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6 사도행전 22:9-16 (성령의 택하심)
1.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빛은 보고 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바울이 간증입니다. 바울의 옆에 있던 사람이 그당시 들었던건 사운드고 바울이 들었던건 보이스라 기록해놨습니다. 보이스로 들리면 첫날부터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소음처럼 들렸던 사운드로 들리는것, 보이스로 들리는것 그러면 반응이 내가 이르되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라고 합니다.
그 순간 바울이 너무나 찔려서 어찌할꼬 한것입니다. 바울의 삶의 주어가 내가 에서 주님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처방은 다메섹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땅끝까지 선교하러 가, 이방선교해 라고 말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왜 다메섹일까요? 율법으로 저주받은 예수를 믿는자들이 많은곳, 그래서 너무 무시가 되고 그들도 바울을 무시하는, 서로 무시받고 무시하는 사람이 있는곳 다메섹으로 돌아가라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바울의 목적지가 바뀌지 않습니다. 드라마틱하게 내인생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가려고 했던 그곳으로 여전한 방식으로 들어가라 하시는 것입니다.
저도 각각 시기마다 다메섹이 달라서 저는 주의 일을 하겠다고 했지만 당시에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훈련이 필요했기에 집에서 의미없는것 같던 날들을 10년 겪에 하시고, 남편이 죽고나서는 보이스로 나팔소리처럼 들리는 말씀 간증으로 책을 내라, 신학을 하라라는 말도 있었고, 그후 50살이 되어서 교회의 부탁으로 신학을 했죠, 그렇다고 전도사로 임용된것도 아니고 바로 교회를 개척한것도 아닙니다.
그저 그날그날 주신 말씀으로 살며 13년간 집에서 큐티모임만 했습니다.
내가 있어야 할 그자리에 신학도 안한 과부에 집에서 큐티모임만 하는 여자라 무시받으며 잘 머무른곳이 다메섹 목적지가 되었습니다.
이타적인 지혜는 정말 멋있는것 같습니다. 시기마다 다메섹으로 갈때마다 엎드러져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야 하잖습니까? 죽음에서 부활한다는 단어를 쓰셨는데 일어날때마다 정말 힘이 든다는 것입니다.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했는데 눈이 멀었는데 어찌갑니까?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서 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에게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말씀이 안들리는 위협과 살기에 공동체였을것이기에 말이 안통했을것입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고 벙어리가 되어 바울은 엎드리는데 그들은 서있었습니다. 그 태도, 그마음 그 열심 옆에서 내가 아무리 간증을 하고 난리를 쳐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자기 모습그대로 변하지 않는것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유기된 상태인것입니다. 유기된자는 죄와 사망의 자녀가 된것입니다.
유기된 사람들은 명백한 잘못된 죄가 있는데도 인정하지 않는것이 유기된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사람은 혼자서는 못삽니다. 친구 좋아하지 않습니까? 다들 친구가 인생의 난제입니다,
이런 안들리는 엘리트 공동체에 끌려다녀봐야 덧없다는 것을 압니다. 바울을 도와줄 사람들이 여전히 말씀이 안들리는 사람들, 오직 아는 사람이 그 친구들 밖에 없는것입니다. 여전히 안믿는 가족들, 친인척들의 도움을 받을수밖에 없는 수모를 겪게 하십니다.
말씀이 안들리는 부모 형제 도움을 받아 여기 와서 예배를 듣는 것입니다. 그런 인생을 경험하게 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셋팅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광채에 눈이 먼 사람은 세상이 안보이기 시작하고 세상의 광채에 눈이 먼 사람은 하나님이 안보입니다.
세상이 안보이기 시작하니 세상과 나는 간곳이 있고 구속하신 주만 있기에 가라면 가고 있으라면 있는 사람이 된것입니다.
-적용 : 여러분은 어떤 광채에 누구에게 눈이 멀고 있나요?
하나님인가요? 세상인가요?
돈이 없어 또는 할수없어서 끌려가는 다메섹이 택자의 축복인것이 믿어지십니까? 저주같습니까?
그 다메섹은 어디입니까?
2. 다시 보게 하셔서 그 의인 예수님을 알고, 보고, 듣게 하십니다.
내가 끌려가야할 동료가 있고 순종하고 가다보면 나에게 힘을 주시는 지체를, 아나니아공동체를 만나게 하십니다.
바울이 체포하려던 자중에 아나니아도 있었는데 그당시 유대 군중들에게 아나니아를 소개할때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소개합니다. 이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훌륭한 사람을 뜻합니다.
왜 바울이 이렇게 소개를 했을까요? 유대인의 기준에 맞춰야 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 다른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 군중들이 알아듣지 못할 것은 과감히 생략합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어떤 고난을 겪었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고난도 상대에 따라 전할때가 있고 안해야 할 때가 있기에 이런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전에 아나니아도 바울과 결코 형제가 될 수 없었으나 지금의 너희들과 같이말입니다. 그렇게 너희들이 칭찬하는 율법에 따라 경건한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 내가 눈을 띄게 되었다 라고 이사람들에게 맞게 간증하는 것입니다.
큐티하면서 목장을 하는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잖습니까? 매년 형제 공동체를 바꾸며 다양한 사람들과 이렇게 시간을 쌓아가는 것은 노후 보장을 하는것과 같습니다. 한동안 목장을 안나갔더라도 나중에 너무 힘들때 내 얘기를 들어주는 이가 생각나는 곳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예전에 지체, 한사람앞에 내 얘기를 할수 있었다면 죽고 싶진 않았을것이라 생각됩니다. 인생은 늘 불가항력적인 일이 생기는데 말할데가 없어 죽는것입니다. 그렇기에 목장은 정말 최고의 노후보장입니다. 인생에서 학벌 돈 좋아하는 것보다 목장에서 나누는것이 금보다 귀합니다.
