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7 위대한 결혼
창세기 23:1-4, 25:1-6
오늘은 부활절이에요. 지금까지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은 이 부활을 위해서 있었습니다. 부활은 신앙의 핵심이고, 그래서 오늘 큐티인 본문 마가복음 16장에 보면 안식일 전에 십자가에서 주님이 돌아가시고 안식일날은 아무것도 못하니까 그러다가 안식 후 첫날이 오늘이에요. 안식 후 첫날은 4복음서에서 다 다루는데요. 가장 중요한 날이고 바로 부활절이고 바로 그때부터 주일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날마다 이 주일은 부활절이고 따로 부활절 설교를 할 필요가 없이 날마다 매 주일 부활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교회는 매 주일 날마다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본문이라도 오늘 주시는 말씀으로 다 살아났다고 하자나요. 장례식, 결혼식, 경조사 다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그것이 날마다 부활절 설교이고, 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큐티인 마가복음 16장 1절에 보니까 로마 병정의 노리개 창기로 일곱 귀신 들렸던 가장 비천한 막달라 마리아에게 주님은 부활을 가장 먼저 보이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막달라 마리아 얘기도 너무 큰 울림이 있지만 우리가 끝도 없이 이 복음서를 설교를 했었기 때문에 구약에서도 우리의 선배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도 열국의 공주로 굉장히 부귀영화를 누린 여자 같지만 부활의 스타이기는 막달라 마리아와 별반 다름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사라는 훌륭하고, 아브라함은 훌륭하고 이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서 어떻게 사라가 어떤 십자가의 길을 걸었기에 부활의 스타, 열국의 어미가 되었는지를 오늘 이제 이 창세기 본문을 가지고 좀 보고자합니다.
창세기 24장부터 다루고 있는데요. 이 책이. 여기서 이제 결혼의 준비와 인도와 만남과 결단과 참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이 물경 150페이지가 되는 거예요. 결혼에 대한 모든 것. 그래서 이삭의 배우자 찾기로 총망라한 결혼이야기로 제가 결론을 맺으려고 했는데 결혼 설교에 마지막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여기 이번에 나온 신간 위대한 결혼의 띠지에 적혀 있는 글이에요. '뛰쳐나가고 싶은 가정이라도 온 몸으로 살아내며 예수를 보이는 인생이 다툼 가운데 소망이 되어 내 가정과 자녀를 위대한 결혼으로 이끕니다.' 이게 적혀 있어요. 무엇보다 가정 중수가 우리들교회의 핵심 가치이기 때문에 그 25장에 이어지는 그 위대한 결혼 이야기를 제가 오늘 좀 하려고 해요. 책을 가져다가 오늘 좀 하는데, 그러면서 결혼을 끝까지 중수하는 것이 영적 후사가 오는 길이고 가장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창세기 12장부터, 창세기가 5권이 나왔는데 여러분들이 그걸 다 읽고 있으면 굉장히 아주 실력이 출중하실 텐데 어쨌든 12장부터 다시 훑어보면서 오늘 이야기를 해보겠어요. 오늘 설교는 아브라함 인생의 결론이지만 특별히 저는 사라에게 초점을 맞춰서 묵상을 해 보았어요. 어떻게 구원을 이루는 위대한 결혼의 주인공이 되었는지 어떻게 남편과 자녀를 위대한 믿음의 조상으로 키워냈는지 아주 쉬운 얘기로 사라의 부활을 선포해보겠습니다.
1. 남편 고난에 순종했습니다.
남편을 사모하는 고난은 원죄의 형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은 벌을 잘 받는 것이 축복이며 그게 거룩을 이룹니다. 골로새서 3장 18절에 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이렇게 성경의 명령은 십자가를 지는 일이고, 그것은 우리에게 가장 값진 일이고, 영육간에 자녀들을 축복하는 부활의 비결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부활이에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사라의 순종이 이 땅에서 가장 위대한 일이었기에 믿음의 후사인 우리까지도 복을 받는 거예요. 여자의 머리가 남자고 남자의 머리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모두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람의 인격이 아니고 역할에 순종하는 거, 이게 십자가죠. 순종하면 부활이에요. 남자들이 강하게 보이지만 흙이 먼지와 티끌에 불과한데 뭐가 강하겠어요. 여자들이 약해 보여도 뼈이기 때문에 남자보다 재료가 더 좋아요. 그러면 재료가 좋은 쪽이 복종을 해야 되는 거예요. 사과도 잘못한 사람이 받아야 되는 거예요. 피해자가 사과를 해야 구원의 일이 빨리 이루어져요. 이게 영적인 원리입니다. 우리가 집과 가정과 나라가 이렇게 나가면 얼마나 좋겠어요. 재료가 좋은 쪽의 복종이 모두의 구원을 가져오는 지대한 역할을 중요하게 하는 것을 봅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뜻도 있지만 저는 구원에는 여자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이 결혼도 창세기 2장에 보면 아담을 잠들게 하신 후에 여자를 만들어서 데리고 오자나요. 그러니까 결혼은 여자가 결단하고 이렇게 오는 것이 너무 중요해요. 남자들이 아무리 따라다녀도. 왜냐하면 여자의 품질이 좋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 창세기 24장도 리브가가 이삭에게로 와야 하는 것이에요.
