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5일 설교요약
성령의 원함
김양재 목사님
사도행전 26:24-32
통일에 대한 목적이 다들 다르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예수는 죽이고 나만 살려는 소원이 너무 많다.
1. (미쳤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참되고 온전한 말을 해야 합니다.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 사도행전 26장 24절
바울의 간증에 대해 베스도가 소리를 지르며 말을 끊으며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라고 한다. 베스도는 실제적이고 행정적인 사람이다. 그가 보기엔 바울이 너무도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유대인 지도자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다. 방대한 구약성경에 대한 지식으로 바울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예수님 역시 미친 자로 취급을 받았다. 목사님 역시 교회는 다녀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까지는 광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베스도는 바울의 말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자기 상식으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미련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 사도행전 26장 25절
바울은 베스도의 욕에 대해 자신이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라고 매우 정중하게 말한다. 화를 내거나 신경질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쳤다는 말에 맞다고 하여 복음을 더럽히지도 않는다. 아예 반응을 안 하는 것이 답이 아니다. 입 다물고 있는 것이 더 열받게 하는 경우도 있다. 다 맞을만해서 맞는 거다.. 구원을 목적에 두면 표정과 어조까지도 조심하게 된다.
바울은 진리에 대해서 온전한 정신으로 하는 말이라고 밝힌다. 바울은 하나님을 실제로 만났고 허다한 증인이 있었다. 미친 사람의 헛소리가 아니었다. 바울은 힘든 시기와 고난을 겪으며 더욱더 그 믿음을 키워나갔다. 바울은 아무도 믿지 않을지라도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다. 실패처럼 보여도 박해받고 옥에 갇혀도 멈추지 않고 같은 말을 전했다. 자신의 간증과 복음을 전했다. 멀리 다니는 것이 아니라 박해받고 갇혀있는 그 시간에도 한 사람에게 끊임없이 복음을 전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바울은 가시채 얘기를 하며 예수님의 고난을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의 약함과 추함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구원하셨음을 고백하는 것이 간증이다. 갇혀있으면서도 바울은 향방이 잡혔고 허공을 치지 않았다고 한다. 참되고 온전한 말은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거스르지 않으며 순종함으로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간증하는 것이다.
목사님은 늘 자신에 대해 자신이 없었다. 목사로서의 자격이 하나도 없었고 언제든 세상으로 달려나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남편이 없었고 잘나가는 피아니스트였기에 유혹도 많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붙드시고 갇힌 환경 속에서 목사님을 양육하셨다. 자신이 없음에도 목회를 하게 하셨다. 그러니 너무도 모든 말씀이 나의 얘기로 들렸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러한 갇힌 환경 속에서 내면의 죄를 날마나 직면하게 하셨다. 한번에 그 모든 죄를 직면했으면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갇혀있을 때 쓴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정말 되었다함이 없는 죄인임을 알았다. 날마나 주님을 부르지 않을 수 없음을 알았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조심스러운 인생이다. 우리가 너무도 죄인이기 때문이다. 우리모두 주 안에서 갇힌 자가 되어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여러분은 예수 때문에 미쳤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거기까지 하면서 막은 적이 있습니까?
참되고 온전한 말인 약함의 죄인 간증을 하신 적이 있습니까?
2. (위축되지 않고)담대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 사도행전 26장 26절
아그립바는 유대인을 잘 아는 사람이니 바울은 담대히 말한다. 이 모든 일이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유대인 모두에게 드러난 일임을 말한다.
이 땅은 우리의 간증을 듣고 무시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인정하고 가야한다. 대단한 왕과 총독은 믿어지지가 않는다. 이들은 마음이 가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에서 부활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지혜를 갖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부활에 대해 자신을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셨다. 부활이 nothing이라고 하셨다. 이토록 지성과 영성에 대해 연구하신 분이 부활을 실재로 여기지 못한다고 하니.. 정말 바울의 고독이 이해가 된다. 예수의 부활을 실재로 믿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 사도행전 26장 27절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 사도행전 26장 28절
유대인의 분봉왕인 아그립바는 선지자를 믿는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선지자의 선지자이신 이가 예수이기에 아그립바는 긍정도 부정도 못한다. 아그립바에게 선지자 중의 선지자인 예수를 믿으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벨릭스도, 베스도도, 아그립바도 이토록 믿을 기회가 많았는데도 기회를 다 놓친다..
베스도나 아그립바나 명예와 권력의 종이 되어 있으니 마음은 곤고함이 있어도 걸림돌이 너무 큰 것이다. 그들에게는 복음이 미련하고 무리한 일인 것이다. 나의 욕심을 거스르는 걸림돌인 것이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담대하게 믿으라고 하기가 참 어려운 것이다. 우리에게 구원만을 최고의 상급에 놓는 담대함이 없으면 이런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가 없다.
여전한 방식으로 큐티하는 자는 늘 담대할 수 있다. 어디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참되고 온전한 말인 간증을 하려면 담대함이 있어야 한다.
복음이 나에게는 미련한 말입니까? 걸림돌입니까?
3. (추악한 죄인이지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나처럼 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 사도행전 26장 29절
나처럼 되라는 말이 우리에겐 참 교만하게 들릴 수 있다. 이 말은 바울이 본이 되어 자신처럼 살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들으면 자동으로 내 행위를 생각한다. 요셉이 나처럼 되라고 하면 우리는 수능이 되지만 그 행위를 따라갈 수는 없다. 유다가 나처럼 되라고 하면 우리는 수긍이 안 된다. 유다가 잘난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바울 역시 유다만큼이나 죄인이다. 어찌 바울이 자신의 행위를 본받으라고 했겠는가.
