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23.01.15
제목: 성령의 우리들행전 | 차별하지 않아요
본문: 사도행전 28:28-31
설교: 김양재 목사님
2019년 9월 1일에 다시시작한 사도행전 129번째 강해구요 2016년 9월 시작했던 10월까지 했던 6번까지 했던 설교까지 더하면 135번째 강해 입니다. 굉장히 햇수로 말하면7년 됩니다. 그때 성령충만 설교를 하면서 암 확진 된것을 말씀 드렸고 그리스도 신비를 보이기를 기도했고 그날 저는 한번도 안울었습니다. 아직 사명이 남았는지 주님이 회복시켜 주셨어요. 사도행전이 사람이 중요하기에 성령행전이 아니고 사도행전이라고 네이밍을 했다고 했어요. 그러나 성령이 동행하는 바울의 성령 행전을 치열하게 읽으면서 매주일 날마다 성령받기를 기도하면서 설교 했습니다. 간신히 로마에 도착하듯 우리들도 사도행전 마지막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마지막날 심판대 앞에서 자신 있으십니까? 아직도 늦지 않았으니까 성령받으시길 바랍니다. 교회 사명으로 시작된 사도행전이 성령행전으로 이어져서 바울처럼 거침없이 나아가는 우리들행전을 쓰길 소원합니다. 우리들 행전을 어떻게 하면 잘쓸까 생각해볼게요.
첫째로 그런즉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28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바울은 그런즉이라고 해요 사도바울이 로마까지 와서 자신의 죽을뻔한 경험에서 276명이 모두 구원받은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아요. 유대인들이 자기가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와 자기가 기대하는 메시아 상을 그렇게 버리지 못했을까요 인간이 다 악하고 음란한데 명분이나 사상만 가지고 목숨을 걸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우리가 말씀이 안들리는 항상 맨끝에는 돈과 음란이 있어요. 말씀이 안들리는 사람의 특징이 거창한 명분으로 전쟁도 하고 혁명도 하는것 같지만 그 내막을 잘 살펴보면 끝에는 늘 이권과 이익이 있더라구요. 그래서 사람이 믿음의 대상이 아닌거에요. 유대인 지도자들이 우둔하고 완악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귀막고 눈감고 배척을 하는거에요. 그러니 바울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유대인같은 경우를 이번주일에 경험을 하면서 인권이 왕노릇 하기때문에 이혼하지말라고 하면 난리가 나잖아요. 그런데 모두 이혼하지말라고 자살하지 말라고 그래서 큐티하라고 새롭게 하소서에 어렵게 나갔습니다. 그런데 간증내용중에 내가 자살하고 싶었다에 유튜브 AI 인공지능에 걸려가지고 문자적으로 거기 자살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시청자 주의가 필요하다고 알고리즘을 막고 있습니다. 과학문맹의 맹점이 이것인데요. AI이도 이런 간증을 들어 본적이 없어서 학습을 해야 고친다고 합니다. 학습이 된것만 한대요. 저는 수요일에 방송 시작하면서 복음이 전하려면 사단의 공격이 있는데 기도해 달라고 했는데 사단의 공격이 인공지능으로 부터 왔네요. 우리가 큐티를 해야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데요. 인공지능이 모든것을 다 해줄거 같아도 문자적으로 듣는거에요. 인공지능 시대에 모든 직업이 다없어지고 의사직업도 다없어지는데 한가지 남는게 목사라고 하잖아요. 공감을 못하는거에여. 유대인이 절벽같이 못알아 듣는데 AI가 못알아 듣는거에요. 구글이나 유튜브에서 수정을 해야 하는데아무리 새롭게 하소서에서 이의를 제기해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어요. AI가 눈감고 귀막고 유대인과 같은데요 AI 세력은 거대한 사단이 밀고 오는 세력같습니다. 저는 어차피 힘들게 나간것인데 여러분들은 사정이 이렇게 됐으니까 열혈히 퍼다 나르세요. 이혼을 막아야 되고 자살을 막아야 하잖아요. 제가 자살을 시키는 사람처럼 이런 억울한 일이 이세상에 어디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은 힘내고 퍼다 나르세요. 이혼,자살을 말려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메시아를 믿기때문에 끝까지 거부하니까 주님이 그 구원을 이방인에게 보내셨어요.