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22년 01월 02일 주일예배
본문 : 사도행전 21장 14절~18절
제목 : 성령의 영접
설교 : 김양재 목사님
14절 -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15절 -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16절 -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17절 -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18절 -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찬양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기도합니다
아버지 정말 이렇게 성령 시리즈를 하면서 성령을 받기를 끊임없이 기도하지만은아직도 성령이 내리시지 않고 영접이 안 되시는 분들이 있어요. 주님 2022년도에는 성령의 영접을 꼭 하실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항상 이제 우리는 정말 고향에서 대접을 이제 못 받는데, 어저께 이제 너무나 유명하신 목사님께서 카톡을 보내시면서 제 계시록 책을 선물받았다는 거예요. 너무 놀랍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예, 이분은 진짜 굉장하신 분이니까 저한테 이렇게.. 아 그래서 다들 혹시 알고 있는데 말씀을 안 하신 건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어 이 대단하신 목사님이 너무 놀랍다고 그러셨으니까, 여러분들은 좀 더 놀라시기를 바라고 이제 구하셔서 책을 꼭 좀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2022년 첫 주일이에요. 올해 표어처럼 매사에 그 은혜에 말씀에 부탁하는 우리들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제 성령의 전송을 받았기 때문에, 이제 지난주 성령의 각오로 이제 두로와 돌레마이 가이사랴에서 결실을 맺었어요. 화해가 일어났잖아요. 근데 이제 똑같은 각오이지만은 나의 각오를 위해서 너를 죽일 때는 원수가 되었는데, 성령의 각오를 위해서 내가 죽어지니까 화해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이렇게 주님을 위해 나가는 자는 어떻게 응답해 주실까요 새해 첫 주일에 주님께서 영접해 주신다고 합니다. 왜죠 왜 주님께서 영접해주실까요 오늘은 성령의 영접에 대해서 생각을 해볼게요.
첫 번째,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때문입니다.(14-15절)
14절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그러니까 다들 이제 가지 말라고 그랬는데 바울이 권함을 받지 않았잖아요. 이제 좋은 사람과 만나면 결과도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했어요. 염려를 맡기는 구조가 참 중요한데 다 말렸지만 그래도 바울의 그 우리공동체가 있잖아요. 그 공동체는 늘 묻고 나누고 하기에 이 중요한 것이 바울의 뜻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이 각오의 한자는 깨달을 각(覺), 깨달을 오(悟)라고 해요. 들린다는 것은 그래서 깨닫는 것이죠. 이들은 바울의 말씀이 들려서, 같은 말씀으로 양육받은 동역자요, 제자였습니다. 자기들이 보기에는 어리석은 고집처럼 보이는 바울의 각오지만, 그 각오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은 바울 개인의 뜻도 아니고, 자기들의 뜻도 아니고, 오직 주의 뜻이라는 신앙고백을 했어요.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주의 뜻의 핵심은 데살로니가전서 4장 3절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즉 악하고 음란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되는 것! 그렇게 거룩하게 하나님 편에 서 있는 것 세상의 조류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바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올라가는 게 쉽지 않죠. 그래서 같이 가는 우리가 너무 중요해요. 그래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리다 했어요. 목장에서 서로 우리가 돼서 권해 주시는 그러나 권해주시되 초신자도 있고 믿음이 약한 사람도 있는데, 정말 지혜롭게 권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처음 온 분들한테 우리들교회 식의 말씀을 막 하면 체해서요, 어떻게 됩니다. 예, 어저께 송구영신 예배 설교 리플에 목사님이 하도 목장 좋다고 그래서 가보니까 좋은 거 하나도 없대요 어떻게 그렇게 함부로 말들을 하고 그럴 수가 있어요 무례하다고 하는 그런 리플이 올라왔어요. 예, 그래서 또 우리가 들어야 될 말씀이 아닌가 다 좋지 않아요. 우리가 다 나를 위해 값 주고 피를 흘려 죽어주신 주님의 공동체니까. 목장은요 왜 나가는 건가 하면요, 목장에 가면 봐줄 수 없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그 사람들이 너무 싫어요.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교만한지를 보라고 가는 거예요. 근데 세상 모임 같으면 당장 안 가겠는데 여기가 주님의 공동체이기 때문에 훈련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래서 가는 거예요. 좋은 사람만 있어서 가는 게 절대로 아니에요. 그러나 또 목장 식구들은 처음 온 사람들을 항상 이제 유리그릇처럼 다루면서 이렇게 이제 호호 불어가면서 가는! 그래서 영접을 해주시는 1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5절이에요.
15절 -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까지 100km인데요. 3차 전도여행의 마지막 구간이에요. 거리는 짧지만 올라가는 그 길이 해발 800m에 있기에 문자적으로도 쉽지가 않아요. 이렇게 예루살렘 간다고 그러는데 저도 예루살렘을 못 가보고 이렇게 예루살렘 설교를 평생 하네요 안 보고 믿는 자가 더 복이 있다고 그랬으니까 복 받을 줄 믿습니다. 예, 목사가 돼서 제가 예루살렘을 안 가봤어요. 말이 돼요
근데 결박과 핍박이 기다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왜 이렇게 예루살렘에 올라가려고 했을까요 결정적인 이유가 있어요. 사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이유는요, 지금 헌금이었잖아요. 그죠 근데 헌금 때문만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가서는 안 되는 길이에요. 예루살렘 유대인들은 죽이려고 했잖아요. 그 유대인들은 그들만 선민이기에 이방인들이 선민이 될 수가 없다는 이런 굳센 고정관념이 깨지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바울을 보면서 잡아 죽이려고 하고, 쫓아내며, 막 옥에 가두었잖아요 그런데 바울을 그렇게 미워하는 유대인들의 본산인 그들의 소굴로 지금 가야겠다는 거 아니에요 그들에게 헌금 때문만이라면, 얼마든지 그 아시아 교회 지도자 일곱 교회 대표 지도자들만 보내도 되잖아요. 그런데! 이 헌금이 아니면요 예루살렘 지도자들을 만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냥 여기고 거기고, 교회고 회사고, 그냥 끝에 돈이 있잖아요. 돈 때문에 날마다 고발하고 이러잖아요. 그죠? 뭐 어디 가정이고 뭐고 이혼도 다 돈 때문에 고발하고 이러잖아요.