눈을 뜬 사울에게 아나니아가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택했다의 단어는 선택했다가 아니라 골라서 꺼내다가 아니고 과거에 단번에 택했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다는 대단한 뜻입니다.
죄인중 괴수였던 바울을 택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만세에 남게 한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그 택하심을 표현할 길이 없는것입니다. 어떻게 나같은 자를 택해주셨나 하는것입니다. 택하심은 만세전부터 나를 붙드시는 손입니다. 하나님이 붙드시는 손이기에 어느누가 부정할수 없는것입니다.
하나님의 편에서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는것이 성령의 택하심입니다.
그렇다면 왜 택하심이 이렇게 중요하고 왜 택하셨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려 택하셨습니다. 주님의 빛을 받아 인생의 목적이 거룩임을 알게 하려 선택하셨단 모습입니다.
둘째는 그 의인, 진짜 의인이신 예수님을 보게 하시려고 택하신것입니다. 그래서 내 의라 여겼던 것들이 죄라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셋째로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려고 택하셨습니다. 내가 어마어마한 택하심을 받았기에 어떤 불평도 설자리가 없는것입니다. 말씀을 듣게 하시려 흑암에서 택하셨기에 이 세가지 중심에 에수님이 있는것입니다.
내 삶의 중심이 하나님이 되게 하시려고 예수님을 알고 보고 듣게 하시려고, 오직 그목적때문에 나를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택함이 아닌 성령의 택하심을 받은것을 감사히 여겨야 하는데 참 하찮아 보여서 그것을 자주 잊습니다.
내인생의 마지막 순간은 반드시 옵니다.
-적용 : '저사람 다시 봤어!' 하며 내 생각과 달리 다시 보게 된 사건이나 사람이 있나요? 내 삶의 중심은 누구 또는 무엇입니까?
내가 살면서 선택 받은 일 중 제일 기쁜 선택은 무엇입니까? 내 사건 너머의 위를 쳐다봅니까? 본질을 봅니까?
내가 가장 눈치보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3. 증인이 되라.
보고들은것이 경험이고 그 경험이 확신이고 그 확신은 진실성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난것을 증인의 사명입니다.
증인은 순교자라는 것인데 왜 순교자라 합니까? 쉽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증인되는것은 손해보기로 작정해야 될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주저 하게 되는데 왜 주저하느냐? 무엇을 주저하느냐?
외부의 대상때문에 주저하게 된다고 보통 생각하지요, 그러나 그것은 결국 나로부터 옵니다. 나때문에 주저하는 것입니다.
익숙한것을 유지하려는 나의 게으름이 있고, 더 차지하려는 욕심이 있고, 자신이 제일인줄 착각하는 교만때문에 증인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매순간 주저하게 됩니다.
나를 증인삼으시려 택하신것을 알면서도 매순간 주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등하지만 성령 충만이 갈등 충만이어서 사명을 감당해야 된다는 것을 아는데, 100%주님을 위해 살아야 하는데도 안되는것입니다, 헌데 예수님이 그것을 다 아십니다. 우리는 주님이 명령해주시면 순종하시면 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께 일어나라 하셨을때 하나님이 명하셨지만 그때 예수님이 수동태가 아니라 능동태로 일어났다고 했지요? 자기가 스스로 일어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일으키신것도 100%로 하나님의 의지고 예수님이 일어나신것도 100%의지입니다. 여기도 100% 100% , 삼위일체도 100% 100% 100%를 합쳤는데도 100%인것입니다.
하나님이 죽음가운데서 일으키셨지만 예수님도 자기 의지로 일어나셨기에 우리도 매순간 일어나야 합니다. 주의 손이 나를 일으켜 세웠는데 그런 주님께 내 손을 내밀어 붙잡아야 하는것입니다. 주님의 손에 내 손을 포개야 합니다. 포개는 것이 중요합니다.
게으름, 중독, 우울, 패배의식, 욕심, 탐욕, 인정, 우상, 나를 붙잡으려하는 죄의 모든것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죄의 권세에서 일어나야 하는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일어날수있습니까? 주의 이름을 부르라 하십니다.
그럼 주님의이름을 어떻게 부르죠? 공예배, 목장예배, 매일하는 큐티로 불러야 합니다.
-적용 : 가족의 구원을 위해 해야 할 증인의 사명인 줄 알지만 주저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다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을, 내 죄를 다시 보게 되는것입니다.
택자이기에 공동체에 와서 보이스로 말씀이 들렸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아나니아가 있는 목장공동체에서 무엇이 떠졌습니까? 이렇게 포기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늘 우리를 견인해 가십니다.
<기도제목>
윤아
1. 결혼준비의 과정을 은혜의 말씀에 부탁할수있길
그안에서 그 과정이 나의 원함이 주님의 원함이 될수있도록
2. 직장내에 주어진 역활을 잘 할수있도록, 상사 뒷담화 안할수있길
3. 생활예배(큐티) 잘 드릴수있길
다님
1. 주어진 환경에서 제 역활, 제 자리를 잘 지키고 예수님안에서 동행할수있길
2. 동생이 공동체에 정착할수 있길
3. 생활예배(큐티) 잘 드릴수 있길
A
1.직장내에 있는문제 실장님이랑 얘기할때에
지혜롭게 말할수 있도록.
2.지금 체력이 많이 떨어지는데 마음가짐 잘 챙기고 육체적인 힘까지도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