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13 주일 설교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20:1-18>
하루일과를 어떻게 시작하세요? 저는 아침에 일어나 물을 마십니다. 잠에서 깬 직후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새 하루를 주셔서 감사하고 맡기신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입니다. 큐티본문을 읽고 샤워를 합니다. 그동안 말씀을 생각하고 세 아이들을 깨우고 씻기고 먹이고 입히고 학교를 보냅니다. 출근 후 책상에서 큐티를 합니다. 이후 하루 일과를 합니다.
월요일 큐티제목이 아브라함의 반복되는 실수였습니다. 오늘은 아브라함과 아비멜렉 두사람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고 아비멜렉은 불신자, 세상 왕인데 아브라함은 찌질하고 아비멜렉은 주인공 같아보입니다. 종교개혁가 칼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연약함,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주신다. 택자 아브라함은 연약해서 넘어지지만 하나님은 그런 그를 일으키신다'.
택자임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반복합니다.
헤브론은 조카 롯이 떠나갔을 때 아브라함의 속이 상했고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보여주신 땅입니다. 이 곳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땅, 예배의 처소였습니다. 근데 갑자기 헤브론을 떠나 네게브(남쪽)으로 향합니다. 천국을 상징하는 가나안을 떠나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으로 점점 내려갑니다. 조금 내려가면 애굽인데, 20년전 애굽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돌이켜 올라갑니다. 블레셋의 도시 그랄에 장막을 칩니다. 남쪽, 왕이사는 곳, 안전한 곳, 그렇다고 애굽으로 가진 않았다는 사실에 좋아합니다. 묻지도 않고 혼자 결정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왜 헤브론을 떠나 그랄로 갔을까요? 지금은 기근도 없습니다. 재산과 종도 많아졌습니다. 믿음도 성장했고 사라가 믿음의 자녀를 얻게 될 약속도 받았음에도 왜 그랬을까요? 아브라함 마음에 기근이 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목숨을 다해 기도했는데, 롯이 아내를 잃고 두 딸과 산으로 들어가 살고, 근친을 해서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지쳤을지 모릅니다. 사명이고 공동체고 말씀이고 뭐고 이젠 힘들다하며 내려갔을지 모릅니다. 영적 기근이 찾아오면 자기연민과 피해의식으로 갈라지고, 원망 우울 냉소와 허무의 잡초가 자라납니다. 약속이 사라지고 택자의 정체성을 잃습니다. 자기생각과 자기열심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자 그랄 사람에게 또 실수를 합니다. 또다시 거짓말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말하며 20년전 실수를 반복합니다. 그때는 기근이 들었고 믿음이 자라지 않았을 때였다는 이유라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기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택자임에도, 과거에 대단한 믿음의 적용을 했더라도 오늘 하루 주님의 은혜를 덧입지 않으면 우리는 넘어집니다. 믿음이 흔들리면 어디로 갈지 모릅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밀려와 고질적인 실수를 반복합니다. 믿음이 중요합니다. 대단한 아브라함이 치졸한 모습으로 나락에 빠진 것이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도 제 열심히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같이 하며 하나님께 가야하는데 욕심과 야망이 자라서 미국유학을 떠났습니다. 아내와 목사님은 공동체에 남아있기를 권면했지만 저는 미국으로 나갔습니다. 미국 교수님들에게도 인정을 받고 우수한 성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욕심이 있으니 박사도 하며 장학금까지 받았습니다. 세 군데나 합격했지만 뇌성마비로 태어난 자녀로 인해 한국으로 돌아와 매일을 아내와 싸웠습니다. 주님은 헤브론 같은 공동체로 다시 인도해주셔서 목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 가정을 위해 기도해주고 먹여주고 사랑해주는 섬김으로 부부가 살아나고 사역에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헤브론 같은 여러분의 목장에 붙어서 지체의 연약함을 껴안아주시길 바랍니다.
Q.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헤브론, 그랄, 애굽?
나의 반복되는 실수는 무엇입니까? 실수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택자의 실수가 인정되나요?
2. 실수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더하십니다.
