예배를 못 드린다. 복음은 차별이 없다. 이 시대에 젋은이들이 복음에 반응을 해야하는 것이다.
긍휼히 여김을 받지 않으면 내가 뭐라고 이 길을 가겠는가.
회사에서 녹을 먹는다고 해도 불법을 행해서는 안 된다. 원칙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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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보고서
참석: 한결, 기상, 규빈, 지호, 승윤, 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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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빈 - 이번주부터 초등부 스텝 섬기기 시작했다. 부서 섬기는게 좋은것 같다. 운동해서 3kg 빠졌다. 친구가 여자 소개해줬다.
>>****공동체 기도제목: 규빈이 형이 신교제 할 수 있도록.
승윤: 큐티책 읽고 있다.
-------------------------말씀나눔-------------------
한결: 중1 과외하는 학생을 긍휼히 여겨야겠다. 버림받았다는 상처가 아이에게 있다.
학생이 수업을 잘 따라오지 못해서 과외하는게 힘들다. 뺀질거릴 때가 많은데, 과거의 내 모습도 있는 것 같다.
나도 만달란트 탕감받은 자로서, 이 학생을 긍휼히 여겨야겠다.
승윤: 친구관계에 대해서 나누고자 한다. 뒤에서 뒷담하는 고등학교 친구가 있었는데, 나중에 안 봐도 되니까 요즘엔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리고 내가 친구관계에 많이 의지하던 걸 하나님께서 고쳐주시려는것 같기도 하다. +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라는 말씀이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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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적용질문: 남을 불쌍히 여김이 나보다 못한 사람 동정입니까?
현우: 나는 이기적이라서 남을 잘 동정 안한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으면 좋겠다.
동생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도 주시길 바란다.
지호: 나는 동정은 잘 하는 편이다. 형이 최근 다이어트를 실패했는데, 속으로 무시되는게 조금있다.
형이 지금 교회 안 나오는데, 형을 긍휼히 여기길 바란다. 형의 이직계획도 잘 되면 좋겠다.
기상: 지금까지 전도를 많이 했는데, 상대방에 대해서 진심으로 안타깝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거의 없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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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 축제 때 전도할 사람
한결: 1,2학년때부터 친했던 대학교 선배 형들, 팀플에서 만난 21살 동생, 대학 동기 1명, 친가 친척들
현우: 아버지
지호: 형
기상: 군대동기 1명
규빈: 동네 친구 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