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501 네 남편을 데려오라
요한복음 4:3-16
베델교회 김한요 목사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라고 하는 소설이 있죠. 한 노인이 낚시하기 위해서, 그 한 마리 잡기 위해서 그 고생을 하자나요. 그래서 한 팔십 며칠 지나죠. 84일인가요? 한 마리도 안 잡히다가 드디어 잡았어요. 그래가지고 잡아가지고 돌아오는데 상어가 달라붙은 거죠. 그래서 그 잡은 생선을 지키려고 사투를 벌이지 않습니까? 그러는 가운데 해변까지 왔는데 자기가 팔십 며칠 만에 겨우 잡은 그 생선을 보니까 뼈만 남은 거예요. 상어가 다 뜯어먹은 거죠. 참 허무한 인생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스스로 자결한 게 아닌가, 인생이 이렇게 허망한 것인가를 보여준 게 아닌가 싶어요. 이거 물고기 한 마리만 잡으면 될 텐데, 이것만 잡으면 내가 대박날 텐데 이것만 잡으면 내 인생은 앞으로 아무 문제없이 행복할 텐데. 그래서 그 한 마리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들어 올려보니까 뼈만 남아 있는 허무한 인생, 노인과 바다. 소설의 이야기지만 결단코 소설에만 있는 이야기가 아닌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고, 특별히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여인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뒷부분까지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이 여인은 다섯 명의 남편이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 사는 남자는 누군지도 모르겠어요. 이러한 이혼의 경력이 있었던 여인. 요한 칼빈이나 루터의 주석에 보면 2천년 전 여인의 신분을 생각해보면 가장 불쌍한 여인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요즘은 좀 분위기가 달라졌지만 우리가 소위 '결혼에 실패를 했다.' 이런 표현을 쓰죠. '이혼을 했다.' 이런 얘기를 실은 잘 얘기를 못하자나요. 쉬쉬하자나요. 또 자랑할 건 아니니까 당연하죠. 그런데 이제는 '나 이혼했습니다.' 얘기를 별로 그렇게 쉬쉬할 이유도 없지만, 또 그렇다고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하는 시대가 되지않았나 싶어요. 그래서 지금 이런 시대에 다섯 남편과 이혼한 경력이 있는 이 여인을 대하는 모습은 조금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일이에요. 정말로 불쌍한 여인이었다. 한 번 이혼해도 쉬쉬할 것인데 다섯 번씩이나 이혼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누구인지 모르지만 아무하고나 산다. 동거하고 있다. 20세기 되서야, 1918년에 되서야 영국도 여성이 투표 참여권을 얻었습니다. 1872년에 미국 대통령 선거에 수잔 앤서니 여사가 몰래 투표를 했어요. 그래서 불법 투표라고 해서 체포되어서 모든 재판 과정을 겪어서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주십시오.' 그래서 결국1920년, 1920년에 미국도 여성이 처음으로 투표에 참여합니다. 놀래지도 않으시군요. 그러니까 겨우 백 년뿐이 안 됐어요. 여성이 투표권을 얻은 게 백 년뿐이 안 됐다고요. 그러니 그거에 스무 번을 더 들어가면 이 천년으로 봤을 때 여성의 신분과 지위를 생각해볼 때 다섯 남편과 이혼을 했다? 이거는 가장 그 당시 사회적인 신분으로 볼 때 불쌍한 여인이었다고 이야기하는 루터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여인이 물 길러 제6시에 나왔다고 성경이 이야기하는데 제6시는 지금으로 얘기하면 12시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낮 12시는 뜨거워서 나갈 수가 없고 사람들이 거리에 잘 다니에 않는 시간이라고 해요. 그러면 왜 12시에 나갔을까요? 왜요? 사람 만나기 싫은 거죠. 대인기피증이 있었어요. 그냥 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집니다. 아마 요즘같이 마스크 쓰고 다니는 시대였으면 이 여인도 조금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다 그냥 얼굴 가리고 다니니까 아예 차라리 더 편했을 지 몰라요. 그런데 나가는 순간에 여기서 저기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을 거예요. 어이구 저거 다섯 남자하고 이혼한 여자, 그리고 아무나 하고 사는 여자. 이런 시선을 안 느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아예 사람이 다니지 않는 정오, 낮, 뙤약볕 그때 물 길러 나가는데 상당히 상징적인 표현같은데 자기의 인생을 대변하는 빈 물 항아리를 들고 나갑니다. 아무리 물을 길러도 다시 메마를 수밖에 없는 빈 물 항아리를 들고 우물에 나가는 이 여인이 등장합니다. 누구하고 대화하기도 싫고, 말 섞기도 싫고, 누구 만나기도 싫고, 친구들 만나자고 전화 왔는데 거기 나가기 싫어요. 실패해서 이민까지 와서 미국에 사는 교포들이 가끔씩 만나게 돼요. 예배 드리고 나서 바로 나갑니다. 새가족 환영하는데 오시라 그러는데 잘 안 와요. 왜냐하면 만나면 자기의 과거를 이야기를 해야 되니까. 어디서 왔다는 얘기를 해야 되니까. 그래서 우리 새가족 팀에서는 금기 사항이 있어요. '물어보지 마라. 특별히 전공이 뭔 지를 물어보지 마라. 대학을 어디 나왔는지 물어보지 마라.' 그래요. 어떤 분들은 서슴없이 말을 안 해도, 질문 안 해도 얘기하는 분이 있어요. 자기가 기계를 전공했다든지, 전기공학을 했다든지. 그런데 절대로 전공 얘기를 안 하는 분이 있습니다. 