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 오진욱, 임진호, 이윤구, 이준현, 이은우, 김유종
[기도제목]
A: 올한해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B: 직장에서 상사에게 순종 잘 할수 있도록
C: 내년 부부목장 잘 다닐 수 있도록
D: 1. 말씀보면서 갈 수 있도록
2. 아버지에게 너무 감정적으로 표현하지 않도록
E: 연말 잘 마무리하도록
F: 한해 마무리 잘 하도록
부서 이동 잘 되도록
[말씀 요약]
성령의 이야기 | 나를 지키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도행전 28:16-22)
어렸을때 옛날이야기 들으면 재밌다 에서의 팥죽이야기, 동방박사이야기를 들으면 그렇다
지금까지 룻기에 나온 이야기 압살롬의 기념비이야기를 한편의 뮤지컬 공연으로 상영한다
이야기들이 진짜 입체적으로 기억이 될 것이다
미천한 기억도 어렸을때 하면 큰 은혜가 된다
공연은 구속사를 체험한 배우들이 이야기를 하게 된다
노스웨스트 대학교의 교수는 이야기를 통해 정체성을 형성한다 나의 뿌리가 이야기를 통해서 좋은 일에서
나쁜일로 바꾸는건 O시퀀스 반대는 구원 시퀸스라고 부른다
좋은 이야기가 바탕이 되는 사람들은 만족을 하면서 살고 있다 우리의 뿌리는 상처인가 아니면 감사인가
나에게 뿌리를 두기 때문에 행복해도 불행해도 이야기에는 늘 나의 어린 시절은 행복했어 나빳어 하면서 벗어나질수가 없다
그 얄팍한 추억의 뿌리를 가지고 좋았어 나빳어 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의 이야기에 뿌리를 두게 된다면 행복과 불행이 십자가의 이야기가되고
최고의 이야기가 탄생하는 것이다 오늘 바울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러 로마까지 온 것이다
나를 지키는 자가 있어야 한다
교인들이 헌금을 모아서 예루살렘까지 갔는데에도 유대인에게 매맞고 천부장이 무죄라고 해도 핍박을 받았고 그렇게 로마에 갔다
로마의 인구는 100만이 넘고 경제적 요건까지 갖춘 그야말로 땅끝마을이었다
로마로 들어간 이후부터 주어는 바울로 바뀐다 바울의 옆에는 지키는 군인이 있다
지키는 군인이 있기에 바울은 자신의 스토리를 완성할 수 있었다 바울은 로마에 사명을 감당하러 간 것이다
그 사명은 죽으러 간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사명을 위해 골고다 언덕으로 갔다
십자가는 나혼자 짊어져야 한다 공동체에서 여러가지 처방을 하지만 결론은 스스로 내야 한다
구속사의 최대의 결론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나를 감시하는 한 군인이 남편과 아내처럼 꼭 붙어서 감시하고 있다 집에 가서도 바울 정도도 되는데 그래도 믿지 못한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나를 지키는 자가 꼭 있어야 한다 없다면 떠내려간다
결국 십자가를 통한 죽음과 영광스러운 부활의 이야기를 써내려갈것이다
제가 그렇게 나가고 싶더니 남편이 가고 혼자가 되니 나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우리는 시댁의 공기도 싫고 숨이 막힌다 같이 있는것도 싫어진다 저여자와 저 남자와 살면 나의 행복과 불행은 말짱 헛것이다
주님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사람과 만나야 한다 잠시라도 주님과의 만남은 최고의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것임을 말할 수 있다
>> 나를 지키는 한 사람이 만명 같은가요, 만 명이 한사람 같은가요? 즉 나를 지키는 사람이 없어도 있는 것 같이 사나요? 지키는 사람만 없으면 마음대로 할 것 같은가요?
하나님은 5년만에 주님을 만나도 8년을 혼자 있게 하신다
소망으로 말미암아 쇠사슬의 매임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제 바울이 언제나 전도하러 가서 유대인의 회당부터 들렸다 배척을 당해도 일단 그곳에 들어가서 전도를 한다
아무리 열매가 많아도 내가족은 잊을수가 없다 우리는 안들어도 전도를 해야 한다 자신을 통해 써내려간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가?
