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30 말씀이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0:38-42
수암감리교회 배명 목사
저는 경기도 안산 수암감리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인정중독 매니아 배명 목사입니다. 큐티를 하면서 인정중독이라는 죄를 계속해서 회개하면서 '나보다 더 큰 죄인은 없구나.'라고 깨닫고 있는데 우리들교회에서 불러 주시고 주일 예배 말씀까지 전하게 하시니 이 땅에서 가장 큰 죄인으로 인정받은 것 같은 굉장히 오묘한 기분이 듭니다. 저희 교회는 1897년 남감리의 선교사님이셨던 프레드릭 리드 선교사님으로부터 세워진 교회입니다. 이제 만으로 125년 되었고, 안산에서 처음 세워진 교회입니다. 제가 지금 34세인데 가장 나이 많은 교회에서 가장 젊은 목사가 담임 목회하고 있습니다. 제가 저희 교회 부임하고 보니까 깜짝 놀랬어요. 성경 속에 있는 분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모세 같은 분들도 있고 다윗 같은 분들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중에 제일 많은 것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 이 영상 보실 텐데 괜찮습니다. 제가 기독교 방송 설교하러 간다고 하는 것보다 우리들교회 설교하러 온다니까 더 관심을 가져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이 영상 많이 보실 텐데 이제는 이런 말해도 괜찮습니다. 제가 요즘 하도 '우리 교회는 바리새인들 밖에 없다.'고, '죄인들 밖에 없다.'고 설교를 해서 이제 들으시면서 아마도 '맞지, 맞지. 우리 바리새인이지, 죄인이지.' 하실 겁니다. 어쨌든 그런 상황이었어요. 지금에서야 우리 성도님들보다 내가 더 바리새인이구나.'하면서 내 죄를 깨닫고 회개하지만 저나 그분들이나 도찐개찐인 거죠. 그래서 생각한 것이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본질로 돌아가는 방법이 뭔지 모르겠는겁니다. 어떻게 본질로 돌아갈 수 있느냐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 들을 정말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까 제가 말은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면서도 본질은 보지 않고 프로그램이랑 방법들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본질을 외치면서도 정작 본질로는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죠. 그러던 중에 저희 교회 전도사님이 우리들교회에서 하는 목욕탕 세미나를 좀 같이 가자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자 세미나도 아니고 목욕탕 세미나는 뭔가?' 생각하는데 전도사님이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담임 목사님이 안 가시면 부교역자는 갈 수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목욕탕 세미나 꼭 가고 싶으니까 목사님 좀 같이 가주시면 안되겠냐?'는 거죠. 제가 누굽니까, 인정중독 매니아자나요. 전도사님한테도 인정을 받아야 되니까 '알겠다.' 그러고 같이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저의 목회 방향을 깨닫게 해주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전도사님이 '목사님 목욕탕 세미나에 같이 가 주시면 안 될까요?'했던 것이 사실은 주님의 말씀이었던 것이죠. '교회가 본질로 돌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합니까?'라는 기도 제목을 붙들고 기도하는데 제가 한참을 붙잡고 헤매고 있으니까 주님께서 우리 전도사님 통해서 응답해주신 겁니다. 목욕탕 세미나를 들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목장 탐방이었습니다. 평신도 목자가 사역자들도 어려워할 것 같은 문제들을 말씀으로 풀어내고, 해석하고 그것이 제 안에서도 다 녹아지는 겁니다. 남편의 문제, 자녀들의 문제였는데 저라면 그저 '아이고, 어떻게 하냐?'고 위로밖에 못했을 텐데 말씀으로 풀어내고, 적용하고 그것을 순종하는 모습들, 그리고 목원들 역시 스스로 말씀으로 삶을 해석하는 모습들이 저에게는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삶에서 살아내는 겁니다. 그래서 혹시 이 설교를 들으시는 다른 목사님들도 목욕탕 세미나를 꼭 참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목장 탐방에 꼭 참여해 보셨으면 좋겠다 권합니다. 분명 목욕탕 세미나를 통해서 깨달아지시는 것들이 있을 겁니다. 저는 어떤 것이 깨달아졌냐면 제 안에 교회와 세상에서의 성도의 삶이 다른 것에 대한 그런 괴리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목욕탕 세미나를 통해서 '말씀으로 분명히 자신의 삶이 해석되고, 말씀을 통한 적용이 삶에서 계속해서 이어지만 세상에서의 모습과 교회에서의 모습이 전혀 다른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삶과 신앙이 일치되는 삶이 되겠구나. 그러면 성도도 살아나고, 가정도 살아나고, 교회도 살아나겠구나.'