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26 성령의 호의 (행 24:27-25:11) 김양재 담임목사님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사람으로 꼽히는 벤저민 프랭클린은 그의 자서전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내게 호의를 베푼 사람이 내가 호의를 베푸는 사람보다 나중에 나를 도울 가능성이 크다'
내가 도와준 사람이 나를 도울 가능성이 커야 하는데, 거꾸로 한번 호의를 베푼 사람이 또 호의를 베풀기 쉽다는 것이다. 이것을 벤프랭클린 효과라고 한다. 심리학자들이 여러 차례 실험을 했는데 실제로도 그런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호의 한번 잘못 베풀었다가 호구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가, 혹은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과 더 잘 지내는 것이 답이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시는가? 그것 자체가 다 이기적인 자기 생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호의는 받을수록 좋지만 한편으로는 갚아야 할 빚이 되기도 한다. 본성이 이기적인 사람들이 호의를 두고서도 보이지 않는 경쟁을 치열하게 하는 것이 인생의 모습이다.
인간적인 정이나 계산으로 호의를 베풀거나 받으려 해서는 진정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 없다. 성령의 호의는 베풀기도 하고 거절도 해야 한다.
오늘은 성령의 호의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성령의 호의는
1. 죽이는 호의를 분별해야 합니다.
행 24:27-25:2
27 이태가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이어받으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1 베스도가 부임한 지 삼 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2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벨릭스가 바울에 대한 판결을 미루고 헤롯 궁에 구류한 이유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함이라고 한다.
여기서 마음을 얻고자 하다는 원어는 카리스 이다. 이것은 호의를 베풀고자 하여 이다.
카리스가 하나님께 쓰이면 은혜가 되고 사람에게 쓰이면 호의가 된다. 이것이 정말 분별하기 어렵다. 우리가 호의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잘해주면 호의가 너무 은혜 같다.
오늘 호의라는 단어가 4번 나온다. 이 네 번을 살펴보고자 한다.
벨릭스는 왜 호의를 베풀길 원했을까? 갇힌 바울에게 사람 만날 자유를 주고 돈 받을 일을 기대했다. 그리고 바울을 죽이려는 유대인들에게는 마음을 얻고 싶었다. 나름 양쪽에 호의를 베푼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벨릭스는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했지만 결국 유혈폭동이 일어나고 유대인들을 잔혹하게 죽인 것이 알려져서 로마로 소환되어 불법 행한 것도 다 드러나서 사형 언도를 받았다. 마음을 얻고자 대가를 탐하는 호의는 결국 자기를 죽이는 호의가 된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12대 총독 베스도가 부임하는데 이 사람은 벨릭스와는 다른 성실하고 유능한 행정가 정치가 였던 것 같다. 가이사랴에 부임한 지 사흘만에 성실 강박이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먼 길임에도 불구하고 사흘 만에 초고속으로 인수인계 끝내고 유대의 문화적 중심인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총독으로써 백성의 마음을 사려면 가장 중심지 예루살렘을 방문해야겠다 싶었던 것이다. 이 사람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안다. 거기서 대제사장 및 높은 사람들과 면담을 하는 것이다. 즉 신임 총독으로써 큰 호의를 베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유대인 대제사장들 이라고 복수로 표현되어 있다. 대제사장은 한명 이어야 하고 죽으면 직계 자손에게 계승되는 거룩한 직분이다. 그런데 로마가 마음대로 돈 받고 매관매직 했다. 2년전만 해도 아나니아 대제사장이 그 입을 치라 했는데, 이스마엘 대제사장으로 바뀌어 있다. 그러니 대제사장 들 인 것이다. 그리고 높은 사람은 산헤드린 공회를 말한다. 즉 입법 사법 종교가 똘똘 뭉쳐 어용이 되었고, 그들의 판결은 이미 공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사람들이 베스도를 만나자마자 한가지 청을 한다.