세상사람 다 한다고, 난 안들킨다고 죄짓지 마세요. 하나님은 다 아시고 막으십니다. (갈라디아서 4:7). 사라를 데려간 그 밤에 아브라함을 혼내는게 아니라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 '너 죽는다'고 말하십니다. 실수한건 아브라함인데 아비멜렉을 책망하십니다. 실수를 반복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자이기 때문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본토 친척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내 연약함과 비천함을 나보다 더 잘 아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나를 더 잘 아심을 믿고 주님품에 안기면 됩니다.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할 때, 그 위기의 밤에 아비멜렉을 찾아가십니다. 내 지체를 지켜주십니다. 옳고 그름으로 보면 아비멜렉 왕이 아브라함보다 나아보입니다. 그런데 옳고그름의 한계가 여기에 있습니다. 나는 깨끗하니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어. 이것이 인간의 양심이 가진 한계입니다. 믿음은 없고 윤리와 도덕만 있는 아비멜렉에게 하나님은 그 수준에 맞추어 인정해주십니다. 아비멜렉이 사라와 동침하면 약속의 자녀 이삭이 태어나지 못하기에 하나님이 친히 막아주십니다. 택자의 실수를 직접 해결해주십니다. 공동체에서 직분을 맡아 공동체를 섬기는게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아야합니다. 그 일이 하나님의 일이고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자를 하나님이 지키십니다. 택자인 나를 해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범죄하는 것입니다. 치졸한 실수를 반복하는 나를 이렇게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을 기억하고 구원에 일에 힘쓰는 우리가 되기르 원합니다.
Q. 나의 치졸한 실수에도 불구하고 더하신 자비는 무엇입니까?
3. 숨김에도 불구하고 죄를 고백하게 하십니다.
아비멜렉은 놀라 신하들을 소집하여 전합니다. 그 자리에 아브라함을 불러 책망합니다. 도대체 왜 거짓말을 했냐고 질책하자 숨겨왔던 죄를 고백합니다. 아내로 인해 자신이 죽을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 거짓말을 했다고 합니다. 약속을 잊고 떠나면 오히려 두려움과 불안, 자기생각에 빠지게 됩니다. 아늑하고 안전해보이는 그랄로 가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사라가 자신의 이복누이로서 근친결혼을 한 것을 처음으로 이야기합니다. 아브라함이 오랫동안 숨겨왔던 가정의 상처를 고백한 것입니다. 더 나아가 숨겨왔던 죄를 고백합니다.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는 곳마다 거짓말을 했고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다고 말합니다. 거친 땅에서 두려웠고, 아내를 언제든 팔아먹으려 설득했고 비겁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택자라고 무조건 하나님이 전자동으로 지켜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를 지키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자비를 믿고, 숨겨진 죄를 고백하고 돌이키게 하기 위함입니다. 숨겨진 죄는 우리로 하여금 회칠한 담이 되게 합니다. 아브라함의 고백을 통해 회칠한 담이 무너지고 하나님이 택자인 우리에게 베푸시는 최고의 은혜가 임합니다. '자기 죄를 아는 사람은 죽은자를 일으키는 자보다 위대하다', '자기 죄를 위해 한시간을 울부짖는 자는 온 세계를 가르치는 자보다 위대하다'. 실수와 상처를 내어놓으면 하나님도 나를 버릴 것 같다는 불신앙이 있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실수하는데 하나님이 나를 끝까지 붙들고 천국에 데려가실까? 하는 믿음없음이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4:39-40) 바다더라 잠잠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잠잠해지더라,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어찌 믿음이 없느냐! - 저의 믿음없음을 위해 자녀를 허락하셨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뇌성마비를 앓는 아들이 있습니다. 저는 완벽주의로 인한 두려움과 불안이 있었는데 아들을 키우면서 별 인생 없음을 느끼고 두려움과 불안이 작아짐을 느낍니다. 상한 갈대를 품고 가면서 내가 원하던 세상 인정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삶으로 배워가고 있습니다. 아픈 아들 덕에 절로 무릎이 꿇어집니다.