라는 것이 제 안에 분명하게 믿어지고 깨달아졌습니다. 그 이후로 본질인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말씀으로만, 큐티로만 사역하게 하십니다. 저희 교회도 큐티인 가지고 큐티하고 있고 말씀이 생명이라는 사실을 매 주일 선포하고 있습니다. 주일 예배 설교를 초청받고는 김양재 목사님 설교를 찾아 들어야 하는데 실은 외부강사 목사님들 설교만 찾아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어떻게 하셨나, 나는 어떻게 해야 되나. 아유, 이렇게 해야 되나, 저렇게 해야 되나.' 걱정이 돼서 찾아 들었어요. 그런데 설교를 들으면서 참 위로가 됐습니다. 목사님들은 열심히 하시는데 성도님들이 잘 안 따라오신다는 간증을 들으면서 '야, 다행이다, 우리 교회만 그런 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위로와 평안이 제 안에 있었어요. 뿐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말씀이 생명이고 큐티가 나를 살린다는 선포가 이어지면 성도들이 살아나고, 가정이 살아나고, 교회가 살아나는구나.' 라는 것도 깨달으면서 제 안에 더 없는 위로와 평안이 있었습니다. 저희 교회는 사역자들이 함께 큐티를 합니다. 저희는 오전 시간에 일하지 않고 큐티 하고 나누기만 합니다. 한 시간은 기본익고 어느 날은 점심 시간 지나서까지 계속해서 나눕니다. 그리고 강단에 올라가서 한 시간 기도하고 오전 시간을 다 사용하는 거죠. 저희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내가 먼저 큐티 해야 사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큐티 해야 우리가 우리도 살고, 교회도 산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희 교회의 모든 사역은 이제 단순해졌습니다. 그리고 명료해졌습니다. 큐티만 합니다. 유치부부터 장년부까지 큐티 본문으로 설교를 하죠. 중, 고등부, 청년부는 일주일에 세 번 새벽 예배가 끝나면 큐티 모임을 합니다. 예수동행모임이라고 하는데 새벽 예배를 마치고 아이들이 내려와서 전도사님 인도 하에 같이 큐티 모임을 하고 나누는 거예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죠. 그러면 이제 간신히 밥 먹을 시간밖에 없는 겁니다. 밥 먹고 학교 가는 거예요. 가만 보면 큐티는 우리 어른들이 제일 어려워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큐티를 도와드리려고 영상을 만들어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 유튜브 홈페이지 보시면 매일 매일 큐티인 묵상 영상이 올라가는데 그것을 매일 아침마다 문자로 보내드리고 있어요. 김양재 목사님께서 큐티노트 하시는 것처럼 제작해서 보내 드리고 있습니다. 목사님처럼 깊은 영성을 담아내지는 못하지만 담임 목사 목소리 들으시면서 큐티 좀 하시라고 이렇게 보내 드리고 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별로 보지 않았습니다. 조회수가 별로 안 나왔어요. 점점 조회수가 올라가서 기쁜 마음이 있는데, 그리고 이것을 통해서 저희 교회에 큐티 하는 분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깨진 교회죠. 많을 때는 300명, 400명 정도 출석했던 교회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여러 아픔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담임으로 부임할 때는 주일 출석 인원이 70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같이 큐티합시다.'하니까 그 달에 큐티인이 40권 나가더라고요. 그리고 그 다음 달에는 여러분 몇 권 나갔을까요? 25권 나갔습니다.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마음이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말씀 묵상해야 한다.'고 '말씀이 생명.'이라고 '말씀이 나를 살린다.'고 일 년 내내 설교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도 간증들이 생깁니다. 저희 교회 한 성도님들의 고백입니다. 동생이 심각한 우울증으로 계속해서 자해를 하는 거예요. 자살 시도를 하는 거죠. 자해를 할 때마다 응급실에 가야 되고 멀리서 일하고 있어도 일이 터지면 집으로, 병원으로 달려와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성도님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자기 동생을 살려야겠다.'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고난이 자신이 죄인이기 때문에 찾아왔다.'고 고백하기 시작합니다. 내 죄 때문에 겪는 고난이라는 거죠. 사실 그동안 이 사실을 오픈하지 못했던 성도입니다. 그런데 말씀 묵상을 시작하면서 오픈한 것입니다. 그동안 동생을 무시했던 모습들, 동생의 그런 자해하는 모습들로 가정에 힘듬이, 그래서 동생을 원망했던 모습들을 회개하고, 동생을 위해서 책상 위에 큐티책을 올려놓기도 하고 예수님 이야기도 하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말씀이 나를 살린다는 믿음이 생기니 큐티를 시작하고 말씀을 붙잡기 시작합니다. 한 학생은 부모님이 너무 많이 싸우신답니다. 싸우기 시작하면 너무 심각하게 싸워서 집에 들어가는 것이 무섭답니다. 