영문학 전공한 사람은 절대로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영어 해보라고 할까봐 절대로 얘기를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과거를 들추기가 싫은 사람들이 참 많이 만나게 돼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내 얘기 막 하고 싶으세요? 그래도 스펙이 좀 있으신가 보죠. 그런데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 뜨거운 실패의 잔을 마셨던 사람들은 자기 얘기하기 싫어합니다. 실패한 얘기하기 싫어요. 심지어 대학 실패한 얘기도 하기 싫어요. 그런데 이 여인이 그런 의미에서는 대인기피증에, 자기 얘기하기 싫고, 사람과 섞이기 싫어하고, 교제하기 싫어하고, 몰래 왔다가 몰래 가고, 예배도 뒷자리에 앉아서 살짝 예배 드렸다가 살짝 가는 살살이. 살살이 성도라 그러는데 살짝 왔다 살짝 가는 성도, 그런 정도 수준이었을 것 같아요. 다섯 번 이혼을 하고 지금 아무 남자하고 산다. 나이를 한 번 계산을 해봤어요. 한 50대, 60대 정도 되지 않았을까. 아무리 초 스피드로 다섯 번 결혼했다 하더라도 그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왜 이렇게 여러 번 반복했을까요? 이런 생각도 해봐요. 한 번 실패했으면 됐지 뭐 또 그 실패의 길을 또 반복할까. 참 가슴이 아픕니다. 지난주 김양재 목사님 설교를 제가 들었거든요. 그러면서 그때 게놈 얘기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거는 독일식 발음이자나요. 미국에서는 지놈이라 그래요. 그래서 내가 '지놈인데.' 그랬더니 옆에서 하는 말이 '게놈이나 지놈이나 그놈이다.' 맞아요. 그 게놈에 유전 DNA가 다 나오는데 UCLA에서 그 나온 연구 결과에 외로움이라고 부르는 DNA가 발견된 거예요. 외로움이라고 하는 DNA가 있대요. 그것이 병을 유발하고, 그것이 우울증 유발해서 사람을 기피하게 되고 말하기 싫어하고 피해다니는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한 50대라고 생각해봐도 이 여인은 얼핏 봐도 굉장히 나이 든 할머니 같이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치매 내지는 고혈압, 심혈관 질병, 그리고 늘 독감이 떨어지지 아니하는 여인이었을 것이고, 이와 같은 시대에는 반드시 코로나도 걸렸을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맞습니다. 이런 여인이 오늘 본문에 집중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여인, 간과해도 될 법한 여인, 이름도 없는 여인, 무시한들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사회적으로 그냥 주위 사람의 눈총이나 혀나 차이고, 입방아에나 오를 법한 이 여인. 무시해도 될 거 같은데 이 여인을 집중하면서 오늘 본문이, 한국말 성경이 참 희안하게 번역이 됐는데 이 여인을 예수님께서 만나러 오십니다. 이게 오늘 포인트에요. 한국말 성경은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뭐 이런 번역이 다 있습니까?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이런 말 난 써 본 적이 없어요. '내가 휘문고에 와여야 하겠는지라.' 이런 말 하는 적이 없어요. 오면 오는 거고, 가면 가는 거지 뭐 이런 말을 합니까. 영어 성경에 보니까 이렇게 되어 있어요. He had to go through have to 용법, must, have to 용법. 여러분 영문법을 어떻게 배우셨어요? have to 용법, 반드시 가야 된다는 거에요. 'I have to go.', '휘문 고등학교, I have to go.', '판교, I have to go to 판교.' 판교도 나오나요 지금? 나오시구나, 저기 나오시네. 그럴 때 하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I have to go to 사마리아.' 예수님께서 하는 말이에요. '내가 반드시 사마리아 간다.' 왜요? 이 여인을 만나러 가는 거예요. 이 여인을 만나러 가는 것이죠. 그런데 사마라는 그, 이게 왜 이렇게 중요한 말이냐면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땅을 안 밟았어요. 사마리아 땅이 더럽다고 생각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나서 이 앗수르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착출해가지고 자기 나라로 데려가 버렸어요. 그리고 자기 나라 사람들을 강제로 이민을 오게 해가지고 이스라엘 여인과 섞이게 했어요. 그래서 이 사마리아 사람들은 혼혈아들이에요. 그래서 이 남쪽 유다 나라 사람들이 생각해 볼 때, 아직 멸망하지 않았던 유다 나라 사람이 생각해 볼 때 저 위에 있는 사마리아 사람들은 섞인 인간들이에요. 굉장히 그 인종 차별이 심했던 유대인들, 한국 사람 저리가라 할 정도로 인종 차별을 했던 유대인들의 그 습관을 생각할 때 사마리아 사람들을 짐승 취급했죠. 그래서 북쪽으로 통과해서 이 터키 쪽으로 충분히 빨리 갈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사마리아 땅을 밟지 아니하고 요단강을 건너서 우회해서 돌아갔다니까요. 그게 그 당시의 풍습인데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땅을 직접 들어가는 거예요. 'I had to go.', '내가 반드시 가야되겠다.' 반드시 통행하여야 한다. 'I got to go' 하고 갔다는 거예요. 자 여기에 예수님의 역사적인 첫 발걸음을 내딛게 되는 거죠. 그 누구도 가지 않으려고 했던 땅을 예수님께서 일부러 가는데, 왜 가느냐? 지금 다섯 남편하고 이혼을 했던 그 여인을 만나러 가는 거죠. 아무도 그 여인을 만나기를 원치도 않았고, 그 여인조차도 그 누구를 만나기를 원치 않았는데 예수님이 그 여인을 만나러 일부러 그 당시 터부시했던 사마리아 땅을, 예수님은 일부러 건너 가시는 것이죠.