Q. 숨겼던 것을 고백하라고 주신 사건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처럼 그것을 고백하겠습니까?
4. 무너짐에도 불구하고 사명을 회복시켜주십니다.
치졸한 실수를 한 치졸한 아브라함을 향해 선지자!라고 불러주십니다. 전쟁포로로 끌려간 롯을 구했던 때에 불러주신 말도 아니고, 아들 이삭을 바치려했던 믿음의 순간에 불러주신 말이 아닙니다. 내 죄 때문에 애통해하며 고백할 때, 나를 택자라, 선지자라 불러주십니다. 회복으로 인도하십니다. 세상을 위하여 다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아비멜렉의 태를 열어달라고 기도하자 응답해주십니다. 아브라함은 불신앙으로 추락하며 세상 왕 앞에서 수치를 다했습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하는 약속도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게 끝난 것 같던 그 밤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선지자라 하시면서 사명을 주십니다. 너는 내 택자, 내 선지자다 하시는 말씀을 듣고 중보기도를 해야합니다. 나의 태는 닫혔지만 남의 태를 위해 기도할 때 생명이 있습니다.
Q. 무너진 내가 주님의 택자, 주님의 선지자라는 말씀이 믿어집니까?
이타적으로 기도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양초명 목장보고서>
참여인원: 이윤제, 윤산, 양초명
1. 한주간 어떻게 지냈는지?
- 지난 주 적용으로 목장 미출석 목원들에게 연락을 돌렸는데 처음 어려웠던 마음과는 달리 잘 대답해주어서 좋았다.
-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고 했는데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약대를 못가더라도 탁 과 편입을 할 때에도 지금의 노력이 도움이 될테니 부담 갖지말고, 그럼에도 일단 약대편입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마음으로 인정이 되지만 몸이 잘 안따라준다. 최근 잠을 잘 자서 멘탈은 잡히는데 절대적인 공부량이 줄어들어 걱정이다. 주변사람들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해준만큼 꾸준히 해나가야겠다.
- 여자친구랑 매일 만나서 같이 온라인 수업을 들었다. 즐거운 한 주 였다.
2. 숨겼던 것을 고백하라고 주신 사건은 무엇입니까? 아브라함처럼 그것을 고백하겠습니까?
학교 선교동아리에서 인정받을 정도로 신앙적으로 성숙하고 의롭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음란에 취약한 사람이라는 게 나의 수치다. 혼전 순결을 지키지 못하는 사건을 통해 내 신앙에 남은 게 없다고 느꼈다. 너무 수치스러웠지만 나누게 됐다. 내 안에 응어리진 죄된 마음이 풀어졌고, 점차 음란의 문제가 해결됨을 느꼈다. 넘어질 때가 많지만 계속 나누었던 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음란한 사람들을 많이 정죄했었는데 정죄를 못하게 됐다. 나랑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만 만났었다면,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의 마음을 공감하게 됐다.
대학교 때 술먹고 동기에게 스킨십을 한 사건으로 모든 관계들이 무너진 사건을 겪으며 평소에 행했던 크고 작은 음란들이 하나하나 기억났어요. 당시 너무 두려워 목사님께 전화를 하고 적용으로 부모님께 말씀드리라고 하셨는데, 정말 누구보다 말하기 힘든 사람이 부모님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할 수 있는게 없어 어쩔수없이 내 크고 작은 죄들을 고백하게 되었던 사건이었어요.
대학교 다니면서 술먹고 실수한 사건이 있었는데 죄책감이 많이 들었어요. 관계들이 다 깨지면서 세상이 무섭다고 느꼈어요.
하나님이 우리를 벌주시는 역할만 하시진 않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사랑하신다 하시니
눌리는 마음, 두려운 마음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을 찾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어!
<기도제목>
목원들 모두 코로나로부터 지켜주시길
공부할 때 강의 듣는 것 뿐만 아니라 복습하며 공부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체력관리 잘하며 버틸 수 있도록.
생활예배 회복되어서 실습할 때 의미있게 할 수 있도록, 음란을 절제하는 마음 부어주시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