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7.24.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 (출 4:10-17) 임대선 목사님
우리들교회 사역자로 와서 담임목사님께 들은 말이 얼굴이 어둡다는 것이었다. 우리들교회 오기 전에는 사람들에게 인상 좋다는 말도 듣고 얼굴이 밝다는 말도 들었는데 인정이 안되었다. 담임목사님께서 나를 잘 모르셔서 그러신것 같았다. 그런데 얼마 후 사역자 모임 때 나눔을 하고 담임목사님 말을 들으신 후에 아직도 얼굴이 어둡다, 좀 웃어봐라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눌리기 시작했다.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동료 사역자님들은 위로를 해 주실 줄 알았다. 그런데 진짜 얼굴이 어두운것 같다, 좀 웃어보라, 비비크림이라도 발라보라는 말을 해주셨다. 그 후로도 계속 그 말이 마음에 남아 묵상을 많이 했다. 인정이 잘 안되었다. 자동차 운전 할때도 룸미러를 봤고, 비비크림 사볼까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양육 받고 한참 지난 후에야 조금 깨달은 것은 내가 말씀이 안 들려서 얼굴이 어두웠구나 하는 것이 깨달아졌다. 말씀이 안 들리니 담임목사님 앞에서나 목장에서나 회의와 나눔 시간에도 문자적으로 나눔 잘하려고 칭찬받으려고 나눔을 했었고, 잘해야지 하는 표정으로 있었다. 그렇게 나누니 얼굴이 편하지 않아서 긴장되고 상기되고 그랬다. 내 죄가 깨달아지면 자유롭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머리로만 말씀을 깨달으니 얼굴이 어두웠던 것이다.
이 말씀을 조금 깨닫고 담임목사님께 메일을 드렸다.
'얼굴이 어둡다는 말씀이 처음에는 인정이 되지 않았다. 말씀이 들리지 않아서 얼굴이 어두웠고 말씀이 들리지 않으니 편한 사람이 되지 못하여 얼굴이 어두웠다. 그냥 제 외모로도 얼굴이 어두웠던것 같다.'
그러면서 담임목사님께 받은 은혜를 감사함을 담아 메일을 드렸고 담임목사님의 답장이 왔다.
'얼굴이 그래도 조금 밝아지긴 했지'
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밝아졌다. 이 말을 들은 것이 우리들교회 온 지 4년만의 일이다. 밝아진 것이 이 얼굴이다.
오늘 말씀은 출애굽기 말씀이다. 출애굽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모세이고, 모세하면 떠오르는 것은 홍해바다 앞에서 지팡이 들고 홍해바다를 가르는 것이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 그런 멋있는 지도자 모세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모세의 모습을 보면, 읽으셔서 알 수 있듯이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고 변명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하나님께서 노하시기까지 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정말 모세의 모습이 맞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의 모습과 똑같은 이런 모세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가르쳐주시고 인도해 주실 지 말씀을 보도록 하겠다.
1.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 주십니다.
10절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령하신 후에도 역시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모세는 애굽에서 행할 두 번째 이적을 경험했다. 하나님께서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셔서 던졌더니 뱀이 되었고, 꼬리를 잡으라고 해서 잡았더니 다시 지팡이가 되었다. 손을 가슴에 넣었다 빼니 나병이 걸리고 다시 넣었다가 빼니까 다시 돌아오는 그런 이적을 경험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런 이적을 가지고 애굽으로 돌아가서 이스라엘 백성과 장로들에게 이적을 보이고 애굽땅에서 데리고 나오라고 했다.
모세가 즉시 순종했을까?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듣고도 총 다섯번이나 반문 핑계 회피 불순종을 한다. '내가 너에게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할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제 처지를 보십시오, 제가 누구라고 바로에게 가서 그 백성들에게 인도해 냅니까?' 한다. 3:13절에는 '만일 그들이 저에게 그를 보낸자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제가 뭐라고 하냐' 하니 하나님께서 '스스로 있는 자다' 라고도 해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이 네 말을 들을거라고 하셨는데 4:1장에 그들이 절대로 나를 믿지도 않을것이고 내 말을 듣지도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늘 4:10절에 저는 말도 잘 하지 못하고 입도 뻣뻣하고 혀도 둔합니다 하고 변명한다. 그리고 마지막 4:13절에 주여 저 말고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라며 감히 하나님께 이런 말을 한다. 저 같아도 한 대 때렸을 것 같다.
