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설교]
- 말씀 : 요한복음 21:15~19
- 제목 :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설교 : 이성관 목사님 (안산시민교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삶을 허락해 주셨어요. 그런데 인생을 살다 보면 하나님의 원래 의도와 상관없이 인생의 궤도를 이탈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의 어느 시점 순간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생의 궤도에서 벗어난다는 얘기죠. 그런데 마치 중간 궤도 수정 없이 방향성을 잊은 표류하는 우주선과 같습니다. 이렇게 궤도를 벗어난 삶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죠. 인생의 참된 목적을 잃은 채 이리저리 헤매며 방황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 중간 궤도 수정이 필요할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본래의 의도 그 궤도를 찾아가는 재조정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삶을 회복하고 삶의 방향성을 수정하고 다듬는 작업이 필요합니다.특별히 오늘 베드로의 인생을 통해서 그의 인생이 어떻게 수정이 되었는지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베드로는요. 인생의 궤도를 순탄하게 잘 진행했던 제자였습니다. 흔들릴 수 없는 방향성의 나침판이 그에게 있었죠.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고 메시아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분 옆에 있을 때에는 그의 인생 또한 잘 또 안착되어 속도감 있게 갔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또 예수님과 동행하면 궤도를 이탈하고 벗어날 일을 상상조차 못할 수 있죠,
그러나 어느 시점, 어느 순간에는 신앙과 믿음의 근본이 되던 그 예수님과의 관계가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기대와 다른 궤도를 가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본래 궤도의 방향성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베드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죠. 뜻이 달랐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그 신앙의 궤도를 이탈하게 됩니다. 베드로의 이탈의 원인을 잘 들여다보며 자신 베드로의 마음의 창과 렌즈를 통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한계와 제한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잘못된 자신의 렌즈로 예수님을 바라보니 예수님에 대한 오해와 신앙적인 잘못된 것이 있는거죠.
이 인생의 궤도에서 벗어난 베드로는 비극적 결과를 맞이합니다. 내면의 세계가 무너지죠. 아니 무너지는 것을 넘어, 자신의 거룩한 내면의 원래 모습이 사라지고, 처음에 열정도 다 소멸이 됩니다.한때 담대한 믿음도 이제 소심한, 위축한 불신이 되어졌죠. 예수님에 대한 강한 사랑의 열정도, 이제 뒤로 슬그머니 도망치는 무기력해 보이는 아주 무책임한 사람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일로 통해서 그 베드로가 인생의 궤도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알 수 있죠.
믿음의 궤도를 이탈한 그 베드로의 마음속에는 씻을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죄책감이에요. 한때 주님과 함께 했던 아름답고 귀한 추억이 생각날 때마다 더불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자신의 절망, 또 자신에 대한 후회,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거죠. 아무리 떨치려 해도 잊어버리려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불신, 부정의 잔상이 남아 있습니다. 이것이 더 큰 좌절과 실패의 굴레로 빠져들게 합니다. 이 상태에는 가슴 깊은 곳에 해결할 수 없는 쓴뿌리들이 자주 나오게 돼요. 건강한 자아를 해치고 건강한 신앙의 열매를 맺는 것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들교회, 우리 믿음의 동역자 여러분. 실패의 잔상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아시나요? 은혜의 흔적이 있던 사람이 인생의 실패의 사건으로 자신 스스로를 깊은 절망과 죄책감의 웅덩이의 수렁으로 끌어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동굴에 들어가고, 내가 만든 감옥에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곳에 들어가면 나올 길이 없습니다.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 빠져들면 예배에 앉아 있지만 말씀이 들리지 않아요. 예수님은 더 이상 나랑 상관없는 분이라 여겨지고 내 인생을 세상에 놓아버려요. 그냥 막 사는 거죠.
그 안에 죄는 지속성으로 반복되어집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하지만, 그것을 향해 일어날 힘조차 없고, 나아가 하나님께 회개하지도 못하는 또 다른 죄책감에 큰 무게를 내 어깨에 짊어지게 되어 거룩한 성도로 살아가는 것도 힘들고, 거룩한 도전조차도 이제는 귀찮아집니다. 그 자리를 회피하고 도망하게 되는 겁니다.
