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
일시: 2022.08.28
제목: 성령의 약속
설교: 김양재 목사님
본문: 사도행전26:1~7
1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너를 위하여 말하기를 네게 허락하노라 하니 이에 바울이 손을 들어 변명하되
2아그립바 왕이여 유대인이 고발하는 모든 일을 오늘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기나이다
3특히 당신이 유대인의 모든 풍속과 문제를 아심이니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너그러이 들으시기를 바라나이다
4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5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6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7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성령의 약속
성경 구절 하나로 사람들을 살려내면 우리들의 모든 찌질함이 감추어지고 성령의 위엄이 따름을 믿습니다.구원은 이 세상 어떤 좋은 일보다도 좋은 일이기에 구원 때문에 인내하면 성령의 위엄을 주십니다.우리에게 허락된 성령의 위엄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1. 어떤 상황에서도 손을 들어 기도할 수 있습니다.(1절)
바울의 변명은 늘 사과하는 듯한 태도로 복음을 전했다. 손을 들은 행위는 연설가들의 특징적인 행위이기도 했는데, 조사를 받는 입장인 바울이연설가의 동작을 한 것이 아니다. 손을 들다의 에크테이노라는 단어는예수님한테 쓰인 단어로, 병자를 고치셨을 때 에크테이노로 표현을 했다. 주님의 모범을 따라서 사역하기를 원한다는 결단의 표현이다.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한다는 표현이다. 단순히 습관적인 제스처가 아니라 불편한 순간, 어찌보면 위기의 순간, 괴롭힘이 반복되는 지겨운 순간에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겠다는 기도의 표현이다. 성령의 위엄을 갖춘 모습이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면 감정적으로 극단적인 반응을 한다. 천국을 보장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보장된 것이 너무 좋아서 이 땅에서 당한 크고 작은일에 일희일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도 어떤 일을 당할 때 자동적인 감정반응에 갇혀있으면 안된다. 그 상황 속에서 손을 들고 짧은 시간이라도 손을 들고 주님, 나 아무것도 못하니까 주님 도와주세요. 주여, 주여.. 이런 주님의 대한 신앙고백이 성령의 약속을 받은 사람이라는 징표이다.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기도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손을 드는 행위는 말씀을 펴는 것이다. 공동체와 함께 매일 정해진 말씀을 묵상하며 적용하는 것이 손을 드는 행위이다.
<적용질문>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전두엽 등 각종 병명 뒤에 숨어서 거기에 묶인 채로 감정의 노예로 살것인가요?
·거기서 손을들고 나와서 큐티하고 나누며 치료받을 것을 결단하시겠습니까?
2. 어떤 일도 다행히 복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2절~3절)
바울의 변명 첫 마디는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일을 다행히 여깁니다 이다. 다행히라고는 단어는 마카리오스이다. 복되다의 뜻이고, 문자 그대로 하자면 바울은 자신을 복있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왜 바울은 자신을 복있는 사람이라고 여길 수 있었을까? 지겨운 괴롭힘이 반복되는 이 땅에서 주님 때문에 박해를 받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약속을 받은 인생 자체가 복된 인생임을 알면 어떤 일을 만나도 그것을 다행히 여길 수 있다. 성령의 약속을 받은 성도의 관점에서는 그 모든 것이 복이라는 것이다. 왜 복이 있는건가?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의 상황은 주님의 이름을 임금들과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말씀을 이루는 일이었다.
바울은 이전에는 자신에게 적대적인 무리를 향해서 복음을 전했다. 그러나 지금은 복음을 전하는 대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번 변론은 가이사랴 상류 계층의 상류 사람들, 유대 민족의 최고의 통치자 아그립바왕이 서있었다. 바울은 로마황제에게 이미 상소한 상태였지만 아그립바가 변론의 기회를 줄 때 거절하지 않았다. 바울의 변론에 귀를 기울일 확률이 적은 아그립바에게 바울은 결코 무례하지않고 배타적이지 않고 친절하게 지나온 신앙과 행적을 변명했다. 구원이 오직 목적인 사람은 해야할 말과 하지 말아야할 태도를 너무 잘 안다. 복음은 부자들에게도 필요하다. 부자들이 총망라한 다시 없을 복음을 전할 이 기회를 바울은 전했다. 그 자리에 누구도 복음을 듣지 않았지만, 기록으로 남겨두셔서 2천년 뒤에 우리 모두가 듣고 있다.
3절의 너그러이라는 뜻은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잘 들어달라는 말이다. 아그립바왕에게 짧게 말씀 드리겠다가 아니라, 내 말이 길고 듣기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끝까지 견디면서 잘 들어달라는 요청을 한다. 복음을 전할 때도 완전 적대적인 사람한테는 인내하면서 참아가면서 끝까지 잘 들어주세요는 맞지 않다. 때에 따라서, 그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서, 문화와 학력을 생각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이 고난을 많이 받다보니 이러한 지혜가 생겼다. 성령의 약속을 받앗기 때문에 자신이 복된 인생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위축되지 않고 전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 나쁘거나 좋은일이거나 다 내가 오늘 복있는 인생. 왜냐하면 거기서 사명으로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모를 수 있으나 후에는 알리라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모든 상황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 주신 컨셉에 포함된다.
<적용질문>
·지겹고 무서운 환경에서도 나는 복있는 사람인가요?