3절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기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더라
바울이 가이사랴로 오기 전 40명의 암살단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매복해서 바울을 죽이려고 결단한 것 기억나시는가? 그런데 바울을 알던 벨릭스 총독이 떠났다. 그리고 처음 온 베스도 총독님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런데 이 사람이 훌륭하기까지 하다. 그러니 이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주기를 청한다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바울은 죄가 없으니 재판으로 죽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길에서 매복해서 죽이겠다고 2년전에 하던 짓거리를 그대로 한 것이다.
지금 총독이 바뀌었고 대제사장도 바뀌었다. 환경이 다 바뀌었다. 그런데 무엇이 안 바뀌었나? 그들의 마음이 바뀌지 않았다. 2년전과 똑같다. 그 대단한 대제사장들과 높으신 산헤드린 공회원님들은 2년 세월 동안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제사, 즉 예배를 드렸다. 예배 전문가인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 때문에 날마다 회의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만장일치로 그 전문성으로 바울을 매복해서 죽이고자 한다.
세상이 변하고 환경이 다 변했는데 내가 변하지 않으면 내가 하는 짓은 살인이다. 모든 것을 가지고 살인을 생각한다. 내가 너무 변하지 않으니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변하지 않는 환경, 변하지 않는 남편 자녀 환경을 허락하신다. 그것은 내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변하지 않고 있는데 호의가 베풀어지면 어떻게 하는가? 변하지 않는 내가 하는 것은 살인 의지밖에 없다. 유대인 지도자들이 머리가 너무 좋아서 이미 벤프랭클린 효과를 알았던 것 같다. 호의를 베풀면서 호의의 자기도취에 빠져있는 베스도에게 호의를 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매복해서 죽이려 하는 것이 있다. 내가 변하지 않고 사람의 호의를 받게 되면 사람을 죽이는 호의가 된다. 이것이 무엇인가 하면, 남편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다가 남편이 돌아오면 교회 떠나고 여행 다니면서 흘러 떠내려가는 것이다. 물질이 없어서 물질이 생기면 중독에 빠져 예배와 공동체를 떠난다. 그 물질이 안 생겼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죽이는 호의가 되는 것이다.
돈을 잘 못 벌던 남편이 큰 돈이 생기니 남편의 호의로 풍족한 생활을 한다. 돈이 없어도 있는 것 처럼, 있어도 없는 것 처럼 구원 때문에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풍족하게 누리다가 돈으로 자녀 유학을 보냈는데 그곳에서 왕따를 당하고 힘들어지니 다시 한국에 왔지만 적응을 못해 대인기피와 공황 불안이 왔다. 그리고 자신을 버려 둔 부모를 평생 원망하며 독이 섞인 말을 부모에게 뱉고 심지어 폭력도 행하며 부모와도 아예 연을 끊고 산다. 돈이 있던 것도 자기 탓이 아닌데, 생긴 것 가지고 자식 위해서 이것 저것 다 해보려고 했는데 남편의 호의가, 부모의 호의가 자녀를 사랑한다고 모든 것을 희생한 부모의 사랑이 하나님이 없으니 결국 죽이는 호의가 된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말씀을 넣어주는 것,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선한 것이 없어서 내 돈 생기면 내 자식에게 쓰는 것밖에 모른다. 그러면 이것이 죽이는 호의가 된다.
이 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베스도의 호의를 얻었다면,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보냈으면 매복자들 때문에 바울이 죽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이 정말 죽이는 호의 맞다. 결국 사람에게 구하고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고 사람의 평판과 인정받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고 결국은 그 호의로 내가 죽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는 똑같이 구하지만 호의가 은혜로 변한다. 주어는 항상 하나님이어야 한다. 예배를 통해 날마다 내 환경을 변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저 원수 같은 나의 유익에 반하는 저 바울을 죽여달라고, 회사에서도 나의 유익에 반하는 저 상사를 죽여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호의인 은혜를 구하기 위하는 것이다. 그래서 날마다 큐티 목장이 답이다.
