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예수님을 따르려거든
본문: 마가복음 8:27-35
설교: 박성근 목사
27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주님은 나를 날마다 시험하시고 테스트 하시는데 오늘 예배를 통하여 이 변화되지 않는 나 때문에 힘든 그 한 분이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 예수님을 따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 영어도, 한국어도 서툴러서 오늘 말씀은 영국 사람도, 한국 사람도 아닌 성령이 시민이 되어 성령의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 성령의 시민 이야기를 하시며 본 회퍼 목사님의 나는 누구인가 라는 시를 언급해 주셨는데, 한주간 사소한 일로 인해 쉽게 분노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신 분이 있으십니까? 1944년 그 6월, 나치의 수용소 감방 안에서 쓴 이 시의 마지막 부분이 하나님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라고 끝납니다. 확실히 고난이 있으니 나는 주님의 것이라는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저는 인생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학교, 직장, 결혼, 아버지, 사역자가 되며 본 회퍼의 고백이 점점 나의 고백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인생의 많은 인터뷰에서 쓴맛을 보게 되니 이제 주님을 따라가는 것이 어떤 것보다 중요하고 가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쓴 맛 보지 않고 따랐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도 있지만 제 마음대로 안되어서 참 힘들었습니다. 이런 제가 오늘 성령의 황홀을 경험하고 예수님을 따르기를 소망해 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거든
1.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27-30
27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예수님이 귀신을 내쫓고 강풍을 잠잠케 하고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온갖 기적을 배푸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신앙고백을 요구하시는 장소가 바로 가이사랴 빌립보입니다. 여기에는 큰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요, 헤롯이 자신의 네 아들 중 빌립에게 나눠준 지방이며 가이사 아우구스도 황제에게 주는 흰 대리석 신전을 헤롯이 지어 바친 곳입니다. 우상을 들끓는 장소이죠. 그런 곳에서 예수님은 신앙고백을 요구하셨습니다. 이 곳은 유다 북쪽의 경계지역으로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곳인데요, 예수님은 사람들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들어야 할 신앙고백을, 소요와 분쟁을 피해 이곳에서 물으십니다. '그간 내가 기적을 베풀었는데, 내 사역의 결과를 무엇이라 생각하니?' 물으신 것입니다. 로마 황제에게 바친 세계 최고의 명품이 모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곳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28절에
28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예수님을 미쳤다고, 귀신들렸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역사상 위대한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로 보는 사람도 있으니 감사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예수님이 좋아하실 수 없습니다. 이번엔 범위를 좁혀서 예수님과 가깝게 지낸 제자들에게 직접적이고도 개인적으로 물어 보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이 아무리 선명을 하시고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신앙 고백을 요구하시는 데 제자들이 못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29절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대답이 안나올까봐 주님이 걱정을 걱정을 하셨을텐데요, 그래도 제대로 대답해준 것이 다행이지만, 대답을 했어도 여전히 베드로는 잘 모릅니다. 십자가가 싫어서 묻기도 두렵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들교회 여러분이 어떤 분이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는 것 같은데 빚지지 말라고 하니깐 묻기가 두렵죠. 이혼하고 싶은데 이혼하지 말라고 하니깐 묻기가 두렵습니다. 빚지지 말고 이혼하지마라 라는 처방이 싫으니깐 묻기도 두렵고 깨닫기도 싫고 어렵도다 하면서 주는 그리스도라 라는 신앙고백하기 싫어서 도망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참으로 입으로 하는 고백과 삶으로 하는 고백이 다 어렵습니다. 헤롯처럼 큰 왕도, 딸 살로메가 원하는 것 딸 절반이라도 해주는 것이 자녀 교육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자녀에 대해 유교적 관습을 가진 우리나라에서도 원하는 것을 해주는게 사랑이 아닌 줄은 다 압니다. 신앙 고백이 확실해야 자녀 교육에 대한 지혜도 생깁니다.
