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5 주일설교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작년 딱 이때쯤 <성령의 황홀>이라는 제목으로 목사님께서 사도행전 말씀을 전해주 셨는데요. 그때 저는 「영적지수」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습니다. 세상에 보탬이 되는 존재라고 보는 그 기준이 200점이라고 합니다. 저는 200점 아래였습니다. 수치심 20점, 죄의식이 30점, 무기력이 50점. 전부 저의 전공입니다. 반면에 700점에서 무려 1천 점에 해당하는 항목을 하나 소개해 주셨는데 무엇인지 혹시 기억하십니까? 바로 제일 높은 지표였는데 깨달음이라고 하셨어요. 이 깨달음에 다다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참 애를 많이 씁니다. 영적지수를 이번 주에 5가 아니라 한 500 정도 되는 업그레이드를 한 것 같은 한 주를 보냈습니다. 지난 주일 말씀 <팔복산의 배부름>에서 우리 신앙의 목표는 내가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벌써 한 영적지수가 한 100 정 도 되는 기쁨을 누렸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한 주간 정말 돈 주고는 살 수 없는 천 국은 마치의 그런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가 되었고 그래서 웃었고, 또 회 개가 되면서 울었습니다. 지상 최고의 감정을 맛보았던 한 주였죠. 오늘은 이 이야기를 좀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 제목을 2절 말씀 본문에서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게서 내게로 올 것이라> 입니다. 이 말의 주어가 하나님인 것이죠. 기복산에서 팔복산으로, 행복에서 거룩으로 나와 줄 수 없겠니? 무조건 내가 잘 돼야 돼! 내가 잘 되고 봐야 돼! 하는 그런 강박에서 자기부인 을 하고 십자가 지는 내가 죽어야 하는 그 십자가 앞으로 좀 나와줄 수 없겠니? 하나님이 오늘 우리를 부르고 계신 줄 믿습니다.
1. 내 삶에 허락하신 작을지라도가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미가서 말씀을 묵상하기 시작했는데요. 미가 선지자는 이사야와 같은 시대에 함께 사역하던 사역자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 중에서 미가는 썩 유명한 선지자 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알고 보면 꽤 고참급의 선지자였습니다. 유명한 예레미야 선지자보다 100년은 앞선 사람이었고 이 예레미야서를 보면 미가의 굉장히 지조 있었던 그런 사역 때문에 100년 후에 이 예레미야 선지자도 목숨을 건진 그런 특이점이 있습니다. 제일 신기한 것은 예수님이 오시기 무려 700년 전에 이미 예수님이 베들레헴이라는 작은 동네에서 탄생하실 것을 정확하게 예언했다는 것입니다. 미가서는 북이스라엘이 아수르에 의해 멸망당하는 시점에서 남유다 너희도 하나님을 따르지 않으면 계속 우상을 섬기면 저렇게 되리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자 가 오실 텐데 그래서 너희들을 구원하시리라고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교차적으로 전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5장에서 이 땅에 오시는 구원자의 모습은 그 메시아를 기다려왔던 그 사람들의 기대, 그리고 원함과는 좀 사뭇 달랐습니다. 아주 상반된 것이었죠. 진정한 메시아라면 이렇게 뭔가 짜잔~!하고 또 위대한 예루살렘 성에서 짜잔하고 즉위해서 이 풍전등화 같은 참 그 시대였습니다. 그 이스라엘을 멋지게 딱 구원해 주셔야 되는 게 아닌가? 근데 이 베들레햄은 당시 사람들은 하나도 모르는 잘 알려지지 않은 그런 동네였어요. 이제 여호수아때 1천 명 이상 된 천부장이 나올 만한 유다의 기업들을 소개 할 때 베들레헴이 소개해 주는 그 명단에서 빠집니다. 다만 성경을 좀 아는 그 시대 사람들에게는 라헬이 해산하면서 죽으면서 이 자식을 위해서 애곡했던 동네구나. 애통함이 있었던 그런 동네였구나 정도로만 알려졌을 그런 곳 입니다. 주님이 찬란하고 위대한 성이 아니라 작디 작은 동네에서 메시아가 오신다고 예언을 하니 그게 맞나?하고 의아해했을 것 같습니 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시죠. 메시아가 이 예루살렘의 왕으로 멋있게 아주 위대하게 딱 등장해서 정복 전쟁에서 승리해 나간다면 그런 메시아를 따르지 않을 사람이 그런 메시아를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모두가 다 손을 들고 호산 나를 외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이 사람들이 메시아의 이 작을지라도의 개념을 이해가 잘되지 않는 것이죠. 하나님보다 자기 생각과 자기의 잘됨이 우선인 사람은 예수의 길과 예수의 방식에 대한 미움과 무시가 딱 깔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잘됨도 물론 소중하죠. 