지도자가 문제가 아니다. 지도자가 잔인한 벨릭스에서 훌륭한 베스도로 바뀌었는데 내가 변하지 않으니 여전히 미워하고 원망하고 죽이는 것 밖에 안한다. 지도자가 문제가 아니다. 가난한 친정아버지 밑에서 부자남편으로 환경이 바뀌었지만 내가 안 변하니 피해의식으로 나는 가난하게 살았는데 우리 남편은 부자로 살아서 나 가난할 때 너 뭐했냐, 너는 누리고 살았다며 부자 남편을 증오하거나 아니면 시댁에서 매번 무시를 당하면 가난한 아버지를 무시한다. 내가 가난하게 살아서 이런 걸 당한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안 변하면 부자 가난하거나 미워하고 상처 묵상하고 죽이고자 하고 교만하는 것 밖에 안된다. 이해 되시는가? 그러므로 아이들을 신결혼 시켜야 한다. 그리고 믿음으로 어렸을 때부터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지 않으면 부자거나 가난하거나 하는 일은 원망 교만 미움 살인이다.
유대인 대제사장들처럼 그 높은 산헤드린 공회원의 인생의 목표는 바울을 죽이는 것이다. 바울이 어디가 잘못되었는가? 잘잘못이 상관이 없다. 나에게 나쁘면 죽여야 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죽이고자 하는데 우리들에게는 죽이고자 하는 생각이 없겠는가? 다 살인의지가 활활 타오른다. 바람 피면 다 죽여야 한다.
그러나 4-5절
4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멀지 않아 떠나갈 것을 말하고
5 또 이르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고발하라 하니라
베스도는 바울을 옮겨 달라는 요청을 듣고,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기가 곧 예루살렘을 떠나 임지인 가이사랴로 갈건데 여기에 왜 바울을 데리고 오는가 하는 것이다. 군사까지 다 동원해서 100 km 가 넘는 것을 데려와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실한 사람에게는 안맞는 것이다. 바울을 생각한 것이 아니다. 너희들도 나와 같이 내려가서 그 사람이 좋지 못한 일이 있으면 고발하라며 적법한 절차에 따라 거절을 했다. 결국 이 베스도의 거절은 바울을 지켜준 것 뿐 아니라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원들도 살인이라는 죄에서 지켜주었다.
때로는 나의 호의라 생각한 것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영육을 죽이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거절이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성령의 호의에는 거절의 복이 크게 작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집안식구들이 하면 다 도와줘야 한다며 투자하는데 온 집안식구가 돕는다. 그런데 우리 목장에 물어보면 절대 하면 안된다 해서 이 분만 안했다. 그런데 도와준 사람들은 다 물려서 다 망했는데 이분만 살아남았다. 가만가만 오늘 말씀이 뭔가 하면 하나님은 늘 축복하신다.
어떤 집사님이 불륜을 행하다가 불륜남이 집사님을 너무 사랑해서 교회 오게 되었다. 그런데 와서 듣다 보니 불륜은 끊어낼 수 있었는데 계속 가끔 연락해서 이 남자를 구원해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에 오게 하지 않겠는가 고민을 한다. 그런데 이런 호의가 그 사람도 나도 죽이는 것이다. 헷갈리겠지만 복음은 그렇게 값싼 싸구려가 아니다.
케이스가 다르겠지만 그 남자의 불쌍한 영혼을 위해 은혜를 구해야 하는 것이지 호의로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자 케이스가 다 다른 것이다. 이것을 목장에 물어봐야 한다. 그때마다 잘 모르겠으니 물어보시길 바란다.
적용) 나는 호의를 베푸는 사람입니까 받는 사람입니까? 거절해서 살린 경험이 있습니까? 지금 내가 거절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수없이 예배를 드려도 유대인들처럼 변하지 않는 내 미움 교만 상처는 무엇입니까?
성령의 호의 두번째
2. 차별하지 않습니다.
6-9절
6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은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
7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8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9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유대인들의 이 호의에 응답이라도 하듯 베스도는 가이사랴에 도착한 다음 날 바로 바울의 재판을 연다. 역시 성실하다. 서로 이렇게 호의를 주고받으며 뭔가 되어가는 것 같다.