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가장 차별받는 민족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그들은 얼마나 이방인을 더 지독하게 차별하는지 몰라요. 우리는 유대인들이 자기 동족 예수님을 안믿는게 너무 이상하잖아요. 그렇게 진영논리 지역감정 이단들이 아무리 듣고 보아도 안들리고 안보이는 것이 같은 일인가봐요 인공지능을 경험하면서 절벽같은 시정이 안되고 있잖아요. 너무 안타깝습니다. 우리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는거에요. 성령의 나라를 말하면서 믿든지 안믿든지 선택을 해야 한다고 했는데 남편은 3대째 모태신앙이고 구원받고 선택받은자이죠. 자기의가 너무 강하고 너무 의로운 사람이라서 의가 걸림돌이 되어서 우리들교회와서 십여년이 되었는데도 이렇게 말씀이 안들릴수도 있구나 안타까운 마음이라는데 남편이 이런 갈등의 문제를 가지고 다른 교회 목사님과 상담을 했는데 우리들교회 시프템이 위험하고 이단시하듯 이야기를 하셨다 하는게에요. 남편의 마음이 더 확고해져서 교회를 떠났다는 거에요. 이런분들이 계세요. 이해할수 없는데 바울이 말하는데도 안믿으니까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까지 이런분들이 안팎으로 또 위로부터 아래까지 얼마나 많았는지 생각하면 제가 사명이니까 여기까지 왔지만 애통이 됩니다. 우리들 행전을 쓰려면 여러분은 이런것을 예비해야 합니다. 새로 목장이 시작 되었는데 이런일이 얼마든지 일어날수 있어요. 성경에 사도행전이 이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잖아요. 29절에는 없음이라고 되어있는데 바울의 복음이 들리질 않으니까 저가 이말을 마칠때에 유대인들이 큰논쟁을 하고 물러가더라 하는 구절이 삽입돼 있다는 거에요. 바울이 이렇게 해도 저들이 하나도 안들리니까 서로 싸우다가 물러 갔다는거에요. 가슴이 미어지지 않아요? 인공지능 우리들교회를 떠나신분 생각하니까 무슨말을 어떻게 해야 겠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바울이 유대인들을 미워 합니까 하나님은 유대인을 차별하지 않아요. 차별해서 구원을 이방인에게 보낸게 아니에요. 우리가 아이를 키워보면 알잖아요. 아이 밥먹이는게 제일 어려워요 아이가 이성친구를 데려오면 따라서 밥을 먹잖아요. 친구가 밥먹는게 이쁘지만은 우리는 그 친구가 이쁜게 아니라 친구때문에 우리애가 먹을까 그것만 바라보고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 것인 거에요. 너희들이 무시하는 이방이 어떻게 믿고 나아가는지 똑똑히 봐 니가 안먹는 이좋은거 쟤는 다먹잖아 이거 다 뺏길거야 너희들도 제발 돌아오라고 이런 말씀인거에요. 사실 저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방인과 같죠 여성은 목사 안수도 주지 않는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한 집사이고 평신도였습니다. 저와같이 연약하고 죄인이 고난받는 한사람에게 하늘이 열리고 말씀이 임하여 이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들 교회를 통해 이땅에 하실말씀임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나라 가장 중심부인 강남에 고속도로를 오가며 모든사람이 볼수 있는 판교에 교회를 세우신것도 우리끼리 잘먹고 신앙생활 잘하라가 아니라 이방인같은 우리들교회가 이땅에 던져야 할 메세지가 있어서 라고 생각 합니다. 여자로서 무시를 당했지만 제가 여자들이여 다 나와라 목에 힘주라가 아니라 바울이 유대인을 사랑하듯이 저또한 집에서는 남편을 세우고 두 교회에서는 남자 목사를 세우는것이 핵심가치에요. 왜냐하면 여자의 머리가 남자고 남자의 머리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남녀는 동등하지만 역할이 있는거에요. 그러므로 남자는 여자를 차별하면 안되는거죠. 이얘기를 40년을 넘게 해오고 있는데 하나님은 큐티선교에나 우리들교회를 부흥 시키셨어요. 지나고 보면 성경데로 원칙데로가 가장 부흥에 비결인줄 믿습니다. 여러분의 목장도 성경데로 원칙데로 인도 하세요. 교회 사명으로 시작된 사도행전 첫 서두에 제가 목욕탕 띵크 목회자 세미나에 대해서 설교를 했어요.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말씀묵상 가정준수 십자가 구원 하나님 나라와 예수그리스도 얘기했어요. 올해가 우리들교회 20주년이 되었는데요. 이것이 우리들이 사명으로 써내려 가야할 우리들 행전입니다. 적용해보세요.
