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2022.3.13.
본문: 창세기 20:1~7, 11~13, 17~18
설교자: 김태훈 목사님
제목: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의 자리는 언제나 떨리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짐진 사람처럼 이리저리 다니니 아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는 하나님 말 전하는 사람 아니야? 왜 그래'라고 하였다. 여러분은 하루 일과가 어떻게 시작하시나? 저는 물을 마시고 기도를 한다. 저를 붙잡아 주세요.라고 합니다. 큐티하고 그 후에 샤워를 한다. 주신 말씀 한 구절을 샤워하며 묵상한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 깨우고 먹이고 입힌다. 그 후에 차분히 다시 큐티를 한다. 지난 주에는 월요일 큐티 본문이 마음에 남았다. 아브라함의 반복되는 실수가 마음에 남았다. 설교 일정을 듣고 이걸 해야겠다 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종이고 불신자 아비멜렉은 너무 멋있는 왕으로 나온다. 아브라함은 조영 받고 아비멜렉이 주인공 같다. 그러나 진짜 주인공은 아브라함이다. 칼빈은 성경을 이렇게 말한다. 하나는 인간의 연약함이고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다. 택자이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은혜가 있다.
1. 택자임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반복합니다.
1절 아브라함이 거기서 네게브 땅으로 옮겨가
아브라함은 헤브론에 거주했다. 아브라함에게 헤브론은 약속의 땅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네게브로 간다. 네게브는 남쪽이라는 뜻이다. 그랄로 간다. 안전하고 풍요롭고 그렇다고 애굽에는 완전히 내려간 것은 아니라 간다. 여기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묻지 않고 혼자서 뚝딱 정한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비극이 시작된다. 믿음도 초창기보다 자라고 소돔을 위해 목숨걸고 기도하고 사라가 약속의 자녀를 받는다고 말씀도 방금 들었다. 롯이 두 딸과 근친상간에서 자녀를 낳았다는 얘기까지 듣는다. 내가 이러려고 기도했나? 이럴 바에야 남방으로 가서 쉬어야겠다.라고 생각한다. 영적기근이 무섭다. 그 때부터 내 열심히 하게 된다.
사람들이 자기 아내 예쁘고 아내를 빼앗을까봐 두렵다. 20년전의 똑같은 실수를 한다. 자기 군인 318명 거느리고 야밤에 쳐부수었던 아브라함이 평범한 사람들이 두려워서 다른 남자들에게 아내를 팔아먹는 치사한 거짓말을 한다. 어찌 그럴 수 있나. 택자니까 그럴 수 있다. 오늘 하루 주님의 은혜를 덧입지 않으면 오늘 하루 그렇게 될 수 있다. 거짓말의 뿌리는 불신앙이었다. 믿음이 약해지자 엉뚱한 곳으로 가고 고질적 실수를 하게 된다. 믿음이 이렇게 중요하다. 말씀을 준비하며 눈물이 났다. 그렇게 대단한 아브라함이 치졸한 모습으로 나락에 빠진 것이 나 같았다. 나는 내 열심히있다. 올라가 올라가를 외치며 유학을 갔다. 담임 목사님이 천천히 가시라 했지만, 돌격 내 열심히 갔다. 우수한 성적으로 머리 빠져가며 석사를 졸업했다. 그런데 잘 나가고 올라갈 때, 둘째 수현이가 뇌성마비 장애로 태어나서 한국으로 왔다. 우리 부부는 장애 때문에 힘들어하며 매일을 싸웠다. 그 때 쇼윈도 부부라고 우리는 절망했다. 우리 가정은 집이 없어서 병원 처가 본가 처제네집을 돌아다녔다. 그 때는 사역도 없었다. 나는 택자인데 우리 가정은 어떻게 이렇게 됐을까 생각했다. 우리 공동체를 헤브론 같은 목장으로 보내주셨다. 내가 목사라서 부담스러워서 목자로 안 받겠다 하셨는데, 한 목장으로 갔습니다. 저희 집에서 부부 목장 드리던 날이었는데, 목자님이 물으셨다. 목사님 혹시 사모님께 바라는 것이 있으세요? 저는 유학동안에 아내에게 상처를 받아서 사과를 받고 싶다. 그 말을 듣고 아내가 저야말로 사과를 받고 싶다. 그 때 저는 진정성이 안 느껴집니다. 라고 했다. 그런 상처투성이 저를 목장에서 기도하고 먹이고 살려주셔서 이렇게 살아났다. 저같은 모습을 보시고 여러분도 헤브론 같은 목장
[적용]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말씀과 예배의 땅 헤브론입니까? 애굽으로 향하는 남방 땅 네게브입니까? 세상 왕의 도시 그랄입니까?