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는 조강지처 사라와 첩인 하갈과 그두라가 있었어요. 아브라함이 그 중에 누구를 가장 좋아했을까요? 모르죠. 우리는 열국의 어미, 열국의 공주 사라를 너무 좋아했을 것 같지만 여러분들의 고정 관념이 깨져야 되는게 이런 게 묵상이죠. 이걸 그래서 좀 읽으셔야 돼요. 우리의 보통 성정으로 말씀을 묵상해봐야 되는 거예요. 사라를 좋아해야 되지만 아브라함의 본능은 안 그랬을 거 같아요. 성경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수치라고 감추지 않아요. 그래서 그 진실함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끼치는데 제가 힘들어보니까 이런 것들이 깨달아졌어요. 조강지처 사라는 여러 곳에 언급이 되듯이 참 아름다웠던 것 같아요. 그런데 창세기 12장에서 기근이 와가지고 피난 간 아브라함 이 인간이 말이죠 애굽의 바로 왕이 자기를 죽일 것 같으니까 사라에게 '나를 오빠라고 해. 그러면 당신 데려가도 난 안 죽일 거자나.' 이러는 거예요. 아니 이럴 때 '내가 죽어도 좋사오니 하나님 우리 사라를 살려주세요.' 이렇게 기도해야 되자나요. 그런데 그런 기도한 내용이 한 구절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 한 구절이 나왔지만 난 사라가 아브라함이랑 살기가 참 힘들었을 것 같아요. 남자들이 굉장히 이기적이거든요. 뭔지가 뭘 알겠어요. 흙이자나요. 그렇죠? 정 떨어지고 배신감이 들어서 '그래. 나도 당신하고 살기가 싫어.' 워낙 오누이자나요. 사실은. 근친 결혼도 했는데 어려서부터 슬픔인데. '그래도 첩이라도 왕에게 가면 좋지 뭐. 명분 있게 헤어지자.' 그래서 '그러슈.' 그랬는데 글쎄 아뿔싸 바로 왕이 진짜 첩을 삼으려고 하는 거예요. 남들이 보기에는 좋아보여도 진짜 비단 치마속의 넝마같은 인생을 산 거죠. 그래서 바로의 첩이 되었다면 사라에게서 그 후손인 예수님이 못 올 뻔 했자나요. 예수님의 조상이 사라의 태에서 나와야 되는데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보호를 했기에 망정이지 그냥 부인을 뺏길 뻔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약속의 신앙을 가진 그 이삭을 낳은 후에도 글쎄 그랄 왕 아비멜렉 때 또 있었어요. 그때도 '하나님내가 죽어도 좋사오니 사라를 살려주세요.' 그때도 기도하지 않았어요. 즉 믿음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두 번이나 아내를 팔아먹을 뻔했다는 거죠. 바람 핀 정도가 아니예요. 아내 팔아서 목숨을 구걸한 인생이 아브라함이더라 이거죠. 정말 저는 사라가 살기 싫었을 것 같아요. 사라가 참 예뻤지만 사랑받은 부인은 아니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이제 아이가 없었자나요. 그것도 큰 고난이에요. 사라가 여종인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첩으로 들여보냈어요. 그런데 갈대아 우르부터 얼마나 그 동반자, 전우처럼 왔자나요. 여기를. 그런데 아이를 낳기 위해서 첩으로 들여보냈는데 아브라함 이 인간이 하갈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럴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16년이나 같이 살면서 아들도 없는 자신이, 하갈이 멸시했다고 그랬어요. 사라을 뒷방 늙은이로 놓고. 멸시했다는 것은 아브라함이 하갈을 좋아했다는 의미예요. 좋아하지 않으면 어떻게 이 사라를 무시를 할 수가 있겠어요. 생각해 보세요. 아브라함이 그 잘난 아들을 낳은 그 부인을 왜 싫어했겠어요. 그래서 하갈이 사라를 멸시하니까 하여튼 내쫓았어요. 하나님도 내쫓으라 그랬어요. 그런데 이제 내쫓고나서 또 한참 뒤에 여종 그두라를 또 얻어 들이고, 그리고 거기에서는 6명이나 자녀를 낳은 것을 보면 그두라에게는 그냥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나봐요. 이런 걸 THINK하죠. 여러분이 6명이다 하면 뭘 알겠어요. 저는 그냥 온갖 드라마의 행간을. 그두라는 하갈과 같이 아브라함 집의 여종이었을 것인데 아브라함은 보니까 주로 여종이 편하고 좋았던 것 같아요. 그두라는 향기와 유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삭을 낳은 후에 그 믿음으로도 그두라를 첩으로 얻어들인 것으로 본다면 저는 사라의 그 마음이 아주 참담했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25장 1절에 아브라함이 후처를 맞이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그두라라 그런데 이 얘기를 역대상 1장 32절에 보면 첩으로 묘사되어 있어요. 