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성령의 택하심
본문: 사도행전 22:9-16
설교: 김양재 목사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2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이제 운전직공무원 필기 시험에, 9급인데요, 합격을 하셨대요. 솔직하게 면접을 본 후에 10명 뽑는 면접에서 2명 떨어졌는데, 떨어졌다는 나눔을 읽었어요. 그래서 무슨 나눔을 했냐고, 봤더니, 교통 사고 난 적이 있냐고, 그랬더니, 십 수년 전에 사망사고가 있었다는 내용을 얘기 한 거에요. 그래서 우리들교회에서 배운 대로 솔직하게, 그러니깐 옆에 권찰님이 그거 조회도 안되는 내용인데,, 트라우마를 물어보는 줄 알고, 전혀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떨어 졌다는 거에요.
목장에서 이제 뭐라고 해석해줬냐고 하면은. 한 생명을 앗아 갔는데 너무 당당하게 괜찮다고 해서 떨어지는 사건을 주신 거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제 지혜도 있어야 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목장에서 묻고 갔기 때문에, 그 다음에 주택 관리사 시험에 합격하신거에요 이분이. 9급보다 훨씬 정년도 없는 좋은 데 되셔서 훨씬 좋은 길로 인도해주셨는데. 맨 처음에는 '우리들교회 때문에 망했다, 너무 솔직하게 면접을 한 바람에 이제 그런 생각을 하셨다' 고 나눔을 해요.
우리가 명절에 여러분들 말로 열매 맺으셨어요? 아니면 본전도 못 찾으셨어요? 그래도 여러 가지참 많은 보고가 올라왔는데 다 소개를 해드리고 싶은데 참 대단하십니다. 그래도 어떤 일이 와도 낙심하지 마시는 것이, 우리는 실패해도 부족해도 우리는 다 주님의 자녀이잖아요. 자녀는요 전공이 실수 하는거에요. 그래도 잘못을 인정하기만 하면 부모는 너무 기뻐해요. 그래서 이제, 하나님 아버지도 똑같으세요. 하나님 아저씨는 안 그렇겠죠? 이제 그 참으로 이것이 우리가 말씀대로 가면은 어떤 일을 가도 하나님이 끝까지 책임지신다. 이것이 택자가 아닌가 싶어서, 오늘 성령의 택하심에 대해서 말씀을 보도록 해볼게요.
성령의 택하심은
1.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9절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바울의 두번째 간증인데요, 빛은 보고 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해요. 그런데 사도바울의 첫번째 간증 9장 7절에서는, 소리만 듣고 보지 못했다고 해요. 그러면 똑같은 사건이 성경이 상충 되자나요? 성경이 이상한가요? 9장에서 옆에 사람이 들은 것은 사운드라고 번역이 되었고, 바울이 들은 것은 보이스였다고 탁월한 번역을 했다고 한 것 기억나세요? 택자들의 특징은 어떤 말씀이라도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는 것이에요. 우리들교회는 자기들 간증이나 소개를 할 때 다들 그래요. 저는 창세기 45장 말씀 하실 때 왔어요. 그 때 요셉이 형들을 보면서 크게 통곡하는 말씀을 들으면서 첫 예배 때 그냥 펑펑 울었습니다. 또, 저는 룻기 1장에 왔는데 3차 흉년이 바로 제 말씀이었어요. 또 어떤 분은, 저는 계시록때 와서 심판만 죽도록 당했어요. 보이스로 들리면 첫날부터 말씀으로 기억이 나는거에요. 또 어떤 장로님은 이혼하려고 왔다가 아픈 아내를 버리고 이혼하는 사람은 개돼지만도 못하다, 이게 또 크게 들려서 그냥 첫 예배 때부터 펑펑 울어서 등록을 하셨다고 이제. 이처럼 하나님께서 택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이스로 말씀하시는 거에요. 소음처럼 사운드로 들렸던 말씀이 내 귓가에 대시고 크게 외치시는 보이스로 들리는 것이죠. 그럼 이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나요?
10절
10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
이거는 베드로의 첫 설교를 들었던 사도행전 2장에, 백성들이 찔려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그 찔려서, 쇠 말발굽이 내 가슴을 치는 것처럼 그렇게 찔려서 '어찌할꼬' 했어요. 기억나시죠? 열심히 들었던 분들이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찔려서 '어찌할고' 합니다. 바울 앞에 자결 할려고 했던 빌립보 감옥 죄수의 반응도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도 마찬가지 의미입니다.
