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12.04 이지현 목장 보고서]
우리 목장식구들 올해가 가기 전에 모두 성령받기를 소망합니다~^^
<설교>
본문: 사도행전 28:7-10
제목:성령의 고침
7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8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9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10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사도행전 마지막 28장 한 절 한 절이 너무 의미심장하다는 생각이 든다. 성령의 공의로 돌이켜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고 했다. 이미 이루어진 구원이지만 아직 이루어가야 할 구원이 우리에게 남아있다. 그러므로 실제 내 모습을 보면 새로운 존재가 되었나? 맞나? 싶을때가 많다. 되었다함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고침을 받아야한다. 그냥 고침이 아니라 성령의 고침을 받아야 한다. 결국 우리의 고침 받음은 복음전파를 하기 위함이다. 오늘은 성령의 고침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1. 가장 높은 사람을 고치는 것은 중요합니다.
7절
멜리데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가 바울이 맹독성의 독사가 물었는데 조금도 상하지 않은 소문을 들었다. 보블리오는 아픈 아버지를 고칠 목적을 가지고 바울일행인 우리를 영접한다. 2절에 멜리데인의 영접은 프로스 람바노 인데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라고 했다. 똑같은 한글은 영접이지만 7절의 보블리오의 영접은 아나데코마이라고 높은 사람을 잘 모시는 영접이다. 원어는 뜻이 이렇게 다르다.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가 더 높은 사람을 모시듯이 바울을 영접했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276명 모두가 아니고 2절엔 276명이 다 영접했다는 판타노 라는 단어가 빠져있는것으로 봐서 바울, 누가, 아리스다고, 선장, 선주, 율리오 정도가 아닐까. 하루도 아니고 사흘이나 보블리오는 바울 일행에게 좋은 음식과 편안한 잠자리를 주며 심신이 회복되도록 도왔다. 그는 대토지를 소유헀기때문에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가족 앞에 장사가 없지 않는가. 돈으로 안되는 일이 있으니까 이렇게 고침받고자 바울을 높은 사람 모시듯이 영접했다. 우리가 자녀가 잘된다면 사탄에게라도 뭘 주고 종교도 바꾸고.. 못할 일이 없다. 보블리오라는 이름의 뜻은 평민, 대중적이라는 뜻이 있다. 보블리오가 퍼블리우스, 영어단어 퍼블릭. 일반인, 대중적과 같은 뜻을 가진 것 같다. 보블리오는 모든 사람들이 바울을 살인자라고 할 때 대중적인 인기를 위해 앞에서 앞에 나가 바울을 손가락질했던 첫번째 사람인 것이다. 가장 높은 사람도 원어는 첫째사람이라는 뜻이다. 바울은 자신을 살인자라고 비난하던 보블리오의 말투와 행동을 생각할 때 상처준 보블리오를 용서하기 쉽지 않다. 옳고그름의 가치관중 특징 하나가 받은만큼 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항상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면 상대방이 욕을 하던 떠받들던 중요하지 않다. 별인생 없다는 것을 딱 안다. 저 사람도 예수가 없으니 저럴 수 밖에 없지. 게다가 보블리오는 부자이고 추장인데 왜 안그렇겠어. 멜리데인들을 전도하려면 내 상처의 원흉인 그 사람을 껴안는 것이 가장 복음전파의 지름길이다. 결국 독사에게 물려도 상함이 없으니까 가장 높은 사람을 만나게 하신다. 그러니까 이 세상은 특별한 동정으로 섬기다가 또 살인자라고 했다가, 또 신이시여 한다. 이 세상의 가치관으로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높은 사람들을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가장 높은 사람을 고치고 그가 변하여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만큼 이세상은 서열, 겉모습이 중요하다. 그사람이 가진 만큼 변하기가 쉽지 않지만 변하면 또 중요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제 손흥민선수같은 사람이 예수믿으라고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꿈을 가지고 있다. 가장 높은 사람이 왜 중요한지 아시겠지요.