그런데 10절에 보면 모세가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라고 했다. 이 말은 원문에 가깝게 해석하면 나는 말할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말솜씨가 없는 사람이다 라고 번역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줄 모른다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나는 입이 뻣뻣하다 혀가 둔한 자 입니다 라고 한다. 여기서 뻣뻣하고 둔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무겁다 느리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모세는 본래부터 말을 잘 하지 못했고 입도 뻣뻣하고 둔해서 말도 느리게 했을까?
행 7:22에 보면 스데반의 설교에 이런 말이 나온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모세는 애굽에서 40년간 왕자로 왕실 교육받고 자랐다. 왕실에서 말을 잘하는 언변 위한 수사학 의학 천문학을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모세는 자기 동족이 괴롭힘 당할 때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는 것 까지 보고 애굽사람을 쳐서 죽이고 모래에 파묻을 정도로 판단력이 뛰어나고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애굽에 가면 바로도 이스라엘 장로들도 만나야 하고 권위있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도 해야 하는데 하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자기에게 맡기신 사명을 회피하기 위해 변명하고 있다.
저도 예전에는 이 모세의 본문을 보며 답답했다. 어쩜 저렇게 말을 안듣나, 그냥 하나님께서 하라는대로 하면 될텐데,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왜 저러나 하며 모세만 이상한 사람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면서 모세가 왜 이렇게까지 했을까? 모세가 지금 어떤 마음의 상태였길래 지금 이렇게 말을 할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애굽에서 40년간 살았고 살인자 도망자로 광야에서 40년 산 모세는 이제 80세가 되었다. 이 모세의 마음상태가 어땠을까? 40년간 왕자의 삶을 살다가 한순간 살인자 도망자로 동족에게도 배척당하고 40년간 광야에서 아무 희망없이 양만 치고 있던 모세는 자존감도 바닥이고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사명을 계속 회피하고 있다. 모세는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있다. 자기 자신을 잘 직면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계속 기다려주시고 모세가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주시려고 계시는 것이다.
모세의 이런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똑같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하고 싶지 않아서 회피하고 있는 모습,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에 순종하기 싫어서 변명으로 둘러댔던 모습, 먹고 살기 바쁜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하냐며 자신 없다고, 아직은 아니라고, 나중에 조금 더 안정되고 평안해지면 순종할게요 하는 것이 저의 모습이다.
모세가 어려서부터 왕궁에서 왕자로 사람들에게 총애받고 왕실 교육을 받으며 자랐던 것 처럼, 저도 어려서부터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목사님이신 아버지께 FM신앙교육을 받으며 그렇게 자랐다. 어른들은 항상 칭찬해 주셨고 아버지를 따라 어른들을 만나면 네가 임 목사님 아들이구나 이런 말을 들으며 머리도 쓰다듬어 주셨다. 그렇게 착하고 모범적인 목사님 아들이었는데 어느날 제 인생의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직면하고 가르쳐 주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새로운 제 인생 대본으로 드라마가 전개되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는 목회를 시작하신지 7년정도 될 때 교회 어느 남자집사님이 등록을 하셨다. 중고등부 교사도 하시고 다른 집사님들과 함께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해 주셨다. 그렇게 2년정도 되었을 때 집으로 수천만원의 빚 독촉장이 왔다. 알고보니 그 남자집사님께서 저희 어머니와 교회 다른 여자집사님들과 함께 다단계를 하셔서 큰 빚을 지게 되셨다. 수년간 몰래하셨다. 그리고 그 남자집사님과 어머니와의 외도 사실도 드러났다. 그 후 아버지 어머니는 매일같이 싸우셨고 어머니는 결국 집을 나가시고, 저와 남동생은 아버지와 살게 되었다. 아버지는 목회도 집안살림도 하시고 목회도 계속 이어나가셨는데, 성도님들의 눈빛은 예전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가끔씩 집에 오셔서 아버지에게 계속 이혼을 요구하셨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목회자 가정에 이혼이 어딨냐, 절대 안된다 빨리 돌아와서 사모 역할을 잘 감당하라는 마음이셨다. 그런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정죄가 많이 되었다. 자식들 버리고 간 어머니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고, 매일 저렇게 싸우느니 빨리 이혼하시면 좋겠다며 이혼을 종용했다. 그렇게 2-3년간 계속 싸우시며 왔다갔다 하시다가 결국 이혼을 하셨다. 그리고 그 무렵 교회가 있던 상가 건물이 은행에 경매로 넘어가서 전세금 한 푼도 못받고 성도들은 다 흩어지고 아버지는 산속 기도원에 들어가시고 저와 남동생은 남의 집 생활 자취도 하며 혼자 살았다.