그래서 아침에도 항상 큐티를 하는 학생인데 집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한번 큐티를 하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 적용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의지해야 집에 들어가는 것이 무섭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더니 며칠 후에 이런 고백을 합니다. '부모님이 싸우시는 것보다 내가 아버지를 무시했던 것이, 내가 아버지를 무심하게 대했던 것이 더 큰 죄.'라는 것이죠. '아버지에게 무심하게 대하고 대화를 피했던 모습들을 회개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부모님을 전도하기 위해서 자기 삶을 더 부지런하게 학생 답게, 그리스도인 답게 사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부모님에게 예수님을 전하겠다.'는 적용을 지금 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가 처음에 큐티책 30권, 많게는 40권으로 시작했는데 1년 6개월이 지난 지금 11월, 12월 큐티인을 80권 구매했습니다. 70명 출석했던 주일 예배가 150명 출석하고 있습니다. 떠났다가 돌아오신 분들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저희 교회가 올리고 있는 큐티인 묵상 영상, 그리고 꾸준히 말씀 묵상에 관한 설교를 하는 것을 영상으로 들으시고 '아, 이 교회가 큐티 하는 교회구나, 이 교회가 말씀이 중심이 되는 교회구나.'라는 것을 보시고 오신 분들입니다. 새신자로 등록하실 때마다 항상 그 말씀을 하십니다. 숫자적 부흥 때문이 아니라 제 안에 '정말 말씀이 본질이구나. 말씀을 통해 성도도 살고, 가정도 살고, 교회도 사는 거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요즘입니다.정말 주님이 하셨고, 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그렇죠,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집으로 들어가십니다.예수님을 집으로 모신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정말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여동생 마리아는 언니 마르다를 돕지 않고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말씀을 듣고 있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자 마르다가 화가 났습니다. 손님을 모셨으면 대접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그리고 여자인 마리아도 그것을 도와야 하는데 이 마리아는 돕지 않고 예수님 말씀만 듣고 있는 겁니다. 바쁜 와중에 돕지 않는 마리아에게 화가 난 것이죠. 그러자마르다가 예수님께 그것을 일렀어요. '예수님, 나 지금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마리아는 돕지 않습니다. 주님이 좀 말씀해 주셔서 마리아에게 일하라고 좀 해주세요.' 그런데 주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시기를 '마리아가 좋은 것을 택하였으니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리라.' 마리아를 두둔하시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실 아라비아 문화를 생각했을 때 마리아가 아니라 이 마르다가 옳은 행동을 한 겁니다. 예수님이 살던 중동은 환대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자기 마을에 낯선 이방인이 오면 3일을 먹여 주고, 재워주어야 했습니다. 구약에서도 아브라함이 천사 3명찾아오자 양을 잡아서 대접하죠. 그런데 보면 3명이왔으면 3인분만 대접하면 되는데 한 30인분 준비해서 대접하는 거죠. 그래서 중동의 시각으로 보면 마리아가 아니라 마르다가 옳다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마리아가 취하고 있는 행동은 유대의 문화에도 맞지 않습니다. 랍비가 앞에서 설교할 때 여자들은 저 뒤에서 말씀을 들어야 하는 거예요. 남자들을 제끼고 맨 앞으로 들어와서 말을 듣는 것은 유대 문화에도 맞지 않는 것이죠. 한 권사님이 실망한 목소리로 전화가 오셨어요. 그래서 '권사님 왜 그러세요?' 물었어요. 그랬더니 말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좀 자세히 물었죠. 그랬더니 이런 겁니다. 교회에 일이 있어서 같이 좀 협력하자고, 같이 좀 돕자고 한 성도님에게 전화를 했대요. 그랬더니 그 분이 이렇게 말했다고 겁니다. '저는 마르다처럼 신앙 생활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마리아처럼 말씀 중심으로 생활할 겁니다. 그러니까 봉사하라고 말씀하지 마세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속상하시다는 거예요.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랍니다. 뭐 일은 혼자 해도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이런 마음이 드셨다는 거예요. '어유, 그럼 나는 마르다인가? 그럼 교회 일은 누가 하지?.' 