어떤 성도님이 담임목사님이 집사시절 강의할때도 이렇게 녹취하고 은혜받을 수 있었을까? 또 몸빼바지 입은 목사님 어머님이 화장실청소할때도 그당시라면 존경할 수 있었을까? 하는 리플을 읽었다. 집사시절이나 지금이나 저의 간증이 달라질 수 없다. 메세지도 큰 틀은 같다. 그러나 그 직분과 지위가 제 복음을 복음되게도 안되게도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것을 인정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니 가장 높은 사람을 평생 구원의 대상으로 생각하니까 보블리오를 만나고자 하면 만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가 자발적으로 만나고자 하니 이게 웬떡인가 하고 생각해야한다. 그런데 나에게 상처준 지도자에 대해 원수갚을 생각만 한다면 서로 고침받을 길이 없다.
요즘 우리나라를 보면 딱 그렇다. 널조각 붙들고 겨우 상륙했는데 날 살인자라고 동네방네 떠들었어, 부자면 다야? 죽을때까지 용서 못해 하면 이게 믿는 사람인가? 믿어도 죄는 죄이다. 그런데 부자가 하늘나라 가기가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거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죄라도 지니까 이렇게 만날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이렇게 높은 사람이 그 집으로 일단 초대해주면 이때 암살해야겠구나, 복수해야겠구나, 기회가 왔어, 나의 명예를 실추시킨 저들을 죽이리라 하는게 이세상 정치이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저사람은 저들이 진짜 예수를 몰라. 구속사를 몰라 사랑도 용서도 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사랑을 할수도 지을 수도 없다. 그런데 부부간도 원수처럼 그렇게 싸운다.
이번에도 남편이 그 많은 무단외박과 술값으로 날렸으면 오픈할 내용이 있을텐데 늘 결백하다고 하니 분노가 올라와 남편의 뺨을 200대를 때렸단다. 그런데 남편이 처음에 말을 안하는데 때리면 때릴수록 진실이 조금씩 나왔단다. 때리다가 본인 손에 멍이 들었다고. 받은 상처를 돌려줄 수만 있다면 때린 것 두배로 맞아도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래서 열흘쯤 지나 남편을 또 때려 동네주민 신고로 경찰이 왔는데 경찰은 아내가 맞은 줄 알고 괜찮냐고 물어보고 돌아갔단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의 대상이다. 목자까지 하고 계신데도 이게 믿어지지 않는가보다. 말씀의 원칙대로 하는 것이 사랑의 비결이다. 난 사랑할 수 없지만 오늘 말씀 만큼만 적용하는 것이다. 예수믿는 사람은 속은 자가 속인자보다 더 나쁘다고 했다. 바울은 너무 분한 상태에서도 자기가 가해자 살인자 의식을 가지고 독사가 물고있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그 적용이 소문났다. 그러니 기회가 올 수 있는 것이다. 왜 기회가 왔죠? 그가 바울에게 죄를 지었잖아요. 가장 높은 사람이 바울을 죽도록 놔두고 살인자라고 했다. 그러니 나에게 피해를 끼친 사람에게 복음전하기가 얼마나 쉽습니까. 용서만하면 된다. 그래서 바람을 피거나 잘못했을 경우 지금이 복음이 전할때다! 하면서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 그런데 이렇게 왔어도 항상 옳고그름의 문제로 보니까. 과거는 늘 도말되었는데도 과거의 문제로 죽고싶고 죽이고 싶고로 결론이 나버린다.
부자들이 얼마나 계산을 하는데 그냥 불렀을리 없다. 벨릭스 베스도 아그립바왕이 믿음이 있어서 바울을 사랑해서 불렀는가? 그 부자들이 그 권세를 가지고 이 초라한 노인인 바울을 보고 돈을 바라는 고로 불렀다고 했다. 그런데 보블리오가 그냥 불렀겠는가? 별인생이 없다. 그러니까 성경이 인간론이다. 경영학 교과서이고 상담학 교과서이다. 모든것 다 갖다 붙여도 성경에 답이 있다. 그러니 우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든 사람에게 복음전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믿고 안믿고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기회가 있을 때 그냥 전해야한다. 가장 높은 사람은 변화되기 너무 힘들지만 변화되면 드물지만 크게 쓰임받는다. 보블리오는 후에 순교자가 되었다고 한다.
적용질문
'부자면 다냐, 학벌만 좋으면 다냐' 하면서 역차별을 하는 것이 있나요?
