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205 주일설교
마태복음 5:1-4
MZ 세대는 못 알아듣는 세대다.
주님 자체가 상급이 안 되면 쓴 소리 듣기가 참 힘들다.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시고 가장 먼저 하신 설교가 팔복에 대한 설교다. 우리는 돈을 너무 좋아한다. 그러나 팔복은 세상의 복과 전혀 다르다.
발복 설교가 행해신 산 정상에는 팔복교회가 세워졌다고 한다.
1.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 마태복음 5장 1절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 마태복음 5장 2절
각종 병에 걸려 고통 당하는 자, 중풍병자들 등 수많은 자들이 에수를 따른다. 육신의 병과 마음의 병에 걸린 자들이 너무도 많다. 예수님은 수많은 무리를 보셨다고 한다. 에이도는 보다는 뜻을 넘어 알다, 관찰하다, 자각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정확히 보시고 그들을 분별하셨다. 그러자 나아온 것은 제자들이다.
마태는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다루니까 앉아서 가르친다고 하셨고 누가는 서서 가르쳤다고 기록했다.
누가복음을 보면 산상수훈 전에 제자들 12명을 세우셨다. 즉 제자들은 12사도를 중심으로 한 제자들이다. 양육 초기에 제자들이 얼마나 연약했겠는가. 그러나 제자들은 자기들을 불러주신 은혜를 알았다. 선택받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다. 제자답진 않았지만 제자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 증거로 그들은 머물고 싶은 무리를 떠나 산을 오르고 예수님을 따른다. 이 세상 복 중에 가장 큰 복은 말씀이 들리는 것이다.
인기와 대접이 있는 무리 가운데 있으면 편하지만 그곳에서는 말씀을 들을 수가 없다. 아무리 무리가 좋아도 그곳에는 예수님이 안 계신다. 시끄러운 소리 뿐이다. 내가 편한 자리를 떠나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것이 제자로서의 첫 걸음이다. 제자는 스승의 뒤를 따라야 한다. 함께 가야 한다. 그렇게 나온 제자들에게 주님은 입을 열어 가르치셨다고 한다. 팔복의 말씀을 매우 강조하셨다. 팔복 설교는 십자가를 관통하는 성경의 핵심 메시지다. 이것이 제자훈련의 본질이다.
우리 모두 제자가 되어야 한다. 제자를 키워야 한다. 예수님께 나아왔다는 것은 신체적으나 심적으로 매우 갔다는 것이다. 구약의 모세와 달리 제자들은 아무런 격이 없이 하나님이신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 매우 친근하게 예수님께 복음을 듣는다.
이 예배의 자리인 팔복산 현장 예배당에 올라와 예배하고 있습니까?
팔복산에 올라오기를 방해하는 더 편하고 좋은 무리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수요예배 주일예배 목장예배 수련회 등의 팔복산에 잘 올라가야 한다. 우리는 깨닫지 못해도 가장 큰 상을 주신다.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예배드리는 모습을 잘 보여준 것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2. 가난한 자가 가는 곳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 마태복음 5장 3절
여기서 복이라는 단어는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행복할 상태를 말한다. 행복의 최상급을 말한다.
복 있는 자는 심령이 가난한 자라고 하신다. 강조점은 심령이 아니라 가난한에 있다. 누가복음에는 심령이라는 말도 안 나와 있다. 일반적으로 복과 가난은 양립할 수 없다. 팔복의 첫 문장을 듣자마자 제자들이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천국이 이미 가난한 자들, 제자들의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다. 가난의 복은 뒤에 계속되는 모든 복들을 알려주는 열쇠다. 이미 이루어진 구원 말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구원을 향해 나아갈 때 팔복의 복음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팔복의 복은 행위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이미 받은 구원에 더하여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구원을 향해 달려가는 성화의 복을 의미한다.