[적용질문]
Q.여러분이 차별 받았다고 더 차별하는 것은 무엇이고 누구입니까?
Q.차별받지도 않았는데 차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시집살이 했다고 더 시집살이 시키고 회사에서도 악한 상사 밑에 있다가 더 악한 상사가 되고 보고 배운게 그것밖에 없어서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똑같이 합니다. 술먹는거 욕하다가 술먹고 바람피는거 욕하다 바람피고 이래요. 차별 받지도 않았는데 차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성령받지 않으면 우리는 바뀔수가 없어요.
두번째로 여전한 방식으로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해야 합니다.
29 (없음)
30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바울은 가이사라에서 2년을 수감되어 있던거 처럼 로마의 새집에서도 만2년이라는 시간동안 가택연금 상태로 지냈어요. 바울이 로마로 그렇게 가기로 원했으면 가이사 황제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고 짠 하고 믿었고 바울이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더라고 끝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바울의 삶이 실패로 끝났나요. 보기에는 실패한것처럼 끝나도 실패한게 아니에요. 우리는 전자동으로 지금 감사하고 살면 내일은 오겠지 생각합니다. 그것도 맞는 얘기지만 더 중요한것은 오늘 하루를 감사하다가 살고 가면 되는거에요. 그 이상도 이하도 없는거에요. 오늘 하루 감사하는게 최고의 성령의 행전을 쓰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가이사 앞에 전하는 것이나 지금 샛집에서 전하는 것이나 차이가 하나도 없는거에요. 저는 경험을 했어요. 제가 피아노 선생까지 내려놓고 하는 바에 지금 무슨 돈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뭘 차별할게 있겠어요.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유대인들은 안믿었으나 여기서 영접하고 번역된 단어는 바울의 집을 찾는 이들이 끊이지 않았던거에요. 유대인들은 안들었지만은 끊임없이 찾아온 사람들은 모두 영접했다는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사도행전 2장에 세례를 받을때 쓰는 단어와 동일해요. 우리들도 끊이지 않고 영접해야 합니다. 많이 모이고 대원 교회가 되고 성공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에요. 예수를 영접하고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여전한 방식으로 목장을 쉬어도 안되고 목장에 오는 사람을 영접해야 하는 것을 이것이 사도행전 마지막 우리들 행전입니다. 바울도 자신의 샛집에 영접을 했다고 하잖아요. 여러분들이 샛방살이 살아도 영접하는게 더 대단한 믿음입니다. 라면을 대접해도 집에서 모여야 합니다. 새신자라도 돌아가면서 순번을 정하도록 정해서 모이도록 권면해야 돼요. 우리가 성령을 받기를 기도했는데 자기 집에 내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는것이 결국 예수를 영접하는것이 성령을 받는 것이고 세례를 받는것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집이 좁아도 집에서 한번 모여 보면 그것이 교회이기때문에 여러분 생각이 달라져요 그렇게 모여 보시면 어려분 집이 교회가 됐잖아요. 그래서 우리들 행전을 쓰기 위해서 우리들 목장이 몰이라고 하니까 세상 모임처럼 친목을 도모하고 술한잔쯤 어때 하면서 먹고 놀아서는 안됩니다. 특별히 남자들끼리 따로 만나가지고 술 문화에서는 서구에서는 술이 음식일수 있어요. 