나의 반복되는 실수는 무엇입니까? 그 실수의 근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택자의 연약함을 인정합니까?
2. 실수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더하십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이 하나님이 택자인 아브라함에게 사건을 주신다. 아비멜렉이 사라를 아내로 취하려고 데려가신다. 한 구절 안에서 1대지 2대지의 사건이 나온다. 아브라함이 죄를 범하자마자 즉시 죄를 다루신다. 이렇게 택자는 죄를 지어도 바로 들키게 하신다. 택자이기에 사건을 주신다. 여러분은 세상 사람 다한다고해서 나도 죄 지어봐야지 하지 말라. 여러분은 택자이기에 여러분을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사람 보내고 사건 보내신다.
3절 그 밤에 그는 남의 아내임이라
이상하게 사라를 데려간 그 날에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비멜렉을 혼내신다. 그것도 그냥 혼내신 게 아니라 너 아브라함 아내 데려갔지? 너 죽는다.라고 혼내신다. 왜 그럴까요? 세상 논리로 이해가 안된다. 실수한 것은 아브라함인데 아비멜렉을 혼내신다. 실수 반복해도 그럼에도 택자이기 때문이다. 내 아들 내 딸 내 새끼이기 때문이다. 비록 겨자씨만한 믿음이지만, 본토 아버지 품으로 갔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가 연약한 것을 비참한 것을 너무나 잘 아신다. 우리는 비참한 것을 잘 알고 잘 안기면 된다. 하나님이 그 위기의 밤에 아비멜렉을 찾아가신다. 나의 가족을 지켜주신다.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에 아비멜렉이 놀라서 말한다. 나는 악하게 남의 아내를 뺏지 않는다. 실제로 아내를 뺏을 수 있음에도 이렇게 말한다. 겉으로 의로운 왕으로 살았던 것이다.
나는 옳으니 하나님 믿지 않아도 돼. 이게 옳고 그름의 끝이다. 성령의 양심이 아닌 인간의 양심의 한계이다.
믿음 없고 윤리와 도덕만 있는 아비멜렉에게 하나님은 그 수준에 맞춰서 아비멜렉의 수준을 인정해주신다. 하나님은 아비멜렉 네가 잘 참아서 그런게 아니라, 아비멜렉과 동침하면 후손인 이삭이 올 수 없기에, 내가 막았다고 하신다. 이삭이 와야 예수님이 오시고 예수님이 오시는 게 구원의 일이기 때문에 택자를 지켜주신다. 이렇게 나의 일이 하나님의 일이 될 때, 구원의 일이 된다. 택자인 나를 해하는 것은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라 한다. 치졸한 나를 이렇게 사랑하신다. 이 사랑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일, 구원의 일을 기억하기를 원한다.
[적용]나의 치졸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더하신 자비는 무엇입니까? 나의 일 중에서 하나님의 일은 몇 프로입니까?
3. 숨김에도 불구하고 죄를 고백하게 하십니다.
11절 아브라함이 이르되 이 곳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으니
하나님 말씀 듣고 놀라 아비멜렉은 모든 신하들을 모이게 하고 하나님께 사라를 건들지 말라고 혼나는
이 말을 알려준다. 아브라함 하나 때문에 온 나라가 큰 일에 빠질 뻔 했다고 아브라함을 책망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곳에서 아내 때문에 죽을까 두려웠다고 말한다. 이렇게 약속 잊고 약속의 땅을 떠나면 사명을 잊고 안전을 추구하면 오히려 불안에 빠진다. 말씀이 지긋지긋해서 그랄에 가면 오히려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아브라함은 두려워하며 택자임에도 아내 때문에 죽을까 두려워떠는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하게 된다.
아브라함은 한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사실은 온 사람 앞에서 죄를 드러낸다. 사라가 사실 자시의 이복누이고 근친 결혼을 했다고 말한다. 한번도 안했던 말이다. 창세기 15장까지 단 한번도 근친 결혼의 비밀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치욕적 수치로 아픔을 고백한다. 지금까지 불임의 고난으로 아이가 없다는 것만 나왔다. 자신의 숨겨진 아픔을 고백했다. 아브라함은 엄청난 상처를 이 때 드러냈다.