가난 = 프토코스 = 절대적 가난, 웅크린 모습
아무리 가난해도 자신이 가난함을 모를 수가 있다. 이를 악물고 그 가난을 버티려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자는 오히려 심령이 가난하지 않고 부하다. 자신이 의지할 것이 없어서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이다. 인생은 하나님 없이 겸손할 수가 없다. 성품으로 겸손할 수가 없다. 성품으로 겸손한 사람이 가장 예수 믿기 어렵다. 하나님을 아는 겸손은 세상의 겸손과 비교할 수도 없다.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고 외치며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가 겸손한 자다. 다윗은 물질적으로 가난하지 않아도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인생을 살았다. 그 인생은 이미 제자의 인생이었다. 솔로몬은 다윗의 가난을 보면서 자기 열심으로 살다가 천 명의 이방 여인을 두는 죄를 짓는다. 솔로몬은 가난하지 않았다. 오직 주님께만 소망을 둔 자라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가난하고 부하고는 물질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영의 문제이기도 하다.
유다는 가난을 선으로 생각하고 향유를 깨뜨려 예수님의 발을 씻는 여인을 비판한다. 유다는 합리적으로 앞뒤가 맞는 말만 한다. 그러나 유다 안에 사탄이 왕노릇했다. 예수님이 왕이시고 구원이심을 알지 못한 것이다. 말씀이 안 들리니 정죄와 비판이 끊어지지 않았고, 행위구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팔복은 행위구원이 아니다. 요셉이 아니라 유다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구속사로 모든 것이 이어진다.
이제는 예수님을 소유하기 위해 손을 뻗고 어디든지 따라가야 한다. 내가 51대 49로 예수 믿는 세계로 넘어왔다면, 51에서 100까지 가기 위한 길이 참 멀다. 천국 가는 그날까지 100에 도달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 자신에게 자꾸만 실망하게 된다. 주님을 사랑하는데 왜 나는 이럴까.. 하면서 자책이 된다. 그러니 심령이 가난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가난을 보고 절망하고 엎드려져서 웅크려 울며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늘 하나님 앞에서는 주눅이 들어야 한다. 너무 사랑해서 기쁘기도 하지만.. 너무도 거룩한 그분 앞에서 두렵고 주눅도 드는 것이다. 가까이 하기엔 하나님이 너무 거룩하시기에..
우리는 그래도 가난을 너무 싫어한다. 그래서 나를 가난하게 할 수밖에 없는 그 환경이야말로 천국을 소유할 수 있게 하는 축복이다. 가난하게 되는 환경이 너무도 축복이다. 천국이 나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의 축복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축복. 택자들을 돌이키시기 위해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주님을 모르는 사람은 겸손할 수가 없다.
여러분은 심령이 가난합니까? 그냥 가난합니까? 부자입니까?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합니까?
여러분이 가난해서 하나님이 쩔쩔매시면서 설명하시는 음성이 들리십니까?
가난하게 되는 것이 축복인데.. 자꾸만 그 환경을 벗어나려 하니까.. 하나님이 지체들을 통해 그것을 설명하시고 말리신다.
3. 애통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마태복음 5장 4절
우리가 다 애통을 착각한다. 애통은 슬픈 상황 때문에 눈물 흘리는 것이 아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죽었을 때 다윗이 슬피 운다. 근데 다윗의 심복 요압은 그 눈물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게 되묻는다. 왕을 반역한 자 압살롬을 위해서는 눈물 흘리시고 왕을 위해 충성한 자는 왜 미워하시냐고 화를 낸다. 압살롬은 다윗에게 반역했고 많은 사람들이 압살롬 편을 들었다. 요압은 다윗의 편에 남아서 압살롬을 죽여버린다.
압살롬을 죽이자니 기가 맥히고 안 죽이자니 나라가 망하는.. 이런 가난한 상황 속에서 다윗은 애통해한다. 요압은 이것이 이해가 안 된다. 내가 복이 있는지 없는지는 애통함을 통해 알 수 있다.
원통한 자는 이것을 알 수 없다. 늘 남 탓을 한다. 원통의 눈물을 흘리는 자는 세상 표적이 목적이라 끔찍한 인생을 살게 된다. 광풍의 사건 속에서 사람의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야 하는데..