오늘 요한복음 21장 3절에 베드로에게도 실패자의 모습이 역력하게 보입니다. 3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우리 사랑하는 우리들교회 성도 여러분 제가 질문 하나 할까요? 지금 베드로의 모습이 어떨까요? 어떻습니까? 힘차 보이세요? 주를 위한 사명감이 투철해 보입니까? 고기를 잡는 일에 몰두하고 있는 그 모습이 어때요? 뭔가 역동하는 모습이 있습니까?그렇지 않죠. 어깨는 축 쳐져 있고 의욕도 상실이 되어 있고, 자포자기 심정으로 겨우겨우 고기를 잡는 모습이 보여집니다. 자신의 옛 모습으로 돌아간 베드로의 모습이지만 사실은 예전보다 더 못한 삶이에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그래도 어부 일일지라도 자신의 일에 밤이 새도록 수고하고 열심히는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이 이상할 수 있으나 어설프게 만난 예수님 때문에 어설프게 들은 말씀 때문에 자신의 삶에 개입되는 이 순간에 이상하게도 그간 자주했던 어부의 일조차도 흥미가 없는 겁니다. 물고기를 잡는데도 불구하고 의지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 일 안에 의미를 찾아볼 수 없다는 거죠. 불현듯 떠오르는 그 생각만 나오는 거예요.예수님과 함께했던 추억들 은혜 받았던 그 생각들 감동들, 감격들, 그런데 이 생각이 나면 날수록 자기의 삶의 현장이 보여지는 겁니다. 그 실패하고 무너진 삶의 현장에 보여지는 베드로의 생각은 복잡합니다. 생각도 못잡하고 심정도 어려워지는 겁니다. 그 이유는 베드로를 부르실 때에 보면 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불러주셨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인생의 궤도가 벗어난 이 베드로는 죄책과 실패의 잔상을 지니고, 다시 고기를 잡아도 잡는 것 같지 않는 만족하지 못하고, 더 큰 공허와 힘든 가운데 무너져 있는 모습입니다.
성도님, 이런 베드로가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일까요? 그것은 중간 궤도 수정입니다. 중간 궤도 수정이 필요합니다. 그의 인생을 다시 재조정하는 게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본래의 부르심을 쫓아가는 그 수정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회복일 수도 있고 치유의 삶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것은 다시 이 궤도를 수정하는 게 필요합니다.
베드로에게 이런 필요가 절박할 때, 절실할 때에 그때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이 그때 찾아오신다는 겁니다. 실패의 잔상을 가지고 모든 것이 어그러지고, 무너지고, 깨져진 그 순간에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사랑하는 우리들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자리가 그런 자리라면 오늘 이 예배 가운데 주님이 찾아오시기를 주님의 축복합니다. 그 때에 찾아오십니다. 아무것도 알 수 없고, 내 스스로의 죄책감 가운데 벗어날 수 없는 그때에 방법이 없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지만. 내게는 솟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는 그때 동서남북이 다 막혀져 있는 그때 예수님이 찾아오신다는 겁니다.
요한복음 21장에 어떻게 찾아오십니까? 기가 막히게 찾아오시는데 누가복음의 5장에 처음에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만났던 장면으로 찾아오십니다.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니 잡은 것이 없지만은 요한복음 21장에 그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는 상황이 비슷합니다.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던 그 말씀의 능력을 경험했던 그 순간, 그리고 지금 실패하고 무너진 그곳에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말씀하시는 예수님. 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힘이 많아 기쁨으로 그물이 찢어지는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았던 그 처음의 감격, 그러나 이제는 그 감격조차도 무겁게 느껴지는 그 순간에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그 장면을 회상시켜 주시는 겁니다.
