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우리들 행진 - 사도행전 28장 28절-31절
2019년 9월 2일이후 129번 강행인데 2015년 부터 시작하면 135번 강행 입니다 사도행전이 사람이 중요한게 사도행전이라 했는데 바울 행전을 날마다 읽으며 성령 행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자신 있으십니까? 교회에 사도행전이 성령 행전이 되어서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 행전을 잘쓰려면
1. 그런즉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28절 그런즉이라고 합니다 279명이 구원 받은 얘기를 전해도 듣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왜 자신의 구세주 사상을 버리지 못했을까요? 끝에는 돈과 이익이 있습니다 거창한 명분이 없었고 이익과 인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이 우둔하고 완악함을 버리지 못해 바울이 얼마나 답답했을 까요.
우리가 큐티를 해야되는 이유가 이렇습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대단해도 학습 능력이 없습니다 마지막 한개 남는 직업이 목사라고 합니다 공감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살을 막는 것은 공감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고 큐티와 가정을 지키는 얘기에 간증을 미주알고주알 했습니다 열심히 전도해주시길 바랍니다.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믿길 거부하니 이방인을 보냅니다 시집살이 당해본 사람이 더 잘 더 심하다고 그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지독히 더 차별합니다 자기 동족 예수님을 안믿는게 이상한데 진영논리 인권 논리 아무리 듣고 봐도 믿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바울이 말하는데도 안믿으니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분이 얼마나 많았을지 생각하니 사명이 더 생깁니다
29절은 없음입니다 바울이 너희가 이러니 이방으로 가는거잖아 해도 사방으로 흩어졌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을 차별하기에 이방으로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 밥먹이기 힘든데 이성 친구가 놀러오면 갑자기 맛있게 먹습니다 그런데 부모마음이 내아이가 잘먹어야되는데 이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내 아이가 잘먹긴 바라는 이 마음이 유대인을 보는 마음입니다
바울이 유대인들을 그럼에도 사랑했듯이 저또한 남자 목사를 세우고 전하며 가는 것입니다 여성차별이 아니라 동등하지만 역할이 있는 것입니다 이 역할을 지키며 가니 교회가 부흥 했습니다 여러분도 직장에서 가정에서 역할에 순종하는 사람이 성공과 부흥을 하게 됩니다
적용질문
여러분이 차별받았다고 더 차별하는 것은 무엇이고 누구인지?
차별받지도 않았는데 차별하는 것은 무엇인지?
2. 여전한 방식으로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해야 합니다.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2년을 수감되어있었던 것처럼 로마에서도 만2년이라는 시간을 가택연금으로 지냈습니다. 바울도 그렇게 원했던 로마에 가이사에게로 가서 짠 하고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가 복음 믿고 황제가 믿고 바울이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았더라 로 끝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바울의 삶이 실패로 끝났을까요?
보기엔 실패 같지만 오늘 하루를 감사하고 가면 됩니다 이것이 최고의 행전을 쓰는 것입니다 가이사랴에 전하는 것도 로마에 전하는 것도 똑같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영혼한테 전하는 것 여러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똑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영접했습니다
영접하고는 미완료 과거형이라 바울의 집을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고 그들이 모두 바울을 영접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영접했고는 사도행전 2장에 세례받을때 쓰인 단어와 동일합니다. 그럼 우리들도 끊이지 않고 영접해야합니다. 자기에게 오는 사람에게 전하면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많이 오고 성공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성령받기위해서 우리는 영접해야합니다. 그 집과 모인 장소가 영접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적용질문
자기 집에서 목장을 하고 있나요?
목장 모임에 쓰는 내 시간과 물질이 아까운가요? 기쁜가요?
모였을 때 성령이 임해서 예수의 일로 나누나요? 교제 중심인가요?
3. 거침없이 입니다.
31절
사도행전이 마지막이 이상하게 끝납니다 마지막을 부사로 끝내는 것이 없는데 사도행전 마지막 구절이 담대하게 가르치니라 거침없이 끝나는데 결국 사도행전은 끝나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담대하게의 헬라어 파레시아는 오순절에 베드로가 담대하게 연설하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얻지 못하면 이런 담대한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재판과 구금이라는 수치스러운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담대하게 복음의 증인으로 우뚝 섭니다. 그는 과거 자신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였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했기때문에 이런 담대함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메인 환경일지라도 복음을 결코 메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로마서가 예배의 기초라면 에베소서는 복음의 서신입니다 거침없이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후반부 인생은 비밀로 남습니다. 바울이 순교하고 죽었더라 로 사도행전이 끝나지 않습니다. 로마의 베드로 성당은 베드로 시신이 안치되어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보러 인산인해로 세계에서 모입니다. 가면 자세히 볼 수도 없이 남대문 시장처럼 밀려갑니다. 바로 옆에가면 바울의 참수터가 있는데 너무 초라합니다. 예수님도 바울도 무덤이 없습니다.