나를 부르는데도 '용서 못 해' 하면서 가기 싫은 높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어떤 직장목장 권찰님 나눔. 우리 남편은 체면을 중요시 여겨서 싫은소리를 못해 양육이 잘 안돼요. 내년에 주중목장으로 꼭 가셔서 더 치열하게 나누고 양육을 더 받는것도 좋아요. 라고 아내가 처방해주셨다. 다들 높은 사람이고 뭐고 무서워서 얘기를 못하지 않는가. 전도하기가 이렇게 쉽지 않다. 전도할 기회를 하나님이 딱 주실때 타이밍을 잡아 해야한다.
2. 아픔 속으로 들어가 기도하고 안수할 때 주십니다.
8절
성령의 공의는 결국 고침으로 연결되어야 이 공의가 무서운게 아니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느껴지게 된다. 보블리오는 당연히 그냥부르진 않았겠죠. 그런데 질병이 내 문제가 되면 다 지푸라기라도 잡고싶다. 부친의 병이 나을 희망을 가졌지만 그러나 사회적 체면이 있기에 먼저 융숭하게 대접한 후 부친의 병을 오픈한다. 바울은 알았어도 그가 오픈할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니까 높은 사람은 괜히 높은사람 되는게 아니다. 사흘동안 입이 간지러워 어떻게 참았을까. 보블리오 부친의 열병은 지금으로 보면 말라리아고 이질은 소화계 계통의 질병으로 본다. 우리가 3년째 코로나에 시달리고있지만 그당시는 코로나가 오면 속수무책 아니겠는가.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풍토병인데 몰타 열병이라고 불리우는 감염증인데 심하면 2-3년도 가고 아주 심한 경우엔 사나흘 안에 죽었다고 한다. 보블리오는 아마 이런 자신의 집에 아픔이 없었다면 바울이 뱀에 물려 죽지 않는 괴상한 광경을 보고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부자들이 남의 간증 듣고 뭐가 그렇게 은혜를 받겠는가. 간증을 받고 표적을 봐도 나는 상관없어 하며 지나치죠. 부자들은 배가 부르기때문이다. 돈이 해결해주면 공동체 안들어와도 배가 부르고 등이 따신데 왜 가서 쓸데없이 신경쓰는 얘기만 들어~ 하면서. 당연히 아무리 공동체 얘기를 해도 심드렁하고 간절함이 없죠. 마태복음 5장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가 진리중의 진리이다.그런데 보블리오에게 간절한 아픔이 생긴 것이다. 바울은 이런 멜리데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어야하기 때문에 광풍 후에 또 죽음에 이르는 독사에게 물리는 경험을 하게하셨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최고의 복음 전하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당할 때는 늘 쉽지가 않다. 그런데 이 독사의 상처가 보블리오를 만나게 하는 상처가 되었다. 뱀이 문 상처는 참을 수 있다. 그런데 그걸로인한 마음의 상처는 용서 못한다.
제가 남편이 갔는데 저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무슨 죄를 지셨노 하더라. 자동차 팔아달라니 죽은 사람 차는 반값만 받는거알지? 했다. 아무 생각이 없다. 내가 아픈 것보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말들로 상처받는 것이 내 육의 상처보다 훨씬 힘들고 오래오래 간다. 진짜 위로한답시고 말을 함부로 하면 안된다. 띵크해야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게 구속사이다. 어떤말을 해야하나 말아야 하나를 늘 생각하며 그 영접에 기꺼이 응한다. 그리고 응할 뿐 아니라 바울이 그 보블리오의 부친에게 들어갔다 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들어가서 기도하고 안수하여 그 아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안수하는 것이다. 안수는 그에게 두 손을 얹어 그를 치유했다는 뜻이다. 자신의 손을 환자의 몸에 얹는 행위는 그 아픔이 나의 아픔입니다 라는 고백이다.