실은 이 여인도 예수님을 우물가에서 만나서는 냉소적인 얘기를 했어요. '어떻게 유대인이 나를 만나냐. 어디 여기까지 왔습니까?' 자기가 놀라요. 어떻게 유대인이 나한테 말을 붙이냐는 거죠. 그랬더니 13절, 14절에 13 ....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 말이 하루 하루 지루하게 빈 물 항아리, 외로운 인생을 짐이 되어지고 다니는 이 여인에게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이 말을 이렇게 해석했을 거예요. '어 그럼 다시 나는 우물 길러 안 나와도 되네?' 우물 길러 안 나오면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어 사람 안 만나도 되네? 우연히 누구랑 부딪혀서 말 섞는 일 없어도 되네? 아예 사람을 안 만나고 살 수 있네? 아유 그런 물 있으면 주십시오.' 이렇게 오히려 더 자기 나름대로 생각한 거죠. '아 잘됐다.' 그런 물 있으면 저에게 달라는 거죠. 여러분에게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해주는 거에 대한 뭐가 있다 라면 여러분은 가지고 싶으십니까? 여러분은 지금 목말라 하시는 게 있나요? 오늘도 빈 항아리 들고 어쩔 수 없이 우물가에 물 길러 나오는 여러분의 모습이 오늘 이 본문과 함께 투영이 되십니까? 이거 물 길러 와도 잠시 후면 또 물 길러 와야지. 오늘 좀 많이 퍼 간다 그러면 하루 정도 버텼다가 할 수 없이 그 다음 날에 또 물 길러 나올 수밖에 없지. 반복되는 이 피로가 젖어 드는 그녀의 삶 속에 우리 주님께서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한다는 말은 그녀의 눈을 확 뜨게 할 만했습니다. 그래서 그러니까 '그럼 주세요.' 그랬어요. '나 그것 좀 주세요.' 그때 예수님께서 그럼 옛다 하고 딱 주시면 되는데 뭐라고 얘기하냐면 '니 남편 데려와라.' 아니 이게 무슨 말이에요. 그 물을 주시면 되지 왜 하필 남편을 데려오라고, 얘기도 한 적이 없는데 '니 남편 데려와라.' 예수님은 가장 그 여인이 숨기고 싶었던 그녀의 뒷 이야기, 숨은 이야기, 자기의 과거, 그거를 예수님께서 확 찔러버린 거죠. 이게 정곡이 찔렸다고 얘기합니다. 예수님의 질문 '니 남편 데려와.' 가장 숨기고 싶었고, 가리우고 싶었고, 부끄러워서 결단코 내놓고 싶지 않고, 그래서 사람 피해서 정오 뙤약볕에 물 길러 나왔는데 하필이면 만날 필요도 없는 유대인 남자가 목마르지 않는 물을 준다고 그래서 '주세요. 그런 물 있으면 나 다시 안 나와도 되겠네.'라고 했는데 '니 남편을 데려와라.'하고 자기가 숨겼던 정곡이 찔려버린 거죠. 이 정곡을 성경은 뭐라고 얘기하냐면 죄라 부릅니다. 죄. 죄가 찔려버린 거예요. 내 죄가 확 찔려버렸어요. 죄라고 부르는 것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여인이 모든 것을 다 가진 자라고 전제한다면 사람들 앞에 떳떳이 나올 수 있다고 하면 과연 이 여인은 온전할 것인가. 그러니까 내 남편이 잘 나가는 남편이에요. 어디다 내놔도 이 남편 때문에 내 얼굴이 올라가는 거예요. 그래서 오히려 사람 없는데 보다는 사람 바글바글한 데 가가지고 나 이런 남편하고 산다 하고 자랑할 만하면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되느냐는 거죠. 그런데 실은 그렇게 잘 나가는 남편하고 살아도 살다보면 비교의식 속에 은근히 찾아오는 비굴함이 있어요. 남편이 잘나가면 오히려 아내가 더 비굴해질 수 있어요. 반대도 마찬가지예요. 아내가 더 잘나가면 남편은 상대적으로 더 박탈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어요. 친구들과 모이면 남편들끼리 서로 키재기하고 누구 남편이 더 잘났냐 하고 비교하는 가운데 시기와 자존심 상함과 질투, 바로 그때 찾아오는 게 뭐죠? 바로 빈 항아리 들고 우물가에 나오는 이 여인의 외로움을 여러분도 느낀다는 것이죠. 그래도 우리는 나름대로 지금 아직 젊은이들이 많다고 생각을 하는데 스펙을 찾아서, 그렇죠? '이 사람하고만 결혼하면 내가 성공을 할 것 같다. 이 여자하고만 내가 만나면 성공했을 것 같다.' 그래서 잘 데이트하다가 break up 해버리면, 헤어지게 되면 인생 종 친 거 마냥 '이제 나는, 내 인생의 장래는 없는 거냐.' 하면서 머리 싸매고 드러눕는 경우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런데 가만히 좀 살펴보십시오. 정말 그것이 다일까요? 정말 그것을 다 가지면 우리는 모든 문제에서 해결이 될까요? 아까도 얘기한 것처럼 그 UCLA에서 발견한 그 지놈의, 게놈의 유전인자에 외로움이 있다고 했자나요. 그 외로움의 유전인자가 그런 스펙을 가지면 사라지느냐는 것이죠? 아니죠. 그 외로움은 늘 우리 가운데 있다는 것이고 그거를 성경적으로 조명한다면 그들이 발견한 DNA는 외로움이라는 유전인자라기보다 저는 그걸 죄의 유전인자라고 생각해요. 이 죄의 유전인자는 아담 때 이후로 계속해서 우리에게 전가되었다고 믿어요. 전가, Imputation. 계속해서 우리에게 전가된 것이죠. 여러분 안에 있어요. 여러분에게 그 죄의 유전인자가 있다니까요. 한 번 증명해 볼까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한 번 해볼게요. 김밥하고 떡볶이가 불티나게 팔리는데 보니까 김밥이 훨씬 잘 팔리는 거예요. 그래서 김밥이 너무 잘 팔리니까 떡볶이가 시기를 했어요. 그래가지고 저 김밥 형님을 어떻게 하든지 내가 한 번 죽여야겠다고 생각을 해가지고 김밥 형님이 퇴근해가지고 가는 집을 살펴 뒤 따라가서 봤어요. 그래가지고 '아 저기구나.' 