아브라함의 소실 그두라가 낳은 자손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요 욕산의 자손은 스바와 드단이요 그리고 오늘 25장 6절은 이 서자들을 첩들의 아들이라고.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이제 다른 성경에 또 소실 그렇게 표현되어 있는데 이걸 이제 칼빈이 어떻게 해석을 했냐면 아브라함이 하갈 내보내고도 첩을 더 두었다. 그러면 이 첩이라는 말은 뭔가하면 사라 생존 시에 일어났다는 말, 생존 시에 첩을 얻었다는 거예요. 그걸 첩이라 그래요. 그런데 다른 성경 학자인 랑게 등은 하갈을 얻고 그 고통을 많이 겪었던 아브라함인데 어떻게 첩을 얻겠냐. 그런데 사라 사후에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후첩을 얻었을 것이라고 또 이렇게 해석하는 학자도 있어요. 그런데 다른 번역 성경 KJV에는 그 일을 다시 행했다고 Then again 했는데.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사라를 통해서 언약 백성을 세우실 것이라는 약속을 들었음에도 이삭을 낳은 후 그 하갈을 첩으로 맞이했던 일이 잘못된 일이었자나요. 그런데 그 잘못된 일을 Then again 다시 행했다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사라 생전에 첩인 그두라를 얻었다고 보는 이 종교 개혁자 칼빈의 견해에 한 표를 제가 던집니다. 저는 그래서 그두라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사라 사후에 첩에서 후처로 승격한 것이 맞다고 봐요. 그러니까 이쪽에는 첩이고, 이쪽에는 후처. 두 개가 다 맞는 얘기가 되는 거죠.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사라보다는 하갈을 좋아하고 하갈보다는 그두라를 더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두라가 6명이나 잘난 아들을 낳아서 키웠으니까 사라보다 훨씬 수고한 것 아닙니까? 사라는 아들도 못 낳고 하나 낳는데도 비실비실 못났고. 그러기에 수고해도 못 가는 천국입니다. 이 얘기는 아브라함이 약속을 떠나서 아직도 이 세상을 굉장히 좋아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게다가 아브라함은 자기들을 버리고 떠난 조카 롯을 구하겠다고 북부 연합군을 물리치러 출전했자나요. 그런데 워낙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그랬는데 그때 친척인 롯을 데리고 떠났어요. 그때도 말 안 들었어요. 그러니 핏줄이 그냥 중요한지 롯이 배반하고 다 떠났는데도 롯을 구하겠다고 가서 소돔에 가서 죽었으면 사라가 청산과부 될 뻔 했자나요. 게다가 또 거기서 이기고 올 따 재물까지 다 롯에게 양보했어요. 그러니까 본가 일이라면 물, 불 안 가리고 앞장서는 이 남편들 때문에 우리 돌아버리자나요. 핏줄이 그 뭐라고. 그렇죠? 뭐 요새는 남편만 있는 게 이니고 처가. 요새는 핵가족이라서 전부 처갓집 위주로. 사라에게는 그때 아들도 없는데 사라의 목숨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바로에게도 팔아 버리저니 롯을 위해서 완전히 생명을 내놓고 달려갔어요. 남자들은 구속사가 깨달아지지 않으면 이렇게 흙이라서, 먼지라서 여자보다 죄 의식이 더 없고 게다가 대책까지 없어요. 보니까 예전에 장로님이었던 지금 장로님 나눔이 있어요. 예전에 나는 큰 소리치고 바람 피고 다녔는데 그 여자를 도와주고 기도해주고 하면서 전혀 죄 의식이 없으니까 이 메일을 다 열어놓고 다녔대요. 그런데 새벽에 아내가 보고 '이게 뭐야?' 그래가지고 딸과 아들이 다 깨어가지고 '이 이메일 내용이 뭐냐?' 그런데 거기 보니까 기도해 준 거 있고 육체적인 관계를 암시하는 글도, 사진도 다 있는. '그 밤, 그 새벽을 생각하면 너무 고통의 사건이었는데 그것이 없었으면 나는 계속 갔을 것이다. 임신을 했을지도 모른다. 우리들교회도 못 왔을 것이다.' 그래서 아내는 불면증에 걸리고 나는 장로로써 교회 말도 못하다가 지금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런 일들로 새 노래를 부르면서 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교회에서도 장로님이 되셨자나요. 우리는 과거를 또 다 잊기 때문에. 그러니까 남자들은 죄의식이 없어가지고 자기가 바람을 피워도 다 흘리고 다녀서 여자들이 다 알아요. 뭐를 흘렸는지도 몰라. 여자들이 품질이 좋다 그랬자나요. 여자들은 촉이 발달되어 있어. 촉이. 그래서 여러분들 이왕 피려면 좀 간수 잘하고 하시기 바래요. 여자는 모르는 게 없어요. 여러분. 뼈 자나요. 그러니까 이 세상 남자들이 죄다 아브라함 같아서 음란이 죄라고 생각을 못했다는 거예요. 여자들은 오늘 이 말을 잘 들어야 해요. 바람 한 번 폈다고 이혼 난리치고 그러면 안 돼요. 적용해보세요.