그런데 우리는 전염병환자를 다 격리한다. 그당시는 약이 없어 나병환자도 격리했다고 했다. 그런 환자에게 들어가 손을 얹었다. 그 입장이 된 것이다. 내가 힘이 있어 널 고치겠다!가 아니라 이 사람과 나는 똑같아요 하며 손을 얹었다. '이 사람과 나는 똑같이 주님의 치료가 임해야 할 아픔이 있어요. 이 사람의 아픔이 저의 아픔이에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고쳐주세요' 라는 표현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안수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병이 나았다. 이런 안수기도는 필요하다. 헨리 나우웬은 그 유명한 <상처입은 치유자>에서 고통속으로 들어가지 않고서 누가 그것을 없앨 수 있겠는가. 화재가 난 집안에 갇힌 아이를 구하려면 불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집 안으로 들어가야하고 사막에서 길을 잃은 사람을 구하려면 사막 안으로 직접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울을 가장 힘들게 한 버블리오에게 바울은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는 것이다. 믿는 우리는 어떤 경우도 치유자가 되어야한다. 상처를 크게 입혔을수록 그에게 들어가 안수하고 기도해야한다. 미워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안수하고 기도해줘야 할 대상이다. 마침 그가 아파서 날 부르니까 할렐루야 하면서 부르고 달려가야하는데 내가 널 용서못해 한다. 아까 그 남편도 다 회개하고 목자까지 됐는데 시간만 나면 때려주면 어떡하는가. 과거의 잘못으로 우리는 천국 못가는게 아니라고 했다. 기막힌 남편, 아내, 자녀들과 살아내는 성도들이 너무 많은데도 우리는 내 과거의 아픔이 너무 크다. 목장에서 서로가 가해자인 것을 인정하면 너무 나눔이 풍성할텐데 우리는 가르치는 것도 힘들고 날 위로해주지 않아도 힘이든다. 언제나 내편만 들어주고 날 위로해주고 칭찬만 해줘야되는 것이다.
어떤 여자목자님. 나는 목사님 설교는 잘못알았는데 목장에서는 내얘길 할 수 있어서 우리들교회 왔다. 목장이 한심한 날 드러낼 자리이고 끊임없이 깨지고 지랄을 떨 수 있는 곳이라는 믿음으로 그래도 처음부터 나는 그분들을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목장 말고는 갈 데가 없었다. 그런데 목장에서 목자님이 작정하고 나에게 처방을 주셔서 엄청 상처를 받았다. 나는 여전히 똑같다 .안되는 나때문에 괴로웠다. 그래도 내가 안떠난 것은 여기가 마지막인 곳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런 분 많으시죠? 왜냐하면 날 직면하게 힘이든다. 상처는 드러내기도 아프고 안드러내기도 힘들다. 그래서 목장이 괴롭고도 마지막인 곳이 맞다. 날 보게해주니까. 그리고 나는 너무나 악하고 100% 음란하니까. 자꾸 칭찬해주는 말만 듣기 좋아하지만 내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그 얘기를 듣기가 너무 어려운거에요. 그래서 날마다 목장마다 트러블이 있는것이다.
한 남자 부목자님. 믿음의 공동체는 설교만 있는게 아닌 것 같다. 늘 나눌 수 있는 공동체가 있기 때문에 산책하면서 말씀을 다시 듣게되고, 적용질문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목장에서 나눔도 기쁘지만 특별히 학별 직업 나이 관계없이 내 죄를 터놓고 나누고 처방하고.. 그리고 기막히게 식사가 공짜 아니겠습니까 하면서 좋아하시더라. 인간론에 대해 매주 와서 한시간씩 듣고. 어렸을 때부터 이런 얘기 하나도 안듣고 학교가서 교과서만 보고 자란 아이들과 비교가 되겠는가? 진짜 사랑하는 방법이 여기 다 있는데. 여러분들 아이들 교회 안보내면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거에요.