게네사렛 호숫가의 그 만남, 그 장면이 예수님을 알지 못했으면 그래도 살아냈을 수 있었는데 예수님 때문에 더 힘들어진 그의 삶 속에 오늘 다시 나타나 주시는 겁니다. 물 위를 걸었던 그 기적의 은혜의 장면도 기억나게 하시죠. 주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실 때에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가는 그 기적 속에 이제는 물 위를 걸어갈 수 없는 자기 죄인된 모습을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려가는 그 모습이 크로스 오버 되어 일어납니다. 물 위를 걸었던 그 믿음, 그 기적, 그 은혜, 회복시키시는 예수님이시죠.
우리 우리들교회 믿음의 동역자 여러분.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그 장면 속에 예수님께서 그 요한의 아들 시몬에게 물어보신 게 있었습니다. 은혜의 흔적인 물고기를 다 나누어 먹은 후에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에게 이렇게 물어보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질문은 인생의 궤도가 잘 갔을 때 고백했던 베드로의 고백이죠. '주여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 하지 않겠나이다.' 자기 확신이 있었습니다. 자기 믿음이 있었습니다. 늘 다른 제자들보다 더 주님을 사랑한다고 앞서 말했죠.
그러나 지금은 실패한 베드로에게는 지금 그것을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없는 겁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 앞에 대답합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한 줄 주님께서 하시나이다.' 그러나 이 대답은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은혜의 기억은 있지만 자기의 실패한 자신의 삶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더 매어 있기 때문에 이 고백하는 게 너무 힘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두 번째 예수님께서 물어보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이 베드로는 주저하며 대답합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한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자신의 자기 자신의 확신에 찬 대답이었을까요? 자신 만만한 예전의 대답이었을까요? 여전히 실패 잔상 속에 죄책감 가운데 빠져있는 고백입니다.
베드로는 이제는 철저하게 자기가 죄됨을 깨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겸손해지고 싶어서 겸손해지는 게 아니고, 자기의 삶을 보니 죄인인 것이 철저히 깨달아져서 겸손해 보일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은혜만을 구하는 고백입니다.'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Do you truly love me?' 너 정말로 나 사랑하니?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Yes, Lord. You know' 당신이 아십니다. 이 고백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실패도 아시고 계시고, 베드로의 연약함도 아시고 계셨다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의 인생을 다 알고 계셨다는 겁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고백 안에 이제 주님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사랑으로 내가 그 사랑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사랑이 채워져야, 당신의 말씀이 내게 있어야, 내가 그 사랑을 고백할 수 있고, 그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라는 철저하고 가난하고 겸비하고 겸손한 마음입니다.
세 번째 질문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내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더 진지하게 근심하며 대답합니다. 내가 이 고백을 드릴 수 있을까? 내 상황 속에 이 고백을 드린 대로 내가 살아낼 수 있을까? 살 수 있을까? 그러나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한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베드로의 고백은 철저하게 주님만을 바라보는 고백입니다. 자신의 실패된 인생보다 실패된 인생이 있기 때문에 주님을 붙잡으려는 삶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더욱더 주님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그 고백입니다. 내 사랑 고백조차도 당신 손에 있습니다. 내 삶조차도 당신 안에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실패의 잔상도 당신 안에 있습니다.주님 손 안에 모든 것이 있음을 고백하는 이 베드로의 모습입니다. 나는 당신의 사랑이 내 안에 있을 때, 다시 말하면 주님이 내 안에 있을 때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 고백입니다.
그 베드로의 고백이 인생의 궤도에서 이탈했을 때에 말씀과 주님이 찾아오셔서 다시 일을 말씀 가운데 세워주시는데 처음의 삶이 아니라 인생이 다 망가지고 깨어지고 넘어지고 지쳐 쓰러져 있는 그물을 열심히 물고기 잡으려고 일을 해도 의미가 없는 거예요. 뭘 먹어도 무슨 맛인지 모르겠고, 하늘을 봐도 먹먹하고 길을 걸어도 왜 걷는지도 모르겠고, 누구를 만나도 그들의 웃음소리가 내 귀에 들리지 않고 공허한 외침 속에 흑암이 깊은 것처럼 지극 같은 인생을 경험할 때 찾아오시는 예수님.