그리고는 이제 깜깜한 밤에 이 떡볶이가 그 담을 넘었어요. 그리고 김밥 형님을 해치우고 나왔어요. 그 다음날 아침, 해가 떴어요. '야 이제는 떡볶이 세상이다. 이제는 김밥은 사라졌다. 이제 내 세상 왔다.'라고 생각하고 콧노래를 부르면서 떡볶이를 만들고 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갑자기 저쪽에서 옷깃을 탁 올리고 휘휘거리면서 오는 김밥 형님이 들어오는 거예요. 너무 놀랜 거예요. 깜짝 놀랬어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막 얼굴 표정 관리를 못하고 있는데 이 김밥 형님이 딱 들어오더니 '떡볶이야 어제 순대 형님이 돌아가셨다.' 이랬어요. 아 이게 왜 유머 감각이 떨어지지, 내가? 제 잘못이에요, 여러분 잘못이에요? 김양재 목사님도 모르시는 것 같아, 지금. 어제 담 넘어 들어가서 김밥을 죽여야 되는데 비슷한 순대 형님을 죽이고 나온 거예요. 웃으셨죠? 그러면 여러분 죄인이에요. 제가 증명해냈자나요. 죄인이에요. 어떻게 이런 살인 사건을 얘기하는데 웃을 수가 있어요. 다 죄인이에요. 그렇죠?
예수님께서 나중에 오늘 본문에 보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21 .....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21절에 말씀하고 있죠.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이게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는 걸까요? 우리는 내가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된 게 누구 때문이고 어떤 환경 때문이라는 거예요. 내가 이 집안에서 태어나서 내가 이 모양 이 꼴로 산다는 거예요. 누구처럼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내가 이러지 않을 거라는 거죠. 은수저, 금수저 물고 나왔으면 되는데 흙수저라는 거죠. 쉽게 얘기해서. 그런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그래요?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온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못 왔자나요. 유대 땅을 올 수가 없었어요. 사마리아 땅도 밟기 싫어하는 유대인들, 그 사마리아 사람들이 자기네들이 가장 거룩하고 성스럽게 생각하는 예루살렘 와서 예배 드리는 걸 가만 두겠어요? '못 들어온다.' 이러는 거죠. 그래서 사마리아는 사마리아 나름대로 자기네들의 성전을 지을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걸 두고 하는 말이 뭐냐면 '사마리아도 아니다, 예루살렘도 아니다.' 환경 탓이 아니라는 거죠. 그 어떤 것도 여러분에게 책임 전가하지 말라는 거죠. 우리는 날마다 느끼는 게 환경 문제라고 생각해요. 맨날 생각하는 것이 내 문제가 아니라 저 사람 문제라고 생각해요. 내 문제가 아니라 가장 잘못은 너를 만난 것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 됐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런데 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은 '니 남편을 데려와라. 니 죄를 데려와라. 니 문제의 핵심을 데려와라. 니가 그렇게 숨기고 싶었던, 꽁꽁 숨겨 놨던 그 죄의 문제를 가져와라.' 드러내라는 거죠. 밝히라는 거죠. 고백하라는 것이죠. 끄집어 내라는 것이죠. 아무리 가지고 있어봤자 문제 해결이 안되고 남 탓하는데 끄집어 내라는 거죠. '니 남편을 데려와라.' 여러분이 죄의 문제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절대로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런 간증들을 나누고, 또 우리 큐티 교제 그 간증문들이 실명으로 올리는 것을 보면서 저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 굉장히 쇼크였어요. 'Oh my Goodness! Oh my God! 어 이런 것도 다 얘기를 하시네.' 그런데 실은 제가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분은 드러내지만 드러낸 죄인들이고 나는 숨기고 있는 죄인이에요. 똑같아. 똑같은데 숨기고 있는 이 죄인이 더 나쁜놈이죠. 안 그런 척하는 거죠. 안 그런 척. 그래서 뭐가 잘못일까, 뭐가 더 잘못된 것일까 생각해보는데 드러내면서 결국 이 여인은 죄의 문제를 해결 받자나요. '니 남편 데려와라.' 여기서부터 해결 받기 시작하자나요. 드러내지 않고는 니 남편을 데려오라는 말을 못 듣죠. 니 죄에 대한 정곡이 질리지 않죠. 요리조리 피해다니는 거죠. 교회는 나올지 모르지만 항상 하나님의 말씀의 검이 빗나가기 시작하는 거죠. 빗나간다기보다 자기가 피하는 거죠. 물맷돌 한 방에 날라가야 되는데, 그렇죠? 다윗은 물맷돌 다섯개를 집었어요. 골리앗 장군 넘어뜨리기 위해서 다섯개를 집었는데 몇 개 썼죠? 한 개 썼어요. 한 방에 가버렸어요. 항상 맞추나요? 아니요, 못 맞춰요. 살짝 빗나갈수도 있자나요. 제가 성경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드라마 작가였으면 아슬아슬하게 만들었을 것 같아요. '네, 다윗 fadeaway jump하면서 한 방을 날렸습니다. 