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단이 목장 보고서
■예배일자:2022년 8월 28일
■예배장소:투썸플레이스
■참석인원:오OO, 안OO, 라OO, 윤OO,박OO(총 5/8명)
■목장풍경
이번주는 다들 직장에서 바쁘고 힘든 일이 많았던 한 주였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이레와 수연언니가 이직을 생각하고 있는데 말씀으로 인도함 받을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오늘 참석하지 못한 식구들은 다음주에는 꼭~ 보아요!!
■말씀읽기
본문:사도행전 26:1-7
제목:성령의 약속
설교: 김양재목사님
■설교요약및 적용질문
지금은 희미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야 이 땅에서 나그네로 잘 살 수 있습니다.
성령의 약속은?
첫 번째, 어떤 상황에서도 손을 들어 기도할 수 있습니다.(1절)
세상의 위엄을 잔뜩 갖춘 아그립바왕이 큰 호의를 베풀듯 바울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변명에 앞서서 손을 듭니다.
⊙ 손을 드는 행위: 당시 연설가들에게 특징적인 행위
그런데 지금 접견 장소에서 바울이 눈치도 없이 이 멋드러진 동작을 했을리 없습니다.
⊙ 들다 = 에크테이노: 연설가들의 손동작으로 쓰인 경우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왕을 향한 경의의 표현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구속사적인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거의 예수님한테만 사용이 되는 단어입니다.
[예수님-에크테이노]
병자를 고치실 때 손을 내밀어 고치셨는데 그때 이 에크테이노를 썼습니다.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기도 amprarr 자기방법이 아닌 주님의 방법에 따라 사역하기 원한다는 결단의 표현입니다.
=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한다는 표시입니다.
☞ 바울이 변명을 시작하면서 손을 든 것은 습관적인 제스처나 경의의 표현(X)
지금! 이 중요하지만 불편한 순간, 위기의 순간,괴롭힘이 반복되는 순간에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를 구하며주님의 능력을 의지하겠다는 기도의 표시(O)
아무리 지적인 사람도 스트레스 상황에 빠지면 감정이 앞서는 것입니다. 에라 모르겠다~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10분 뒤, 5분 뒤도 생각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극단적인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사고를 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고쳤을 때 잃을게 많은 사람은 그래도 조금 조심합니다.
그러니까 잃기 싫기에 내일도 살고 싶은 것입니다.
☞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받은 성도는? 아무런 보장도 없는 소유(재물)만으로도 내일을 걱정하는데 천국을 보장받은 성도는 더욱 내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잃을까 두려워서 내일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보장된 것이 너무 좋기 때문에 내일을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 당하는 크고 작은 것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 세상 위엄으로 가득 찬 접견 장소에서 당황하거나 위축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손을 들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어떤 일을 향해 무릎반사처럼 자동적으로 나오는 감정에 휩싸여서 반응하는데 갇혀 있어서는 안됩니다.
거기서 손을 들고 나와야 합니다.
내 감정에 묶여 있을 것이 아니라 손을 들고 주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손을 들어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성령의 약속을 받은 사람의 징표입니다.★
그래서 그 약속이 이뤄질 것을 믿고 기도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손을 드는 행위는 말씀을 펴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매일 함께 정해진 본문을 묵상하면서 그날 상황을 그날 말씀에 비추어 해석해야 합니다.
그 묵상 자체가 주님께 손을 높이 드는 것이고, 그 말씀대로 기도하는 게 모든 적용의 시작이고, 그 기도를 주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어제는 배상을 하라고 그랬고, 오늘은 나그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고, 재판장을 잘 섬기라고.. 수간하지 말라고 합니다.
경제수준이 올라가고 잘 살게 되니 수간을 허용해 달라는 요구까지 나옵니다.
말씀에 이것이 죄라고 하니, 손을 들고 말씀대로 기도합시다:)
Q 1.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전두엽 등 각종 병명 뒤에 숨어서, 거기에 묶인 채로 감정의 노예로 살 것인가요?
손을 들고 나와서 큐티하고 나누며 치료받을 것을 결단하시겠습니까?