제가 태어날 때 솔로몬 같은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어머니가 기도하셨다고 하는데 솔로몬이 위대한 잠언을 썼다면 어머니의 기대와는 달리 저는 잠만 잤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때 공부를 안하고 잠만 자니 학교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쟤가 상고에 가면 어떻겠냐고 상담을 하신 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전부 다들 외고에 보낼 때 빌립보 같은 이 강남에서 공부도 못하니 상고를 보낸다는 것에 대해 말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선생님이 어머니께 놀라서 '어머니 왜 그러십니까' 라고 하셨답니다. 그 당시 담임 선생님도 어머니와 이야기 한 후 감동을 받은 것 같습니다. 신앙 고백이 확실해야 자녀 교육에 대한 지혜가 생깁니다. 여러분의 신앙 고백은 어떻습니까? 주는 그리스도라는 고백이 있습니까? 신앙고백이 확실하지 않아서 문제가 많이 일어납니다. 신앙 고백이 확실하면 그 때부터 할 말과 안할 말을 분별하고, 만나야 될 사람 안 만나야 될 사람, 돈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가 분명히 분별이 됩니다. 신앙 고백이 하나의 기점이 되어서 내가 부족해도 어떤 것이 지혜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런 터닝 포인트가 있으신지요? 나에게 주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남편이고 아내이고 돈이고 직장이고 자식이기 때문에 자꾸 불평 불만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다 라는 고백을 하게 되면 부부관계, 사업, 진로, 다 달라집니다.
물론 이때 베드로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채 고백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물고기 잡으러 갔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이 고백을 받으셨습니다. 입으로 시인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도 이 고백을 모든 제자들 중에 베드로만 했습니다. 입으로 한 그 고백 때문에 하나님이 신실하게 인도해 가셨습니다. 신앙 고백이 확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을 받기 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여러분은 가이사랴 빌립보 같은 환경에서 주님이 여러분에게 '내게 내가 누구냐' 라고 물으신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모든 환경이 갇혀진 불신 결혼을 하려할 때 또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줄 불법을 제의 받았을 때 주님이 이렇게 물으시면 '주님이 그리스도시다' 라고 답할 수 있겠습니까?
목장 탐방을 가면 직장, 대부분 남자 집사님들은 직장에 다니시죠. 퇴근 후 넷플릭스나 유투브 드라마를 시청하시는 분들이 의뢰로 많더라고요. 유투브를 보면서 말씀 보고 예배 드리는 것을 힘들어하는 분이 꽤 있는 것 같습니다. (영국 관람 간증). 이번 주 수요예배에서 중독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은혜를 깨닫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온 가족에게 복음을 전한 초원님 이야기와 본인의 술 중독, 분노 중독을 얘기 해주신 장로님 이야기를 들으며 이번 한주도 나의 중독을 이야기하고 인정하고 하루의 은혜 한주의 은혜를 구해 봅니다.
적용질문: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분이라고 하고 제자들은 두려워서 고백 못하고 베드로는 확실치 않지만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합니까?
예수님을 따르려면
2.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30절
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이렇게 신앙 고백을 확실하고 정확하게 했는데, 왜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우리의 가이사랴 빌립보, 곧 뭔가 잘 된 곳에서 신앙 고백을 요구하십니다. 물질의 복을 받았으면 그것이 영적으로도 이어져 나눠줄 것이 있는 인생이 되어야 하는데, 신앙 고백이 확실치 않았기에 세상의 기복 종교와 다를바 없는 신앙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나요? 물질의 축복도 좋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어떤 환경에서도 예수님을 전하는 인생이 되어야 하는데 아직 제자들이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이르지 말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요즘 나에게 예수님은 누구시지 스스로 물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저에게 누구죠? 예수님은 저에게 유송이 아빠입니다. (유송이에 대한 간증). 저도 유송이처럼 힘 쌔고 강한 사람에게 약하지만,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베드로의 고백을 듣게 하시니 점점 성령의 실상을 보게 하십니다. 유송이에게 뭐라고 하기 보다 아이메세지로 나의 감정을 이야기 하려고 하니 지난주 어린이집 통신문에, 유송이의 사회관계에 대한 평을 읽었습니다. 유송이는 나와 친구의 생각이 서로 다름을 알며 친구의 생각도 서로 받아 들일줄 안다고 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고 유송이의 고백이 되도록 나의 말이 아닌 성령의 말을 해야겠습니다. 여전히 내 말이 앞설 때가 있지만 성령의 말을 할 때 말을 해야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성령님께서 알게 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확실한 신앙 고백을 했어도 아무에게 이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된다는 것을 알고 경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이 드러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적용질문
나는 예수님을 전할 준비가 되어있나요?