아슬아슬하게 골리앗 장군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두번째, 골리앗의 칼을 피하여 바위 뒤에 숨었다가 두번째 돌을 장전해서 휙휙휙 돌리다가 다시 쏘았습니다. 아뿔싸, 이번에는 목을 스치며 지나가 .... ' 이렇게 만들어야 재밌는 거 아니예요? 그런데 너무나 싱겁게 땡 하더니 한방에 날라가지고 그냥 푹 쏟아졌다니까요. 뭐죠? 말씀의, 말씀의 검이 가면 '네 남편을 데려와라.' 콱 찔려야 되는데 계속 피해 다니는 거예요. 피해 다니는 거. 말씀을 계속 한 방에 맞아야 되는데 말이죠. 바로 그 죄의 문제 니 남편을 데려오라는 말은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나뿐이 없다.'라는 주님의 말씀이죠. '그거 나한테 가져오라. 나만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만이 여러분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것이에요. 그 분 앞에 여러분의 죄의 핵심을 가지고 나오라는 거죠. 여러분 안에 도사리고 있는 외식, 왜 혈압이 오르고, 왜 소화 불량이 생기고, 왜 자꾸 뒤로 넘어지고, 왜 우울하고, 사람 만나기 싫고, 인생 다 산 사람처럼 그렇게 우울하게 살아가는 그 죄악의 핵심 덩어리를 가지고 나오라. 왜요? 예수님만이 해결할 수 있으니까. 예수님 앞에 나오면 그 문제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만왕의 왕 되신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오늘도 온 천지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분명하게 돌리시고 행성의 도는 것 하나까지도 간섭하시며 이 모든 것을 당신이 지으시고 모든 것이 당신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그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죄의 문제를 가지고 나오면 그분은 해결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Forgive us our debts, as we also forgiven our debtors.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그런데 Forgive us our sins가 아니고 Forgive us our debts 빚이라고 얘기하죠. 죄의 또 다른 이름은 빚입니다. 빚은 갚아야 하는 것입니다. 10만원 빌렸으면 10만원 갚아야 돼요. 그렇죠? 100만원 빌렸으면 100만원 갚아야 돼요. 여러분 죄를 지으셨으면 죄는 갚아야 됩니다. 그런데 죄가 얼마짜리입니까? 죄는, 죄의 삮은, 죄의 가격은 사망이라고 성경이 얘기했어요. 죽는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이 뭐 천만, 억만금을 갖다 대도 죄를 갚을 길이 없어요. 죽는 거 외에는. 그래서 갚을 길이 없는 나의 죄 문제를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 아닙니까. 이게 복음이에요. 내가 치뤄야 할, 죽음으로써 치뤄야 할 죄의 가격을, 그 빚을 예수님께서 대신, 우리는 갚을 길이 없으니까. 여러분의 의로는, 여러분의 도덕으로는, 여러분의 공부 잘 하는 실력으로는, 여러분의 스펙으로는. 멋있는 여자와 당당한 남편과 결혼하는 것으로 절대로 갚을 수 없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우리 주님은 성육신 하셔서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신 겁니다. 그거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약속을 허락해 주셨어요. 아멘이에요. 아멘. 실은 안 믿겨질 거예요. '뭐 그렇게 간단합니까?' 이렇게 얘기하시는 분이 꽤 있을 걸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영어로 이런 말이 있어요. 'Too good to be true. Too good to be true.' 실은 여러분 복음을 왜 못 믿냐 하면 엉터리라서 못 믿는 게 아니예요. 비논리적이라서 못 믿는 게 아니예요. 여기 한 번 공부하신 분들 생각해보세요. 복음이 잘못되어서 안 믿는 분 계십니까? 아니요. 너무 좋아서 못 믿는 거예요. 안 믿겨지는 거예요. 'Too good to be true.'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안 믿겨지는 거 아닙니까? 실감이 안 나는 거죠. 한 번 이런 가정을 해보세요. 예배 끝나고 나가는데 밖에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금덩어리 하나씩을 free로 막 나눠주고 있어요. 이렇게 막 금괴가 있어가지고 지나가시는 분들에게 이렇게 하나씩 막 드리고 있어요. 받아 가시겠어요? 받아가나? 막 내가 '이게 얼마예요?', '그냥 가져가세요. Its free.' 그럼 받아 가시겠어요? 아 그래요? 죄송합니다. 예화가 잘못됐어요. 실은 만약에 free라고 한다면 여러분께서 이럴 거예요. '에이, 이거 가짜구나.' 그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뭔가 이유가 있지. 야 저거 받아놔가지고는 나중에 보니까 뭐뭐 하라더라.' 이럴걸요? '뭔가 있지. 어떻게 free가 있을 수 있어. 야 저거 무슨 오징어 땅콩도 아니고 무슨 금괴 하나를 하나씩 free로 줘.' 그럴 걸요. 이게 뭐냐면 'Too good to be true.'