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일시: 2022.11.27
제목: 성령의 공의
설교: 김양재 담임목사님
본문: 사도행전 28:3-6
3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으니 뜨거움으로 말미암아 독사가 나와 그 손을 물고 있는지라
4원주민들이 이 짐승이 그 손에 매달려 있음을 보고 서로 말하되 진실로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바다에서는 구조를 받았으나 공의가그를살지 못하게 함이로다 하더니
5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매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6그들은 그가 붓든지 혹은 갑자기 쓰러져 죽을 줄로 기다렸다가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이켜 생각하여 말하되 그를 신이라 하더라
성령의 공의
영원한 피난처에는 공의가 완전해야 합니다. 판결에는 공명정대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사람은 100% 죄인이기에 무엇이 공의일까 알지 못합니다.
최고의 공의는 예수가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이 것이 복음이고 오늘은 성령의 공의를 알아보겠습니다.
1. 뜨거움으로 독사가 나와야 합니다.(3절)
지난 주 본문의 멜리데 원주민들이 영접한 것처럼 지난 주 우리들 교회에 많은 분들을 영접하는 은혜를 주셨다. 이 불은 특별한 동정, 친절로 피워진 불이다. 선한 의도로 피운 불인데 비와 추위로 불이 조금씩 꺼져갔다. 바울이 이 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서 불을 지피려고 했는데 독사로 물렸다. 몸을 일으켜 수고한 바울의 손이다.독사가 손을 문채 매달려 있다. 이 독사는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독사와 같은 어원이다. 뱀으로 인해 선악과 먹고 죄가 들어왔다. 결국, 뱀이 원수가 되어 세상 끝날 때까지 성도들을 괴롭힌다는 뜻이다.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만이 사탄의 머리를 칠 수 있다. 이 것이 공의이다.
사탄이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엄청난 적대적 감정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세상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아주 적대적이다. 바울에게 죽을 수밖에 없는 복병이 또 온것이다. 어찌할줄 모르는 상황이 몰려 온다. 어떤 광풍도 광풍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바울은 계속 따뜻함을 유지하고자 나뭇가지를 던져서 선한 의도의 결과로 독사에 물렸다. 숨어있던 독사가 뜨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나온 것이다. 우리 마음 속에는 알지 못하는 독사가 숨어 있다. 없던 게 생긴 것이 아니라 숨어있던 독사라고 한다. 나의 독사가 체면과 교양과 사회규범으로 통제되고 있을 때는 모른다.
뜨거움이 달려오니 독사가 어두움에서 밖으로 뛰쳐나간 것이다. 가장 가까운 바울을 물고 있다. 우리는 선한 의도로 전도했지만 이번 전도 대회 때도 물리신 분들이 많을 거다. 숨어 있던 독이 섞인 말로 물린 분이 많다. 이렇게 물리면 우리의 숨어있던 독사도 나오게 된다.계속 얼어있으면 숨어있다가 미움의 살인을 할 것인데, 실체가 드러나게 하신다. 교양있는 사람들은 얼음장처럼 싸우지 않고 이혼한다. 실체가 드러나니 싸우는 부부가 건강한 것이다.
그러면, 독사가 물 때 어떻게 할까? 오늘 바울은 즉시 손을 털어버리지도 않고 물린 채로 있었다. 내가 구원의 불을 피웠는데 상대방의 독사같은 눈빛으로 공격할 때 내가 왜 해 하면서 불을 꺼트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를 왕 물어도 물린채로 있어야 된다.물린채로 상대방의 독이 섞인 말들을 다 받아내는 것이 성령의 공의이다. 이런 마음으로 가정, 회사, 나라에서 나와 상대방의 독사를 봐야한다. 공의가 여기저기를 봐도 성령의 공의는 없고 인간의 공의만 난무하고 있다
<적용질문>
·뜨거움에 나온 치명적인 한 마디 독사의 말과 행동은 무엇인가요?
·그래서 누구를 죽어라고 물고 있나요? 아니면 잘 물리고 있나요?
2. 진실로 살인한 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4절)
물린 채로 있는 것은 구원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독사가 나를 문 이 사건을 보면서 얼마나 맹독성이 있는지 잘 아는 원주민들. 이 사람은 살인한 자로다, 진실로 살인자로다라고 말한다. 손가락질 한다. 원주민들은 바울을 살인범이라고 생각하면서 공의, 디케의 여신이 그를 죽인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은 모두 인과응보 미신을 믿는다. 내가 선한 일을 하면 상받고, 악한 일을 하면 벌받고..
공의를 생각해 봐야 한다. 어떤 사람이 평생 죄짓다가 돌이키자마자 천국을 갔다. 선을 행할 시간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천국을 갔을까? 공의라고 하면 사람들은 과거의 죄와 현재를 같이 놓고 생각하기에 과거의 죄가 한 가지라도 있으면 내 삶 전체를 심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에스겔 18장을 보면 과거의 죄를 오늘의 죄를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시간이 심판의 증거이다.