잘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그래도 좀 보이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기존의 왕들 기존의 패권과는 뭔가 좀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가 의지하는 위엄은 보좌에 앉아서 이 렇게 거드름 피우는 그런 권위가 아니라는 것이죠. 4절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이 왕으로 오셨는데도 특이한 표현이 있습니다. 서서 서서 우리를 먹이시는 목자라 하십 니다. 서는 것은 종의 모습인데, 목축해주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안연히거하리라고 안연히 거주할 것이라 하십니다. 그가 샬롬이 되셔서 올해의 표어처럼 '이제는 안심하라' 그가 우리를 섬겨주시니, 우리가 안심할 수 있는 것이라 약속하시는 것이죠.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섬기시는 리더십입니다. 주님이 왕복을 입고 딱 이렇게 오셨으면 그 권세만 보이지 거기서 얻어낼 것만 보이지 그 예수님의 인격,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분 자체는 잘 보이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주님은 작을지라도의 그 베들레헴에서 오시고, 말구유로 오시고, 작은 점 으로 우리에게 오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작게 오시는 주님이 해석이 되지 않아서 주님을 바라보게 되기까지 참 오 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제 인생의 작을지라도 이것이 전혀 해석되지가 못했던 것 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으니 모든 문제가 없애야 돼! 고 난도 쓱쓱 잘 풀어내야 하고, 점점 죄도 짓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제 상황들, 제 모습들, 제 현실을 보면 너무 답답했고, 비참한 것이죠. 해석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늘 1절부터 이 메시아를 기다리는 우리들을 뭐라고 부르냐면 딸이라고 불러요. 딸군대여 이 앗수르의 대군이 막 몰려오고 있잖아요. 3절을 보면 이 메시아가 오시기까지 그들 손에 너희 들을 붙여두시겠다고 하시는데 이 상황을 해산하는 여인같다고 자도 하십니다. 전쟁시, 산통을 지금 겪는 그 여인이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정말 말 그대로 꼼짝 못하고 당해야 합니다. 전적 무능의 상태입니다.
제 안에 20점의 수치심, 30점의 죄의식, 50점의 무기력이 있었다고 했는데 어릴 때 부터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제안에 참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나중에 정신과를 갔더니 해리가 있다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기억을 많이 잊어버린 부분이 많은 것 같다고. 해리가 있어서 다 기억은 안나요. 근데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동네 형 들을 따라서 동네 형들이라고해야 초등학교 형들이었죠. 형들을 따라서 비행 행위를 참 많이 저질렀습니다. 델몬트병을 주어 한 2~3km 되는 곳까지 제가 이렇게 원정을 다니면서 병을 주워서 팔았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들어 가기 전인데 길에서 꽁초를 주어서 입담배를 했습니다. 그리고 여탕을 높은 담을 넘어서 들어가 뭔지도 모르면서 감흥도 없는데 여탕을 훔쳐보고. 형들은 막 좋아하는데 누가 어른들이 올까 봐 망봐주 고. 그리고 자동차 와이퍼 부셔뜨렸어요. 뽑아서 오락실에 가서 찌르면 돈 올라가거든요.
가장 기억하기 싫은 장소는 옥상, 공사장 이런 장소였어요. 여러 차례 형들이 그때는 뭔지 모를 이상한 짓을 할 때가 있었어요. 근데 부모님께 말씀을 못 드렸어요. 저희 아버지는 늘 녹초가 되어서 집에 들어오셨고, 저희 어머니는 그런 상황 속에서 늘 울고 계셨기 때문에 저까지 뭔가 부모님의 짐이 되고 걱정을 끼쳐드리면 안 된다는 그런 생각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아이 에게 벌써 이렇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제안에 성적인 죄의식- 30 점 짜리 의식-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게 제 현실을 보면서 더 열등감이 또 생기고, 이 가난에 대한 수치심도 더 생겨났습니다.
***똥개를 길렀다가 새끼를 팔라는 아빠때문에 개를 들고 다니다가 좋아하던 여자아이를 만났던 나눔, 집이 푸세식인 것을 처음 알게 된 사건.
*** 친구와 싸웠는데, 무력한 아빠를 보고 낮은 자존감이 더 건들여지는 사건
오늘 1절 말씀에 막대기로 자기 지도자가 뺨을 맞는 모습을 보게 되는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했는데 저도 가난 때문에 생긴 열등감과 수치심이 참 많았고 늘 남들 앞에 고개를 숙이고 계시는 그 무능한 아빠가 참 부끄러웠습니다. 한술 더 떠 하나님께 기도도 그때부터 많이 했습니다.