혼자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외로움과 고독이었다. 매일 곰팡이 벌레가 있는 지하방에 있었는데, 거기서 비오는 날 라면을 끓여먹으면 뭔가 우울해졌다. 내 인생에 답이 없는 것 같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런 내가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왜 우리집을 이렇게 만드셨을까 하면서 이 고난이 해석되지 않아 신세한탄이 되었고 자존감은 계속 내려갔다.
지하 방에 벌레도 많고 해서 바닥에서 자는게 너무 싫었는데, 어느날은 집 앞 골목에 누가 매트리스를 버려두었다. 낮에 주워오려고 했는데 낮에는 수치스러워 못가져오고 밤까지 기다렸다. 밤이 되어 새벽에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매트리스를 끌고 집까지 왔다. 그 모습이 참 비참했다. 가져와서 대충 닦고 이불커버 뒤집어 씌우고 잠을 자는데, 너무 좋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렇게 비오는데 낑낑거리며 가져온 제 모습이 너무 찌질해보이고 비참해보였다. 내가 왜 이런 인생을 살아야 하나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원망,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잘못은 부모님이 하셨는데 왜 내가 피해를 받아야 했는가 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하나님이 진짜 나를 사랑하신다고 하는데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맞나 했다. 그렇게 칭찬받고 존경받던 목사님 아들로 잘 살다가 홀로 살게 되어버린 이런 상황이 해석되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 살게 되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몰랐다. 어떤 분이 네 아버지가 목사님이시니 너도 신학교 가서 목사님 되어야지 하셨는데 나는 월세내기 바쁜데, 돈이 어딨어서 신학교 가냐고, 나는 아버지 같은 목사님 안할거라 했다. 그리고 교회가면 사람들이 부모님 뭐하시냐 어디사냐 무슨일 하시냐 물어보는 것도 너무 싫어서 물어볼까봐 큰 교회 돌아다니며 회피하며 살았다.
왕자로 살았던 모세도 광야에서 40년간 양치며 살면서 자존감은 낮아지고,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회피하고 살았기에 모세는 홀로 침묵하며 그냥 산 것이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세를 사용하시려고 계속 사명을 불어넣어주시고, 내가 어떤사람인지를 계속 가르쳐주고 계신다. 이런 모세와 같이 저와 여러분들의 모든 삶도 해석이 안되지만 하나님께서 진짜 어떤 사람인지를 계속 가르쳐주신다. 그런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해보시기를 바란다.
적용)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를 잘 직면하고 있습니까? 나는 어떤 변명으로 불순종을 합리화합니까? 알면서도 순종하기를 주저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뻣뻣하고 둔하여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2. 말씀으로 대처 방안을 가르쳐 주십니다.
11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계속 변명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근본적인 부분을 알려주신다. 창조주 나 여호와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가르쳐주셨다. 그럼 하나님은 왜 말 못하고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셨을까?
요 9장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묻는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의 죄 때문입니까, 부모때문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라고 하신다.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복음이 전해지게 하고자 그렇게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나를 이렇게 부족하게 만드셨을까? 하나님은 왜 우리집을 이렇게 되게 하셨을까? 왜 장애를 주셨을까? 왜 암을 주셨을까? 왜 나에게 이런 정신적인 상처와 아픔과 고난을 주셨을까?
그 이유는 나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시려고, 나를 통해 복음이 전해지게 하시려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12절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계속 변명하고 핑계대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대처방안을 가르쳐주신다.
