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22.06.12
제목: 성령의 자유
본문: 사도행전 24:17-23
설교: 김양재 목사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제가 없는 동안 성령의 고백으로 사과 많이 하셨나요? 이번 선교 여행에서 상당히 고위직에 계시는 어떤 분을 만나서 복음 제시를 했는데 영접을 하셨어요. 그 분의 문제는 직장이 관계 문제였는데, 상대방에게 아무리 사과를 해도 진정성이 없다고 했다네요. 그래서 제가 그 분 때문에 저를 찾아왔고 천하보다 얼마나 귀한 예수님을 영접하셨으니 그 분이 얼마나 공로자이고 고마운 분인가 생각해서 고대로 사과를 해보시라고 했는데요, 그 분이 글쎄 그새 사과를 하셨는데, 상대방과 상관없이 평강이 임했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자유함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고는 집회를 참석 하시고 확실하게 다시 한번 일어나서 영접을 하셨어요. 이번에 그 한분 때문에 간 것만 해도 제가 이 소귀의 목적을 다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한분이 참 많았습니다.
오늘은 성령의 자유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려고 해요.
1. 죽은자의 부활을 전합니다.
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에 오순절에 성령하나님께서 교회에 내려오시며 사도 행전이 시작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과 복음을 증거하기 시작하죠. 믿는 사람들이 모여 예루살렘 교회가 시작이 되고, 또 세워지고, 바울에 의해 소아시아와 유럽에 까지 교회가 세워지는 것을 요즘 우리가 계속 보고 있어요. 그래서 오늘은 이제 선교 보고 겸 해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이번에 간 터키가 소아시아에 교회가 세워진 교회가 있는 곳이었어요. 우리가 볼 때 얼마나 핍박을 받으며 세워진 교회입니까? 그래서 이제 서머나 교회도 가봤고, 에배소교회, 라오디게아 교회의 무너진 터를 보았어요. 바울의 눈물로 세워진 그 선교지, 그 터키 그 곳을 거의다 이슬람이 꽉잡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 곳에서 예수 믿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왜 그럴까를 생각해봐야죠. 아마도 그 곳에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교회나 터키의 이 소아시아 교회가 그대로 있었다면 전세계의 성지가 되어서 아주 터져 나갔을 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렇게 이제 어떤 건물이나 이런 것들 것 우상화 되는 것을 안 좋아하셔서 무너지게 하셨죠. 그래서 예수님의 무덤도, 시신도 없게 하셨죠. 그런데 for example, 샘플로 로마 바티칸 성당에 바울의 시신이 있다고 하니깐 미어지게 가죠. 그곳에 가보면 남대문시장이 따로 없어요. 성당안에서도 떠밀려가는거에요. 이 땅에 우상 삼아야 할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이번에 중동 선교사 수련회를 갔기 때문에 중동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게요.
소아시아 교회가 있던 터키가 거의 알라를 믿는 이슬람으로 채워졌는데요, 그 이슬람이 이스마엘의 후에들이고, 이스마엘을 내쫓을 때 큰나라를 이루리라 했기에,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큰 자다 라는 생각때문인지 이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게 영적인 피해의식 이 아닌가. 그들은 정말 아이들을요 10명 이상씩 낳아서 점점 세계로 밀려오고 큰 나라가 되어가고 있어요. 이슬람 국가라고 하는 국가만도 지금 43개국에 달하구요, 한국에 2009년 35000명이었던 그들은 이미 100만명이 된지 훨씬 오래 되었어요. 그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알라로 무장되어 있고 너무 행위로 천국가야 하니깐 착해보여서 경건함과 종교심을 누구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이스마엘의 후예인 마호멧을 믿는 사람은 반드시 일생에 한번 성지 사우디에 가야하는데, 마호멧의 출생지 사우디의 메카가 성지가 되어서요, 평생 돈 모아 거기 가는게 소원인데요, 특별히 이제 12월에 그 때가 그냥 한꺼번에 수 백만명이 해마다 거기를 참배하면서 마귀 돌기둥에 돌 던지면 마귀를 쫓는다고, 가까이서 던져야 마귀가 쫓겨난다고 해서 매해 돌에 맞는 사람이 죽어요. 그래도 그 곳에서 죽으면 천국간다고 그렇게 부러워한대요. 이들의 종교가 무섭죠. 그래서 자살 폭탄 테러를 하다가 죽어도 알라를 섬기다가 죽는 것이다고 기쁨으로 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아니 그니까 그렇게 글쎄 거기 사우디에 그거 성지 한번 간다고 그러는데.. 우리도 현장예배를 그렇게 사모해야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너무 이지고잉 이에요. 진짜 그렇게 죽음을 불싸하고 천국을 간다고 온다는데.. 그들이 모든 것 다 갖춘 것 같은데, 그들에게 없는 것이 자유함이에요. 너무 경직되어 있고 여자들이 이 더운데 부르카를 그냥 첩첩히 쓰고 다니면서, 나는 저 머리를 보면서 땀띠 나면 어떡하나.. 그렇게 걱정이 되는데. 그렇게 남자의 종속물로 살아가는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철저히 남자 중신의 세계이지만, 그들은 도덕의 유치원 시대에 살고 있고 영적인 문맹에 살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요.