근데 우리나라에서는 자고로 만국 병이에요. 저희 남편도 알콜중독에 가까우니까 날마다 술을 마셔야되니까 결국 술때문에 교회를 못나갔어요. 목장이나 회사나 술절제를 보여 주는게 믿음입니다. 회사에서도 처음에 불이익을 당하겠지만 결국은 행전을 쓸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교회 나오게 한다고 같이 술을 마시면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집니다. 목장 시작이라고 조심하시라고 알려드려요. 그런데 우리가 장로님 댁인데 그렇게 명절날 모이면 술들을 드시는거에요. 아버님 장로님부터 이것때문에 남편이 술에서 떠나질 못했어요. 그러니까 아들이 잘나고 다 자기 일을하면 그런걸로 하지말라고 못해요. 여전한 방식으로 맨처음에는 힘들겠지만은 앞에서 술을 마셔서 기분은 좋겠지만은 뒤로는 밑지는 거에요. 금새는 좋지만은 300년후에 제국을 복음으로 삼키고 유럽의 문명을 바꾸게 될 하나님의 나라 운동은 소박하고 미미하지만 담대하고 거침없는 바울의 샛집 성경공부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들교회 헌신 또한 저희 집에서 시작된 큐티 나눔이에요. 비록 그 시작이 소박하고 미미 했지만은 담대하고 거침없는 말씀 묵상 운동과 성령 역사가 우리들 교회를 여기까지 오게 했는데요. 사람들이 자꾸오니까 모임이 13개로 늘어 났다고 했잖아요. 계속해서 다 영접하라고 여전한 방식으로 영접하라고 국내뿐아니라 해외에 이르기까지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큐티 운동과 복음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전파 되고 주예수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이 전해져 왔어요. 곳곳에서 가정이 회복되었다는 새롭게 하소서 리플을 보면서 저때문에 이혼안했다는 사람이 그런분들이 리플을 달아 주셨어요. 한가정만 살려도 기가막히는데 이 운동이 이러나야 될 운동이 맞죠 한가정만 살아나도 교회 존재 가치가 있는것입니다. 자기집에 적용해보세요.
[적용질문]
Q.자기 집에 목장을 하고 있나요?
Q.목장 모임에 쓰는 내 시간과 물질이 아까운가요? 기쁜가요?
Q.모였을때 성령이 임해서 예수의 일로 나누나요? 교제 중심인가요?
여러분 제가 오늘날 이렇게 목회를 하는것은 오늘 누가 이야기도 했지만은 우리 엄마가 남의집가서는 빨래해주지만 교회에서는 변소청소하고 집에서는 떡해놓고 구역예배드리고 날마다 집에서 맨날 떡해요 시루떡 생각이 나는데 그렇게 하니까 집이 교회잖아요. 오늘날 제가 이렇게 쓰임 받는것이 어머니의 우리집이 날마다 목장예배 처소로 쓰임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 너무 힘들다 보니까 수요일에 와이프에게 문자를 보냈다는 거에요. 갑자기 당신 목소리가 듣고 싶어요. 보냈더니 바로 회신이 왔는데 우웩 두글자가 왔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걸 보는 순간 금새 답장해 줘서 고맙다라고 보냈다는거에요. 이것은 목장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는 나눔을 읽었어요. 목장 대단합니다. 또 한분은 목장이 두렵고 수천번 뛰쳐 나가고 싶고 바뀔때마다 두려웠는데 이런 훈련을 통해 담대함을 준것이 감사합니다. 우리들교회가 저에게 말할수 없는 시스템이다 목장 바뀔때마다 두렵죠 그런데 우리는 절대로 사람들과 말하고 싶지 않아요. 할수 없이 이렇게 바뀔때마다 다른 사람을 만나는 연습을 하다보니까 아이들도 면접을 잘보고 여러분들도 가서 자꾸 싫은 사람을 만나는 훈련을 하잖아요. 말할수 없는 최고의 시스템 맞습니다. 목장 바꼈다고 또 화내지 마시고 왜 바뀌는 거야 이유가 있는겁니다. 이말만 잘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깁니다. 분명히 이익이 있어요.