예요. 이게. 너무 좋아서 믿겨지지가 않는 거예요. 실은 복음이 그런 거예요. 아니 그런 스토리의 천만 배, 억만배를 확대하시면 돼요. 그게 복음의 News예요. '구원을 얻는데 제가 할 일이 뭐가 있나요?' '아무것도 없어요. Its free. 믿기만 하면 돼요.', '에이 설마요. 그래도 내가 고행을 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금식 기도라도 좀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산에 올라가가지고 한 한 달 동안 기도만 하고 내려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 하라.'고 그러면 신나서 올라갈 걸요. 신나서 올라갈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뭔가 할 수 있다는 거, 내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거. 그리고 나서 딱 구원이라는 금괴를 하나 딱 손에 쥐면 사람들이 어떻게 될까요? '모든 것이 은혜, 은혜.' 그럴까요? 아니요. '모든 것이 나의 공, 나의 기여, 나의 힘, 나의 자랑.' 그러면서 구원받은 거 가지고 자랑하면서 그걸로 무기 삼아서 이것도 아직도 못 얻은 자들 향해서 비난하고 핍박하고 '으이구, 으이구.' 이러고 있을 걸요. 아주 교만하기 짝이 없을 걸요. 그런데 참 희안하게도 우리 인간은 'Too good to be true.'를 안 믿고 내가 알량한 나의 의와 알량한 나의 노력으로 뭔가 얻어지는 것 인양 구원을 그렇게 치부하는 경우, Underestimate,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 지 모릅니다. 정말 내 자신이 죄인인 거를 뼈저리게 깨닫는 거.
'니 남편 데리고 와.' 이거 확 한 번 찔려야 되는데 저 같은 모태신앙, 저는 모태신앙이에요. 그래서 잘 못하는 지 모르지만 제가 모태신앙이에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를 다녔어요. 그리고 저는 한 번도 교회를 빠져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이게 별거 아니죠. 그렇죠? 안 놀라니까 별거 아닌 거. 한 번도 교회를 빠져본 적이 없어요. 감사합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싫은 게 뭔지 아세요? 예수님이 나 때문에 십자가 지셨다는 이야기가 싫었어요. 아 그거는 마약 파는 놈이나 사람 죽인 살인범이나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 등쳐먹는 사기꾼들이 예수 믿게 된다면 그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셨다 그거는 make sense, 이해가 돼요. 그런데 왜 나를 위해서 그렇게 죽으셔야 되나. 저는 교회 한 번도 빠진 적이 없고, 성경 퀴즈 대회 나가면 저 1등 했어요. 놀래지 마세요. 이거는 비웃는 거예요. 틀림없어요. 비웃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저 살인마하고 똑같이 예수님이 십자가 지신 것처럼 예수님이 나를 용서하시기 위해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 지셨다는 이게 그렇게도 싫은 거예요. 옜나 그 일가족을 죽인 살인마 고재봉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일가족을 다 죽여버렸어요. 살인마 중의 살인마죠. 결국 사형당했는데 그 고재복을 안 무슨 목사님이, 지금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감옥에 가서 전도를 해가지고 이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됐어요. 그래서 간증도 감옥에서. 그리고 감옥에 들어온 사람들 누구든지 간에 전도를 해가지고 예수 믿게. 제가 그 얘기를 들으면서 아멘을 해야 되는데 아멘이 안 나오는 거예요. 내가 애 저 살인마, 일가족을 죽인 저 끔찍한 살인자가 가는 천국에 왜 내가 가야 되느냐는 거죠. 'I dont like it. I hate it.' 나 가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게 왜 그런 마음이 생겼댜 하면 제가 아직도 죄인인 걸 모르는 거예요. '니 남편을 데려와라.' 이 질문에 찔리지 않은 거예요. 싹싹 요리조리 피해 나가는 거죠. 부모님 따라서 교회 다니고 주일학교 출신이기 때문에, 성경 퀴즈 1등했기 때문에, 교회를 한 번도 빠져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러면서 나는 이 죄의 문제, 니 남편 데려오라는 이 질문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거예요. 생각해본 적이 없는 거예요. 질문은 수도 없이 받았을 텐데 요리 조리 피해 다니는 거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거예요. 옛날에 IMF 시절인데 예전에 AP 통신 그 신문을 보다가 모든 비즈니스가 다 문을 닫고 있는데 필리핀의 한 기업만 문을 열고 아주 그냥 불티같이 일어난다는 기사를 봤어요. 아니 다 비즈니스 안 되가지고 문을 닫고 있는데 왜 이 기업만 일어나는가 봤더니 이런 기사였어요. 필리핀 정부가 어떻게 하면 우리 나라의 이 관광 사업을 일으킬까 해가지고 그 내각, cabinet 멤버들 하고 대통령하고 의논을 하다가 드디어 정부의 정책이 정해진 거예요. 