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06 주일설교
사도행전 22:9~16
성령의 택하심
운전직 공무원 필기 시험에 합격을 하셨다고 합니다. 솔직하게 면접을 본 후에, 10명 뽑는 면접에서 2명 떨어졌는데, 거기 떨어졌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떤 나눔에 떨어졌는지 얘기를 들어 보니,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냐는 질문에, 사망사고가 있었다고 답변을 했다고 한다.
목장에서 모라고 해석을 해줬는가 하면 한 생명을 앗아 갔는데, 너무 당당하게 말해서 떨어진거라고 말을 해줬다.
그리고 나서 주택 관리사 시험에 붙으셨다. 맨 처음에는 너무 솔직하게 면접을 하는 바람에 우리들교회 때문에 망했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하신다.
말로 열매를 맺었는가? 본전도 못찾았는가? 어떤일이 와도 낙심하지 말것이 우리는 실패해도 부족해도 주님의 자녀다. 자녀는 전공이 실패하는것이다.
잘못을 인정하기만 하면 부모는 너무 기뻐한다.
우리가 말씀대로 가면 어떤일을 가도 하나님이 끝까지 책임지신다. 이게 택자가 아닌가 싶어서 성령의 택하심에 대해 알아보자
1.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9절
빛은 보고 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9장에서는 반대로 말합니다. 성경이 상충되는게 압니다.
옆사람이 들은건 사운드고, 바울이 들은건 보이스 라고 해석을 했습니다.
택자는 어떤 말씀을 듣는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는게 특징 입니다.
하나님이 택한 사람은 하나님이 보이스로 말씀하십니다. 사운드처럼 소음처럼 들렸던 말씀이 보이스로 들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이 들릴때 택자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나요?
10절
바울이 찔려서 어찌할꼬 합니다. 바울앞에서 자결 하려고 했던 빌립보 감옥의 죄수의 반응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바울의 삶의 주어가 내가에서 주님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다시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합니다. 중요합니다.
바울아 너는 이제 로마로 가 전도를 해, 땅끝까지 가라 이러면 이해가 될텐데, 그러지 않으습니다.
구체적인 적용을 말씀해 주시는데, 다메섹으로 가라고 합니다. 이곳은 바울이 분노에 차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러 가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그들이 무시가 되고, 자신도 무시 하는 사람들, 무시받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다시 가라고 하시는것이빈다.
내가 성령의 말씀을 들었다고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목적이 바뀌는게 아니빈다. 드라마틱한 능력이 생긴것도 아닙니다.
나를 환영하지 않는 그곳, 가려 했던 그곳으로 여전히 가라고 하십니다.
어제 여호수아 말씀을 듣는데, 그 말씀은 전쟁의 말씀인데, 일반이었더라 일반이었더라 합니다.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일상을 잘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바로 예배입니다. 일반이었더라가 중요한 얘기입니다.
저도 주님 말씀을 듣고, 말씀이 보이스로 들렸습니다. 주님의 일을 한다고 했는데, 남편의 말에 복종하는 훈련이 필요했기에, 10년동안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남편이 죽고 나서 말씀이 특별히 들렸고, 여러 곳에서 권유가 있었지만, 제가 있어야할 자리에 있었습니다.
무시 받으면 잘 머무른 곳이 저의 다메섹 목적지가 되었습니다.
세종의 아내중 한명이었던 신빈은 세종이 가장 총애했습니다. 그녀는 노비 였습니다. 신빈은 이타적인 지혜가 많았던거 같습니다. 그리고 세조가 인정을 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세종이 죽고 후궁은 나가야 하는데, 세조가 엄청난 재택을 하사 했는데, 그것을 사양합니다. 그리고 머리를 깍고 나라의 안정을 빌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끝까지 권세와 돈을 내려놓고 윗질서를 섬겼습니다. 한 사람이 너무 중요합니다.
시기마다 다메섹으로 갈때마다 엎드러진 상황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일어나는 것은 때마다 힘이 듭니다.
신빈은 어떻게 그 권세에서 자기를 지킬수 있었을까?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알아도 그렇게 살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11절
누구의 도움으로 갔다고 합니까?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빈다. 바울은 빛의 광채로 볼수 없게 되서 나는 다메섹에 갈 수 없는데,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서 갔다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그때 있는 공동체가 무슨 좋은 공동체였겠습니까?
말씀이 안들리는 살기의 엘리트 공동체였습니다. 그러다 바울만 만난 겄이었습니다.
바울의 동료들은 같이 큰 빛을 봤는데도 말씀이 들리지 않고, 벙어리 되어 할말도 없는데, 서있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가져온 그열심 그대로 서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유기의 상태입니다. 죄와 사망의 노예로 버림 받은 것입니다. 이런 버림받은 태도는 배우자를 폭행하고도 할말이 있는게 우리의 모습입니다.
