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제목
1.성화
- 회피하는 성향이 많은데 회피하지 않고 잘 죽고 책임지기!
- 약 잘 먹기!
- 신교제, 신결혼!
2. 순원
- 회사생활하며 휘둘리지 않고 담대히 대처하기!(안되는 것은 과감히 포기하기)
- 자신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 가지기!
- 신교제, 신결혼!
3. 기백
- 환경에 잘 매여있기!(직장, 가정 모두)
- 신교제 잘하고, 신결혼하기!
- 집 잘구해지기!
- 삶의 주권을 주님께 드리기!
주가 쓰시는 인생
주가 쓰시는 인생이 어떤 인생인지 깨닫길 원합니다.
말씀하여 주소서. 듣겠습니다.
감정에 따라 이런 저런 호르몬이 나온다.
엔돌핀보다 센 것은 다이돌펜이 있다고 한다.
감동할 때 나온다고 한다. 새로운 진리를 깨달을 때 나온다.
말씀이 들려 해석됨으로 다이돌펜 호르몬이 나와서 건강하길,
영혼구원을 위해 사명 감당하여 주가 쓰시는 인생이 되길,
주가 쓰시는 인생은?
::1) 내게 허락하신 겸손한 환경에 잘 매여 있어야 합니다.::
갈릴리 사역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기 전, 감람산에 이르렀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구원을 위해 자신이 지실 십자가를 묵상했을 것 같다.
신앙은 죽음을 잘 준비하는 것이라고 한다.
두 제자에게 맞은편 마을로 가라고 한다.
베다니로 가면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가 있는데
이름 모를 마을로 가라고 하니...
우리가 응답 받지 못하는 것은 순종하지 못해서 그렇다.
순종하는 것이 어리석어 보여도 지름길이다.
왜, 주님은 초라한 나귀와 나귀새끼를 끌고 오라고 했을까?
전쟁의 말이 아닌 초라한 나귀를 타고 입성을 했다.
전쟁을 통해서, 정치적 메시야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왔다는 것이다.
구원의 관점에서, 나귀 같은 인생도 주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냥 나귀가 아닌 쓰임 받기 전까지 겸손한 환경에 매여 있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매임을 풀 수 없다. 몸부림 치면 더 나의 목을 조른다.*
*주님이 풀어주시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예상치 않았던 셋째 임신, 아내가 고위험군이라, 매임 정도가 아니라 숨통을 조이는...
마지막 결과를 받던 날, 그리스도의 향기, 뭔가 불길했다.
21번 염색체가 3개(다운증후군)라고 한다. 겸손한 환경,
저의 딸을 향기나는 인생으로 쓰심을 인정한다. 딸이 복된 인생이 되길,
연약하고 장애가 있어서, 버리고 싶은 아내, 자녀, 그 한 사람을 주님이 오늘 쓰신다고 한다.
나귀새끼라도 쓰임 받으면 복된 인생이다.
*적용
성도로서 죽음을 잘 준비하고 있는가?
어떤 겸손한 환경에 계신가? 그 환경에 잘 매여 있는가?
스스로 풀려고 해서 더 꽁꽁 묶여 있지 않는가?
버리고 싶은 남편, 아내 자녀가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는 나귀 새끼임이 인정되는가?
::2) 말씀을 이루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모태신앙인데 29살 때,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이과, 문과, 고시, 노량진.. 고생을 많이 했다.
아기가 기형아 진단, 딸이 놀이터에서 다투는 사건,
고난도 나누어서 오면 좋은데 한 꺼번에 왔다.
4개월 동안 침묵하시는 것 같아 원망했는데,
화해조정을 통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구나,
섭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주시는 말씀에 순종하다보면 길이 있다.*
순종하면 기름 부어 임하신다. 말씀을 이루는 복된 청년들 되길,
*적용
하나님의 아들이신 말씀자체이신 예수님도 순종하셨다는 말씀에 몇 프로 도전이 되는가?
인생 전체를 붙드는 말씀, 한해 붙잡는 말씀, 매일 붙드는 말씀이 있는가?
말씀을 이룬 적용, 간증이 있는가?
::3) 기복적인 영광을 넘어서는 분명한 신앙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무리들이 겉옷을 내놓았다. 소중한 것을 드렸다는 것이다.
종려나무는 기쁨, 환호한다는 뜻이다. 왜, 열광하는가?
자신의 고난을 해결하실 메시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팔복이 아닌 기복에 열광한 것이다.
십자가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 없기 때문이다.
*기복이 아닌 십자가로 오신 구원의 주님이심을 깨달아야 한다.*
나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왔는데, 회피...
공동체에 붙어가니 여전히 병 낫는 것을 원하는 실상,
안되는 나 때문에 애통해야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나도 팔복산으로 초청하는 것에 아멘으로 화답하게 되었다.
*적용
기복적인 메시야를 바라며 십작를 회피하는 제자인가? 분노하는 무리인가?
고난 가운데 예수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고 분명한 신앙고백을 드리는가?
요즘 나의 신앙생활은 뜨거운가? 미지근한가? 차가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