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도행전 26:8-15
설교: 김양재 담임목사님
날짜: 2022.09.04.
장소: 휘문고 대강당 2층 중앙 기둥 옆
참석인원: 5/8 (이원범, 여찬, 오수근, 최무현(NEW!), 이윤제)

Source:https://atthecross.org/discerning-gods-voice-dont-kick-against-the-goads/
지난 이야기:바울이 아그립바왕과 신하들 앞에서 성령의 상소하는 배경에서,그리스도에 대한복음을 전하기 위하여간증을 이어간다 (성령의 위엄). 황제에게 직접 심판이 예정된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복음을 전해도 회심을 안할게 분명해보임에도,기회를 얻어간증을 나눈다 (성령의 약속). 세상의 권세를 끊임없이 집착하는 아그립바왕에게 바울은 세상의 권한을 추구하던 자신의 예전 모습에서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모습) 회심하여 현재성령의 권한을 추구하는 지금의 모습을 밝히고, 예수에 대하여 알린다. (성령의 권한)을 얻기위해서는...
1.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믿어야 합니다.
8절. 사두개인의 믿음 - 개념으로 믿는다.
우리는 이론적인 개념의 믿음이 아니라 실재로 믿어야 한다.
중력에서 무중력으로, 기복에서 팔복으로 가듯이 부활을 맛보고 있는 우리. 죽은 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말 죽은 자임을 인정하여야 가능한 부분이다. 십자가도 무거워도, 팔복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면 성령의 권한이 홀연히 주어진다.
부활은 온전히 하나님의 권능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그립바 왕 처럼 나 자신을 영화롭게 해줄 그 무언가를 찾아 다닌다.
우리는 날마다 무너지면서 이미 이뤄진 완벽한 부활을 믿으며 나아간다. 이번 추석 때에, 저 사람은 안변해 등, 하지 말고 부활을 실재의 개념으로 믿을 때에 성령의 권한이 주어진다고 믿는다.
질문. 부활을, 개념으로 믿는 가, 아니면 실재로 믿는 가? 못 믿을 것으로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죽은 자임을 믿는 가?
2. 나도 그랬다의 적용이 있어야 합니다.
9-12절.
우리는 예수를 믿기 전에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예수의 대적자이다.
다 똑같이 사는데, 갈등과 유혹을 극복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본다.
그래서 술과 유흥을 찾아 나선다.
바울은 가멜레아의 제자로서, 어떤 바리새인보다 압도적인 예수의 대적자이였음을 본문을 통하여 본다. 산헤드린의 위임까지 받아, 대제사장의 권한을 받아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채포할 권리를 행세하였다.
오늘 날 직장에서 비슷한 우리의 모습을 본다. 임직원을 섬기는 모습에서 우리는 인정받고 더 높은 직분에 나를 올려놓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며 살아간다.
엑소시아.
세상 우상의 공통된 특징. 우리의 실제 권리보다 더 많은 것을 휘두르며 월권을 행함을 묵상해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잔소리, 등 모두 다 행하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다르게 다가오기에 결국에는 가정이 무너지고 엇나가는 결과를 마주하게 된다.
사람의 동기, 와 새상의 결과는 항상 일치되지 않기마련이다. 착한 사람이 선한 마음을 가지고 모든 법규들을 준수하며 행동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다른이에게 박해로 다가 올수 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단 한사람도 악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도박과 술도 아닌, 자기애 그리고 자기열심으로 똘똘 뭉친 자들이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십자가와 대적하게 되는 역설적인 모습을 묵상한다.
그러므로, 제발 혼자 생각하고 살지 말고, 공동체에 붙어서 묻고 가길 원한다.
Echoist &Narcissist, they go hand-in-hand, but from aPastors view, they are not much distinctive in that they do not follow the footsteps of Christ.
질문. 자랑스럽게 여기는 영육의 역할은 무엇인가? '나도 그랬다'하며 명절에 내 간증을 준비하고 있나? 나는 자기성애의 나르시스트인가? 남만 생각하는 에코이스트인 가?
3. 나의 피 흘림이 예수를 박해하는 것임을 깨닫는 것 이다.
13-15절.
'나도 그랬다'가 결코 꾸며진 이야기가 아님을 밝히는 바울.
9절 - 나사렛 예수를 핍박함을 밝힘.
13절에서는, 나세렛을 빼고 예수를 언급함.
-상대에 맞춰서 간증하는 바울.
바울은 총 3번 간증을 하였는데,
여기 오늘 본문에서는 다른 간증에서 안나왔던 히브리어 (모국어) 나온다. 바울은 헬라어 이름.
'사울아, 사울아...'
'가시채를 뒷 발질하며...' (당시 농경문화에서는 말 안듣는 소를 채찍질하였는데 스스로에게는 피를 흘리게 하는 일).
이 두 히브리어 quotes.
아무도 알지 못하여도, 당신의 과시 속에 난도질 당한 상처를 예수께서 아신다. 내가 그런 삶을 살았다. 이해 할수 없는 부모의 죽음. 근친상간, 등의 상처를 다른 과시와 열심으로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아신다. 가시채로 뒷발질하는 것이 힘든 것을 안다.