우리 우리들교회 성도 여러분. 제가 이렇게 말씀을 마치고 내려가면 여태까지 오신 목사님들이랑 완전 다르다, 이제 나올 때가 됐는데 베드로의 이야기가 아니고 저희 강단에 서 있는 저 사람의 인생의 간증이 나올 때가 됐는데,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간증도 소중하지만 사실은 말씀이 더 귀합니다. 베드로의 이 이야기를 들어야 제가 어떤 말씀 속에 인생의 궤도가 수정되는지 알 수 있잖아요. 이제 그 말씀이 이성관이라는 목사에게 어떻게 임했는지 제 간증을 잠깐 나누겠습니다.
이 베드로의 모습은 사실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모태 신앙으로 목회자의 자녀로 꽤나 괜찮은 반듯한 삶을 살았습니다.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학창시절에 기도했고, 또 학생회 회장 청년부 회장 다 하면서 누구보다 신앙심이 투철했고 뛰어났습니다. 궤도가 상당히 빨랐어요. 빠르게 속도감 있게 유학도 빨리 가고, 공부도 빨리 하게 되고, 그리고 35살의 적지 않은 교회에 약 1천여 명이 되는 교회 담임 목사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그 교회는 저희 아버지께서 섬기셨던 교회였습니다. 개척하셨습니다. 저희 교회가 이제 올해 39년째가 되는데요. 저희 아버지 원로 목사님은 참 바르고 강직하신 분이었어요. 옥한흠 목사님 같은 분이셨습니다. 폐의 결핵을 앓으셔서 한쪽 폐가 없으시고 반쪽 폐를 가지고 고아로 자라시다가 지금 괜찮습니다. 이 얘기를 마음껏 해도요. 지금 천국에 가셨어요.
12년 동안 동굴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들어갔다가 하나님이 살려주셔서 신유의 은사를 받고 내려오셔서 목회를 시작했는데 총신대학원 수석 졸업입니다. 엘리트 중에 앨리트예요. 지금 아마 목회 안 하셨으면 서울대 법대 가서 아마 메스컴에 탈 수 있는 분입니다. 좋게든 나쁘게든 너무나 엘리트셨어요. 목회도 너무나 잘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저희 교인들은 오해해요. 저희 아버지가 불렀다고 오해하지만 제가 기도할 때에 그 시민교회로 가라고 하나님 말씀하셔서 2주 만에 결정하고 짐을 다 싸고 캘리포니아 박사하기를 포기하고 그 교회를 시민교회를 갔습니다. 저에게는 가장 안 좋은 선택이 시민교회를 가는 거였어요.
그런데 가보니 세습 목사였습니다. 저 때문에 상한 사람들도 있고 불편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우는 거 밖에 할 게 없었습니다. 원형 탈모도 생기고 울고, 새벽 기도가 끝날 때 다시 미국으로 가고 싶은 생각으로 그렇게 유약하고 연약한 저에게 그 주신 사명이 너무 무거웠습니다. 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실수하면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꼭 성공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반듯해야 된다, 완벽을 추구하는 목회를 생존적으로 했습니다. 나의 열심으로 나의 노력으로 그러다가 3년이 지난 후에 아버지가 갑자기 소천하셨습니다. 그때의 나이 38살 교회에 큰 흔들림이 있었습니다. 저 젊은 목사가 이 교회를 감당이 될 것인가? 그래서 저는 어금니를 깨물고 그 강단을 지키며 서 있었습니다. 그때 공황장애인 것 같습니다. 마음껏 감정도 표출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지만 그걸 당연히 져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그 지는 시간에 공황장애를 겪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한 3년쯤 지났는데 척수염이 와서 오른쪽 반신마비가 왔습니다. 지금은 운동 신경이 회복이 됐지만 감각이 회복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머리카락을 만져도 이게 질감이 뭔지 느껴지지가 않아요. 너무 힘들면 또 쩔뚝쩔뚝 거리기도 하고 그 일년은 제 아내가 진통제를 제 엉덩이에 놔주면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최선으로 버틸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재작년에 몸이 힘들어서 병원을 갔는데 쉬려고 갔는데 초음파를 찍어보니 간경화가 왔습니다.최선을 다해서 했는데 열심을 다해서 했는데 깊은 절망과 불평과 원망의 웅덩이는 더 깊어졌고 내가 만든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작년에 제가 아파서 5개월을 좀 양해를 구해서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제는 목회의 모든 의욕도 상실되었습니다. 인생의 궤도가 멀어져도 많이 멀어졌습니다.