숨은 상처를 고백한 아브라함이 더 나아가서 자기의 죄를 고백한다. 가는 곳마다 아내를 속이고 누이라고 속였다고 하는 것이다. 에소포타미아 떠나 가나안 거류하며 너무 두려웠다고 고백한다. 믿음 있지만 또한 믿음 없어서 거짓말 했고 아내를 언제든 팔아먹으려 했다. 모든 왕과 신하 앞에서 고백했다. 택자는 실수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더하신다고 했는데, 택자라고 무조건 보호해주시는 것은 아니다. 우리를 지켜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를 믿고 죄를 고백하고 회개케 하기 때문이다. 숨겨진 상처 고백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맘을 묶기 때문이다. 다른이와의 관계를 막기 때문이다. 더 이상 치욕적인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함이다. 아브라함은 23년동안 묶였던 상처와 죄를 말하고 더 이상 거짓말 하지 않았다. 나는 깨끗해 라고 하는 아비멜렉은 결코 받지 못하는 회개이다. 그래서 7세기 이느웨이 이삭이란 분이 있는데, 자기 죄를 아는 사람은 죽은 자를 일으키는 사람보다 위대하다. 자기 죄를 아는 사람은 전 세계를 가르치는 사람보다 위대하다. 자기 죄를 아는 사람은 천사를 보는 사람보다 위대하다. 상처 있는 사람은 피해의식이 동전의 양면처럼 있다. 더 깊게 보면 불안이 늘 있다. 그래서 관계 좋다가도 좀 관계 안 좋아지면 비굴하게 맞추거나, 칼같이 끊어냈다. 잘하지 못해서 버림 받으면 어떡하나 하는지 하는 불안이 늘 있었다. 화려한 스펙의 부모님 밑에서 감정 교류 없이 힘들었다. 더 깊이 가면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이 있다.
마가복음 4잘 39절 예수께서 깨어 바랍을 꾸짖으시며, 40절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의 믿음 없음을 깨뜨리기 위해 둘째를 보내주셨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지만, 말도 못하고 화장실도 못 가는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버림받지 못할까 하는 수현이를 보면서 불안이 날로날로 줄어들고 세상인정과 칭찬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절로 무릎이 꿇어지고 하나님꼐 기도하게 된다.
[적용] 숨겼던 것을 이제 고백하라고 주신 수치의 사건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처럼 그것을 고백하겠습니까?
4. 무너짐에도 불구하고 사명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 7절은 꿈에서 아비멜렉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이다. 치졸한 나그네 아브라함이 선지자라는 것이다. 선지자라는 단어는 여기서 처음 등장한다. 거짓말 해서 아내 뺏기도 내 죄 때문에 아파하고 슬퍼할 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써 주신 말씀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무너진 아픔 딛고 나아갈 길을 알려주신다. 아비멜렉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다. 세상을 위해 다시 기도하라 하신다. 그래야 사람들이 죽지 않고 살아난다고 하신다.
아비멜렉과 신하들 앞에서 숨겨진 죄 고백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태를 달라고 기도한다. 아내가 고통받고 약속의 자녀가 오지 못할 뻔한 구제불능인 자신을 보고 내 아들 아브라함아 불러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아비멜렉 위해서 기도한다. 아비멜렉은 불신앙으로 추락했다. 사라 통해 주실 약속의 자손도 땅도 모든 게 끝날 것 같았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아비멜렉으로부터 아내를 지켜주신다. 무너진 세계를 재개하신다. 내가 해야할 것은 무너진 자리에서 죄 고백하는 것이다. 그 후 드디어 이삭을 임신하게 된다. 내면의 목표할 것으로 들어가라. 주님은 친구들을 위해 기도할 때 중보기도 하라. 어떤 환경에서든 즉시 기도하라. 그 분이 누구라도 용서하고 간구하라.
[적용] 무너진 내가 주님의 택자, 주님의 선지자라는 말씀이 믿어집니까? 아브라함처럼 남들을 위해 이타적으로 기도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기도 제목
* 양세원
1. 상대를 막론하고 쉽게 흥분하고 혈기를 내고 막말을 쏟아내기 일쑤인데, 구원의 관점에서 지혜롭게 행동할 수 있기를
2. 불평불만이 터져 나올때마다 의식적으로 감사기도할 수 있기를
3. 매일 큐티와 생활예배의 회복
* 이소정
1. 진로 인도해주시길
2. 큐티와 운동을 통해 양육이 강건해지기를
3. 전쟁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도록
* 류가영
1. 영육간 강건
2. 수치를 목장에 잘 내어 놓기를
3. 이번주 큐티 기도회 1회 이상 참석해서 타인을 위해 기도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