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날짜22. 10. 30 주일예배
말씀누가복음 10장 38~42절
설교배 명 목사님 (안산, 수안감리교회)

38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39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40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하소서
41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42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숫자적 부흥이 아니라 정말 말씀이 본질이구나! 말씀을 통해서 성도도 살아나고, 교회도 살아나는 거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요즘입니다.
오늘 본문은 아주 유명한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르다의 집으로 들어가십니다. 예수님을 집으로 모신 마르다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정말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동생 마리아는 언니 마르다를 돕지 않고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것이에요. 그 모습을 보자 마르다가 화가 났습니다. 손님을 모셨으면 대접하는 것이 당연한데 아니 앉아서 말씀만 듣고 있으니 그리고 여자인 마리아도 그것을 도와야 할 때인데 바쁜 와중에 돕지 않는 마리아를 보니까 막 화가 나는 거예요. 그러자 마르다가 예수님께 그것을 이릅니다. '예수님, 나는 지금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저 마리아 좀 보세요. 마리아는 안 돕고 있습니다. 마리아에게 나를 좀 도와주라고 이야기하세요!' 그런데 주님께서 마르다에게 말씀하시기를 '마리아가 좋은 것을 택하였으니 그것을 빼앗기지 않으리라' 하고 이 마리아를 두둔하시는 것이 오늘 말씀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사실 중동문화를 생각했을 때는 마리아가 아니라 마르다의 행동이 옳은 행동입니다. 예수님이 살던 중동은 환대 문화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 랍비가 앞에서 설교할 때 여자들은 뒤에서 들어야 합니다. 남자들을 제끼고 맨 앞에서 말씀을 듣는 것은 유대 문화에도 맞지 않는 것이죠. 오늘 본문의 핵심은 일하지 말고 말씀만 앉아서 들으라는 게 아닙니다. 사실 교회에서는 마르다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 일하지 않는 마리아가 아니라 일 열심히 하고 있는 이 마르다를 책망하고 계신 걸까요?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초점을 맞춰봐야 합니다.
41절, 예수님은 마르다가 일하고 있는 것을 책망하고 계신 게 아닙니다. 마르다가 염려하고, 근심하고 있는 것을 책망하고 계신 것이지요. 기쁨 없이 염려하면서 일하는 것을 조심하라는 겁니다. 성경을 읽기 전에 우리는 이 염려가 죄인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세요. 그리고 마르다를 책망하시죠. 그 염려 가운데는 짜증이 있었고, 자기 열심이 있었고, 자기 의가 있었고, 자기 공로가 있었습니다. 만약 그 안에 사랑과 기쁨으로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면 예수님 말씀 듣고 있는 마리아도 예쁘게 보았을 겁니다. 더 핵심적인 것은 마르다의 깊은 내면 가운데 내가 주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겁니다. 마르다의 뜻이 마르고 닳도록 일한다고 해서 마르다가 아니라 마르다의 뜻은 집주인, 여주인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지금 마르다가 집주인 노릇하고 있는 겁니다. 근데 문제는 동생 마리아에게만 집주인 노릇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에게도 집주인 노릇하고 있다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설교하시고 말씀하시는데 마르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탁 끊고 '예수님! 설교 잠깐 멈추시고 쟤한테 말 좀 해주세요! 쟤 보고 일 좀 하라고 얘기해 주세요!!'라고 마르다가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이 계신 곳은 누가 주인이 되셔야 합니까? 예수님이 주인이 되셔야 하죠. 그런데 이 마르다는 자기가 집주인 노릇 하려고 하니까 문제가 되는 겁니다.
사실 마르다가 정말 예수님을 주인이라고 생각했다면 무턱대고 음식부터 준비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물어봐야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주님이 여러분 집에 찾아오신 거예요. 제 생각에는 우리도 대부분 마르다처럼 음식을 준비하고자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예수님이 우리 집에 만약에 찾아오시면 예수님께 뭐 드시고 싶으신지 먼저 여쭤보는 거예요. 우리는 예수님하고 잘 이야기하면 될 것 같아요. 그런데 마르다는 주님께 물어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거기 집주인이 마르다인 거예요. 예수님이 아니라. 그러니까 내가 다 하고자 하는 거죠. '주님! 앉아만 계세요! 제가 다 할게요!!' 지금 마르다는 음식을 준비하면서 예수님을 섬기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예수님 섬기는 것 같으면서 자기 필요, 자기 열심, 자기 의, 자기 공로, 자기 인정을 드러내는 겁니다. 자기가 집주인 노릇 하는 거예요. 만약 자기가 아니라 정말 예수님께서 주인이라고 믿어지고 여겨졌다면, 예수님의 필요를 묻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마르다를 책망하시는 거죠. 마르다의 마음 상태, 마르다의 믿음 상태를 아시고 책망하시는 거예요.