10 ...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바울의 삶의 주어가 내가 에서 주님 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는 여기서 중요하죠. 다시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는 거에요. 이게 이해가 안되자나요? 주님이 바울아 너는 이제 로마로 가 전도를 해. 구제를 해. 선교를 해. 땅끝까지 가라. 그러면 이해가 되자나요? 그런데 그러지 않으셨어요. 우리 삶에 구체적인 적용을 말씀해주시는데, 다메섹으로 가래요. 다메섹이 어떤 곳입니까? 지금 직전까지 바울이 분노에 떨며서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찾아서 바울이 박해하려고 가던 곳이자나요. 어떤 곳이냐면, 나무에 달려 죽어서 율법으로는 저주 받아 죽은 그런 예수라는 자를 믿는 그들이 너무 무시 되고 그리고 그들도 바울을 무시를 하는 사람들이 거기 있는 것이죠. 무시 받고 무시하는.. 그곳으로 다시 들어가라 하시는거에요. 내가 성령의 말함과 내가 성령의 간증을 했다고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갑자기 목적지가 바뀌는게 아니죠. 내가 드라마틱한 능력이 생긴 것도 아니에요. 그저 내가 원래 가려고 했던 그 곳, 나를 환영하지 않는 그 곳으로 여전한 방식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엊그제 여호수와 10장 말씀을 잠깐 들어보니깐, 여호수아는 전쟁 얘기자나요. 전쟁 너무 힘든데, 일반이었더라 일반이었더라가 그 짧은 구절이 7-8번 나오는데, 전쟁에서 이기는 비결은 항상 일관되게 자기 맡은 자리에 있다 보면 단번에 쳐서 취하니라가 되는거에요. 그러니까 여기서 화장실, 주차 이 모두가 자기 역할을 지키지 않으면 내가 설교한다고 예배가 됩니까? 화장실 청소가 다 예배죠. 여기 설교 들었는데 여기 화장실이 너무 더러우면 예배가 됩니까? 그러니까 우리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화장실 청소하다가 가셨기 때문에 그거 주의 일이고, 다 같이 예배인거에요. 일반이었더라가 정말 중요한 얘기인데, 이 장로님은 너무 무시가 되는 아내와 이혼하려고 왔다가, 너무 무시가 되는 아내의 다메섹으로 다시 들어갔죠. 거기가 다메섹이에요. 그랬더니 지금 이제 목자도 되고, 장로도 되고, 강남에 빌딩도 지었어요. 부부가 하나가 되어야 돈도 모입니다.
저도 주님을 만나고 말씀이 보이스로 들렸어요. 그런데 시기마다 다메섹이 달라서 주의 일을 하겠다고 했지만 저에게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직 훈련이 너무 필요했기 때문에 집에서 그 의미 없는 시간 같은 10년을 이렇게 있게 하시고, 보이스로 들려서 쌓여서 남편이 간 후에는 이 보이스가 나팔처럼 들려서 말씀이 특별히 임했어요. 그때부터 책을 내자는 권유도 있고 신학을 하라는 권유도 있었고 세계 곳곳에서 저를 초청해서 집회하라는 권유도 있었지만은, 저는 이제 50이 거의 되어서 큐티모임을 계속하려면 신학을 해야한다는 교회의 부탁으로 제가 순종하려고 신학을 했고 그렇다고 전도사로 또 임용된 것도 아니자나요. 그렇다고 제가 교회를 바로 개척한 것도 아니에요. 제가 13년간이나 교회에서 집에서 힘든 사람들과 큐티모임을 하게 하셨는데, 오늘 하루하루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한 사람 한 가정 살리며 바로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일반이었더라 하면서 그 자리에서 이게 중요해요 무시 받으면서, 저는 무시 받을 조건 다 갖췄자나요, 특별히 과부자나요 과부, 무시 받으면서 잘 머무른 것이 저의 다메섹 목적지가 되었습니다.
제가 한사람을 소개하고자 하는데, 세종이 가장 총외한 후궁 신빈김씨는요, 노비 출신에서 그야말로 신데렐라 택자가 되어서 세종의 후궁도 대단한데, 거기서 가장 총외를 받았으니깐 대단한 사람이자나요. 신빈은요 서원왕후도 훌륭한 왕후에요. 그런데 서원왕후를 너무 정말 윗질서로 받들고 서로 우애하고 서로 화목했다고 하죠. 그래서 조선왕조에서 내명부가 가장 안정이 되고 자손이 번창했다고 해요. 그래서 이제 세종이 죽은 후에 그 수양대군이었던 그 세조에게 인정을 받은 그런 분인데, 신빈은 그냥 그 사람만 만나면 누구에게나 사랑을 받는데, 이쁜 장희빈과는 다르게 이타적인 지혜가 출중한 것 같아요. 이 신빈은 아들을 6남2녀를 낳았고 소연왕후도 8남2녀 이렇게 굉장히 자녀를 많이 나았어요. 그런데 이제 세조가, 세조를 이제 봐준 전력이 있기 때문에 세조가 인정을 해서 그 아들들의 권세가 하늘을 찌른 거에요. 세종이 죽은 후에도. 그러니 신빈은 세도를 부릴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세종이 죽고 후궁은 나가야 되자나요? 세조가 엄청난 저택을 내렸어요. 사양했어요. 그 잘나가던 아들들의 공개도 다 거절하고 머리를 깎고 왕실과 세종의 명복을 빌다가 갔다는 거에요. 그 노비였던 그녀가 대를 이어가면서 최고의 권세를 누리게 되었는데도, 아들이 6명이 출세를 하고 있는데도, 끝까지 자기 노비였던 초심을 잃지 않고 윗 질서를 섬겼어요. 저는 이 밑의 사람 하나가 후궁이였지만 사실 가장 영향력 있는 한사람이자나요, 그런데 이 한사람이 권세와 돈을 내려 놓으니깐 집안이 왕실이 나라가 평안한거에요. 정말 이 한사람, 이 한사람이 너무 중요한 것 같아요. 아무리 자기가 후궁이었지만, 정말 나라를 좌지우지할만한 그 자리에 간거에요. 세종이 가장 총외하는 후궁이었으니깐, 정말 감동을 넘어서 은혜가 되더라구요. 우리가 그때 예수가 없어서 그렇지, 바로 이런 사람들이 예수를 정말 믿은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시기마다 다메섹으로 갈 때 마다 엎드러져 있는 상황에서 이제 일어나야 돼요. 그런데 일어나 라는 단어는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일어나실 때 사용되는 단어에요. 그만큼 일어나는 것이 때마다 힘이 드는거에요. 그러니깐 신빈김씨는 어떻게 그 권세에서 자기를 지킬 수 있었을까? 굉장히. 그러니까 우리는 알아도 살기가 어렵자나요. 정말..