모세야, 네가 스스로 본래부터 말을 잘 못하는 자라고 하고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하다 하는데 그럼 본래부터 누가 그렇게 되게 했느냐? 나 여호와다. 그러니 걱정 말고 이제 가라, 네 입과 함께 할 것이고 내가 말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가르쳐 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가르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화살을 겨냥하다는 말을 내포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요구되는 모든 지혜의 원천이 되셔서 화살로 과녁을 겨냥하듯 가장 정확하고 적절한 대처방안을 제시해 주시겠다는 약속이 이 가르치다 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과 장로들과 뭐라고 하든, 바로가 뭐라 하든 네 입과 함께 있으니 적절하게 정확하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그 대처방안을 가르쳐 주시겠다고 말씀해주고 계신다. 너무 든든하고 신뢰가 되지 않는가?
우리 삶에 고난이 올지라도, 아픔 상처 연약함이 있을지라도 이런 우리가 어떻게 살고 해석해야 할지 하나님은 정확히 말씀으로 대처방안을 가르쳐주고 계신다. 제일 정확한 대처방안은 말씀이다. 애굽의 바로 왕 앞에서 재앙을 선포할때도, 출애굽하고 광야에서 이스라엘백성에게 할말도 시내산에서 가르쳐주시고, 순간 순간 정확하게 모세의 입을 통해 말씀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를 가르쳐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만드신 이유가 있을 것이고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야 할 지도 가르쳐주신다. 어떻게 가르쳐주실까? 바로 말씀으로 가르쳐주신다. 어떤 일이든 구원의 관점으로 보고 큐티하며 깨닫게 해주신 말씀으로 우리 삶의 문제를 그렇게 해석하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교회 가정이 다 깨지니 그 뒤의 삶은 찌질하고 불쌍해 보이는 환경이었다. 그러면서 열악한 삶을 변명삼아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는 보지 못하고 부모님에 대한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살았다. 그러다 어머니는 불신재혼을 하셔서 세상으로 흘러 떠내려 가셨고 아버지는 믿는 분과 신 재혼 하셔서 같이 사셨다. 갑자기 새아버지 새어머니가 생겼다.
그런데 두분 다 재혼하시고 나서 제일 먼저 생긴 문제가 제 결혼식이었다. 결혼식때 부모님 혼주석이 있다. 거기에 누가 앉느냐의 문제가 생겼다. 누가 앉으셨을까? 결혼식 전에도 이 문제 때문에 고민을 했는데, 친어머니에게 갑자기 연락 와서 본인께서 그 자리에 앉겠다고 하셨다.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하니 아버지는 절대 안된다고 하셨다. 만약 앉게 되면 새어머니가 앉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 그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무슨 염치로 그 자리에 않느냐, 친척들 보기에 무슨 망신이냐며 화를 내며 안된다고 하셨다.
제 생각에도 어머니가 결혼하셔서 출가외인이시고, 앉게 되면 새어머니가 앉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친어머니는 엄마가 죽은 것도 아니고 평생 한 번 뿐인 아들 결혼식에 왜 앉지 못하냐고 고집을 부리시고 아버지를 잘 설득해보라고 하시니 저도 마음 속에서 어머니가 가족들을 힘들게 한 일들이 생각이 났다. 어머니가 앉겠다고 하는 것이 욕심이 아닌가, 이제 와서 그 자리에 앉겠다고 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제가 그 때 우리들 교회 공동체를 만났더라면 큐티 말씀으로 대처방안을 찾았을 텐데, 그렇게 계속 의견이 맞지 않으니 너무 화가 나서 어머니도 새어머니도 앉지 마시라고 혈기를 내며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제 결혼식에는 친어머니 새어머니도 앉지 못하시고 아버지 혼자 혼주석 자리에 앉으셨다.
제가 그 결혼식 때 혼자 앉아 계시는 그 모습을 보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고 쓸쓸해 보이고 내가내 결혼식을 혈기를 주체하지 못해 다 앉지 말라고 하는 것이 후회되고 마음이 아팠다. 한편으로는 아버지 어머니의 삶의 결론이라는 이런 마음도 들면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결혼식 때 절 하고 안아드리는데 눈물이 많이 났다.