그러니까 예루살렘 교회는 너무나 흉년에 힘든 이때 이 헌금을 가져가면 바울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루살렘 교회가 그럼 이 헌금을 왜 받아들여야 되냐 하면 이 헌금을 받아들이면, 이방교회에 바울이 전한 그 복음이 예루살렘교회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계기가 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헌금을 전달하면서 자신의 평생 소원인 자신의 혈육 유대인들에게도 구속사의 복음을 전할 기회를 이제 얻고자 하는 거죠. 그만큼 유대인의 고정관념은 너무 깊었고,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의 돈까지도 너무 부정하게 여겼기 때문에 흉년이 아니면 받을 기회가 없어요. 그래서 그 헌금을 반드시 받게 해야 되요 반드시 전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복음 때문에 이렇게 헌금을 전하려는 안타까운 이 시급함과 간절함이 좀 다가오십니까 모르죠 예 진짜 여러분들 왜 그렇게 몰라요. 제가 이렇게 안타깝게 설교하는데 예 그래서 헌금 전하고 가서 그걸 빌미로 이 복음을 전하고 예루살렘 교회하고, 이방인 교회하고 이렇게 화해했다 이게 소문나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가기 전에 이방인 교회인 두로의 제자들과 화해했고, 예루살렘 교회의 전도자 빌립과 화해를 한 거예요. 상징적이잖아요. 그러니까 이렇게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해야 난공불락의 성 예루살렘이 인정하지 않을까 한 것이죠. 그래서 이제 화해 열매를 가지고 드디어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 헌금을 전달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이방 교회에서 전한 복음이 예루살렘 교회와 하나라는 것을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이거 복음 때문인 거 맞죠 그죠 그러니까 큐티는 디테일(detail)이라고 그랬잖아요. 숨결을 불어넣어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그냥 주입식으로 그냥 복음 때문에 가는 거에 뭐0 이렇게만 하면 그게 이제 복음 때문에 가는 거. 그렇게 말하면 우리 모두 .복음 때문에 안 하는 게 어디 있어 복음 때문에 오늘 예배도 왔죠 그죠 이렇게 (숨결을 넣어서) 생각을 해봐서 전도고 뭐고 이렇게 설득력 있게 전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이해가 지금 좀 팍 되시죠? 고개 좀 끄덕거려봐요. 이해가 되셨어요? 그러니까 '나는 큐티 할 게 없어~ 아무것도 뭐~~ 그러니까 아니 뭐 복음 때문에 가면 가는 거고 ~ 안 가면 안 가는 거지~' 그러시니까 목장에서도 이 구원에 대해서 그 입장으로 그냥 내려가서 해야 되는데... '저 사람은 왜 우리들교회가 싫을까? 왜 말을 안 들을까?' 아휴, 이 세상의 언어와 너무 다르기때문에 우리 목장에 오면 문화 충격이에요. 그러면 그거 전부 이제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나를 부정하는 얘기를 하니까. 내가 지금까지 잘했는데 뭘 안다고 나한테 이러고 저러고 하나?!! 그러니까 큐티를 하면서 이렇게 그냥 아주 숨소리도 들어야 되는 거죠. 그래 결국은 복음 전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 이렇게 수고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왜? 왜 집에서 순종을 해야 되고? 회사에서 순종을 해야 되는가? 복음 전할 기회를 얻기 위해서! 그렇게 순종해야 되는 거예요. 그냥 성경책, 뭐 큐티인 하나 갖다 주고 전도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내 삶이 묻어나야 되는 거죠! 그죠? 그러니까 예루살렘 가기 전에 두로의 제자들과도 화해를 하고, 빌립 전도자하고도 그냥 무릎 꿇고 화해하고! '미쳤어? 뭐가! 뭐가 부족하다고 가서 무릎을 꿇어?' 이게 여러분들의 주제가가 되면 이제 안 되는 거죠! 적용해 보세요.
[적용] 나의 힘든 예루살렘을 무엇 때문에 올라가고자 합니까? 나의 이해타산 때문입니까? 복음 때문입니까?
(쉬운 말로) 지금 나의 묶인 환경에서 견디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쉽게. 그죠? 예 앞의 질문은 여러분들끼리 나누는 거고, 뒤에 거는 새로 오신 가족한테 '지금 견디는 이유가 뭐예요?' 이렇게 이제.
그럼 이제 더 쉽게 제가 이제 대학교 붙으면 가난한 이 고학생의 앞날이 대로일 것 같아서 너무나 이제 입시 때 견뎠죠. 시집살이 때 견딘 것은 남편이 전문의 딸 때까지 견디면 우리가 이제 경제적으로 독립하니까 살림을 날 것 같아서죠. 그래서 그때까지 입 다물고~~ 견디고 있는데 전문의를 딴 날! 시아버님이 '살림을 나간?' 이건 '살림을 내줄까?'이 얘기에요. '살림을 나간?' 물어보시니까 우리 남편이 '제 눈에 흙이 들어가도 부모님을 모시고 살겠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제 앞에서! 그러니까 늘 제가 견딘 이유는 복음 때문이 아니고, 결국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남들 놀 때 공부하고, 피아노치고, 걸레질하고, 죽으라고 견뎠죠. 즉, 이해 타산 때문에 견디고~ 견뎠어요~ 이를 악물고 있는데... 예, 그런 사람을 세상은 착하다 성실하다 칭찬을 합니다. 그런데 성령이 영접해주지를 않아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데!! 하나님의 영이 수면에 운행하지를 않으세요. 그래서 이를 악물다가 이빨이 다 빠질 뻔했어요. 이를 악물다가 성령이 운행하지 않는 인생을 살면서 견디고 견디다 무너진 거죠. 성령의 영접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여전히 '착하다~ 성실하다~'에 속아서 어딘가 열심히 지금 올라갑니다. 근데 정말 안타깝지만... 이렇게 삶의 목적이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 있으면 이제 가족이고 뭐 회사고, 어디고 그냥 고통이에요. 고통. 어떻게 그게 행복할 수가 있겠어요? 목적이 다른데. 여러분, 이기적인 사람하고, 이타적인 사람하고 모였는데 고통 아니겠어요? 서로 고통이에요. 이기적인 사람들끼리 모이면 잠시는 또 행복할 수 있겠죠? 서로 남의 거 뜯어먹는데 인생의 목적이 있으니까. 그래서 믿는 사람은요, 고통이 정상입니다. 그래서 팔 복 받으라고 그랬죠? 예.
성령의 영접은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때문에 영접을 해주시는 거고, 영접할 수 있어요. 그런데 두 번째는,
두 번째는 아주 의외의 몇 제자가 여장을 꾸립니다. (15-16절)
의외의 몇 제자가 함께 떠나는 거예요. 15-16절입니다.