그때 한 달 정도 섬에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가족과 함께요. 배가 끊깁니다. 파도가 많이 치면.. 근데 그렇게 파도가 많이 치는 날, 방파제 끝에 서 있었어요. 왜 서있었냐하면 그냥 너울성 파도가 와서 나를 휩쓸어 갔으면 좋겠다., 그냥 자살하면 지옥 가니까. 하나님 영광 가리우니까. 그냥 파도가 와서 나를 끌고 가면 좋겠다. 너무 힘들 때는 저 자식도 안 보입니다. 너무 괴로울 때는 이 땅에 살고 싶은 생각이 안 듭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자꾸만 도망치고 회피하고 싶은 그 순간 속에 로뎀 나무에 엘리야가 죽기를 간구하는 것이 내가 알지도 못하게 얼마나 설교를 했는지가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수많이 그 낙담과 좌절에 설교를 했지만 이거였구나 죽기를 간구했던 게 이거였구나. 그 파도가 치는 그 저녁에 방파제에 서있는 그 바닷물을 맞고 서 있는 죄 속에 옆에 이 등대 하나가 움직였습니다. 근데 그 등대를 보는 순간 성령님의 강력한 메시지가 저한테 일어났습니다. 하시는 말씀이 뭐였냐면 '너는 빛이 아니다. 왜 빛이 되려 했느냐?'라는 질문이었어요. 정작 보니 제가 서 있는 것은 칠흙같은 어둠이었습니다. 파도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빛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열심히 하고 뭔가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 현 주소는 철저하게 주님 밖에 없고 철저하게 죄인된 제 모습만 보여지기 시작했어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만이 빛이시구나 주님만이 빛이시구나.
그런 상황 속에 저희 집에 제 아내의 지인으로부터 이제 정기적으로 큐티인 책을 저희 집에 전달 받았거든요. 매달 낙담이 될 때에는 목회자도 말씀 안 봅니다. 제가 병원에 있을 때는요. 그때 한참 에스겔 말씀이었는데요. 이거부터 얘기하고 그다음에 얘기하겠습니다.
쇼파 옆에 있는 책상 위에 그 큐티인이 있는데 말씀이 먼저 보이지 않고 묵상 간증이 먼저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어째 어떻게 이런 일이? 도대체 이 교회는 실명을 걸고 이런 철저한 죄의 고백이 있을 수 있을까?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그 묵상 간증을 통해서 옆에 있는 말씀이 보여지기 시작했는데 저 미국 유학 시절 때에 10년의 신학을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경험되지 않는 그 신앙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목회자 자녀로 반듯하게 살면서 이 체면과 의 속에 자랐던 제가 다중인격이었어요. 집에서 다르고, 교회에서 다르고, 학교에서 다르고 혹시 여기 그런 분들 계십니까? 집에서는 되게 폭력적이고 교회에서는 가장 거룩하고 일터에서는 가장 술 잘 먹고, 다중인격..
