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9일 주일설교
정지훈 목사님
변화산에서 내려갑시다.
마태복음 17장 1절 - 8절
어..저는 산을 싫어합니다. 산을 멀리서 볼때 아름답다. 어차피 내려올건데 왜 올라가야하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을 보니 예수님은 산을 좋아하시는것 같습니다. 산악인 수준입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산을 타는 것이힘들었을것 같은데 많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지난 2주간 천국복음을 들었는데 가난한자의 심령 자신의 전적인 빈곤을 가진자가 천국을 가진다고 했고 인간적인 원통한자가 아니라 영혼에 대한 애통함을 가지고 있는자가구원을 얻는다고 하셨씁니다. 야생마와 같은 우리가 훈련되어져서 내 생각을 누르는자가 온유한 자이고 영원한 땅의 기업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 설교뒤에 제가 설교하는데 가난과 애통이 절로 나왔습니다.
가난과 애통의 복을 누렸고 천국을 누리니 어떤 설교를 받아낼수 있는 온유의 기업을 받는 성도님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팔복산이 아니라 변화산인데 난리가 났습니다 .어떻게 올라간인데 내려가냐고 하니까 팔복산이 아니고 변화산이라고 하나 아차했습니다. 이땅에 발을 딛이며 살기때문에 때마다 기복적인 가치관에 도전받습니다.
좋은 직장 환경 주식 부동산 내 배우자와 자녀는 왜 회복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까?
변화산에서 내려가라면
1.주님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가야 합니다.
내려오려면 일단 올라가야합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누구와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냐 물어봤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앙고백이라고 했지만
너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알려주셨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베드로도 자기가 했던 말을 몰랐던것이 고난이 주님께 가지않을 것이라고 난리를 쳤습니다. 베드로나 제자들이 말씀을 듣지 못해도 그들이 누리는 복은 주님으로 인해 있따는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제자들이 감당못할가봐 일주일을 기다리십니다. 신앙고백을 했지만 억지로 십자가를 지라는게 아니라 스스로 질때까지 기다려주십니다. 제자들은 근심을 많이 했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신앙고백이라고 했잖아요 부흥해주셔서 잘되고 대단한것을 보여주셔야 할것 같은데
도리어 고난받고 죽으실것을 이야기하니 혼란스러워할것 같습니다. 엿새 후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산에 높은산에 올라가셨다고합니다. 설교를 준비하다가 머리에 생각은 많고 준비하면서 나도 산에 올라가보자 그래서 저희집 뒷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별짓을 다했습니다
놀라운것을 깨달았습니다. 너무 힘들어요 별로 높은산도 아닌데 그래서 산은 보는것이라는 생각이들었습니다. 고난이 없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고난이었을것 같습니다. 주님은 내아버지 집에 거할곳이 많다. 심지어 공중의 새 여우도 굴이 있는데 노숙을 하시거든요
인간적으로 보면 대책없고 힘든분이었고 따르는 것이 고난이었을것 같습니다. 엄청난 신앙고백을 한사람은 많지만 제자는 되지 못했습니다. 꾸준히 옆에있는 사람을 제자로 만들어 가십니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라고 하시니 근심했던 제자들을 산으로 데려가셨는데 해같은 모습으로 변형되셨습니다. 목적을 알려주시는 것 입니다. 지난주에 산에 오르면서 드는 생각은 저는 편한 삶을 추구했다는 사람이었던것 같습니다.
말그대로 행복한 삶이 목적이었고 효과 효율이 목적이었고 쉴때도 편안한것을 우선순위로 둘때가 많습니다. 산을 오른다는것은 편안한다는것을 추구하는 것 이잖아요. 이런 맥락에서 멀리서 산을 보면서 보는 저에게 산과 함께 나무도 보라는
날마다 직면하라는 우리들교회가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것을 고난이었것처럼 저도 그런 자였던것이 인정되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은 너무 좋고 목장에서의 보살핌이 좋긴했지만 처방을 들으며 잘 소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냥 별 이유 없이 뭉탱이로 교만하시네요 라고 하면 그냥 사람이 다 교만하죠. 반응하다가 양육을 받으면서 이부분이 교만한거라고 지적당하니 인정안되고 괴로웠습니다.
그때부터 주님이 제 인생을 수리하시기로 마음먹었지만 그래도 근심하는 제자였습니다.
그렇게 근심하다가 주님이 틀렸다고 떠나갔던 사람이 저였습니다 그런 저를 엿새동안 기다려주시다가 올라갔던 사건이 공황장애 사건입니다.
숨을 쉬고있는데 숨이쉬어지지 않고 땀이 비오듯이 헐떡이는 절대적인 무능함을 온몸으로 겪었던 그 시간들 언제 올지 모르는 발작때문에 오는 시간이 평생을 편하게 살려고 했던 저에게 산을 올라가는 불편함을 넘어선 어둠의 시간이었습니다.