[적용] 내가 말씀과 상관없이 찾는 향기로운 것은 무엇입니까? 음란, 음주가무, 게임, 부동산, 주식의 향기에 취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공주과와 여종과 중에 누가 좋은가요?
2. 자녀 고난에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그 이스마엘과 이삭 외에 오늘 그두라가 낳은 6명, 8명의 아들이 있는데 아들 중에는 아브라함이 또 누구를 가장 좋아했을 것 같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이렇게 정답만 알고 있으면 전혀 적용이 안돼. 구속사적으로 해석이 돼야 해결이 되는데 그렇게 맨날 하늘에 언어만 쓰면 적용이 하나도 안 돼요. 당연히 아브라함은 이삭을 좋아했다고 생각하겠죠. 제가 또 토시 하나 안 빠지고 읽어가 보니까 사라는 지금 자식을 못 낳고 있는데 그 종이었던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들어가게 해서 잉태하니까 여주인 사라를 멸시했자나요. 그런데 그때 사라가 고통 당하니까 내쫓으라 했고 하나님이 그걸 허락하셔서 하갈을 내쫓으라고 했을 때 사라를 뺏길 형편에서는 죽든지 말든지 상관이 하나도 없던 아브라함이 그 아들 때문에는 심히 근심하고. 그래서 하나님이 내쫓으라고 해서 내쫓았지만 너무 이스마엘을 좋아하고 너무 만족하니까 이게 심히 근심하는 거자나요. 이 본문이 굉장히 길게 나와요. 오죽하면 내가 너에게 영적 아들을 준다. 내쫓으라 그랬더니 아브라함이 17장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께 살기 원해요. 뭔 다른 아들 이스마엘 난 너무 좋아요. 아브라함이 그렇게 대답했어요. 그래서 19절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하나님이 계속 아브라함을 설득을 해 가세요. 하도 이스마엘 좋아하니까. '얘 제발. 제발. 믿음이 최고 아니니?' 이렇게 분명히 이삭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말씀을 주시니까 아브라함도 자기 맘대로 이스마엘과 살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갈등 충만인 거예요. 그래서 성령의 갈등으로 아브라함도 자기 좋은 걸 자꾸 버리라고 하니까 힘든 인생을 살았다고 봅니다. 이스마엘이 예수만 안 믿지 남자답고 잘 나고 서울대 나오고 건강하기 때문에 너무 좋아가지고 이스마엘을 낳은 다음에 13년간이나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어요. 아브라함이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가 없던 시절이 되어서 영적으로 다운이 딱 됐어요. 그래서 그렇게 해서 이스마엘을 내보냈자나요. 막 아픔 가운데. 그런데 그 오랜 후에 첩인 그두라에게서도 6명이나 아들을 낳았어요. 그런데 하갈을, 이스마엘 내보낼 때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약속을 주셨어요. 지금 무슬림 이런 아랍 계열이 아주 큰 민족이 되었자나요. 이스마엘의 후예가. 그래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이 약속을 사명감으로 받았기 때문에 첩을 얻어서 합리화를 시켜면서 6명이나 자녀를 낳았을까요? 그런데 왜 첩은 자식을 쑥쑥 잘 낳죠? 그것이 알고 싶어요. 물론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이 땅에 주신 자녀이지만 이 첩들이 낳은 자녀들은 한결같이 튼튼하고 건강했지만 약속의 자녀가 되지 못했어요. 이거 문자적으로 듣지 마세요. 그럼에도 이스마엘 얘기가 성경에서 이렇게 많이 할애된 것은 잘난 자녀가 안 믿는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이에요. 잘난 자녀가 안 믿어요. 이스마엘은 지금까지도 안 믿으면서 전 세계를 괴롭히고 있는 빈 라덴의 조상이 되가지고. 그래서 이제 이스마엘 후에 이삭이라는 약속의 자녀를 주었지만 이게 그렇게 믿어지질 않는 거예요. 이삭을 보면 비실비실하고 연약하고 이스마엘과는 여러가지로 비교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두라에게서는 미디안, 뭐 앗수르. 아우 그냥 여섯 아들이 다 강하고 튼튼해서 어디를 봐도 이삭과 비교되는. 명함을 못 내미는 거예요. 이삭이 약속의 자녀라는 것은 믿을 수가 없는 거예요. 자 우리가 감옥 갔다 오고 너무 속 썩이는 아들이 예수 믿었어. 그런데 이 서울대 졸업한 아들이 너무 잘났는데 예수 안 믿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솔직히 말하면 누굴 좋아하겠어요. 이게 똑같은 얘기예요. 지금. 아브라함이 이삭이 안 믿어지는 거라. 이번 수요 예배 때 권사님 간증에 남편이 판사와 의사가 결혼한 선남선녀자나요. 그런데 아들이 우울증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 권사님이 그 아들 때문에 주님을 진짜 만나셨어요. 어디서도 안 울다가 자녀 얘기만 하면 우리는 울어요. 이것이 연약한 아들의 축복인 것이죠. 우리 가운데도 아들이 게임 중독에 엄마에게 심한 욕하고, 가출하고 여러 상황에 있는 성도도 계시지만 그 자녀들이 위대한 결혼의 주인공들이 되어 가기 위해서 지금 수고하고 있는 것이죠. 그 남편은 지금은 변호사신데 우리들교회 권사님 오신지 17년 됐어요. 그런데 보인은 안 오세요. 그런데 아내에게는 꼭 우리들교회를 나가라고 권하세요. 본인이 교회를 안 나가는 것도 아니예요. 다른 교회 나가세요. 그런데 아내는 꼭 우리들교회를 나가라고. 그렇게 남편이 허락하니까 오지 안 하면 또 오겠어요? 그러니 남편과 자녀 고난이 사라에게 위대한 결혼이 되게 한 것처럼 이 권사님이 지 지난주 유방암으로 수술하고 2주일도 안 됐는데 지난주 실밥 뽑자마자 간증을 하셨어요. 그 간절함이 얼마나 간절한지 아시겠죠. 그두라가 낳은 자식들을 사라가 다 보지는 못했지만 낳기 시작하는 것은 보았을 거예요. 그것도 사라에게는 깊은 슬픔일 것이에요. '내가 죽은 후에 누가 이삭을 책임져줄까? 저 남편은 저 그두라밖에 모르는데.' 이런 걱정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사라는 남편 사랑, 자식 자랑 무엇 하나 내 놓을 것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적용해보세요.
