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7 예수님을 따르려거든
마가복음 8:27-35
박성근 목사
안녕하세요. 박성근 목사입니다. 우리들교회 개척 후 처음으로 주일 강단에 섰습니다. 좀 전에 어떤 목사님이 자기가 강단에 선다는 것이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하시는데 저도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걸 좀 전에 찬양하면서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 살아계십니까? 할렐루야. 준비되어 오늘 이렇게 선 것이 아니라 동료 목사님이 2주일이나 걸쳐서 설교를 준비를 하셨는데 갑자기 못하게 되셔서 갑자기 제가 이틀 전에 대타로 연락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긴장되시죠? 제가 무슨 말을 할 지 몰라서 저도 긴장됩니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처음 서는 설교인데 하루 전에 연락받고 합니다. 여러분 제가 이 자리에 서서 너무 놀라셨죠? 저도 너무 놀라서 지금까지 놀라고 있습니다. 제가 새벽 큐티를 이번주 목요일날 했죠? 목요일날 하고 갑자기 뽑혔는데 제가 실력 없는 거 여러분들 너무 잘 아시니까 너무 긴장되시죠? 저도 너무 긴장됩니다. 참 어떻게 실력도 없는 저를 하루 전에 이렇게 부탁할 수 있는지 우리의 인생이 참 예측불허의 인생입니다. 제가 이틀 전 금요일 장례 위로 예배를 인도하러 집을 나서는 중에 연락을 받았어요. 그날 큐티 말씀이 변화산에서 예수님만 바라보라는 내용이었는데 통화를 하면서 갑자기 눈물이 나왔습니다. 큐티를 하면서도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저 때문입니다. 주여. 날마다 저희가 바라봐야 될 것은 예수님 밖에 없네요. 오늘 설교는 하나님이 하루하루 잘 살아내라고 저에게 주시는 테스트요, 시험이요, 인터뷰 같습니다.
인터뷰라고 하니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가 하나 있는데요. 여러분은 어떤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으시나요? 제가 하드웨어는 어느 정도 좀 되어서 괜찮을 곳을 지원하면 면접할 기회는 대부분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가 있는데요. 여의도 트윈 타워 꼭대기에 올라갔어요. 올라가서 방에 들어가니까 부사장님과 임원 여러분들이 한 줄로 계셨어요. 지원자 6명과 같이 방에 들어갔는데, 더 긴장이 되네요. 한 지원자가 자기가 한 프로젝트를 영어로 유창하게 설명을 하는 거예요. 영어도 잘하는데 이 발음도 영국식 악센트, 악센트 중에도 굉장히 상류층이 쓰는 악센트 발음이어서 저는 옆에서 들으면서 그저 감탄만 하고 있었어요. 발표가 끝나고 면접관이 지원자에게 '영어를 어디서 배웠냐?'고 물으니 지원자가 뭐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자기는 해외에 나간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자기는 영어를 이태원에서 배웠다.'고 하는 거예요. 그때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귀국한 지 얼마 안 되는 저는 그날 영어를 한마디도 안하고 면접실에서 나왔습니다. 재밌으신가요? 역시 성령의 황홀로 하나되니 소통이 되네요. 그럼 더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한가지 더 이야기를 하면 몇 주 전 제가 몰몬교 대표 부부를 우리들교회 대예배에 초대한 적이 있습니다. 대표인 건 교회에 와서 알았어요. 그날 설교 말씀이 성령의 열심이어서 열심을 내어서 영어를 했는데 못 알아듣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나 영국에서 공부했다.'고 했더니 그냥 웃더라고요. 그런데 그날 영어 통역이 좋아서 통역해 준 자매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그 자매는 해외에 나간 적이 없는데 '너 미국에서 공부했냐?'고 물어서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주님은 나를 날마다 시험하시고 테스트하시는데 오늘 예배를 통하여 변화되지 않는 나 때문에 힘든 그 한 분이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 예수님을 따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영어도, 한국어도 서툴러서 오늘 말씀은 영국 사람도, 한국 사람도 아닌 성령의 시민이 되어 성령의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 성령의 시민 이야기를 하시며 본 회퍼 목사님의 나는 누구인가 라는 시를 언급해 주셨는데 한 주간 사소한 일로 인해 쉽게 분노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하시는 분이 있으십니까? 1944년 6월, 나치의 수용소 감방 안에서 쓴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이 하나님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라고 끝납니다. 확실히 고난에 있으니 나는 주님의 것이라는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저는 인생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학교, 직장, 결혼, 아버지, 사역자가 되며 본 회퍼의 고백이 점점 나의 고백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인생의 많은 인터뷰에서 쓴맛을 보게 되니 이제 주님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 어떤 것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쓴맛 보지 않고 따랐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도 있지만 제 마음대로 안 되어서 참 힘들었습니다. 이런 제가 오늘 성령의 황홀을 경험하고 예수님을 따르기를 소망해봅니다.