명백한 잘못에 대해서도 죄를 인정하지 않는게 유기된 상태의 인간이빈다. 무릎을 꿇고 사과 한번 하면 되는데, 절대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좋거나 나쁘거나 혼자서는 살지 못합니다. 애도 어른이고 친구가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동창에 목을 메고, 하빈다.
하지만 그게 덧 없다는 것도 끌려다녀 봐야 압니다.
바울도 말씀이 들리고 났는데, 나를 도와줄 사람이 말씀이 들리지 않는 공동체인 것입니다. 이런 수모를 받아야 하빈다.
내가 믿고 나서 혼자서 짠하고 안믿는 가족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나눠줄것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현실은 믿지 않는 가족의 도움을 받고 끌려가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무시당하는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광체에 눈이 먼 사람은 세상이 안보이기 시작하빈다. 그런데 세상의 광체에 눈이 먼 사람은 하나님이 절대로 안보입니다.
바울은 세상이 안보이기 시작한것이빈다. 그래서 끌려서 가라는 다메섹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나의 생각은 가고, 주님의 생각이 들어왔기에 가라면 가고, 있으라면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된 것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눈이 멀었다고 합니다. 이왕 멀거면 주님께 눈이 멀어야 합니다.
세상이 안보이는 사람과 주님이 안보이는 사람이 함께 가는게, 택자의 좁은 길입니다.
Q.어떤 광채에, 누구에게 눈이 머는가?
Q.하나님인가요? 세상인가요?
Q.돈이 없어 또는 할 수 없어서 끌려가는 다메섹이 택자의 축복인 것이 믿어지는가? 그 다메섹은 어디인가?
2. 다시 보게 하셔서 그 의인 예수님을 알고, 보고, 듣게 하십니다.
10~14절
하나님은 나를 힘들게만 하지 않으십니다.
여기서는 바울 자신이 아나니아에게 들은 것들을 자세히 간증 합니다. 아나니아에 대한 소개도 바울의 간증을 듣는 유대인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씁니다.
그래서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이라고 소개 합니다. 에수님의 제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여러분이 다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 아나니아 라고 말합니다. 왜 이런 디테일을 말합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사람과 그리스도인이 원수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구절이 없냐 하면 3일동안 바울의 눈을 멀게 하셔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게 했다는 말이 생략됩니다.
유대 군중들이 듣지도 알아먹지도 못하는 간증은 생략합니다. 군중들은 바울의 고난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간증을 생략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 고난도 아무한테나 가서 함부로 얘기하면 안됩니다. 딱 맞게 해야 합니다.
아나니아가 말합니다. 형제 사울아 다시보라 라고 합니다. 이는 위를 보라는 말입니다. 보이는 것의 넘어를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눈이 먼 사건 가운데 본질을 보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기로 충만한 얼굴이 은혜로 바뀝니다.
아나니아도 자신을 죽이려는 바울과 절대 형제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나니아가 안수해서 눈을 떳다고 합니다.
살기 어린 엘리트 동료들과 있다가 아나니아 형제 공동체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큐티 하면서 이타적인 공동체에서 목장을 하는것은 하나님께 투자하는 것입니다.
이 형제 공동체를 매년 목장하면 만나는 것은 최고의 노후 보장입니다.
하나님께 투자를 하고, 큐티를 하고, 목장을 섬기는 것은 죽을 때 까지 노후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눈을 뜬 사울에게 아나니아가 하나님이 너를 택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택했다는 말은 골라서 꺼냈다는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 택했다는 것은 과거에 너를 택했고, 절대로 너를 포기 하지 않는 다는 단어 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택하실때 쓴 단어를 바울에게 쓴 것입니다.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특별하기에 이런 단어를 쓴것입니다.
지난주 설교에 고난을 우리는 꺠우는 손 멈추는 손 잡아 당겨 땡기시는 손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이 택하심은 만세전부터 나를 붙들어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과 우리의 손이 딱 만나는게 택하심입니다.
이 택하심이 무엇을 위한 택하심일까요?
1)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려고 택하십니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라, 거룩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입니다.
2) 그 의인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시려고 택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저마다 자기가 의로운 사람으로 착각하고 삽니다. 그래서 자신이 의인인 사람은 늘 피해 의식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진짜 의인인 예수님을 보게 하시려고 택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유대인을 자극 하지 않으려고 그 의인 이라는 단어를 예수님 대신에 씁니다.
3)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시려고 택하십니다.
말씀듣는게 너무 중요합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은 불평이 없습니다.
이 3가지 중심의 목적에 그 의인 예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직 우리의 삶에 중심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알게 하시고,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중심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십니다.
거룩하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이 목적이 예수님과 동떨어 져서는 쓰잘데기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선택은 이땅에서 대단한 보상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선택을 받기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애쓰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어떤 선택도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그런점에서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간길은 슬프지만, 인생의 중요한 길을 알려주는 역사 입니다.