이렇게 알라를 믿고 있는데도, 바울의 행적으로 터키 이스탄불만 해도 인구가 2000만명인데요, 소아시아의 일곱교회나 로마시대에 그러 지하 묘지 갑바도기아 등을 보러 1년에 이스탄불만 해도 4000만명이 들어온다는 거에요. 바울이 전해 놓은 복음은 간 곳이 없고 바울 때문에 먹고 사는 나라가 되었어요.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있어요. 요즘에 이제 바울의 사도행전을 너무 감격하면서 읽고 있는데, 그렇게 대단한 그 곳을 이방인 중에 이방인, 그것도 여자인 제가 터키에서 복음을 전하다니. 이야말로 차별 없는 복음의 진수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제 중동지역 선교대회를 터키에서 한거에요. 이번에 150여분이 참석을 했는데요, 이런 곳에서 선교를 하시니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그런데 그 힘든 것도 삶으로 전하니까 다들 큐티인에 대해서 관심이 폭발했어요.
중선협의 회장님은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하시고 요르단과 모르코에서 20년 사역하고 계신데요 3년전에 띵크 세미나를 참석하시고 아주 저를 기다려서 불렀어요. 그 이후에 2년 7개월을 하루도 안빠지고 큐티인으로 큐티를 하고 계시다고 간증을 하셨습니다. 한글 4종 세트, 영문 4종 세트를 가지고 나오셔서 큐티를 비교하시면서 하신대요. 장년 큐티인이 안깨달아지면, 청소년 큐티인으로, 어린이 큐티인으로, 새싹 큐티인으로.. 한줄로 깨달아지는게 있다는 거에요. 이 대단하신분이 이 박사님께서 그렇게 얘기하시는거에요. 영어도 보면서 아주 열변을 토하시면서 간증을 하셨는데, 그런데 그 좋은 큐티인이 큐티인 4종을 한번 보내려면 10만원 넘게 드는거에요. 그곳에서는 종이 큐티인이 얼마나 귀한지 상상이 안되는거에요. 다들 그 너무 큐티인을 갖고 싶고 하고 싶어 하셨는데요.. 우리는 큐티책의 귀함을 모르죠. 그래서 이번에는 선교사님 전체에게 PDF 파일로 보내드렸는데, 종이 큐티인과는 비교가 안된다고.. 그 선교사님한테도 PDF 파일 보내드리다가 이번에 종이책을 갖다 드리니깐 막 너무 비교가 안된다고 그랬어요. 그러나 여러분 가운데는 종이책도 안보고 큐티엠만 보시는 분도 계시지요?
큐티인으로 목회 하고 싶은데, 이 4종 세트만 있다면... 하시는 선교사님이 너무 많았어요. 책이 없으니까 번역하는 길 밖에 없는데요, 너무 큐티 선교회 할일이 너무 많고, 우리들 교회가 할일이 많습니다. 이번에 선교사 수련회 마지막은 큐티를 반드시 해야할 것 같고, 중동은 이스마엘의 후예이기 때문에 기복 갖고 안되고 팔복으로 들어갈 수 있고. 그러나 그 길을 안 것 같아서 기쁘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것이 거룩한 부담이 아닌가 싶어요. 죽은 자의 부활을 만나고 전하셔서 자유를 만끽하며 경직된 중동지역의 백성에게 바로 이 자유를 선물로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이 지구상에서 가장 경직된 백성은 바로 북한이에요. 땅끝 나라는 북한입니다. 그 곳에 자유가 선포되기를 기도 합니다.