우리 삶이 다 독사에 물려있다. 날때부터 죄인인 것이 그 증거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너진 우리의 삶, 직장.. 무너진 이유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에. 그 관계가 회복되기 위해 상처를 준 보블리 오집 들어가야 한다. 그 집에 그냥 들어가는 것을 넘어서서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아픔 속으로 들어가 전염병 환자의 몸을 만지고 안수해야한다. 안믿는 사람이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할 적용을 딱 하면 소문이 나서 보블리오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이다. 그 사람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그 아픔속으로 들어가야한다. 그러면 놀라운 치유가 일어난다. 하지만 아무리 안수해도 실제로 고치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바울의 들어감이, 기도가, 안수가, 주님이 앞서가신 길을 따르는 일이자 주님의 이름으로 행한 일이기 때문에 주님이 하신 것이다. 주님이 바울을 통해 보블리오 부친을 고치셨다. 할렐루야. 여러분들이 정말 목자의 안수를 통해 모든 목원들이 고침받게될 줄 믿는다. 같이 손을 얹고 기도하고 아파하고. 당신의 아픔이 내 아픔이에요. 저도 똑같은 아픔이 있어요. 하니까 우리가 살아나는 것이다.
적용질문
여러분은 상처 입은 치유자 입니까? 상처받은 피해자입니까?
서로가 가해자 인식을 하나요? 피해자 인식을 하나요?
한 권찰님. 여자목장의 목자님께서 저에게 초등학교 3-4학년 아이들을 섬겨보라고, 이런 봉사를 통해 제가 치유됨을 느끼게 될거라고 말씀하셨다. 그 목자님의 권유에 제 마음이 움직였다. 제가 초등학교 3-4학년 아이들이 많이 힘들었던 것을 생각하면서. 그러나 교사를 하기엔 매사 귀찮아하고 모든 일을 힘들어하는 스타일인데 특별히 제가 교회 봉사를 하면 남편 목자가 교회에서 아이들을 홀로 챙겨야하는데 이에 대해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저에게 봉사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이후의 일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상처입은 치유자는 대단한 상처만 의미하는게 아니다. 우리들교회는 이렇게 목장에서 저 사람에게 필요한 양육과 부서를 권유해주시니 정말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남편 목자님은 너무 훌륭하시다. 상처를 입은 치유자가 되면 남들의 구원에 대해 이렇게 안타까움이 있고 일로 여기지 않는다. 인생이 짧다. 하나님한테 상받아야지 사람에게 상받을 일 있어요? 갈 일이 얼마 안남았는데.
3. 공동체와 함께 사명이 이어집니다.
9절
거기서 끝이 아니고 섬에서 가장 높은 지도자 집의 한사람이 고침을 받자 섬에 있는 다른 병든 사람들이 바울에게 나왔다. 가장 높은 자 보블리오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아셨죠. 우리는 부자들에게 부자면 다냐 하는데 다 맞다. 특별히 우리들교회 나오는 부자는 존경하시길 바란다. 마찬가지로 바울의 손에 고침을 받는다. 한 사람이 중요하다. 여기서 모든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받았다고 하지 않고 다른 병든 사람들이라고만 한다. 병든 사람들 중에서 바울에게 오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다. 보블리오 부친의 소식을 듣고 나도 고침받고싶다고 나온 사람은 다 고침을 받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자기 집을 떠나 바울을 보러 오는 수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침받은 여럿에 포함되지 못했다. 저는 현장예배의 축복이 이렇게 임하길 바란다. 온라인으로 듣는것과 하늘과 땅 차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받은 주님의 치료는 언제나 우리를 여럿으로 공동체로 부르신다. 교회가 그렇다. 이 세상에 혼자있는 교회가 어디있겠는가. 혼자 잘믿으면 돼, 혼자 예배드리면 돼, 혼자 말씀묵상하면 돼하는 혼자 교회는 주님의 사전엔 없다. 심지어 홀로 한분이신 하나님도 성부 성자 성령님으로 공동체로 계신다. 물론 북한처럼 특별한 경우도 있긴 있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끈끈이 뭉쳐있는 우리가 있다. 아무리 꼴보기 싫고 조직이 마음이 안들어도, 리더십이 인정이 안된다고 해도 주님이 여럿이 함께 고침을 받으며 살아야한다. 그래서 공동체에 붙어만 있으라고 제가 늘 외친다. 말씀이 들리지 않아도 그저 예배의 자리에 와서 앉아만 있으라고. 우리는 들을 말도 없고 할 말도 없어도 그냥 목장예배 나와서 함께 밥먹고 앉아만 있으라고 부르짖는다. 붙어만 있으면 수지맞는다고 했다. 우리들교회 성령의 고침을 받기 때문이다.