1.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27-30절)
예수님이 귀신을 내쫓고 광풍을 잠잠케 하고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온갖 기적을 베푸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신앙고백을 요구하는 장소가 바로 가이사랴 빌립보입니다. 여기에는 큰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요. 헤롯이 자신의 네 아들 중 빌립에게 나눠준 지방이며 가이사 아구스토 황제에게 흰 대리석 신전을 헤롯이 지어 바친 곳입니다. 우상이 들끓는 장소이죠. 그런 곳에서 예수님은 신앙 고백을 요구하셨습니다. 이곳은 유다 북쪽의 경계 지역으로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곳인데요. 예수님은 사람들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들어야 할 신앙고백을 소요와 분쟁을 피해 이곳에서 물으십니다. 그간 내가 기적을 베풀었는데 내 사역의 결과를 무엇이라 생각하니? 물으신 것입니다. 로마 황제에게 바친 세계 최고의 명품이 모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곳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28절에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예수님을 미쳤다고 귀신 들렸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역사상 위대한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로 보는 사람도 있으니 감사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예수님이 좋아하실 수 없습니다. 이번에는 범위를 좁혀서 예수님과 가깝게 지낸, 제자 훈련을 받은 제자들에게 직접적이고도 개인적으로 물어보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이 아무리 설명을 하시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신앙고백을 요구하시는데 제자들이 못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29절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이 대답이 안 나올까봐 주님이 걱정을 하셨을텐데요. 그래도 제대로 대답해 준 것이 다행이지만 대답을 했어도 베드로는 여전히 잘 모릅니다. 십자가가 싫어서 묻기도 두렵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들교회 어떤 분이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는 거 같은데 빚지지 말라고 하니까 묻기가 두렵죠. 이혼하고 싶은데 이혼하지 말라고 하니까 묻기가 두렵습니다. 빚지지 말고 이혼하지 말라는 처방이 싫으니까 묻기도 두렵고 깨닫기도 싫고 어렵도다하면서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는 신앙고백이 싫어서 도망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참으로 입으로 하는 고백과 삶으로 하는 고백이 다 어렵습니다.