예수님을 따르려거든
3.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31-33절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이 베드로의 확실한 신앙고백을 들으신 때입니다. 신앙 고백이 확실하니깐 이제 엄청난 고난의 말씀을 주십니다.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하시네요. 베드로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신앙고백을 하여 한껏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는데요, 그리하여 인간적인 열심과 충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주를 위해 뭐든 할 것 같았죠. 그런데 이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사단이라고 꾸짖으시네요. '예수님 그러시는 게 아니에요.' 라고 주님을 야단치고 강력하게 반발한 베드로도 확신에 차있고, 이런 베드로에게 '사단아' 라고 꾸짖을 만큼 예수님도 확신에 차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따라야 할까요? 베드로의 확신? 예수님의 확신? 어느 것이 더 좋아 보입니까? 예수 믿는 사람 역시 떨어질 수도 망할 수도 암에 걸릴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제는 이런 환경에서 제 3일에 살아나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구원을 위해 '암이 걸려도 살아날거다. 떨어져도 살아날 것이다' 말씀하시는데 베드로는 '절대 그런 일은 없어요. 내 사전에 떨어지는 것은 없어요. 예수님 믿는 나에게 실패란 없습니다' 라고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이에요.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을 말씀하시는데, 베드로는 '하나님이 당신을 긍휼이 여기셔서 다 잘 될 거라고, 너가 떨어지면 누가 그 대학에 가니, 그 회사에 붙니, 너가 안되면 누가 되겠어.' 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어야 한다'고 하시는데 베드로는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절대 고난을 주시지 않는다. 예수 믿는 자는 절대 가난하게 살지 않는다.' 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번주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많은 판교 지역에서 영구 임대아파트에 사시는 한 목원분의 은혜로운 나눔을 들었습니다. 남편이 구속되고 아이 둘을 양육해야 했기에, 기초 수급자로 선정되어 주거, 의료, 교육 등 다양한 혜택을 누리고 계신다고 하는데요, 거기에 이 분이 작년에 일을 하면서 맞벌이 가정에 혜택인 아이들의 도시락이 저녁마다 배달되어왔고 겨울방학엔 점심, 저녁 이렇게 두 번이나 배달 왔기에 따로 장을 보지 않고 과일값정도로 식비를 쓰고 계셨다고 해요. 그냥 안정적으로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것이 구속사와는 거리가 먼 본인의 이기적인 욕심인 것을 몰랐기에 여러 사건이 오고 이젠 경제적으로 낮아져 수급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나라에서 주는 도시락은 맛이 없다, 라는 말을 들어도 그 맛없는 것을 먹는 것도 감사할 따름이라고 라는 고백이 되어진다고 합니다. 그냥 주님 앞에 죄인이기에 이렇게 낮아짐의 환경에서 먹고 입고 살게 하시는 것이 그저 감사하게 느껴진다고 하십니다. 인스타나 블로그를 보며 예쁜 짓 예쁜 옷 예쁜 그릇 등을 보며 힐링하곤 했는데, 그것을 보며 사고 싶은 마음보다 그냥 예쁘다에서 끝날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지금이 형편이 형편이니 예쁘다에서 끝날 수 있지, 돈이 있으면 샀겠지요. 스로보니게 여인의 마음 부스러기의 은혜라도 얻고 싶은 그 간절함이 제겐 없지만, 처절하게 낮아진 이 환경에서도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이 너무 애통하지만, 그래도 이 조금씩 죄인임을 인정하며 가는 저이기를 함께 하며 기도해주는 공동체가 있어서 너무 감사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분이 적용으로, 감사함으로 남편과 아이들을 잘 섬기고 맛없는 도시락이지만 최선을 다해 데우고, 볶고, 첨가해서 맛을 살려보겠다고 합니다. 이런 나눔이 예수님의 확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나눔이지 않을까요?