...라는 메세지를 내포하고 있었다. 여담으로, 바울이 이렇게 상대에게 맞춰서 간증을 하지만, 그 시대에 많은 유대인들은 결코 바울의 전도로 회심하지 못하였다. 그런 부분에서 개인적으로 슬프다.
바울은 1,2,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옥에 갇히는 데, 지금 이 간증은 조금 다르다. 가시채 이야기가 나오는 게 다른데, 시간에 따라 바울의 관점이 조금 더 예수의 심정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엿 볼수있다.
가시채를 뒷발질 하기가 네게 고생이다.
결국, 순종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다.
인생 최고의 상급은주님이라고 고백할 때에 성령의 권한을허락하시리라 믿는다.
하나님 앞에서 자살은 타살보다 나쁜 것이다. 구원의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질문. 주님은 너에게 가장 밝은 빛인가? 나를 계속 찌르는 가시채는 무엇인가? 내가 스스로 정죄하고 비난하고 자해하는 것이 예수를 박해하는 것임을 아는 가? 그 가시채로 인하여 내 삶을 돌이켜야할 부분은 무엇인 가?
삶과 말씀 나눔:
윤제:
오늘 예배를 들으며, 상당히 많이 찔렸다. 실재보다는 개념으로 믿음을 받아들이는 자신을 묵상한다.
이번 한주 또한 나의 굳센 의지와 노오력으로 알찬 한 주를 살았으며, 그런 자신에게 나름 스스로 뿌듯하였기 때문이다. 나의 주된 업무인 공부,등 외 건강한 생활을 위하여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매일 같이 5:00 min/km로 약 5km를 달린다. 기계체조/맨몸운동에 재미들렸는데, 지난 9개월동안 안되던 머슬업을 이번주 처음으로 달성하기도하였다.
성취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성취 후 은연듯 나처럼 도전하여 발전을 향하여 나아가지 않는 사람들에게 은근히 자랑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나를 드러내어 과시하려고 하는 모습이 있음이 인정이 된다. 성취를 통하여 다른이들에게 인정을 받는 게 내겐 중요하지 않고, 그냥 내가 정한 절대적인 기준에 도달하는 과정자체, 혹은 그러한 나 자신을 흡족케하는 것이니, 우리들 공동체내에서 나보다 narcissitic한 지체가 있을 수 있나 감히 질문해본다. 하나님께 이러한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길 기도부탁한다.
대학원의 고난을 통하여 분명한 구속사로 우리들 공동체로 인도되었다. 경제적인 지원 및 투자를 받아 어린시절 미국유학을 갔었기에 어떤 종목에서 스스로 뛰어나야 한다는 목표의식으로, 그것을 위하여 인생의 다른 부분들을 가차없이 희생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가시채로 뒷발질하는 시기가 있었다. 기복에 대한 간절함으로 주말엔 한인교회 문을 두드렸었고, 결과적으로는 화학공학 전공으로 주립대에서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기복에 의하여 거둔 성과이니만큼 오직 감사함으로 끝나면 참 좋았을텐데, 어째서 하나님은 나에게 더 많은 것을 허락하시지 않는 지 더욱 따지며 원망하곤 하였다. 반대로, 한국 대학원을 다니며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옥터같은 환경에선 나 개인의 능력만으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여 한 없이 좌절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나의 뒷발질함은 어쩌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부분에서 현재 진행중이라 생각된다. 나의 피흘림이 예수를 박해하는 것임을 몰랐으며, '나도 그랬다'까지는 말할 수 있지만, 그에대한 적용까지 잘되고 있는 지는 모르겠다.
말씀이 들리며 조금씩, 나의 죄를 보고가고 있다. 하지만, 하루라도 말씀묵상을 하지 않는다면, 나도 모르게 나의 열심이 나의 자랑이되어 주위사람들을 가스라이팅하며 정죄하는 나를 보게 하신다. 내가 여기 이 자리에서 묵묵히 붙어가게 하심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맞다.
무현:
같은 설교를 듣더라도 열 번은들어야 한 번즈음은 말씀이 들리는 것 같다.
어렸을 때 판교채플에서 드문드문 부모님따라 예배를 드리곤 하였지만, 솔직히 말씀이 아직 잘 안들린다.
어렸을 때 미국에서 생활을 하였고, 디자인 쪽 전공을 하여 대학을 진학하였지만 적성과 맞지않는다고 판단이 되어 한국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막 창궐할 때 즈음 현역으로 군입대를하여 약 두달전 전역을 하였다.
이번 주 처음으로 목장에 나오게 되었다.
현재 음식점에서 주방 보조업무를 배우는 단계인데, 요리하는 일 자체는 나에게 맞고 재미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하여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집에서 먼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권유로 우리들교회 공동체에 다시 나오게 되었는데 앞으로 직장과 공동체 잘 붙어갈 수 있도록 기도부탁한다.