고치다의 원어인 테라페오는 테라피의 어원이다. 기본적으로 섬기다 돌보다. 의사가 환자를 돌보는 일이 고침이기 때문에 고치다, 치료하다라는 단어로 쓰이게 되었다. 신약에서는 대부분 예수님의 치유사역에 대해 쓰였다. 예수님이 갈릴리로부터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다니시며 힘쓰셨던 치유사역이 바울의 손을 통해 멜리데 섬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마가복음 16: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니라. 하신 치유 구절은 그것이 바울에게 그대로 이루어졌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특별 은총이다. 그런데 문자적으로 멜리데는 금세 떠날 곳이다. 이럴 때는 마구 기적을 베풀어도 상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도 기적을 베푸시면 늘 떠나셨따. 한곳에서 치유사역을 계속 하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치유사역을 했지만 그 후 양육에 대해서는 성령님이 시키실 것이다. 그러니까 21세기 한국의 남한, 그중에서도 서울 경기도 우리들교회는 기독교가 들어온지도 한세기가 지났고 세계 10위권에 들어갔고 어제는 축구 16강에도 들어가는 엄청난 축복을 받았다. 그러면 뱀을 집어도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는 기적은 어떻게 적용해야할까? 구속사적으로 생각해보겠다. 마가복음 16장 9-11절.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잘 외쳐줄 사람이 똑똑한 사람과 마음씨 좋은 사람이 아니라 일곱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라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른 새벽에 제자들과 남자들도 안가는 무덤에 갔다. 그래서 저는 우리들교회가 이렇게 귀신들린 사람, 눌린 사람, 아픈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을 사모하는 교회가 되길 원한다. 신경질 귀신, 돈귀신, 여자귀신, 남자귀신, 공부귀신, 음란귀신.. 딱 일곱귀신만 물러가길 바란다.
그런데 이렇게 막달라 마리아가 외쳤지만 11절엔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다. 그러니까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보고도 다 믿지 못했다.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이 창녀였고 귀신들렸기때문에 더 믿지 못했을 수 있다.
제가 제 남편의 구원을 에스겔 말씀으로 전했을 때 제 곁의 여자들은 거의 기뻐했다. 그러나 제자들이 믿지 못했던 것처럼 많은 목사님들은 저의 말을 믿지 못하고 이해도 못했다. 평신도인 제가 에스겔을 읊어대니 집중해서 듣지 않았다. 저와 같은 환경에 있는 사람들만 저의 말에 공감했다. 그래서 목사님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을 포기했다. 3년 정도 지나니까 가까운데서부터 인정받게 되었고 인정하기 시작하는 목사님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저는 성경을 볼때마다 어쩜 다 내 얘긴가 한다. 남자들은 예수님께 직접 교육을 받았는데도 믿지 못했다. 12절엔 그 후에 두사람이 걸어 시골로 갈 때 양육을 해주시고 자세히 풀어주셔서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졌고 그들이 다른 자들에게 전했다. 13절 그런데도 그때도 안믿었다. 안믿는게 남자들의 주제가 같다. 남자여러분께 묻고싶다. 그렇게 안믿어지시는가. 하여튼 주일설교 끝나면 남자들은 다 이해 못했다고 한다. 14절,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전하는데 믿었다는 내용이 전혀 없다. 복음을 적극적으로 거부하거나 배척할 때 쓰는 강한 용어가 완악인데 그 바위같은 마음으로 안믿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꾸짖으실 때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강력한 용어이다. 예수님은 애정을 가지고 가르치셨는데 제자들은 완악하고 믿음이 없었다. 그러니 예수님은 부활의 몸이기 때문에 음식을 드시지 않아도 되었는데 또 드시지 않으니까 낮아지셔서 음식을 먹어주셨다. 여자들은 남자들의 수준으로 낮아질 필요가 있다. 왜 뭘 못하냐 하지 말고. 우리들교회도 그렇고 옛날 큐티모임에도 그렇고 천명의 여자가 나와도 일은 몇명의 남자가 하더라. 저는 정말 남자들을 존경한다. 여자들은 입만 은혜받았다고하지 의자 하나를 안치운다. 이런 배경으로 15절, 이런 남자들에게 온 천하에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신다. 16-17절. 믿지도 않는 자들에게 양육할 기회도 안주시고 곧 온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날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결국 이런 길을 가게 되어있따. 표적이 언제 오냐면 내가 말씀을 따르고 순종해 복음을전 파하면 표적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목장에서 늘 복음을 전파하니까 표적이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수혜를 받게되는 줄 믿는다.