자, 죽은 자의 부활인 예수님이 전해져야겠죠. 갑자기 본문 설명을 할려니깐 말씀들을 기억하고 있나요?
17-20절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바울이 너무 억울하죠. 더둘로가 와서 고발을 했죠. 결례를 행하고 났는데, 무조건 잡아서 이방인 하고 다녔다, 성전을 더럽게 했다 이러면서 그때 이제 나는 어떻게 예수 믿었는지 1차 변명을 했죠. 그랬는데 막 중간에 듣다가 난리를 쳐서, 천부장에게 잡혀가가지고 또 천부장과 공회앞에서 2차변명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그때 이제 난리가 나고, 이번에는 벨릭스 총독 앞에서 3차 변명을 하는거에요. 누명을 썼고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전염병자라고 더둘로가 이제 고발을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바울의 성령의 고백은 대제사장의 고발과는 실제가 다르다는 것을 다시 보여주죠. 그래서 벨릭스 총독 앞에서 소요죄에 대해 이단의 괴수에 대해, 성전 모독죄에 대해서 기꺼이 변명을 했다고 했어요. 소요죄에 대해서는 자신은 예루살렘에 온지 열이틀 밖에 안되었고 그 때도 7일 결례를 행하는 것을 본 사람이 있기 때문에 자기는 어떤 소란을 일으킨 일이 없다. 증인데려와라. 이단의 괴수 죄에 대해서는 자신이 바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도를 믿는다고 인정했어요. 그리고 자신은 의인과 악인의 부활에 대해 나도 믿는다고 했어요. 성전 모독죄에 대해서는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쓴다고 하면서, 비로소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이방교회에서 부조를 거둬와서 드렸다는 말을 합니다. 이기기 위해서 변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목소리가 아니라, 우리 목소리로 공동체적 고백을 했어요. 그들의 고발이 유효하려면 그 사건을 직접 목격한 증인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의 고발은 순전히 날조된 거짓말을 한거에요. 그러니까 바울은 그 공회에서 신문받을 때 자신의 위법 사실을 발견한 것이 있다면 말해보라고 도전하죠. 그래서 이제 모든 것을 변명을 다 끝나고, 마지막으로 바울은 산헤드린 공회에서 외친 한마디를 다시 강조해요.
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바울은 자신에 대한 변명을 마치면서 다시 한번 부활에 대한 증거를 말합니다. 바울이 팩트로 조목조목 변명했지만 그 이유는 그 한마디, 부활의 복음 전함 때문에 그 많은 변명을 했다는 거에요. 나는 오직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서만 심문을 받는다. 오직 죽은 자의 부활 때문이다. 억울함을 증명할 수 있는 자리에서 더둘로와 경쟁해서 이기겠다고 변명하지 않고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의 붙들린 바 되어 그래서 전한다고 하는 바울을 보면서 이것이 자유라고 생각이 됩니다. 아울러 로마가 신경을 쓸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종교적 교리적 이슈였다는 거에요. 이 바울의 한마디 울부짖음과 외침은 사과를 하면서 비굴하게 사과를 하는게 아니고, 사과를 하면서도 죄인이 하는 소리가 아닌거에요. 이 사람이 진짜 죄인이라서 이런 사과를 한 것이 아니죠. 죽음이 가장 큰 권세라면 죽음을 이겼기 때문에 아무리 갇혀 있어도 부활을 했자나요. 아무리 갇혀도 부활을 경험한 사람은 절망이 옥, 부정의 옥에, 미움의 옥에 갇히지 않아요. 죽은 자의 부활인 예수가 그리스도임이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에, 그 복음이 나에게 복음이 되면 우리는 자유한거에요.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유함이에요. 스스로 계신자. I am who I am. 스스로 자 말미암은 유. 하나님이 나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도 자유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 죽은자에요. 이 세상에 대하여 죽지 않으면 부활을 소망할 수가 없습니다. 죽지 않고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전하고 가르치며 갑니다. 결국 그들은 바울을 죄인으로 가두었지만 하나님은 누가의 기록으로 그의 진실됨이 지금 2천년동안 전 세계에 알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오늘 가정 파괴의 원인이 여러분에게 있지 않아도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 때문에 심문을 받고 있다면 여러분의 죄고백 나눔은 영원한 세대에 영원히 남을 것을 믿습니다. 2천년동안 내려오자나요. 우리의 큐티인 사역은 상상할 수 없는 2천년 교회사에 처음 나오는 기록이에요. 태초 이래로 이런 기록은 없지 않나 생각하니깐..