제가 근데 결혼하고나서 1년이 좀 안되어 제 남동생도 결혼했다. 그 결혼식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어머니께서 또 혼주석에 앉겠다고 하시는 거였다. 그때는 사돈 되시는 분들이 아버지 혼자 앉으면 좀 그렇다고 하셨고 어머니가 앉으시겠다 하셨다. 아버지는 왜 새 어머니가 앉아야지 니네 엄마가 앉냐 하셨다. 그런데 이번에는 동생 결혼식이니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동생은 결국 친어머니를 혼주석에 앉히셨다. 그날 결혼식때 아버지 어머니가 오랫동안 안 보고 사셨는데 앉으셨다. 정말 오랫동안 왕래도 없으셨고 어색하게 계셨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한번도 쳐다보지 않으시고 거의 웃지도 않으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제 남동생 결혼식때 새어머니께서 아버지와 함께 올라 오셨는데, 결혼식 끝날때 까지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계셨다고 한다.
여러분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시겠는가? 우리들교회 성도님들은 당연히 큐티하면서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말씀으로 묻고 목장 공동체에서 물으며 대처방안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저는 구원의 관점으로는 생각하지 못하고 제 인간적인 생각과 혈기로만 대처했다. 그런 모습으로 그런 상황을 만든 것이다. 맞고 틀린 것이 정답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방안이 정답이다.
우리 삶에 문제와 고난이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를 때 말씀으로 묻고 공동체에 물으면서 하나님께 물으며 대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란다.
적용) 나에게 닥친 고난을 어떤 방법으로 대처합니까? 이제 가라는 명령을 받고, 사명을 위해 가야 할 곳은 어디입니까?
3.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13-14절
13 모세가 이르되 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하여 이르시되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냐 그가 말 잘 하는 것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그의 마음에 기쁨이 있을 것이라
저도 오늘 주일설교 전하라는 말을 듣고 마음 속에 세울 만한 사람을 세우소서, 저는 얼굴이 어둡고 설교를 잘 하지 못 하나이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못한다고 할까, 혹시나 설교자가 바뀌지 않을까, 변명하려고 그 자리를 회피하려고만 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읽는 순간 하나님께서 제 마음을 알고 모세를 통해 체휼해 주셨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입에 할말을 가르쳐 주시겠다고 하신 것 처럼 나의 입술이 둔하고 말을 잘 못하는데 하나님께서 내 입술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쳐 주시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모세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가야하는데, 13절에 거의 배째라는 식으로 말한다. 안간다고, 저 말고다른 갈 만한 사람을 보내라고 한다. 보낼만한 자를 보내라고 한다.
보낼만한자, 이 보내다라는 뜻은 보냄을 받을만한 능력이 있는 자라는 뜻이다. 자신은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자존심이 높고 자존감이 낮고 회피하는 모습이다. 하나님은 모세의 13절의 이 말을 듣고 결국 진노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하심은 멸망 받을 자들에게 심판하시는 진노가 아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가르쳐주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내포되어있는 진노이다. 어린아이들이 계속 말을 안 들으면 결국 부모님들이 화가 난다. 저도 아들 둘 키우는데 너무 말을 안들어서 화가 난다. 그렇게 화를 내지만 그 마음 가운데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들이 있다.
하나님은 모세의 상황과 마음을 다 알고 계셨다. 그렇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처방안으로 말하는 레위집안 사람의 모세의 형 아론을 미리 준비하셔서 너의 형 아론이 너를 만나러 오고 있다, 너를 만나면 정말 기쁜 마음으로 너를 도울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모세는 또 회피하며 변명했지만 하나님은 또다시 모세의 입장에서 배려해주시고, 미리 예비하신 대안으로 모세의 형 아론을 대언자로 세워주신다. 하나님은 말을 잘 못하는 모세의 걱정도 들어주시면서 계속 가르치시면서 사명으로 부르신다.