죽을 용기는 없고 날마다 자기전에 다음날 눈에 떠지지 않게해달라는 기도를하면서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보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평생 심령의 가난을 겪어보지 못하고 온유함보다는 혈기로 살았던 저에게 너는 나에게 누구냐라는 물어보는 절대적인 양육의 시간이었습니다.
병원에서 뒹굴도 있을그때 담임목사님의 말씀과 성도님들의 간증이 생각났습니다.
내안의 사탄의 나라가 무너지지 못해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지 못한다는 그말이 천둥처럼 들렸습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기며 살았을때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내 환경의 가난함이 되자 해같이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역의 성공과 야망으로 살았기에 제 속에는 사탄의 나라가 꽈리를 틀고 있었습니다. 인정받고 싶었기에 사역을 못하게 하는것이 정말 하나님이 나에게 알맞게 주시는 고난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 소화되지 못한 말씀들이 소화가 되지 시작했습니다. 양육의 말씀들이 깨달아지니 인정되어 지기 시작했고 예수님의 옳음이 인정되었습니다. 변화산의 사건이었습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주님이 팔복고가 기복 가운데 근심하는 여러분들을 높은 산에 데리고 가신 사건은 무엇입니까?
환경의 가난함으로 해 같이 빛나는 주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신 적이 있습니까?
2.여기가 좋사오니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율법의 대표인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증거해줍니다. 누가는 이때 예수님이 두사람과 함께 장차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별세하실것이라고 했는데 제자들이 졸고있는 모습을 누가가 고발합니다. 여전히 말씀이 안들리고 내가 틀렸다는것을 깨닫지 못하며 주님은 옳으시고 나는 틀렸다는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들어야할 것을 못 듣습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천국복음을 전하셔도 이땅에서 잘사는것이 목적이면 고난과 십자가의 이야기를 듣지 못합니다. 잘되는 말씀만 전해달라고 합니다.
졸다가 일어난 우리의 베드로가 예수님과 엘리야의 이야기를 못듣고 모습이 너무 보기 좋으니 여기 있는곳이 좋사오니 합니다. 혈기가 많은 베드로이니 감수성이 풍부했을것 같습니다. 와우 뷰티풀 이모습데로 여기서 살자고 합니다.
우리도 은혜받고 황홀경을 느끼는 때가 있죠 어제 청소년부 큐페가 끝나는데 언제 한번 집에가는데 선교사로 가겠다고 일어나서 집에가는데 집에 오자마자 저희 어머니가 앉아계시는데 제가 이런이야기를 하면 좋아할것 같아서 내가 선교사로 헌신했어 라고 하니 어머니가 한번 씨익 웃으시니 열방이고 나발이고 니방부터 치우라고,열방은 내방부터 시작한다는 가르침이었어요.
여전히 양육이 안된 베드로가 썩어 없어질 초막을 짓겠다고 합니다. 처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자고 합니다. 나는 자연인을 살자고 합니다. 이것은 베드로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내 믿음의 수준만큼 주님을 생각하는 우매함이 있습니다.
말씀가치관이 내삶에 적용되어야지 내 가치관에 주님을 가두는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양육을 받고 높은 산에 오르는 훈련을 받았음에도 분별을 못하니 구름이 덮는 사건이 오니 방황하게 됩니다. 그래야 진정한 복을 누릴수 있기에 이런 사건을 허락하시고 빛난 구름이라고 하십니다.
빛을 주는 제자의 인생이 되면 빛구름이 되는 사건이 되는것입니다.
결혼 후 목사 안수도 받았습니다. 예쁜두딸도 허락해주셨지만 어느순간 가난함과 애통함이 없고 여기가 좋사오니 했습니다.
제가 이상한 사람이고 틀린사람임을 깨달았지만 평생 혼자서 편하게 살다가 아내랑 사는것이 불편했습니다.
은혜는 없고 서로가 죄인을 확인 했습니다. 이러다가 이혼할수 있겠다 이혼 1호가 될수 없으나 사별을 해야하나 이 생각도 했습니다.
그중에 돈에 관한 부분에 많이 부딪혔습니다. 저는 과외와 학원강사로 돈을 많이 벌다보니 훈련이 되지 못했습니다. 돈이 없는데도 제가 돈을 내야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으로 존재감을 느끼며 살았습니다.
제안에 돈의 허세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 내것을 아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것이 아닌것도 제문제였습니다. 필요이상의 돈을 쓰면서 장비를 구입하는것이 문제였습니다.
위하여 위하여 부르짖으니 실상은 제가 하고싶은데로 살다보니 두번의 치리를 받게 하셨습니다. 모든것의 끝에는 돈이 있다고 하니 제 삶을 되돌아 보게되었습니다. 공개적으로 치리를 받게되니 괴로웠습니다.
치리를 결정하신 목사님의 기도를 보면서 찬양을 인도했는데 많이 울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러워서 울었고 죄가 많아서 울었습니다.