복음을 전파하듯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여야 표적이 따른다. 에스겔 아내를 하루아침에 데려가고 슬퍼하지 말라고, 이와같이 표징의 선교자가 되라고 하신다. 진정한 표적은 뱀 잡고 독 마시는걸 더 넘어 새 방언. 니가 옳다, 고맙다, 미안하다. 이것이 새 방언이다. 이게 복음을 전하는데 최고의 방언이다.
이번 주도 아내 집사의 나눔. 오늘 목장에 참석한 것은 남편과 이혼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기위해 왔다고. 그러니까 목원들이 들고일어나 권면하니 순간 은혜가 임해 이혼을 결심한 마음이 다 녹아내리고 떠나고싶었던 마음이 딱 그목장에서 살아졌다고 간증해주셨다. 그러니 한번만 와보라고 하는 것이다. 목장이 아니었으면 내가 말씀 듣고 큐티해도 이혼할뻔했고 공동체도 떠날뻔했지만 이혼 결심이 순간 사라지는 놀라운 체험을 했다고. 이혼을 선언한 그날 남편은 목장이 끝나고 슬그머니 다가오더니 미안하다고 새 방언을 써서 지금 엄청 목장 예배 양육에 집중하며 삶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게 믿는 자에게는 표적이 따르리니 이다.
멜리데섬의 원주민들이 성령의 고침을 경험하고 은혜를 받았다.
10절
기복적이었던 원주민들은 단지 병고침이 아닌 그너머의 진짜 치료, 진짜 치유, 진짜 고침을 경험했던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로 가야하는데 나에게 허락한 이순간에 나에게 붙여준 한사람을 고치려는 이 마음. 구원을 향한 이 매순간 매순간이 결국 로마인 것이다. 이미 바울은 매일매일 로마에 도달하고 있다. 그리고 계획에 없었던 멜리데에서의 체류는 하나님을 전하는 기회가 되었다. 날마다 로마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로마로 가는 바울 일행의 사명에 동참한다. 후한 예로 바울일행을 대접하고 떠날 때 필요한 물건들을 배에 실어준다. 그래서 파선되어 버렸던 물품들이 다시 다 채워진다. 영원히 잘됨같이 범사에 강건하리라. 아무것도 된 것 없어도 예배가 회복되면 다시 또 여러분들의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신다.
초대교회 설교자로 유명한 요한 크리소스톰은 멜리데 사람들이 이때 회심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다고 한다. 보블리오는 멜리데의 최초의 감독이 되었다가 순교를 했다고 한다. 실제로 지하묘지 카타콤이 발견되므로 멜리데섬이 복음화되었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입증되기도 했다. 믿는 사람은 세상사람에 대해 은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래서 일단 눈에 보이는 은혜 베푸는게 가장 쉬운 방법이다. 뱀 집고 독 마셨는데 멀쩡한게 필요하기도 하다. 거기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 내가 너무 수준 낮지만 복음은 전파되어야 하기에 뱀에서 독에서 표적을 주신 것이다. 그런데 병 낫는데만 쫓아다니고 밤낮 병낫기위해서만 기도하는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성장해가야하고 거룩을 이루어가야하기 때문이다. 좀더 성숙해져가면 광풍과 독사와 시기질투 모함 매맞음 당할때마다 해를 받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고침, 성령의 고침의 열매가 아닌가 싶다.
적용질문
공동체에 들어가서 기뻐하고 있는가? 힘들어하고 있는가?
이제 고침받고 사명으로 이어져가고 있는가?
내년엔 어디서 후한 예로 대접하고 섬기시겠는가?