15-16절
15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의 입에 할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희들이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16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 같이 되리라
자존감도 자신감도 없고 혼자 일어날 힘도 없는 사람에게 왜 못 일어나냐고 의지를 가지고 일어나야지 하면 안된다. 일어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옆에 가서 손을 잡아줘야하고, 부축해서 일으켜서 같이 가 줘야 한다.
모세는 아마 혼자 가는 것이 두려워서 못 갔을 수도 있다. 지금 아론이 같이 가겠다고 하니 모세가 같이간다. 그러나 두려웠을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가 할 말을 내가 가르쳐줄 테니 그것을 아론에게 말해주어라, 그러면 내가 너희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일을 해야할지 가르쳐주겠다고 하신다. 이 말을 들은 모세는 자신감이 솟았을 것이다. 말 잘하는 형과 함께가고 하나님께서도 계속 내 입에 할 말을 가르쳐주시겠다고 하시니 모세는 점점 자존감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생겼을 것이다. 너는 절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기다리시며 모세를 사명의 자리로 인도해주신다.
혼자인 것 같으신가? 혼자 해결해야할까봐 두려우신가? 하나님은 절대 우리를 홀로 두지 않으셨다. 지금도 나를 위해 기도하는 목장식구들이 있고 나를 위해 기도하는 부모님 자녀들 공동체가 있다. 하나님의 내 옆의 공동체와 함께, 공동체를 통해 말씀을 듣고 전하게 해 주시고 함께 구원을 위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다.
어떤 청년의 나눔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청년이 하나님께 크게 관심없이 신앙생활하다가 아빠의 잦은 바람으로 부모님 사이에 싸움도 많았던 성품좋은 청년이었다. 그러던 중 우리들교회에 알게 되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아 정착하게 되었다. 처음 느껴보는 자유가 너무 좋아 교회에서 사람들을 경계 없이 만났고 혼전순결을 지키지도 못하는 등 치우치는 행동들을 하면서 말씀은 듣지만 삶을 전혀 살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때로는 공동체를 회피하고 잠수 타다가 하나님의 오래 기다림과 참으심으로 후대해주셔서 양육받고 공동체 통해 해석받고 회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아빠가 3년간 바람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때 정말 배신감을 느끼고 분노로 부모님의 이혼을 종용했다고 한다. 그래도 공동체에 나누는 것 밖에 배운 것이 없어서 공동체에 나누면서 징징대는 적용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빠의 바람을 드러나게 하시고 부모님께 이혼을 강요한 제 모습을 보게 하시면서 아직도 구속사의 가치관이 하나도 없고 막벨라 굴에 묻히기 보다 화려한 애굽의 굴에 묻혀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이 멋있다고 하는 헛된 기복적 가치관이 있음을 보게 하고 회개하게 해 주셨다고 해석하고, 말씀과 우리들교회가 얼마나 소중한지 찐으로 경험하게 해주셨다고 이야기 한다.
이 청년이 모태신앙이고 성품으로 살다가 혼전순결도 지키지 못했다. 자신을 보고 회개도 하고 공동체를 떠나 회피하다가 양육받고 회개하고, 아버지의 바람 사건 속에서 분노와 배신감과 부모님의 이혼을 종용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공동체에서 물으면서 대처 방안을 찾고 공동체가 얼마나 소중한지 가르쳐주셨다는 청년이다. 이것이 여러분들의 모습, 우리들교회 청년의 모습이다. 저보다 나은 것 같다.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두분 다 재혼하시니 솔직히 마음의 부담이 조금 덜어졌다. 그런데 계속 마음에 부담되는 것이 있었다. 세상으로 흘러 떠내려가신 어머니이 구원 문제였다. 우리들교회 오기 전까지는 어머니의 구원에 대해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구원해 주시겠지, 다시 알아서 교회로 돌아오게 헤 주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런데 우리들교회 와서 담임목사님께서 날마다 한영혼을 위해 애통해하시며 눈물 흘리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이렇게 어머니 구원에 대해 애통함이 없을까, 나는 왜 이렇게 눈물도 나지 않을까 했다. 그래서 공동체의 권면으로 어머니께 적용도 해보고 교회 나와보시라는 말씀도 드렸다. 그러나 지금은 말고 나중에 가게 되면 간다고 딱 거절하셨다. 그 이야기 들으니 마음이 확 닫히면서 어머니에 대한 미운 마음이 올라왔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술드시고 전도사 아들에게 술주정하시고, 아들에게 전화해서 돈 빌려달라고도 하시고, 자녀들 힘들게 하시고 불신결혼 하시더니 고생 더 하시고 고생 더하셔야 고난이 와보셔야 올거라는 마음들이 올라왔다. 제가 더 문제 같다.