적용질문
부활을 믿는다면서 여전히 절망의 옥, 미움의 옥, 의심의 옥에 갇혀 있지는 않은가요?
죽은 자의 부활이 안 믿어지니깐 여러분을 때마다 죄인으로 가두어 놓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성령의 자유는
2. 치우치지 않습니다.
Balanced life 를 살게 되어 있어요.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셨다고 치우치면 안돼요. 내가 예수 믿는다 그렇게 무섭게 믿으면 안되는거에요. 이번에 보니깐 각 나라가 예배를 드리는데, 다 치우쳐 있었어요. 변화가 되려면 특별한 은혜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오래전에 제가 여성 목회를 하는데 너무 사람들이 모이니깐 이단 소리를 듣지 않겠냐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요.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이단이고 그런게 아니죠. 제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누구 비유를 맞춘 것도 아니고, 평신도 집사의 사역을 하면서도 죽은 자의 부활의 복음이 확실하기 때문에 내가 말씀으로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사람을 기쁘게 하기 보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말씀으로 치우지지 않고 왔기 때문이라고 했죠. 그래서 방언의 본문이 나오면 방언 달라고 말하고, 신유 말씀이 나오면 신우 달라고 기도하고, 말씀을 보면서 남 목사님의 특허 낸 말, 가만가만 오늘은 무엇이 부족한가, 가만가만 찬양이, 기도가, 구제가, 선교가, 헌금이 부족한가.. 하루도 빠짐없이 말씀을 보면서 나의 치우침을 이제 묵상했어요. 그 balanced life를 살려고 애썼죠. 어떤 교회는 양육만, 어떤 교회는 구원만, 어떤 교회는 기도만 강조해서 시끄럽고, 어떤 교회는 신유만 강조해서 무서워요. 구원파, 전도만 강조해서 전도광이라고도 하죠. 그럼 한가지만 강조하면 이단 될 확률이 높은 거에요. 우리는 큐티의 꽃은 적용이고 결론이 영혼 구원이기때문에, 영혼 구원 때문에 큐티도 하고 찬양도 하고 적용도 하고 기도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있기 때문에 기도도 뜨겁고 찬양도 세련되었어요.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는 것, 은혜로운 것이 가장 세련된 것입니다. 모든 순서가 유기적으로 은혜를 끼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배학을 배웠다고 되는게 아니라 성경만 바르게 보니깐 이 모든 것이 나오게 되어 있더라구요. 하나님께서 환난이 주제어가 되고 성경이 교과서가 되고 성령의 스승이 되게 하셔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날마다 가르쳐주셨어요. 우리들교회가 뭐가 가장 치우쳐있나 싶어 보니깐,, 말씀에 조금 치우쳐 있어서, 찬양 시간에 처움부터 오지를 않아요. 찬양은 다 사전찬양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 부분이 치우쳐 있어요.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우리가 이슬람들을 생각하면 우리는 경건이 능력도 없지만 경건의 모양도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그 분들은 안가면 죽을 것 같고.. 그러는데. 우리는 너무 자유함이 너무 넘쳐서 방종으로 가는 것 같아요. 이번 공상권이었던 루마니아는 30년 전까지만 해도 공산권이었자나요. 공산권에서도 그렇게 교회가 있었다는게 아이러니 하자나요. 개신교는 발 붙이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영문 큐티인을 이제 2월에 우크라이나 사태 때에 헌금과 같이 보냈는데요. 