내 죄가 주홍같이 붉을 지라도 오늘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인정을하면 즉시 내 죄가 도말된다. 그러나, 겉으로 죄 지은 것이 없이 너무 착하게 구제 봉사하다가 조금 어려운 일이 생겼는데 이럴 수 있어? 예수가 없네 이러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거다. 왜냐하면 오늘을 시점으로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공의가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인정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성경대로 여러분들한테 말씀을 드린거다.
사람은 공의롭지도 공평할수도 없다. 오직 공의로운 것은 예수 이름만이 공의로운 것이다. 공의로운 사람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예수 믿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멜리데 사람들이 특별한 동정으로 영접을 했다. 믿는 우리는 구원때문에 그들의 특별한 동정을 받아 들였다. 그들은 구원을 모르기 때문에 동정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양심은 옳고 그름만 생각하기에 순박해보이지만 금새 배반하였다. 인간적인 동정을 항상 객관적으로 잘 판단해야 한다. 인간적인 동정을 늘 경계해야 한다. 우리의 동정은 항상 구원에서 출발하는 동정이 되어야 한다.
구원의 동정은 하나님에서부터 근거가 되나, 인간의 동정은 변덕이 심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만 보고 죽일놈 살릴놈. 인간은 착한 것이 악한 것이다. 살인한 자라는 거가 맞지 않는 거다. 그런데, 이 주민 모두가 살인자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공의인가? 자기들은 공의라고 한다. 우리는 동정보다는 구원이 필요한 인생이다.특별한 동정과 구원은 다르다. 동정이 사랑은 아니다. 오직 구원만이 사랑이다. 동정으로 사랑하면 못산다. 감정이 춤을 춘다. 동정을 유발하고 동정을 겨워하지 않아야 한다. 사람이 자존감이 있어야 한다. 연애를 하려고 해도 자존감이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존감.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찾아야 한다. 요즘, 빈곤 포르노라고 곤경에 처한 사람들의 상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동정심을 유발하는 사진과 영상을 말한다.
구속사적으로 특별한 동정을 해야지 인간적으로 동정을 하고 받으면 배반당할 일이 너무나 많기에 모든 목적은 구원이어야 한다. 바울은 어떻게 성령의 공의를 나타냈는가? 바울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 때 우리가 생각을 해봐야 한다. 바울 입장에서 이것이 맞는 말이다. 스데반을 생각하며 내가 스데반, 예수님을 죽인 자라는 실체를 인정하니 원망할 수가 없는 거다.매달려 있는 단어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매달려있다의 단어와 같은 단어이다. 독사처럼 우리를 물었던 죄와 사망을 예수님이 멸하셨다.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다. 우리는 다 독사에게 물려 있다. 그리고 내 마음 속에 숨어있는 독사로 존재 자체가 가해자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다 죄인이었기에.
내가 존재 자체가 가해자인 것을 인정을 안하려고 한다. 내가 어떤 죄인인지 보는 자기인식으로부터 성령의 공의가 시작된다. 사람들이 너는 살인자야라고 할 때 그래서 주님이 나 대신 십자가에 매달리셨구나. 진짜 예수를 만난 사람은 피해자가 될 수가 없다. 누가 뭐라해도 할말이 없는 가해자이다. 살인자 의식이 있어야 한다. 내가 예수를 못박았지.. 바울은 정말 예수를 위해 자신의 모든 삶과 생명을 바쳤다.
그런 바울이 원주민들에게까지 저 인간이 살인자야. 죽은 날이 얼마남지 않은 이때에도 살인자야 저 인간이. 주저리 주저리 뱀을 달고 있으면서 변명을 했을 거다. 이 세상의 남들은 다 과거의 죄를 문제 삼는다. 아무리 지금 잘하고 있어도 삶 전체를 두고 판단하지만 구원은 과거의 죄를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내 자신은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내 자신의 과거의 죄를 인정해야 한다. 정죄하고는 다르다. 때마다 바울을 일으키는 것은 그러므로 자기가 살인자 인식을 하는 거다. 무슨일을 당해도 나는 살인자지. 이 생각만 하는 것이 바울을 늘 살리는 생각이다.
살인자인데 뭐가 두렵겠나, 받을 벌을 받으면 되는데.. 바울은 자기 손을 물고 있는 독사가 두렵지가 않다. 독사가 가져올 죽음이 무섭지 않기에. 죽음을 예수님이 이기셨기에. 사명이기 때문에 매달려 있는 거다. 내 독사가 보였을 때 내가 가해자다. 내가 살인자다. 상대방이 나를 독설로 죽이고자 할 때 맞다고. 내가 죽였다고. 내가 피해자라는 이야기는 그만해야 한다.