여러분, 오늘 본문의 핵심은 일하지 말고 말씀만 앉아서 들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교회에서는 마르다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임원도 마르다가 되어야지 마리아가 임원이 되면 큰 일 납니다. 일 잘하는 마르다가 임원이 돼야지 마르다가 되면 될 일도 안 됩니다. 마르다가 임원이 돼야 식당 봉사도 하고, 야유회도 하고, 봉사 활동도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야 교회가 활발해지죠. 그럼 왜 주님께서 일하지 않는 마리아가 아니라 왜 일 열심히 하고 있는 마르다를 책망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41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 41절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마르다가 일하고 있는 것을 책망하신 것이 안입니다. 마르다가 염려하고 근심하고 있는 것을 책망하고 있는 겁니다. 기쁨 없이 염려하여 일하는 것을 조심하라는 거예요. 성경을 읽기 전에는 우리가 염려하는 것이 죄인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세요. 그리고 마르다를 책망하시죠. 그 염려 가운데는 짜증이 있었고, 자기 열심이 있었고, 자기 의, 자기 공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 그 안에 사랑과 기쁨으로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면 마리아도 이쁘게 보았겠죠. 동생 마리아를 보면서 유대 율법을 다 깨고 맨 앞자리 가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보면서 '아, 내 동생이 좀 갈급한가보다, 은혜 받게 놔두자.' 뭐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넉넉한 마음으로 마르다가 마리아를 살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핵심적인 것은 마르다의 깊은 내면 가운데 내가 주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마르다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마르다의 뜻이 마르고 닳도록 일한다 그래가지고 마르다가 아닙니다. 여러분, 마르다의 뜻은 집 주인, 여주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르다가 지금 집 주인 노릇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리아에게만 집 주인 노릇한 게 아니라 예수님에게도 지금 집 주인 노릇하고 있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설교하시고 말씀하시는데 마르다가 예수님의 이야기를 딱 끊고 '예수님, 설교 잠깐 멈추시고 쟤한테 뭐라고 좀 해주세요. 쟤 보고 일하라고 좀 해주세요.' 그런데 여러분, 주님이 계신 곳은 누가 주인이 되셔야 합니까? 예수님이 주인이 되셔야죠. 그런데 이 마르다는 가기가 집 주인 노릇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거예요. 사실 마르다가 정말 예수님을 주인이라고 생각을 했다면 무턱대고 음식부터 준비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물어봐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주님이 여러분의 집에 찾아오셨다면 어떻게 하셨겠어요? 제 생각에는 대부분 마르다처럼 주님의 위해서 음식 준비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우리 집에 찾아오시면 예수님께 먼저 뭐 드시고 싶으신지 여쭤보는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배달의 민족이자나요. 그러니까 그냥 예수님께 집 주인 행세하지 마시고 주님께 물어서 주님 드시고 싶으신 거 시켜가지고 맛있게 먹고 주님이랑 이야기 좀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주님께 물어보지 않는 거죠. 왜냐하면 지금 거기의 집주인이 마르다인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다 하고자 하는 겁니다. '주님, 앉아만 계세요. 제가 다 하겠습니다. 이 마음이 마르다에게 있는 거죠. 지금 마르다는 음식을 준비하면서 예수님을 섬기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예수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이면서 자기의 필요, 자기 의, 자기 공로, 자기 인정을 드러내고 있는 겁니다. 자기가 집 주인 노릇하고 있는 겁니다. 만약 자기가 아니라 정말 예수님이 주인이라고 믿어진다면, 그리고 그렇게 여겨졌다면 예수님의 필요를 묻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께서 그런 마르다를 책망하신 거예요. 일하고, 식당 봉사하고, 청소하고, 그런 거 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라 마르다의 마음 상태, 지금 믿음 상태를 주님께서 아시고 책망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반대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던 마리아를 칭찬하시는 겁니다.