세번째로 거침없이 입니다.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한글 성경에는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그리스도께 관한것을 가르치되, 그 많은 사람이 없었더라 기억 날거에요. 이 사도행전에 28장 31절 가장 마지막 구절이잖아요. 참 이상하게 끝이 나는거에요. 한글성경으로는 굉장히 평범해 보이지만은 원문을 보면 거침없이라는 부사로 끝나는 거에요. 부사라는 동사 형용사 문자 전체를 수식하는 역할을 하는데요. 한글도 헬라어도 마지막은 부사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예를 들어보면 철수는 매우 빨리달린다 이것이 정상인데 부사가 마지막에 들어가면 철수는 달린다 매우 빨리 이렇게 문장이 끝난거에요. 그래서 우리가 다시 해석을 해보면 바울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며 주예수그리스도 모든것을 가르치더라 거침없이 이러고 끝난거에요. 뭔가 뒤에 다른말이 와야 할것 같지요. 사도행전은 아직 안끝났다는거에요. 담대하게로 번역된 헬라어 파레시아는 오순절에 베드로가 담대하게 연설하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사용이 되었는데요.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알지 못하면 담대한 행동을 할 수 가 없어요. 바울의 재판과 구금이라는 수치스러운 상황에 굴복하지 않고 성령의 충만함으로 담대함으로 복음의 증인으로 우뚝 섭니다. 과거 자신이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스데반을 죽였다는 것을 언제나 기억하고 있으면 자기 죄를 볼때 가장 담대함이 나오는거에요. 자기 죄를 보는것은 죽은 사람을 일으키는 것보다 더 어렵기 때문에 그렇게 어려운 것을 보니까 담대함이 나오죠. 비록 우리들이 아무리 매인 환경에 있을지라도 복음은 결코 매이지 않는거에요. 복음은 생명이 있는거에요. 거침없이 전진하고 전파되는겁니다. 누구도 복음의 역사를 막을수 없어요. 바울은 2년동안 로마에 있으면서 이 시간 4권에 에베소 빌립보 골로세 빌레몬서에 옥중 서신을 쓰고 남겼는데 바울이 감옥에 갇히고 불행한일 같지만은 그때 나가 돌아다니면서 개척을 하면서 교회 몇개를 세운거보다는 옥중 서신남긴 것은 너무나 에베소서는요 로마서는 기초고 에베소서는 본채를 쌓는거라고 너무나 위대한 서신이라고 하잖아요. 이게 얼마나 큰 흔적이고 위대한 서신인줄 몰라요. 그러므로 거침없이 전파 된거에요 2천년 동안. 그런데 바울의 후반부 인생은 비밀로 남습니다. 바울이 순교하고 죽었더라로 사도행전이 끝나면 멋있을텐데요. 그러면 복음보다 바울이 우상이 되었을 수 도 있었을거 같아요. 왜냐하면 로마의 베드로 성당은 베드로 시신이 안치 되어있다고 하잖아요. 예수님을 본 수제자 베드로가 얼마나 위대합니까 베드로 성당은요 1년 365일 세계에서 모이는데 자세히 볼수도 없어서 남대문 시장처럼 밀려 갑니다. 그런데 바로 옆에 가면 바울의 참수터가 있어요. 지금도 초라합니다. 예수님도 바울도 무덤이 없어요. 근데 우리는 바울과 베드로 중에 누구를더 높이 봅니까 베드로 성당때문에 카톨릭은 우상숭배로 가득 차게 되었어요.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보이게 하기 위한 어떤 한 부분만 보이고 가면 되는거에요. 진짜 인간은 감추어져야 하는거에요. 16세기에 귀족 평신도이면서 천주교에 분연히 일어난 잔느교용은 2천년전 300년전 거침없이 전파하고 가르친 분인데요. 16살에 결혼을 했어요. 아이들을 낳고 하녀와 시어머니 시집살이가 상상을 초월했고요. 22살 연상의 남편과 재앙에 관계였어요. 12년만에 남편이 죽고 28살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치료받지 못하게 해서 절세미녀인 그녀가 얼굴이 얽게 되고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받으면서 성당가서 신부 앞에서 고해 성사를 해야 하는데 시집살이 때문에 나갈수가 없는데 누구한테 배운게 아니고 자기가 하나님께 직접 기도 할 수 있더라 16살에 결혼했기 때문에 배움도 없죠 성경으로 기도하기 말씀으로 기도하기 예수그리스도 깊이 체험하기 책을 썼어요. 