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제목
임기백
- 마음과 몸이 편하니 끝없는 교만함이 올라오는데 큐티로 내모습 잘 보고 회개하고 가기
- 신교제, 신결혼
- 어떤 일이든 하나님과 공동체에 묻고 가기
- 직장에 잘 붙어 가기
- 집 잘 구해지길!
송지훈
- 하나님의 긍휼함을 구하고 그 긍휼함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 결혼의 목적을 거룩으로 삼고 준비할 수 있도록
권순원
- 회사생활 하며 일정 부분은 포기하기
- 건전한 스트레스 돌파구 찾기(ex. 운동)
- 신교제 신결혼
송종민
- 이번 주 면접 잘보기 (화요일 면접봐요)
- 계획 잘 세우기
- 스트레스 받지 않기
- 말씀 잘 보기
팔복산의 통록
마태복은 5:7
간증 : 고난이 축복이다.
1.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긍휼은 매우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남의 아픔을 자기 아픔처럼 여기는 것만큼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1)긍휼과 동정은 다른다. 불쌍히 여기는 동정은 긍휼이 아니다. 그 안에 숨어있는 비교의식 우월감, 자기만족감이 있고 이는 인간의 안좋은 본성이다.
2)긍휼은 남이 부당하게 고통을 당할 때 내 마음에도 고통이 일어나는 것이다.
죽음이 가까이 오는데 내가 죄인이라고 깨닫는 것은 화가 아니라 복이다.
3)?
고난을 통해 죽음을 생각하면 그 고난은 잘 맞은 것이다. 고난을 통해서 장차 임할 죽음을 생각하면 그것은 복이다. 아무 고난이 없는 사람이 많은 고난을 당한 사람보다 훨씬 불쌍한 사람이다. 이렇게 나 자신, 내가족, 이웃이 불쌍히 여겨야 하는 존재임을 아는 사람이 팔복상의 통로에 입성할 수 있다. 긍휼히 여기는 것은 내죄를 보는 것이고 대단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다.
적용 : 남을 불쌍히 여김이 나보다 못한 사람 동정입니까 의인과 죄인 차별한느 긍휼입니까? 무조건적인 주님의 긍휼입니까? 우리 모두 밑동 잘린 나무라는 인식이 있습니까?(이것이 있어야 한다)
2.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가 긍휼을 통해 다 잘되면 믿기 쉬울텐데, 말씀에서의 긍휼은 시점이 미래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주님께 받은 긍휼을 이웃에게 흘려보내는 통로가 된다. 주님의 긍휼을 잊지 않는 것은 동정과 자선과는 다르고 비교가 안된다. 내힘으로 하는 자선과 동정은 비교가 안되는 것이다. 목사님도 지금 누리시는 것들이 조상들의 섬김 덕분이다.
적용 : 그사람은 긍휼을 입을만한 자격이 없다며 정죄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보여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긍휼을 입을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은 이땅에 없다. 헤세드 선지자로는 호세아가 대표적이다. 자비와 은혜와 슬픔과 애통, 공감으로 행동하는 선지자. 우리가 중독의 1위가 자식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테스트하기에 가장 좋은 대상이기도 하다.
우리 교회는 누구든지 올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도피성이다. 불행한 결혼생활은 잠시 히믇ㄹ겠지만 하나님 나라라를 이루어가기 위해 너무 필요한 약재료이다, 결혼생활의 힘듦은 목회에 가장 도움이 되는 약재료이다. 불신결혼은 안해야하지만 일단 결혼하면 너무 좋은 약재료이다. 이혼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적용 : 여러분은 사랑받고 자랐나요? 무너진 내 가정 때문에 늘 책임을 누군가에게 돌리고 있나요? 내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은 증거라고 몇 % 생각이 되나요?
3.
구원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나같은 사람을 긍휼히 여겨주신 주님이 나를 힘들게 한 그 사람도 하나님이 구원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구속사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 덕분에 내가 내 죄를 보게 되었다. 호세아도 그 아내 덕분에 불세출의 인물이 되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이 복의 통로다!
적용 : 용서해야지만 내가 용서할 수 없는 존재임을 얼마나 인정합니까? 주님만이 용서의 종결자임을 믿습니까? 부활절 전도축제 때 내가 팔복산의 통로가 되기 위해 어떤 순종을 하시겠습니까?
우리는 100% 음란하고 악한 죄인이며 환경이 안됬을 뿐이다. 내 자신이 얼마나 악하고 음란한 자임을 아는 사람만이 긍휼히 여김을 할 수 있다. 의인은 니가 나보다 옳도다 이고 나도 남도 불쌍히 여겨 주세요 한다. 이런 팔복산의 통로가 불쌍히 여겨 주세요 한다. 불쌍히 여겨 주세요, 긍휼히 여겨 주세요가 목사님의 주제가이다. 1살이나 100살이나 복음의 차별이 없다. 그런 부활절에 사람들, 청년들을 데려와야 한다. 우리에게 그런 긍휼함이 있어야 한다.
팔복산의 통로는 동정이나 조건적이나 차별적인 긍휼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주님의 긍휼이다. 어떤 사람도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있습ㄴ디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