임기 후 다들 큰집으로 갑니다. 세상 선택의 결말이라 보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선택이 아닌 성령의 선택을 받은걸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 무슨 이익이 있는가? 인생의 마지막, 그날에 육이 주인이 되는 사람은 슬피 울 수 밖에 없습니다.
Q.'저사람 다시 봤어' 하며 내 생각과 달리 다시보게 된 사건이나 사람이 있나요?
Q. 내삶의 중심은 누구 또는 무엇입니까?
Q. 선택 받은 일 중 제일 기쁜 선택은 무엇입니까?
Q. 내 사건 너머의 위를 쳐다봅니까? 본질을 봅니까?
Q. 내가 가장 눈치 보는 사람은 누구 입니까?
3. 증인이 되라
15~16절
주님이 바울을 택하셔서 맡겨주신 임무는 거창한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앞에서 주님의 삶과 말씀을 전하는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증인에는 어떤 기술이나 자격이 필요한게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것은 보고들은 경험이고, 그 경험에 대한 확신입니다.
그리고 그 확신을 그대로 전할 수 있는 진실성 입니다.
모두가 동등하게 받을 수 있는게 증인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게 너무 어렵습니다. 세상의 두려움 때문입니다. 예배만 드리면 좋겠는데, 증인이 되는것은 세상에 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순교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저 하는데, 이제는 왜 주저 하느냐? 무엇을 주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저 하는 건 결국 나때문에 주저 하는 것입니다.
익숙한 것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게으름과 많은 것을 차지하려는 욕심, 그리고 교만 때문에 주저 합니다.
매순간 이제 우리는 두려워 하고 갈등합니다. 그래도 주저 한다는 것은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빈다.
하나님이 성령의 택하심으로 나를 택하셔서 사명을 알려주셨는데, 이를 100% 행하지 못하는것이빈다. 그래서 주님이 이제는 왜 주저 하냐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일어나 세례를 받고 죄를 씻으라 처방을 내려 주십니다.
여기서 일어나는 하나님이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켜 주셨지만, 예수님도 친히 죽음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주님이 일으켜 주신것이면 수동태인데,
예수님도 일어났기에 능동태로 쓰입니다.
주님도 100% 나도 100% 해야 하는 것입니다. 반반 합쳐서 100이 되는게 아닙니다. 각각 100씩 입니다.
주님이 나를 일으켜 주신것만큼 나도 힘써 일어나야 하는게 있습니다. 주님이 손을 내미신 만큼 나도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매순간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를 붙잡으려는 죄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어떻게 일어나라고 하십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라고 합니다. 이는 예배 드리는 것입니다. 내가 일어나지는 못해도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는 드릴 수 있습니다.
큐티가 어려운 분들은 본문을 읽기라도 하시고, 그것도 힘든 분들은 큐티설교를 듣기라도 했으면 합니다.
우리는 한단어라도 찾아서 생각하는거 부터 시작을 해야 합니다.
택하심을 받은 우리 모두는 각자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 택하심을 받았지만 세례는 택함을 받았다고 공동체에 선포하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해 주변에 알림으로 죄의 유혹에서 보호를 받으며 성령의 택함을 더 완성 시키는 것입니다.
Q.가족의 구원을 위해 중인의 사명인줄 알지만 주저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택함을 받은 자들은 예수님 중심의 삶으로 살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보게 되고, 외부의 환경이 아닌 내 속의 죄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처럼, 사건에서 해석이 안되는데, 늘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목장을 통해서 눈이 떠져야 합니다.
이세상 사람들은 눈을 뜨고 있지만 결코 볼수 없는 니잘못이 아니고, 내 잘못이라는 자신의 죄됨이 보여서 택자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견인해 가시는줄 믿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택하심입니다.
<기도제목>
지현목자님
1.수련회에서 나의 다메섹 잘 드러내고 나누며 기대함과 사모함 갖고 참석하도록
연지
1. 하루 1시간씩 학기 준비하도록
2.큐페 좋은수련회 되길
한나
1. 취업이력서 잘 넣고 나태하지 않도록
2. 과외하는 학생 코로나에서 잘 회복되도록
3. 신교제 중인데 잘 물으며 가도록
지아
1. 백신후유증 없도록
2. 상황 분별할 수있는 지혜와 일과 교제 밸런스 맞추어 현명하게 계획할 수 있도록
경주
1. 프로젝트 마무리 잘 하고 다음 갈곳(진로) 인도해주시길
민주
1. 사업에 대한 회의감으로 인한 체력저하인데 말씀을 기초로 balanced life되도록
2. 동생과 같이 사는 동안 잘 섬기도록
세은
1. 교통사고 후유증없이 치료받고 회복되도록
2. 나의 다메섹에서 잘 묶여가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발걸음되길
3. 큐페에 은혜주시고 기도 응답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