그런데 9절에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이것이 세번째 호의이다. 사람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베스도의 호의는 이미 바울이 아니라 이미 유대 유력자를 향하고 있다. 바울에게는 아직 호의를 베푼 적이 없다. 그런데 유대 유력자들에게는 이미 찾아가는 호의, 그들의 요청을 들어주는 호의, 그들과 8일 이상을 머물면서 교제하는 호의를 베풀었기에 이제 다시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호의를 베푸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벤프랭클린 효과이다. 한번 들어주기 시작하면, 한번 투자하기 시작하면 계속 해야 한다. 거기서 결판을 봐야 하니 그렇다. 그러나 우리가 목장에 오면 여기서 끊으라 그런다. 손해봐도 여기서 끊으라고 한다.
목장에서 몇 년 전에 주식 말고 집사라고 들고 일어나서 집을 샀는데 주식이 떨어져서 계약금을 물리려고 했는데 무조건 집 사라고 했다 한다. 그 다음에 보니 주식이 완전 더 내려갔다고 한다. 그래서 집을 건졌다. 목장은 훌륭하다
인간의 호의는 참 무섭다. 사실 로마총독이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은 로마시민이다. 그런데 초라한 로마시민 죄수 한명보다는 자신이 통치하는 유대사회를 좌우할 힘이 있는 유력자들 여러명이 훨씬 더 중요한 존재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러니 공정해야 할 재판장에서도 차별하면서 유대 유력자 편을 다 드는 것이다. 지도자들이 다 이렇다. 인간적인 호의는 이렇게 다 차별적이고 선택적이다. 어떤 기준을 가지고 도덕적 판단으로 호의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니편 내편이 확실하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이런 차별이 훨씬 더 심해보인다. 힘이 있으니 차별을 더 확실히 할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러니 성실한 베스도도 결국 내편 따지는 것은 벨릭스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혈연 지연 학연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하나도 없다.
적용) 대놓고 차별하는 것은 무엇이고 은근히 차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훌륭한 사람도 차별하고 잔인한 사람도 차별합니다. 예수 믿어야 해요)
요즘 누구의 마음을 사고 싶습니까?
서울학생 인권조례 제5조는 교육 영역에서의 차별금지법이다. 이것이 통과되면 유치원에서부터 동성애에 대한 교육을 받고, 스스로 성별 정체성을 선택하는 젠더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청소년들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교육을 하는데, 학생도 임신할 수 있다는 것을 차별받지 않는 권리로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청소년들의 성관계 임신 출산을 조장하게 된다. 결정적인 것은 동성애나 바른 성 가치관에 대한 윤리적 비판도 금지가 되어 표현의 자유가 박탈당하게 된다. 임신 낙태권리 등 갖다 붙이면 안되는 것이 없다.
차별을 금지한다니 듣기에 너무 좋다. 이 좋은 이름을 만들어두니 대부분의 국민들은 왜 차별을 금지하니 좋지 않은가 한다. 이런 차별금지법의 독소조항이 인권이라는 미명 하에 곳곳에 조여온다. 인간이 100% 죄인인데 죄인이 하고자 하는 것을 다 인정해 주는 것이 차별금지가 아니다. 아이들에게 하고싶은 것 다 하게 하는 것이 아이들을 망치는 일이다.
그런데 기절초풍할 일이 일어났다. 그저께 24일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 6개월 이전까지 여성의 낙태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낙태권 인정 판결을 49년만에 공식 폐기했다. 이번 판결이 동성혼과 피임 등과 관련한 기존 대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우리가 생명보호법 차별금지법이 통과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우리 기도가 과연 응답이 될것인가 했는데 기도가 정말 위력적이다. 손 구름이 보이는 것 같다.
미국도 보수 진보로 갈려서 6:3으로 폐기되었다고 한다. 정치인들이 중요한 법을 결정한다. 지금도 바이든은 이것이 통과되어서 슬퍼한다고 한다. 한 사람이 너무 중요하다. 우리나라도 9명 중 3명이 반대하고 6명이 찬성했다. 그러니 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것을 정치 논리로 이용하면 나라가 망한다. 그래도 정치가들이 중요한 법을 좌지우지하니 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개혁하려고 해서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기도하다보니 이런 일이 일어난다. 연방법원에서는 헌법의 가치를 훼손하면 안된다고, 이런 법을 제정하면 안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가치가 잘 사라지니 이런 법이 제정되었다가 폐지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아니라는 사람도 있다.
