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재 목장 보고서
▶일자 : 2022.11.27
▶장소 : 예배당 2층
▶인원 : 3명 (조동재, 양승혁, 박시하)
#말씀요약
▶본문 : 사도행전 28장 3-6절
▶제목 : 성령의 공의
▶설교 : 김양재 목사님
멜리데는 피난처입니다. 영원한 피난처에는 공의가 완전해야 합니다.
본문에 공의로 번역된 디케이는 판결의 여신인데, 법정에서의 판결이 공명정대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은 100% 죄인이기에 공평과 정의를 부르짖어도 무엇이 공의인지 모릅니다.
최고의 공의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1.뜨거움으로 독사가 나와야 합니다.
3 ampndash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원주민들이 불을 피워 바울과 일행을 영접했는데, 이 불이 꺼지지 않아야 합니다.
선한 의도로 피운 불이 비와 추위로 조금씩 꺼져가자, 바울이 불을 더 지피려 했는데 그만 독사에 물렸습니다.
이 독사는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독사와 어원이 같습니다.
몸을 일으켜 수고한 바울의 손이 박수받아 마땅한 속인데, 죽음을 상징하는 독사가 바울의 손을 문 채 매달려 있습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은 벌로 결국 뱀이 원수가 되어 세상 끝까지 성도를 괴롭힙니다.
그러므로 피난처라는 뜻의 메르데에 들어갔지만, 이 땅에서는 영원한 피난처는 없다는 것을 바울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사단의 머리를 칠 수 있다고 하십니다.이것이 공의입니다.
사단이 강같이 토해내는 여러 조류가 실패로 끝나자,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에 대해 엄청난 적대적 감정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적대적입니다. 바울에게 죽을 수 밖에 없는 복병이 몰려오는 것입니다.
더 좋은게 있어야 힘든 상황을 버텨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있어서 감사하며 갈 수 있습니다. 어떤 광풍도 광풍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없는게 진짜 광풍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위해 따뜻함으로 가고자 할 때 독사가 뜨거움을 이기지 못해 나와 바울을 물 듯이, 우리 마음 속에는 숨어있는 독사가 있습니다.
나의 독사가 체면과 사회 규범으로 통제되고 있을 때는 모릅니다. 우리는 선의로 전도했지만, 독사같은 독설로 상처를 준 말에 물린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계속 얼어있으면 계속 숨어있었을텐데, 뜨거움으로 인해 실체가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교양있는 사람들은 얼음장처럼 싸우고 이혼하지만, 불같은 싸움을 하는 부부는 실체가 드러나며 이혼하지 않습니다.
오늘 바울은 어떠한가요? 물고 있는지라는 즉시 손을 털어버리지 않고 물린 채로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 의도로 다가갔지만 상대방이 독사같은 눈빛과 말투로 대답하고 있다면, 상대의 독사같은 말을 견디는 것이 바로 공의입니다.
상대방의 독사를 보고 나의 독사를 봐야 합니다. 공의가 하수같이 흘러야 하는데, 성령의 공의는 없고 인간의 공의만 있습니다.
적용질문)
-뜨거움에 나온 치명적인 한 마디 독사의 말과 행동은 무엇인가요?
- 그래서 누구를 죽어라고 물고 있나요? 아니면 잘 물리고 있나요?
2.진실로 살인한 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4- 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 그를 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원주민들이 공의 얘기를 합니다. 물린 채로 있는 게 구원 때문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원주민들은 멜리데의 독사가
얼마나 맹독을 지녔는지 잘 알고 있어 독사를 떼어주고 응급처치하며 걱정해주고 편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은 진실로 살인한 자라고 바울에게 말하며 원주민들이 손가락질 합니다. 디케이의 여신이 바울을 죽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의라고 하면 과거의 죄와 오늘의 죄를 같이 심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시간 지금이 심판의 근거라고 합니다.
오늘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 받는다고 인정하면 내 죄가 즉시 사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겉으로 죄 지은 것 없이 너무 착하게, 조금 어려운 일이 생겨 예수 없다 말하고 죽으면 구원받지 못합니다.오늘을 시점으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멜리데 사람들이 특별한 동정을 주었지만, 그들은 구원을 모르기 때문에 동정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들의 양심은 옳고 그름만 생각하기에 순박해보이지만 금세 배반했습니다. 항상 우리의 동정은 구원에서 출발하는 동정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멜리데인들은 특별한 동정으로 영접하다가 금세 행위를 보고 살인자라고 하다가 6절에서는 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동정은 하나님에서부터 근거가 되지만, 인간의 동정은 변덕이 죽끓듯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착한 것이 악한 것입니다.
원주민 모두가 살인자라고 말 하는 것이 공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동정보다 구원이 필요한 인생인 것입니다.