이번에 국회 초청을 받았자나요. 루마니아 1년에 한번 밖에 안모이는 그 모임에 제가 초청을 받아서 가서 간증을 했어요. 큐티인이 신뢰 받는 일에는 그것이 굉장히 영향을 미칠만한 일이라니 감사하죠. 미국의 한 여성 대표는 제가 7월달에 워싱턴에 간다고 하니까 세계 선교사 대회에 제가 가니까 저를 초청하고 싶다고, 밥도 사주겠다고. 다들 큐티인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어요. 진짜 그 나라 언어로만 번역이 되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오랫동안 계속 간증하고 그러니깐 사석에서 너무 은혜를 받으니깐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인들을 모여놓고 큐티인에 대한 설명회를 하는데.. 따로따로 통역을 하는데, 이 평원님들이 다 나와서 간증을 하고 그러고 나서 끝나면 나눔을 하는데 모두 자기 얘기를 하는거에요. 처음으로 자기 나눔을 한다고 했어요. 공산권이건 이슬람권이건 사람들은 다 똑같이 죄인이자나요. 바람은 세계 공용어인거 같아요. 그래서 이제 주일날은 루마니아 침례교 총회장님께서 설교를 했어요. 침례교 교회인데도 불구하고 30분 찬양을 하고 30분 기도를 하는데 30분 굉장히 거룩해보이자나요, 다 여기저기에서 다 평신도들이 기도를 하는거에요. 설교는 30분 설교를 무려 두 번을 해요. 여자는 찬양대도 못 서고 설교도 못합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삶으로 간증을 하니깐 다들 들었어요. 다들 형식과 전통에 치우쳐 있었어요. 젊은이들이 다 떠난다고 하는데요, 30년 전 공산권일때에는 환난과 핍박이 있으니깐 예배가 살아 있었다는거에요. 예배 자체로 부흥이 되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다들 편해져서 편한 시대에 그렇게 하니깐 다 떠나는거에요. 그 교회도 이렇게 이제 예배만 드리다가 삶으로 말씀을 설명하니깐 삶은 만국 공통어였어요. 전통교회도 큐티인에 대해서 관심을 표했어요. 바울 때도 방해가 심했지만, 지금도 우리가 알게 모르게 다 치우쳐 있기 때문에 교회 한번 나가기 위해서 큐티 운동을 위해서 사단은 교묘하게 오기에 우리는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적용질문
여러분은 말씀, 기도, 선교, 구제, 찬양, 치유, 방언, 전통 등 어디에 가장 치우쳐 있습니까? 사도행전의 교회들이 다 무너진 것에 대해 아무리 좋은 것도 보이는 것들은 다 무너진다는 것에 동의 하십니까?
성령의 자유는
3. 삶으로 살아냅니다.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 고로 연기하여 이르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하여 더 자세히 안대요. 24장 10절에 보면은 바울이 말하기를. 유대인의 총독이자나요. 당연히 알죠. 더구나 아내 드루실라가 유대인이였거든요. 가이사랴는 오래전부터 빌립집사가 복음을 전해왔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있었어요. 또한 바울이 실정법을 어긴적이 없다는 것을 그는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여기서 아는고로 라고 번역된 헬라어의 뜻은 알면서도 벨릭스는 바울이 무죄인 줄 알면서도 석방하지 않았어요. 알면 뭐하겠어요 살지 않는데. 무죄판결을 바로 내리지 않았을까? 역시 뇌물의 힘이죠. 어떻게 뜻을 바로 꺽겠어요. 판결을 연기했어요. 그리고는 다시 바울을 감금을 했어요. 또 한가지 이유는, 26절에 보면 바울에게 바울에게 돈을 받고자 했어요. 벨릭스가 총독이면서도 돈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어요. 정치가 그렇지 않겠습니까? 정말 무죄인데 돈을 받았기 때문에 못 풀어주고, 돈 받았기 때문에 풀어줘요. 이 땅에 억울한게 너무 많아요.