그러니까 이제 무엇을 하리이까 했더니
11절
11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지금 누구의 도움으로 일어나 갔다고 했죠?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바울은 지금 한마디로 빛의 광채로 볼 수 없게 되어서 나는 다메섹에 갈 수가 없는데,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서 갔다는 거에요. 그런데 지금 바울에게 그 때 있는 공동체가 무슨 좋은 공동체였겠어요. 말씀이 사운드로 안 들리는 위협과 살기의 엘리트 공동체였죠. 그러다가 지금 바울만 만난 거자나요.
이번 명절에도 죄고백을 하니깐 도리어 안 믿는 친정은 좋아하는데, 믿는 시댁은 너무 당황을 하고 믿음 있는 시어머니는 막 덮으려고 하니깐 구속사를 나도 모르는데 친정에서도 시댁에서도 나혼자 라는 이런 나눔을 읽었어요.
바울의 동료들은 똑같이 큰 빛을 봤는데도 말씀이 들리지가 않고 벙어리 되어 할말도 없는데 그냥 서 있었어요. 바울만 엎드리고 있지. 그냥 같이 걸어오던 그 태도, 그 마음, 그 열심 그대로 서있는거에요. 이 말은 옆에 있는 동료들은 아무 변화가 없어요. 사실 이렇게 아무 사건없이 살던 그대로 자기 모습 그대로 유지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유기된 상태죠. 유기 아시죠? Reprobation, 유기된 상태인거에요. 죄와 사망의 노예로 버림을 받은, 진노의 자녀로 버림을 받았어요. 이런 버림받은 태도는 배우자를 폭행하고도 할말이 있는게 우리 모습이에요. 남에 대해서는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 있지?' 그래도 그게 자기 일이 되면 '다 때릴 만한 이유가 있어서' 때렸다고 합리화를 합니다. 명백한 자기 잘못에도 죄를 인정하지 않는게 유기된 상태의 인간이에요. 무릎을 꿇고 사과 한번 하면 되는데 절대로 인정하지 않아요. 이 유기된 상태에요. 그러나 사람은요 좋거나 나쁘거나, 혼자서는 못살아요. 그래서 어른이고 아이고, 친구 너무 좋아해요. 다들 친구가 인생의 난제에요. 동창에 목을 메고, 그래서 동창에 목을 메지만은 그게 덧없다는 것도 끌려다녀봐야 하는거에요. 지금 바울처럼 믿고 났는데, 자기를 도와줄 사람은 여전히 말씀이 안 들리는 공동체 인거에요. 자기를 도와줄 사람은 말씀이 안 들리는 내 식구 내 친구들... 옆에 같이 가는 사람. 그래서 이제 부모, 남편, 형제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수모를 겪어야 해요. 말이 안 통하니깐. 아는 사람은 내 친구, 가족 밖에 없기 때문이죠. 내가 믿고 나서 짠!하고 식구들 도움을 마다 하고 혼자서 선교하고 의식주를 책임지며 나누어줄 것만 있으면 아니 좋겠어요? 그런데 현실은 말씀이 안 들리는 내 옆에 가까운 식구들의 도움을 받아서 끌려가는 인생을 경험케 하시는거에요. 참으로 주님의 셋팅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의 돈으로 차비해서 오늘 예배 드리는 거에요.