성령의 호의 세번째
3. 둘러서서 고발해도 사과합니다.
7절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서서 여러 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고발하되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대단한 사람들이 죄인의 모습으로 나온 바울을 둘러섰다. 이 사람들은 베스도가 모른다고 생각하니 소동 이단 성전 더럽힌 문제로 또 고발했다. 그런데 끝에는 능히 증거를 대지 못한지라 라고 했다. 여기서 능히라는 원어의 뜻이 능력 있다 강하다 큰 힘이 있다는 뜻이다. 무슨 말인가? 아무리 모든 것이 둘러싸도 나를 해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한다. 눈 앞에 천만인이 나를 둘러싸고 진 칠 지라도 그것이 나를, 내 영혼을 해할 능력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 문자적으로도 다윗의 모든 사건은 당장은 베스도에게, 가이사에게만 결정권이 있다. 왜냐하면 바울은 로마시민이기 때문이다. 로마 시민인데도 그 권을 쓰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주변에서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건, 환경이 너무 중대해 보일 수 있다. 실직 암 이혼 가출.. 너무 중대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런 것들이 크지 않다. 실제로 나를 해할 어떤 증거도 가지지 못한다. 능력이 없다. 지금 식구들과 불화가 일어났는가? 실직인가? 이것이 문제가 아니다. 이걸 알아야 한다. 어떻게 알 수 있나?
8절 바울이 변명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다. 8절의 변명은 기억날지 모르겠지만 아폴로게오마이, 사과 이다. 즉 변명하고 변호하면서 내가 잘했다고 논리적으로 치열하게 나는 죄가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사과에서 시작하는 낮은 자세로 늘 사과하는 것을 말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그 사람들에게 그저 있는 대로 말하다 보면, 둘러 쌓인 목장에서 늘 있는 그대로 말하는 연습이 된 사람들은 아무리 나를 죽이려고 하는 고위직들이 나를 둘러싸고 진 쳐도, 내 죄인가 하는 심정으로, 사과하는 심정으로 말을 한다. 하루아침에 그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바울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지겹겠는가? 오해해서 미안해요, 내 뜻은 그것이 아니었는데 사실은 제가 죄를 범하지 않았어요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나는 죄를 범하지 않았다!!! 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이든 어디든 옳고 그름이 아니라 이 태도 때문에 안되는 것이다. 이것은 목장에서 내공이 쌓여야 한다. 평소에 공동체가 둘러서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사건이 올 때 빛이 난다. 회사에서 회의 할 때는 화가 나서 다 망친다. 그럴 때 늘 제가 오해를 하게 했군요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교회 성도들, 여러분들이 다 승승장구 하는 것이다. 승승장구 못하는 사람은 분노조절이 안되는 사람이다. 학벌이 좋으면 무엇하겠는가? 소통이 안된다.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이것이 별일이 아니구나, 목장에서 이런 생각이 늘 들었던 사람은, 목장에서 부부끼리 싸우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사람들은 자기 회사에 가면 이게 별일이 아니구나 한다. 그래서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다. 우리는 목장에서 부부간에 싸운다고 놀라지 않는다. 싸우냐, 다음 주일에 또 오시라 한다. 그것이 여러분에게 얼마나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공부인 줄 아시는가? 어디서 그걸 보겠는가?