벨릭스는 예수의 도에 대해서 지식적으로 잘 알고 있었지만 따르지 않았어요. 삶으로 살지 못했다구요. 더 잘 알고 있어요 지금. 여기 더 잘 알고 있다고 그랬자나요. 그러나 살지 않아요. 오늘 성령의 자유는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데.. 벨릭스는 예수의 도를 따른게 아니라 유대지도자들의 눈치만 보면서 자기 욕망을 따랐지요. 인격적인 지식을 말해 안다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을 머리로만 알았을 뿐 삶으로는 전혀 깨닫지도 따르지도 않았어요. 반면에 바울은 구속이 된 상황에서도 자신이 알고 있는 도를 따라 삶으로 담대하게 전하고 있는거에요. 성령의 자유는 안다는 것을 넘어서 살아야 돼요. 지켜야 돼요. 행해야 돼요.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자유를 누리려먼 이렇게 잘 살아야 합니다. 토로스 산맥. 멀리서 봐도 어머아어마한 험산 준령인거에요. 마가가 진짜 가기 싫었겠다. 그게 막 와서 닿더라구요. 사도행전에서 바울의 복음이 구속사적이라 유대인의 방해가 원색적으로 드러났자나요. 왜 바울이 전하면 저렇게 죽일려고 했을까? 우리는 날마다 구속사 구속사 하는데 구속사가 뭔가? 이번주의 구속사는 뭔가 하면요, 이 창세기에서 믿음의 조상 야곱이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은 라헬과 요셉이었어요. 요셉을 만나고 나서 죽어도 좋겠다 해요. 그럼 다른 아들은 뭐에요. 야곱도 벗어나지 못한거죠. 그러나 하나님의 카트라인에는 사랑받지 못한 레아와 며느리와 동침한 유다가 더 위에 올라갔어요. 그래서 생각지 못하게 라헬을 끼고 돌았는데, 믿음의 조상 야곱이 알아보고 레아를 약속의 땅에 묻은거에요. 요셉인줄 알았는데 요셉이 나중에 야곱을 기뻐하지 않았다고. 유다가 예수님이 직계조상이 되었어요. 야곱도 이쁘고 총리로 성공해서 가는 거를 그렇게 못 내려놔요. 천국은 힘들고 죄 많고 수치스러운 사람들이 회개하고 가는 거더라구요. 바로 이것이 성경적인 구속사적인 가치관이라는 것이죠. 이쁜거 좋아하고 총리 좋아하면 인생이 자유함이 없자나요. 사랑받지 못한 레아는 예수님 만나서, 후한 선물, 찬송받으리로다 이런 언어가 나오는데.. 그러니깐 야곱이 사랑한 것 하고 하나님의 커트라인하고 다르자나요 그죠? 그리고 이제 또 유다도 마찬가지고요. 언어가 천국의 언어, 화목의 언어를 쓰는거에요. 1등 카트라인을 얘기한거죠. 요셉도 기뻐 아니하여 가 마지막 결론이에요. 유다는 마지막까지 내 생명을 내놓겠다 했죠. 그러니깐 지금 시아버지 와 며느리 동침했다고 수치스럽게 사는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존감이 회복되어서 사람을 살리는.. 이렇게 성경을 읽어야지 자유함이 있다는 거에요. 천국은 다 없어도 이렇게 기쁘고 즐겁게 갈 수 있는 것이죠.
바울의 복음을 들은 사람은 확실히 구원과 심판으로 갈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우리도 모두도 사단의 집요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는 것을 넘어서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가치관이 바뀌어야 해요. 알라를 믿는 그들이 중동에서 교회 나오는 것은 전쟁이에요. 각자 집에서 목숨을 걸어야 나올 수 있는거에요. 문화가 너무 달라서 힘들다고 해서, 제가 선교사님한테 우리도 가정의 문제에서 목숨을 걸지 않으면 가정을 지켜낼 수가 없다고 그런 분들이 있다고 우리도 이제 망치고 매를 맞은 엄마도 있다고.. 이런 곳에 삶으로 살아내지 않으면 전해지기가 어려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아시아 교회 바울이 세웠던 교회가 다 무너지고 지진에 휩쓸렸지만 그렇게 없어졌지만 전세계에 바울 복음이 전파되었자나요. 그걸 보면서 저는 우리들교회가 사라진다해도 우리가 삶으로 살아낸다면 전세계에 구속사적 복음이 전파되어서 큐티 무브먼트의 사역이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운동이 일어날 수 있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이번에도 주일 설교에 제가 없는 동안에 개척교회 목사님, 시골교회, 큰 교회 목사님이 큐티무브먼트. 말씀 묵상을 죽자고 했다고 했어요. 목사님이 죽자고 하게 되니깐 그 시골교회에도 부흥이 일어났다고 했어요. 구원을 액세서리쯤으로 여기는 가만가만 목사님. 사고 들고 읽어라 목사님. 네가 나를 사랑하는냐 괴도 수정 질문으로 말씀을 전한 목사님. 개척 교회인 작은 교회는 코로나 교회는 150명 가량 부흥 되었고, 시골교회는 1년 예산이 늘었다는 거에요. 큰 교회 목사님은 아무도 안 알려줬는데 큐티인을 보고, 천권을 시켜서 2년째 해오고 있다고 그랬어요. 삶의 궤도 수정이 일어났다고. 여러분 한분이 큐티를 하고 한분이 바뀌니깐, 큐티하는 교회로 바뀌었습니다. 고유명사에서 보통명사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에요. 앞으로는 설교 잘하는 목사보다는 사람 살리는 목사가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교계의 지각 변동을 기대합니다.