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42절이에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결국 문제는 말씀을 무시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고, 제대로 묵상하지 않는 겁니다. 말씀이 지금 내 앞에 있는데 이 말씀에 묻지 않는 겁니다. 이것이 교회가 죽어가는 원인이 된 것입니다. 인간이 타락하게 된 원인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질문하죠. '하나님이 정말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냐?' 유혹하는 거예요. 그러자 여자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주님은 하와에게 '먹으면 죽을 거야.'이렇게 말씀하셨죠. 그런데 하와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고,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자기의 뜻을 더한 겁니다. 왜 그렇죠? 엄연히 다른 거죠.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은 거죠.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인데 말씀을 듣지 않으니 생명이 타락한 겁니다. 여러분, 우리도 말씀을 이렇게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건성건성 듣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큐티해야 하는 거죠. 말씀이 제대로 들리고 우리 가운데 말씀이 살아 역사해야 우리의 인생이 변하고 우리의 삶이 살아납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거죠. 이사야서 55장 3절에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말씀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이 말씀 묵상이 주님께서 가장 큰 축복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보면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상황과 환경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이 해석되면 내가 달라집니다. 내가 새롭게 되는 거예요. 저희 교회 집사님이 큐티를 묵상하고 간증했습니다. 내용은 이런 겁니다. 이 집사님이 코로나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밖에 나갈 수도 없고 몸도 아프니 처음에는 주님이 원망스러웠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코로나가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죠. 무슨 기회가 됩니까? 말씀을 보고 큐티하는, 그래서 주님을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기회가 되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제는 이 코로나가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자신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것이죠.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말씀이 이 집사님을 변화시켰습니다. 그 마음이 원망에서 감사로 변했습니다. 여러분, 이것보다 더 큰 감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그것이 믿어지신다면 정말 말씀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큐티를 해야 하는 것이죠. 어느 교회 장로님이 계신데 아내 권사님이 한 달 넘게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시는 겁니다. 그래서 담임 목사님이 심방을 가셨어요. 목사님이 심방을 가니까 이 권사님이 집안 일을 열심히 하고 계시더래요. 목사님이 큰 소리로 '권사님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습니다. 힐끗 쳐다보더니 본체 만체 했다는 거예요, 이 권사님이. 그래서 목사님이 권사님에게 다가가셔가지고 '왜 그러시냐?'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울어보셨어요. 그랬더니 권사님이 목사님에게 질문하기를 '목사님, 우리 장로님 죽으면 천국 갑니까, 못 갑니까? 목사님이 당황하셔가지고 큰 소리로 '권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냐?'고, '장로님 같은 분이 천국에 못 가시면 누가 천국에 가냐?'고, 우리 장로님 꼭 천국 가신다.'고, 안심 하시라.'고 이렇게 대답을 했다는 겁니다. 그랬더니 이 권사님이 놀라 자빠질 만한 대답을 하셨다는 겁니다. '우리 장로님 틀림없이 천국 가시겠죠? 그래서 내가 교회 안 갑니다. 교회 열심히 다니면 나도 죽어서 천국 갈 텐데 천국 가서 그 양반 얼굴 볼라니까 나는 교회 안 갈랍니다.' 여러분 이것이 웃어서 넘길 일이 아닙니다. 장로까지 되었는데, 권사가 되었는데, 30년, 40년 신앙 생활했는데 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새롭게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겁니다. 정말 무서운 일이죠. 믿음이 있는 줄 알았는데 믿음이 없는 겁니다. 내 안에 구원이 있는 줄 알았는데 구원이 없는 겁니다. 그 사실을 모르고 죽으면 지옥에 가는 거겠죠. 왜 그렇습니까? 그 안에 말씀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우리가 앞부분 잘 알죠.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뒷부분도 잘 알아야 돼요.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다. 다시 말하면 그 안에 말씀이 없으면 믿음이 없다는 거예요. 내가 지금 말씀 묵상하지 않고 있으면 믿음이 없다는 겁니다. 믿음이 없으니 당연히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고 생명이 없는 거죠. 여러분, 왜 큐티 하기 싫은 걸까요? 