·내 말을 인내하며 너그러이 들어보라며 어떤 만남과 환경에서도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삼고 있습니까?
·전도할 때 차별없이 전하며 상대방의 눈높이와 정서, 상황에 맞게 다가갑니까?
3. 기복의 약속이 아닌 팔복의 약속입니다.(4절~7절)
어린시절 최고 율법교육 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바울. 우등생이었던 바울은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있어 열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얼마나 엘리트 유대인이었겠는가? 바울은 예수 믿기 전 평생을 바리새인 그 자체로 산 사람이었다. 그런 바울이 왜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했는지, 이 질문에 대해 바울은 스스로 답한다.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바울 개인에게 주신 약속이 아니라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기 때문에 이렇게 같은 유대인인 아그립바와 같은 높은 분들 앞에서 내가 심문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주 본문에서 베스도가 죄목도 없이 바울을 보낸다, 무리한 일이라고 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바울의 말도 마찬가지라고 느껴질 수 있다. 겉으로는 똑같이 약속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백성인데, 간절히 섬기다가 한쪽이 다른쪽을 이방인에게 고소하는 일인것이다. 바울과 이 사람들의 차이는 이 약속이 나사렛 예수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고 믿지만, 유대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학대에서 구원해줄 정치적인 메시아만 바라기 때문에, 기복적으로만 바라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하는 약속은 철저히 기복이다. 기복이라는 것을 모르고 기복이다. 이스라엘이 온 세상을 다스리고 온 족속의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유대인은 그 위에 완전히 지도자로 군림하는 이 사람들의 기복적인 메시아관이다. 이런 엄청난 약속이 인간적으로 볼품없는 나사렛 청년 예수로 인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도 이왕 예수를 믿으니 최고의 자리에 가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한다. 그런데, 망해서 끔찍한 사람이 잘 믿는 그 대상이 구세주라고 하는데, 믿고 싶지가 않을 것이다.
누가 십자가를 처형당한 사람을 믿고싶겠는가, 우리도 똑같다. 간증을 해서 여기서 너무 힘든 이야기를 하면 나는 저렇게 믿고 싶지 않어.. 이러는 것이다. 그러니 예수님의 십자가가 나랑은 상관 없다는 태도. 왕복입고 군림하는 것만 바라는 우리의 모습. 기복이라는 가치관조차 모르는 열심으로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했던 바울이었는데,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나서 구세주임을 알게되었다. 죄인줄 알게 되는 성령의 운행하심이다.
예수 잘 믿는 사람은 바랄 수도 없다. 내가 죄인이기 때문에.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아는 것은 죽은자를 일으키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했다. 바울은 이 것을 알아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따라 복음을 전했다. 2년 째 감금된 자신을 복있는 사람이라고 간증을 하는 것이다. 기복에서 팔복으로 변한, 인생의 가치가 율법에서 구속으로.. 바울이 성령의 약속을 붙들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렇게 위엄이 있을 수 있겠는가?
바울은 오직 주님이 수천년 동안 말씀하신, 약속하신 것에 소망을 두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바랄 수 있는 소망은 오직 하나님이 주신 약속, 이것을 믿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오늘 큐티로 사는 것이 최고이다. 붙어도 떨어져도 그 말씀이 증인이 되는 것. 성령의 권능은 지도자나 권력자나 왕이 되는 꿘능이 아니라, 땅 끝까지 예수님을 전하는 증인이 되는 권능이다. 증인은 곧 순교자라는 공식이 성립할 정도로 세상에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에 증인이 죽음에 이르는 핍박을 당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핍박, 박해없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아직 성령을 덜 받은 것이다. 좁고 험한 길을 가듯, 세상에서 오해와 미움과 핍박을 받아 순교자와 같은 처지에 놓이더라도 이상히 여기여 원망하지 않고 내가 복인이구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일이구나라는 생각. 말씀만 보면 이게 응답이다 이 말이 맞을까? 결론은 그것이 맞다.
그날 그날 말씀보고 말씀대로 사는 것. 이것이 집에서 직장에서 순교를 하는 것이다.
성령을 받으려면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몇날이 못되어 너희들이 성령을 받으리라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약속중에 최고가 성령받는 것이다. 주님이 약속하셨으니 우리가 믿고 예루살렘 같은 믿음의 공동체를 붙어있는 것, 함께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하는 것, 매일 말씀묵상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한다.
<적용질문>
·전자동으로 기복적으로 구하는 대상은 무엇입니까?
·팔복의 복으로 증인 되어 순교자의 길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해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로또라도 당첨되면 여러분은 교회에 잘 붙어있겠습니까?
·산으로 들로 세상으로 떠나겠습니까?
김준 목장 보고서
일시: 2022.08.28
장소: 카페 두레브
참석: 김준, 고영광, 이재찬, 윤석준, 전재호, 김정빈
나눔 및 목장소식:
- 지난 주 각자 한 주간 어떻게 살았는지근황 및 소식을 나누었습니다.
- 주일설교 말씀을 통해 각자 돌아봐야 할 부분에 대해서 나누었고 적용질문을 통해 다음 주 적용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기도제목:
A: 체력관리를 잘하고,질서에 순종을 할 수 있기를
B: 앞으로의 일에 대한 생각이 정리 될 수 있도록
C: 새로운 부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D: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는데 업무랑 적절히 시간을 분배하는 지혜를 주시기를
E: 믿음, 소망, 사랑에서 마음껏 공급받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