근데 제가 한 달 전에 아까 얘기했던 그 치즈를 같이 훔쳐 먹던 그 친구를 코엑스에서 만났습니다. 참 돈도 많은데 주름도 없고 얼굴도 잘생기고 늘 자신감이 차 있고 나랑은 다르게 이렇게 유머러스하고, 여유가 있고 미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 와서 홍콩에서 개원을 한다고 합니다. 근데 한 2~3시간 쭉 얘기를 하는데 계속 듣 고 있어도 하나님에 대한 얘기가 없는 거예요. 그 친구와 같은 교회에서 자랐잖아 요. 근데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 그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결혼도 자기는 안 하겠다고 그러면서 혼자 살고 있는데, 그 친구랑 헤어지고 휘문으로 쭉 걸어오는 길에 문득 감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있으니까요. 볼품없는 나지만, 정말 제가 오히려 하나님 없으면 살 수가 없는 그런 사람으로 하나님이 만들어주셨구나! 진짜 길고 짧은 건 대봐야 되는구나! 하는 말이 인정이 됐습니다. 그러면서 '그 친구 하나님 만나야 됩니다. 그 병원 망하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기도가 잘 안나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거절감이 많으니 무슨 기도가 나오겠습니까?
아무리 기도해도 안 들어주실 것 같은데... 하는 그 생각이 제 마음 바닥에 깔려있는 것이 있습니다. 가난부터 이어진 거절감을 가장 많이 느꼈던 기도 제목은 '하나님, 제가 좀 죄짓지 않게 해주세요.' 하는 그 기도였습니다. 어릴 적 성폭력에 대한 상처로 인해 저는 사춘기때부터 음란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에 가면서 하나님을 떠나서 사람의 애정, 인정에 굶주리고 목말라서 제가 혼전순결도 지키지 못했고, 낙태도 저지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매달려서 기도를 많이 했어 요. '도와달라고 기도해도, 근데 작심 삼일인 거죠. 야동 삼일인 거죠. '하나님, 제가 뭐 이제 와서 제가 잘 먹고 잘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 죄 좀 짓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 는데 그게 좀 끊어지길 기도하는데... 하나님 마음에 좀 쏙 드는 사람 되게 해달라 고 기도하는데 하나님 이 기도에 응답을 안 하신다고요?' 제가 몇 번 이렇게 대들 다가 결국 시험에 빠졌습니다. 혹시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아닌가? 난 종교쟁인가? 택자가 아닌 게 아닐까? 성령 받아야 한다고 하시는데 왜 나에게는 이렇게 성령을 안 주시지? 목사 된 지가 10년인데 마음 한 쪽 귀퉁이에 이렇게 회의감이 항상 있 었어요.
그런데 지난주에 하나님이 왜 응답하지 않으셨느냐에 대한 그 이유를 제가 깨닫게 된 것이죠. 목사님이 신앙의 목표가 내가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 다고 하시는 거예요. 진정한 의는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시라고하십니다. 말씀을 곱씹으면서 죄를 안 짓게 해달라는 제 기도에 얼마나 많은 교만, 욕심이 가득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죄를 짓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에는 굉장히 교묘하게 제가 예수님이 되고자 함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저는 정말 용서와 구원이 필요한 사람인데 인정을 못한 것이죠. 주님 자체가 목적이 되고 그 관계성 안에서 신뢰와 사랑이 점점 쌓여야 하는데 저는 주님의 능력을 수단 으로 삼아서 제 자신이 죄 안 짓는 어떤 성인, 위인이 되고자했고 훌륭하게 자라나서 결국은 예수님 없이 칭송받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는 그런 적그리스도 같은 그런 마음 이 저에게 있었음을 보게 되었고 깨달아졌습니다. 여러분들께도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도 해석되지 않는 그 작을지라도의 세팅이 있을 텐 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그 이유가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직면하면서 묵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적용/
마음 속에 하나님에 대해 서운한 감정들, 거절감이 숨어 있지 않으십니까?