어떤 집사님이 결혼 전에 남편이 다른 여자와 카톡하고 대화한 내용을 결혼 후에 봤다고 한다. 이 사건이 너무 커 보여서 이 사건에 온전히 둘러 쌓여서 일상을 일어버리고 입맛도 없어지고 이혼가지 결심했다고 한다. 이것은 남편이 정말 신실한 교회 오빠였기 때문이었다. 세상은 이런 것 때문에 이혼을 한다. 그러다 우리들교회 목장에 인도되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 나누었더니 다들 카톡 정도 가지고 웬일이냐, 어떤 목사는 여자를 셋이나 만나던데, 실바람 샛바람 광풍목장도 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계속 들으니 아, 아무것도 아니구나, 이렇게 잘 살고 있는데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내 남편이 오늘 바울처럼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적용) 나를 둘러서서 고발한 중대한 일들은 무엇입니까? 여기에 사과합니까? 맞대응합니까? 평소에 목장에서의 둘러싸임이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된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이 목장을 우습게 여기시면 아주 큰 코 다치신다. 교만해서 그 목장 안가시는 것이다. 내가 학벌로 다 이길 것 같은가? 내 실력으로 이길 것 같은가? 변호사 더둘로 다 붙었는데 바울을 못 이겼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이 다 붙었는데 바울을 못 이겼다.
성령의 호의 네번째
4. 아무도 나를 내줄 수 없는 특권입니다.
10절 바울이 이르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예루살렘에 가서 심문을 받겠냐는 베스도의 호의가 잔뜩 어린 질문에 바울은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에 섰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래서 나는 심문을 받아도 가이사가 있는 로마에서 받아야 한다고 한다. 원어를 보면 바울은 자신이 2년째 가이사의 재판 자리에 앉아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 사건의 시작부터 자신의 목적지가 로마임을 생각하고 있다. 이미 성령께서 에베소를 떠나기 전부터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셨다. 그래서 로마가 자기 최종 목적지라는 것을 안다. 성령의 경영에 따른 목적지를 분명히 알았는데 어떻게 가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다.
저도 매일 가정중수 말씀묵상 목적지를 알지만 방법은 늘 모른다. 방법은 가만가만, 오늘 말씀이뭔가 이다.
11절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으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이 나를 고발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줄 수 없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상소하노라 한대
여기서 내줄 수 없다의 내주다가 호의이다 카리스이다. 여기서 네번째 호의가 나온다. 하나님께서 나를 내어줄 수 없는 이 상황, 묶여 있는 이 환경 갇혀 있는 이 환경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바울은 지금 죄인으로 갇혀있다. 가장 상급기관인 황제 가이사 앞에 가기 전 까지 어느 누구도 바울을 건드릴 수 없다. 그러나 감옥에 갇혀서 2년을 지내고 생각해보니 바울을 죽이려고 온 힘을 다한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원과 그를 죽이려고 결심한 40명의 자객들이 2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바울은 근데 이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해서 갇혀 있었다. 그런데 2년 후에 나와보니 그들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가 이전에 풀려나서 자연인이 되었으면 100% 나가 죽었겠구나 싶었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만 그때는 풀려나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가 갇혀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다. 즉 하나님께서 내어줄 수 없는 내 환경이 성령의 호의이다. 다시 말해 묶여있는, 갇혀있는 환경이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은혜이다. 하나님은 100% 옳으시기 때문이다. 큐티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100% 옳으시기 때문이다.
어떤 목장에서 성령의 자유가 주어지면 뭘 하고 싶냐 했더니 거의 다 여행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한 목장에서는 어떤 집사님이 남편과 함께 여행을 가겠다고 하니 남편과 함께? 라고 하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듣는 남편 집사도 너무 싫어한다고 했다.
당장 여행이 아니라 집 밖 카페도 나가지 못하는 이유가 학교 다녀오면 첫째 학교 다녀오면 첫째 밥 먹이고 학원 보내고, 둘째 어린이집에서 데려와야 하고, 셋째는 늘 업혀있기에 늘 묶여있다. 아무도 그 집사님을 문자적으로 내어줄 수 없다. 시간 돈이 없고 몸이 없는 묶여 있는 환경들이 많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그들에게 내어줄 수 없는 이 환경은, 나를 가이사랴에게로 이끄는, 황제에게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용서이고 은혜라는 것이다. 카리스에는 자비 용서 은혜라는 뜻이 다 있다.