베드로는 다 잘 될거라고 말하지만 자신의 확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도망간 사람이 베드로잖아요. 순종보다 내 확신이 앞서서 성령의 황홀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주님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베드로는 자기의 일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만 보고 고난을 보지 못했기에, 예수님이 왕 되신 후의 자기 계획을 가지고 막는 것입니다. 인간이 100% 죄인이라 다 자기 생각으로 예수님을 위한다고 쓸데없이 장담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정확하게, '사단' 이라고 하십니다. 너는 나를 유혹해서 넘어트리고 죄짓게 하는 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일을 생각하게 하는 베드로에게 사단이라고 하고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신앙 고백을 확실히 했음에도 예수님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실 것을 말씀 하시니깐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고 항변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에게 사단이라고 하셨는데, 수제자 베드로니깐 사단이라고 하시지 다른 제자들에게는 안하셨습니다. 양육을 받고 알아 듣는 사람에게만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겁니다. 여러분도 목장과 공동체에서 쓴소리를 듣는다면 내가 베드로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적용질문:
나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합니까? 사람의 일을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나를 위하는 부모, 형제에게 십자가의 길을 막는다고 사탄이라고 물러가라고 하실 수 있겠습니까?
(KIS 교장 선생님에 대한 간증)
4.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34-35절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제자도 입니다. 마가복음이 정말 주는예수 그리스도시고, 제자도에 대해 말한 것이 다른 복음서와 차별화된 마가복음의 특징이죠. 자기 부인은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다른 곳이 아니라 자기 십자가 앞에서, 즉 집 나가고, 바람피고, 때리고, 욕하는 남편과 부인 앞에서, 말 안 듣고 병든 자녀 앞에서, 나의 죄 됨과 누추함을 말하는 것이 바로 자기 부인입니다. 자기 부인은 내 문제를 알고, 이 어디서든 '고마워, 미안해' 할 수 있는 권세, 성령의 권세이죠. 그 권세를 언제쯤 가질 수 있을까요? 가이사랴 빌립보는 신앙고백의 장소이고, 예루살렘은 이제 죽어야 할 곳인데, 자기를 부인 하려니 생명을 내놓는 일보다 힘이 듭니다. 이 세대의 자기 부인은 어떤 것이죠? 무엇이 있을까요? '예수 믿으세요' 라고 말하기 전에 내 죄를 고백하는 것, 내 죄를 봐야 합니다. 내 죄를 고백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대학교 2-3학년 여름방학 간증)
오늘 말씀을 보며 자기를 부인하며 내 죄를 보는 것이 성화이고 큐티인 것 같습니다. 주님 때문에 목숨을 잃고자 하면 영원히 살고 종말에 육체까지 부활하지만, 내 목숨만 살고자 하면 영육간에 모두 목숨을 잃는다고 합니다. 내 때라고 하신 모든 것이 죽음의 때를 말씀하는 것인데, 죽는 것에 대해 예비하고 가는 것이 가장 큰 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죽기 싫어서 죽는 것에 대해 듣기 싫어하지만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아는 것이 가장 큰 지혜입니다. 그리고 그 날이 빨리 올 수 있다는 것을 알 때 겸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죽음에 대해 말씀을 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목숨을 얻는 길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구원을 위해서 사는 제자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내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면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보상받으려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지난 주 한 목자님으로부터 카톡을 받았는데요, 씨애틀에 계신 한 집사님이 30년전 고등학생일 때 목사님이 집에 불러주셔서 밥해주시고 큐티 가르쳐 주셨는데, 그 때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별로 감사하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14년동안 죽을 것 같았던 결혼 생활에서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고 온 것이 어디인줄 아십니까? 