Q 2. 할 수만 있다면 상소해서라도 당장 해결하고 싶은 억울한 일은 무엇입니까?
Q 3. 구원을 위해 얼마나 인내하고 있습니까?
Q 4. 상대방을 인내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두 번째, 어떤 일도 다행히 복으로 여길 수 있습니다.(2-3절)
아그립바왕을 향한 바울의 첫 마디는 '당신 앞에서 변명하게 된 것을 다행히 여깁니다.'입니다.
⊙ 다행히 = 운 좋은 것, 행운(X) amprarr 아그립바가 유대인의 풍속 등을 너무 잘 알기에 그 앞에서 변명하게 된 일이 행운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 다행 = 마카리오스: 복되다라는 뜻입니다.
☞ 바울은 지금 자신을 복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 복 있는 자: 팔복-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니라. amprarr 이 말씀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지겹게 반복되는 심문과 조사의 자리에 선 바울은 어떻게 자신을 복 있는 사람으로 여길 수 있었을까?
지겨운 괴롭힘이 반복되는 이 땅에서 나그네로서 끝까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 = 주님때문에 박해받는 자에게 천국을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에 있습니다.
★약속을 받은 것 자체를 복된 인생으로 알면, 그 어떤 일을 만나도 그것을 다행히 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불행한 일인데 성령의 약속을 받은 성도의 관점에서는 그 또한 복인 것입니다.
☞ 그래서 고난을 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원동력이 있는 것입니다.
왜 복이 있나? 바울은 어떠한 상황, 환경에서도 복음을 전할 전도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오늘 내가 붙어도, 떨어져도 말씀대로 전하니까('말씀대로 이루어졌다!') 다행이고,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체포된 이후 로마로 이송되기 전까지 5번의 변론을 합니다.
아그립바왕 앞에서 하는 변론이 5번째인데 가장 길고, 논리적이고, 상세합니다.
더 신중하고, 문법도 더 고전적이고, 문체도 문학적입니다.
그러면서도 내용은 좀 더 간결하고, 직설적이고, 연설문으로는 훨씬 유창하고 예절이 갖춰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전에는 자신에게 적대적인 무리를 향해 복음을 전했었는데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번 변론의 청중들은 바울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갖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이사랴의 최상류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울 앞에는 유대 종교에 정통한 아그립바왕이 딱! 서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황제에게 상소한 상태이지만 변론의 기회를 줄 때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 아그립바왕: 친로마적, 부도덕, 악한 왕 amprarr 바울의 변론에 귀를 기울여 마음을 바꿀 가능성이 거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아그립바왕이 윤리적&공의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알면서도 결코 무례하지도, 배타적이지도 않고 친절히 자신이 지나온 행적을 변론합니다.
바울이 무죄를 입증하려고 그랬을까? NO! 당시 정치,경제 지도권 인사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복음은 가난한 자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기에, 부자들이라도 구원받아야 할 불쌍한 영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다시없을 이 기회를 이용해 복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5번 전하는데 아무도 안믿습니다. 그런데 왜 전하나?
지금 그 기록을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바울의 모든 변론이 기록으로 남겨졌기에 우리가 믿고, 그 당시 부자들은 안믿었어도 후세 사람들이 믿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분석가, 전문가인 아그립바왕에게 바울은 자신의 말을 너그럽게 들으라고 합니다.
⊙ 너그러이: 인내하며 견뎌야 하는 일을 중간에 그만두지 말고 끝까지 잘 참으라는 것 = 힘든 일을 잘 당하라는 뜻.
바울은 아그립바왕에게 자기의 말을 인내하며 들어달라고 청했습니다.
[24장-대제사장 아나니아가 고용한 더둘로 변호사의 변론]
그가 벨릭스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하면서'우리가 대강 여쭈오니 관용하여 들으시오.'라고 했습니다.
⊙ 관용: 너그러이 들어달라.
but 관용 호의에 대한 조건으로 대강 여쭌다. = 짧게 말씀드릴테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잘 들어달라는 부탁입니다.
ampharr 바울은 아그립바왕에게 짧게 말씀드리겠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내가 해야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게 좀 길고 듣기 힘들 수 있다~ 그런데 끝까지 견디면서 들어주시라~ 요청합니다.