헤롯처럼 큰 왕도 딸 살로메가 원하는데 나라의 절반이라도 해주는 것이 자녀 교육을 잘 하는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녀에 대해 유교적 관습을 가진 우리나라에서도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게 사랑이 아닌 줄을 다 압니다. 신앙 고백이 확실해야 자녀 교육에 대한 지혜도 생깁니다. 제가 태어날 때 솔로몬 같은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어머니가 기도하셨다고 하는데 솔로몬이 위대한 잠언을 썼다면 어머니의 기대와 달리 저는 잠만 잤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공부를 안하고 잠만 자니 학교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제가 '상고에 가면 어떻겠냐?'고 상담을 하신 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전부 다들 주위에서는 외국에 보낼 때 빌립보 같은 강남에서 공부도 못하니 상고를 보낸다는 것에 대해 말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선생님이 어머니께 놀라서 '어머니 왜 그러십니까?'라고 하셨답니다. 그 당시 담임 선생님도 어머니와 이야기를 한 후 감동을 받은 것 같습니다. 신앙 고백이 확실해야 자녀 교육에 대한 지혜가 생깁니다. 여러분의 신앙고백은 어떻습니까? 주는 그리스도시라는 고백이 있습니까? 신앙고백이 확실하지 않아서 문제가 많이 일어납니다. 신앙 고백이 확실하면 그때부터 할 말과 안 할 말을 분별하고 만나야 될 사람과 안 만나야 될 사람, 돈도 어떻게 사용해야 될지가 분명히 분별이 됩니다. 신앙고백이 하나의 기점이 되어서 내가 부족해도 어떤 것이 지혜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런 터닝 포인트가 있으신지요? 나에게 주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남편이고 아내이고 돈이고 직장이고 자식이기 때문에 자꾸 불평, 불만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다 라는 고백을 하게 되면 부부 관계, 사업, 진로, 다 달라집니다. 물론 이때 베드로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고백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물고기 잡으러 갔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이 고백을 받으셨습니다. 입으로 시인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이 고백을 모든 제자들 중에 베드로만 했습니다. 입으로 한 베드로의 그 고백 때문에 하나님은 신실하게 인도해 가셨습니다. 신앙고백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을 받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여러분은 가이사랴 빌립보 같은 환경에서 주님이 여러분에게 내가 누구냐?라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모든 환경이 갖춰진 불신결혼을 하려할 때, 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줄 불법을 제의받았을 때 주님이 이렇게 물으시면 주님이 그리스도라고 답할 수 있겠습니까?
목장 탐방을 가면 직장, 대부분 남자 집사님들은 직장에 다니시죠. 퇴근 후 넷플릭스나 유튜브 드라마를 시청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그런데 그 유튜브를 보면서 말씀 보고 예배 드리는 것을 힘들어하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영국에서 대학원 시절에 같은 건물에 살던 한국 형에게 교회 가자고 전도한 적이 있었어요. 그 형이 그 당시 학생이었고 저녁 때 대학원생이었는데 1년에 360일 이상을 공연을 보러 다니는 공연 티켓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참고로 한국에서 굉장히 몇 십만원 하는 티켓이 영국에서는 몇 천원, 만원 미만으로 볼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그 형 따라서 콘서트를 몇 번 클래식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재미있는 거는 공연장에서 이 형과 비슷한 사람들이 몇 명 더 있어서 서로를 알아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령의 황홀을 모르면 각자의 황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여전히 끊지 못하는 중독이 있더라도 주님을 따라가려는 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베드로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된다면 주님이 나의 중독에서부터 구원해주실 줄 믿습니다. 이번주 수요 예배에서, 아까 기도해 주셨던 장로님께서 중독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은혜를 깨닫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와 헤어져 애착 형성이 안 돼 힘들었음에도 온 가족에게 복음을 전한 초원님 이야기와 본인의 술 중독, 분노조절장애 등을 이야기해주신 장로님 이야기를 들으며 이번 한 주도 나의 중독을 이야기하고, 인정하고 하루의 은혜, 한 주의 은혜를 구해봅니다.
[적용]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분이라고 하고 제자들은 두려워서 고백 못하고 베드로는 확실치 않지만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합니까?
2.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30절)
이렇게 신앙고백을 확실하고 정확하게 햇는데 왜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우리의 가이사랴 빌립보, 곧 뭔가 잘된 곳에서 우리의 신앙고백을 요구하십니다. 물질의 복을 받았으면 그것이 영적으로도 이어져 나눠줄 것이 있는 인생이 되어야 하는데 신앙 고백이 확실치 않았기에 세상의 기복 종교와 다를 바 없는 신앙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나요? 물질의 축복도 좋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어떤 환경에서도 예수님을 전하는 인생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 제자들이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이르지 말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요즘 나에게 예수님은 누구시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저에게 누구죠? 예수님은 저에게 유송이 아빠입니다. 지난 달에 유송이에게 밥을 주려고 하는데 저한테 짜증을 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부모학교에서 배운 I message를 생각하며 대화를 하였습니다. '유송아 너가 엄마에게 선물을 주려고 하는데 엄마가 짜증내면 유송아 너 슬프지?', '어', '그래. 그런데 유송아 너가 아빠에게 선물을 주려고 하는데 아빠가 짜증을 내면 유송아 너 슬프지 않니?', '아니', '유송아 너가 밥 먹을 때 짜증내면 아빠 마음이 아프니까 짜증내지마', '네' 유송이가 어려서부터 권력을 알아 악하듯이 저도 죄인입니다. 저도 유송이처럼 힘 세고 강한 사람에게 약하지만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는 이 베드로의 고백을 듣게 하시니 점점 성령의 실상을 보게 하시는 것 같습니다. 유송이에게 뭐라고 하기 보다 I message로 나의 감정을 이야기하려고 하니 지난주 어린이집 가정통신문에 유송이의 사회 관계에 대한 평을 읽었습니다. 유송이는 나와 친구의 생각이 서로 다름을 알며 친구의 생각도 서로 받아들일 줄 안다고 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고 유송이의 고백이 되도록 나의 말이 아닌 성령의 말을 해야겠습니다. 여전히 내 말이 앞설 때가 있지만 성령의 말을 하려고 할 때 말을 해야 될 때와 하지 말아야 될 때를 성령님께서 알게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확실한 신앙 고백을 했어도 아무에게 이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경계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적용] 나는 예수님을 전할 준비가 되어있나요?