15.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머물려 함이라
자, 이 여러 날 후에 여장을 꾸렸다고 합니다. 빌립과 화해하고 가이사랴에서 꽤 여러 날을 머물렀어요. 지금 얼마나 바쁜데. 빌립을 쳐다보며 계속 기다렸어요. 혹시 같이 간다고 그럴까? 그러나 사명의 인생은 또 여장을 꾸려야 되는 거죠. 그런데 빌립이 여장을 안 꾸렸잖아요. 그죠? 그런 것처럼 내 자녀가 품질이 좋고, 내 딸이 네 명이나 되는데 전부 예언을 하고, 내 남편이 품질이 좋으면요, 여장을 꾸릴 수가 없어요. 딱 달라붙어서 떠나기가 싫어요. 내 가족 역시 구원을 위해 내게 맡겨주신 사람들임을 깨달아야 하고, 내가 사는 이곳은 구원을 위해 내게 허락한 곳이지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님을 늘 깨달아야 되요. 우리가 올라가야 할 본향이 있음을 알고, 내가 이 땅에서 여장을 늘 꾸려야 하는 나그네임을 늘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고난으로 인한 사명은 우리를 늘 여장을 꾸리게 하는 거예요. 부요하면 이 힘든 오르막길인 예루살렘으로 어찌 떠나고 싶겠습니까? 또 마음의 준비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예루살렘에 올라갈 각오를 했으면, 실제로 그 여행을 위해 몸을 준비하고! 짐을 꾸리는! 실제적인 여장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내일부터 큐티할 각오를 했어!' 말하기는 쉬워요. 생각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마음을 실천에 옮겨 실제로 큐티하는 것은 정말 다른 문제예요!
근데 이 여장을 꾸리는데 누가 지금 동참을 하나요? 몇 제자가 동참을 하잖아요. 가이사랴 성도들은 바울과 빌립이 주 안에서 하나가 되는 모습을 지금 봤어요. 그 오랜 긴장과 어색함이 말씀 안에서 해석이 되어 이제 해결이 되는 화해를 경험했잖아요. 근데 바울은 빌립이 동조해주지 않아서 섭섭했겠지만은, 그러나 자신을 늘 악한 일에서 건져주시기를 바라는 바울은 그 일절 그런 티를 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잘 모르는 거죠. 예, 그래서 가이사랴 성도 중에 아, 화해를 했구나! 이래가지고 몇 사람이 바울을 따라 나섭니다.
이들은 성령의 각오로 환난과 결박뿐 아니라 죽기까지 각오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바울과 함께 가는 지체가 되는 수고와, 예루살렘에 함께 들어가서 머물 집을 준비해주는 수고와,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받을 비난과 박해도 각오해야만 하는 그 수고를! 그 대단한 빌립이 아니라 이 무명의 제자 몇 사람이 한 거예요. 빌립이나 바나바처럼 유명한 지도자들은 끝까지 바울을 돕지 못했지만, 이름 없는 소수의 제자들과 나손처럼 이름이 기억되었어도 유명하지 않은 사람이 가장 힘들 때, 바울과 함께 갔고 그를 도왔습니다.
그중에 이 나손이라는 사람도 있었어요. 누가는 그를 오랜 제자라고 소개합니다. 이건 처음부터란 뜻인데요. 바울보다 먼저 제자가 된 사람이에요. 그럼 구체적으로 그게 언제인가 하면, 아마도 성령께서 강림하시던 사도행전 2장에 그 오순절에 이 땅에 가시적으로 세워진 첫 번째 교회의 첫 번째 제자라는 뜻이겠죠. 120 문도 중에 한 사람으로 보기도 합니다. 나손의 이름이 헬라식 이름인 것으로 보아 헬라파 유대인이었으며, 또 바나바와 같은 구브로 출신입니다. 그리고 빌립이 돌보던 가이사랴 교회와 친밀했던 사람이고요, 예루살렘에 집이 있는 것을 보니 지금 예루살렘 교회의 일원이기도 했었을 거예요. 그리고 10명 이상이 넘는 인원의 숙소를 제공할 정도면 부자였을 거예요.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100Km니까 한 사흘 정도 걸렸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예루살렘 교회 개척 멤버 또는 핵심 멤버였던 나손이 지금 예루살렘을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바울에게 같이 걸어가면서 여러 가지 정보를 주지 않았겠습니까? 바울이 이방 선교를 하는 사람이니까 '당신도 이방인 전도했지만 베드로 사도가 어떻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는지, 중풍병자 애니아를 고치고, 욥바의 도르가를 만나고, 그 가이사랴의- 바로 가이사랴의!!!- 고넬료를 어떻게 만났는지~~ 등'을 소상히 전하지 않았겠어요? 그리고 또 '예루살렘 교회는 이제 이방 선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고, 또 요즘 분위기가 어떤지' 그런 얘기를 하다 보니까 바울이 또 물었겠죠. '그런데요~ 근데 요즘 사도들은 저를 어떻게 생각해요?' 그거 묻지 않았을까요? 지금 무서운 예루살렘 교회에 가니까. 그러니까 나손과의 이런저런 대화를 통해서 이제 정보를 입력하는 거죠. 정보를 받았어요. 빌립에게는요, 너무 거물이라서 못 물었을 것 같아요. 근데 나손은 이미 바울을 지지하고 따라나섰기 때문에 이런 여러 가지를 물을 수 있는 거죠.
이처럼 여장을 꾸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 무작정 올라가서는 안 됩니다! 머물 곳도 생각해야 하고, 특히나 내 감정이 상대방에게 상해 있을 때는 직접 만나면 큰일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목장에 목원 하나가 오면 무작정 만나서는 안 돼요! 연구해야 돼요! 정보를 알아야 돼요! 믿음의 정도가 어떤지, 어느 상황인지 목사님들 심방 갈 때, 이 정보를 다 가지고 가야 돼요. 이 사흘이라는 시간은 어마어마한 시간이었어요.
근데 오랜 세월이 지났더라도 지금 말씀을 듣고 적용으로 올라가서 문안하다가도 '지금 와서 하는 얘기인데~ 너 옛날에 그때 그랬잖아!!!??' 이 작은 단어 하나에 감정이 폭발을 하기 때문에 아니, 화해하러 갔는데 옛날 얘기를 왜 해요?!' 근데 다 싸우는 사람의 특징은 옛날 얘기하잖아요. '니가 이때 그랬잖아! 결혼할 때 그랬잖아! 신혼여행 갈 때 그랬잖아! 결혼기념일에 그랬잖아! 나한테 선물 안 했잖아! 나한테 언제 기념일에 선물 챙겨준 적 있어?!' 오늘 목사님의 간증이에요. 결혼기념일 때마다 싸웠대요. 심지어 어떤 사람은 선물 안 해줬다고 아주 그냥 뛰어내려서 죽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 정보가 너무 필요한 거예요. 이 나손이 같이 가면서 어마어마한 일을 했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아~ 나손하고 갔나 보다~' 이러죠? 저는 이렇게 겪은 게 많고, 당한 게 많아가지고... 24시간 묵상하고 있는 거죠. 나손은 왜 갔나?)