이렇게 애통함도 없고 어머니를 용서하지도 못하고 미움만 가득찼던 저 같은 사람을 대신해서 목장식구들이 울어주시고 공동체 성도님들이 울어주시고 담임목사님께서도 저 같은 사람을 위해 눈물로 애통해 주셔서 우리들교회 온 지 2년만에 어머니께서 다시 주님 품에 돌아오셨다.
어느날 전화통화를 하는데, 어머니께서 엄마 요즘 교회나가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셨다. 제가 그 이야기 듣자 마자 너무 감사해서 눈물이 났다. 왜 진작 그 말씀 안하셨냐 하니 목사 아들들에게 말하기가 너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고 하셨다. 저도 그 이야기 들으니 너무 죄송하기도 했다 울면서 저희 교회 성도님들이 어머니 구원을 위해 기도 많이 했다고, 저도 어머니 구원 위해서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다고 했다. 사실 기도는 많이 안했다. 기도제목만 올렸지 기도를 많이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애통함도 없었고, 마음 가운데 아직도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쓴 뿌리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그렇게 어머니의 전화를 끊자마자 제 마음에 확신이 든 생각이 하나님께서 나의 믿음없음을 보시고 저의 구원에 대한 애통함 없음을 보시고 공동체의 기도제목을 들어주셨구나 하는 마음이 확 들어왔다. 정말 저 혼자 기도했던 것이 아니었다. 저 혼자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목사라 하면서도 내가 얼마나 믿음없는지, 부모님을 얼마나 미워했던 죄인이었고 부모님의 이혼을 종용했던 죄인이었고 어머니 구원을 방관만 하고 내가 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며 회개가 되었다. 부모님이 이혼하신 후에도 돌아보면 혼자가 아니었다. 혼자 살면서도 쌀 없으면 갖다주시고 김치가 없으면 김치도 갖다주셨다. 저는 대학 가고 신대원 졸업하며 목사 안수 받기까지 한번도 등록금을 제 스스로 낸 적이 없다. 다 누가 조금씩 도와주셔서 이렇게 목사가 되게 해주셨다. 그렇기에 제가 하나님 앞에 생색낼 수가 없다. 많은 분 들의 도움으로 살았다.
가정이 그렇게 되고 나서도 혼자 있을 때 죽고 싶은 생각도 많이 들었다. 삶의 앞이 너무 보이지 않으니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것이 자살이었다. 나같은 사람에게 누가 시집이나 올까, 아무것도 없는데 누가 나랑 결혼이나 할까 했다. 제가 있는 것도 없고 부모님도 이혼하신 가정에 결혼도 못할 줄 알았다.
저는 별의 별 알바를 다 했다. 명동에서 광고판 들고 이비에스 방청객 알바, 식당 알바..대학원 졸업하고 쉬면서도 살아야 하니 알바 하며 살았는데, 그 알바하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 돈 벌었다. 그러면서 내가 교회 다니는 사람이고 했다. 그런데 식당에 계신 이사장님이 친구의 딸인데 만나보라고 했다 근데 나이가 4살 많다고 했다. 저는 연상 만나본적도 없다. 그리고 베트남에 있다고 해서 거절했다. 그런데 어르신께서 한참 있다가 연락이라도 해보라고 세번을 이야기 하셨는데, 나중에는 예의상 알겠다고 해서 연락을 했다. 그렇게 카톡으로 인사하고 연락하며 삶을 공유하며 살다가 교제하다 보니 6개월을 카톡 연애하게 되었다. 사진으로만 얼굴 보고 그랬다. 그분이 한국에 들어오게 되어 만나게 되었다. 종로 종각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데 그분을 보는 순간 후광이 비췄다. 사진으로만 봤던 그녀였다. 그리고 결혼까지 하게 해주셨다. 아픔 많고 결핍 많고 상처도 많은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도 만나게 해주시고 가정도 꾸리게 해 주시고 자녀도 주셨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 안되는 삶이었다. 끝까지 최선 다해서 살다보면 은혜로 만날 것이다.