유대인들은 정말 같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가장 복음을 방해하는 사람들은 바로 유대인들이다
먹고살기위해서 겨우겨우 이주해서 터잡고 사는데 기독교인들 때문에 쫒겨난것이다
우리들은 안좋은 일이 있다면 기독교인때매 일어났다는 말을 듣는다 바울이 와서 영적으로 우리가 제물이 되어야한다고 이야기를 하니 유대인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
바로 너희와 같은 동족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에 이야기하기 위해서 땅끝나라 로마까지 왔다고 말했다
로마들이 바울은 죄가 없다고 석방하려 했는데 유대인들은 바울을 고발한다고 하는것이다
로마라는 지명이 목적이 아니다
바울이 형편없는 노인인줄 알고 회당을 주었는데 사람들이 몰려드니 질투한다
바울이 유대인들을 보고 하는 이야기가 같은 동족 같은 대상이라는 설교를 한다
시작과 끝이 같은 구속사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중요한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소망이라는 이야기이다
미혹되고 무식한사람을 차별하는데 우리가 쇠사슬에 매여있으면 그들을 수용하고 용서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소망은 죽은자의 소망이다 이 바램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지는것이다
결국 죽은자의 소망은 부활로 말미암아 심판받아야 한다 이땅이 아니라 예수로 말미암아 회복된 하나님의 나라가 이스라엘의 소망인것이다
바울같은 사람이 한손씩 쇠수갑을 찬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유대인들에게 쇠사슬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소망때문에 매여있다고 당당하게 말을 한다
매임을 통해서 내안의 죄악을 회개해야 한다 돌팔매을 맞아도 독사가 물어도 배가 파산되어도 낙심하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내 죄를 보게 되는데 어떤 고난이 와도 내 죄보다 약하다 늘 눈물을 흘리는것이다
내가 주님을 박해한 죄인이라는 것이다 어떤 억울함도 있을수가 없다
어떤 상처라도 자기 죄를 봐야 그곳에서 성령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쇠사슬에 매여서 이스라엘의 소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내 간증이다
이 환경속에서 내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한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소망인 것이다
그래도 이야기를 해야한다 2천년뒤에 우리가 듣는다 전도를 꼭 들어야 하는것이 아니다 우리는 전하고 죽는거니 전세계에 퍼지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이야기이다
>> 나는 나의 매임에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말하나요? 이기적인 신세 한탄을 하고 있나요?
신세한탄을 아무리 할 지 언정 목장에 박혀있어야 한다
로마의 유대인들은 갈길이 너무 멀다 돈과 학벌에 매여있다
하나라도 흠이 있으면 위로가 되고 완벽하면 시기를 하는 되었다 함이 없다
성령의 이야기는 쇠사슬의 매임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도 이렇게 솔직하게 나눠주시는것이
성령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형제중 듣고자 하는 자들이 반드시 남아 있습니다
바울의 매임을 보고 있고 까닭이 이스라엘의 소망이라는 말을 듣자 바울이 도데체 어떤 사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무시하고 넘어가지도 않는다 감을 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니 인본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데 비호감이 호감으로 바뀌었다
쇠사슬에 매인 여러 죄수가 성령의 담대한 마음이 충만해서 매임을 받아서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을 처음보았다
그들은 기독교가 어디서든 반대를 하는줄 아는데 정확한 성령의 이야기는 듣지 못한 것이다 이걸 바울이 정해주지 않았다면
이사람들고 사람들의 반대에 마주쳣을 것이다
기독교는 사람들이 반대하는 종교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한 가족에 의해서 고난을 겪고 로마로 온 것이다
내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말해주겠지? 그러나 풍문으로 들으면 어디서나 반대하고 이상한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가 잘 살아야 한다고 하면 긍정적으로 듣는다 하지만 성경은 악하고 음란한 스토리이다 성경의 구절은 하늘의 이야기이다
이런것을 실제로 경험하는 교회를 무시하면 성령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는것이다 우리는 기가막힌 스토리를 접한다
왜이렇게 눈물과 탄식이 나오는 스토리가 많은지 모르겠다 내 이야기가 전해지는것이 바로 성령의 이야기이다
성령의 이야기가 관심이 없으니 풍문으로만 듣는다 우리들 교회 이야기도 풍문으로만 들었다
듣던지 말던지 이야기로 들려줘야 한다 전도는 숫자 채우려고 하는것이 아니다
이번주도 탄식과 눈물이 나오는 사건이 곳곳에 있었다
다음주면 성탄절이다 바울의 이야기가 공연으로 상영하는것이다
배우들이 바울의 이야기를 체휼하고 있다
>> 내 사상은 여전히 세상의 가치관인가요? 부활을 바라는 가치관인가요? 다른 사람에 대해 관심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