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일시: 2022.12.04
제목: 성령의 고침
설교: 김양재 담임목사님
본문: 사도행전 28:7-10
7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 보블리오라 하는 이가 그 근처에 토지가 있는지라 그가 우리를 영접하여 사흘이나 친절히 머물게 하더니
8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 있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9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10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실었더라
성령의 고침
결국 우리가 고침을 받아야 되는 이유는 복음전파 때문입니다. 오늘은 성령의 고침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 가장 높은 사람을 고치는 것은 중요합니다.(7절)
보블리오는 아픈 아버지를 고칠 목적을 가지고 바울 일행인 우리를 영접한다. 7절의 영접은 높은 사람을 잘 모시는 것이다. 사흘 동안 좋은 음식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해주면서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왔다. 돈가지고 안되는 일이 있었던 보블리오, 우리 모두는 가족 앞에 장사가 없다. 보블리오라는 이름의 뜻은 퍼블리우스, 퍼블릭까지 온 같은 뜻인 것 같다. 일반인, 대중적인, 모든 사람이 바울을 살인자로 외칠 때 대중적 인기를 얻기 위해 진두지휘한 사람이다. 가장 높은 사람이라는 뜻도 첫째 사람이라는 뜻이다.
옳고 그름의 가치관의 특징 중 하나는 받은만큼 돌려준다 이다. 구원의 초점을 맞춘 가치관은 별 인생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이 땅에서 특별한 동정으로 섬기다가 금새 살인자라고 했다가 하는 이 세상의 가치관으로 사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높은 사람들은 아주 좋아한다. 그래서 가장 높은 사람을 고치는 것은 중요하다. 그 높은 사람이 변하기는 쉽지 않지만 변하면 중요한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명예를 실추시킨 저들을 죽이리라가 이 세상의 정치이다. 믿는 우리는 저들이 예수를 몰라서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람의 대상인 것이 뭐냐,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그날 그날 말씀의 원칙대로 적용하는 것이 믿음이고 그 것이 사랑의 비결이다. 과거를 도말해야 되는데 속은자가 속인자보다 더 나쁘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오늘 내가 예수 믿는 것을 인정을 해야 된다.
바울은 너무 분한 상태에서도 자기가 가해자이자 살인자임을 알았다. 자기가 가해자 살인자의식을 가지고 독사가 물고 있는 것을 잘 보여주니 소문이 났다. 내 적용이 소문이 나야지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나에게 피해를 끼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가 제일 쉬운 거다. 복음 전하라고 피해자가 되는 거다. 내가 피해자이니 지금이 복음 전할 때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보니 날마다 죽이고 싶고 안되니 죽고 싶고..
그 부자들이 권세를 가지고 초라한 노인인 바울을 보고 돈을 바라는 고로 불렀다고 했다. 그러니 보블리오가 그냥 불렀을리 없다. 별 인생이 없다. 얼마나 성경이 인간론인지 모른다. 성경이 답이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비교가 안되는 지혜를 주는 것이다. 이 복을 혼자만 받지 말고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듣게 해야지 복이 유지가 된다. 기회 있을 때마다 복음 전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믿고 안믿고는 주님이 하시는 것이다. 내가 그 열매까지 보려고 하면 안된다.
<적용질문>
·부자면 다냐, 학벌만 좋으면 다냐! 하면서 역차별 하는 것이 있나요?
·나를 부르는데도 용서못해! 하면서 가기 싫은 높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2. 아픔 속으로 들어가 기도하고 안수할 때 주십니다.(8절)
들어가서 기도하고 안수하여 낫게하매 성령의 공의는 결국 고침으로 연결되어야 공의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어떤 문제라도 내 문제가 되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나오게 된다. 무언가를 이룰려면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보블리오가 아픈 아버지를 놔두고 사흘 동안 참은 것처럼. 오픈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 것이 십자가의 지혜와 타이밍이다.
보블리오의 부친의 열병은 말라리아와 이질인데 굉장히 무서운 풍토병이었다. 보블리오는 자신의 집에 이런 아픔이 없었다면 바울이 아무리 뱀에 물려 죽지 않아도 그냥 지나쳤을 거다. 어떤 간증을 들어도 표적을 봐도 나랑 상관이 없다 부자들은 배가 부르기 때문에.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가 진리중에 진리이다. 부자들은 자고로 자기 집에서 다 돈으로 먹을 거 입을 거 다 있기에 공동체를 나오기가 어려운 거다. 그런데 보블리오에게 간절한 아픔이 생긴 거다. 이 것이 감사한 거다.