지난 주 공동체 속에서 사명을 다한 김재남집사님이 11/13 이분이 개척할 때 오신 분이다. 11/13 미국에서 온 친구 전도하고 17일에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지시고 25일에 소천하셨다. 개척때 어떻게 왔냐면, 유학갔다가 남편이 먼저 한국에 왔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들 둘을 키우시면서 아들 둘의 믿음때문에 늘 기도하셨다. 한결같이 목장을 섬기시다가 한마디 유언도 못하시고 가셨다. 그런데 이분이 한주도 빠지지 않고 매주 같은 기도제목을 올리셨다. 그 주에 올린 기도제목이 완전 유언이 되셨다.
아이들의 영혼구원과 장래가 주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용이와 준이가 교회올 수 있기를. 술담배 끊어지고 재정관리 잘하기를. 두 남동생이 주님 영접하기를. 친정엄마 집이 팔려 작은집으로 갈수있길. 준에게 영문큐티인을 보냈는데 거부하지 않고 이 부부가 계속해서 읽을 수 있는 마음 주시기를. 집사님이 연명치료도 안하고 시신 기증하고 한주도 빠지지 않고 매주 같은 기도제목으로 유언을 남기고 생전에 매일을 마지막처럼 죽음을 완벽하게 준비하도록 삶을 인도하셨음에 감사를 드린다. 생전에 남편과도 아들들과도 같이 신앙생활하지 못했지만 죽은 뒤에 하나님이 방문하셨다고 오늘 아들들이 참석하기를 바라면서 우리들교회가 이 아들을 위해 20년을 기도했지만 안나왔다. 저는 오늘 하나님이 반드시 방문하셔서 어머니의 유언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어머니가 20년을 너무 안타까워하셨기에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고, 내가 언제갈지 모르는 이 세상에서 한결같이 매일 똑같이 하니 이것이 전세계에 알려지는 유언이 된줄 믿는다.
<우리목장 기도제목>
이지현목자님
1. 너는 성공한 높은 사람이라며 일을 도와 달라고 했던 사람들을 거절하며 상처준 가해자였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과하며 아픔을 안아주는 연락하도록.
2. 금요일 검사하는데 해를 입지 않고 고침받도록
3. 목장 식구들이 성령받고 예배가 회복되도록
4. 사명따라 있어야 할 곳으로 인도 받을 수 있도록
김연지부목자님
1. 불신과 두려움에서 성령의 고침을 받기를,
2. 매일 큐티 묵상 올리면서 말씀의 성전으로 세워지기를, 세밀하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매달리며 나의 모든 괴로움을 내어놓을 수 있도록.
그래서 구름기둥, 불기둥과 같은 말씀과 공동체를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차한나
1. 성령님이 아닌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살고 싶은 저입니다. 한 주시간 사용 잘 하는 선한 청지기 되길
2. 2차지필평가(12월20일) 오류없이 잘 치뤄지고 1.2등급도 잘 나눠질 수 있길 .
3. 2023년 3월부터 근무할 학교 이제 알아보려고 합니다. 나보다 나를 잘 아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기도하며 원서 내길
박희송
1. 개인회생 폐지예정문자가 오늘 왔는데, 폐지되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신청하면 된다는 마음 가지고 돈에 구애받지 않고 제 체력이 허락하는 곳으로 일할 수 있도록
2. 이번 주 토요일 저번에 떨어진 회계시험 재시험이 있는데, 붙회떨감의 마음으로 공부해서 시험볼 수 있도록
3. 현장예배 잘 드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예배와 큐티한 것을 잘 적용할 수 있도록
4. 건강 잘 챙길 수 있도록.. 운동 꾸준히 하고 음식 아무거나 먹지 않고 엄마가 해 준 반찬들로 건강하게 잘 챙겨먹을 수 있도록
박소은
1.건강한 영육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2. 현장예배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3. 신결혼!
오세은
1. 내가 가해자였음을 인정하며 ,상처 받은 피해자에서 상처 입은 치유자로 주신 사명 감당하도록
2. 아버지,시온,기온,주온,채원,인아님이목장에 갈 수 있는 환경 열어주시길
3. 학원에서 아이들을 선 긋지 않고, 사랑으로 대하며 가르치며 운영에 지혜주시길
4. 큐티인간증 필자로 부르심 받았는데 주님의 전적인 도우심으로 기한내에 원고 쓰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