반대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했던 마리아를 칭찬하시는 거죠. 42절, 결국 우리의 문제는 말씀을 무시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고, 제대로 묵상하지 않는 겁니다. 말씀이 지금 내 앞에 있는데 말씀에 묻지 않는 거예요. 이것이 교회가 죽어가는 원인이 되는 거죠. 인간이 타락하게 된 원인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뱀이 여자에게 질문했죠. '하나님이 정말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느냐?' 그러자 여자가 이렇게 대답하죠. '하나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그래서 우리가 깊이 있게 큐티하고, 말씀 묵상해야 하는 겁니다. 말씀이 제대로 들리고 우리 마음 가운데 말씀이 살아 역사해야 우리 인생에 변화가 일어나고, 기적이 일어나는 겁니다. 이사야서 55장 3절에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말씀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이 말씀 묵상이 주님께서 주신 가장 큰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보면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상황과 환경은 그대로일지 몰라도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해석되면 내가 달라집니다. 내가 새롭게 됩니다.내가 지금 말씀 묵상하지 않고 있으면 믿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이 없으니 당연히 참 그리스도인이 되지 못하는 겁니다. 생명이 없는 겁니다. 여러분, 큐티하기가 왜 싫은 겁니까? 내 안에 믿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에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그런데 경험해보니까 이 모태신앙이라는 말이, 여러분 다 아시죠? 없어져야 마땅합니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닌 것뿐이지 믿음이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모태신앙, 모태신앙 하다 보니까 내가 믿음이 있는 줄 알고 살다가 제대로 신앙 생활하지 못하고, 제대로 예수님 만나보지 못하고 죽는 비참한 인생들을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저의 죄패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인정중독'입니다. 이 사실을 THINK 양육을 받으면서 깨닫게 되었어요. 사실 저는 양육을 받으면서도 우리 강사님에게 인정받고자 애를 썼습니다. 양육 잘 받았다는 소리 듣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들이 말씀으로 해석되면서 제 안에 인정중독이 있다는 사실 이 깨달아졌고, 내 안에 이렇게 죄가 가득한데 해결되지 않은 모습으로 목회를 한다는 것은 죄라고 깨달아졌습니다. 그때부터 정말 제대로 양육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34살에 장년만 150명 되고, 아이들까지 합치면 한 200명 정도 되는 교회의 담임 목사입니다. (생략)큐티를 통해서, 특별히 양육을 통해서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와야 할 것이 온 것이구나!라는 사실이 깨달아졌습니다. 사실 그동안 저에게 찾아온 이 우울증과 공황장애라는 병은 제가 외부로부터 왔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시기하고 공격하고 말을 지어내는 주변 목사님들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런데 말씀으로 해석되니까 아니더라고요! 나의 죄 때문에 주님이 주신 거더라고요. 내 죄 때문에 나에게 병을 주시고, 그 병을 통해 주님을 찾게 하시고, 말씀이 나의 주인이시고, 말씀이신 주님께서 나의 왕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하신 주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말씀이 저를 살리신 거죠.