내 삶을 허락하신 작을지라도의 세팅이 여전히 해석이 안 되어 자기연민에 갇혀 있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 번째로
2. 나를 많은 백성 가운데 두신 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참 목자이신 예수님은 한 마리 양을 찾아 헤매시는 그 사랑으로 남은 자를 끝내 찾아내십니다. 야곱의 남은 자는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여러 나라 가운데,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라 하십니다. 육적 이스라엘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이 되게하시는 것입니다. 이방인인 우리들은 하나님 나라를 밖에 있던 자들이지만 이 유대인들이 스스로 선민이라 여기면서 특권 의식을 누리려고만 했던 이 유대인들의 거부때문에 넓어져 우리까지 전해졌습니다. 복음은 그런 것입니다. 심판도 반드시 함께합니다. 이슬과 단비 같아서 이 남녀노소, 빈부귀천에 차별 없이 누구에게든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지만, 동시에 이 양떼 앞에 젊은 사자처럼 복음에 대항하는 모든 세속적 가치를 밟고 찢어 진멸케 하는 것도 바로 복음입니다.
오늘 5절 말씀에 주님이 평강이 되시리라고 하세요. 근데 또 반대로 마태복음에서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 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고 검을 주러 왔느니라'
복음엔 이렇게 양면이 있는 것 같지만 또 그 양면이 결국 하나입니다. 복음은 따뜻한 권면이고, 격려인 동시에 이 기복산에는 얼른 내려와하며 엉덩이를 차주는 고통이기도 합니다.
*** 네팔 아웃리치에서 난임 고난이신 집사님의 자궁외임신 후 유산 사건.
*** 아버지를 모시고 아웃리치를 간 청년의 나눔과 아직도 행해지는 네팔의 인간을 바치는 제사
아웃리치 시간 중에 우리들에게 주신 말씀이 마태복음 13장 여러 비유로 천국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겨자씨 같은 믿음을 품은 야곱의 남은 자들이 있다고. 하나님은 그 들을 통해 이미 천국을 만들어가고 계셨습니다.
***네팔 현지 목사님 (실명되는 고난을 가진 분인데, 현지에서 겨자씨같은 믿음으로 지켜가는 나눔)
적용/
전도 대상자에게 따뜻한 위로와 도움만 주면서 막상 교회로 나오셔서 말씀 들으셔야 한다는 그 본론은 말씀 못하고 있지 않으십니까?
반대로 손과 발이 가는 섬김의 적용이 없어서 '너나 잘 믿으세요~' 하는 조롱을 듣지는 않으셨습니까?
많은 백성 가운데 나를 두신 이유가 영혼 구원 때문임을 인정하십니까?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세 번째로
3. 하나님이 내 삶 가운데 이루실 심판이 반가워야 합니다.
마지막 단락에서 카이로스의 때에 그날이 이르러 하나님이 내게 이루실 심판의 일들을 말씀하십니다. 의지하는 병거와 군마같은 모든 것을 먼저 부수겠다 하십니다. 구원의 그날이 이르면 내가 의지하고 살았던 모든 것들- 차, 집, 보험, 스 펙, 학식, 외모, 인간관계 등 모든 것들이 필요 없게 만드시겠다고 하셔요.
다음으로 네가 새긴 우상과 주상을 멸절하겠다고 하세요. 그 우상, 주석, 주상 들을누가 믿냐? 하겠지만 의외로 사람들이 두려워합니다. 영적 기운을 두려워하거나, 부정탈 것을 겁내기도 합니다. 초원님이 한 목자님의 이 달마도를 좀 치우고 싶은데 못 치우길래 아무렇지도 않게 뜯어내가지고 버려버리고 했습니다.
복술과 또 점쟁이도 끊어내겠다고 하십니다. 사람은 장차 올 일을 너무 알고 싶어 하죠. 두려움이 있고, 또 욕심이 있어서 그런 것 같습 니다. 미리 알게 되어 부정은 피하고 길한 것은 더 받고싶고 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우리들교회 양육 잘 받으면 그런 두려움이 없어져요.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고 죽으면 천국가자! 대가지불! 성령 충만이 갈등 충만입니다! 있어야 할 일! 붙회떨감! 이런 가치관으로 우리의 정신을 무장하면 됩니다. 부모학교는 10시부터 신청입니다. 우리의 최대 우상인 자녀를 건강히 기르기 위해서 꼭 신청합시다!
마지막 15절 말씀 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진노와 분노로 순종하지 아니한 나라에 갚으리라 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내게 진노와 분노로 대하시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 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반가우십니까?
저는 조금씩이지만 그게 좀 반가워지기 시작했어요.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요.