그 사정을 잘 아는 나손을 통해서 우리는 늘 미리 듣고, 기도하면서 준비해야 돼요. 무엇 때문에? 성령의 영접을 위해서! 구원 때문에! 그래서 이것 또한 다 올라가기 위한 여장을 꾸리는 일에 속하죠.
그런데 요즘 정치판을 보면요. 말 한마디에 마음이 상하고, 인내심이 부족하여서 감정이 계속 폭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정말 고난이 없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나라를 위한 사명감이 있다면 그렇게 화를 낼 수가 없어요. 근데 이 세상에서 이기고 이기려는 목표만 가져도 잘 참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 야망일 때는 이게 무서운 것이죠. 그러니 나라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 나라를 모르고는 이 백성을 사랑할 수도, 사랑을 지을 수도, 사랑을 만들 수도 없어요. 하나님 나라를 사랑해서 나라를 사랑한다면 참고 인내하는 것이 쉬워요. 상대방의 눈높이로 내려가서 참고 또 참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까 제가 이 정도로 목회를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수없이 참았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제가 목회를 잘 하려고 참았다면 - 큰 교회 목사가 되려고 참았다면- (그러니까 이 나라 지도자가 왜 되려고 하는지 그 목적이 중요한데) 그랬다면 그것이 야망이 되어서 저는 아주 예전에 무너졌을 거라고 생각해요. 얼마나 호시탐탐 '저 여자 목사가 얼마나 갈까?'를 다 생각하지 않았겠어요? 실제로 그런 얘기를 들었어요. 남자들도 살아남기 힘든 이 목회에서. 그러나 적어도 야망은 아니기에 그냥 무릎 꿇고 또 꿇으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왜죠? 이 구원 때문이죠. 이것을 의외의 몇 제자가 동참한 거예요. 주님이 영접해 주시는 사람은 이렇게 늘 의외의 사람이에요. 그래서 천국에 가보면 저 사람이 왜 왔지? 해서 너무 놀라고, 와야 할 사람이 안 와서 놀라고, 그 다음에 제일 놀라는 건 내가 있어서 가장 놀란다고 그러더라구요. 의외의 사람.
나손이 바울과 일행을 자기 집에 묵게하기 위해서 같이 갔지만요. 여러분, 너무 놀라운 일은 바울은 일주일 후에 체포가 되었어요. 그러니 나손에게는 바울과 같이 가며 이 일주일 있었던 것, 그 다음에 이 사흘 동안에 같이 이렇게 여행했던 것! 이게 인생 최고의 결정인 거예요. 여기 몇 제자는 그게 일주일일지 모르고 갔고, 또 그래서 이 사람이 이름이 없지만은 오후 5시에 온 일꾼처럼 마지막에 축복을 받은 거죠.
그래서 오늘 하나님 보시기에는 천 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 년 같은데 같이 이렇게 예배드리고, 큐티하며, 나눔하며 만나는 것이 일생일대의 기회가 이 사람들이 됐잖아요. 그렇죠? 우리도 마찬가지죠! 이렇게 그냥 만나서 나눔하고 큐티하는 게 그냥 일생일대에 기회라는 거 아셔야 돼요!
어떤 분은 그래요. 10일도 넘게 같이 여행을 갔는데 후에 같이 간 사람을 누군지 모른다고 하는 분이 있더라구요. 근데 그럴 수가 있죠. 위아래가 너무 서열이 있으면 나눔을 할 수가 없잖아요. 그죠?
바울은 로마서 같이 대단한 서신을 썼어도 마지막에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문안으로 끝내요. 또 엊그저께 디모데후서도 유언장이지만은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면서 사람들에 대한 문안으로 끝나요. 어떤 목회나 지도자도 사람에 관한 관심이 없으면 안 돼요. 그러니까 바울은 드로비모가 병든 것까지 디모데에게 알려주고 있어요. 누가 병들었는지조차 다 알고 있어요.
그들은 이 몇 제자와 우리 같이 바울과 같이 가는 것 자체가 제자 양육이 되어서 그 며칠 동안 같이 갔다고 2천 년 동안 바울과 그 어려운 예루살렘행에 동행했다고 성경에 이렇게 기록이 되었잖아요!!
우리들교회 성도들은 이 큐티인에 간증하는 원고 등, 또 설교에 등장하는 모든 분들의 나눔이 이제 영원히 기록된다고 했어요. 후에 2000년대 초반에 한국 교회의 실상을 연구할 때, 이런 실제적인 기록이 어딨겠어요. 그때 어떤 간증을 했나? 그때 교회 문화는 어땠나? 그리고 무엇을 회개했나? 지금 여러분들의 하루하루의 나눔과 이 모든 올라가는 간증들은 문서 선교에 해당하는 날들을 지금 살고 계신 거예요. 이거는 좋은 역할, 나쁜 역할 상관이 없어요. 이 진솔한 우리의 간증과 나눔들은 우리 주님이 후에 찬란하게 영접해 주실 간증들인 줄 믿습니다. 이런 분들이 여장 꾸리는 의외의 몇 제자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사람을 끝까지 의지하지 말라고! 하나님이 도우시는 것을 보라고! 이 대단한 전도자 빌립을 막으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데 저는 이제 빌립에 꽂혀서 빌립이 왜 이걸 막고 안 갔을까?를 계속 곰곰히 생각해 보았어요. 근데 이미 빌립은 가이사랴에서 1인자고, 전도자로 그 영향력이 대단한데 어떻게 바울과 함께 하겠습니까? 배신자, 잔멸자가 꼬리표로 따라다니는 바울을 개인적으로는 인정해요. 그러나 교계적으로는 본인의 입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게... 그 바울의 우리 공동체는 ampndash한마디로 수행원들은- 이방과의 혼혈인 디모데나, 이방인 의사 누가가 동행하고 있지만 누가도 노예 출신이라고 하잖아요. 그리고 그 당시 의사는 칼잡이이기 때문에 노동 계급에 속하는 거예요. 그러니 보기에도 초라해 보이는 이제 배신자, 잔멸자에다가, 혼혈인에다가 이방인들. 어떻게 그 모임을 인도하는 바울을 따라나설 수가 있겠어요? 예, 저 같아도 못 따라나섰을 것 같아요. 왜요? 우리는 늘 주인공이 되고 싶어요. 여기서 바울이나 빌립이 아니라 이 무명의 몇 제자가 되고 싶은 분이 얼마나 있을까요? 물론 성품상 그런 분이 계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성품으로 한 일은 언젠가는 생색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내 자신보다 구원이 더 중요함이 인정이 되어야 이 구원 때문에 십자가 지고 앞장서는 한 사람을 볼 수가 있는 것이고, 그 사람과 함께 갈 수 있는 것이고요. 또 그 사람을 도울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러나 평지를 걸어가는 것도 힘든데 해발 800m는 계속 오르막길이에요. 아무리 각오를 했어도 실제는 힘들어요. 여러분이 큐티인 간증 원고를 쓰는 거는 아무리 각오를 했어도 쉽지 않아요. 그래서 이 성령의 영접으로 끝까지 도와주시지 않으면.... 빌립이 몰라서 적용을 못합니까? 적용해 보세요.