애통은 나와 너의 구원을 위해서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눈물 흘리는 것이다. 죄 때문에 눈물 흘리는 것이다. '말씀이 들리세요?'라는 질문은 당신이 죄인인 것이 깨달아지냐고 묻는 것이다. 병 낫기만을 원하는 무리는 예수님을 아무도 안 따라간다. 산에 오르지 못한다.
예수를 믿게 하려는 소망을 가지고 안 될수록 눈물 흘리고.. 그와 똑같은 내 모습을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세월이 지날수록 정죄가 끊어지고 여전히 연약하고 죄인인 내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정죄가 애통함이 되고 기도가 되는 것이다. 자기가 깨어지지 않으면 이것이 안 보인다.
사람이 깨어지기 원해서는 자신의 끈질긴 죄성을 인정해야 한다. 야곱의 죄성이 얼마나 끈질겼는가 보자. 야곱은 평생 자신의 원수가 형과 라반이라고 생각했다. 원수를 갚기 위해 열심히 인내하며 돈 벌고 아내를 얻어 가족을 이룬다. 야곱은 잔꾀가 아주 많아서 형을 만나기 직전까지 모든 계획을 세운다. 20년의 훈련이 끝나도 자기 죄가 안 보이고 애통할 일이 없었던 야곱이다. 야곱과 하나님은 해뜰 때까지 씨름을 한다. 이 씨름은 문제를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야곱의 자아를 깨뜨리기 위해서다. 진짜 원수는 에서와 라반이 아니라 끊어지지 않는 나의 죄성과 교만임을 알려주신 것이다. 이것은 야곱이 하나님을 붙들고 기도를 많이 했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야곱의 죄성이 얼마나 끈질긴 것인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기도를 많이해도 내가 깨지지 않으면 기복을 위한 기도밖에 안 나온다. 내 죄성이 얼마나 끈질긴가를 깨닫는 것이 기도 응답이다. 예수님은 해가 뜨자 떠나시면서 환도뼈를 깨는 선물을 주신다. 이때 야곱은 상대가 하나님임을 깨닫고 하나님을 붙잡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이름을 묻는다. 히브리 사람의 이름은 그 사람의 본성을 의미한다. 야곱은 발목을 붙잡는자라는 뜻이다. 자신의 본성이 속이는 자고 죄인임을 깨닫게 되자, 그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시며 구원의 인을 쳐주신다.
야곱이 탐욕적이고 교만하기에 라반과 에서가 너무 미운 것이다. 이기적인 이 세상에서 내 죄성을 보라고 이기적인 사람을 붙여주시는 것이다. 이기적인 사람을 보면서 난리를 친다면 그 사람도 똑같은 사람인 것이다. 상대방의 악함은 나의 악함을 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인 것이다. 아멘.
옳고그름으로, 기복적인 가치관으로 살면 용서가 안 된다. 자신에게 유익한 것만 구한다. 나 자신의 죄된 자아 때문에 애통하는 사람은 위로를 받게 된다고 하신다. 파라칼레오는 성령이다. 내 죄를 위해 절망하고 애통할 때 성령이 나를 안아주시고 위로해주신다. 내 애통의 크기가 깊을수록 위로도 깊고 깊다.
죄를 낱낱이 고백하는 것이 복음적인 애통이다. 회개하는 사람은 상처가 난 사람과 같다. 의사에게 모든 상처를 보여줘야 치료를 받을 수 있다. 말씀 앞에 내 죄를 고백하고 공동체에 고백한다면 함께 애통해하고 성령이 주시는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무엇 때문에 애통합니까?
조숭한 것을 상실하여 애통합니까? 나 자신 때문에 절망하여 애통합니까?
공동체 안에서 위로를 받기만 합니까? 위로를 전하는 통로가 되고 있습니까?
구원보다 더 좋은 것은 이 세상에 없다.
교회에서 참고 인내하면서 천국을 연습할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세상 모임에서는 그게 안 된다. 내 원수가 나임을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십자가 길을 잘 가는 제자가 되어야 한다. 가난한 것은 내 자신에 대하여 절망하는 것이다. 절망하니까 애통한 것이다. 애통한 자는 성령의 위로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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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보
참석자: 서한결, 김지호, 장현우, 이승윤, 안현재, 선호
이 예배의 자리인 팔복산 현장 예배당에 올라와 예배하고 있습니까?