제 아내랑 저랑 만난 지 3일 만에 결혼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안 놀라세요? 저는 남자가 아니면 되고 핸디캡이 없으면 된다고 그래서 작정했거든요. 신혼여행 갔다 오니까 100일 안에 다 끝나더라고요. 하나님이 하라시니까.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닙니다. 괜히 했습니다. 사랑하기로 작정해서 결혼했습니다. 사랑은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저 사람의 어떤 상황이 바뀌더라도 결혼은 작정이다. 그런데 그렇게 결혼을 했는데 예쁘게 곱게 자란 제 아내와 개척교회 목사로 자란 저와 맞았을까요.? 안 맞죠. 사모가 되려면 사모는 또 배운 것도 있고 제 목회를 위해서 그러면 이것이 통했을까요? 안 통하죠. 가정에 문제가 일어나는데 얘기할 때도 없고 싸움은 계속되고..
그러다가 제 아내가 한국에 먼저 들어갈 일이 있었어요. 제가 목사 안수 받기 전에였거든요. 워싱턴 DC 그 공항에서 첫 아이를 데리고 저를 향해서 우는 거예요. 저는 이해가 안 됐어요. 잘해주지도 않는 나를 위해서 운다. 사실은 그때 아내를 빨리 보내고 싶었습니다. 우리 남자분들 공감이 되실 텐데.. 그런데 그 집으로 돌아오는 그 시간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못되게 했는데 왜 나를 위해서 끝까지 울지? 그리고 소파에 앉아서 현관문이 열린 채 밤이 지났습니다. 하루가 지났어요.
그때 아까 다중인격인 저의 모습 속에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근데 그걸 찾지를 못하니까 그때 사실은 죽고 싶은 위기가 그때 있었습니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목사가 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리고 여기저기 다른 삶에서 내 모습을 보여내는 것도 하면 안 된다. 그래서 그때 하나님 앞에 죽여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죽이셨습니다. 어떻게 죽이셨냐면 육적인 죽음이 아니라 저를 기도케 하셨는데 저의 이 실상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완악하고 교만하고 때로는 음란하고 잘못된 것이 많은지 이사야 6장에 나오는 것처럼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도다.
기도할 수 있는 제목이 없었습니다. 무엇인가 이 땅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망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들부들 두려움 속에 떠는 그 순간에 그 하나하나 회개가 터져 나올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그 즉시 치유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치유는 회개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덮는다고 덮어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고백이 있을 때 보혈의 능력이 그곳에 임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때 큐티인을 보면서 실패하고 더 망가진 저에게 게네사렛 호숫가에 그 장면이 떠오르게 하신 거예요. 이 말씀을 통해서 그때에 베풀어주셨던 그때의 은혜 하나님 내가 어디든지 다 가겠습니다. 하나님 무엇을 시키든지 다 하겠습니다. 그때는 자신만만해서 자기 확신 가운데 있지만 이제는 무너진 상황 속에 그때를 회상시키셔서 그 일을 감당케 하시는 겁니다.
그때 이 큐티책을 보면서 그러나 사람이 얼마나 온전치 못하냐면요. 병원에 입원했는데요. 아까 그 다음의 이야기입니다. 에스겔 큐티 하는데 제가 잘못한 게 없는데 계속 회개하래요. 근데 아픈 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의 회개의 말씀이 너무 억울해서요. 큐티 책을 던졌습니다. 안 봐! 그럼 그날 더 아프더라고요. 그러면 슬금슬금 가서 그 말씀 앞에 또 죄를 들여다보고, 또 눈물로 기도하고, 이 과정 속에 과정 속에서 제가 깨달은 것이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살아야 한다는 진리입니다. 믿으십니까?
저는 목욕탕 큐티 목회 세미나가 뭔지 몰라요. THINK 양육도 지난주에 처음 받았습니다. 저 우리들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에 하나님이 세워주신 이유 중에 하나는 이 큐티라는 거 이것은 우리가 보고 말아야 될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매일매일마다 말씀 앞에 사로잡히지 않으면 우리는 인생의 궤도가 어긋난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에에는 회복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저도 사람들을 찾아갔지만 돌아오는 길이 더 공허하고 넋두리 하소연 해봤자 소용이 없더라고요.그래서 제 마음에 확신이 하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 이제는 말씀 보는 사람 되기를 원합니다. 목회자가 아닙니다. 그냥 말씀 앞에 서 있는 단독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이 좋은 것을 저희 시민교회 교우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거예요. 그 정교인 모두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 말씀은 반드시 보아야 한다 매일매일 봐야 한다는 생각이 확신이 들었습니다.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큐티책을 980권을 구매했습니다. 지금부터 저희 교회는 2년째 전교인 큐티를 하고 있습니다.