이 자리는 엘리트와 상식이 넘치는 자리입니다. 때에 따라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무죄라는 사실을 더 잘 알기에 다행인게 아니고, 피고의 변론, 변명이 아닙니다.
예수 믿기를 권유하는 전도로 끝이 나는 복음의 변론, 성령의 말씀입니다.
★바울이 성령의 약속을 받았기에 자신이 복된 인생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고,
복 있는 사람임을 아니까 위축되지 않고 이 부담스러운 일도 다행한 일로 여기며 결국 마지막 종착지가 전도의 사명인 것입니다.★
Q 1. 지겹고 무서운 환경에서도 나는 복 있는 사람인가요?
Q 2. '내 말을 인내하며 너그러이 들어 보라'며 어떤 만남과 환경에서도 복음을 전할 기회로 삼고 있습니까?
Q 3. 전도할 때 차별없이 전하며 상대방의 눈높이와 정서, 상황에 맞게 다가갑니까?
[감옥 간 집사님]
항소를 포기한 것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 감옥 간 사건 해석:
1) 감옥 안갔으면 눈총에 맞아 죽었을 것 amprarr 그곳에 보내신 것이집사님을 살리신 것입니다.
2) 분노로 인해 사람을 죽였을 수도 있기에 그렇게 가둬두는게 하나님의 은혜이고 방법입니다.
☞ 이렇게 말씀으로 인생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성령의 약속을 생각하니 다 복입니다.
우리는 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도 기도하면 복으로 여기게 됩니다.
세 번째, 기복의 약속이 아닌 팔복의 약속입니다. (4-7절)
바울은 어린 시절 최고의 율법 교육을 받았고, 예수 믿기 전까지 평생을 바리새인 그 자체로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해서 피고로 살고 있는지, 재차 심문 받고 있는지에 대해 바울이 스스로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그 약속에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같은 유대인인 높은 분들 앞에서 심문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 때부터 백성에게 주신것으로
사실 전체가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김으로 똑같이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백성인데.. 이들이 둘로 딱! 나누어졌습니다.
그것도 이방인, 로마사람에게 고소를 하는 무리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울도 로마황제에게 상소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2년 동안 참고 참고 참다가 할 수 없이 복음을 위해서 마지막에 로마 시민권을 썼습니다.
⊙ 바울: 이 약속이 나사렛 예수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믿음
⊙ 유대인 지도자들: 나사렛 예수를 믿지 않음
하나님이 자기 조상과 약속하신 약속은 무엇?
과거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 노예로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하셨던 것처럼 학대받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메시아로 오실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약속은 기복(정치적 메시아)이기 때문에 출애굽했는데도 모세를 계속 비난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부강한 나라가 되고, 군림하는 지도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 그래서 잘 먹고 잘 사는 기복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런 엄청난 약속이 인간적으로 볼품없는 나사렛 청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싶겠나?
기복의 약속을 바라고 있기에 성령의 약속을 이루실 죽었다가 살아난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우리도 예수 잘 믿어서 이왕이면 예쁘고 공부 잘 하는 것을 기다리는데.. 망해서 끔찍한 사람이 잘 믿는다는 말을 믿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간증을 자꾸 비하합니다.
그 당시 예수님이 나라가 정한 최악의십자가 처형을 당하셨는데 누가 믿겠습니까? 믿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바울 또한 기복이라는 가치관조차 모르고열심으로 하나님을 받들어 섬겼었습니다.
그런 그가 열심으로 다메섹으로 가던 중 주님이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무시하던 나사렛 예수가 구세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성령이 함께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좋은 공동체 만나 양육을받았고 광야에서 주님과 독대하며 훈련받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죄가 얼마나 큰지 알았기에 기복이라는 말조차 바울은 올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십자가의 길, 고난의 길을 따라가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2년째 감금된 자신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간증했습니다.
복의 개념이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기복에서 팔복으로 바뀌었습니다.