말씀으로 양육을 받으면서 저의 과거의 죄들을 회개하게 되었고, 저의 삶에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저는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중간 생략)그런데 문제가 무엇이냐면, 학창시절에는 부모님에게만 인정받으면 되고, 선생님에게만 인정받으면 되고, 모교회에서만 인정받으면 됐는데 밖으로 나가 보니까 인정받아야 되는 존재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세상 친구들한테도 인정받아야 되고, 술한테도 인정받아야 되고, 여자한테도 인정받아야 되는 겁니다. 사역하는 교회에서도 일 잘한다고 인정받아야 되는 거더라고요. 그러니 정욕의 죄, 음란의 죄, 수많은 죄들을 지으며 살아왔습니다. 인정받기 위해서 남을 속이고 하나님도 속이다보니까 나도 속게 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내 죄가 보이지 않고 내 죄가 보이지 않으니까 회개하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렇게 신학생이 되고, 전도사가 되고, 제가 목사가 된 겁니다. 회개하지 않아도 목사가 될 수 있더라고요. 회개하지 않아도 목회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마치 마르다처럼 내 인생의 주인이 주님이 아니라 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실 저에게 찾아온 공황장애와 우울증은 왔어야 하는 고난인 것이죠. 아마 말씀 묵상하지 않고, 큐티하지 않고, 말씀을 통해 내 죄를 보고 여전히 주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라는 것이 깨달아지지 못했다면 정말 그 큐티와 양육이 없었다면 저도 그냥 믿음 없는 목사,직업은 목사인데 예수를 믿지 않는 그런 사람으로 살다가 죽었을 겁니다. 지옥에 갔겠죠. 그런데 큐티를 하니 달라집니다. 말씀으로 내 삶이 해석되니 저의 죄가 보이고, 저의 모든 상황들이 말씀으로 해석되기 시작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셨던 가난이 주님이 나를 만나고자 하셨던 도구였구나! 특히 제가 겪었던 공황장애 우울증이 말씀으로 해석되니 감출 게 아니구나. 외부의 시선들, 사람들로부터 왔다고 생각했던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나의 내부에 있는여러 가지 정말 더러운 그 죄들 때문에 왔다는 것이 말씀을 통해 해석되니, 주님께 회개하게 되고, 회개하니 치료를 받게 되는 것이죠! 나에게 찾아왔던 고난들이 사실은 주님이 만나시고자 하셨던 계획이셨음이 믿어지는 겁니다. 정말 말씀이 저를 살렸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참 간사한 게 뭔지 아십니까? 말씀으로 우리가 살았다는 것을 믿으면 이 말씀을 계속해서 붙잡아야 하는데 문제가 해결되니까 말씀이 뒤로 밀리는 거예요. 말씀이 첫 번째가 아니라 두 번째가 되고 세 번째가 되는 거죠. 여러분 저만 그렇습니까? 굉장히 저만 그런 눈빛들이세요. 우리는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면 말씀을 놓습니다. 뒤로 말씀을 미뤄놓습니다. 말씀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성경에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어요. 성경에서 이 말씀이 첫 번째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아침에 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정해놓은 계획들이 있으십니까? 그러나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우리를 살리는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묵상하고 주님이 주시는 마음과 뜻을 깨달아 적용할 점을 찾는 것 아니겠습니까? 말씀이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그러면 삶이 바뀝니다. 저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전에는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면 좌절하고 넘어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여전히 저는 연약하고, 여전히 저는 죄인이지만 그래도 매일 붙드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말씀을 묵상하고자 큐티하는 게 아니라 말씀이 있어야 살 수 있으니까 큐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지적으로 말씀을 붙들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 보면, 마르다와 마리아 중에 누가 더 주님과 친밀해 보이십니까? 마리아가 더 친밀해 보이시죠? 말씀을 들으려고 주님과 가까이 앉아 있기 때문이죠. 말씀을 들으려 할 때! 우리는 주님과 더 친밀해질 수 있는 겁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주님과 친밀해질 수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우리 주님은 그 어떤 분보다 위대하고 놀라운 분이세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연예인들과 비교할 바가 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주님과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과 우리가 친밀한 교제를 할 수 있다는 거요. 이 말씀을 통해서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우리 마음 가운데 거하시고, 동행하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요한일서 1장 1절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진리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바요, 만진 바요, 들은 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보지 못하고 믿지만 사실은 이 말씀 통해서 예수님을 보고 있는 거라니까요. 이 말씀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 겁니다. 주어진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 만지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 진리의 말씀을 소홀히 해서야 되겠습니까!
더 말씀 붙들고, 더 묵상하고, 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려고 애써야 되지 않겠습니까!