자, 우리들교회 성도 여러분. 이것은 제 목회의 성공의 비전이 아닙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제가 큰 교회를 꿈꾸는 게 아닙니다. 제 삶에서 죽고 싶은 그때에 이 말씀 없었으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붙잡았던 그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주의 백성들이 보아야 한다, 반드시 이 말씀 때문에 살아야 한다, 일어나야 한다, 다시 실패의 잔상과 감옥에서 나와야 한다, 이 절박한 간절한 소원이 제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사명을 가지고 오늘 여기에 섰습니다. 말씀을 잘 전하고, 못 전하고, 이건 제 영역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 순간에 주시는 것은 내 말씀은 영원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는 겁니다. 능력이 있다는 겁니다. 사람을 살린다는 겁니다. 저도 살아났던 것처럼 제 힘으로 살아가다가 무너진 그곳에서 아내도 모르고, 자식도 모르고, 때로는 교회 공동체도 모르는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저를 살린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 앞에 엎드려 깨어지는 시간 되길 축복합니다. 제가 죽는 날에., 죽는 그 날에 분명히 제 옆에는 큐티인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날의 큐티의 본문이 제 인생을 향한 주님의 평가이고 주님의 결론이 될 것입니다. 혹시 게으르고 악한 종아 나오면..슬피우며 이를 갊이라 이런거 나오면 그러면 천국에서라도 그 천국 입성하는 그 앞에서라도 겸손하게 주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이 말씀 밖에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오늘이 마지막 설교와 같이 그렇게 왔습니다. 그런데 김양재 목사님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그 눈물의 의미를 볼 때마다 이거였습니다. 이 원리에요. 큐티인의 원리가 이겁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살고 싶어서 몸부림쳐서 이 말씀을 안 보면 안 되니까, 이 말씀이 없으면 그날 살 수가 없으니까, 이 말씀 없으면 내 고난의 사건을 해석할 수 없으니까, 이 말씀 없으면 늘 우리가 마귀에게 지고 사니까, 후회밖에 없으니까, 실패의 잔상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으로 찾아오신 겁니다.
말씀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그 말씀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의지하는 사람은 그의 말씀을 보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제가 이제 준비된 간증이고요. 오늘 아침에 제 아내랑 오면서 큐티의 말씀을 같이 나눴거든요. 야곱의 모든 가족이 애굽으로 내려갈 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라는 말씀인데 저희 처형 아내의 언니가 미국에서 지금 이 방송을 듣고 있을 겁니다. 처제도 그렇고, 처남도 헝가리에서 듣고, 하여튼 전 세계적으로 다 나가 있어요. 저희 누님 집사도 밴쿠버에서 듣고, 그런데 그들의 삶이 지금 많이 힘들어 보여요
저는 말씀을 나누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 저를 세우신 가장 큰 것은 가족 구원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이 너무 신실하시고 정확하시다. 오늘 제가 허세가 생길까 봐 '아니다. 내가 너를 보낸 거 우리들교회 말씀의 은혜를 나누지만 오늘 주신 말씀이 실제가 되는 것을 나눠라. 그날의 말씀이 삶에 실제로 녹아내린다는 것을 전해라. 내 말씀은 살아있다고 원동력이 있다고 그 누구도 살릴 수 있다고 그것만 전하면 너의 역할은 다 됐다.'