첫째는 제가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이 애통해졌기 때문입니다. 평생 말씀이 들리지 않을까봐 정말 하나님 이 저에게 진노와 분노로 찾아오셔서 양육해 주시고, 치료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 을 하게 됩니다.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서 매주 진짜 말씀이 들리고, 영적 지수가 업그레이드 되어 가는 그런 저와 여러분들 되셨으 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는 분수령적인 회개가 정말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 결단 때문입니다. 지난 목요일 본문 2장 1절 말씀입니다. 늘 회개를 하면 '하나님 용서해주세요. 용서해주세요.' 이렇게 중얼거리기만 했던 것 같아요. 용서해달라는 기도하는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라 맹목적으로 그 용서를 구하가기를 반복 하는 제 마음의 자세에 문제가 있었구나 하는 것을 요즘 많이 보게 됩니다. 마치 이런 심정인 것이죠. 하나님 한번만 넘어가주세요. 한번만 덮어주세요 ampbullampbullampbull 맹목적으로 해온 이 회개에는 결국 하나님께 면죄부 좀 주셔서 마음대로 살 수 있는 그 권리와 권한을 이렇게 요청하는 그런 마음의 기도였 던 것입니다.
그런 제 기도가 바뀌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 무섭게 진노해 주십시오. 눈물이 쏙 빠지게 분노해 주십시오. 죄에 대한 대가를 제게 모두 갚아 주십시오.' 제가 정말 구속사의 말씀을 들으면서 인생의 목적이 또 변해가면서 저희 기도의 마음도 변해 가고 있습니다.
말씀 묵상의 꽃이 적용인데 말씀을 취사 선택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여전히 내가 주인인 삶을 살고 있으며 자기애와 또 자기 중심적 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고, 하나님께로 온전히 나아오지 못한 증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제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명하십니다. 저희들에게 하나님이 더 이상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됐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의 보험이 아니라 상급 그 자체가 되면 좋겠습니다.
적용/
내가 가장 의지하는 무기는 무엇입니까?
내가 두려워 눈치 보는 우상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말씀을 취사선택하면서 듣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나눔]
1. 해석되어야 할 작을지라도의 고난은 무엇인지?
2. 나한테 가장 큰 우상은 무엇인지?
안식
1. 누나와 형의 얼마 남지않은 것 같은 신결혼에 대한 선포시간. 불신결혼 하게 되더라도 꼭 신결혼 했으면 좋겠다. 불신결혼하면 정말 힘들것이다 하는 선포를 해야하는데,
시간이 이래저래 지체가되어 정말 많이 남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누나 생일 때 그렇게 신결혼 했으면 좋겠다고 간곡하게 얘기하는 일이 있었음
2. 나한테는 가족우상, 여자친구우상이 최근에는 가장 컸었다. 그래서 이제 내려놓고 담대해질 수 있도록 하나님이 회복시켜주시는 중이다.
송현
1. 어릴때부터는 부모님이 정말 끌어주는 게 있어서 억지로라도 나올 수 있는 힘이 있었는데, 20살 이후부터 혼자 살고 있으니 교회 나오는게 여간 어렵다.
목장이라도 참석하자는 마음으로 나오지만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2. 아직 우상은 잘 모르겠음.
이현우
1. 여자친구와의 계속된 관계문제. 저번주에 피드백듣고 결혼과 그냥 연애는 다른 문제라고 인정이되서 얘기를 했다. 일본가면 정말 결혼을 하는 건데, 난 아직 확신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앞으로는 다양한 관점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검증해야될 것 같다고 얘기를 했더니, 여자친구가 울었다. 왜 화가 나는진 모르겠지만 화가 난다고 하네요.
2. 여자친구가 그래도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같다. 현재로서.
김태윤
1. 나는 군대에서의 힘든 생활 동시에 여자친구와 실연, 그로인해 시작된 불안장애까지. 너무 한꺼번에 모든 게 겹쳐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항상 평균만 가자, 평범하게 살자. 이런게 내 마인드인데, 이 불안장애가 상당히 나를 무너뜨리는 것 같아 속상하다.
[기도제목]
기도제목
송현
- 복학 후 새로 시작하는 것들이 많은데 군 제대 이후 의욕이 많은 상태. 이 마음을 지켜주시기를
- 교회 나오는 게 힘들다. 예배, 오고 가는 과정이 참 힘든데, 목장에 다같이 나올 수 있었으면
이현우
- 여자친구를 못마땅하지 않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마음이 회복되도록
- 여러 갈등 상황에 대해서 해석될 수 있기를
김태윤
- 매 주 예배 잘 나올 수 있도록
- 일상이 회복될 수 있도록
안식
- 기분 나쁜 피드백을 들었다고 상처받고 마는 게 아니라, 왜 이 얘기를 듣게 하셨는지 알 수 있도록
- 목장 양육 과정동안 지치지 않게 해주시기를, 영육간에 지켜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