16세기 귀족이면서 평신도이면서 천주교에 대해 분연히 일어난 잔느 귀용은 정말 거침없이 전파하고 가르친 분입니다. 이 분은 16살에 결혼해서 아이 둘 낳고 하녀와 시어머니 시집살이가 대단했고, 22살 연상의 남편과는 재앙의 관계였습니다. 12년만에 남편이 죽고 28살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천연두 걸렸는데 시모가 치료받지 못하게 해서 절세미녀인 그녀가 얼굴이 얼거지게되고.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으며 신부 앞에서 고해성사를 해야하는데 시집살이로 나갈 수가 없어서 누구한테 배운게 아니고 자기가 하나님께 직접 기도할 수 있더라 하면서 배움도 일천한 그녀가 성경으로 기도하기, 말씀으로 기도하기, 예수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기 라는 책을 썼습니다. 책을 내고 힘든 사람들에게 그게 읽혀졌고 명성이 높아졌습니다. 한쪽에서 비방과 조롱 속에 위험한 인물이라고, 말못할 수치와 사무치는 억울함에도 불구하고 영적지도를 해나갔다고 합니다. 로마 교황청의 주교는 이외에도 귀용 부인이 내 신부야 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어린 사슴같구나하는 아가서의 해석을 구속사적으로 책을 썼다고, 여자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아가서를 썼다며 이단이라고 몰아세워서 카톨릭 당국과 루이14세에 의해 바스티오 감옥에 7년이나 갇혀있었습니다. 이런 핍박가운데 있던 잔느 귀용 책은 그때 몰래몰래 금서처럼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후에 중국 선교 허드슨 테일러, 존 웨슬리 등 영적 거장들이 이 책을 보고 아주 영감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걸 옛날에 읽고 저와 너무나 비슷한 사람이 이 땅에 있어 아 내가 책을 쓰지 않아도 되겠구나 했습니다. 300년 전에 비슷한 사람이 있구나, 해 아래 새것이 없구나. 그런데 귀용 부인이 믿음의 핏값을 치르고 홀로 깨달은 책을 남겼는데, 귀용이 그당시 신비주의이고 천주교 색채가 많아서 이해가 안될 수 있습니다. 삶의 적용 부분은 다룰 수 없는, 너무 경건합니다. 그런데 그 스토리 자체로 은혜를 받았습니다. 좀더 나아가 성경이 어떻게 성도의 삶에 적용되는지까지 전하고자 하는 것이고, 저도 지나고보니 책이 많이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육필원고에는 맨 앞장에 연필로 이 책을 읽는 자는 복이 있는 자입니다로 써있다고 합니다. 그 당시는 귀용을 담아낼 수가 없다 천주교가. 50년이 지난 후까지도 담아낼 수 없었다. 그에 비하면 저는 명함을 못내밉니다. 그런 잔느 귀용도 감옥생활에 대해서는 안썼다. 만약 그렇다면 바스티오 감옥이 성지가 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복음 전했다 로 끝나야한다. 귀용도 복음전하다 갔다 해야합니다. 그 나머지는 우리가 완성해야 합니다. 어떻게 완성해야 할까요? 복음 전하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볼 때 거듭나고나서 보니까 내가 시장가서 전하고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전하는데 그만한게 없었습니다. 내가 못나가고, 돈도 안주고.. 하는 그 욕심 때문에 내가 예수믿는것을 핍박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옷사입지 말라고하면 안사면 되고 돈 안주면서 반찬이 왜 이모양이냐고 하면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참 많은 지혜를 주셨습니다. 시어머니가 우리 며느리는 해치(사치)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을 끝내면서 우리들행전을 거침없이 쓰려면 우리가 중요합니다. 이 사도행전을 이렇게 기가막히게 쓴 누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4복음서 중에는 누가복음이 문체가 가장 훌륭합니다. 신약 전체 중에서는 사도행전이 문체가 가장 좋습니다. 헬라인이었던 이방인 누가의 길은 어부출신인 베드로와 요한, 학문적 배경을 정확히 알 수 없는 마태와 마가, 유대식 정통교육을 받았던 바울보다 아주 세련된 문체와 더 세밀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누가복음에만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탁월함이 있습니다. 체험신앙이 있기에 누가에게 정말 예수님과 바울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한번도 자기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데 후에 하나님께선 사도행전과 누가복음에 누가의 이름을 드러내주십니다.
바울과 누가 중 누가 높을까요? 디모데는 바울을 유쾌하게 하고 동행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쓰면서 유언이 남았습니다 왜 바울이 누가보다 디모데를 제일 보고싶어 했을까요? 디모데는 편하지만 누가가 너무 똑똑하고 잘쓰길래 어렵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누가에게 열등감이 있었던거 같습니다.
바울에게는 없는 유쾌함이 디모데에게 있기에 디모데를 보고싶어 했던 거 같습니다. 똑똑함에도 바울을 겸손히 섬겨가는 누가를 보며 하나님께서 후에 이름을 남겨주시고 안아주신것 같습니다.
이 소수의 인원이 세계 선교를 했습니다. 대단한 바울이지만 그를 지킨 것은 디모데와 누가였습니다. 혼혈과 노예(의사)출신이였습니다.
사도행전 끝에 바울에 순교에 대해 써지지 않은 것은 결국 바울도 누가도 아닌 하나님을 높이기 위함을 나타냄이었습니다 이 소수의 이름의 목장을 인도가 한사람이 목장을 살리고 이끌어 갑니다.
적용질문
우리는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나요? 바울인가요 누가인가요 디모데인가요?
공동체에서 드러나지 않는 나의 역할 때문에 비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도움받는 누가가 좋은가요? 도와주는 디모데가 좋은가요?
여러분은 겸손한가요? 환경이 겸손해서 겸손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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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언니
-워홀 신청하고 결과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상아
- 운전면허 공부하기
차별하지 않고 언니들을 잘 섬겨갈 수 있도록
희수
- 중고사기당한 사건을 잘 받아들이고 지나갈 수 있도록
회사에서 미워하는 옆의 사원을 잘 섬길 수 있도록
은혜
-생활예배 꾸준히 할 수 있도록
이번주 안에 레슨 자리 구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