그래서 관광객들이 제일 우리나라 와 가지고 '아유, 싫어.'하고 떠나는 no.1 이유가 바퀴벌레 라는 거예요. 호텔방에 들어갔는데 뭐 이런 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기어다녀서 왁 해서 '다시는 이 나라 안 와.' 뭐 이런 피드백을 받은 거예요. 그래가지고 이 각료들이 연구한 게 '우리나라에 바퀴벌레를 없애면 이 필리핀에 구름 떼와 같이 관광객들이 들어올 것이다.' 이렇게 얘기한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바퀴벌레를 없앨 수 있을까 그래가지고 나온 정책이 뭔 지 아세요? 바퀴 백 마리, 바퀴벌레 백 마리 당 1불씩 주기로 한 거예요. 그게 각료 회의에서 정책으로 발표가 됐어요. 그래서 바퀴벌레 백 마리 잡아오면 바퀴벌레 백 마리 당 1불씩 주기로 했어요. 그리고 한 말이 있어요. 'Money for everything, Everything for money.' 돈이면 다 된다 생각해가지고 드디어 이 나라는 바퀴벌레 씨를 말릴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왜요? 돈을 얻기 위해서 다 잡아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여기저기에서 바퀴벌레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어요. 왜요? 백 마리에 1불이니까 천 마리면 10불, 만 마리면 100불이에요. 그렇죠? 그러면 키워내는 만큼 다 돈이자나요. 그래서 바퀴벌레 공장이 막 들어서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지금 여러분이 너무 놀래고 징그러워하고 있는데 저도 그랬어요. '우와, 뭐 이런 게 다 있냐.' 그런데 잠시 후에 제가 회개를 했어요. 왜냐하면 나도 그렇게 하겠다 라는 생각이 딱 드는 거 있죠. 나도 머리가, 내 머리가 그 정도는 할 것 같더라고요. 내가 돈을 못 벌어가지고 어떻게 하면 돈을 벌까 그랬는데 백 마리 당 1불. '어 이게 웬일이야. 그러면 천 마리면 10불, 만 마리면 100불, 십만 마리면 1000불이 아니예요. 1000불을 어디서 벌어요. 십만 마리 바퀴를 키워내면 되는 거 아니예요. 나도 그렇게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때 깨달은 거예요. '야, 내 안에 죄를 지을 수 있는 충분한 잠재력이 있구나. 나도 죄인이구나.' 이게 니 남편이에요. 내가 끄집어내야 할 내 남편, 내가 드러내야 할 내 남편. 내 안에 탐욕이 있고, 내 안에도 욕심이 있고, 내 안에도 음란이 있고, 내 안에도 명예욕이 있고, 목사로 살지만 부끄러운 게 너무 많아요. 실은 강단에 설 때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올라옵니다. 너무 부끄러워요. 내 안에 남편이 있는 거예요. 내 안에 죄 덩어리가 있는 거예요. 저도 이때 좀 뭔가 드러내야 되는데 아직 바람은 안 폈습니다. 우리 아내가 여기 눈 뜨고 있는데 그런 얘기를 어떻게 합니까?
얼마 전에 작고하신 이어령 박사님이 세례를 74세 때 받으셨어요. 그게 화제가 되어서 이제 기사화된 거를 한 번 읽어봤어요. 그런데 이 이어령 박사가 20대는 반기독교 지성을 대표해서 청문 문학비평가로 이 함석헌 옹과 함께 마주 앉아서 기독교를 아주 신랄하게 비판했던, 이 한국의 지성이라고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이런 분이 74세에 세례를 받은 거예요. 그래서 이제 이 분이 어떻게 해서 세례를 받게 됐는가에 대한 기사가 있었는데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 그 딸이 변호사로 있었어요. 그런데 그 딸이 암에 걸리죠. 32살에. 그리고 4년 후에 다시 암이 재발합니다. 그런데 이 딸이 낳은 둘째 아들이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증 판정을 받습니다. 그래서 엄마로서 자기도 투병하고 있지만 하와이에 이 자폐증 전문학교가 있어서 변호사 일을 다 그만두고 하와이로 이사를 갑니다. 그 딸을 보려고 이 이어령 박사님이 하와이에 갑니다. 그런데 아버지 식사를 준비한다고 하는 그 딸을 보는데 너무 눈이 안 보여서 설거지도 제대로 못 하는 그 딸을 보면서 가슴 아파합니다. 그러면서 그때 이 이어령 박사님이 이렇게 기도를 시작해요. 난생 처음 한 거죠. 하나님에게. '하나님 나의 사랑하는 딸 민아에게 빛을 거두시지 않는다면 남은 삶을 주님의 종으로 살겠나이다.' 이 기도를 드려요. 그러면서 이 이어령 박사님의 간증을 하면서 이때 자기는 '자기해체를 경험했다.' 이렇게 쓰고 있어요. '자기해체를 경험했다.' 문학 학자들은 말도 잘해. 우리는 자기해체를 뭐라 그러죠? 그냥 깨졌다 그러면 돼요. 우리는 깨졌다 그러는데 이 분은 자기해체래요. 그리고 나서 세례를 받아요. 세례는 무슨 뜻인가 하면 자기해제를 경험한 자들이 받는 거예요. 내가 죄인인 걸 아는 자들 그래서 그 죄 때문에 나의 이 남에게 드러내면 부끄러웠던 '니 남편을 데려와라.' 이걸 끄집어 낸 사람들이 세례를 받는 거예요. 그러면 세상은 이렇게 얘기하죠. '으이구.'하고 손가락질할 거 같은데 예수님은 '내 딸아, 내 아들아.' 그러고 안아주세요. 니 남편을 데려오는 자에게 우리 주님이 안아 주시는 것이죠. 위로해 주시는 것이죠. 정죄가 아니라 용서해 주시는 거죠. '내가 그거 때문에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주러 왔노라.' 이게 주님의 음성이에요. 그래서 탕감, paid in for. 