[적용] 여러분은 여장 꾸리는 그 의외의 몇 제자가 되고 싶은가요? 주인공이 되고 싶은가요?
그래서 오늘 구원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도와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구원을 위해 나손의 정보를 얻기 위한 실제적인 준비를 하십니까?
올해는 구원을 위해서 이렇게 구체적으로 여러분들이 준비를 하고 도와야 될 거 같아요.
그런데 빌립보고 바울과 함께 예루살렘에 안갔다고 그랬는데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나래도 안 갔겠다. 이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믿음은 실제인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행간을 묵상을 많이 하면 사람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넓어져요. 그러니까 빌립은 좋은 사람, 여기 나쁜 사람 이렇게 놓으면 안되요. 그래서 옳고 그름으로 계속 나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누구도 그 이유가 있는 거예요. 내 쪽에서 생각하면 누구도 이유가 있는 거고. 예. 상대방 쪽에서 생각하면은 나보고 맨날 잘못했다고 그러는 거고. 이걸 이해를 해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이제 세 번째는 성령의 영접을 위해서는
세 번째 이 땅의 질서를 인정해야 됩니다.(17-18절)
17절 -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합니다. 이르니에 해당하는 이 헬라어 [기노마이]를 아주 대문자로 썼는데요. 고유명사를 기록할 때나 직접 화법일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제 이 헬라어 원문에 대문자를 잘 사용하지 않는데요. 이 이르니가 아주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이렇게 대문자로 쓴 거예요. 이건 직역하면, '드디어! 우리들이! 도착한 그때!'라는 거예요. 큰 환난이 닥칠 것을 미리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예루살렘에 도착했다는 거예요. '드디어 바울이 도착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하니까 형제들이 아주 기쁘게 영접을 합니다. (여기만 나오는 단어인데) 아주 기꺼이 영접을 했다고 그래요. 근데 여기서 형제들은 나손의 집 식구들을 비롯해서 일부 헬라파 교인들이었어요. 예, 그러니까 이제 헬라파 교인. 히브리파 교인 말고 헬라파 교인예, 그 사람들만 영접하러 나왔어요. 그런데 사실 바울이 어떻게 이곳에 도착했죠? 아시아 지역, 마게도냐, 아가야, 헬라... 수많은 곳에 교회를 세우고, 그 이방 교회의 대표 일곱 명과 함께 아시아 지역의 수많은 교회들의 헌금을 가지고 왔잖아요. 지금!! 그런데 예루살렘교회 대표 중에 한 명도 영접을 안 나왔어요. 사도 직분을 받은 어떤 사도도 나왔다는 기록이 여기 없어요. 당연히 바울이 예루살렘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죠. 아니면 어떻게 혼자 왔겠어요? '헌금 가지고 간다.' 그런데 숙소도 마련해주지 않았어요. 숙소도 바울이 알아보고 왔고복음을 위해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달려온 바울에게... 예, 이 땅의 질서는 이런 거예요. 나손의 집에 머문다는 소식을 들었다면그냥 예루살렘의 사도들이 나와서 '수고했다고~ 우리 집에 머물라고~' 했을 텐데... '저녁 식사라도 함께 하자'고 했을 텐데.그런 기록이 전혀 없어요.
근데 오히려 바울은 그냥 쉴 틈 없이! 그 이튿날 바로 선교 보고를 하러 들어가죠. 그러니까 그만큼 예루살렘 교회의 선민의식은 대단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 바울이 예루살렘을 다섯 번째 방문하는 것인데 마지막 방문이에요. 그리고 바울은 유대인 폭도들에 의해서 급기야 이제 죽을 위기에 처해서 죄수의 신분으로 이제 로마로 잡혀가게 되는 일이 발생하죠.
그러니까 저는 그냥 .... 그러니까 이럴 때 빌립이 왔었으면 좀 영접해주지 않았겠어요? 빌립은 유명한 전도자니까. 생각할수록 빌립과의 동행이 아쉬웠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빌립도 일주일이라면 왔었을 건데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오늘 18절까지 항상 등장했던 우리라는 표현은 27장까지는 이제 등장하지 않아요. 여섯 장이나 우리가 등장하지 않아요. 이는 누가가 바울과 우리를 분리한 게 아니라 이제 바울이 홀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데 우리가 한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래서 아예 우리를 뺐어요. 이게 누가의 겸손이기도 합니다. 내 십자가는 어느 누가 대신 질 수 없는 거죠. 예수 믿는 성도들은 모두 자기 십자가가 있어요. 십자가 질 때는 옆에 어떤 누구도 도움이 되지 않아요. 나손과 제자들이 옆에서 같이 가주고, 정보 주고, 도움은 되지만 결단은 내가 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들교회의 모든 일에 책임은 제가 지는 거잖아요. 결단도 제가 해야 돼요. 예, 그러니까 이게 얼마나 힘든 자리겠어요. 예, 그런데 '니가 그랬잖아?!' 이렇게 누구한테 제가 책임을 묻겠어요? 예, 눈물 흘릴 일밖에 없는 거죠. 제일 미국에서 욕이 뭐라구요? '성령 받지 말고 목사하라'. 이게 성령이 임하지 않으면 어떻게 지금 송구영신, 주일. 24시간 책상에 앉아 있겠어요. 아니, 남편 한 사람한테 순종할 때는 이렇게 24시간 앉아 있진 않았거든요. 24시간. 그런데 이게 일이 되면 앉아 있겠어요? 눈도 안 떼고 앉아 있는 거예요. 일어나는 것도 다 잊어먹었어. 그러니까 이것이 십자가에 달려 있을 때 이거 누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죠? 십자가는 내 손과 발이 수고해서 피흘려져야 하는 거예요. 예, 이렇게까지 하는 데는 이제 그만큼 저도 이제 힘들었으니까 이게 사명인 거죠. 오늘 한 명이라도 살리라고. 그죠. 형식적으로 하는 게 아니고 오늘 진짜 한 사람이 살아나라고... 그런 마음이 저한테 늘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제 뭐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서 환영받고, 박수받는 게 아니죠. 뭐 적용한다고 해서 박수받고 환영받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다 좋아한다고 그래도 늘 아닌 사람이 있어요. 예, 그런 얘기를 평생 이제 이렇게 듣고 오는 거죠. 예 그거 다 아니까. 이런 거에 대해서 일절 바울은 괘념치 않아요.
