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3.12 주일설교
2023.03.12 주일예배
주가 쓰시는 인생
마태복음 21:1-11
감정에 따라 몸에서는 이런 저런 호르몬이 나온다. 우리들교회는 최근에 웃음부장님이 임명되어 예배 때마다 웃으니 엔돌핀이 가득하다. 엔돌핀보다 강한 호르몬이 감동 호르몬인데, 새로운 지혜에 대한 깨달음이 임할 때 많이 나옴. 오늘 이 시간 말씀이 들려 해석됨으로 자유해져서 다이돌핀이 많이 나와서 건강해지셨으면 좋겠다. 주께서 쓰시는 인생이 되려면,
1.내게 허락하신 겸손한 환경에 잘 매여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장면. 예수님의 33년 생애 중에 구속 사역을 성취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시기.
1절에 감람산에 이르렀는데, 거기에 올라서면 예루살렘에 훤하게 보임. 주님이 예루살렘에 이르셔서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잎사귀만 무성한 열매가 없는 예루살렘 백성들을 보며 슬퍼하시고, 이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이 지실 십자가를 묵상하셨을 것.
신앙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생각해보면 좋겠다.
두 제자에게 맞은편 마을로 가라고 하신다. 가까이 있는 베다니가 아닌, 이름 모를 마을. 그리하면 주가 예비하신 그 나귀를 보리라 하셨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순종하지 않기 때문. 순종하는 것이 때로는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순종하는 것이 가장 지름길.
왜 주님은 초라한 나귀를 끌고 오라고 하셨을까요? 당시 예루살렘 입성은 군대의 지휘관이 승리하고 귀환할 때. 그런데 주님은 전쟁에 사용되는 말을 사용하지 않고, 초라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심.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
구원의 관점에서는 나귀같은 인생도 어떤 사건도 주님께 쓰임받을 수 있다. 삼손은 나귀 턱 뼈로 1000명을 무찔렀다.
그냥 나귀가 아닌 매인 나귀. 스스로 나의 매임을 풀 수 없음. 몸부림칠 때 그 매임은 더 나의 목을 조르게 된다. 우리의 고난을 하나님께서 끝내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칠흑같은 고난 속에서 살아내는 성도님들의 간증이 내 얘기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주일 설교를 준비하며, 망아지같은 저를 쓰시기 위해 겸손한 환경을 허락하신 것이 인정이 되었다. 딸 소망이를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시는데, 쓸 수 없다며 버리려고 한 죄가 인정이 되었다.
장애아를 주신 것은, 장애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고, 복음을 전하려고 주시는 것.
나는 연약해서 쓰임받지 못할거라고 생각하시는 분 계십니까, 그 한 사람을 쓰신다고 말씀하심.
-성도로서 죽음을 잘 준비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어떤 겸손한 환경에 계신가요? 그 환경에 잘 매여 있습니까?
-스스로 풀려고 해 더 꽁꽁묶여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버리고 싶은 남편, 아내, 자녀가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나귀 새끼임이 인정되십니까?
2.말씀을 이루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구약의 스가랴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나귀를 타신 것. 온유는 성품이 아니다. 나약함도 아니다. 힘이 있으나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통제하고 쓰지 않는 것.
예수님은 말씀 자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 적용의 본을, 온유의 본을 보여주심.
제자인 우리가 따라할 수 있도록 성육신하여 보여주심. 구원의 근간이 되어주셔서, 나도 살고 남도 살리는 구원의 인생이 되게 하심.
의대를 가려고 4수를 하고, 고시에 뛰어들어서 헤매고 다녔음. 그러다가 다 안되니 29살에 죽으려고 했다가 예수님을 만났음. 그 때 받은 말씀이 이사야 42:6. 성경에서 이름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옳을 의, 빛날 환이라는 뜻이 이 말씀에 담겨 있음.
무너진 저를 세워서 이방의 빛이 되게 해주신다고 약속하셨음. 빛같은 인생이 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음.
올 한해 붙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이제는 안심하라.
주님께 받은 만 달란트 빚만 생각하자고 하며 화해 조정하는 자리에 갔음. 중간에 여러가지 의견이 안 맞는 위기가 있었지만, 목장에서 싫은 소리를 듣는 훈련을 했기에 잘 들어주고 때에 따라 필요한 말을 할 수 있었음.
이 화해 조정하는 시간을 통해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구나. 이해가 되지 않는 사건 속에서 일하고 계시는구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도 순종하셨다는 말씀에 몇 프로 도전을 받습니까?
-인생 전체를 붙드는 말씀, 한 해 붙잡는 말씀, 매일 붙드는 말씀이 있습니까?
-말씀을 이룬 적용, 간증이 있습니까?
3. 기복적인 열광을 넘어서는 분명한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시면 분노하는 우리들. 진정한 신앙고백이 없기 때문이다.
무리들은 신앙고백 같지만 단순히 고향 이름들의 정보를 말함. 우리는 우리 힘으로 기복적인 열광을 버릴 수 없다. 제자들도 실패하고, 밑바닥을 경험하고 나서야 나귀 타고 오신 예수님을 깨달았다. 십자가 부활을 어떻게 경험합니까? 인생의 한계 상황이 왔을 때.
모든 일이 형통할 때 하나님은 속삭이시지만, 고난 속에서는 크게 외치신다.
나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사건이 왔는데도 제자들처럼 회피하고, 무리처럼 원망한다. 이렇게 안 되는 나 때문에 애통해야 한다.
내가 주님께 많은 헌신을 했는데, 이게 뭐냐고 분노하고 있지는 않나요. 고난 가운데 외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주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고백하고 주님께 쓰임받기를 축복합니다.
기복적인 메시아를 바라면서 회피합니까? 분노합니까?
-고난 가운데 예수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고 분명한 신앙고백을 드리고 있습니까?
-요즘 나의 신앙생활은 뜨겁습니까. 미지근합니까. 차갑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