설교하는 이 장면도 제 인생의 대본에는 없었다. 근데 하나님의 대본에는 있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우연이 없다. 다 필연이고 하나님의 계획이다.
모태신앙이니 교회 안에서 목사님 아들로 예수 잘 믿으면 복받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새로운 제 인생 대본으로 드라마가 전개되더니 점점 비극 절망 막장으로 가더니 새드엔딩으로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변명만 하고 회피하고 자존감 자신감이 바닥이었던 모세를 기다려주시고 하나씩 가르쳐 주셨던 하나님께서, 사명으로 이끄셨던 하나님께서, 저의 인생에도 우리의 인생에도 때마다 대처방안들을 알려주시고 혼자인 것 같지만 때마다 공동체를 보내주셔서 위로해 주시고 함께 사명을 위해 달려가도록 반전의 인생을 살게 해 주셨다.
우리 인생을 돌아보시면 좋겠다 내 뜻대로 된 것은 없다. 그리고 우리는 내 뜻대로 되면 안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은혜대로 살아야 한다. 우리 인생 드라마는 하나님께서 끝내실 때 까지 끝난게 아니다.
17절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다른 지팡이가 아니다. 하나님은 새 사명을 주셨다고 새로운 지팡이를 주신 것이 아니다. 애굽 간다고 멋진 칼을 주신것도 아니다. 40년간 양을 치며 사역했던 그 지팡이를 잡으라고 하신다.
제가 우리들교회 부임하고 첫 주일예배 설교를 휘문에서 드렸다. 그 때 담임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 계시록 9장 말씀, 오직 믿음으로 라는 설교를 해 주셨다. 말씀을 준비하며 그때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봤는데, 계시록 말씀하셨는데 깜짝 놀랐다. 계시록 말씀 중에 내가 의지하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에 잡아먹히고 오직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팡이 이야기를 하셨다. 저는 소름이 끼쳤다. 지팡이 이야기를 요한계시록에서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17절에 다시 잡으라 하신 지팡이가 보였다. 이 지팡이는 양 치던 똑 같은 지팡이였지만 이전과는 다른 지팡이었다. 사명을 주셨다고 지팡이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이제 사명 받았으니 새롭게 바뀐 환경이 주어지겠지가 아니라 여전한 방식으로 우리의 가정 직장으로 돌아가서 이전과는 다른 사명을 가진 자로 하나님과 함께 말씀으로 구원의 이적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아마 똑같을 것이다. 우리 삶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과 다른 삶이 되어야 한다 똑같지만 이전과는 다른 하나님의 지팡이로,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우리가 있는 그 곳에서 이적을 행하시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한다.
적용) 사명을 회피하는 나에게 하나님이 진노하신 사건이 있습니까? 연약한 나를 돕고자 내 곁에 붙여주신 사람은 누구입니까? 도저히 못하겠다고 회피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말씀맺음
하나님께서는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 주신다. 그리고 인생의 고난이 있을 때 마다 말씀으로 대처방안을 가르쳐주신다. 그리고 두려움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공동체를 붙여주셔서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신다. 닫힌 모세의 마음,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셔서 우리를 빛으로 인도하여 주신다. 주님보다 앞서지 않고 겸손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따라가는 저와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 기도제목 ]
보련
1. 하나님의 자존감 가질수있도록
2. 어떤일이든 직장인도함받을수 있도록
교희
1. 애도 잘 하도록
2. 아웃리치 힘빼고 잘 다녀오도록
3. 소년부 아이들 큐페 은혜받도록
은우
1. 나무 막대기를 주께 잘 던지고, 나의 열심 아니라 가라고 한 곳에서 처소를 잘 지키도록
2. 붙여준 지체와 환경에 순종하고 월급만 받도록
3. 전시 설치 2건 대전27, 평택30에서 같은 주에 2번 있는데 돕는 손길 붙여 주시고 영육의 성전을 잘 지키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