내 안에 말씀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에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그런데 경험해 보니까 여러분들 다 아시겠지만, 이 모태신앙이라는 말이 없어져야 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그냥 교회 다닌 것뿐이지 믿음이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모태신앙, 모태신앙.'하니까 자기가 믿음 있는 줄 알고 살아가다가 제대로 예수 만나지 못하고 죽는 비참한 인생을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제 죄패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인정 중독입니다. 이 사실을 THINK 양육 받으면서 깨닫게 되었어요. 사실 저는 양육 받으면서도 저를 인정받기 위해 애를 썼씁니다. '양육을 잘 받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런 모습들이 말씀으로 해석이 되면서 제 안에 인정 중독이 있다는 사실들이 깨달아졌고 '내 안에 이렇게 죄가 가득한데 해결되지 않는 모습으로 목회를 하는 것은 너무나도 큰 죄구나.'라는 것이 깨달아졌습니다. 그때부터 정말 제대로 양육 받기 시작했어요. 저는 34에 장년만 150명, 아이들까지 합치면. 한 200명쯤 되는 교회의 담임 목사입니다. 우리 교회가 제가 부임했을 때부터 그렇치는 않지만 현재 모습이 그렇습니다. 다른 교단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34에 이런 규모의 교회를 담임한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죠. 이것이 저를 포장하고 있는 옷입니다. 요셉이 자기를 자랑하려고, 인정받으려고 입었던 색동옷 같은 것이죠. 저는 우리 교회에 처음부터 담임 목사로 온 것이 아니라 부목사로 부임했습니다. 제가 오기 전부터 목회자의 문제로 어려움이 있는 교회인데, 그런 문제가 있는지 모르고 부임했습니다. 속아서 부임했죠. 그리고 제가 부임을 하고 결국 1년 정도 있다가 제가 섬기던 담임 목사님이 교회에서 나가시게 되었어요, 결국. 그래서 제가 담임 대행으로 일을 하다가 교회 성도님들께서 먼저 '우리 교회 담임으로 부임해주시면 좋겠다.'고 부탁을 하셔서 담임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위에 있는 분들이 저를 순수한 눈빛으로만 보지는 않는다는 거죠. 사람들은 저에 대해서 시기했고, 말을 지어냈고, 소문을 냈습니다. 여러 가지 말들로 협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저 스스로도 사람들이 시기하는 눈빛, 질투하는 말들, 그것들을 즐겼다는 겁니다. 마르다가 집 주인 노릇을 하면서 인정받는 것을 즐겼듯이 제 인생의 집 주인 노릇을 제가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의 집주인 노릇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께 물어보고 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하기 시작한 거죠. 그런 저에게 주님께서 선물을 주셨습니다. 하나는 공황장애이고 하나는 우울증입니다. 인정받기 좋아하는 저에게 찾아온 공황장애와 우울증은 굉장히 큰 고통이었습니다. 강하다고 보여야 했고, 잘나가는 것처럼 보여야 했고, 누구에게나 인정받아야 살 수 있었던 저에게 찾아온 이 공황장애와 우울증은 굉장히 큰 고통이었어요. 그 정도 시기와 그 정도 손가락질과 그 정도 소문으로 이런 병이 찾아왔다는 것이 저로써도 인정할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그 병들을 숨겨왔습니다. 대부분이 선, 후배 목사님들에게 욕을 먹었기 때문에 목사님들 있는 자리에 가야 할 때면 일주일 전부터 불안하고 잠을 못 자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누굽니까? 인정 중독 매니아자나요. 그러니까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괜찮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 감당했어요. 그리고 목사님들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말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겁니다. 이 병들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어요. 그동안 쌓아왔던, 얼마 쌓지도 않았지만, 그동안 쌓아왔던 인정들이 무너지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나아만이 군대 장관이라는 타이틀과 화려한 옷과 장신구로 자기 나병을 숨기고 가리려고 했던 것처럼 저 역시도 감추고 숨기는 것에 급급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 나아갈 때도 괜찮은 것처럼, 의로운 것처럼, 잘 순종하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하나님 앞에도 나아갔습니다. 그러니 치유되지 못하고 제 안에서 계속해서 썩어가는 거죠. 약을 먹어도, 먹어도 해결되지 않는, 정말 죽기까지 갔던 때, 그때 만났던 것이 큐티인 큐티였습니다. 그리고 THINK 양육이었어요. 큐티를 통해서, 특별히 양육을 통해서 이 공항장애와 우울증이 '아, 나에게 와야 할 것이 온 것이구나.'라는 사실이 깨달아졌습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이 우울증과 공황장애라는 병은 외부로부터 온 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기하고, 공격하고, 소문 내고 '그런 주변 목사님들 때문에 내가 이런 병에 걸렸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말씀으로 해석해보니 아니었어요. 나의 죄 때문에 주님이 주신 거였습니다. 나의 죄 때문에 나에게 병을 주시고, 그 병을 통해서 주님을 찾게 하시고, 말씀이 나의 주인이시고,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나의 왕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하신 주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말씀이 저를 살린 거죠.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면서 저의 과거의 죄들을 회개하게 되었고 저의 삶이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하면 저희 성도님들이 '목사님, 젊은데 그때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까?'라고 되물으세요. 