용서를 생각해 보았다. 카리스는 용서라는 의미가 있다. 이 세상의 호의는 무섭다. 결혼도 직장도 공짜의 호의는 없다. 이세상에 공짜는 하나도 없다 다들 이해타산을 무섭게 숨겨두고 발톱을 감추고 다 호의를 베푼다. 그러니 그것 다 빼앗기는 것이다. 한 사람도 이해타산 없이 덤비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믿음의 없는 사람의 말은 믿으면 안된다. 사람은 착하지 않다. 100% 죄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성령의 호의, 하나님의 은혜는 빼앗길 수 없다. 청년들이 아무도 이혼을 안하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청년들이 잘난 것이 무엇이 있는가? 은혜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마땅히 죽어야 할 죄인이기 때문에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의 영혼을 요구한다. 그때 우리 주님은 어떻게 대답하시는가? 오늘 내가 죽을 죄를 지었다면 내가 죽겠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아들이 대신 십자가에 죽었으니 어느 누구에게도 너를 내어줄 수 없다고 대답하신다. 이것이 성령의 호의이다.
생각해 보라. 돈이 아무리 많은 부자가 바울을 자유롭게 해준다고 한들 배를 빌려서 로마까지 갈 수 있는가? 어림도 없다. 최고의 군사를 붙여서 삼엄하게 경비를 세워서 로마까지 가게 할 수 있는 것은 이 땅에서 로마 황제밖에 없다. 그 길을 인도하니 최고의 길이 가이사에게 상소하는 것이고, 이제 그 말을 할 때가 온 것을 안 것이다. 그 말을 할 수 있도록 로마시민권이 있었고 그것을 쓰는 것이다.
저 또한 갇혀 있는 13년이 성령의 호의였다. 저야 말로 자유를 주면 100% 이혼하고 자유부인이 되어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갇혀 있었던 것이 저의 힘인가? 이것이 성령의 호의였고 갇혀 있었던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용서이고 은혜였는지 모른다. 저를 용서하시기 위해 그 시간이 필요했다. 인간의 악한 호의로 인해 당한 것들이 많다. 속아서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호의인 은혜를 사모하게 된 줄 믿는다. 인간의 호의도 그렇게 쓰인다. 오늘 호의가 네 번이나 나온다. 우리는 이 성령의 호의, 은혜로 용서받고 용서하면서 성령의 호의로 나가게 된 줄 믿는다.
나를 갇히게 한 것이 얼마나 사단에게 내어주시지 않은 성령의 호의이고 용서이고 은혜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 여러분들의 갇힌 것이 하나님의 용서이다. 그래서 이 자리에 와 있다. 내가 무엇이 잘나서 하나님을 알 수 있겠는가?
적용) 갇혀 있는 자리가 가이사 황제보다 더 큰, 주님에게로 인도되는 길인 것이 믿어지십니까?
여러분들의 갇혀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용서이고, 호의인 것이 믿어지시는가?
가장 급할 때 쓸 수 있는 로마 시민권은 무엇이 있을까요?
제가 다음주 초 워싱턴 중앙 장로교회에서 열리는 세계 선교사 대회에 참여한다. 그 전에 크라이스트 커뮤니티 교회에서 열리는 목회자 세미나를 섬기러 간다. 이 소식을 듣고 어제 한 목사님이 편지를 보내셨다.