3.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31-33절)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확실한 신앙고백을 들으신 때입니다. 신앙고백이 확실하니까 이제 엄청난 고난의 말씀을 주십니다.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하시네요. 베드로가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에서 신앙고백을 하여 한껏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는데요. 그리하여 인간적인 열심과 충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주를 위해 뭐든 할 것 같았죠. 그런데 이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사탄이라고 꾸짖으세요. 예수님, 그러시는 게 아니예요.라고 주님을 야단치고 강력하게 반발한 이 베드로도 확신에 차 있고 이런 베드로에게 사탄아라고 꾸짖을 만큼 예수님도 확신에 차 계십니다. 우리는 누구를 따라야 할까요? 베드로의 확신? 예수님의 확신? 어느 것이 더 좋아보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 역시 떨어질 수도, 망할 수도, 암에 걸릴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됩니다. 이제는 이런 환경에서 제삼일에 살아나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암이 와도 살아날 거다, 떨어져도 살아날 거다.라고 말씀하시는데 베드로는 절대 그런 일은 없어요. 내 사전에 떨어지는 일은 없어요. 예수님 믿는 나에게 실패란 건 없습니다.라고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이에요.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을 말씀하시는데 이 베드로는 하나님이 당신을 긍휼이 여겨서 다 잘될 거라고, 너가 떨어지면 누가 그 대학에 가니? 그 회사에 붙니? 너가 안되면 누가 되겠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죽어야 한다고 하시는데 베드로에게는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절대 고난을 주시지 않는다. 예수 믿는 자는 절대 가난하게 살지 않는다.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번주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많은 이 판교 지역에서 영구 임대 아파트에 사시는 한 목원분의 은혜로운 나눔을 들었습니다. 남편이 구속되고 아이 둘을 양육해야 했기에 기초수급자로 선정되어 주거, 의료, 교육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리고 계신다고 하는데요. 거기에 이분이 작년에 일을 하면서 맞벌이 가정의 혜택인 아이들의 도시락이 저녁마다 배달이 되어 왔고, 겨울 방학엔 점심, 저녁 이렇게 두 번이나 배달이 왔기에 따로 장을 보지 않고 과일 값 정도로 식비를 쓰고 계셨다고 해요. 그냥 안정적으로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것이 구속사와는 거리가 먼 본인의 이기적인 욕심인 것을 몰랐기에 여러 사건이 오고 이젠 경제적으로 낮아져 수급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라에서 주는 도시락은 맛이 없다.'라는 말을 들어도 '그 맛없는 것을 먹는 것도 감사할 따름'이라는 고백이 되어진다고 합니다. 그냥 주님 앞에 죄인이기에 이렇게 낮아짐의 환경에서 먹고, 입고, 살게 하시는 것이 그저 감사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인스타나 블로그를 보며 예쁜 집, 예쁜 옷, 예쁜 그릇, 소품 등을 보며 힐링을 하곤 하는데 그것을 보며 사고 싶은 마음보다 '예쁘다.'에서 끝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지금의 형편이 형편이니 '예쁘다.'에서 끝날 수 있으나 돈이 있으면 샀겠지요. 수로보니게 여인의 마음, 부스러기라도 얻고 싶은 그 간절함이 제겐 없지만, 처절하게 낮아진 이 환경에서도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이 너무 애통하지만 그래도 조금씩 죄인임을 인정하며 가는 저이기를 함께하며 기도해주는 공동체가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적용으로 감사함으로 남편과 아이들을 잘 섬기고 맛없는 도시락이지만 최선을 다해서 데우고, 볶고, 첨가해서 맛을 살려보겠다고 합니다. 이런 나눔이 예수님의 확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나눔이지 않을까요? 