찬: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바울이 다메섹에서 하나님을 만나 회심했다고 하는 간증부분에서, 많은 감동이 있었다.
우리들교회는 어렸을 때부터 다녔지만, 나에게는 2015년이 결정적인 회심의 순간이였던 것 같다.
'나도 그랬다'의 적용이 있어야된다고 말씀하셨었는데,
이게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는 지 묵상해본다.
나는 희귀질환 및 조울증을 장기간 앓고 있는데, 이러한 나도 공동체에 붙어가며 나의 죄를 보는 적용 및 말씀묵상을 해보니, 점점 마음 속에 자유함을 얻고있다. 하지만 솔직히, 이런 희귀질환을 원해서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나? 나 정도면 사람들이 나를 동정하고, 내가 하나님을 원망하며 살아가도 나한테 섣불리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모두가 같은 환경에 있지 않기에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없지만, 이러한 나도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 구원을 받아 살아가고 있기에 다른 이들도 시간이 많이 걸릴 지언정 하나님을 만나 결코 회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영적 전쟁의 최전선에서, 내가 회심하기까지 곁에서 수고한 이들이 그 가능성을 포기하지않았음에 감사하다. 그 또한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는다.
최근 어머니와 잦은 다툼이 있었다. 나의 병명 뒤에서 숨어 사과를 안할 수도있는 선택지가 있었다.
머리로는 내가 잘못한 부분이 조금 있음을 알면서도 적용으로 먼저 다가가 사과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도 두 번 모두 먼저 가서 사과를하는 적용을 하니, 어머니가 사과를 받아주시는 일이 있었다.
큐티 정리하는 게 참 어려운 것 같다.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하기보다, 작은 부분부터 시작을 해보겠다.
여담으로, 저번주 내시경으로 용종제거를 하지못하여 6개월 후 다시 예약을 하였다.
수근:
오늘 설교 중 간증을 해주신 분을 통하여 나 자신과 많은 overlap이 되었다.
간증을 해주신 분은 좋은 법대를 나와 졸업 후 대기업에서 근20년간 근무를 하셨지만, 씻을 수 없는 열등감으로 주변 분들을 힘들게 하며 AD증상을 앓고 있는 자녀분을 통하여 우리들교회로 인도되셨다고하셨다. 그분의 열심과 피흘림이예수를 박해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간증을 해주셨는데, 많은 부분에서 그분에게서도 나의 모습을 본다.
나도 명문대를 졸업하고, 감사하게 금융쪽으로 취직을 하였지만 나 자신도 내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관심과 인정받기 위해서는 내가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조금 있음이 인정된다. 취직하고나서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밥도 많이사기도하고, 등 여러방면으로 보이는 노력을 많이하였다. 그 이면에는 나의 생색이 있었다고 믿어지는데, 남을 수고하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에는 조금이라도 잔존하는 나의 열등감, 조울증, 분노조절이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 반문하게 되었다.
또한, 상황이 뜻대로 안될 때면 나는 주로 남탓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 김양재 목사님의 설교에서 남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했었는데, 남이 아닌 나 자신 때문에, 피흘리며 가시채로 뒷발질하는 나 자신을 보게하시니 남탓을 하면안되겠다는 묵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적용까지는 시기상조인 것 같고, 일단 머리로만 그렇게 생각을 하고있다 (웃음).
무엇보다 오늘 예배를 통하여, 개인이 혼자 판단하고 공동체에 묻지않고 결정할 때에 주변에 얼마나 수고하게하는 지돌아보게되는 것 같다.
원범:
오늘 예배 말씀을 들으면서, 그리고 무현이의 나눔을 들으면서 문득 예전 회사에서의 나의 신입생활이 상기되는 것 같다. 일전에 아무런 인수인계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개발자 경력이 쌓인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신입이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업무를 2주만에 끝내도록 배정받은 적이 있다. 당시 마땅한 결과를 내지못한 상황에서 상사에게 갖은 욕설과 결코 건설적이지 않은 피드백을 받았었는데, 상사에게 화를내기는 커녕 나는 오히려 스스로 자책하던게 기억난다.
가시채를뒷발질하는 것. 나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없기에 다른 이웃에게도 사랑을 온전히 주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때가있는 것 같은데, 은연중에 가시채에 뒷발질을 왜 멈추고 있지못하고 있나, 한 주 동안 돌아보길 원한다.
기도 제목:
찬: 큐티 정리하는 걸 못하는데, 정리할 수 있기를 일원론 적으로 사람 관계 잘 할 수 있기를, 운동도 좀 할 수 있기를...!
무현: 일을 배우는 단계에 있는데 스트레스 받지 않고, 일 잘 할 수 있기를...!
윤제: 이번 한 주 역시 취업준비 잘하고 알차게 살아내기를..! 신교제, 렛스기릿...!
원범: 큐티 빼먹지 않고 할 수 있기를, 좋은 회사로 이직한 동료 시기하지 않기를...!
수근: 회사 사업비 마감 잘 하고 추석에 가족들과 싸우지 않고 즐거운 시간 보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