우리들교회 목장, 목장을 통해 자기 죄를 보고 살아남을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30년전에 목사님이 씨 뿌려주시고 양육해주셨기에 지금 여기 내가 있구나 싶다고 하시네요. 정말 감격이 되지 않나요? 감격이 되었다고 합니다. 늘 내가 죽은 뒤에라도 열매를 맺기 바란다고 하시는 이 목사님 마음을 주님이 아시고 이렇게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리게 해주신 것 같다고 하네요. 이런 목자가 하나님이 갚아 주신게 아닐까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하면 두 부류로 답이 나뉘는 걸 보게 됩니다. 가요, 못가요. 예수님은 간다고 하고, 베드로는 못 간다고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가운데에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의 확신과 주님의 확신을 분별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를 수 있도록 목숨을 내놓고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십자가가 너무 싫고 두렵습니다. 말하기도 싫고, 할 수만 있다면 무덤까지 가져가고 싶은 죄와 두려운 일들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말하기도 싫고 무덤까지 가져가고 싶은 그것 때문에 예수님께 나와서 예배 드리고 헌신하고 내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나의 누추함과 죄인 됨을 보고 엎드릴 때 구원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자기 부인과 헌신이 가능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제자의 조건을 보면서 문뜩 존 스타트 목사님이 생각이 났습니다. 예배 후에 목사님 집에 초대 받아서 같이 식사를 하였는데, 식사 메뉴는 인도 커리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그 당시 약간의 이슈가 되었던 제가 만난다고 해서 인터넷을 보니깐 존 스타트 목사님 하니깐 지옥 관련된 기사가 떴길래 제가 목사님께 물었죠. 그러니 목사님이 종이에다 펜으로 적어 주시면서 자세히 설명해주셨던 생각이 나지만, 솔직히 그 대단한 분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이 잘 안납니다. 정말 말씀이 안 들리는 저의 실상입니다. 그 유명하신 분을 제가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존스타터 목사님의 그 신약의 메세지를 읽으니 마가복음은 제자도에 관한 내용이라고 하시는데, 제자도와 주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 두가지가 이 마가복음이 다른 복음서와 차별화 된. 목사님이 제자의 조건에 대해 여러가지로 말씀하셨는데, 그 중 급진적 제자의 마지막 특징이 죽음이라고 하십니다. 사도들의 죽음으로 로마가 변화되고 생명이 살아났다고 하는데, 우리들교회도 많은 분들이 십자가를 지고 죽어지는 적용을 하셔서 가정이 살아나는 기적을 매주 경험하게 하십니다. 특히 지난 주 공동체 간증에서 공동체를 사모하여 합격한 두바이 항공사를 내려놓는 적용을 한 청년의 나눔과, 말씀과 목장을 사모하여 미국 직장을 내려놓은 제리 부목자님의 이야기는 십자가 지고 죽어지는 성령의 시민의 나눔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십자가 지는 것도 어렵고, 죽어지는 것도 내 마음대로 안됩니다. 그래서 오늘 큐티를 하며, 예배를 드리며, 오늘 큐티 말씀이 어린 아이를 섬기는 자가 1등이 된다고 하시는데, 그 어린 아이를 섬기는 마음으로 오늘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고 예배를 드리며 200 이하의 나의 감정들이 모두 죽어지고 성령의 황홀로 우리 공동체가 하나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번주 부부목장 탐방에서 나눔을 하는데, 예배와 목장과 나눔은 좋았지만 십자가 복음은 어렵다고 하더라구요. 자녀가 아프고 힘들 때 나도 마음이 아프지만, 힘든 것을 받아 내기는 어렵다고 하시네요. 다음 날 큐티 말씀에 귀신들린 아이를 고칠 려면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는데, 십자가를 져야지 죄와 슬픔과 죽음과 같은 세상과 음부의 세력에서 살아날 수 있다고 합니다. 