광채로 빛의 광채로 내가 눈이 멀어서 팔다리가 다 풀리고 힘이 빠졌어요. 무시 당하는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주마등 처럼 지난 일들이 생각 나는거에요. 10년 동안 예수님 믿고 나서도 계속 남편의 도움으로 무시 받고 살게 하셨을까... 나에게 필요했던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의 광채에 눈이 먼 사람은요 세상이 안 보이기 시작해요. 그런데 세상의 광채에 눈이 먼 사람은 하나님이 절대로 안보여요. 바울은 이제 세상이 안보이기 시작했지요. 그러니 끌려서 가라는 다메섹에 들어갈 수가 있어요. 이제 나와 세상은 간 곳이 없고 구속하신 주님만 있기 때문에 가라면 가고, 있으라면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눈이 멀어서 못가는게 아니에요. 눈이 멀어도 생각이 다 있자나요? 우리가 누구를 좋아하면, '쟤가 눈이 멀었구나, 누구한테 눈이 멀었네' 이러자나요. 이왕 눈이 멀려면 하나님께 멀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세상이 안보이는 사람과 하나님이 안보이는 사람이 같이 가야하는 것이 성도의 인생인 거에요. 좁은 길이죠. 누가 쉽다고 합니까?
적용질문
여러분은 어떤 광채에 누구에게 눈이 멀고 있나요? 하나님인가요, 세상인가요?
돈이 없어 또는 할 수 없어서 끌려가는 다메섹이 택자의 축복인 것이 믿어지십니까? 그 다메섹은 어디입니까?
성령의 택하심은
2. 다시 보게 하셔서 그 의인 예수님을 알고, 보고, 듣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삶의 중심이 되게 하시는거죠.
10 ... 네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2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 그가 또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그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하나님은요 힘든 다메섹에 나를 힘들게만 하지 않으세요. 내가 끌려가야 할 동료가 있고 가다보니깐 나에게 힘을 주는 지체를 또 만나게 하세요. 바울이 체포 하려던 다메섹의 제자 중 아나니아가 있었죠.
9장 기록에서는 바울에 대해서 아나니아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 자세히 나와있어요. 아나니아에 대한 소개도 바울의 간증을 듣는 유대인의 눈높이에 맞춰져 있어요. 그래서 아나니아를 예수님의 제자라 하지 않고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 그들은 지금 예수 얘기를 듣기 싫어해요. 그리고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사람 으로 소개 했어요. 한마디로 여러분들도 다 인정하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거죠. 왜 바울은 아나니아에 대해 이런 디테일을 말합니까? 하나님을 섬긴 경건한 사람과 그리스도인이 원수가 아니라는 거에요. 이걸 계속 암안리에 들려주고 있죠.
그런데 여기서 어떤 구절이 없냐 하면, 3일동안 바울의 눈을 못보게 하셔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게 했다는 이런 말이 여기에는 생략이 되었어요. 자 그러면 왜 생략이 되었을까요? 유대 군중들이 듣기 싫어하고, 알아 듣지도 못할 말은 가감히 생략을 해요. 왜냐하면요 그들은 바울의 고난에 대해 관심이 없어요. 우리의 고난도 상대에 따라서는 전해야 할 때가 있고,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얘기 하면 안되요. 내 고생을 아무에게나 가서 간증 하면 안돼요. 유대인 군중들은 이걸 들어줄 인내가 없어요. 여기서 딱 뺐어요. 내 고난도 절대로 아무한테나 가서 함부로 얘기하시면 안돼요. 딱 맞게.
그래서 아나니아가 말합니다.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다시보라 라는 말은 아나블렉포라는 말인데요, 아나는 위로.. 치어다 보라. 사울아 너는 위를 향해봐. 이 보이는 것의 넘어를 봐. 이 눈이 먼 이 사건의 본질을 봐. 그 말 한마디로 말씀이 들리니깐 시각이 달라졌어요. 지금까지 살기로 충만했던 얼굴이 은혜로 바뀌어졌어요. 성령 미인 성령 미남으로 바뀌어졌어요. 신빈의 얼굴이 성령미인이 아니었을까? 그 사람이 이쁘다는 평가는 없더라고요. 성령미인으로 바뀌면 세종하고 대화를 할 정도로 대단한 지혜가 있는 분이 아니었나.. 공부를 해서가 아니고, 노비 출신이었다고 했자나요... 이거 정말 신분이 정말 바뀌지 않았나..
이전에 아나니아도 자신들을 핍박하고 죽이려고 했던 바울과 결코 형제가 될 수 없었죠. 그러니까 아나니아도 너희와 같았다, 너희들이 칭찬하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이름을 가진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서 내가 눈이 뜨게 되었다. 지금 고난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나. 너희들이 자랑 하는 아나니아 때문에, 너희가 너무 좋아하는 그 사람 유대인 아니냐. 내가 눈을 떴다. 살기 어린 엘리트 동료들과 있다가, 아나니아 형제 공동체와 있다는 거에요. 여러분들이 설교가 잘 안 들려도 목장을 만나게 된 것은 가장 지름길이에요. 우리는 자녀들을 다 인류로 키워 놓느나고, 결국은 자기 식구 밖에 모르는 거에요. 잘 나갈 때는 전혀 엘리트 공동체만 좋아하죠. 그런데 내 식구 중에 누군가가 속을 썩이면 드디어 다른 사람 아픔에 조금 체휼이 되고, 그때서야 이타적인 형제 공동체를 알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늙어서 내가 식구 밖에 모르면, 다들 바쁜데 자녀만 쳐다보고 있으면 서로 섭섭하자나요. 여러분들이 큐티하면서 이타적인 공동체에서 목장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 투자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자나요. 그런데 이 형제 공동체를 매년 바꿔가면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이거는 진심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엄청난 최고의 노후 보장일 줄 믿습니다. 여러분들이 늙었는데 누가 여러분들을 만나고 싶어 하겠어요. 하루종일. 제가 이것도 설교 준비하는 것도 고난이겠지만, 갑자기 참 이것도 특권이겠구나 싶어요. 제가 남편도 없는데 뭐하고 지내겠어요. 정말 할 일이 있다는게 정말 얼마나 감사한가. 그렇게 생각을 하시고, 하나님께 투자를 하시고 큐티를 하고, 목장을 섬기는 건, 여러분들 죽을 때까지 노후 보장이 되는거에요. 그대로 이루어지는거에요.