구속사를 위해 목회자와 가정을 살리는 이 놀라운 워싱턴 목세 사역에 저와 아내가 쓰임받게 될 줄은 몰랐다. 너무 놀랍다. 목사님과 우리 교회에 딱 붙은 딱풀 성도이다. 오직 그것만이 살 길이라고 한다. 머나먼 이곳이지만 휘문 판교 성전에 사시는 성도님들보다 더 사랑하고 사모하고 있다. 지난 주 설교 속에서 진실양의 소원이 자신과 똑같아서 너무 놀랍고, 그래서 하염없이 울며 요리를 했는데, 요리 마치기까지 큐티엠의 나를 살린 그때 그 말씀을 두편이나 더 듣고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 이민생활과 사역자와의 결혼, 4년만에 낳은 세 자녀, 그 중 아들은 자폐아이로 가정 교회 직장생활에 갇혀지내기를 29년이 되었는데, 드디어 작년 2022년 10월에 유투브로 들은 벧엘교회 부흥회 말씀에 하늘이 열리고 말씀이 들리는 수지맞은 인생이 되었다. 그래서 바로 목사님의 책을 주문해서 18권을 듣고 읽으며 큐티인으로 큐티하며 목회자 목욕탕 세미나를 수료하며 회개의 역사로 아내의 매사가 살아났다. 아내대신 말씀을 먼저 깨달으시고, 그 때문에 죽도록 수고하신 목사님께 감사의 큰 절을 드려도 부족하다 한다. 저 또한 매일 갖은 말씀묵상하고 내적치유 감정치유 인지치유를 한다 말해도 바뀌지 않는 이유를 발견했다. 그것은 죄에 대한 회개가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목사님의 말씀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고백하며 그 죄의 문제를 직면하고 그 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그 죄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해결받은 바를 나누는 역사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 말씀을 듣고 저 자신도 어렸을 때 겪었던 제 아픔을 솔직하게 성도들에게 나누었다. 그런데 나의 죄를 자백하니 성도들도 자신이 죄를 자백하는 것을 보았다. 저희 교회에서 목회자 성경연구 모임이 있었던 날인데, 이 목사님 목세 포스터를 보셨는지 확인했는데 목사님들이 다 등록하는 기쁜 역사가 있었다. 그를 힘입어 힘 닿는대로 워싱턴 목세를 전하고 있다. 주최하시는 교회 위치가 아침과 오후에 교통체증이 최고인 곳이다. 그래서 저희 가족은 세미나를 호텔에서 2박 3일 숙박하며 듣기로 결정했다고 하니 등록하시는 목사님들도 같이 하겠다고 해서 전부다 수련회 처럼 하기로 했다.
저도 모르는 목사님 내외가 어제 밤에 보내주신 편지이다. 정말 이것이 성령의 호의이다.
저는 자원하는 한 사람, 진실이 같은 목회자가 계시니 얼마나 성령의 호의를 베풀어 주신 줄 모르겠다. 그래서 정말 눈물을 흘렸다. 제가 갇혀 있다고 생각했는데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길이다.기도 많이 해주시길 바란다.
다들 목사님은 왜 날마다 우시냐고 묻는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 갇혀 있다가 보면 아무것도 안하고 교회에만 오면 눈물이 난다.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갇혀 있는 것이 용서이다. 그러니 오면 사죄함의 은총이 저절로 있다. 누가 저처럼 갇혀 있겠는가? 제가 수없이 많이 아팠어도 주일은 멀쩡하게 나온다. 하나님은 주일을 위해 저를 일주일 동안 죽이시는 것 같다. 제가 여러가지로 살아있는 것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성경 말씀이 제 말씀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
말씀 맺음
성령의 호의는 죽이는 호의를 분별해야 합니다.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둘러서서 고발해도 사과해야 합니다. 아무도 나를 내줄 수 없는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해도 주의 길을 가야 합니다. 아무리 갇혀 있어도 거기서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는 사람은 주의 길을 갈 수 있다.
[ 기도제목 ]
* 교희
1. 열심과 자책 분별 하고 하루만 잘 살도록
2. 올라오는 감정들 알아주고 애도하며 이 시간을 잘 통과 하도록
3. 아웃리치 맡겨드릴수 있도록
* 보련
1. 말씀 보면서 하루 살 수 있도록
2. 서류 결과 나올 때까지 인내하는 시간 기를 수 있도록
* 크리스틴
1. 말씀이 잘 깨달아 질 수 있도록. 내 죄를 볼 수 있는 용기와 은혜 주시길
2. 밀린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마음과 정신과 체력 주시길
3. 엄마와 할머니의 건강 회복을 위해서
* 은우
1. 아무도 나를 내줄 수 없는 것을 알고 매일 하루만 잘 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