베드로는 다 잘될 거라고 말하지만 자신의 확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달리실 때 도망간 사람이 베드로자나요. 순종보다 내 확신이 앞서서 성령의 황홀을 경험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면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베드로는 자기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만 보고 고난을 보지 못했기에 예수님이 왕 되신 후에 자기 계획을 가지고 막은 것입니다. 인간이 100% 죄인이라 다 자기 생각으로 예수님을 위한다고 쓸데없이 장담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정확하게 사탄이라고 하십니다. 너는 나를 유혹해서 넘어드리고 죄 짓게 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하고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신앙고백을 확실히 했음에도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시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고 항변했습니다. 그때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사탄이라고 하셨는데 수제자 베드로니까 사탄이라고 하시지 다른 제자들에게는 안 하셨습니다. 양육을 받고 알아듣는 사람들에게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목장에서, 공동체에서 이렇게 쓴소리 들었으면 아 내가 베드로구나.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적용] 나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합니까? 사람의 일을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나를 위하는 부모, 형제에게 십자가의 길을 막는다고 사탄이라고 물러가라고 하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 겉으로 그러면 안되겠죠. 참 쉽지 않습니다.
몇 주 전에 회의가 있어 판교 성전 옆에 울림 카페에 갔는데요. 우연히 그 앞에 있는 KIS 국제학교 교장 선생님을 만났어요. 제가 그 앞에 영문 큐티인이 마침 울림 카페에 진열되어 있어서 한 권을 사드리고 우리들교회 예배에 대해서, 우리들교회는 한 사람을 위한 예배이고 그 한 사람 때문에 공동체가 살아나고 그 한사람의 간증이 큐티인 묵상 간증에 실려있다고 하니 알아들으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저에게 두 가지를 말씀하세요. 첫번째 울림 카페가 국제 학교 옆에 있어서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좋다고 하시고, 두번째로 이 외국인 학교가 기독교 학교가 아니지만 우리들교회 사역을 돕고 싶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너무 놀랍고 감사하지 않나요? 그런데 이 일이 서로의 유익을 구하는 일이 되기 보다는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제가 또 만나게 된다면 교장 선생님이 예배부터 참석하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다음 번에 해 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일을 생각하니 큐티인도 사 드리고, 그리고 제가 붙으면 회개하고 떨어지면 감사하라 이 붙회떨감의 메시지를 그떄 제가 말했는데 알아들으시더라고요. 믿지 않으셔도 상식이 있으시니 우리들교회 구속사 메시지를 알아듣는 걸 보면서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그러면서 저한테 'God bless you.' 축복한다고. 여러분 God bless you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정말 우리가 축복받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경험했다면 예수님을 따라야 돼죠.
4.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34-35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제자도입니다. 마가복음이 주는 예수 그리스도시고, 이 제자도에 대해서 말한 것이 다른 복음서와 차별화된 마가복음의 특징이죠. 자기 부인은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자기 십자가 앞에서, 즉 집 나가고 바람피고 때리고 욕하는 남편과 부인 앞에서, 말 안 듣고 병든 자녀 앞에서 나의 죄 됨과 누추함을 말하는 것이 바로 자기 부인입니다. 자기 부인은 내 문제를 알고 어디서든 '고마워', '미안해' 할 수 있는 권세, 성령의 권세죠. 그 권세를 언제쯤 가질 수 있을까요? 주여.