[적용] 여러분은 아무리 비실비실대도 예수 믿는 자녀가 제일인가요, 세상적으로 잘나가는 자녀가 제일인가요?
3. 총체적 고난으로 최고의 사랑이 동반됩니다.
사라 생애를 가리켜 총체적 고난을 겪은 인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쭉 읽어보니까 사라가 이스마엘을 내보낸 후로는 항상 말이 없더라고요. 불평이 없더라고요. 왜냐하면 하갈을 얻어 들여 이스마엘을 낳게 한 것은 사라에게는 뼈 아픈 실수자나요. 그것은 사실 하나님의 약속을 어긴 것이에요. 그래서 그때부터 입을 다물었다고 해야 하는데 이 한가지 실수는 사라를 깨어 있게 한 실수예요. 누구는 한 가지 실수만해도 평생을 깨어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이제는 참아야 할 일이 인생의 모든 것을 채우고 있는 이 사라는 뒷방 늙은이가 되어서 모든 것은 내 삶의 결론이라고 생각하며 점점 믿음의 여인이 되어갔어요. 부활절이라는 게 우리가 예수님의 신부가 되는 거자나요. 그렇죠? 그러니까 사라도 예수님의 신부가 되가니까 점점 어마어마한 분의 부인이 되니까 아브라함의 사랑이 이 밑으로 보이는 거죠. 그러니까 이 모든 것들을 자발적으로 인내를 해 갈 수가 있게 된 거예요. 그러니까 끝도 없이 그두라, 자녀들, 이삭의 비실비실, 그리고 또 이삭을 죽이러 간다 그랬자나. 번제 드린다고. 별 꼴을 다 당했어요. 지금. 계속 눈만 뜨면 아브라함이 여기 저기 이사다니고. 그런데다가 90세에 이삭을 낳고 127세에 사라가 죽었는데 그 때에 비실비실한 이삭이 장가 가는 것도 못 보고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속만 끓이다 간 것 같지만 전 세계가 그녀를 열국의 어미로 추앙하는 것은 이런 총체적 고난 속에서 그녀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가르쳐주었기 때문이에요. 23장 1절이에요.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그냥 하는 게 아니고 하루 하루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는 날을 누렸다는 거예요. 하루 하루가 여전한 방식으로 아주 이게 의미 있는. 성경에서 죽을 때의 나이가 언급된 유일한 여성이 이 사라예요. 127세는 옛 랍비들의 해석인 미드라쉬에 따르면 상징으로 보고 100은 많은 나이, 20은 아름다움, 7은 흠 없음을 상징해서 나이가 많아도 아름답고 흠 없을 수 있다고 표현한 수래요. 그러니까 사라 전에는 여자가 거의 남편들의 종속물 외에 다른 것으로 거의 언급된 적이 없는데 사라가 열국의 어미로 불리는 최초의 여성이 된 것이죠.