정말 말씀이 주인이 되는 삶 살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마르다가 주님의 책망을 듣고 어떻게 했을까요? 예수님 말씀을 무시하고 그대로 가서 음식 준비했을까요? 아닐 겁니다. 준비하던 음식 다 내려놓았을 거예요. 그리고 마리아와 똑같이 주님의 무릎 앞에 앉아서 마리아와 동일한 모습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기 시작했을 겁니다. 주님은 마르다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책망하신 거죠. 주님께서도 사랑하는 마르다가 주의 책망을 듣고, 지금 자기의 상태 마음 상태, 믿음 상태, 염려하고, 분주하고, 짜증 나고, 주님을 앞에 두고도 집주인 노릇을 하려던 마음 상태-를 깨닫게 하고자 하시는 겁니다. 말씀을 통해서 책망을 통해서 마르다의 죄를 깨닫게 하시는 겁니다. 마르다도 주님의 책망이 창피했을 거예요. 부끄러웠을 겁니다. 동생 앞에서 사랑하는 주님에게 혼나는 모습이 여러분 얼마나 부끄러웠을까요? 집주인으로서 체면도 서지 않았겠죠. 동생 앞에서, 집안 사람들 앞에서 혼나는 모습은 마르다에게 정말 힘든 일이었을 거예요. 다른 것보다 체면이 중요했던 유대인이라고 생각해 봤을 때, 이 마르다의 죄가 드러나는 주님의 책망은 고난이었을 겁니다. 마르다는 자신의 염려가, 자신이 집주인 노릇하는 것이 그렇게 큰 죄라고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겁니다. 죄라고 여기지도 못할 만큼 아주 작은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주님의 책망이라는 고난을 통해 자기 죄를 깨닫게 되는 겁니다. 주님의 말씀하심을 통해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오니 사실 그 고난이 마리아에게 축복이되는 것이죠. 주님께서 하셨던 그 책망의 말씀이 마르다를 살린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말씀을 보는 것을 생명처럼 여겨야 합니다. 생명의 말씀을 통해 주님과 교제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주님이 주신 진리의 말씀을 통해 우리와 계속해서 교제하기 위해서이십니다. 지금 이때가 정말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며 살아야 할때입니다. 정말 말씀이 나의 주인이 되어서 살아야 할 때입니다. 말씀이 나를 살린다! 말씀이 나의 인생의 주인이 될 때 내가 살 수 있다! 이 말씀이 나의 생명이라는믿음을 가지고 큐티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주님 말씀으로 살면, 내가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마음으로 말씀 묵상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이 시간에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겠습니다. ♬말씀 앞에서
기도제목 우리 이 시간에 한 가지 기도 제목 붙들고 기도합시다. 주님, 말씀이 주인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전히 내 삶에서 주님이 주인되지 못하시고 내가 집주인 노릇하려 했던 나의 모습을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책망일지라도 주의 말씀을 듣고, 주님과 더 가까이 가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통해 내 삶이 분명하게 해석되게 하시고, 언제나 우리의 주인되시는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에 말씀 분들과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김양재 목사님 코멘트 & 적용질문
여러분은 무슨 적용 질문 좀 가지고 나누시겠어요?
Q. 나는 마르다인가, 마리아인가?
Q. 나는 진짜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염려와 근심이 많은가?
최재연 목장 보고서
날짜: 22. 10. 30.4-6시 목장예배
참석: 최재연, 신애리, 이은영
나눔: 마르다 같은 나의 모습(/주인이 되려는모습), 근심, 염려, 걱정(/빈 배)에 대해서 나누어보았습니다.
우리들의 한 주 기도제목
재연언니
1. 마르다처럼 내가 주인 되려고 하는 모습 잘 보고 회개할 수 있도록
2. 정밀 검사 잘 받고 아무런 문제 없도록
3. 출장 안 가게 되도록 ㅠㅠ 가게 된다면 사람과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고 준비 잘 할 수 있도록
4. 언니 형부 사건 해결 감사하는 기도 드립니다!!!
애리
1. 신혼집 문제 말씀보고 내 죄 보기로 해석할 수 있도록
(기존 전세집 빨리 나갈 수 있게)
2. 말씀 보기 게을리하지 않기
3. 결혼 준비 미루지않고 순탄하게 잘 할 수 있게
은영
1. 한주 업무에 체력, 지혜 주시도록
(1-2월 인쇄 감리, 3-4월 기획회의)
2. 공허함, 외로움의 빈 배 말씀으로 채울 수 있도록
3. 신교제, 신결혼, 가족구원
* 사진 나눔마리아 그 잡채(자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