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17:1~8(변화산에서 내려갑시다) _정지훈 목사님
목장모임(박예랑, 김영민, 백승, 이정민, 정병은, 위준아)
1.주님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가야 합니다.(17:1~2)
내려오려면 일단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누구와 함께 가는가가 중요합니다. 본문 앞에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화려한 도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누구로 아느냐 물으십니다. 그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살아계신 아들이시니이다라고 정확하게 신앙고백 합니다.이 고백을 주님이 칭찬 하셨지만 너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알려주신 것이라고 하십니다.오늘 본문은 이 일 후 엿새후에 로 시작 합니다. 고난과 십자가, 부활을 이야기 하시니 제자들이 감당을 못할까봐 일주일을 기다리십니다. 억지로 그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질 때까지 주님은 늘 우리를 기다리십니다.제자들은 어떤 일주일을 보냈을까? 근심을 했을 것 같다. 예수님을 그리스도, 기름부음을 받은 자, 메시야라고 신앙고백을 합니다. 그러면 그 고백에 부흥해주셔서 주님이 잘되고 이제 뭔가 대단한 것을 보여주셔야 할 것 같은데, 도리어 고난 받고 죽으실 것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부활을 이야기하시니 혼란스럽지 않았겠는가? 근심이 많을 때는 육체적인 피로가 답이라고 생각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엿새 후에 베드로와 야고보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 가십니다.고난이 없는 제자들은 예수님 따라다니는게 고난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다고 인정해주는것도 아니고 주님께 꾸중은 꾸중대로 듣습니다.인간적으로 본다면 대책없고 따르기 힘든 분 아니었겠는가? 그러니 따라다니는 것이 고난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고쳐주셨던 문둥병자, 중풍병자 등 엄청난 고난에서 엄청난 신앙고백을 한 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제자가 되지는 못합니다.
적용 :주님이 팔복과 기복 가운데 근심하는 여러분들을 높은 산에 데리고 가신 사건은 무엇입니까?환경의 가난함으로 해 같이 빛나는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신 적이 있습니까?이제 THINK 양육이 시작 될텐데 특별히 나를 불편하게 하는 야단을 잘 맞기로 결단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2.여기가 좋사오니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17:3~5)
예수님이 해같이 빛나는 모습으로 빛나던 그 때에 율법의 대표인 모세 선지자의 대표인 엘리야가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최고로 여기는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님을 증거해 줍니다. 누가복음 9:31-32에는 이때 예수님이 두 사람과 함께 장차 예수님이 별세하실 것을 이야기했다고 하는데 그때 제자들이 졸았다고 더욱 자세히 고발하고 있습니다. 변형된 영광의 모습을 눈으로 보는데 십자가 지실 것을 이야기하니 제자들이 못듣고 졸았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말씀이 안들리고 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다시말해 주님은 100% 옳으시고 나는 100% 죄인이라는 것을 모르면 정작 들어야 할 것을 못 듣습니다.성경말씀을 아무리 줄줄 외어도 갑자기 내가 겪은 고난을 이야기하면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예수님이 아무리 천국 복음을 전하셔도 이 땅에서 잘 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목적인 사람은 고난과 십자가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졸다가 일어난 우리의 베드로가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가 나눈 십자가 이야기는 못듣고 그냥 그 모습이 너무 좋으니 여기가 좋사오니 라고 합니다. 양육을 받고 높은 산에 오르는 훈련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졸고 분별을 못하니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제자들을 덮는 사건을 허락 하십니다. 주님을 위해서 하겠다고 한 일이지만 내 안에 처리되지 못하고 훈련되지 못한 부분을 다루시기 위해서, 그래야 진정한 온유의 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두운 구름이 아니라 빛난 구름이라고 하십니다.
적용 :여러분이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여기는 환경은 무엇입니까?십자가의 말씀을 듣기보다 보여지는 영광만 쫓아서 헛된 열심을 가지고 초막을 짓겠다고 하지는 않으십니까?내 사랑하고 기뻐하는 대상이 주님이십니까? 아니면 세상이십니까?
3.오직 주님만 보여야 합니다.(17:6~8)
영광가운데 있다가 갑자기 구름이 덮이고 그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게 되었는데 그것이 제자들에게는 엎드리고 두려운 일이 됩니다.십자가의 표적이 아니라 요나의 표적이 아니라 이 세상의 표적을 가지고 악하고 음란하게, 적당하게 타협하면서, 적당하게 신앙생활 하면서, 적당히 초막 짓고 편하게 살고싶은데, 그렇게 적당히 살아서는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하기에 주님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사건을 주시고 그 사건을 통해 말씀을 주십니다.우리 스스로 거룩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은 온 우주를 동원하셔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세상이 아니라 말씀이신 주님이라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두려워하는 것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여전히 못 깨닫고 분별도 못하고 구원과 상관없는 열심만 많은 제자들에게 손을 대시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너네가 나의 제자이니 일어나야 한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일어나라고 하시는 이 음성이 들리면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겁이 없어져서 두렵지 않은것이 아니라 정말 두려워 해야할 대상을 깨닫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난리 소문을 듣고 환란과 지진과 같은 사건을 마주해도 그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게되는 것입니다.주님이 만져주시고 말씀해주시니 제자들이 그제서야 눈을 들고 봅니다. 그때 마태는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모세와 엘리야는 보이지 않고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라고 기록합니다. 내가 짓고싶은 초막을 못지을까봐 두렵고 내열심과 노력이 거절당할까봐 두렵습니다. 또 각자의 피해의식과 열등감, 분노 시기심, 상처에 구브러지고 어그러진 초막에 갇혀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적용 :여러분은 오직 예수님만 보이는 인생을 살고 계십니까? 다른 것은 다 보여도 예수님이 안 보이는 것 같은 일은 무엇입니까? 내가 기쁨으로 내려와야 할 변화산은 무엇이고 또 기쁨으로 올라가야 할 팔복산은 무엇입니까?
*목장 공통 나눔 (여러분이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여기는 환경은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A - 내 모습 잘 직면하고 가면서 무시 잘 받아 낮아질 수 있도록, 형이 교회에 빨리 나올 수 있도록, 모든 결정을 할때 공동체, 하나님께 묻고 결정할 수 있도록
B - 이번주 공연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C - 게을러 지지 않도록.
D - 쾌락주의를 끊어내고 주일에 교회에 나올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 질 수 있도록.
E- 육체적으로 좋다고 생각하는 환경에서 말씀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F - 누나 앞에서 예의를 갖추고 누나의 경고를 명심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