그런데 2절에 보면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아주 헤브론하면 여러분들 기억하셔야 되는 약속의 땅이에요. 지금 아브라함은 그랄을 거쳐 브엘세바로 이주를 했었는데 사라는 헤브론 땅에서 죽었대요. 그러니까 지금 따로 따로 살고 있는 거죠. 사라는 약속의 땅에서 살고 있는데 아브라함은 지금 딴 데서 살고 있어요. 그러니까 헤브론에서 사라가 죽었다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그 약속을 상기시켜주는 중요한 역할을 지금 했습니다. 그래서 열국의 어미예요. 이 최고의 사랑은 약속을 상기시켜주는 사람이에요. 엄마든 아버지든. 사라가 약속의 자녀가 아닌 이스마엘을 내쫓으라는 말은 자기가 비록 실수는 했지만 이스마엘은 구원을 위해 내보내는 구속사적인 적용을 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때부터 자기의 욕심을 다 내려놓고 30년이 훨씬 넘도록 사라는 어떤 불평도 하지 않았어요. 이스마엘을 인간적으로 내보낸 게 아니예요. 그래서 욕심을 딱 내려놨어요. 그런데 그녀가 마지막에 죽은 헤브론은 아브라함과 다윗을 거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골고다 약속의 땅, 예수님이 정말 십자가 지고 죽으신 약속의 땅에 가장 중요한 땅인 거죠. 아브라함에게 그 중요한 창세기 13장 18절에 그 약속을 상기시키는 아주 중요한 땅이고 그 역할을 사라가 하고 간 거예요. 자 헤브론, 갈렙의 헤브론. 중요한 사람이 헤브론을 늘 이렇게, 창세기를 여러분들이 1권서부터 5권까지 읽으셨으면 지금 이 얘기가 이해가 되셔야 얼마나 이해가 되실지 모르는데 이 책을 꼼꼼히 좀 읽어보시면 자다가도 떡이 생길 줄 믿습니다. 성경을 알아야지 풍성하게 적용이 되죠. 그러니까 헤브론에서 죽었자나요. 아브라함이 딱 깨달았어요. 3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그랄을 거쳐 브엘세바로 이주했었던 아브라함은 이제 사라로 인해 창세기 13장의 그 약속 헤브론 땅을 기억했어요. 그리고 매장지로 확정했다는 표현이 나와요. 확정했다는. 그 23장에. 또 창세기 15장에 그 약속을 믿고 너희들이 애굽으로 가도 4대만에 돌아오겠다 그 약속을 하셨어요. 그랬을 때 돌아오면 땅이 있어야 되자나요. 근거가 있어야 되자나요. 그러니까 헷 족속이 공짜로 주겠다고 그러는데 3번이나 '나는 돈 주고 사겠다. 돈 주고 사겠다.' 해서 이 매장지를 값을 주고 확정을 했습니다. 즉 정신 차리고 믿음의 조상으로 자리매김을 한 거죠. 사라가 오직 믿음으로 한 말 '이스마엘 내쫓으라.'와 헤브론 땅에서 죽은 그 태도, 이거가 약속을 상기시켜줬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 같이 선을 행했다고 한 것 같이 결혼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고 거룩이기 때문에 거룩한 부녀가 된 사라를 보면서 남편 고난, 자녀 고난, 총체적인 고난의 때마다 사라가 순종을 했기 때문에 결정적일 때 사라 말을 듣는 지금 아브라함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까 사라가 죽기까지 아브라함이 돌아오지 않았자나요. 그런데 죽자마자 약속을 상기시키는 여인이 되었다는 것이죠. 이게 진짜 사랑이에요. 약속을 상기시켜주는 부모, 자녀가 최고의 사랑을 부모, 자녀에게 주는 것이죠. 그러니까 그두라가 아들을 여섯이나 낳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서도 두고 떠나는 비실비실한 이삭을 걱정하지도 않고, 전혀 요동하지 않고 담대하게 이 세상을 떠났어요. 우리들 가운데는 비실비실한 자녀 중에 부모를 욕하고 때리고 아프고 별 자녀가 다 있습니다. 그래도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 사랑은 없다고 하자나요. 사과는 잘못한 사람이 받아요. 그래서 부모가 사과해요. 피해자가 합니다. 왜죠? 사랑하니까요. 그리고 하나님이 살피시는 것을 믿으니까요. 브엘라헤로이 여기에 이삭이 거했다 그러는데 하나님이 살피신다는 뜻이에요. 사라가 떠나도 하나님이 살피실 것을 믿고 사라는 그냥 딱 떠나는 거예요. 예수 신랑이 내 신랑이 되어서. 약속을 생각나게 해 주는 사람. 아무리 딴 짓을 해도 도저히 예수를 떠날 수 없게 하는 아내, 부모, 남편. 여러분 그런 사람이에요? 믿음의 잔소리를 하죠. '큐티 해라. 교회 가라. 기도해라. 용서해라.' 그런데 자신이 본을 하나도 안 보이고 하면 그게 먹혀 들어 갑니까? 본인이 교회 가고기도하고 용서를 해야지 자녀들이 기억할 거 아니겠어요? 그래야 예배가 무엇인지, 용서가 무엇인지, 인내가 무엇인지 보이면서 가니까 죽은 뒤에 열국의 아비를 만들어내고 약속의 자녀를 만들어 낸 것이죠. 이것이 바로 위대한 결혼입니다. 창세기 24장에서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왔어요. 이삭이. 그런데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해서 아브라함의 장막이 아니라 죽은 사라의 장막으로 들였다고 했어요. 24장 67절에 마지막에. 사라가 믿음의 어머니라고 이삭이 인정을 했어요. 아브라함은 인정하지 않았어요. 죽었어도 사라를 인정했어요. 사라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 이삭을 방문해주신 거죠. 기도가 응답이 됐어요. 당한 것이 많아서 총체적인 고난 가운데 보일 것도 많은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모릅니다.