바울은 멜리데에서 복음을 전하려면 아픔을 가지고 있는 보블리오에게 자기가 먼저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어야 한다. 독사를 경험하게 하셨는데 그것이 최고의 복음을 전하는 비결이 되었다. 당할 때 쉽지가 않다. 그러니 애통함이 생기는 거다.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말이 내가 당하는 일보다 더 힘들때가 많다. 바울은 그것을 경험했기에 보블리오의 영접에 기꺼이 응했다.
누가는 바울이 보블리오의 부친에 들어갔다는 단어를 사용했다. 안수는 두 손을 그에게 얹어서 치유했다는 뜻이다. 내가 그에게 들어가서 병이 걸려도 좋다. 이런 뜻이다. 당신의 아픔이 내 아픔이라는 고백이다. 내가 힘이 있어서 고치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랑 나랑은 똑같은 주님이 임해야 할 아픔이 있어요.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고쳐주세요. 라는 뜻이다.
병이 나았다. 헨리 나우웬은 고통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누가 그것을 고칠 수 있겠냐고 말했다. 바울을 가장 힘들게 한 보블리오에게 들어가야 하는 거다. 그래야 상처입은 치유자가 된다. 상처를 크게 입혔을수록 그에게 들어가서 안수하고 기도해야 한다. 내 아픔이 가장 커서 힘이 든다. 목장에서도 서로가 가해자인 것을 인정하면 나눔이 풍성하다. 자기 죄를 보는 것이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보다 더 어렵다. 누가 목장에서 우리를 가르쳐도 너무 힘들다. 위로해주지 않아도 힘들다. 언제나 내 편만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칭찬해줘야 된다가 자기 죄를 못보는 특징이다.
지옥불에서 올라온, 자존적인 교만을 건드리니 너무 싫은 거다. 나를 직면하는 것은 힘들다. 상처는 들어내기도 안들어내기도 둘다 아프다. 말씀에 의거해서 드러내면 성령님이 고쳐주시는 데 내 힘으로 들어내고 안들어내려니 고통이다. 나를 직면하면 나의 더러움이 보이고 너무 힘든거다.우리가 말씀을 보면서 날마다 나를 보는 나눔을 하는 것은 금보다 더 귀한 것이다. 적용질문을 생각하고.. 우리 삶은 모두 독사에 물려 있다. 날 때부터 죄인이니.. 그래서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내가 회복되었으면 나에게 상처를 준 보블리오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실제로 바울이 들어갔지만 고치신분은 예수님이다. 나는 부족해도 그날 말씀가지고 가라면 가고, 전도하려면 전도하고..주님이 바울을 통해 고치셨다.
<적용질문>
·여러분은 상처입은 치유자 입니까? 상처받은 피해자입니까?
·서로가 가해자 인식을 하나요? 피해자 인식을 하나요?
3. 공동체와 함께 사명이 이어집니다.(9절~10절)
보블리오, 가장 높은 한 사람이 고침을 받으니 나머지 병든 사람들이 바울에게 나왔다. 모든 병든 사람들이 고침을 받았다고 하지 않고 다른 병든 사람들이라고 한다. 병든 사람들 가운데 바울에게 오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는 뜻이다. 그들은 자기 집을 떠나 바울을 보러 오는 수고를 하지 않았기에 고침 받은 여럿에 포함되지 않았다. 모두가 병고침을 받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받은 주님의 치료는 언제나 우리를 여럿으로 공동체로 부르신다. 교회가 이 세상에 혼자 있는 교회는 없다.
심지어 홀로이신 하나님도 성부 성자 성령 공동체로 계신다. 우리가 교회가 꼴보기 싫은 사람이 있어도 조직이 마음에 안들어도 리더십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교회 공동체를 떠나면 안된다. 여럿이 함께 고침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 말씀이 들리지 않아도 그저 예배의 자리에 앉아만 있으라고. 목장에 가서 앉아만 있으라고. 붙어만 있으면 결국 수지 맞게 된다. 고치다의 원어는 테라피의 어원이다. 고침이 뭔가 하면 기본적으로 섬기다 돌보다의 뜻이다.
나 병 낫고 좋아서 룰루랄라가 아니다. 예수님이 힘쓰셨던 치유사역이 바울을 통해서도 이루어 지고 있다. 마가복음 16장 18절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주신 특별한 은총이다. 문자적으로 멜리데는 금새 떠날 곳이기에 마구 기적을 베풀어도 상관이 없다. 그런데, 한 곳에서 날마다 치유사역을 계속 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의 양육은 성령님이 시키실 것이기에.