그렇게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 쳤습니다. 착해야 됐고, 잘 섬겨야 됐고, 공부도 잘해야 됐고, 예배도 빠지지 않아야 됐습니다. 저는 그게 믿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아니라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무시 받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더라고요. 그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인정 중독에 휩싸여 살아갔을 뿐입니다.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깨닫지 못하고 신학생이 되고, 전도사가 되었어요. 그런데 문제가 무엇이냐면 학창 시절에는 부모님에게만 인정받으면 되고, 선생님에게만 인정받으면 되고, 모교회에만 인정받으면 되는데 스무살이 돼서 밖으로 나가보니까 인정받아야 할 존재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세상 친구들한테도 인정받아야 되고, 술한테도 인정받아야 되고, 여자들한테도 인정받아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 사역하는 교회에서도 일 잘 한다고 인정받아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 정욕의 죄, 음란의 죄 등등, 수많은 죄들을 지으며 살아왔습니다. 인정받기 위해서 남을 속이고 하나님도 속이다 보니까 나 스스로도 속게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내 죄가 보이지 않고, 내 죄가 보이지 않으니 회개하지 않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신학생이 되고, 전도사가 되고, 목사까지 되었어요. 회개하지 않아도 목사가 될 수 있더라고요. 회개하지 않아도 목회만 잘 할 수 있더라고요. 마치 마르다처럼 내 인생의 주인이 주님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실 저에게 찾아온 공황장애와 우울증은 왔어야 하는 고난이었습니다. 아마 말씀 묵상하지 않고, 큐티하지 않고, 말씀을 통해 내 죄를 보고 여전히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라는 것이 깨달아지는 큐티가 없었다면, 정말 말씀으로 양육 받는 이 THINK 양육이 없었다면 저도 그냥 믿음 없는 목사, 직업은 목사인데 예수는 믿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살다가 죽었을 겁니다. 그런데 큐티를 하니까 달라지는 거예요. 말씀으로 내 삶이 해석되니 저의 죄가 보이고 저의 모든 상황들이 말씀으로 해석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셨던 가난이 주님이 나를 만나시고자 하셨던 도구였다는 사실이 깨달아졌습니다. 특히 제가 겪었던 공황장애 우울증이 말씀으로 해석되니 감출 것도, 또 부끄러울 것도 아니라는 거죠.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왔다고 생각했던 공황장애, 우울증이 나의 내부에 있는 죄로부터 왔다는 것이 말씀으로 해석되니 주님께 회개함으로 치료함을 받는 겁니다. 나에게 찾아왔던 고난들이 사실은 주님이 나를 만나시고자 계획이셨음이 믿어지는 겁니다. 말씀이 저를 살렸습니다.그런데 여러분, 사람이 참 간사한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말씀으로 우리가 살았다 함을 믿으면 이 말씀이 계속해서 붙잡혀야 되고, 말씀을 의지해야 되는데 문제가 해결되니까 말씀이 뒤로 밀리는 거예요. 말씀이 첫번째가 아니라 두번째가 되고 세번째가 되는 거죠. 여러분, 저만 그렇습니까? 저만 그런 눈빛이에요,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면 말씀을 놓습니다. 뒤로 밀어 놓아요.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 분명히 말하는 것은 말씀이 첫번째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말씀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 말씀은 믿음의 문제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아침에 일어나 해야 할 것이 많습니까? 정해 놓은 계획들이 있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우리를 살리는 진리의 맣씀을 붙들고, 큐티하고, 묵상하고, 씨름하는 일입니다. 말씀이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삶이 바뀝니다. 저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면 좌절하고 넘어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저는 연약하고, 여전히 저는 죄인이지만 그래도 저에게는 매일 붙드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실은 말씀 묵상하고자 큐티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있어야 설 수 있다고 믿으니까 큐티하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 보면 마르다와 마리아 중에 누가 더 친밀해 보이십니까? 마리아가 더 예수님과 친밀해 보이지 않으십니까? 말씀을 들으려 주님과 가까이 앉아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씀을 들으려 할 때 우리가 주님과 친밀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주님과 친밀해질 수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제가 우리들교회에서 설교를 부탁한다는 전화를 받고 얼마나 떨렸는지 모릅니다. 그 전화를 받은 하루종일 덜덜 떨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이 되니까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괜찮아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컴퓨터를 키고 유튜브를 탁 키니까 김양재 목사님 얼굴이 나오는데 제 마음이 철렁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또 마음이 진정되고, 또 유튜브에서 목사님 얼굴 나오면 마음이 또 철렁하는 거죠. 제 안에 부담감도 있었지만 기대도 있었어요. 