이튿날 바울은 야고보와 장로들을 만납니다. 이 야고보는 우리가 사도행전 15장에서도 봤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예요. 베드로, 요한, 야고보로 구성된 핵심 멤버 가운데 베드로와 요한은 이때 선교 활동에 주력하였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어가고 있었어요. 야고보가 있는 곳에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도 함께 있었어요. 사도행전 15장에서는 사도와 장로들이 모두 기록됐는데 이 구절에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없네요. 그래서 아마 일부러 떠났을 수도 있겠다 이 생각이 드는 거예요.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한 명의 감독과 70명으로 이루어진 장로회로 구성되어 있었어요. 당회죠. 그죠? 이 70인 장로회는 유대교의 산헤드린과 비슷한 기관으로서 교회의 공식적인 일을 결정하는 의결기관이었는데. 이제 이 예루살렘 교회에도 이 기관이 이제 있는 거죠.
그래서 야고보와 장로들이 이렇게 함께 모인 이유는 지금 바울로부터 이방 교회의 구제 헌금을 이제 받고, 선교 보고를 듣기 위해서 모였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공식적인 일은 하지만 하나도 감사하고~ 이런 거 표현 안 하잖아요. 느그들이 와서 돈 주고 가려면 가 지금 사실 이런 거예요. 자 야고보가 이제 또 나왔어요. 야고보는 마리아가 요셉과 결혼해서 낳은 4명의 아들 중에 첫째 동생이에요. 그러니까 마리아가 예수님 다음으로 이제 육신의 혈통으로 낳았기 때문에 이제 예수님의 혈육이 됐잖아요. 이것 때문에 그냥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가 되는데 아주 절대적인 인정을 받았어요. 그래서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가 오늘 그 중요한 표현인데 이 들어가다를 성전에 들어가다 하는 표현하고 똑같은 표현을 썼어요. 그러니까 당시 야고보는 성전이에요. 아주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았어요. 예수님의 혈육이라는 것 때문에 성전과 동일시 한 거죠. 야고보는 사도행전 12장까지의 베드로처럼 사람 살리는 대단한 역사도 없고, 그 13장부터의 바울의 기가 막힌 행전도, 박해도 이렇게 받은 일이 없어요. 그런데 그 당시 누구도 이 야고보의 리더십을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야고보도 형제 중에는 훌륭합니다. 왜냐하면 한 장짜리 그 유다서를 쓰기도 했잖아요. 이단 사설을 다루는 데는 야고보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여러분 2000년 후에는요 야고보를.. 그러니까 이제 야고보가 바울이나 베드로를 따라갈 수가 없잖아요 그죠 우리는 베드로하고 바울밖에 몰라요. 그러니까 어쩔 수 없는 그 시대의 문화와 전통이 있는 거예요. 시간이 가야만 하는!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거죠. 그만큼 우리는 자기애로 익숙한 이 자기 자리를 벗어나기가 어려워요. 하다못해 여러분, 교회에 가도 자기가 앉는 자리만 앉잖아요. 그러니까 익숙한 거를 너무 벗어나기를 싫어해요. 그러니까 이방인 무시하는 것이 조상 대대로 내려왔는데 그게 어떻게 바뀌겠어요 저는 이걸 보면서 어휴 이방인도 무시하는데 게다가 여자는 더 무시하죠. 성경에 남자와 여자가 하나다 라고 그걸 성경에 바울이 기록한 것 자체가 차별이 있다는 뜻이에요 바울이 유대인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전도했죠. 근데 주님은 이방인을 땅끝까지 전하라 했는데도 이 전도의 대상이 이방인으로 바뀌니까 니가 어떻게 이방인을 전도하냐 맹렬히 비난하다 못해 죽이려고 했어요. 나의 기득권 내 자리가 익숙하면 하여튼 넘어가지를 못합니다.제가 여자라서 제가 전하는 복음이 맞을까 를 생각하는 이 남자들 특히 직분자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 사역자들 가운데서도 부모님들이 교계의 중진이면 니가 왜 여자 목사 밑에 가서 있냐 고 하는 분들이 있더라구요. 근데 누구보다도 저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옛날부터 왜냐하면 저는 아주 이 전통적인 교단에 있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제가 50이 되기까지 신학을 안 한 큰 이유예요. 남자는 겉으로 무시하고, 여자는 속으로 무시하는 그 여자. 제가 속으로 무시하는 여자, 제가. 저는 너무 이해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빌립이 너무 이해가 되고, 또 바울이 이해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구속사는 이렇게 누구를 욕하는 게 아니고 이해하는 거예요. 인간론이에요. 그러니까 항상 내 입장에서 보면, 다 맞는 거예요. 내가 무시당하는 것도 맞고, 다 맞아. 상대방의 입장은 그 사람 입장이지 나는 내 입장에서 이거를.. 그래서 큐티를 해야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땅의 질서를 인정하며 가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저에게 여자의 일생을 살게 하셨나 봐요. 누구보다 여자로서 밑바닥을 경험하게 하셨는데 그럼에도 제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아주 제가 전하는 이 복음은 한쪽에서는 늘 또 살아나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없으면 옛날에 그만뒀을 건데. 그러니까 내가 직분 때문에 하는 게 아니고, 그 한 사람 살아나는 사람 때문에!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이. 제가 무슨 큰 교회 목사가 됐다고 정치를 합니까 뭘 합니까 한결같이 한 사람의 영혼 때문에 오늘도 한 가정 살아나라고! 이렇게 대신 깨달아 드리는 거죠. 그래서 여기까지 왔어요. 그러니까 제가 한 교회의 부흥보다 이 말씀묵상 가정중수라는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하는 거예요. 이것이 훗날에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왜 말씀묵상 운동을 하냐 왜 큐티를 하냐 진짜 너무너무 이제 모르시는 거예요. 한 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어렸을 때부터 목회자로 준비된 사람이 아니에요. 정말 저는 불가항력적으로 바울처럼 중간에 사명받아서 이 운동 때문에 하나님이 정말 이렇게 쓰시는 거지. 제가 큰 교회 목사에서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요. 정말 한 구절 한 구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구절들이에요. 여러분들 숨결이 괜히 느껴지는 것이 아니죠? 내가 당한 게 많으니까 이게 느껴지는 거예요. 깨달아지고