가이사랴 빌립보는 신앙고백의 장소이고 예루살렘은 이제 죽어야 할 장소인데 자기를 부인하려니 생명을 내놓는 일보다 힘이 듭니다. 이 세대의 자기 부인은 어떤 것이죠? 무엇일까요?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하기 전에 내 죄를 고백하는 것, 내 죄를 봐야 됩니다. 내 죄를 고백하는 게 무엇일까? 제가 대학교 2-3학년 때 캠브릿지에서 조직신학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서 그 강의를 들으러 간 것이 아니라 방학이 석 달이 되다 보니 갈 데가 없어서 갔어요. 그러니 이 voice로도 못 듣고 sound로만 들으니 안 그래도 기억력이 없는데 아무것도 기억나는 것이 없습니다. 제목 정도만 기억이 나는데 첫번째 해는 칼 트루먼 교수님이 구원에 관해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다.라고 전해주셨고, 두번째 해는 D. A. 카슨, 돈 카슨 교수님이 성화에 관해 강의를 해주셨었는데요. 우리들교회가 부르짖는 성화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쉽게 해석해주지만 정말 영어가 안되니 어렵기도 했지만 설명도 어려우니 기억이 하나도 안 납니다. 기억이 안 난다는 것도 기억이 안 났어요. 이제 조금씩 기억을 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며 자기를 부인하며 내 죄를 보는 것이 성화이고 큐티인 것 같습니다. 주님 때문에 목숨을 잃고자 하면 영원히 살고 종말에 육체까지 부활하지만 내 목숨만 살고자 하면 영육간에 모두 목숨을 잃는다고 합니다. 내 때라고 하신 모든 것이 죽음의 때를 말씀하는 것인데 죽는 것에 대해 예비하고 가는 것이 가장 큰 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기 싫어서 죽는 것에 대해서 듣기도 싫어하지만 내가 언제가 죽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지혜입니다. 그리고 그날이 빨리 올 수 있다는 것을 알 때 겸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죽음에 대해 말씀을 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목숨을 얻는 길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구원을 위해 사는 제자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내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면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보상받으려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지난 주 한 목자님으로부터 카톡을 받았는데요. 시애틀에 계신 한 집사님이 30년 전 고등학생일 때 목사님이 집에 불러주셔서 밥 해주시고 큐티 가르쳐 주셨었는데 그때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별로 감사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14년 동안 죽을 것 같았던 결혼 생활에서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고 온 곳이 어딘 줄 아십니까? 우리들교회 목장, 줌 목장을 통해서 자기 죄를 보고 살아남을 경험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30년 전에 목사님이 씨 뿌려주시고 양육해주셨기에 지금 내가 여기에 있구나 싶다고 하시네요. 정말 감격이 되지 않나요? 감격이 되었다고 합니다. 늘 '내가 죽은 뒤에라도 열매를 맺기를 바란다.'고 하시는 목사님의 마음을 주님이 아시고 이렇게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리게 해주시는 것 같다고 하네요. 이런 문자가 하나님이 갚아주시는 게 아닐까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하면 두 부류로 나뉘는 걸 보게 됩니다. '가요', '못 가요' 예수님은 간다고 하고 베드로는 못 간다고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의 확신과 주님의 확신을 분별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수 있도록 목숨을 내놓고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십자가가 너무 싫고 두렵습니다. 말하기도 싫고 할 수만 있다면 무덤까지 가져가고 싶은 죄와 두려운 일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하기도 싫고 무덤까지 가져가고 싶은 그것 때문에 이렇게 예수님께 나와서 예배 드리고 헌신하고 내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나의 누추함과 죄인됨을 알고 엎드릴 때 구원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자기 부인과 헌신이 가능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제자의 조건을 보면서 문득 존 스토트 목사님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대학원 시절에 영국 교회를 출석을 했는데요. 