목장에서 사과하라니 정곡을 찔리니 화가 나는거다. 항상 우리는 내가 가해자다 이 생각을 하면 되는데, 우리가 적용을 할 수 있는 위인들이 못된다. 그러나 자꾸 적용을 하다보면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하면 된다. 적용도 사랑해서 하는거니 받아줘요. 그러니까 진정성이 없다. 내가 사과해도 욕해도.. 가해자니 할말이 없다. 정죄감하고는 다르다. 예수를 믿은 승자의 여유이다.
<적용질문>
·늘 나의 과거가 인정되나요? 늘 남의 과거를 문제 삼나요?
·오늘 내가 예수 이름으로 구원받았습니까?
·다른 사람도 예수 이름으로 구원 받았음을 인정하시고 이제 그만 용서해주시면 어떨까요? 여러분에게 살인자 인식이 있습니까?
·상대가 나를 비난하며 말할 때 변명을 하며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3. 돌이켜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합니다.(5절~6절)
이후 바울은 짐승을 불에 떨어내버린다. 상대의 마음 속에 숨어있던 독사는 내가 받아줄 수 있다. 그런데 독사의 권세, 이 짐승의 권세는 떨어버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공의이다. 죄인은 사랑하지만 죄는 미워해야 한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거대한 세력, 이 짐승을 특별한 동정으로 피우고 있는 그 불에 떨어버려야 한다. 독사에게 물렸다고 불에 떨어버려야지 꺼트리면 안된다.
적용들이 그 불에 짐승의 권세는 불살라 지는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권세는 살리는 권세인데 짐승의 권세는 죽이는 권세이다. 짐승의 권세를 가지면 상하는 거다. 내가 구원을 위해 불을 피우고 내가 어떠한 자인지 늘 십자가 앞에 인정하고 간다면 그 어떠한 권세도 우리를 해할 수 없다. 어떠한 말들도 우리의 존귀한 가치를 손상시킬 수 없다. 이 것을 경험하는 것이 내가 살인자인식을 가지고 있을 때이다.
성령의 공의는 조금도 상함이 없는 정도가 아니다. 도와주지도 않고 죄지었으니 너 죽어. 저절로 독이 들어가서 죽어야 하는데 사람이 악한데에는 한계가 없다. 사탄이 역사하면 도와주지도 않을 뿐더러 죽어 죽어, 너 나가 죽어 하는거다. 너 이렇게도 예수 믿을거야? 나한테 왜 이런일이 생길까? 여러분들이 바울이기에 생기는 거다.
내 옆에 나를 너무 악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울인거다. 그러니 수고했다고 하는 거다. 옆에 힘든 사람이 있으면 바울이 되는 거다. 여러분이 잘나서가 아니라 오래 기다리는 것. 죽을 줄로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에. 구속사적인 해석을 해야 한다. 욕 퍼붓고 상대를 폭력으로 물면은 반드시 죽던지 쓰러져야 하는데 오래 기다리고 기다렸는데, 이건 너무한거 아니냐고 해야하는데, 내가 당신의 종이에요. 그러니 이상히 여기는 거다.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따뜻한 불을 여전한 방식으로 피우니, 살인자로 끝나야 될 인생인데 손가락질 받던 바울을 이제는 신이라고 한다. 그가 믿는 하나님을 인정한 것이다. 우리는 제일 최고로 높은 자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를 살인자라고 무시했던 그들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예수가 있긴 있나봐 하는 거다. 이 것이 성령의 공의이다.
내 열심으로 살았을 때는 살인자이지만 내가 내 죄를 직면하고 회개했을 때는 복음 안에서 태어난 존재로 나를 빚어가시는 거다.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의 변덕어린 말을 통해 항상 들을 말을 들었습니다가 되는 거다. 들어야 할 말을 들었다. 어떠한 이야기도 헛으로 듣지 말고, 존재 자체가 가해자. 여러분은 살인자이다. 우리들교회는 패자들이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해도 말씀의 널조각에 의지하여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패자부활전이라고 생각한다.
김준 목장보고서
일시: 2022.11.27
장소: 4층 연수홀
참석: 김준, 고영광, 윤석준, 정석진, 전재호, 최재용
나눔 및 목장소식:
- 한 주를 어떻게 살아냈는지 근황을 나누었고, 주일설교 말씀을 통해각자 느낀점을나누었습니다.
- 적용질문을 통해 각자가 독사에 물린 경험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공의와성령의 공의의 차이점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기도제목:
A:
1. 목장을 통해 정해주신 경계선을 넘지 않도록 치열하게 노력하고 적용하기를
2. 일상을 잘 살아내기를
3. 면접준비 미루어두지 않고 시작하기를
B:
1. 감정에 무너지지 않고 하루를 잘 살아내길
C:
1. 몸 건강히 일 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