사랑하는 우리 우리들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축복받은 주의 백성인 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교회 안에 있는 것, 그러나 이 땅의 모든 열방에 있는 민중에 있는 주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매일 보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함께 꿈꾸고 기도하고 또 실천하고 하나님이 회개하라면 회개하고, 예수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가 감격이 되면 나누고, 그럴 때 믿는 무리가 많아지고 말씀이 흥황케 되는 이 구원의 역사 구속사의 역사가 흘러가기를 주님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하실 겁니다. 하나님의 그 말씀을 통해 이루어 가실 겁니다.
그래서 저희 시민교회도 기도해 주십시오.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들이 하나님 이 생수와 같은 말씀 앞에 서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힘써 전하고 한 사람의 큐티인을 통해서 제가 변했을 때 공동체가 변한 것처럼 마음껏 전하십시오. 이건 사명입니다. 다시 우리에게 주신 제 사명입니다. 너는 살아 남는 어부가 되어 어린 양을 먹이라. 그래서 우리는 일어나 어디든지 어린 양을 먹이고 우리 천국에서 기쁨으로 만납시다.
[목장 기도 제목]
김은실 목자님
1.내 힘으로 할 수 없는 환경에서 말씀의궤도 가운데 주님의 빛을 따라 중심 잡고 한 걸음씩 순종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2. 죽을 것 같은 상황 속에 있는 지체를 기억해주시고, 불쌍히 여겨주셔서 이 고난이 고난으로 끝나지 않고 주님을 만나 새 인생 살아가게 해주세요.
3.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모든 아픈 부위가 속히 회복되고 사고처리도 알맞은 때 잘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4. 계속 있을 교회 여름 사역에 영육으로 지치지 않도록 체력과 물질을 채워 주시고, 부르신곳에서 감사함으로 순종하게 해주세요.
5.목장 식구들의 기도제목을 기억해주시고, 또, 모두 믿음의 배우자를 위해 자신을 먼저 보고 분별의 눈을 주셔서 서로 알아보고 신교제, 신결혼 할 수 있도록 위대한 결혼의 때를 소망하는 맘으로 기다리게 해주세요.
6.셋째언니와 형부가 알맞은 때에 꼭 목회자 세미나 꼭 참여할 수 있게 해주세요.
김자영 부목자님
1. 업무에 대해 두려움 갖지 않기를
2. 가족 모두 건강하기를
홍선미
1. 매일 말씀보는 생활 루틴화하도록!
2. 주님의 동행하심을 믿고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수있도록!
3. 절제할수있는 삶!!!
김지아
1. 자기 열심, 자기 확신, 자기 의 더 버리고 집착/중독/완고함/고집의 죄 고백만 하기
2. 내가 빛이 되려하지 말고 빛이신 말씀만 따라가며 주님 사랑한다고 고백하기
3. 부모님 한국여정 지켜주시고, 인생의 실패 가운데 있는 그 한 영혼에게 복음 전하고 오는 통로 되시길
4. 죽으려고 작정한 언니 살려주시는 은혜가 있길, 고난이 해석되고 말씀의 기적 경험하여 다시 살아나길, 예수의 보혈이 치유하시어 다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길
5. 배우자님, 이번 한 주도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노니 중간 궤도 수정 잘 하시고 결혼하기로 작정하셔서 내년 이 시기에 위대한 결혼
박수지
1. 아이들에 대한 애통한 마음을 주시고, 아이들 탓만 하는게 아니라 낮은 자세로 섬길 수 있는 마음 주시길
2. 즐거운 마음으로 출근 할 수 있길
3. 매일큐티하며 말씀으로 인도받는 삶 살 수 있길
안주현
1. 짱아를 잃고 난 후 하나님을 더 이상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살 소망을 잃고 죽음만 생각하고 사는 저의 궤도를 수정해주시고 제가 제 생명을 놓지 않게 해주세요
2. 일주일에 한두번은 회사도 못 가고 있는데 일상 회복하고 7/21 소프트런칭까지 잘 버티게 해주세요
3. 혼자 남은 자두의 건강과 행복 지켜주시고 엄마 아빠 건강과 구원을 책임져주세요
4. 아무도 없는 매일을 혼자 울고 있는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신교제의 축복 허락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