죄의 삯은 사망인데 그 삯을 갚아 주신 것이죠 거기서 오는 자유, 높임, 내려 놓음, 그리고 자기해체라고 얘기했지만 자기가 해체됐을 때 예수 안에서 다시 회복되어지는 자존감, 거기에서 오는 자유는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죠. 그래서 10절에 ....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복음의 능력이죠. 15절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그때 주님이 하신 말씀 16절.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즉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는 예수님의 대답이었어요. 여러분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사망으로, 그리고 다시 부활하셔서 순간이 아니라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로 살도록 추곡하신 이 복음 안에서 우리는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behold, 새것이 되었도다. 이 감격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게 우리들교회죠. 1부, 2부 설교 못 들으신 분, 그게 우리들교회예요. 그게 우리들교회의 에센스예요. 죄의 문제를 들고 나와 우리 예수님 앞에서 해결봐 영생을 맛보고 죄로부터 해결 받은 자유함을 맛보고 자유의 능력, 복음의 능력이 무엇인지 깨달아서 날마다 주의 말씀을 상고하면서 그 말씀 안에서 내 길의 빛이요 내 발의 등이 된 말씀으로 인도됨을 받아가는 이 행복한 제2의 인생, 복음의 인생 살아가는 거, 이게 바로 우리들교회 에센스라고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로 이 말씀을 붙들고 내 죄의 문제, 내 남편을 데려오라 할 때 데려오면 되죠, 뭐. 주님이 해결하시겠다는 거 아니예요. 야단치겠다는 게 아니라, 세상에 알려가지고 여러분에게 면박주고 부끄럽게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해결해 주시겠다는 거 아니예요. 어둠의 죄악에서부터 놓임 받게 해 주시겠다는 거 아니예요. 자유롭게 해 주시겠다는 거 아니예요. 이제는 더 이상 어둠에서 웅크리고 앉아서 우울하게 사람 기피하면서 살지 말고 이제 이 여인처럼 빈 항아리 내려놓고, 내려놓고, 자기해체, 내려놓고, 마을로 내려가서 나에게 행하신 주님의 일들을 여기저기에 소문내는 이 여인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이 우리들교회에 차고 넘치는 거 아닙니까? 그게 우리의 교회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 남편 데려오십시오. 죄의 문제 하나님 앞에 끄집어 내십시오. 그리고 주님 앞에서 해결 받으시고 영원한 복음의 자유한 삶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원망과 불평이 올라오지만 남 탓하지 말고 내 죄를 보면서 각자가 자기 죄를 보는 이 합리적인 회개로 인정하고 갈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님 선대하심은 나를 회개케 하시려는 주님의 뜻임을 잘 분별하고 기도와 말씀으로 붙들고 나아가도록
엄마 피부병 회복을 허락해 주시고 남동생이 진로가 열리도록 인도해 주세요. 여동생이 유학을 가게 되면 건강부터 학업까지 책임져 주시고 본인이 구하는 적용을 해야 한다고 무엇보다 주일예배를 참석하며 믿음생활 하도록 기도합니다.
아빠가 주일예배를 온전히 드릴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용돈 드리는 적용을 잘 할 수 있도록 주님께 맡겨드리고 건강과 염려가 있는데 이 또한 성령의 위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미혜
고객으로부터 사업제안을 받고 지난 토요일 미팅을 했는데 원래 관심을 갖고 있던 분야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오늘 중으로 고객에게 답변을 드려야 하는데 야곱처럼 내 욕심으로 속고 싶은 건지 분별이 되지 않습니다. 믿음인지 우리 회사 사정에 맞지 않은 과도한 욕심인지... 주님 잘 분별하여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나의 끈질긴 수치심에 대해 예수님께서 정곡을 찌르실 때 원망과 남 탓으로 회피하지 말고 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고쳐 달라고 고백하며 주님의 사랑을 묵상하는 하루하루 되기를!
엄마 아빠 건강을 지켜 주시고 아빠를 구원해주시기를!
팀원의 아버지 지금 너무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데 그 시간동안 예수님 만나주시고 속히 육체를 회복시켜 주시기를! 간호하는 팀원의 영육을 보호하시고 힘주시고 위로해주시기를
우리 목장식구들 각자의 기도제목에 대해 주님이 신실하게 응답해주시기를!
예선
그날 주시는 말씀으로 하루만 잘 살도록
말씀에 정곡을 찔려 목장에 붙어가며 나의 죄패를 잘 나누고 회개하며 갈 수 있도록
나와 목장 식구들을 위해 기도의 자리 잘 지키도록
허벅지에 화상입은 것 덧나지 않고 새살 잘 돋아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드레싱 꾸준히 잘 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