특별한 동정과 구원은 다른 것이라 잘 분별해야 합니다. 동정이 사랑은 아니며,오직 구원만이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구원으로, 믿음으로 결혼해야 합니다. 동정으로 사랑하면 금세 살인자라고 하고 신이라고 할 뿐입니다.
사람이 자존감이 있어야 합니다. 연애를 하더라도 자존감이 있어야 하며, 나 자신을 값싸게 굴릴 게 아니라, 예수님이 자존감이 되어 사랑해야 합니다.
애원한다고 해서 사랑이 오지 않습니다. 구속사적으로 특별한 동정을 해야합니다. 인간적 동정은 배반당할 뿐입니다.
바울은 어떻게 성령의 공의를 나타낼까요? 바울은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자기 죄를 직면하면서 실체를 인정하니, 섬김의 손이 독사에게 물린손이 되었음에도 인정하고 가만히 있습니다.
독사처럼 물던 죄와 사망을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어주신 것으로 멸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통하여 마귀에게 사로잡힌 죽음을 멸하셨습니다.
우리는 다 독사에게 물려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숨어있는 독사로 그저 존재 자체가 가해자인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죄인인지 아는 정확한 인식으로부터 성령의 공의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존재 자체가 가해자입니다.
살인자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예수를 못박았구나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예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삶과 생명을 다 바쳤는데,
유대인과 로마인, 뱃사람, 원주민들에게까지 살인자라고 무시받는 것을 보면, 과거를 말하며 변명을 했을 것 같은데 바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나는 살인자 이기에 받을 벌을 받는 것이고, 그래서 자기 손에 달려있는 독사가 무섭지 않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는 묻지 않지만, 내 자신의 과거의 죄는 내가 스스로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정죄와는 다릅니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고 인정받으려 하면 안됩니다.
적용질문)
-늘 나의 과거가 인정되나요? 늘 남의 과거를 문제 삼나요?
- 오늘 내가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았습니까?
- 다른 사람도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았음을 인정하시고 이제 그만 용서해주시면 어떨까요?
- 여러분에게 살인자 인식이 있습니까?
- 상대가 나를 비난하며 말할 때 변명을 하며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3.돌이켜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합니다.
5-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잠시동안 뱀이 물고 있었지만, 바울은 이후에 이 짐승을 불에 떨어버립니다. 앞 절에서는 독사로 나왔지만, 4,5절에서는 짐승으로 나옵니다.
상대의 마음속에 숨어있던 독사는 내가 받아줄 수 있지만, 짐승의 권세는 떨어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공의입니다.
죄인을 사랑하지만 죄는 미워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권세 세력들을 바로 특별한 동정으로 피우고 있던 그 불에 떨어야 하는 것입니다.
불에 독사를 떨어내야지, 불을 꺼트리면 안되는 것입니다. 결단했던 적용으로 짐승의 권세가 불살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대로 적용하고 사명을 위해 간다면 어떤 권세도 나를 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위해 불피우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십자가 앞에서 인정하고 간다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존귀한 가치를 권세가 폄하시킬 수 없습니다.
이것은 내가 살인자 의식을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합니다.
6 - 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바울을 보고 살인자라고 했던 원주민들은 죽어가는 바울을 기다리면서 오래 지켜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이렇게 악합니다.
사람이 악한 데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내 옆에 너무 나를 악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바울인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죽을줄로 기다리는 사람이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전한 방식으로 따뜻한 불을 피우니 신이라 말했다고 합니다. 손가락질 받던 바울을 원주민이 이제는 신이라고 합니다.
그가 믿는 하나님을 인정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공의입니다.
불공평한 것이 아니고 공평한 것입니다. 내 열심으로 살았을 때에는 살인자였으나, 내가 사명으로 사니 신이라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합니다.
바울은 어떻게 이럴 수 있었을까요? 자신이 살인자임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씀 붙들고 불을 피우면 나를 살인자라며 손가락질하고 무시했던 사람들이 믿게 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변덕어린 말을 통해 항상 들어야 할 말을 들었습니다. 어떤 말도 허투루 듣지 말아야 합니다.
존재 자체가 가해자이고 살인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적용질문)
-사랑해야 할 죄인은 누구고, 미워해야 할 죄는 무엇인가요?
- 내 인생은 공평합니까? 불공평합니까?
- 새로운 존재가 되었는데 내 환경이 뜨겁다고 겨우 불붙기 시작한 목장예배 불을 꺼뜨립니까?
#기도제목
동재형
- 매일 큐티하며 은혜를 누리고 갈 수 있도록
승혁
- 스스로 가해자이고 살인자임이 인정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시길
상훈이형
- 사업장과가정의 평안을 지켜주시길
시하
- 자신을 되돌아 보고 주변을 잘챙길수 있는 한주가 되길
-추워지는데 탈없이 아프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