그책이 기가막혀서 명성이 높아 가니까 교황청 비방 조롱 위험한 인물이다 말 못할 수치와 억울함에도 함구하고 영적 지도를 해 나아갔다고 하죠. 이런 핍박 가운데 있던 잔느기용책이 그시대에 몰래몰래 전해 졌어요. 이 책은 후에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 선교에 대부고 웨슬레는 감리교회 대부죠 영적 거장들이 책을 보고 영감을 받았습니다. 저는 힘들때 몇십년전 너무 비슷하게 시집살이 한 사람이 있어가지고 하녀한테 받고 남편한테 받고 나가지 못하게 하고 그런데 성경으로 기도하길 제가 책을 쓰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어요. 왜냐하면 말씀으로 기도하기 제목으로도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300년전도 똑같구나 부인이 믿음의 피값을 치루고 홀로 깨달은 책을 남겼는데 그당시 굉장히 신비주의고 이해가 좀 안될수도 있어요. 저는 좀더 나아가서 성경이 어떻게 성도들의 삶에 적용되는지 까지 하는게 저의 사명이죠. 저도 지나고 보니 책이 많이 남겨지게 되었네요. 그녀의 육필원고는 신학교에 있는데 맨앞장에 연필로 이 책을 읽는자는 복이 있는 자입니다. 그게 써져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그 부인을 생각하면 저는 형편이 참 좋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잔느기용도 감옥생활에 대해서는 안썼어요. 만약에 썼으면 그 감옥으로 전세계가 몰려가는 성지가 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사도행전이 복음 전했다로 끝나야 합니다. 기용도 복음 전하다 갔다로 끝나야 해요 그 나머지는 우리가 완성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완성해야 할까요 복음 전하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볼때 거듭나고 보니까 내가 시장나가고 병원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그 많은 사람이 아무도 없더라구요 내 인생의 욕심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백화점도 못가고 결혼을 잘못했나 그렇게 생각한것은 내 욕심때문에 예수 믿는것을 제가 핍박 당한거죠. 옷 사입지 말라고 하면 안 사입으면 되고돈안주고 반찬이 왜 이모양이냐고 하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고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데 참 하나님이 많은 지혜를 주셨는데요. 우리 시어머니와 제가 거듭나서 나누면서 하는게 우리 며느리는 사치 하지 않는다 그 얘기를 들었어요. 우리 어머니가 워낙 옷을 좋아 하시기때문에 그말을 들어야 내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거에요.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데 살거 다사고 가고 싶은데 다가고 그럴수 있겠습니까 내 육적인 욕심을 가지치기 해주셨어요. 그러니까 그 부인도 자기가 치료 못받을때 얼굴이 얽는거에 대해서 딱 내려 놓았어요. 자기는 얼굴을 내려 놓아야겠다 그래서 복음을 전해야 되겠다 이런것들 있어야 할 일이었던거죠. 주님을 믿고 나니까 삶의 무게가 눌려 있어 너무 힘들었는데 삶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 지니까 그 모든 것들을 적용 할 수 가 있었던거죠. 그전에는 지혜가 없고 세상적인 기대치를 늘 못채워서 힘들었지만은 이제 참 그러고 나서 하나님이 지혜를 많이 주셨다고 생각해요. 사도행전을 끝내면서 우리들 행전을 거침없이 쓸려면 바로 우리가 너무 중요 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도 행전을 끝내면서 사도 행전을 쓴 누가에 대해서 너무나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4복음서 중에 누가 복음이 가장 운채가 훌륭하고요. 신약전체 중에서는 사도행전이 운채가 가장 좋습니다. 