사실 저희 청년들은 제가 우리들교회에서 설교하는 것보다 '김양재 목사님하고 만나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거냐?'고, 그게 더 관심을 가지더라고요. 여러분들은 매일 매일 보시니까 그러실 수 있지만, 그런데 여러분 만약에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 BTS, 뭐 아니면 임영웅, 송가인 같은 사람들 만나고 이야기하고 밥 먹었다고 한 번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자랑하는 거죠. '나 BTS랑 임영웅이랑 송가인이랑 만나서 이야기하고 밥 먹었다.'한다면 여러분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까요? 엄청 부러워하겠죠. 여러분에게 우리 주님이, 예수님이 어떤 존재이십니까? 우리 주님은 그 어떤 분보다 위대하고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연예인들과 비교할 바가 되지 못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과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과 우리가 친밀하게 교제할 수 있다고 말하고 계세요.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우리 마음 가운데 거하시고, 동행하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요한일서 1장 1절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에게 주어진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들은 바요, 본 바요, 만진 바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보지 못하고 믿지만 사실은 이 말씀 통해서 예수님을 보고 있는 겁니다. 사실은 이 말씀 통해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겁니다. 주어진 이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지금 주님을 만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진리의 말씀을 소홀히 여겨서야 되겠습니까? 더 말씀 붙들고, 더 말씀 묵상하고, 더 말씀 듣고 순종하려고 애써야 되지 않겠습니까? 정말 말씀이 주인이 되는 삶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마르다가 주님의 책망을 듣고 어떻게 했을까요? 예수님 말씀 무시하고 그대로 하던 음식 준비했을까요? 그럴지 않았을 겁니다. 준비하던 음식을 다 내려놓았을 거예요. 그리고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마리아와 동일한 모습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기 시작했을 겁니다. 주님은 마르다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책망하신 겁니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마르다가 주의 책망을 듣고 자신의 지금 마음 상태, 믿음 상태, 염려하고 분주하고 짜증나는 마음, 주님을 앞에 두고도 집 주인 노릇하려는 그 상태를 보시고 책망하셔서 깨닫게 하고자 하신 겁니다. 말씀을 통해서, 책망을 통해서 마르다의 죄를 깨닫게 하신 겁니다. 마르다에게도 주님의 책망이 창피했을 겁니다. 동생 앞에서 사랑하는 주님에게 혼나는 모습이 부끄러웠을 겁니다. 집 주인으로써도 체면이 서지 않았을 거예요. 동생 앞에서, 집 안 사람들 앞에서 혼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마르다에게 정말 힘든 일이었을 거예요. 체면을 중시하는 유대인이라고 생각해 봤을 때 마르다의 죄가 드러나는 주님의 책망은 고난이었을 거예요. 마르다는 자신의 염려가, 자신이 집 주인 노릇하는 것이 그렇게 큰 죄라고 여겨지지 않았을 겁니다. 죄라고 여기지도 못할 만큼 작은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주님의 책망이라는 고난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게 되는 겁니다. 주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니 사실 이 고난이 마르다에게 축복이 되는 것이죠. 주님께서 하신 그 책망의 말씀이 마르다를 살린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말씀이 나를 살린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말씀 보는 것을 생명처럼 여겨야 합니다. 생명의 말씀을 통해 주님과 교제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주님이 주신 이 진리의 말씀을 통해 우리와 계속해서 교제하고 싶으신 겁니다. 지금 이 때가 정말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살아야 할 때입니다. 정말 말씀이 나의 주인이 되어서 살아야 할 때입니다. '말씀이 나를 살린다. 말씀이 나의 주인이 될 때 내가 살 수 있다.' 이 말씀이 나의 생명이라는 믿음으로 큐티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 말씀으로 살면 내가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마음으로 말씀을 묵상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목장 모임
미혜, 연수, 예선, 우정, 민희 (우정 자매 결혼 전 마지막 목장 참여였습니다.)
기도제목
미혜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실지 기대하며 듣는 인생 되기를
회사의 상황을 하나님께 의탁하며 이 또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 불안해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기를
부모님의 육적 건강과 아빠의 영혼 구원, 엄마의 우울하고 무기력한 마음을 위로하시고 회복시켜 주시기를
목장식구들 일상에서 하나님의 단단한 보호하심을 느끼며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기를
예선
직장에서 경계를 잘 지키고 미리 들은 말씀을 기억하고 안심하며 하루만 잘 다녀오도록
마르다와 같이 염려와 근심이 많아 마음과 생각이 분주한데 말씀으로 생각의 가지치기 잘 할 수 있도록
옳고 그름이 아니고, 좋고 나쁜 게 아닌 위대한 닻 목장에 잘 붙어가도록
건강 잘 챙기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