[적용] 여러분은 최고의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며, 십자가의 사랑으로 예배와 큐티와 기도와 인내와 용서의 본을 보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믿음의 부모라고 자녀들이 인정할 것 같습니까?
또 자녀들은 안 믿는 부모님들이 있다면 '쟤는 참 믿음의 자녀야.'라고 인정할 것 같아요?
나 또한 남편에게 애틋한 사랑을 받지 못했죠. 무늬만 신결혼을 했어요. 그래도 제가 불신결혼 한 건 아니예요. 그런데 그 무늬만 신결혼도 축복하셔서 사랑이 생기게 하셨어요. 어떻게 생겼나요? 나의 육이 무너지는 있어야 할 일이 있어고 복음이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전파되니까 최고의 사랑이 생기게 하셨어요. 결혼 전에 생각했던 그 인간의 사랑과는 비교가 안 되는 사랑을 알게 하셨기 때문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가 달라졌죠. 그러기에 지금까지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데요. 아브라함도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는 그두라일지라도, 아들은 이스마엘일지라도 약속의 자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끊게 한 사람이 사라이고 사라로 인해 열국의 아비, 믿음의 조상으로 자리매김까지 하게 된 것이죠. 저희 남편이 자기가 죽은 뒤 본인의 얘기가 수 십년 동안 이렇게 전 세계에 알려질 줄 알았겠습니까? 바로 이거예요. 그렇죠? 우리 어머니 또한 제가 날마다 엄마 얘기를 할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순종은 제가 헸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주인공은 남편. 남편. 남편 얘기를 하라고 저를 살려 두시고 있는 거예요. 남편이 없었다면 제가 할 얘기가 하나도 없을 뻔 했자나요. 그러니까 이게 옳고 그름이 아니라 우리 부부 가운데 구원을 이루는 다툼이 있었기 때문에 그 다툼이 큰 소망을 지금 이루어냈죠. 이렇게 결국 사라의 약속 있는 사랑으로 아브라함이 죽으면서 가장 비실비실한 약속의 자녀인 이삭을 알아보고 장대 같은 그 7명의 아들과는 구별되는 적용을 하고 죽었어요. 어떤 적용을 했을까요? 25장 5절, 6절입니다. 5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 6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산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하여금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쪽 땅으로 가게 하였더라 글쎄 이 비실비실해 보이는 이삭에게는 자기 모든 소유를 주고 서자들에게는 재산을 주었대요. 인간적으로 들으면 자기 아들 갈라놓은 것 같은 아버지가 아닌가 하겠지만 그래서 성경을 구속사로 읽는 것이 필요합니다. 겉으로는 남자답고 다 멀쩡한 아들이지만 이 여섯 아들은 구원과는 상관없는 아들이었다는 것을 분별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야곱도 요셉이 너무 훌륭하니까 유다가 예수님의 직계 조상이라는 것을 마지막까지도 '요셉. 요셉이지.' 그 분별이 안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브라함도 이삭이 너무 형편없어서 분별이 안돼. 그랬는데 사라가 죽은 다음에 이걸 분별했어요. 그래가지고 이제 '저것들은 구원받지 못하는구나.' 지금까지 구원받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 소유라는 것은 동산, 이렇게 살 것도 있겠지만 믿음의 유산을 말하는 거예요. 소유. 믿음의 유산이 들어가 있고. 이삭이 너무 연약하니까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서자들에게는 물질을 주었다는 거예요. 이 여덟 아들 중에서 연약하고 비실한 아들 한 사람만 확실히 구원받았다는 것을 분별하고 그 믿음을 지켜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는데 그 믿음 없는 아들들은 돈만 주면 되는 거예요. 돈만 주면 이삭을 괴롭히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약속의 자녀를 멸시하고 자기 주제를 모르고 사라와 이삭을 희롱하고 멸시한 서자들에게는 돈을 줘서 내보내는 거예요. 여러분 이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띄고 있어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는 이 돈을 안 줘야 되는 거예요. 정말 사랑하지 않으면 돈을 주는 거예요. 이 땅의 축복된 결혼은 한 남편, 한 아내로 자리매김하기 위하여 숱한 고통을 치러내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대한 거예요. 이 위대한 결혼에 위대한 사라가 있었던 것입니다. 위대한 돕는 베필이었기에 위대한 아브라함이 나온 거예요. 인간은 위대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위대하게 하셨습니다. 죽고 나면 영적 부모였냐, 아니냐? 이거 밖에 남는 게 없어요. 살 수 없는 것을 살기에 위대하고, 우리 모두 사라의 후예가 되가지고 우리들교회는 위대한 결혼의 주인공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정말 우리 서로 서로 자축하면서 박수를 좀 치고 싶은데. 