헬라인이었던 이방인 누가 글은 어부출신인 베드로와 요한 학문적 배경을 정확히 알수 없는 마태와 마가 유대식 전통 교육을 받았던 바울보다 훨씬 세밀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 복음에만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 탕자에 비유등 다른 복음서에 없는 탁월함이 있어요. 사도 바울의 여정을 기록해준것이 누가에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양만 놓고 보면 바울 서신보다 더 길어요. 바울복음 예수님의 복음 누가복음이라고 할 정도로 한마디로 엄청 똑똑한 사람인 누가에게는 예수님을 만난 체엄이 있어요. 예수님과 바울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거에요. 사도 행전과 누가복음에 누가 이름이 일절 안 나옵니다. 너무 놀랍지 않아요 자기 이름 하나도 안내고 썼는데 하나님은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저자를 누가로 기록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요. 저 또한 앞장서고 있는것 같아도 저에게 있는 주님에 대한 확신을 보고 조용히 섬기고 있는 여러분중에서 저보다 상급이 더크고 주님이 귀하게 여겨 주실 분이 있다는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나중에 천국에 가면 바울과 누가 중에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있을까요 바울과 바나바 중에는 바나바가 떠나 버렸으니까 알겠는데 바울과 끝까지 바울을 지킨 누가중에는 참 어렵더라고요. 디모데는 청결한 양심으로 바울을 유쾌하게 하고 위로를 주었어요. 몸이 약한 디모데는 배 동행도 못했어요. 마지막도 못지켰어요. 디모데는 책한권도 못써요. 그런데 바울이 디모데 전후서를 써주면서 디모데이름을 남겨주게 했어요. 그런 인생도 있더라고요. 그것이 바울의 유언서가 되었습니다. 히브리서는 그 어머어마한 구속사의 대가인 아볼로가 썼는데 히브리서가 대단하잖아요. 구속사의 모델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이름을 남겨 주시지 않았어요. 디모데에게는 소심하고 병들었다고 포도주 먹어라 청년의 정욕을 피해라 별 잔소리를 다하면서 써줘요. 마지막에 죽기 직전에 옆에 누가가 지극정성을 다하고 있는데 그렇게 디모데를 보고 싶어해요. 디모데 후서 마지막 유언장 4장에 보면요 어서오라고 3번이나 말해요. 그러면 왜이렇게 디모데를 누가같은 대단한 사람이 있는데 디모데를 보고 싶어 했을까 큐티를 하면서 띵크를 해보는거에요. 일은 누가가 다했는데 디모데를 보면 쉼이 있었나봐요 누가는 긴장이 될수도 있었겠어요. 바울이 바울된것은 누가때문이에요. 누가가 있는것 때문에 주의 일이 되어가고 있는데 그런데 아무리 누가가 대단해도 계속 긴장이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너무 완전하고 겸손하고 생색도 안내고 바울은 스데반을 죽게한자로 속으로 열등감이 살짝 드는거에요. 그러니까똑똑한 사람들끼리는 바울의 일거수 일투족 다 아는 누가인데 이렇게 긴장 관계가 있나봐요 마가는 왕자병이라고 쫓아 버렸잖아요. 후에 회개하고 돌아왔지만은 그런데 이제 그당시는 같이 할수가 없었어요. 그당시 바울복음 전할때는 절대적으로 바울편에 서는 사람이 있었어야 합니다. 누가는 예수님과 바울사도에 대한 이런 체험신앙이 있기때문에 바울사도가 원하고 바라는것은 무조건 바울에게 좋은것이라고 생각한것 같아요. 자기가 옆에 있는데도 마지막까지 디모데 타령을 하는 바울을 보면서 자기에게 없는 바울을 유쾌하게하는 디모데에게 감사해 하는 것 같아요. 생색이 조금도 없고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니까 하나님 만난 바울자체가 상급인거에요. 이런 누가를 하나님은 후에 안아 줬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이름을 남겨 주셨어요. 정말 누가가 훌륭하지 않나요 누가에 대한 발견은 저를 감동케 했습니다. 가는곳마다 박해를 당하기에 이런 소수라도 지체가 없으면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가 어려운거에요. 우리는 절대적으로 바울편에 섰어요. 