눈을 뜬 사울에게 아나니아가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했다고 말해주는거에요. 여기서 이렇게 택하다는 일반적으로 선택의 단어인 골라서 꺼내다인 에클레고미 가 아니고요, 프로 라는 접두어와 손을 뜻하는 케이루 라는 말의 합성어에요. 합치면 프로케이리조마이 라는 시제까지 합치면 그렇게 되는데, 이거는 뭔가 하면은, 택하고 버리고 또 택하는게 아니라 과거에 너를 단번에 택했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의 아주 뜻깊은 단어인데, 신약에서만 누가가 사도행전에서 3번을 사용했는데요, 한번은 베드로가 오순절에 예수님에 대해서 사용하고, 두 번을 바울에게 사용한 그러니깐 예수님을 하나님이 선택하신 그 택하심을 바울에게 쓴거에요. 그러면 이거 신성모독 아니야?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하나님이 죄인 중 괴수였던 바울을 택하시는 그 은혜가 너무 대단하기에 그 단어가 아니면 다 담을 수가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특별한 단어를 써서 바울에게 말씀을 하셨을 것이구요, 두 차례 기록한 자신의 간증에서 택하여 라는 단어를 써서 은혜를 만세에 남게 했어요
지난주 설교에 고난을 우리는 때리는 손, 깨우는 손, 멈춰 세우는 손, 잡아 당겨서 끌어오는 손 이라고 했는데, 이 택하심은 미리 나를 붙드는 손 인거에요.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붙잡는 손, 만세 전부터, 창조 전에. 이것이 바로 택하심이에요. 하나님께서 붙드시는 손이기 때문에 어느 누가 그 손에서 빼앗아갈 자가 없는거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손이 나를 붙들어 세우고, 나의 손이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과 우리의 손이 딱 만나는게 택하심이다, 이 얘기입니다.
그럼 대체 이 택하심이 무엇을 위한 택하심이길래 이렇게 특별한 단어로 강조 할까요? 세가지로 말씀을 하는데,
a.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려고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우리의 인생의 목적이 행복인 줄 알았는데, 이제 거룩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이것이 예수님이 오셔서 그 뜻을 우리에게 눈에 보이도록 귀에 들리도록 드러내 주셨다는 것이죠. 이것을 위해 인생의 목적이 거룩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셨다는 말씀이에요.
b. 그 의인인 예수를 보게 하시려고
조금 전엔 알게 하시려고, 지금은 보게 하시려고.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저마다 자기가 다 의로운 사람으로 착각하고 살아요. 그래서 의인은요 자신의 의는 늘 피해의식에 시달리고 충고나 비난을 들을 수가 없어요. 죄를 보라고 하면 화를 내고 죄인이라는 말만 들어도 발작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자기만 보던 인생에서 택하셔서 진짜 의인인 예수님을 보게 하시려고 이렇게 예수께서만 유일한 기준임을 알게 하시려고 택하셨다는 거에요. 유대인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그 의인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정말 눈물겨워요. 바울의 디테일이.
c.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시려고 택하셨어요.
하나님이 택하신 목적인만큼 말씀 듣는게 너무 중요한데, 우리는 맨날 똑같은 말씀을 듣는게 뭐가 그리 대단하냐? 고 불평할 수 있지만, 바울의 택하심이라는 단어를 보면요, 그 택하심 앞에서 불평이 들어설 자리는 없어요. 내가 얼마나, 예수님을 택해주신 것 처럼 나를 택했다는 이런 마음이 들면 어떤 불평도 설 자리가 없어요. 말씀을 듣게 하시려고 우리를 흑암에서 택하셨기 때문이에요.
바로 이 세가지 목적의 중심에 그 의인 예수님이 계시는 것이죠. 예수님이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예수님의 삶을 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오직 우리 삶에 중심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알게 하시고,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삶의 중심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했다고, 잘먹고 잘 살고 행복하게가 아니라 거룩하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알게 하시고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실려고 우리를 선택하셨어요. 여러분들의 인생의 목적이 예수님과 동떨어져서는 아무것도 정말 쓰잘데기가 없다는 것이죠.