처음에는 창피했지만 저와 같이 울어주시던 치리의 조상들 선배님들과 목장식구들을 보면서 제가 얼마나 죄에 대해 감각이 없는 사람인것을 깨달았습니다. 담임목사님의 양육과 설득하심 하나님의 참으심으로 인해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높은 산에 오르는 구름의 시간을 겪게된것이 인정됩니다. 이런양육을 통해 주님이 상급이 되어야하는것을 깨달았습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여기는 환경은 무엇입니까?
내 사랑하고 기뻐하는 대상이 주님이십니까 아니면 세상입니까?
3.오직 주님만 보여야 합니다.
영광가운데 있다가 구름이 덮이고 그 순간 음성이 들리게 되었는데 제자들에게는 엎드리고 두려운사건이 되었습니다. 이세상의 표적을 가지고 악하고 음란하고 타협하고 적당하게 신앙생활하면서 살고싶은데 적당히 살아서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주님은 사건을 주시고 말씀을 주십니다.
주님은 온 우주를 동원하셔서 세상을 두려워하는것이 아닌 말씀을 두려워해야한다고 하십니다. 주님은 정죄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말라고 합니다. 그래도 너희가 나의 제자이니 일어나야 한다고 하십니다. 겁이 없어져서 두렵지 않은것이 아니라 정말 두려워할 대상을 깨닫기에 환란과 지진과 같은 사건이 와도일희일비 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만져주시고 말씀해주시니 그제서야 눈을 뜨고 봅니다. 마태는 그제서야 예수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전통이 아니라 이제는 예수님만 보이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예수를 믿으면서 학벌 스펙 자존심등 세상의 것을 가지지 못하기에 두려워하고 분을 냅니다.
짓고 싶은 초막을 못 지을것 같아 두려워합니다. 분노와 시기심 상처의 초막에 갇혀서 예수를 보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든것을 내려놓고 엎드려질때 예수께 배우게 되고 멍에를 지며 가벼워지는 인생이 됩니다.
구속하신 예수님만 보이시는 이것이 변화산 양육의 결론입니다. 그렇게 양육을 거쳤다고 생각했고 여기저기서 간증을 많이 하고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감사함으로 했지만 치리의 기간도 끝나고 10년넘게 공황증세도 나타나지 않기에 해결되었다 하면서 이제는 되어진 모델로 쓰임받고 싶었습니다.
칭찬받고 인정받는것을 좋기에 예수님외에 다른것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오직 예수님만 봐야하는데 오직 예수님만 안보이더라 이렇게 되요. 또다시 인정받고자 할때 쯤 그런 저에게 주님은 속지 않으셨고 10년만에 공황발작이 재발되는 사건으로 찾아오셧씁니다.
일상생활에서 아무것도 못하니 큰 충격이 왔습니다. 그것보다 힘들었던것은 10년동안 양육과 치리를 받았는데 바뀌지 못한 저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답이 없는 제 자신을 보면서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는 제 모습이 한심해 보였습니다.
고향으로 내려가야 생각할때쯤 정신과에서 만난 편지를 목사님이 읽어주셨습니다.
저스스로를 고발하게 되면서 넘어기지 직전에 그 청년이 성령의 고발을 하게 되면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다음주에 공황장애를 인정하게되고 성령의 고백으로 간증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정신과 약을 먹어야지 일상생활을 할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제는 약을 끊어야 할것 같아 병원에 갔지만
약이 한알이 더 늘어났습니다. 십년이 지나도 된것이 없다는것을 성령의 고백으로 인정하게 되니 기쁜마음으로 일상을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날마다 약할때 약을 먹어야 주님이 강함되시는 놀라운 신비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공황으로 숨쉬는 것이 힘들어지니 기도가 단순해졌습니다. 내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을때 주님 숨만 쉴수 있게 해달라고 살려달라고 단순하면서 원초적인 기도가 나왔습니다.
높은 산에 오르는 고난과 예수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 될때 변화산에 내려와 팔복산으로 오를 수 있습니다. 이모든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자 거룩의 사건이기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건입니다. 그 산을 내려오는 결론으로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에게 이사건은 흑역사 일 것 입니다. 이후에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하가 되었습니다. 닭이 오고 주님이 바라봐주셨을때 통곡하면서 울수 있었떤것은 주님의 사랑의 양육때문이었을것입니다.
평생 이모습을 베드로는 잊지 못할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성령의 우리들 행전을 써내려가고있습니까? 어떻게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는것을 생각할때 진정한 우리들 행전입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오직 예수님만 보이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까?
내가 기쁨으로 내려와야할 변화산은 무엇이고 기쁨으로 올라가야할 팔복산은 무엇입니까?
모든것이 불확실하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선택을 해야될때는 청년의 때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치관이 바로 서야합니다. 하루에도 수십번 때려치우고 편안하게 오른손을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옵니다.
십자가의 온유의 복을 누리기 위해 변화산을 통과하는 우리들 청년들이있습니다. 우리들교회 출신들이 20년동안 이혼을 하지 않았다는것이 팔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팔복공동체를 이어가야할 우리들교회 청년들이 팔복을 잘 써내려갈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변화산에서 내려가는 것은 주님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가야 하고 여기가 좋사오니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며 오직 주님만 보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