적용질문
말씀에 대해 안다고 하면서도 삶으로 살아내지 못하고 눈치만 보면서 아직도 망설이고 있는 일이 있습니까?
성령의 자유는
4. 복음 전하는 자유입니다.
23 백부장에게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그의 친구들이 그를 돌보아 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 하니라
벨릭스도 자신의 연기 결정이 마음에 걸렸겠죠. 바울에게 큰 호의를 베푸는 척 합니다. 선고를 연기하고 자유를 주라고 했어요. 친구들이 돌보는 것을 허락 했습니다. 너무 배려해주는 것 같은데, 갇혔지만 갇히지 않은 애매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몇일 전에 테러를 당할 것 같은 처지를 생각하면 안전하게 지켜지면서 개인적인 신변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은혜입니다. 우리 공동체도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한 사명을 위해서 생각지 못한 이런 자유라도 좀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벨릭스가 자유를 주어도, 그 자유를 누리려면 믿고 살고 누리는 그것이 우리의 핵심 가치자나요. 이 자유함이 없다면 편함도 갇힘도 못 누립니다. 누린다고 아무것도 안하는게 아니에요. 바울은 벨릭스가 부여한 자유를 이용해서 계속해서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했어요 2년동안. 바울의 몸이 구속된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해서 억울하게 수감되게 하셨다는 것이죠. 갇혀 있으나 편한 환경이거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 최고의 자유함이에요. 그것이 성령의 자유함이에요. 갇혀 있으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최고의 자유에요. 갇혀 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빛이 나는거에요.
적용질문:
여러분의 자유는 복음 전하는 자유입니까? 나 자신을 위한 자유입니까?
여러분에게 자유가 주어지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말씀을 맺어요.
성령의 자유는 죽은자의 부활을 전합니다. 죽은자의 부활이 임해야 하는 거에요. 그런 사람은 치우치지 않아요. Balanced life를 살아요. 무섭지 않아요. 시끄럽지 않아요. 우리는 균형이 잡혔어요. 아는 것에서 넘어서 한가지라도 적용을 해서 삶으로 살아내야 해요. 그게 뭉뚱 그려서 복음을 전하는 자유입니다. 어떤 갇힌 곳에서도 복음 전하는 자유가 최고의 자유인거에요. 갇혀있으니깐 복음이 빛이 나는거에요.
근황
A:
간만에 고향 다녀왔습니다. 지난주 유아부 예배드리고 출발해서 저녁만 먹고 새벽에 다시 올라왔어요. 코로나 이후로 온 가족이 식당에서 식사한 적은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하지만 피곤.
회사에 고가의 실험 기기가 들어와서 몹시 부담되고 힘듭니다. 새벽에 불쑥불쑥 잠이 깹니다. 저의 전공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분야의 일을 하고 있는데 기기가 고장날까봐 두렵고 또 회사에서 기대하는 바가 있으니 죽을 맛입니다.
> 판매업체의 학술팀 도움을 많이 받아봐요.
>> 알지만, 한 두번의 도움도 아니고.. 부담스럽고 그렇습니다.
> 그 일이 그쪽에서 원래 해야하는 일이죠. A가 그런걸 잘 못할 것 같아 하는 말입니다.
B::
곧 기말이 오고, 이제 생기부 정리도 해야하고, 한 학기가 끝나가는 시점에 부담이 됩니다.
..... (비밀).....
가끔 교회에서 결혼 생활의 문제점들을 많이 얘기하는 거 같아 아쉽습니다. 한쪽만 강조하지 말고, 반대쪽도 강조해주면 좋겠습니다. 자주 그런 얘기에 노출되니 모두가 그런줄 알고 너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간증, 죄고백의 물론 좋은 부분도 있지만, 교회가 치우치지 않는게 중요해 보입니다.
C:
... (비밀).. 많이 힘들다. 상담을 한번 받아보고자 한다.
적용질문:
부활을 믿는다면서 여전히 절망의 옥, 미움의 옥, 의심의 옥에 갇혀 있지는 않은가요?
죽은 자의 부활이 안 믿어지니깐 여러분을 때마다 죄인으로 가두어 놓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O:
일요일은 살짝 좀 거룩해지다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회사라는 절망의 옥, 동료들에 대한 미움의 옥, 나는 왜 여기 있는가의 의심의 옥에 갇혀 산다. 그러다가 또 일요일이 되면 거룩이 살짝 올라오다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급속도로 가라 앉으면서 바닥을 친다. 매일을 부활신앙으로 산다는 게 쉽지 않다.