우리가 기대하는 선택은 이 땅에서 늘 대단한 보상의 선택을 늘 바라자나요. 시험도 그렇고 취직도 그렇고 결혼도 그렇고 대통령을 뽑는 대선도 그래요. 바랄 수 있는 보상이 크면 클수록 그 선택에 대한 열망도 커지는 거죠. 우리는 선택을 받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몰라요. 다 시집 잘갈려구 취직 잘 할려구, 불철주야 공부하고 모양을 가꾸고.. 어떤 선택도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할 수가 없어요.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대통령들이 간 길은 슬프지만 인생의 중요한 면을 알려주는 계시적인 역사에요. 나라의 택함을 받은 듯한 그 기쁨은 5년 임기가 끝나는 즉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자나요. 그 뿐만 아니라 거의 다 큰집으로 가셨어요. 세상선택의 결말이라 하지 않을수 없는데도 우리는 거기를 다 선택받고 싶어해요. 우리는 세상의 택함이 아닌 성령의 택하심을 받은 것을 감사해야 해요. 그래서 정말 신빈이 훌륭하다는 그런 생각이 너무 드는거에요. 우리는 눈으로 보기에 별것 없기 때문에 하찮게 여기기 쉽죠. 예수님이 삶의 중심이 되는게 실제 삶에서 무슨 유익이 있는가. 다들 그 날이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 오자나요. 그런데 그날에 유기된 사람들은 슬피 울며 이를 갈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오늘 이 말씀이 들리는 분들은 성령의 택하심을 받아 예수 중심의 삶으로 바뀌시기를 축원합니다.
적용질문:
'저 사람 다시 봤어!' 하며 내 생각과 달리 다시 보게 된 사건이나 사람이 있나요?
내 삶의 중심은 누구 또는 무엇입니까? 선택 받은 일 중 제일 기쁜 선택은 무엇입니까? 내 사건 너머의 위를 쳐다봅니까, 본질을 봅니까? 내가 가장 눈치 보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3. 증인이 되라.
증인이 되라는 거는 늘 얘기하죠. Martyr, 순교자. 왜 순교라고 할까?
15-16절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주님이 바울을 택하셔서 맡겨주신 임무는 거창한게 아니에요. 모든 사람 앞에서 바울 자신이 알고 보고 들은 것, 즉 주님의 삶과 그 말씀을 전하는 증인이 되라는 거에요. 아는 그대로 증언하는 사람이에요. 증인은요 어떤 기술이나 자격이 필요한 게 아니죠. 가장 중요한 것은, 보고 들은 경험이죠. 그 경험에 대한 확신이에요. 중요한 것은 그 확신을 있는 그대로 전할 수 있는 진실성 이에요. 다른 조건이 필요없어요. 그래서 변호사가 증인이 되는 것이 아니고, 본 사람 알고 보고 들은 사람. 이거 모두가 동등하게 받을 수 있는 임무가 증인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진실하게 증언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이 자나요. 우리는 뭔가를 제보해도 다 목숨의 위협을 느끼자나요. 이 땅에서도. 왜냐면 세상이 싫어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있는 그대로 증언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기복적으로 복 받기 위해 와서 예배만 드리면 좋겠는데, 증인이 되는 것은 손해를 보기로 작정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에 바로 순교라고 하는거죠. 그래서 주님의 사명을 감당해야 함을 알면서도 때마다 주저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이제는 무엇을 주저하느냐. 이 뜻도 되는거에요. 주저하는 이유는 주저하는 대상이 있기 때문이죠. 외부로부터 그게 오는 것 같아도 내부에서 일어나는, 나 때문에 주저하는 거죠. 왜냐하면 익숙한 것을 그래도 유지 하려고 하는 게으름, 더 많은 것을 차지 하려고 하는 욕심이 있고, 앞으로 당할 일에 대한 이 두려움 때문에, 그리고 자신이 제일인 줄 아는 착각하는 교만 때문에, 나를 택하여 맡기신 증인의 사명을 알면서도 주저주저 하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그 주저함을 매순간 이제 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시점에 마주할 수 밖에 없는거에요. 매 순간 이제 두려워하고 갈등해요. 그래서 갈등충만이 성령충만이라고 하는데, 그래도 주저하는 것은 그래도 사명 감당해야한 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성령의 택하심으로 나를 택하셔서 사명이 뭔지는 알려주셨는데 아는 대로 100% 행하지 못하는 거죠. 그런데 주님이 이런 상태를 알고 물으시는거에요. '이제는 왜 주저하느냐.' 그러고 말씀하세요. 처방 하세요.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여기서 일어나라고 처방해주시자나요. 주저 앉아 있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