로마 시민, 미국 시민이 아니라, 성령의 시민이 되기 위해 목장에 가서 듣고 물어야 되는데, 우리가 늘 듣는 말이지만 말씀을 듣고 목장에서 듣고 물을 때 자녀와 십자가 모든 것을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는 비결인데 이게 참 안되죠?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기적이 아닌 십자가의 부활을 가르치십니다. 예루살렘 곧 십자가를 지고 죽으셔야 할 그 곳으로 스스로 올라가시며 그동안 가르치신 것을 삶으로 실천하십니다. 십자가의 부활을 가르치시며 본격적인 주님의 제자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쫓는 자입니다. 대제세장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아무리 기적을 베풀고 가르치셔도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심하십니다. 변하지 않는 나 때문에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예수님의 안타까움을 깨닫기 원합니다. 변하지 않는 내 가족의 구원을 위해 내가 죽어야 할 예루살렘이 어디인지 깨닫고, 그 곳으로 올라가는 믿음의 실천을 하라고 하십니다.
적용질문:
버리고 가 아니고 지고 가야 할 자기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나를 부인하고 내 죄를 인정하는 것이 죽을 만큼 힘들다고 하는데 저도 제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이 죽을만큼 힘드네요. 아내가 저 때문에 힘들다고 나눔을 했더니, 어떤 분이 잘나가는 아내 잘 섬기고 살라고, 목사님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무슨 고난이 있냐고 그러시는데, 순간 인정이 안되더라구요. 아시다시피 저도 무엇이든지 되는 일이 없어서 얼마나 고달픈 인생을 살았는데요. 학교, 직장, 결혼, 사역, 어떤 것 하나 제때 된 것이 없습니다. 특히 어머니 아들로 산다는 것이 산다는 것이 고난입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제가 고난이 없다는 말이 너무 맞는 말입니다. 그게 맞는 말이니깐 제 죄를 인정하는 것이 죽을만큼 힘들다고 하는 것이죠. 정말 맞는 말이에요. 저도 저의 죄를 잘 보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여러분 저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요.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적용질문
사람들은 예수님을 위대한 분이라고 하고 제자들은 두려워서 고백 못하고 베드로는 확실치 않지만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합니까?
A:
베드로처럼 입으로 고백은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삶으로는 고백이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신앙 고백이라고 하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다. 나는 죄인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이것이 진정한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있고, 내 것을 내어 놓아야 하는게 싫은 것이 있다. 깨어지지 않는 저의 모습들이 있는 것 같은데, 한 예로 남에게 잘해주는것도 그저 내 인본적인 마음으로 하는 것 같다.
B: 나 또한 베드로처럼 입으로 신앙고백은 하는 정도로 보인다. 하지만 확실치 않은 신앙 고백인지,내 삶에서 적용이 잘 안되는 고백으로 남는 것 같다.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확실한 고백이라면, 삶에서 이토록 불안하고 염려가 크진 않을 것 같다. 계속 불안해 하고 믿음이 없는 것은 제대로 된 고백이 아니라서 그런 것으로 생각한다.
C: 나의 경우는 위대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이나 두려워서 말못하는 제자와 더 비슷한 것 같다. 모태신앙이지만 사람들 앞에서 고백도 잘 안하고, 열심을 가지고 믿어 본 적도 잘 없고, 성경 공부도 잘 안해봤다.
A: 신앙은 공부와는 별개 일수도 있는 것 같다. 신앙고백은 많이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죄 고백으로부터 시작하고 믿음으로 하는 것인 것 같다.
적용질문:
나는 예수님을 전할 준비가 되어있나요?
A: 신앙 고백에서 시작하는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는 나는 예수님을 전할 준비가 안된 것 같다. 예전에 친구 아내의 바람 사건으로 친구가 힘들어 할 때, 교회에 전도는 하긴 했지만 정말 친구가 교회를 통해 살아날 것이라는 확신은 없은 채 한 것 같다. 나부터 고백들이 부족하니....