오늘 당회가 결성됩니다. 지난번 공동의회에서 모든 평초원님들이 장로, 권사로 추대가 되었어요. 그래서 161명이 되어서 그런데 이분들이 때마다 모여서 이 결정을 하기가 너무 힘들잖아요. 그래서 오늘 그 장로, 권사님들이 남자 중에 9명, 여자 중에서는 5명의 당회원을 뽑는 호선을 합니다. 우리들교회가 독립교회연합이다. 보니까 그 상회의 기관인 노회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제 강력한 당회가 이제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이 장로들 중에서도 2년마다 호선을 하고, 4년이 지나면 2년을 쉬고 다시 이렇게 이제 피선거권이 주어지게 되는 거예요. 근데 오늘 그 호선을 하는데 글쎄 오늘 본문에 또 예루살렘교회 당회가 나오구만요. 너무 재밌지 않아요? 그리고 오늘 또 시편 2편은 기름 부은 자 리더십, 통치자.. 허사를 경영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저는 그냥 맨날 너무 놀라요! 아니~ 성경에 장로가 희귀한데 우리가 뽑고자 하는 공동의회부터 계속 성령의 감독자부터 계속 이렇게 정말 그냥 말씀대로 장로 얘기가 나와서.. 또 엊그제 큐티 디모데후서 본문에도 디도보고 장로를 세우라고 그레데에 남겨두었다는 디도 얘기가 나오잖아요. 그래서 말씀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당회가 되라고! 당회가 될 거라고! 이렇게 인 쳐주는 줄 믿습니다. 말씀대로니까. 오늘 뽑고 다음 주에 임직식 사명 예배를 드릴 건데 임직식이라고 안 그러고 우리는 사명예배. 근데 사실 지금 코로나로 이게 이제 아무도 못 오고 본인들만 오게 됐어요. 너무 유감이에요. 첫 번째 이렇게 장로 권사 사명 예배를 드리는데. 161명이니까 한 명만 더 와도 이미 300명을 훨씬 넘잖아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본인들만 모여서 이제 사명예배를 드립니다. 무엇이든지 말씀대로 되어서 모두 성령이 영접을 해주시는 장로 권사님들이라고 이제 인쳐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우리들교회 장로 권사는 정말 감투가 아니에요. 우리들교회는 이미 사람 살리시는 직분으로 검증이 되신 분들이라 반드시 롤모델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들교회 장로, 권사는 장로, 권사 된다고 돈을 내는 사람이 없어요. 워낙도 그렇지만. 그러니까 이게 진짜 검증이 된! 사람 살리는 영의 직분으로 이렇게 한국 교회에 또 이렇게 모델이 됐으면 좋겠어요.
적용해 보세요.
[적용] 이 땅의 질서를 인정해야 한다고 순종하십니까? 인정받아야 한다고 소리를 드높입니까? 그래서 나이, 계급, 그냥 남녀, 직분을 따집니까?
인정받아야 되는 사람의 결정적인 맨날 하는 말 내 나이가 얼만데 그냥 뭐 이 계급, 남녀 직분을.. 그러시면 안된다는 거예요. 성령의 영접하시려다가 도망갑니다.
이번 주 이제 나눔에 보니까 이 권찰님이 중3인 우리 막내가 공부를 못해요. 전교 그냥 꼴등을 하다시피 해요. 제발 자기 진로라도 좀 찾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요. 근데 막내가 그냥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점수가 그냥 거의 바닥이야 바닥 자기 입으로 바닥이야 바닥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엄마 그래도 내 뒤에 세 명이 있어 그래서 너무 어이가 없었다고 그랬는데 이 목자님이 그 말을 받아서 뭐라 그러냐면 그래도 우리 막내가 청큐 집필진을 하고 있다고.. 우리 큰애도 청큐 간증 썼고, 둘째도 썼고, 저도 썼고 막내도 썼다고 우리 집이 다 많이 배우지는 않았는데 이 교회 공동체의 집필진을 하게 되어서 이 가문의 영광이라고!! 그런데 드디어 막내까지 집필진으로 섬기고 있다고. 그래서 저는 공부 좀 못해도 본인이 자존감 갖고, 남들한테 너무 뒤치지 않을 정도는 하면서 이제 공부하는 방법 정도는 알려줘야 되겠다~ 이것 외에는 이제 그냥 기도하면서 같이 가면 된다고 그랬더니 금세 남편 말을 듣고 권찰님이 진짜 공동체 붙어만 가면은 수지맞는 것이고요 정말 하나님이 이렇든 저렇든 잘 살아가게 해주시는 것 같아서 제가 봐도 저희는 한 게 없는데 이렇게 하나님이 그냥 이사도 가게 해주시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진짜 전적인 은혜 같아요
우리들교회가 주로 이런 나눔을 해요. 너무 멋있지 않아요 온 집안 식구가 큐티 간증을 다 쓴대요. 지금. 서울대학 할아버지를 가면 뭐 하겠어요 성령의 영접을 받아야죠! 이게 정말 성령의 영접 아닌가요 이 아버지는요 얼마나 힘들게 사셨는지 몰라요. 다음 주일에 들으세요. 정말! 그런데 예수도 믿고 결혼도 하고 그냥 안 된 게 없어요. 세 자녀 낳고. 다 청큐 집필진이라고 해요. 이야말로 의외의 제자 아니에요 이야말로 의외의 제자예요! 상상을 못하는 진짜 이 밑바닥에서 올라와서 다 이렇게 이루었어요
말씀 맺습니다
성령의 영접은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진짜 주인공이 되는 빌립이 가는 게 아니고 의외의 몇 제자가 여장을 꾸려서 2천년 동안 찬란하게 기록되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이 땅의 질서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빌립을 인정해야 되는 거예요. 빌립은요, 따라 나설 수가 없어요.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따라나서겠어요. 그걸 이해해야 돼요. 저는 여자인 거를 너무 이해하고 가니까. 지나고 나서 보니까 목회가 되게 하셨어요. 제가 남자를 물리치자 언제 그랬어요 여자의 머리가 남자고 남자의 머리가 그리스도다 이런 분들이 성령의 영접을 받은 분들입니다. 근데 제가 끝이 항상 시작이라 그랬기 때문에 오늘 이제 이 찬송을 1월 1일 날에 부른 거를 여러분들이 영원히 기억하셔서 어떤 끝에 있는 분들이라도 끝이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이 찬송 부르고 기도할게요.