막달라 마리아는 이른 새벽에 무덤에 갔다. 우리들교회가 귀신들린 사람, 눌린 사람이 와서 예수님을 사모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한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봤다고 외쳤더니 제자들이 안믿었다고 한다. 창녀에 귀신들렸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었다. 나도 평신도인 내가 에스겔을 읊어대니 집중하지 않았다. 3년 정도 지나니 드디어 인정을 받게 되었고 목사님도 내 이야기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에게 직접 교육을 받았는데도 믿지 못했다. 다른 모양으로 나타나주셨는데 역시 믿지 못했다. 남자들에게 묻겠다, 왜 그렇게 안 믿어지나? 완악하다라고 표현하셨다. 예수님도 부활까지 하시고 나셔도 그들의 수준으로 낮아지셔서 음식을 드셨다. 여자분들이 말씀을 잘 깨닫지만 예수님처럼 남자들의 수준으로 낮아질 필요가 있다.
이 완악한 남자들, 믿음이 없는 남자들이 15절에 보니 온 천하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다.
가게되면은 말씀을 따르고 전파하면 표적이 따른다. 제자들이 무슨 믿음이 있겠는가, 그래도 네가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기만 하면 표적을 주겠다고 하시는 거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복음전파하고 다니면 뱀이 물고 독사가 물어도 거기서 표적을 주겠다는 거다. 복음을 전팧하는 것 때문에. 목장을 들어가고 목자를 하니 할 수 없이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것 때문에 표적을 주시는 거다.
전파하지 않으니 표적이 따르지 않는 거다. 복음을 전파하면 표적이 따른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지 못하니 뱀이 물고 독사가 무는 사건들이 생긴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해를 입지 않는 표적을 주신다. 목장에 들어가서 목자, 부목자가 하고 있으니 우리들교회에 표적을 주는 거다. 누구도 못할 것이 없다. 이 때 목자 부목자를 하는 것은 최고의 표적을 하나님이 주시는 징표이다.
중심은 바울이 본을 삼고 따라간 예수님이 계신다. 나는 로마로 가야하는데 나에게 허락한 이 순간에 나에게 붙여진 한 사람을 고치려는 이 마음. 그 마음이 로마인 거다. 그래서, 3개월에 걸친 멜리데에서의 체류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전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었다. 날마다 로마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바울의 동행에 동참하는 거다.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강건하다. 멜리데 사람들이 회심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되었고 보블리오는 순교했다.
믿는 사람은 세상에 대해서 은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면 눈에 보이는 은혜를 베푸는 것이 중요하다. 안수하는 것. 내가 너무 수준이 낮지만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기에 표적을 주시는 거다. 좀 더 성숙해져가면 매 맞음을 당할 때마다 해를 입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성령의 열매이다. 내가 독사에서 해를 당하지 않았는데 날마다 치유집회 쫓아다니고 또 낫게 해달라고 그것은 말이 안되는 거다.나았으면 공동체에서 다른 사람을 고쳐야 하는 거다.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성숙을 이루어 가는 사람에게도 적용이 된다. 오늘 같은 날은 병을 위해서 기도를 해야 되는 거다.
<적용질문>
·공동체에 들어가서 기뻐하고 있습니까? 힘들어하고 있습니까?
·이제 고침받고 사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까?
·내년에는 어디서 후한 예로 대접하고 섬기시겠습니까?
김준 목장보고서
일시: 2022.12.04
장소: 카페 두레브
참석: 김준, 고영광, 이재찬, 정석진, 전재호
나눔 및 목장소식:
- 한 주를 어떻게 살아냈는지 근황을 나누었고, 주일설교 말씀을 통해각자 느낀점을나누었습니다.
- 적용질문을 통해 각자 공동체를 통해 고침을 받은 경험, 그 은혜로 누군가를 고쳐준 경험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기도제목:
A:
1.스트레스를 대처하는 방법을 계속 찾고 목장을 통해서 정해주신 경계선을 넘지 않으려 노력하기
2. 아버지가 내년에 목장이 개편되어도 공동체에 잘 붙어가길
3. 동생이 진로선택을 할 때 지혜와 명철함을 더해주셔서 선한 길로 인도함받길
4. 신결혼에 대한 소망이 생기길
B:
1. 소장님께 일을 그만한다고 말씀드렸는데 대신 일 할 좋은 사람이 잘 뽑히고 소장님 마음이 편하시길
C:
1. 큐티하기
D:
1.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믿음을 주셔서 감사
E:
1. 매일 큐티하기
F:
1. 어머니 건강
2. 체력관리
3. 자기 객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