소수의 우리가 세계 선교를 했네요. 바나바와 베드로는 훌륭하지만은 바울편에 설수가 없었어요. 성경을 자세히 보니까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넓어져서 그럴수도 있겠다 라고 이해가 되는거에요. 바울은 2차 투옥때 죽었다고 하는데 여기에다가 기록을 안해주었잖아요. 하나님은 누군가를 통해서 써줄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결론은 바울이 누가가 디모데가 위대한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대하다 이말이에요. 바울도 자기는 디모데가 좋아 그런데 객관적으로 누가가 훌륭해 그러니 상관이 없어요. 구원도 공로로 하는게 아니에요. 그리고 바울도 잘못 할 수 있어요. 그러기 때문에 결론은 하나님만 위대해요. 반복되는 인생 가운데 복음전하다가 가는것이 최고의 목표입니다. 우리목장에서 시기 하지 않으며 우리가 되는 한두사람이 목장에 있으면 그 목장은 부흥합니다. 우리들 행전을 쓸수 있습니다. 세계선교에 깃발을 들수가 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만 있어도 그 목장은 부흥해요 근데 두사람만 있으면 소도 잡고 말도 잡아요. 이렇게 시기 하지 않아야 되고 비교 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동반자 입니다. 알프스를 가더라도 동반자가 이상하면 먹은거 다 체해요 곳곳에 이런 지체가 있어서 세계 선교가 된것을 믿습니다. 적용해보세요.
[적용질문]
Q.우리는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나요? 바울인가요? 누가인가요? 디모데인가요?
Q.공동체에서 드러나지 않는 나의 역할 때문에 비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Q.나는 도움받는 누가가 좋은가요? 도와주는 디모데가 좋은가요?
Q.여러분은 겸손한가요? 환경이 겸손해서 겸손한가요?
디모데 누가가 뭐가 겸손 하겠어요. 바울의 마지막을 지킨것은 이방인 디모데하고 의사누가는 노예출신이라고 하죠 환경이 겸손한것이지 이땅에 겸손한 사람은 없습니다. 목장에서 사람을 너무 높이지도 무시하지도 말아야 한다는거에요. 코로나 3년동안 성찬식을 못했어요. 지금도 약간 위험하지만은 성찬식은 아니지만 사도행전을 끝낸 책거리 애찬식을 하려 합니다. 바울의 유라굴로 광풍속에서 배에탄 모든 사람들이 떡을 떼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성찬식을 가졌었고 그 배안에서 바울이 한 말씀이 이제는 안심하라입니다. 배는 산산 조각 났지만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한섬 예수그리스도에 걸렸듯이 애찬식을 통해 준비한 강정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영원히 사도행전을 기억하고 성령받을 것을 기억하고 이 사도행전이 나의 행전 우리들 행전이 되도록 결단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성령 시리즈 듣느라고 너무 수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맺어요.
우리들 행전을 쓰기 위해서 차별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거침없이 전파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를 잘 분별하여서 잘 우리를 만들어가는 23년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A
-면접 잘 볼수 있도록
B
-내일부터 2주동안 바쁜데 주님께서 지켜주시길
C
-인수인계 잘끝내고 하나님의 뜻에 맡기길
-건강지켜주실수 있도록
D
-주일성수 100프로 지킬 수 있는 환경으로 인도 하시길
-팀이 내가 바라는 곳으로바뀔 수 있도록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건강 지켜 주시길
-내 죄를 보며 죽어지는 적용 하기를
-날마다 큐티 말씀 보며 적용 하기를
E
-프로젝트 시작함에 있어 하나님의 사명으로 알고 교만하지 않게임 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