★인생의 가치가 율법에서 복음으로, 세속사에서 구속사로 바뀌었습니다.★
바울이 성령의 약속을 붙들지 않았다면 지겹게 반복되는 심문의 자리에 또 서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위엄있게 간증할 수 있겠나?
그저 억울, 힘겹고, 지겹고 해서 하고 싶은 말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심문을 받는 그 상황에 주목하지 않습니다.
내가 왜 심문 받는지 따지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이 약속하신 것에 소망을 둡니다.★
성령의 약속은 기복의 약속이 아니라 팔복의 약속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됩니다.
⊙ 권능: 지도자, 권력자, 왕이 되는 권능(X)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님 전하는 증인(O)
⊙ 증인: 마르티스, 순교자
예수님의 증인이 당하는 핍박의 결과 중 가장 마지막이 순교인데 이 핍박은 증인=순교자 공식이 성립할 정도로 당연합니다.
예수님을 전하려면 다 순교자입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증인이 죽임당하는 것 같은 핍박을 당하는 일도 무리가 아닙니다.
핍박을 받는 만큼 세상의 악과 음란이 드러납니다.
모든 고난은 오직 예수님의 증인이 되라고 주시는 것입니다.
넓고 편한 길이 아닌 좁고 험한 길 가라는 뜻입니다.
☞ 세상에서 오해와 핍박을 받아서 순교자와 같은 처지에 놓이더라도 이상히 여기며 원망할 것이 아닙니다.
왜? 이것이 말씀대로 이뤄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복이 아닌 팔복을 쫓는 삶은 죽음이 아닌 생명을 쫓는 삶, 구원을 향하는 삶입니다.
성령을 받지 않으면 도저히 따를 수도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으려면? 사도들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임하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루살렘같은 믿음의 공동체를 떠나지 말고 꼭~! 붙어서 기다려야 합니다.
함께 마음을 같이 해서 기도해야 하고, 모여 있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날마다 묵상함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소한 것은 잘 묻다가 진짜 중요한 일은 안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진짜 물어야 할 것을 안물으면 성령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성령의 약속은 소유, 기억 / 땅끝가지 증인이 되리라 / 몇 날이 못되어 성령을 받으리라의 약속입니다.
성령을 안받으면 제자들이 사도역할을 못합니다.
사람이 성령을 받는 것이중요해서 성령행전이 아닌 사도행전! 사람이 중요합니다!
남은 넉 달을 매너리즘이나 게으름에 빠지지 말고, 예배를 사수하고, 목장에 참석하고, 매일 큐티합시다!
정 어려우면 듣기라도~ 본문에서 단어 하나만이라도 기억해서 기도:)
아침에 하나님하고 동행했어~ 이것이성령의 약속을 기다리는 적용입니다.
성령의 약속을 구하면서 주를 향해 손을 드는 것입니다. 그 손을 성령님이 꼭! 잡아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주실 줄 믿습니다.
Q1. 전자동으로 기복적으로 구하는 대상은 무엇입니까?
Q 2. 팔복의 복으로 증인 되어 순교자의 길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해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Q 3. 로또라도 당첨되면 여러분은 교회에 잘 붙어 있겠습니까? 산으로 들로 세상으로 떠나겠습니까?
■기도제목
오OO
1.감정이 아닌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생활할 수 있도록
2. 생활예배 회복
안OO
1. 정신없는 일정을 잘 마칠 수 있도록
2. 엄마 직장에서 평안하게 근무하실 수 있도록
라OO
1. 촬영가서 무사히 다치치 않고 일 잘 하고 올 수 있도록
2. 코로나로부터 조심할 수 있도록
3. 이직준비 기도로 잘 구할 수 있도록(주일성수 가능한 쪽으로!)
윤OO
1. 변호사 잘 알아보고 정보를 잘 모을 수 있도록(만약의 상황을 위해)
2. 감정에 휘둘리지 않도록
박OO
1. 퇴근 후에 스터디카페 갈 수 있도록
2. 일을 무리하게 잡아놓은 아빠를 향해 못마땅한 감정이 올라오는데 그 감정에 사로잡혀 아빠를 무시하지 않도록
3. 아빠의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체력 지켜주시기를
4. 아빠가 공예배 참석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