B: 내 삶에 확신이 없고, 늘 불안하니 전할 준비가 도통 안된 것 같다. 기쁨에 넘치고 삶으로 보여주는 신앙이 있으면 예수님을 마음껏 전할 것 같은데.. 비실비실 거리고 있고, 당장 내 삶이 힘드니깐 마음이 서지 않는다.
A: 잘 견디고, 이 어려움을 잘 겪고 나면 좋은 시기가 올거다..
C: 아버지가 처음엔 교회를 안 다니셨는데, 어머니의 강요로 나가시긴 했다. 그 당시 나는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본적이 있다. 나는 성격상으로도 예수님을 전하기가 어렵다.
A: C도 사람들간에 불편한 관계를 만드는 걸 싫어하는 것 같다. 우리 셋 다 똑같구먼..
C: 싫은 소리도 막상 어느 시기에,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A: 그렇기에 늘 물어보면서 가야 하는 것 같다
적용질문:
나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합니까? 사람의 일을 생각합니까?
여러분은 나를 위하는 부모, 형제에게 십자가의 길을 막는다고 사탄이라고 물러가라고 하실 수 있겠습니까?
A: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한 경우가 많다
B: 오늘 말씀에,
예수님은 우리 구원을 위해 '암이 걸려도 살아날거다. 떨어져도 살아날 것이다' 말씀하시는데 베드로는 '절대 그런 일은 없어요. 내 사전에 떨어지는 것은 없어요. 예수님 믿는 나에게 실패란 없습니다' 라고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이에요. 예수님은 죽음에서 부활을 말씀하시는데, 베드로는 '하나님이 당신을 긍휼이 여기셔서 다 잘 될 거라고, 너가 떨어지면 누가 그 대학에 가니, 그 회사에 붙니, 너가 안되면 누가 되겠어.' 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죽어야 한다'고 하시는데 베드로는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절대 고난을 주시지 않는다. 예수 믿는 자는 절대 가난하게 살지 않는다.' 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라고 하셨다. 글쎄, 난 늘 죽는게 싫고 잘 되기만을 바라는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매사에 불안하고 두려워하는 건 아닌가 싶다.
A: 죽음에 대해서 알면 겸손해진다고, 들은 고난들이 있으니, 이전과 좀 다른 점은 이젠 좀 겸손해지지 않았을까 한다.
C: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 같다. 교회는 다니지만 안 믿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행동 자체도... 내가 하는 일에 옳은 길인가 이런 건 생각 잘 안하는 것 같다. 남들이 다 하는 길 위주로 생각하는게 더 큰 것 같다.
적용질문:
버리고 가 아니고 지고 가야 할 자기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A: 예전 만남 가운데 있었던 죄의 모습들이 내가 평생 지고 가야하는 나의 십자가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 죄보다도 내 체면이 더 중요했던 사람이라... 모든 사건과 결론이 내가 결국 계속 가져가야 할 십자가 인 것 같다.
B: 오히려 나는 나와 관계가 몹시 안좋은 사람들이 내가 지고 가야할 나의 십자가 인 것 같다.
C: 나는 나태가 나의 십자가 인 것 같다.
기도제목:
D: 3월 2일 출근 잘 할 수 있도록, 직장 고난 잘 감수할 수 있도록.
직장 내에서 덜 불편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E: 기사 시험 준비중인데, 실제 공부하는 시간을 좀 더 늘 수 있도록.
남동생이 착실히 살 수 있길.
F: 신교제 중에 어려운 가운데 있음. 여자친구의 마음을 잘 잡아 주시길, 완만하게 해결 될 수 있기를, 여자친구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길, 이 상황들 가운데 스스로 말씀 붙잡고 갈 수 있기를.
회사에 관련해 불안함이 있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잘 찾고 의지가 생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