우리가 사도행전 13장 33절에서, 하나님이 예수를 죽음 가운데서 일으키사 라고 하셨는데,
성령의 일으키심 설교가 기억나시나요? 하나님이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켜주셨지만 예수님도 친히 죽음을 이기시고 일어나셨어요. 일으켜 주셨으면 예수님이 수동태가 되어야 되잖아요. 그런데 예수님도 능동태가 되어서 본인이 일어나셨다는 거에요. 주의 손이 나의 손을 포개지만, 나의 손도 내밀고 주의 손도 내밀어서 우리가 이렇게 흑암 가운데 눈 멀고 다리가 꺾여 쓰러져 있던 우리를 택하여 주셨는데, 주님이 50% 내가 50% 하는 신인협력이 아니라, 주님도 100% 나도 100% 이게 믿어지셔야 돼요. 이게 삼위일체 하나님이에요. 셋이 합쳐서 하나가 아니라, 100씩 100씩 100인데 하나가 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우리를 로보트나 노예로 삼지 않으시고 당신의 형상으로 인격으로 동역자로 삼으신 주님의 섭리인거에요. 그러니까 나도 주님이 나를 일으켜 주신 것만큼 나도 내가 힘써 일어나야 하는 부분이 있는거에요. 주님이 손을 내미셨으면 나도 손을 내밀어야 돼요. 정말 나의 발을 내밀어서 내가 이렇게 일어나야 돼요. 매순간 일어나야 돼요. 게으름에서 중독에서 음란에서 탐욕에서 폭력에서 질투에서 피해의식에서 우울에서 폐배의식에서 절망에서 일어나서 우리를 붙잡으려고 하는 죄의 권세에서 그 죄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돼요. 어떻게 일어납니까? 오늘 주의 이름을 부르라고 하세요. 이건 예배 드리는 거에요. 공예배, 개인예배, 공동체 예배. 공예배, 개인예배: 큐티, 공동체예배: 목장예배.. 그건 다 하실 수 있자나요. 내가 일어나지는 못해도, 그럴 때마다 가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자나요. 그런데 이 큐티가 어려운 분들은 그저 그날 본문을 읽기라도 하시구요, 그것도 힘든 분들은 새벽 설교와 극동방송 큐티를 들으시기를 바라요. 그날 본문에서 한 단어 찾아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을 해보세요. 첫걸음이 될거에요. 여러분 들어가면 지나가면 다 잊어버려요 설교 뭐했는지 다 잊어버려요. 그런데 제가 사도행전을 두 세마디로 늘 성령의 전송, 영접, 허락, 하면 여러분들은 그래도 그건 기억 나자나요. 오직 기억하는게 제목 밖에 없어요. 그래도 제목은 기억이 나는데 제목도 길게 되면 한 두주일전 것도 기억이 안날때가 많아요. 그렇죠? 그래서 우리는 한 단어라도 찾아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을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설교도 늘 외워서 제목만 연결해서 스토리를 만들어놓으면 전도도 되고 상담도 되고 다 됩니다. 그것만 하나 해도 성경을 한권 읽어 놓으면요, 성경 전체가 내 손바닥 안에 들어.. 사도행전 하나를 잘 읽어 놓으면 성경전체.. 거기에 살을 붙여놓으면 성경 전체.. 하나라도 제대로 읽어 놓고 외우시면은..
그래서 우리는 택하심을 받은 우리 모두 각자 일어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님의 은혜에 응답해서 주저하지말고 일어나라. 내가 예수님께 택함을 입었지만은 세례는 결혼식과 같아서 택자로 시작하겠다고 공동체에 공식으로 선포하는거에요. 우리가 결혼식을 하는 것은 똑같아요. 음란하고 방탕한 내 삶을 보호해주듯이 세례를 통해 주변에 알림으로 죄의 유혹에서 보호를 받으며 이제 성령의 택함을 완성시키는 거죠. 세례를 통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결혼 관계를 깨지 않는 것처럼, 결혼식을 통해 하나된 가정은 결코 깨어서는 안되는 거에요. 이게 성령의 택함을 입은 자들이 누릴 축복인 줄 믿습니다.
적용질문
가족의 구원을 위해 해야할 증인의 사명인 줄 알지만 주저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간증) 성령의 택함을 받은 자는 이처럼 다시 보게 되어서 예수님 중심의 삶으로 이제 살게 되는 거죠. 그러므로 자신을 보게 되고, 그랬을 때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내 속의 죄와 직면하게 되고 이러면서 택자는 포기하지 않으시고 어떤 경우에도 견인해 가신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진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처럼, 정말 볼 수가 없는 사건에 해석이 안되는데 우리는 늘 이렇게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이 아나니아 목장을 통해서 이제 여러분들 눈이 떠졌습니까? 늘 당신 잘못이 아니고 내 잘못이구나, 이거를 깨닫는 거에요. 이 세상 사람들은 눈을 뜨고 있지만 결코 볼 수 없는, 니 잘못이 아니고 내 잘못.. 자신의 죄됨이 보여서, 택자는 포기 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견인해가시는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택하심 입니다.
말씀을 맺어요.