> Q: 그래도 이렇게 일요일 나와서 기도하고 말씀 듣는게 어디냐. 이것도 없으면 안된다. 매일 큐티 하자.
P:
절망의 옥에 갇혀 있다. 관계의 부분에서 난 안되나.. 의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비밀). 하지만 이 문제에서 내가 일부 원인을 제공하는게 있다고도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죄보다는 상대방의 죄를 먼저 보게 된다.
Z:
절망의 옥에 갇혔을 때가 제일 힘들고 EFFECT가 크다. 이 관계가 맞는건가.. 힘들 때가 있다.
부활했을 때 뭔가 된 것 같고, 해결 된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바뀌지 않는 현실에, 상황이 똑같을 때 절망감이 들고 힘들다.
그럼에도 견뎌 나가는 것 그게 부활 아닐까 생각한다. 그게 말씀이 힘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적용질문:
여러분은 말씀, 기도, 선교, 구제, 찬양, 치유, 방언, 전통 등 어디에 가장 치우쳐 있습니까? 사도행전의 교회들이 다 무너진 것에 대해 아무리 좋은 것도 보이는 것들은 다 무너진다는 것에 동의 하십니까?
G:
차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올라온 적이 있다.
H:
솔직히 질문에 포함된 항목들이 모두 너무 거룩한 항목들이다. 이 중에 치우쳐 있는 것 아무것도 없다. 인정중독에 치우쳐 있고, 옳고 그름에 치우쳐 있다. 얼마 전에 양육하는데, 직장에서 화가 났던 힘든 일을 얘기하면서 정죄가 계속 된다고 얘기 했는데, 양육 받는 친구가 '형은 평생을 너무 선하고 착하게 살아서 기준이 높은 것 같다. 세상엔 훨씬 못한 사람들 천지다. 하지만 형은 잘 안될 것 같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서..' 라고 얘기했다. 망치로 머리를 맞는 충격이었다.
기준이 높다는 얘길 회사에서 많이 들었는데 단 한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잘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열심히 하라고 했고. 열심히 못하겠으면 내가 도와줄 테니 따라만 와달라. 부탁하는 것도 기대가 큰건가? 라고.
몇 년동안 기준이 높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양육 받는 동생의 말 한마디가 처음으로 귀에 들렸다. 아! 이것도 내 기준이구나. 아!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은거구나.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으로 간만에 누군가가 등 긁어주는 느낌이었다.
> I: 결국 큐티의 꽃은 적용이라고 했다. 작은 것부터 해보자. 스스로의 기준을 깨는 연습을 해야한다.
적용 질문:
여러분의 자유는 복음 전하는 자유입니까? 나 자신을 위한 자유입니까?
여러분에게 자유가 주어지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C:
나 자신을 위한 자유인 것 같다. 그러니, 힘들때마다 투정 부린다. 자유가 주어지면 이 여자 저 여자 만나보고 싶다.
D:
복음을 위한 자유이면 좋겠지만, 나 자신을 위한 자유인 것 같다. 자유가 주어지면 편하게 살고 싶다. 일도 적당히 하고, 하고 싶은 마음 만큼만 하고..
E:
물론 자유하고 싶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아는 나이니깐, 오히려 더 자유해지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자유가 주어진다면,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
기도제목
남룡:
내 자존심이 잘 깨어지지 않아요. 자존심을 잘 내려놓고 본질을 보고 기도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가족들한테 연락을 잘 못하는데, 한쪽에 치우치니깐 다른 쪽을 잘 못챙기는 듯해요. 가족들 자주 연락 할 수 있기를 기도해주세요.
혜국:
새로운 프로젝트가 너무 부담되고 힘든데, 열심히는 하되 인정중독으로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닌 책임감으로 열심히 할 수 있기를 기도해주세요.
곧 미국에서 박사님 한 분이 오시는데, 앞으로 같이 일하게 될 예정입니다. 잘 맞는 사람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신교제를 위해 기도하지만 결코 섣부른 감정에 의한 결정이 아니길 기도합니다.
태훈:
학기말로 가고 있는데, 학기 마무리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시험 문제, 동아리 업무...).
스스로 사랑이 없다는 게 느껴지는데, 여자친구나 가족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사랑이 많은 사람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