팔복산에 올라오기를 방해하는 더 편하고 좋은 무리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현우: 요즘은 별일이 없어서 예배의 자리를 기쁜 마음으로 잘 지키고 있는데.. 대학도 가고 일도 하고 하면 어떨지 모르겠어.. 지금은 시간이 비어서 오는 느낌.. 엄마가 늘 차도 태워주시고.. 친구들이랑 술 먹는 것도 그렇게 유혹은 아니에요.
현재(특별출연): 나도 할 게 없이 나가기는 하는데 가끔 나가기 싫어.. 유튜브 보다가 재밌어서 예배에 가기가 싫어.. 그래도 지체들이 있어서 함께 갈 수 있지.
이번주부터 학교에서 워크샵 진행을 하는데 저녁예배를 준비하면서도 자꾸 일이라고 생각하게 돼. 기도로 시작하지 못하고 그냥 일을 시작해버려. 그냥 빨리 끝내고 싶은 거지. 그냥 하기 싫고 귀찮아.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 거든. 주님이 세우신 자린데 순종이 안 되는 거지. 원래 인정 받는 거 너무 좋아해서 이런 걸 엄청 좋아하는데 한 번 인정중독이 깨지고 나니까 좀 무기력만 남은 것 같아.
승윤: 기숙학원에 들어가면 예배에 가는 게 방해가 되니까.. 기숙학원 들어가는 게 좋은 무리의 자리인 것 같아요.. 이번 주 적용이 2번 가정예배였는데 드리긴 드렸어. 학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주인데 친구들이랑 너무 놀면 큐티를 못하니까.. 이것도 참 문제야..
여러분은 심령이 가난합니까? 그냥 가난합니까? 부자입니까?
하나님을 얼마나 의지합니까?
여러분이 가난해서 하나님이 쩔쩔매시면서 설명하시는 음성이 들리십니까?
지호: 저는 저의 가난한 환경 탓만 하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하나님께 의지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늘 어머니와 저희 가정환경을 원망했었는데 이번 수련회에서 지선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나도 어머니가 믿는 그 예수님께 의지하고 천국 복음을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우: 나도 매일 큐티하다 보면 스스로 되었다 여기면서 바로 음란의 죄에 넘어지는 것 같아.. 술마시러 다니는 교회 친구한테 잔소리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내가 쇼핑을 좋아하는데 요즘 점점 돈이 부족해지고 있어서 마음이 가난해지고 있어.. 요즘 약속이 많아서 돈이 많이 필요한데.. 돈이 없으니까 참 마음이 가난해지더라구요..
현재: 우리 고등부 애 하나가 수련회를 갑자기 안 간다 그래서 마음이 좀 가난해져쓰.. 어머님도 학원 때매 못 간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내 간증을 나누면서 설득했는데 어머님이 금밤에 보낸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내가 수련회 도중에 차로 데리러 가려 했는데 너무 오바하는 것 같기도 해서 별지기님한테 물어봤는데 오바라고 하시더라고. 내가 수련회에서 은혜를 너무 받았는데 오바라는 말을 들으니까 좀 낙심이 되더라고. 내가 내 말을 번복하는 걸 너무 싫어해.
선호(특별출연): 요즘 마음 졸라 가난해요. 다른 친구들은 인생에 목표도 있고 비전도 있는데 그게 너무 부러워요. 단순히 대학이 부러운 게 아니라요.. 중3때까지 운동을 했었는데 그만두고 나서 삶의 목적이 사라졌거든요.. 그만두고 4월에 바로 중간고사가 있었는데 놀 애들도 없고 해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공부를 하면서도 계속 이 시간이면 내가 훈련하러 갔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공부를 너무 안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지금 의지할 곳이 교회밖에 없어요. 재수학원 알아봐야죠 지금.. 독학 재수학원 다닐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