주일 예배 전에 존 스토트 목사님으로부터 같이 식사를 하자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이 누군지 잘 모르시는 분도 있다고 하시는데,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이 시대에 두 명의 석학이 있는데 그 중 한 분이 존 스토트 목사님이고, 다른 분은 제가 잠깐 기억이 안 나네요. 예배 후에 목사님 집에 초대를 받아서 같이 식사를 하였는데, 식사 메뉴는 인도 커리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그 당시 약간의 이슈가 되었던, 제가 만난다고 해서 잠시 인터넷을 보니까 존 스토트 목사님 하니까 지옥 관련된 기사가 떴길래 제가 목사님한테 물었죠. 그러니 목사님께서 종이에다 펜으로 적어 주시면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던 생각이 나지만, 솔직히 그 대단한 분과 무슨 얘기를 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잘 안납니다. 정말 말씀이 안 들리는 저의 실상입니다. 그 유명하신 분을 제가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님의 책 신약의 메세지를 읽으니 마가복음은 제자도에 관한 내용이라고 하시는데, 제자도와 주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 두 가지가 마가복음이 다른 복음서와 차별화되는. 목사님이 제자의 조건에 대해 여러 가지 말씀을 하셨는데 그 중 급진적 제자의 마지막 특징이 죽음이라고 하십니다. 사도들의 죽음으로 로마가 변화되고 생명이 살아났다고 하는데 우리들교회도 많은 분들이 십자가를 지고 죽어지는 적용을 하셔서 가정이 살아나는 기적을 매주 경험하게 하십니다. 특히 지난주 공동체 간증에서 공동체를 사모하여 합격한 두바이 항공사를 내려 놓는 적용을 한 청년의 나눔과 말씀과 목장을 사모하여 미국 직장을 내려 놓은 제리 부목자님의 이야기는 십자가 지고 죽어지는 성령의 시민의 나눔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십자가 지는 것도 어렵고 죽어지는 것도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그래서 오늘도 큐티를 하며 예배를 드리며, 오늘 큐티 말씀이 어린 아이를 섬기는 자가 1등이 된다고 하시는데 그 어린 아이를 섬기는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말씀을 보고 예배를 드리며 200 이하의 나의 감정들이 모두 죽어지고 성령의 황홀로 우리 공동체가 하나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번주 부부 목장에 탐방에서 나눔을 하는데 예배와 목장과 나눔은 좋지만 십자가 복음은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자녀가 아프고 힘들 때 나도 마음이 아프지만 힘든 것을 받아내기는 어렵다고 하시네요. 다음 날 큐티 말씀에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려면, 어제 말씀이었죠?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는데 십자가를 져야지 이 죄와 슬픔과 죽음과 같은 세상과 음부의 세력에서 살아날 수 있다고 합니다. 로마 시민, 미국 시민이 아니라 성령의 시민이 되기 위해 목장에 가서 듣고 물어야 되는데 우리가 늘 듣는 말이지만 말씀을 듣고 목장에서 듣고 물을 때 자녀와 십자가 모든 것을,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는 비결인데 그게 잘 안되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적이 아닌 십자가의 부활을 가르치십니다. 예루살렘, 곧 십자가를 지고 죽으셔야 할 그곳으로 스스로 올라가시며 그 동안 가르친 것을 삶으로 실천하십니다. 십자가의 부활을 가르치시며 본격적인 제자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는 자입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아무리 기적을 베풀고 가르치셔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심하십니다. 변하지 않는 나 때문에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예수님의 안타까움을 깨닫기 원합니다. 변하지 않는 내 가족의 구원을 위해 내가 죽어야 할 예루살렘이 어디인지 깨닫고 그곳으로 올라가는 믿음의 실천을 하라고 하십니다.
[적용] 버리고 가 아니고 지고 가야 할 자기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기도제목
미혜
매월 1일~10일은 업무가 가장 바쁜 날인데 치료와 병행하는 게 걱정입니다. 순적하게 진행되도록
우리 목장 식구들 한 주 잘 자고 잘 먹고 큐티하고 그렇게 여전하게 일상을 살도록
예선
생활예배 잘 드리도록
아침 시간 낭비하지 않도록 힘 주시길
매일 틈틈이 운동하도록
나의 일만 생각하여 항상 불안하고 두려운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나와 목장 식구들을 위해 울림기도회, 큐티기도회, 월삭기도회 참석하여 기도하도록
실업 급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단계에 맞춰 잘 신청하고 순조롭게 절차가 진행되어 받을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