사라는 이 사랑받지 못하고 배우자에게 자식 인정받지 못해도 이렇게 남는 것은 사라처럼 믿음으로 바라보고 죽는 것입니다. 사라는 문제 많은 남편과 연약한 자녀를 최고의 믿음의 조상으로 둘 다 올려놓았어요. 아브라함은 여덟 명 중에, 자기 씨자나요. 한 아들만 성공했어요. 사라는 자기 남편, 자기 아들 모두를 100% 믿음의 반열에 올려놓았어요. 그러니까 주인공은 아브라함이 아니고 사라라는 걸 아시겠죠? 그러므로 여자가 너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게 비폭력적인 사람이라고도 풀이할 수 있지만 온유라는 말에는 무엇을 모으다 라는 뜻이 있어요. 온유함은 내 삶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모으고 인정하는 거예요. 내가 고아이고, 가난하고, 과부이고, 부모가 바람 피우고, 이 모든 것을 인정하는 것. 즉 나의 모든 환경에 맞다고 '옳소이다.' 이게 온유함의 극치예요. 온유함이 '네. 네. 네. 네.'가 아니고 바보라 그래도 '네.' 과부라 그래도 '네.' 가난하다 그래도 '네.' 병신이라 그래도 '네.' 이게 온유함의 극치인 겁니다. 모든 것에 말할 때마다. 이걸 인정하는 거 온유함의 극치입니다. 그러면 주님 말씀대로 넓은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나를 깨뜨리셔야만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인정하는 것이 온유이고 최고의 사랑입니다. 별 인생이 없어요. 여러분 막달라 마리아, 사라 다 거기서 막상막하예요. 그래도 막달라 마리아는 로마 병정하고 놀기나 했자나요. 재미도 느꼈자나요. 그렇죠? 사라는 이 뒷방에서 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누구 비교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 사라가 예수 신랑 만나고 나서 남편의 사랑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사라가 위대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가서 예수를 온 몸으로 보일 수 있었죠. 이제 비로소 넓은 바다로 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담대하게 이 땅을 떠났어요. 이것이 객관적으로 가족을 보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라는 거죠. 23장의 이런 매장지 부활 신앙의 배경으로 이제 아브라함이 매장지를 사고 분연히 일어났자나요. 그래서 이 창세기 24장에서 이삭의 신결혼을 위해서 아브라함이 목숨을 거는 거예요. 종을 보내면서 환도뼈에 맹세를 하게 하고 '반드시 믿는 배우자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자기 며느리라는 얘기가 하나도 없고 이삭의 아내라는 얘기 밖에 안 나와. 우리가 결혼을 시킬 때 며느리 감을 구하면 안 돼요. 아들의 아내감을 구해야 되고 딸의 남편감을 구해야 되는 거지. 그러니까 정말 그 67절 동안 며느리라는 얘기가 한 번도 없어. 아내감. 둘이 서로 좋아야 되는 거죠. 그래서 그 신결혼, 그래서 신결혼 위해 목숨 거는 거예요. 이게 이 순서가, 구속사의 순서가 이렇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준비하고, 결혼의 준비, 만남, 인도, 결단. 그래서 참결혼으로 인도받는 내용이 67절이나 나오는 거예요. 그리고 오늘 위대한 결혼까지. 이 위대한 결혼이 이해가 조금은 되십니까? 그러면 책을 사서 들고 가세요. 전도를 하세요. 훨씬 쉽게 설명이 잘 되어 있어요. 저는 이게 또 많이 빼고 하자나요. 여러분들의 사라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어졌습니까? 해석을 잘 해야 해석이 됩니다. 그래야 위대한 결혼의 주인공이 되어서 가정을 지킬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위대한 결혼은 그래서 남편 고난, 배우자 고난에 순종해야 돼요. 자녀 고난에 순종해야 돼요. 총체적인 고난에서 최고의 사랑을 보일 수가 있습니다. 예배와 큐티와 용서의 본을 보여서 예수님을 믿게 하기를 소원하는 것이 위대한 결혼의 주인공 이에요. 그것은 십자가의 고통이고 부활 신앙입니다. 이제 우리가 비로소, 이제 혼자서 우리 항해의 끝이 주님이 되는 이 사라의 인생을 우리가 살길 원합니다.
목장 모임 참석
미혜, 연수, 예선, 우정, 민희
기도제목
미혜
회사의 방향성에 대해 계속 하나님께 묻고 가고 형부와 의견 나누는데 의견차로 갈등이 있을지라도 당연히 있어야 할 일임을 알고 잘 나눌 수 있기를
모든 시선을 나에게만 두고 수치를 당하고 싶지 않아 자꾸 숨고 싶은 것이 연약함이 아니라 예수님을 신뢰하지 않는 믿음이 없는 완악함임을 회개하며 주님과의 교제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도록
아빠가 엄마에게 하는 생색과 짜증의 말을 엄마도 나도 듣는 것이 넘 힘든데, 아빠의 구원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 지 주님께서 지혜주시기를
우리 목장 식구들 각자의 넘 힘든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하며 가기를
예선
그날 주시는 말씀으로 하루만 잘 살도록
울림 기도회, 큐티 기도회 참석하여 나와 붙여 주신 지체들을 위해 기도하도록
설교 녹취하며 생각의 가지치기할 수 있도록
가족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속 경계 잘 지키며 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