성령의 택하심은, 일어나서 그 힘든 다메섹으로 들어가라고 하는거에요. 다메섹으로 들어가야 해요. 쇠 말발굽이 가슴을 치는 찔림으로 어찌할꼬 를 물어야 돼요. 그런데 힘들게만 하지 않으시고 힘든 공동체를 따라 가다 보면은 형제 공동체도 허락하십니다. 다시 보게 하셔서 그 의인인 예수님을 알고 보고 듣게 하십니다. 그러면 순교자의 마음으로 증인이 되라, 주저 하지 말고 응답 하셔야 돼요. 증인이 되어서 순교자처럼 세상이 너무 싫어하니깐 손해 보기로 작정해야 하니깐 하나님은 자신 있으니깐 명령하시는 것 같아요. 오늘 주님이 손 내밀어 주실 때 우리 내 손을 포개고 발을 포개고 그런 우리의 성령의 택하심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목장나눔:
참석자: 김남룡, 류혜국, 김명규, 김병희
처음으로 김명규 친구 목장 참석했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또 한번 자기소개, 죄패와 고난, 나누었습니다.
적용질문:
여러분은 어떤 광채에 누구에게 눈이 멀고 있나요? 하나님인가요, 세상인가요?
돈이 없어 또는 할 수 없어서 끌려가는 다메섹이 택자의 축복인 것이 믿어지십니까? 그 다메섹은 어디입니까?
A:
직장이 내게 다메섹, 세상에 눈이 멀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 보다 세상에 가깝게 있고 싶은 마음이 있다. 어릴 적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세상적인 것들에 잘 포기가 안된다.
만약 내가 교회 다니지 않았더라면 세상 좋은 것들 찾아 떠났을 것 같다
여전히 세상의 것이 좋지만, 택자의 길을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있고, 완전히 떠내려가고 있지 않은 - 이것이 나에게 주신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현재의 맡고 있는 직분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B:
모태신앙이지만 늘 세상의 화려함에 눈이 멀었었다. 늘 최고가 좋았고 지금도 좋다.
남도 속이고 나도 속은, 아주 구석에 숨겨져 있던 나의 욕심들을 하나하나 드러내시고 계심을 요즘 많이 느낀다. 계속 욕심을 보게 하시고 깨트리심을 경험하고 있다. 욕심을 좀 내려놓고, 지난 금요일 큐티 말씀처럼 나의 원함 과 예수님의 원함 이 일치하기를 앞으로 기도하겠다.
C:
예전엔 명예가 최고였고, 요즘은 돈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돈이 있으면 사실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생각한다. 이전 직장에서 큰 불화가 있었는데, 더욱 돈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 돈에는 유효기간이 있는 것 같더라. 돈이 곧 행복은 아닌 것 같았다. 돈만 보고 하는 것은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하는 것 같다.
돈도 물론 중요하지만, 중심을 어디에 두냐.. 를 교회에서 많이 얘기해주신다.
자기의 관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삶의 질이 중요한 사람들은 돈을 보면 안된다. 하지만, 돈이 있으면 거의 모두 해결된다.
> C군의 다메섹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한 때 코로나 백신이 내게 다메섹이었다. 내 자율이 아닌 타인의 강요에 의해서 한다는 게 싫다.
> 나도 싫었지만,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라 생각해보면 좋겠다.
더불어 이전 직장에서의 사건을 좀 더 잘 살펴보길, 본질적인 것들을 더 살펴보길, 이 수치를 내가 당해도 되는것인가... 를 한번 돌아보면 좋겠다.
언젠가 C군에게 나에게 다시 반복될 수 있는 사건이기에, 해석이 필요하다.
D:
나의 다메섹은 일. 하기 싫어도 해야하는 일 이다.
나도 하나님 보다는 세상이 더 가깝다. 당장 일 하는데 하나님 보다는 세상적으로 생각하고 접근하기가 쉽다. 세상의 광채에 눈이 멀고 있는 것 같다.
적용질문
'저 사람 다시 봤어!' 하며 내 생각과 달리 다시 보게 된 사건이나 사람이 있나요?
내 삶의 중심은 누구 또는 무엇입니까? 선택 받은 일 중 제일 기쁜 선택은 무엇입니까? 내 사건 너머의 위를 쳐다봅니까, 본질을 봅니까? 내가 가장 눈치 보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E: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늘 있다.
내가 눈치를 보면서 하지 않는 일들, 혹은 그냥 넘어가는 일들이 - 오히려 남들에게 눈치를 보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F:
남들이 하고 있지만 내가 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눈치를 좀 본다. 다들 취업했는데 취직을 아직 안하고 있어서 눈치가 보인다.
나의 중심은 내 자신 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G:
반반이다. 눈치보는 게 상황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사람에 따라 다르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의 기준?
배려심의 유무, 합리성의 유무를 보고 판단한다.
기도제목:
H:
신결혼 준비 잘할 수 있도록.
조직개편 후 다른 역할을 맡게 되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고 분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ampndash 잘 분별하고 순종할 수 있는 마음 주시기를.
I:
한달 남은 시험 열심히 준비하고, 집중 잘 할 수 있도록.
남동생이 좀 더 착실하게 생활할 수 있기를 (현재는 나눔 하기 힘들다, 나중에 나눔하겠다.).
J:
현재 있는 곳에서 하고 있는 일 잘 마무리 하고.
곧 취업하게 될 예루살렘 같은 직장에서 잘 무릎 꿇고 갈 수 있도록.
K:
내 주변 모든 사람이 부자 될 수 있기를, 다 좋아질 수 있도록, 행복이든 금전적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