찬양합니다
내 인생 여정 끝내어 강 건너 언덕 이를 때 하늘 문 향해 말하리 예수 인도하셨네 매일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셨네 나의 무거운 죄 짐을 모두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하셨네 이 가시 밭길 인생을 허덕이며서 갈 때에 시험과 환난 많으나 예수 인도하셨네 매일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셨네 나의 무거운 죄 짐을 모두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하셨네 내 밟은 발걸음마다 주 예수 보살피시사 승리의 개가 부르며 주를 찬송하리라 매일 발걸음마다 예수 인도하셨네 나의 무거운 죄 짐을 모두 벗고 하는 말 예수 인도하셨네
기도제목 여러분들이 정초나 또 끝날이나 이렇게 다 똑같고 우리의 십자가는 부활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그러니까 우리가 뭐 암에 걸리든 부도가 나든.. 오늘 이 찬송을 생각하면서 나의 끝이 시작이다 그러니까 이렇게 늘 예방주사를 맞으면 여러분들이 올해 어떤 일이 와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아요.
내 인생 여정 끝나서 강 건너 언덕 이를 때, '예수가 인도하셨다.' 이 얘기만 들으면 성공한 거 거든요. 성령의 영접이 기다리고 있고! 이 땅에서 성령의 영접을 받고 그렇게 걸어가면서 마지막 주님께 안기는 그 인생을 산다면, 우리한테 일어나는 인생은 어떤 끝도 시작인 거예요 그래서 이제 우리가 오늘 나의 묶인 환경에서 이제 복음 때문에 좀 견디게 해달라고. 이해타산이 아니고. 그리고 이제 여장 꾸리는 의외의 그 몇 제자에 속하게 해달라고. 이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것. 그것 좀 내려놓고 자존심을 버리고 그 도와야 할 사람을 돕게 해달라고. 가장 중요한 이 땅의 질서를 인정하게 해달라고. 인정받아야 한다고 소리 좀 드높이지 말고 인정하게 해달라고. 정말 구원 때문에 올해 이 목장에서나 상대방을 연구하고 또 알아서 그 믿음의 분량이 어떤지. 그래서 올해 모든 분들이 성령의 영접을 할 수 있는 올해가 되게 해달라고 다 같이 우리 주님 부르고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새해 벽두에 이렇게 성령의 영접을 알려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예루살렘을 올라가야 하는 바울 사도의 이 절박함이 느껴져옵니다. 복음 때문에 그렇게 안타까웠듯이 주님 저의 큐티 사역도 사람 살리는 사역이었지만 제가 너무 무명했기에, 또 여자였기에 유력한 분 유명한 분들에게 도장을 계속 찍고 싶었어요. 그러나 늘 바울처럼 제 옆에는 힘든 사람들만 있었기에 끊임없는 무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분들이 또 따라나섰어요. 그래서 바울 사도의 이 사도행전이 너무 이해가 되고, 이 숨결이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이 땅의 질서를 인정해야 하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나에게 질서를 안 지키면 그걸 인정을 안 하고 제가 인정받아야 한다고 이제 속에서 슬픕니다. 사람은 참 예외가 없는 것 같아요. 성령님이 저를 영접해주신 건 맞는데요. 좀 더 성령이 거하는 자답게 곳곳에서 사건마다 정말 이 땅의 질서를 인정하게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영접이 필요한 지체들이 너무 많아요. 주님, 다 가서 안아주시고, 안수해주셔서 은사가 불 일 듯이 일어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올해는 이 나라에 대선이 있습니다. 생각할수록 정말 눈물이 나고, 주님, 이 나라를 어찌하면 좋습니까? 주님, 불쌍하게 여겨주시옵시고, 우리 예수믿는 사람이 잘못 살아서 예수믿는 사람들 때문에 이런 모든 일이 옵니다. 회개하고 자복하여서 이 모든 심판을 잘 받아낼 수 있도록. 주님, 날마다 회개로써 아버지 하나님, 나가는 우리 모든 믿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사람의! 한 사람의 지도자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그 말씀이 들리는 한 사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봉헌합니다
목장기도제목
신애리
-새로운 직장 잘 적응하도록
-피곤하다는 핑계로 큐티 게을리하지않도록
이은실
-다음주 수요일 잡힌 면접 주님의 은혜가운데 떨리지 않고 잘 통번역 테스트 볼 수 있도록
- 현재 프리랜서로 들어오는 일이 과히 많아서 스트레스 받고 있는데 우선순위 정하여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신교제 신결혼 기다리며 인내하기
박재은
- 예배와 목장 꼭 참석할 수 있도록
김이나
- 같은 상황이 생길까 제가 물어보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물어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과감하게 입을 열수 있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임수빈
-게으름피우지않고 부지런하게 움직일수있는 선한환경을 열어주시길
-큐티묵상 빠지지않고 열심히하고 잘 섬길수 있는 지혜와 의지의힘을 길러주시길
-컴활2급 다시공부하는데 제대로 집중해서 공부를 할수있게 잡념을 버리고 집중력할수 있는 힘을 길러주시길
오찬미
-진로말씀으로인도받기를
-내힘을 뺄수있기를
-동생이 하나님품에돌아오기를 손과발이가는적용할수있도록
김자영
- 집 가까운 곳에 발령 나기를
- 불안해하지 않기를
- 목장 식구들 새로운 목장에 모두 잘 적응하기를
김성은
- 모든 목장 식구들 새로운 목장에서도 성령의 영접 하기를 누릴수 있기를
- 친구들과의 비교의식 열등감 내려놓기
- 신교제 신결혼 기다리며 인내하기
- 일반은총 귀하게 여기며 영적 정신적 육체적 치료 잘 받을수 있도록 인도해주세요
윤지혜
- 구원을 위해 나손의 정보를 얻기 위한 실제적인 준비를 할 수 있도록
- 묶인 환경 복음때문에 잘 견디도록
- 여장꾸리는 의외의 몇 제자가 되고 그런 동역자들 붙여주시도록
- 가정예배 꾸준히 드릴수 있도록
**목장 공통기도제목**
★우리 모두의 진로 질병 관계 신교제 신결혼 계속해서 소망가지고 기도하며 준비될 때에 인도하여주시고
응답하여주실 줄 믿습니다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성령의 전송하기 원합니다 은혜의 말씀에 부탁하며 새 목장에 잘 붙어가기를 기도합니다