우리는 세상의 밑바닥처럼 살아도 나처럼 살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분별해야 하는 것이다. 유다의 며느리가 믿음으로 행한 일이 비록 행위로는 더러우나 영적 후사를 위한 일이었다. 유다가 이것을 인정하고 '며느리가 나보다 옳도다'를 인정한 후 삶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그러니 요셉하고는 차원이 다른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요셉은 모두 박수를 치는 삶이었지만 유다는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삶이었다. 바울은 유다를 대언하여 나처럼 되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비록 악한 죄인이지만 받은 은혜가 있으면 나처럼 되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런 자에게는 천국이 자신의 것임이요 앉으나 서나 하나님이 주신 용서의 은혜가 너무 큰 것이다. 이토록 좋은 복음을 아무도 안 믿으니 바울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나 나처럼 되라고 할 수가 있다.
성령의 원함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나의 원함은 아무 유익이 없다. 겲박이 상징하는 것은 나의 행위가 아닌 오직 은혜로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된다는 것이다.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 사도행전 26장 30절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 사도행전 26장 31절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 사도행전 26장 32절
석방된는 것만 바라고 기도했다면 바울이 가이사에게 상소한 것은 큰 실수다. 우린 내일 일을 모른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의 상담은 자신이 미래를 아는 듯하다. 하루하루 말씀 붙들며 사는 것이 성령의 원함이다. 보혜사 성령의 보호해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가르쳐주셔서 우리를 목적지로 인도하신다. 내가 어린 아이인데 어떻게 알겠는가. 앞으로의 일을 모른다. 하나님께 묻고, 공동체에 물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와 이웃의 구원이다. 우리는 석방만 원해서는 안 된다. 치우친 내 원함을 말씀으로 조정하며 하나님이 나에게 품으신 그 큰 뜻을 알아가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결박당한 환경도 없이 예수 믿는 사람이 질투가 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결박당한 환경은 나의 구원을 위해 꼭 필요한 환경임을 알아야 한다. 나의 고난에 대해 생색낼 이유가 정말 하나도 없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갇힌 환경 속에서도 정말로 천국을 누릴 수 있다. 부활이 실재가 아닌 자에게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우리의 소원이 구원이 되면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다. 이름 없는 선교사 한명의 헌신으로 우리나라가 이처럼 잘 살게 되었다.
건강한 공동체가 만들어지면 다 이룬 것이다. 성경 따로 생활 따로가 아니다. 자신이 죄인이고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아는 자는 어딜 가서든 입을 다물고 중재자 역할을 감당한다. 도덕과 교양과 상식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데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으로 구원받은 것이다.
나처럼 되라고 외칠 수 있겠습니까? 행위입니까 은혜입니까?
가족에게 생색내고 있는 내 결박은 무엇입니까?
ampmdashampmdashampmdashampmdashampmdashampmdashampmdashampmdashampmdashampmdashampmdashampmdashampmdashampmdashampmdash
목보
(또 오랜만에 온)우빈: 이제 주말알바 친구랑 겪주로 할 수도 있어요.. 요즘 피부에 뭐가 올라오는 게 더 심해졌어요.. 병원가긴 귀찮아요.. 취업계 내서 학교는 안 가요. 이제 이번주부터 직장 출근해요. 학교 3주동안 대충 다니다가.
요즘 롤 정 떨어져서 못하겠어요.
요즘 잠이 안 와요. 인생이 너무 재미가 없어요..
아빠가 같이 낚시가자는데 너무 부담스러워요..
레원: 헬스 알아봤어요. 서울숲 옆에 복지관. 일주일에 4만5000원이더라구요. 요즘 매일 친구 5명이서 롤 같이하는데 개재밌어요. 지면 리플레이 보면서 누가 못했는지 따져요.
요즘 동생이랑 누나때매 너무 빡쳐요.. 동생은 제 운전면허 훔쳐가서 술담배 사고 그러는 것 같아요.. 몇 번이나 훔쳐갔는데 모른척 해줬는데 최근에 대놓고 들켰어요.. 그리고 화를 내도 저를 개무시해요. 그리고 나갈 때마다 향수를 너무 뿌리는데 아주 지랄을 해요. 그리고 자기 쓴다고 집 중요한 코드를 다 뽑아놔요.. 머리 세팅하느라고. 그리고 맨날 새벽에 샤워를 해요..
누나는 집에 신발을 신고 들어와서 집 다 어지르고 그냥 나가요. 청소는 제가 다해야돼요..
동생은 지금 태권도 사범이 꿈이래요. 고딩때 이후로 교회 안 나가다가 사범님 따라서 교회 나가고 있대요. 사범님한테만 착한 척 하는 게 너무 빡쳐요..
승준: 요즘 스터디카페에서 그냥 유튜브 보고 드라마보고 하면서 편하게 지내고 있어. 사장님이 출산 때매 일을 더 맡기셨는데 그냥 개꿀이야.
요즘 스카에서 채용정보 찾아보다가 넥슨 공고 봐서 이력서 넣었어. 넥슨 게임 웬만한거 다 해봐서ㅋㅋㅋ 요즘 오랜만에 놀라니까 노는 것도 힘들어. 이번주에 친구들 만나서 4시까지 놀았는데 디질뻔했어.
기도제목
우빈: 피부병 나을 수 있도록.. (승준: 병원이나 가..), 인생이 좀 재밌어지도록.. 아빠랑 같이 일하는데 트러블 없이 잘 지낼 수 있도록.
승준: 건강하게 잘 놀기.. 양육 잘 준비하기. 진로 고민하면서 공동체에 잘 묻고 잘 준비하기.
한결: 학생의 때 잘 보내기. 양육자 직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만나는 사람마다 담대하게 복음 전할 수 있도록.
레원: 동생이랑 누나에게 화 안 내고 잘 넘어갈 수 있도록. 군대 가야되는데 잘 인도받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